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10-26 05:18:57

위구르 제국

회흘에서 넘어옴

위구르 제국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fd100> 정치 <colcolor=#000,#fff>카간 | 역대 위구르 카간
역사 고창회골 | 하서회골 | 카라한 칸국
종교 텡그리 신앙 | 마니교
문화 돌궐 문자 | 위구르 문자 | 포르바진
}}}}}}}}} ||
<colbgcolor=#ffd100><colcolor=#000000> 토쿠즈 위구르
𐱃𐰸𐰆𐰕 : 𐰆𐰖𐰍𐰺[1]

九姓回紇 → 九姓回鶻[2]

Uyghur Khaganate[3]
파일:uighur.png 파일:Yaglakar_clan_tamga123.png 파일:ediz tamga.png
문장(탐가)[4]
파일:Map_of_Uyghur_Khaganate.jpg
742년 ~ 840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토쿠즈 오구즈
[[위구르 제국|
토쿠즈 위구르
]]
하서 위구르
돌궐 제2제국 고창 위구르
카라한 칸국
키르기스 제국
수도 외튀켄 의쉬 → 오르두 발리크[5]
정치 체제 유목정
국가원수 카간
국성 야글라카르[6] → 에디즈[7]
언어 고대 위구르어[8], 소그드어
민족 튀르크계, 위구르인[9]
종교 텡그리 신앙, 마니교
현재 국가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중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중국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중국}}}{{{#!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몽골|{{{#!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몽골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몽골}}}{{{#!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키르기스스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키르기스스탄}}}{{{#!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타지키스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타지키스탄}}}{{{#!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카자흐스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카자흐스탄}}}{{{#!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러시아|{{{#!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러시아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러시아}}}{{{#!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1. 개요2. 역사
2.1. 건국과 발전2.2. 왕조 교체와 전성기2.3. 쇠퇴와 멸망2.4. 멸망 이후
3. 문화4. 역대 카간5. 기타6. 같이보기7. 둘러보기

1. 개요

위구르 제국의 역사[10]

741년, 튀르크 계열 부족인 위구르족이 봉기하여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키고 성립된 제국. 약 100년 동안 당나라와 반목과 친목을 반복하며, 실크로드에서 얻어지는 부를 바탕으로 820년대 후반 위 지도에 나온 영토 수준으로 크게 팽창해 최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839년 창신 가한이 내부 권력 다툼 끝에 시해당하고, 역병[11]이 퍼지면서 혼란에 빠졌다. 840년 위구르 제국의 셍귄 퀼뤽 바가의 구원 요청을 빌미로 10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키르기스족에게 수도 카라 발가순이 파괴당하며 멸망하고 말았다.

2. 역사

2.1. 건국과 발전

골력배라(骨力裴羅)가 즉위하여 힐리토발(頡利吐發)이 되었다. 마침 돌궐이 계승 분쟁으로 내분이 일어나 어지럽게 되자 천보(天寶) 초기에 갈라록과 함께 스스로를 좌엽호와 우엽호라 칭하고, 발실밀을 도와 돌궐의 오소미시 가한을 격파했다. 3년이 지나 골력배라가 다시 발실밀을 습격해 격파한 다음에 바스밀의 힐질이시가한을 죽이고 사신을 보내 상황을 알리며 스스로를 골돌록비가궐가한이라 칭하자, 천자(天子)가 그를 봉의왕(奉義王)으로 삼았다...(중략) 이듬해 골력배라가 돌궐 백미가한(白眉可汗)을 공격해 쳐죽이고 돈철라달간이 와서 공을 알리자 황제가 골력배라를 좌효위원외대장군에 제수했다. 이 무렵 그는 땅을 더욱 넓혀 동쪽 끝으로는 실위(室韋), 서쪽 끝으로는 금산(金山), 남쪽으로는 고비(大漠)에까지 다다랐으니 가히 옛 흉노의 땅을 다시 차지한 것이 되었다. 골력배라가 죽고 그의 아들 마연철(磨延啜)이 즉위하여 갈륵가한(葛勒可汗)을 칭했는데, 그의 성정은 빠르고 사나웠고 군대를 잘 부렸으며 매년 사신을 보내 조정에 입조하였다.
『신당서』 217권 회흘 열전
700년대 중반, 위구르족은 바스밀 및 카를룩 부족과 연합해서 몽골 초원의 패자였던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키고, 이후 바스밀과 카를룩도 물리쳤다. 그리고 카라 발가순(Kara Balgasun) [12] 근교의 오르두 발릭(Ordu Balik)으로 근거지를 옮긴 뒤 당나라로부터 인정받아 위구르 제국을 성립시켰다. 이리하여 위구르족은 단숨에 초원지대의 최대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으나, 초창기에는 제국을 칭할 만한 기반도, 세력도, 권위도 무엇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에 개국군주였던 쿠틀룩 빌게 퀼 카간과 그 뒤를 이은 카를륵 카간은 치세의 대부분을 키르기스, 튀르게시, 퇼리스, 카를룩, 세키즈 오구즈, 토쿠즈 타타르, 바스밀 등 자신들에게 복속하지 않는 초원의 유목민족들을 정벌하며 보내야 했다.[13] 그런데 건국 이후 불과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같은 역학관계를 일거에 뒤바꿀 만한 대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이었다.

