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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2:51:20

택시운전사/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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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2. 외국인 호구3. 검문을 피해서4. 광주 시민들과의 만남5.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6. 고장난 택시7. 잠깐의 휴식8. 왜곡된 기사와 뉴스9. 불타는 광주MBC10. 떠나는 만섭, 그러나...11. 다시 광주12. 광주 대학살13. 기적14.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15. 서로 각자 갈 곳으로...16. 에필로그

1. 프롤로그

영화는 1980년 5월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 나오며[1] 시작되고, 금화터널에서 나와 독립문고가차도 경복궁 방향, 한남대교 강북 방향쪽[2]을 달리고 있는 택시 기사 김만섭과 그의 기아 브리사 택시를 비춘다. 서울에 살며 택시 기사로 일하는 그는 여느 때처럼 택시를 몰다가, 시위하던 시민들과 학생들을 목격한다. 하지만 시위로 도로를 막은것도 모자라 최루탄을 터뜨려 정신없는 상황을 만들어 교통을 방해하는 행동 때문에 만섭은 상당히 불쾌하게 여기며 "학생이 시위하러 대학 갔나, 공부하러 갔지"라고 투덜거린다.[3]

만섭은 차를 후진해서 복잡한 시위 현장을 피하여 골목길로 들어가던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시위자를 보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지만, 길 모퉁이에 쌓여 있던 폐가구 더미에 걸려 사이드미러가 망가지고 만다.[4] 만섭은 차에서 내려 변상을 받기 위해 학생들에게 다가갔지만 그들은 전투경찰들을 피해 멀리 달아나 버리고, 그 와중에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와 그 남편을 만나 태우게 된다. 부부를 태우고 총알택시 기사로 변해 전경들을 헤쳐 지나간 뒤 병원에 도착했는데, 남편은 지갑을 두고 와 돈이 없으며 택시비는 내일 두배로 주겠다고 하며 명함을 내밀었지만 만섭은 그런 말 하루이틀 들어본줄 아느냐며 화를 낸다. 떼어먹은 돈을 합하면 집 한채를 사고도 남는다는 말로 미루어 볼때 기사일 하면서 이런일이 비일비재했던것 같다. 하지만 결국 요금을 두배로 받는다는 약속으로 남편의 명함을 받아 둘을 보내주고 부부의 등 뒤에 대고 순산하라고 덕담을 한다.

저녁에 퇴근한 만섭은 차를 세워두고, 방수포로 덮어둔 다음 놀이하던 아이들에게 다른 곳에서 놀라고 말한다. 집에 돌아오자, 11살짜리 딸 은정의 이마가 다친 것을 보게 된다. 딸은 "그냥 넘어진 거야"라고 말하지만, 집주인네 아들 상구가 그랬다는 확신이 든 만섭은 혼을 내주겠다며 집주인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상구 역시 다친 상황이었고,[5] 되려 집주인의 아내가 "월세가 10만 원이나 밀렸다"[6], "딸이 왜 그렇게 기가 세느냐" 등등 온갖 핀잔만 듣고 쫓겨난다.[7] 만섭은 신발을 구겨신는 딸을 혼내지만 신발이 작아서 그렇다고 은정이 말한다. 저녁을 먹고난 후 만섭은 다친 딸의 머리를 빗겨 리본으로 묶어주고 약을 발라준 후, "이번 수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니까 같이 소풍을 가자"고 딸을 달랜다. 하지만 딸은 "빨간 날엔 아빠 돈 벌어야 하잖아"라면서 아빠를 배려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인다. 딸을 재우고 하룻동안 벌어온 택시 요금을 계산하던 만섭은 라디오에서 전국 비상 계엄령이 발령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또 손님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불평을 한다.

한편 일본 도쿄 도심.[8] 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이하 '피터')는 프레스 센터가 있는 호텔 식당에서 초밥맥주를 먹으며 동료 기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본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평온하다. 기자가 너무 편한 데 있으면 안 된다."고 혼잣말한다. 그러다가 전에 남한에 있었다던 어느 젊은 BBC 소속의 영국 기자에게서 "한국에서 무슨 심각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듣고, 무언가를 직감한 듯이 다음 날에 한국으로 향한다.