위구르 제국에서 돌궐을 무너뜨릴 때 많은 돌궐인의 잔당과 소그드인들이 중국으로 피신하면서 안녹산 휘하에 편입된 것이라서 안사의 난이 위구르와 무관하지는 않았다. 이 잔당들이 남아있는 한 돌궐을 격파하고 어렵게 이룩한 초원의 패권을 다시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위구르에서는 안사의 난 초창기부터 안녹산 측에 합류한 기타 초원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당나라 측에 구원군 파병 의사를 반복해서 전했다. 위구르는 756년에 카라치가 지휘하는 3,000명의 기병을, 757년에는 카를룩 카간의 아들 야브구가 이끄는 4,000명의 기병을 보냈다. 이들은 유주와 태원을 공략하고,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와 연합해 낙양과 장안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를 통해 당나라로부터 매년 비단 20,000필을 포함한 막대한 물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들어온 물자들을 이용해 주변 세력을 포섭하거나 격파하며 세력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물자를 마니교도나 소그드 상인을 통해 서역으로 보내면서 막대한 실크로드 교역 이익을 취했다. 이때부터 위구르족은 진정한 제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구르는 당나라의 순수한 우군이 아니었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이때의 혼란을 틈탄 위구르군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낙양 등의 거대 도시를 유린했고, 당 태종의 후손과 황후로 칭해지는 자들을 사로잡아 몽골 초원으로 압송했다. 이때만 해도 당나라의 만류와 그들이 내어주는 물자를 받고 약탈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을 겪으면서 당나라의 여력이 완전히 소진된 것을 확인한 '사사명의 난' 시기에 들어서는[14] 당나라의 만류조차 무시하고, 함락한 도시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하고 물자를 강탈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낙양을 함락한 다음에는 3일간 대대적인 약탈과 살육을 단행했다. 《신당서》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위구르군을 두려워한 백성들이 살기 위해 낙양 인근의 백당사로 몰려들었으나 위구르군이 절에 불을 질러서 백당사에서 죽은 자만 1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당나라와 위구르는 상호협력관계에 가까워져 토번이나 기타 유목민족 세력과 맞서기 위해 수차례 손발을 맞췄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로 이후로는 당나라에서는 자국 내의 사안을 해결할 때 위구르의 힘을 빌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그 후로도 안사의 난을 겪으며 여력이 소진된 당나라를 위협하여 북방을 자주 침범하여 당나라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받아냈다. 국경에 정기시장을 열어 품질이 떨어지는 말들을 자신들이 정한 고가의 가격에 가져갈 것을 강요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특히 위구르의 요청에 따라 당나라는 황녀까지 위구르 제국의 가한에게 시집보냈으며, 사실상 공녀를 보낸 것과 같은 굴욕적인 처사였다.

당나라의 대종은 아들 옹왕(훗날의 덕종)을 당군의 지휘관으로 삼아 영접단을 구성해 뵈귀 카간의 입성을 환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위구르 측은 당 영접단 측이 위구르 전통 춤을 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자에게 직접 춤추라고 요구했다. 이에 당의 관리가 황태자가 아직 나이가 어려 전통춤을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이에 격분한 위구르 측 신하가 직접 관리를 매질해 때려죽여 버렸다. 그 정도로 위구르 측은 당나라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15]

당나라 사서에서는 이때의 위구르 제국의 강성함을 두고 탄식하는 기사를 남길 정도였다.
初, 回紇風俗樸厚, 君臣之等不甚異, 故眾志專一, 勁健無敵.
그들은 검소하고 상하가 사치를 모르며 서로 굳게 단결하여 의심이 없으니, 그 힘이 가히 무적이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226권 덕종 원년

파일:Manicheans.jpg

장안(長安, 현재의 시안시)을 점령했을 당시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던 이란 계열의 마니교와 접촉하여 마니교 사제와 신도들을 몽골 초원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마니교를 상당히 우대하여, 781년 아예 국교로 반포하고, 위구르 귀족들은 육식을 금하는 마니교의 법에 따라, 초원에 밭을 만들고 채소를 길러 먹기도 했으며 후기에는 아예 카라 발가순이라는 도시를 신축하고 살기도 했다.[16]

하지만 지나친 억압과 수탈은 곧 당나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어느 정도 세력을 회복한 당나라에서 국경 수비를 강화하면서 시장 폐지, 국경 봉쇄 등의 강경책으로 대응하자 곧 심각한 물자 부족과 내부 반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조치가 위구르 제국에 심각한 문제가 된 이유는 당나라에서 유입되는 물자가 그들이 초원의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당나라를 공격해도 필요한 물자를 얻을 수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17]

결국 당나라로부터 물자 유입이 끊기자 위구르 제국은 초원에서의 패권을 유지할 밑천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세력들을 정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나라만큼 막대한 물자를 제공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위구르 제국의 무거운 요구에 견디다 못한 온갖 세력에서 터져나온 반발을 감당해야 했다.[18] 특히 강력하게 반발했던 세력이 훗날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키는 키르기스족이었다.[19] 일련의 사건을 통해 위협만으로는 자신들에게 독으로 돌아올 뿐임을 깨달은 위구르 제국에서는 그간의 강압적이었던 자세를 버리고, 당시 군사력이 필요했던 당나라에 병력을 제공하고 꼭 필요한 당나라의 비단을 얻는 협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후 당과 위구르는 반목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에 접어들었다.
"위구르는 나라의 어려움을 구해준 공이 있고, 일찍이 조금의 땅도 침탈하지 않았는데, 어찌 후하지 않겠는가?"

이후 과거 위구르 제국을 비판하던 당나라에서 위구르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릴 정도로 양국관계는 개선되었다. 위구르 역시 제국이 부를 획득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서역 경영의 라이벌인 토번이 당나라를 공격할 기미를 보이자 당나라에 군사지원을 약속하고 병력을 지원했을 정도였다.

2.2. 왕조 교체와 전성기

790년 제8대 카간인 텡그리데 울룩 볼미쉬 알프 퀼뤽 빌게 카간[20]이 즉위함에 따라 지배 씨족이 야글라카르(藥羅葛, Yağlakar)에서 에디즈(硤跌, Ediz)로 바뀌게 되었다. 과거 유목제국은 카간 한 사람의 역량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따라서 칸위 분쟁이나 지배 씨족이 바뀌는 경우 국가가 와해되거나 재기불능의 상태에 몰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위구르가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후 전성기를 누리게 된 이유는 회신 가한이 야글라카르 씨족의 자제들을 전부 당나라로 보내 버리는 등 뒤처리를 적절하게 잘했고, 당나라의 이이제이적인 견제나 여타 부락의 이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신 가한은 계속 야글라카르 씨족을 모칭했고, 이후의 비문 기록에 와서야 그의 즉위로 인한 씨족 교체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8세기 말 ~ 9세기 초엽 무렵 토번과 충돌하던 당에서 최종적으로 서역 경영을 포기하게 되었다. 당나라와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위구르 제국은 이전까지 당나라가 운용하고 있었던 서역 영토를 인수하여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토번을 견제한 당나라에서는 토번이 장악한 영토를 피하고 협력관계에 있던 위구르가 장악한 영토를 통해 서역 교역에 나서려는 시도를 함에 따라 최대의 번영기를 누리게 되었다. 당나라와의 친선관계를 통해 얻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주변 세력들을 포섭한 위구르 제국은 결국 수없이 충돌해왔던 키르기스족까지 완전히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이 과정에서 토번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군사적으로 패배하기도 했으나 당과의 협력정책으로 라이벌 토번을 고립시킬 수 있었다. 결국 당나라와의 협력관계 구축은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만든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물론 이같은 협력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국의 마찰은 결코 적지 않았다. 당에서 유입되는 물자가 몹시 중요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카간의 성향에 따라 위구르 제국은 토번과 싸우는 중에 진격로를 당나라에게 위협이 되는 방향으로 돌리거나, 토번과 당나라가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비어있던 당나라령 서역 영토 일부를 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당나라에서는 위구르 제국으로 들어가는 물자 공급을 끊어버리거나 도움 요청을 무시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당나라는 상대의 무력을, 위구르는 상대의 경제력이 반드시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마찰은 서로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2.3. 쇠퇴와 멸망

820년대 말 ~ 830년대 초엽 소례 가한 시대에 위구르 제국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으나, 그 뒤를 이은 창신 가한이 839년 내부 권력 투쟁 끝에 승하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상층부의 내분으로 크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역병[21]이 번져 가축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위구르 제국의 역량은 크게 저하되었다. 이런 국면속에서 840년 내부 권력 다툼에서 밀린 셍귄 퀼뤽 바가가 남시베리아 예니세이 강에 자리를 잡고 있던 키르기스족에 도움을 요청했다.[22] 셍귄 퀼뤽 바가의 구원 요청을 받은 키르기스족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짓누르기 위해 노력하던 위구르 제국을 결정적으로 붕괴시킬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무려 10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해[23] 위구르 제국의 수도 카라 발가순을 대대적으로 공격해 철저히 파괴했고, 제국으로서의 위구르는 이 때를 기점으로 멸망했다. 비록 멸망 이후에도 하서 위구르, 천산 위구르, 카라한 칸국 등의 군소세력들이 계속 존재했으나 다른 세력과의 충돌 끝에 흡수당하거나 신장으로 향했던 세력처럼 아예 현지화되어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4. 멸망 이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고창 위구르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고창 위구르#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고창 위구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하서 위구르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하서 위구르#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하서 위구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키르기스족은 위구르 제국을 무너뜨렸지만 정작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유목제국을 건설하지 못했다. 결국 몽골 고원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실패하고 자신들의 근거지였던 예니세이 강 유역으로 후퇴하였다.[24]

그러자 막북의 초원 지대는 힘의 공백이 발생했다. 이 공백 상태를 틈타 몽골 초원의 패권을 차지한 세력이 바로 흥안령 산맥 넘어 동쪽에서 발흥한 거란의 요나라였다.[25] 요나라는 위구르 제국으로부터 칙령과 인장, 기초적인 통치 제도를 흡수하고 관직 제도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초원을 통제하는 북면관제를 정비했으며, 위구르의 수도였던 카라발가순 인근에 진주(鎭州)를 설치하고 인근 3주를 묶어 건안군 절도사사를 세워 일대를 통제하도록 했다.