피터는 한국에 도착해[9] 아는 신문 기자인 이 기자를 국도극장 근처의 다방에서 만나고, 이 기자는 보도지침이 작성된 수첩과 검열 때문에 한 면이 통으로 날아가 버린 광주 신문을 건네주며 "광주시로 향하는 모든 길이 막혔고, 연락도 두절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 말을 들은 피터는 마침내 광주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만섭은 정비소에서 대학생 때문에 망가진 택시를 고친다. 이때 사이드미러 수리비 5천 원을 깎기 위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나름대로 협상이 이루어진 이후 수리기사는 "나중에 한번 택시 점검 받으러 와라. 60만 km를 달렸고, 들어올 때 엔진소리도 골골해서 길에서 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분명 5천 원에서 4천 원으로 합의 봤는데도, 나중에 3천 원만 얼렁뚱땅 내고 간다... 친분이 있는 수리기사가 "나중에 차 퍼지면 고생하니, 점검 좀 받아라"라고 걱정스럽게 말한 걸, 역정 내는 척하면서 "무슨 재수 없게! 3천 원만 받아!"하고 잽싸게 가 버렸다. 4천 원으로 깎은 것도 부품 값도 얘기하며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걸 무시하고 억지로 깎은 걸 생각하면, 수리기사가 대인배. 결국 이때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 광주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른다.

수리비를 치른 뒤 정비소 뒷편으로 들어가서 돈봉투를 세며 흰쌀밥만 있는 도시락배추김치로 점심을 해결하려는 만섭. 이 때 동료 기사 겸 친구인 집주인 동수(상구 아빠)가 뭐하냐면서 등장한다. 점심을 너무 부실하게 먹는 만섭이 딱해보였는지 동수는 만섭을 기사식당으로 데려가고 거기서 돼지불백을 사준다. 같이 밥을 먹으며 아이들 싸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만섭이 대신 사주는 대신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마누라 몰래 돈 갖다줘서 개털됐다는 등, 집주인에게 돈 빌려서 사글세 내는 놈은 처음 본다는 등의 이런저런 말을 나누던 중, 식당으로 들어온 다른 택시 기사가 "10만 원을 택시비로 내고 광주에 가겠다는 외국인 호구를 태운다"고 다른 기사들과 말하는것을 우연히 듣는다.

동수가 너도 외국물 먹었으니까 저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말하려는데, 만섭이 자리에 없었다. 만섭은 그 손님을 가로채기 위해, 먹던 밥도 내버려두고 재빨리 기사식당을 빠져나간 것이다. 이때 신이 나서 발을 놀리는 만섭의 춤사위가 걸작.

2. 외국인 호구

국도극장 앞에서 피터와 이 기자를 만나게 된 만섭은, 역시 특유의 자본주의 미소(?)로 그들을 맞이한다. 택시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개인 택시가 왔단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만섭은 회사차가 전부 돌아다녀 개인 택시를 차출했다는 변명을 한다. 어찌 되었든 택시가 도착했으니, 이 기자는 만섭에게 "얘기를 듣고 왔냐"며 묻고, 만섭은 식당에서 엿들었던 "광주 갔다가 통금 전에 서울로 다시 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내용 그대로 답하고[10] 영어를 할줄 아냐는 이 기자의 말에 사우디에서 5년간 근로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잘한다고 했다.