위구르 제국을 다스렸던 위구르인들은 멸망 이후 힘의 공백이 벌어진 시기[26]에 대규모 이주를 시작해 중국, 중앙아시아 등 여러 지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일부는 몽골 고원을 떠나 현재의 타림 분지로 이동하여 터전으로 삼고, 고창 위구르, 하서 위구르, 호탄왕국 등의 국가들을 세웠다. 이 시기부터 동투르키스탄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이 시작되었다. 한편 남부로 이동한 위구르인들은 천산 위구르, 하서 위구르 등으로 이어져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명맥을 이어갔다. 또 다른 일부는 머나먼 동쪽으로 이동하여 흥안령 산맥을 넘어 거란족에 의탁했는데, 훗날 요나라의 황후를 독점하게 되는 술률씨->소씨 가문이 바로 위구르 유민의 후예들이다. 다수의 위구르인들은 흩어졌지만, 본토에 남은 일부 위구르인들은 이 일대의 새로운 지배자인 요 왕조에 위탁했고, 요 성종대에 설립된 설특부(薛特部)나 회골부(回鶻部)로 편성되어 동화되었다.

본래 중앙아시아 일대는 이란계 소그드인 등 여러 민족이 살던 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하면 대부분 튀르크계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위구르 제국 멸망 이후로 이어진 위구르 유민들의 대대적인 중앙아시아 이주와 정착이 장기적 관점에서 중앙아시아 전체의 튀르크화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13세기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흥기하자 유능한 상인세력으로 변해 있었던 위구르족은 자진 투항하여 몽골 제국을 이끄는 브레인 역할을 했다.

3. 문화

이전에 몽골 고원 일대에서 비슷한 강역을 차지했던 유목제국 흉노나 돌궐과 달리 위구르 제국은 거대한 성곽도시를 건설했다. 이는 중국 및 중앙아시아와 오랫동안 접촉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제3대 뵈귀 카간이 건설한 수도 카라 발가순의 옛 터[27]에는 높이 8.5m에 둘레 1.6km의 장대한 성벽이 남아있고, 지금의 몽골 볼간 아이막에는 제2대 카를륵 카간 시대에 건설한 한 변 240m의 정사각형에 높이 7m 규모의 성곽도시 유적이 남아있다.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테레홀(Tere-Khol) 호수 가운데 섬에 지어진 포르바진이라는 성채 유적도 위구르 제국에서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구르 제국은 돌궐 제국과 같은 돌궐 문자[28]를 사용했으며, 이는 현재 몽골 초원에 남아 있는 여러 비문과 명문에서 확인된다. 대표적인 비문으로는 <시네 우수 비문>[29], <타리아트 비문>, <카라발가순 비문>[30] 등이 있다. 대부분 마모가 심해 해독이 어려운 편이고, 그 수도 적어서 위구르 제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쉽지 않다.[31]

위구르 제국은 문화적으로는 당나라와는 거리를 두었다. 당나라의 건국 집단인 관롱집단이 본래 선비족이었으나 중국 진출 이후 한화되었던 것과 반대로, 중국 문화와는 이질적으로 소그드 문자를 비롯한 소그드 문화를 받아들였고 종교로는 마니교를 국교로 삼았다.[32] 그외 불교도 믿었다.[33]
위구르인들이 택할 수 있었던 사항들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이 군사 동맹이자 견마 무역 대상으로 당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혹은 어쩌면 그러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화적, 정치적 토대로 중국의 모델이 아닌 소그드의 모델을 선택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동돌궐제국이 당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흡수, 병합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의심의 여지없이 여전히 생생했다. 실제로 돌궐의 퀼테킨은 겨우 30년 전 오르혼 계곡이 있는 자신의 기념비에 돌궐 백성들에게 남부의 사람들에게 흡수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경고를 새겨 두었다. 중국인들의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물자"를 주의해야 한다고 기록했으며 이는 위구르인들이 마음에 새겼던 경고였다.
신장의 역사 / 제임스 A. 밀워드 저

4. 역대 카간


대수 칸호 이름 재위기간
1대 쿠틀룩 빌게 퀼 카간
회인가한(懷仁可汗)
쿠틀룩 보일라(Qutlugh boyla)
골력배라(骨力裵羅)
742
~ 747
2대 카를륵 카간
갈륵가한(葛勒可汗)
바얀 초르(Bayan chor)
마연철(摩延啜)
747
~ 759
3대 뵈귀 카간
모우가한(牟羽可汗)
이르킨 뵈귀(Irkin bögü)
사근모우(俟斤牟羽)
759
~ 780
4대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
무의성공가한(武義成功可汗)
장수천친가한(長壽天親可汗)
톤바가 타르칸(Ton bagha tarqan)
돈막하달간(頓莫賀達干)
780
~ 789
5대 텡그리데 볼미쉬 퀼뤽 빌게 카간
충정가한(忠貞可汗)
탈라스(Talas)
다라사(多邏斯)
789
~ 790
6대 육대카간
(六代可汗)
? 790. 3 ~ 4
7대 쿠틀룩 빌게 카간
봉성가한(奉誠可汗)
아 초르(A chor)
아철(阿啜)
790
~ 795
8대 텡그리데 울룩 볼미쉬 알프 퀼뤽 빌게 카간
회신가한(懷信可汗)
쿠틀룩(Qutlugh)
골돌록(骨咄祿)
795
~ 805
9대 텡그리데 알프 퀼뤽 빌게 카간 퀼뤽 빌게(Külüg bilge) 805
~ 808
10대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빌게 카간 ? 808
~ 821
11대 텡그리데 울룩 볼미쉬 알프 퀴췰뤽 빌게 카간 ? 821
~ 824
12대 아이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빌게 카간
소례가한(昭禮可汗)
카사르 테긴(Qasar tegin) 824
~ 833
13대 아이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퀴췰뤽 빌게 카간 퀼테긴(Kül tegin) 833
~ 839
14대 압삽가한(廅馺可汗) 카사르 테긴 (Qasar tegin)
압삽특근(廅馺特勤)
839
~ 840
15대 오개가한(烏介可汗) 오포특근(烏希特勒) 841
~ 846
16대 알념가한(遏捻可汗) 알념특근(遏捻特勒) 846
~ 848

5. 기타

한때 강력한 패권을 쥐고 강성했던 나라였지만 이후에도 세력을 크게 넓히지 못했고, 특히 한국사와의 접점이 거의 없다보니 국내에서는 잘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위구르족에 관한 개설서가 채 4권도 안될 정도로 정보가 부족하다.[34] 국내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세계적인 고대 튀르크사 권위자인 경상국립대학교 사학과 정재훈 교수가 집필한 《위구르 유목제국사(744 ~ 840)》라는 단행본이 있다.

여말선초 시기 문신으로, 외교관으로 활동한 설장수가 위구르족 출신 귀화인의 후손이라고 한다.

6. 같이보기

7. 둘러보기

시베리아의 역사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rowcolor=#FFF> 서 시베리아 동·중앙 시베리아 극동
<rowcolor=#FFF>
북부
남부
남부
북부
고대 고대 북유라시아인
시베리아 원주민
우랄계 제족 | 튀르크 | 퉁구스 고시베리아인
튀르크 | 퉁구스 니브흐 | 축치인
중세
우랄 | 튀르크
{{{#!wiki style="margin: -16px -10px" 킵차크 칸국 원
}}}
근세 루스 차르국 시비르 칸국 사하인
사하(야쿠트) 연맹·칸갈라스 토욘국
칸갈라스 울루스
루스 차르국|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약사
근현대 러시아 제국
러시아 공화국
러시아 SFSR 러시아 SFSR
소련
{{{#!wiki style="margin: -5px -10px; font-size:0.85em; letter-spacing: -1.0px"
}}}
러시아 연방
{{{#!wiki style="margin: -5px -10px; font-size:0.85em; letter-spacing: -1.0px"
}}} }}}}}}}}}

{{{#!wiki style="min-height: calc(1.5em + 5px);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2em; letter-spacing:-0.8px"
<colbgcolor=#f5f5f5,#121212>
고대
월지흉노동호
북흉노/남흉노선비 · 오환
철륵선비
유연북위
서위·동위
돌궐 제1제국북주북제
서돌궐/동돌궐수
사타설연타당
돌궐 제2제국
위구르 제국
키르기스 제국
중세
요나라
서하
서요금나라
몽골
제국
원나라
오이라트북원
명나라
올량합 3위
카라델 칸국
준가르청나라
청나라 치하 몽골
근현대
러시아 제국복드 칸국중화민국
북양정부
<nopad>소비에트 연방<nopad><nopad>
<nopad>
몽골 인민공화국 {{{#!wiki style="margin:-15px -8px -20.5px -1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nopad>소비에트 연방
{{{#!wiki style="margin: -35px -10px 0px -1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중화민국
국민정부
}}}}}} 만주국
중화민국<nopad>
<nopad><nopad>
러시아 연방몽골국중화인민공화국
}}}}}}}}} ||

위구르-신장 · 동튀르키스탄의 역사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0.92em; letter-spacing:-1.2px"
<colbgcolor=#eaf8ff,#3f484c>
고
대
토하라인
흉노 오손
월지
오손 강거
흉노
전한 서역도호부
후한 서역도호부
한·위·진 서역장사부 선비
전량 전진
후량 북량
유연
알촌 북위 서위
에프탈 코초 (고창국)
서돌궐 동돌궐
중
세
당 안서도호부·북정도호부
토번 제국 {{{#!wiki style="margin:-40px -10px -18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토번 제국 위구르 제국
카라한 칸국 코초 위구르
(고창회골)
카라한 칸국 요
서요
서요
몽골 제국
차가타이 칸국 오고타이 칸국
원
티무르 제국 모굴리스탄 칸국
중
근
세
모굴리스탄 칸국
{{{#!wiki style="margin:-5px -10px -3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야르칸드 칸국 }}}}}} 호쇼트 칸국
{{{#!wiki style="margin:-10px -10px -2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근
대
준가르
청
예티샤르 왕국 / 둥간 봉기
청 신강성
중화민국 신장성
현
대

중화민국 신장성 신강군벌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튀르키스탄 망명정부|
동튀르키스탄 망명정부
]]
}}}}}}}}}