피터와 이 기자는 작별 인사를 하고, 만섭은 피터를 택시에 태우고 광주로 출발한다. 이후 이 기자는 마침 다가오는 다른 택시를 잡아 타려 하는데, 해당 택시 기사는 "예약 된 차에요"라며 다른 택시를 타라고 한다. 이 기자가 행선지를 물어보자 그 기사는 광주로 간다는 말을 한다. 즉, 이 택시가 바로 원래 피터가 예약한 바로 그 택시였다. 이 기자는 피터를 태운 만섭의 택시가 멀어지는 걸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로 바라본다.[11]

광주로 내려가는 길. 만섭은 피터에게 짧은 영어[12]로 한국에 몇 번째 방문이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등의 말을 붙인다. 피터가 독일인이라는 것을 안 만섭이 자신의 친구가 석탄 캐러 독일에 갔으며, 피터도 서독에 파견된 한국 광부와 간호사가 많다고 말을 한다. 만섭은 곧이어 자신은 사우디에서 화물차를 몰았다는 말을 덧붙히지만, 피터는 "빨리 가자"며 재촉을 한다. 만섭은 "빠르게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천천히 말하라"고 구박한다. 피터는 만섭의 요구대로 "광주, 유 고 패스트, 패스트 (Fast, fast)"라고 말해준다. 만섭은 "광주까지 가기엔 아직 많이 남았다"며 "잠시 눈이나 붙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여지껏 광주로 향하는 도로 위에 차량이 만섭의 택시 외엔 전혀 안 보인다.[13]

죽 가던 도중 만섭은 광주 표지판을 발견하고 화색이 되고, 피터에게 표지판을 가리키며 좋아하지만, 광주로 들어가는 통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만섭은 바리케이드에 쓰여진 출입금지라는 글을 읽고 갸우뚱하지만, 바리케이드가 도로 전체를 막고 있지는 않았고, 피터가 가자고 하였기에 바리케이드를 무시하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군인들이 전차트럭들로 길을 통제하고 있었고, 만섭과 피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14]

3. 검문을 피해서

피터는 만섭에게 "내가 기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영어가 짧은 만섭이 이를 알아들었을 리 없었다. 이 와중에 만섭의 택시로 병장 계급의 군인 한명이 다가왔고 만섭은 훈련중이라고 생각해 자신은 7사단 출신인데[15] 몇 사단에서 나왔냐며 넉살좋게 인사를 건네지만 병장은 정중하게 실제작전 상황이니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뒤이어 다가온 중사는 삼촌뻘인 만섭에게 "이 새끼가 지금 죽고 싶나"며 반말은 기본이고 비속어를 쓰며 윽박지르기까지 하자 만섭은 이에 잔뜩 쫄아버려 한마디도 대꾸를 못했다.[16]

이후 무언가 심상찮음을 직감한 만섭은 곧바로 차를 돌렸고 피터는 "어디 가는 거냐"고 묻지만 만섭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광주에 들어갈 수 없다, 서울로 가자, 솔저 세이 광주 노(Soldier say Gwangju no)."고 설명한다. 피터는 당황하지만 이내 "노 광주, 노 머니(No Gwangju, no money)!"로 대응한다. 광주에 못 가면 택시비도 못 준다는 뜻. 이때 돈 못 받는다는 소리에 경악한 만섭의 표정이 가관이다.

짧은 실랑이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만섭이 "왜 사진을 찍냐"고 묻자, 피터가 "내가 뭘 하는지는 당신이 알 바 아니다(none of your business)"라고 대꾸하는데, 만섭이 '비즈니스(business)'만 알아들으면서 피터가 사업가인 것으로 오해하여, 광주로 갈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17]

만섭은 다른 길에서 도로 근처 밭을 갈고 있던 어느 노인에게 "광주로 가는 샛길이 없습니까?"라고 물어본다. 노인은 처음에는 "마을 이장이 '당분간 광주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라"면서 만섭의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하지만, 차마 못 본 체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 언덕을 가로지르는 샛길에 대해 알려준다. 만섭: 거기가 어디입니까!!!