중앙아시아의 역사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0.92em; letter-spacing:-1.2px"
고
대
옥수스 문명 / 안드로노보 문화
스키타이 사카
다하에 / 마사게타이 스키타이 사카 흉노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헬레니즘 제국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강거
대월지
쿠샨 왕조 (월지 계) 열반
사산조 페르시아 {{{#!wiki style="margin:-20px 0px -30px -2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에프탈(백 훈족)
에프탈 공국 돌궐 제국
서돌궐
라쉬둔 칼리파
우마이야 왕조 안서도호부
투르게쉬 칸국 안서도호부
{{{#!wiki style="margin:-20px -10px -18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중
세
타히르 왕조 /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가즈니 왕조 카라한 칸국
셀주크 제국 동 카라한 칸국 요
서요 (카라 키타이)
호라즘 제국 서요
근
세
~
근
대
몽골 제국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티무르 제국 모굴리스탄 칸국
{{{#!wiki style="margin:-2px -10px -35px -1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100%"
}}}}}}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히바 칸국 청
멘셰비키 투르키스탄 자치국 알라시 자치국 투르키스탄 자치국
현
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 ||


구당서(舊唐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본기(本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무조 이현(李顯) · 이단 이융기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이형(李亨) 이예(李豫) 이괄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이송 · 이순(李純) 이항 이심(李湛) · 이앙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염(李瀍) · 이침(李忱)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열전(列傳)]
||<-6><tablewidth=100%><tablebgcolor=#a48252> 51·52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왕폐후 · 소양제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양귀비
원헌황후 · 장황후 · 장경황후 · 예진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적선황후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이밀 ,선웅신, 왕세충 · 두건덕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설거 ,설인고,· 이궤 · 유무주 ,원군장, · 고개도 · 유흑달 ,서원랑,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소선 · 두복위 · 보공석 ,감릉 왕웅탄, · 심법흥 · 이자통 ,주찬 임사홍 장선안, · 나예 · 양사도 ,유계진 이자화,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배적 · 유문정 ,이맹상 진행사 유세룡 조문각 장평고 이사행 이고천 허세서 유사립 전구농 번흥 공손무달 방경운 장장경 이안원,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당검 · 장손순덕 ·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 · 시소 · 무사확 굴돌통 · 임괴 · 구화 · 허소 · 이습지 · 강모
60권 「종실전(宗室傳)」
이효기 · 이신통 · 이신부 · 이숙량 · 이침(李琛) · 이효공 · 이원(李瑗) · 이도현 · 이도종 · 이박예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온대아 · 진숙달 · 두위 이강(李綱) · 정선과 · 양공인 · 황보무일 · 이대량 봉륜 · 소우 ,소예 소균 소관 소업, · 배구 · 우문사급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영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고사렴 · 장손무기 방현령 · 두여회 이정(李靖) · 이세적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울지경덕 · 진경 · 정지절 · 단지현 · 장공근 후군집 · 장량 · 설만철 왕규 · 대주 · 잠문본 · 두정륜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위징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설수 · 요사렴 · 안사고 · 영호덕분 · 공영달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유계 · 마주 · 최인사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위정 · 양찬 · 유덕위 · 염입덕 ,염입본, · 유형 · 최의현 우지녕 · 고계보 · 장행성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조효손 · 부인균 · 부혁 · 이순풍 · 여재 저수량 · 한원 · 내제 · 상관의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최돈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이의염 ,손처약, ,악언위, ,조인본,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허경종 · 이의부 곽효각 · 장검 · 소정방 · 설인귀 · 정무정 ,정명진, ,장사귀, ,조도흥,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유인궤 · 학처준 · 배행검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李孝)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중무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위사겸 · 육원방 · 소괴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적인걸 · 왕방경 · 요숙 왕급선 · 두경검 · 주경칙 · 양재사 · 이회원 · 두로흠망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환언범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위원충 · 위안석 · 소지충 ,종초객 기처눌,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누사덕 · 왕효걸 · 당휴경 · 장인원 · 설눌 · 왕준 소미도 · 이교 · 최융 · 노장용 · 서언백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요숭 · 송경 유유구 · 종소경 · 곽원진 · 장열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위지고 · 노회신 · 원건요 · 이원굉 · 두섬 · 한휴 · 배요경 최일용 · 장가정 · 소숭 · 장구령 · 이적지 · 엄정지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윤사정 · 이걸 · 해완 · 필구 · 소향 · 정유충 · 왕지음 · 노종원 · 이조은 · 배최 · 왕구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이예(李乂) · 설등 · 위주 · 한사복 · 장정규 · 왕구례 · 신체부 마회소 · 저무량 · 유자현 · 서견 · 원행충 · 오긍 · 위술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우선객 · 왕충사 고선지 · 봉상청 · 가서한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이임보 · 양국충 · 장위 · 왕거 · 왕모중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위견소 · 최원 · 최환 · 두홍점 풍앙 · 아사나사이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다조 · 이사업 · 백효덕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이광필 · 왕사례 · 등경산 · 신운경 최광원 · 방관 · 장호 · 고적 · 창최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이고(李暠) · 이린(李麟) · 이국정 · 이환(李峘) · 이거(李巨)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노경 · 배융 · 내진 · 주지광 최기 · 조국진 · 최관 · 경괄 · 위원보 · 위소유 · 위백옥 · 이승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희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엄무 · 곽영예 · 최녕 · 엄진 · 엄여 원재 ,왕앙, ,이소량, · 왕진 · 양염 · 여간 · 유준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양관 · 최우보 · 상곤 곽자의 복고회은 · 양숭의 · 이회광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장헌성 · 노사공 · 곡환 · 진한형 · 양조성 · 번택 · 이숙명 · 배주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 설숭 · 영호창 · 전신공 · 후희일 · 이정기 장일 · 유종일 · 소복 · 유혼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이계(李揆) · 이함(李涵) · 진소유 · 노악 · 배서 요령언 · 장광성 · 원휴 · 교림 · 장섭 · 장진 · 홍경륜 · 팽언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단수실 · 안진경 한황 · 장연상 왕여 · 이비(李泌) · 최조 · 관파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이면 · 이고(李皋) 이포옥 · 이포진 · 왕건휴 · 노종사 · 이봉(李芃) · 이징(李澄)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이성 마수 · 혼감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노기 · 백지정 · 배연령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위집의 · 왕숙문 · 정이 · 황보변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두참 · 제영 · 유자 · 노매 · 최손 · 제항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서호 · 조연 · 유태진 · 이서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여위 · 정운규 · 이익 · 이하(李賀)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조경 · 위륜 · 가탐 · 강공보 육지 위고 · 장건봉 · 노군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전승사 · 전홍정 · 장효충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이회선 · 주도 · 유평 · 정일화 · 이전약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상가고 · 이관(李觀)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한유괴 · 가은림 · 두희전 · 울지승 · 형군아 · 양조성 · 장경칙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유현좌 · 동진 · 육장원 · 유전량 · 이충신 · 이희열 · 오소성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설파 · 포방 · 이자량 · 이설 · 엄수 · 소흔 · 두아 · 왕위 · 이약초 · 우흔 · 노징 · 양풍 · 정원 · 두겸 · 양조성 · 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길보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노사매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긍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이행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점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李秘) · 이기(李祺) · 이동(李同) · 이진(李禛) · 이상(李祥)
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이종민 · 유위 · 양우경 · 마식 · 이양이 · 위모 · 주지 · 최귀종 · 정숙 · 노상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최신유 · 최공 · 노균 · 배휴 · 양수 · 위보형 · 노암 · 하후자 · 유첨 · 유전 · 조확 · 필함 · 두심권 · 유업 · 두로전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조은 · 장석 · 이울 · 최언소 · 정전 · 노휴 · 왕휘
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소구 · 공위 · 위소도 · 최소위 · 장준 · 주박 · 정계 · 유숭망 · 서언약 · 육의 · 유찬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주극융 · 이재의 · 양지성 · 장중무 · 장윤신 · 장공소 · 이가거 · 이전충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사헌성 · 하진도 · 한윤충 · 악언정 · 나홍신 왕중영 · 왕처존 · 제갈상 · 고병 · 시부 · 주선
183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두덕명 · 장손창 · 무승사 · 위온 · 왕인교 · 오서 · 유성 · 두유 · 왕자안
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 반호례 · 양무겸 · 양인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
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해 · 실위 · 말갈 · 발해 · 습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48252><tablebgcolor=#a48252> ||
}}}}}} ||
[1] Toquz Uyǧur. 원 발음은 '토쿠즈 우이구르'에 가까우나 보통 관용적으로 쓰이는 '위구르'로 쓴다. 제국 성립 이전에는 아홉 부족의 연맹을 뜻하는 토구즈 오구즈(Toquz Oǧuz)로 불리는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돌궐 내부에 복속되어 있으면서도 별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구성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했고, 위구르는 자신들이 토쿠즈 오구즈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인식했으며 오구즈의 일원에 불과했던 '위구르'라는 이름은 점차 다른 부족들을 통합해 훨씬 거대한 인적 집단을 일컫는 명칭으로 변화했다.[2] 구성회흘 → 구성회골[3] 위구르 칸국[4] 좌측부터 『당회요』에 채록된 위구르의 탐가(문장), 야글라카르 씨족의 탐가, 에디즈 씨족의 탐가이다.[5] 𐰇𐰼𐰏𐰃𐰤𐰉𐰞𐰶(Ordu Balɨq). '카간의 아장(牙帳)' 또는 '금장(金帳)이 있는 성채'라는 뜻이다. 카라 발가순(Qara Balgasun)이라는 이칭으로 더 유명하다. 현재 몽골 아르항가이의 허턴트에 위치해 있다.[6] 𐰖𐰍𐰞𐰴𐰺(Yaγlaqar)‎. 약라갈(藥羅葛)로 음사.[7] 𐰓𐰔(Ediz). 협질(硤跌)로 음사.[8]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현대 중국의 소수민족인 유고족, 그 중에서도 튀르크어족의 서유구르어를 사용하는 서부의 계파가 고대 위구르어의 원형을 가장 잘 보전했다고 평가된다(동부 계파의 동유구르어는 아예 몽골어족에 속한다). 현대 위구르어는 남동튀르크어파(차가타이어파)에 속하는 것에 비해 서유구르어는 북동튀르크어파(시베리아어파)에 속한다.