곧이어 샛길로 들어가긴 하지만, 이곳 또한 군인들이 길을 막고 통제하는 상황. 피터를 사업가로 오해한 만섭은 "중요한 서류를 광주에 두고 왔는데 그 서류가 없으면 우리나라 물건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하니 서류만 가지고 나오겠다"라는 즉흥적인 거짓말을 지어냈고 차 안에서 대략적인 직감으로 상황을 감지한 피터 또한 여기에 합세해 함께 말을 맞춘다.[18] 이런 두 사람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군인은 결국 "광주는 폭도들이 점거해서 위험하니 서류를 챙기는대로 곧바로 빠져나와야 한다"라며 신신당부를 한 뒤 통과시켜준다.[19]

진입하는데 성공한 만섭은 "광주는 위험하니까 선불을 안 주면 도로 서울로 가버리겠다"고 요구한다. 피터는 할 수 없이 선금 5만 원을 주고, "나중에 서울로 데려가 주면 나머지를 주겠다"고 응수한다. 만섭은 "일단 5만 원이라도 챙긴 게 어디냐"며 돈을 챙기고, 피터의 행동에 투덜대면서도 광주 시내를 향해 차를 몰아 들어간다.

4. 광주 시민들과의 만남

드디어 광주 시내에 도착하긴 했는데, 어째 분위기가 불길하기 짝이 없다. 거리에는 인적이 끊겼고, 백주 대낮임에도 가게들이 죄다 셔터를 닫고 철시했으며, 각종 플래카드, 셔터에 붉은색 페인트로 갈겨쓴 문구들에, 곳곳에 여기저기 부서진 물건들이 보이고, 시내 바닥에 무수한 전단들과 돌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등등. 황량한 풍경을 뒤로 하며, 택시는 내달린다. 그러다가 뒤에서 대학생들을 태운 낡은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만섭의 택시를 가로막고 멈춰선다. 피터도 만섭에게 "택시를 세우라"고 하고는, 카메라를 챙겨 택시에서 내린다.

짐칸에 타고 있던 대학생들은 피터의 영어를 못 알아들어 쩔쩔맸고 만섭은 "대학생이나 돼가지고 어떻게 나보다 영어가 더 짧아?"라며 혀를 끌끌찬다. 그때 나름 영어 좀 한다는 구재식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재식은 그냥 팝송이나 부르는 정도라고 말려보지만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통역관 역할을 자처한다.[20]

피터는 재식의 질문에 "독일에서 온 기자"라고 말하자 대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만섭은 그제서야 피터가 기자임을 깨닫는다. 일행의 행선지를 물은 피터는 부상자가 있어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답변을 듣고 "저기 있는 덩치 큰 사람과 인터뷰하고 싶다"며 트럭 짐칸에 탑승한다.

훌라송을 부르며 앞서가던 피터와 대학생들은 만섭에게 "뒤따라오라"고 하지만, 만섭은 하루에 10만 원이나 준다고 한 게 광주의 위험한 상황[21]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좌회전하라는 수신호를 무시한 채 유턴을 해서 서울로 가버리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아주머니가 택시를 잡는다. 만섭은 "이 차는 서울 택시이니, 광주 택시를 타시라"며 지나치지만, 이윽고 룸미러로 그 아주머니가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아주머니를 태워준다. 아주머니는 막내아들이 군인들에게 폭행당해 머리가 깨졌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만섭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고 곧장 광주적십자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가 보니 입구에는 택시들이 서 있고, 택시 기사들이 "바쁘긴 뭐가 바쁘냐, 신문에 기사 한 줄도 안 쓰니 제일 한가한 사람이 기자 아니냐. 기자가 기사를 안 쓰니, 기사도 운전을 안 하겠다 이거요!"라며 카메라와 취재 장비를 든 바쁘다고 말하던 기자의 승차를 거부하고 있었다.[22] 사정을 모르는 만섭은 "광주 택시 기사들 배가 불렀다"고 혀를 찬다. 물론, 그 기자가 만섭의 차를 타려고 하자 만섭도 서울 택시라며 본의아니게 승차거부를 하지만.

그 순간 반파된 택시 1대가 병원으로 급히 들어와 부상자들을 내려준다. 택시 기사들은 다같이 부상자들을 부축하여 병원으로 들어간다. 이때 부상자 중에는 심지어 교복을 입은 앳된 고등학생도 있었다.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만섭의 표정도 심각해지고, 병원에 뛰어들어가 아주머니와 함께 아들을 같이 찾아준다.