[9] 고창 위구르와 하서 위구르로 나뉘기 이전의 위구르족. 현대의 위구르인의 경우 정체성이 이들의 후예지만, 고창 위구르 멸망 후 카를룩에 절반 정도 흡수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직계는 아니고 서쪽 방계에 가깝다. 오히려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인 유고족이 직계에 더 가깝다.[10] The Dragon Historian(역사룡)의 영상. 영어 자막이기는 하지만 자동 번역 기능을 사용하면서 보면 된다.[11] 정재훈 박사는 그의 저서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에서 이 역병을 탄저병으로 추측했다.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킨 키르기스가 북방 고원으로 귀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유민들이 몽골 초원으로 복귀하지 않았던 이유와, 칭기즈 칸 이전까지 몽골 초원이 특정 국가 세력의 지배없이 공동화된 이유가 이것이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12] 몽골어로 검은 성채를 의미한다.[13] 이 일환으로 위구르는 자신들의 전통(törü, 퇴뤼)의 유구함을 특히나 강조해야 했는데, 이는 위구르 제국기에 세워진 <시네 우수 비문>에서 "1,000개의 일(il, '국가'를 의미함)과 300년 된 일을 잡았다"는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돌궐 제국 200년을 능가하는 연대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국가의 건국이 아닌 이전 국가의 재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사실 이전 튀르크계 고차 왕국의 인물 중 위구르의 시초일 것으로 추정되는 원흘씨(袁紇氏) 출신의 인물이 확인되긴 한다). 게다가 위구르는 몽골 제국의 성립 이전까지 사상 최대의 판도를 이룬 돌궐 제국을 이은 국가였기 때문에 그 영광을 극복할 필요도 있었다. 실제로 위 비문의 서두에서는 욜룩 카간(Yolluğ Qağan)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카간 및 부민 카간을 자신들의 시조로 내세우는데, 부민 카간은 돌궐 제국의 비문에서 그들의 시조로 비정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돌궐 카간과 더불어 자신들 고유의 전설상의 카간을 함께 시조로 언급함으로써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14] 이때도 4,000명의 기병을 지원군으로 파병하여 이들이 반란군을 소탕하는데 기여했다.[15] 이 일을 직접 목격한 옹왕, 훗날의 덕종은 즉위한 이후에도 위구르를 극렬히 증오하여 그들과의 동맹 맺기를 거부했다. 그러다 재상의 간절한 조언을 듣고 겨우 위구르와 동맹을 맺었다.[16] 다만 위구르 제국 내부의 도시들은 마니교의 영향이라기보단, 동•서 교역의 거점인 카라반사라이의 성격이 더 강했다.[17] 실제로 당시 위구르족은 계속 공격해야는 의견과 공격해 봐야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 이긴 쪽은 후자였고, 나중에 후자가 옳았음이 증명되었다.[18] 심지어 위구르 제국의 적인 당나라나 토번으로 귀순하는 세력들도 나왔다.[19] 키르기스족은 아주 짧은 기간 복속당한 것 외에는 위구르 제국과는 끊임없이 충돌하는 관계였고, 위구르 제국의 지도자들은 키르기스족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한 원정을 반복했다.[20] Tengride bolmïsh külüg bilge qaghan, 한문 사서에서는 회신 가한(懷信可汗)이라고 한다.[21] 탄저병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22] 사실 위 지도에 표시된 위구르 제국의 영역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위 지도는 최대 강역을 표시한 지도로 존속기간 전체에 걸쳐 유지된 것이 아니다.[23] 유목민족 특성상 쪽수가 적은 대신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예병인 걸 감안하면 10만명은 정말 어머어마한 병력이다. 참고로 몽골 제국도 초창기에는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9~12만명 남짓이라 한다.[24] 이에 대해 위구르에 돌던 탄저병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아 정착에 실패했다는 설이 있다.[25] 요나라를 건국한 태조 야율아보기는 동쪽으로 발해를 멸망시키고 요서 일대를 장악했으며, 서쪽으로는 현재의 내몽골 지역을 넘어 위구르와 탕구트의 영역까지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위구르족의 일부는 거란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복속되어 요 왕조의 통제를 받았다.[26] 동시기에 토번 제국 또한 대분열하여 자멸하였고, 당나라 또한 국가의 통치력을 상실하게 되는 '만당'시대에 접어들었다. 당대 동아시아-중앙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던 3국이 동시에 몰락하면서, 이 일대의 정세에 그야말로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27] 카라코룸으로부터도 그리 멀지 않은 오르콘 강가에 위치한 곳으로 바로 인근에 돌궐 제2제국 시기의 빌게 카간 및 퀼 테긴의 비문이 남아 있다. 카라발가순 성채는 키르기스의 침공으로 완전히 무너졌는데, 이는 인근에서 발견된 당나라 시대의 와당에 심하게 불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후대에 이 성채가 재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28] 동양의 룬 문자라고도 한다.[29] 이 비문은 특히 다른 비문들에 비해 온전하게 해독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30] <구성회골가한비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 면은 전체가 튀르크 문자로, 반대 면은 반을 나누어 한문과 소그드 문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튀르크 문자 면은 심하게 마모되어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세 문화권의 문자가 동시에 새겨져 있는 비문은 이 비문이 유일하다.[31] 《신당서》나 《자치통감》과 같은 한문 사료도 있지만, 중국식 서술 특유의 모호함과 과장법 및 상투적인 표현, 음차 표기의 부정확성 등이 있어 완전한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32] 유목민족사 연구자인 정재훈 교수는 《위구르 유목제국사》에서 기존 텡그리 신앙 체계를 유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마니교의 신학적 개념을 수용한 것이라 보았다.[33] 위구르족은 멸망 이후인 13세기부터 서서히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현재 신강성에 사는 위구르족들은 대다수가 무슬림이다.[34] 달리보면 4권조차도 많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