그런데 그 아들(홍용표)은, 아까 트럭 시위대에 있던 피터가 인터뷰를 한다고 했던 덩치 큰 청년이었다.[23] 그때 어디선가 재식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본 만섭은 화들짝 놀랐다. 피터와 재식이 당장이라도 만섭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쫓아왔기 때문이다. 피터는 필름가방 어딨느냐고 캐물으며 만섭을 도둑으로 몰아갔고 만섭은 자신은 안 훔쳤다고 주장하며 당당히 택시 뒷문을 열었는데 거기엔 피터의 필름가방이 떡하니 있었다.[24] 이에 단단히 빈정이 상한 피터는 남은 5만 원을 건네며 그만 돌아가라고 한다.[25]

이 상황을 본 광주 택시 기사들까지 만섭을 윽박지르고 돈을 낚아채거나 몸싸움까지 벌이자[26], 만섭도 욱해서 피터에게 먼저 받은 5만 원을 돌려주고, "돈 안 받았으니 얘기 끝난 것"이라며 혼자 돌아가려고 한다. 시동을 걸지만, 차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이전에 정비소에서 "60만 km를 넘게 달린 차라, 곧 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정비사가 한 말이 복선이었던 셈.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시동이 걸리고, 돈이 필요한 만섭은 하는 수 없이 피터를 다시 태운다.[27]

택시에는 만섭과 피터와 함께 재식이 얼떨결에 통역 담당으로 합승한다. 피터의 목적지인 전남도청[28]으로 향하던 도중에도, 광주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만섭은 서울에서 그랬던 것 처럼 데모하려고 왜 대학에 갔느냐, 대학은 공부하려고 가는 것 아니냐라고 재식에게 말하지만, 재식은 공부하러 대학 간 것이 아니고,[29] 그저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서 대학을 갔다는 대답을 듣는다. 하지만 만섭은 자신이 일했던 사우디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인데, 왜 데모를 하고, 그 시간에 노래 연습을 더 하지 않느냐는 말을 더 하지만 이 때문에 피터와 재식에게 한소리를 듣는다.

계속해서 택시를 몰던 만섭이 우회전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그냥 직진을 하자, 또 다른 데로 내빼서 서울 가려는 줄 안 피터가 화를 내고 재식도 '저기인데 어디로 가느냐'고 말한다. 만섭은 "오일! 오일!"이라며 기름이 바닥나 간다고 말하며, 기름 좀 넣으려고 주유소에 간다고 짜증을 낸다. 주유소에 차를 세운 만섭은 주유원에게 "만땅 같은 3천 원을 넣어달라"고 주문하는데, '내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고 투덜거리는 사이 이미 3천 원어치를 넘어가고 있었다. 만섭은 바가지 씌우려는 줄 알고 주유원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알고 보니 단순 서비스로 더 채워준 것. 이걸 본 재식은 “광주 사람들이 다 누구 같은 줄 아시냐”며 조롱하다 만섭에게 딱밤을 맞는다.

공짜라는 말에 아쉬워하며 '미리 말했으면 만땅 넣었을 텐데, 그나저나 왜 공짜냐'고 묻는 만섭에게 재식은 "택시 기사님들이 부상자들을 나르며 고생하셔서 그렇다"고 설명해준다. 곧이어 재식이 부상자를 호송하던 택시기사들까지 군인들이 죽이려 든다고 말하니까 만섭이 "죄 없는 사람들한테 군인들이 왜 그런 짓을 하겠냐"며 의아해하자, 재식 역시 "우리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대꾸한다.

만섭은 피터와 통금 전에 돌아가기로 약속했던지라[30], "오후 7시에 서울로 출발한다"고 피터에게 약속을 재확인하며 시민들이 모여있는 광주역 앞에 도착한다. 만섭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에[31] 만섭은 놀라고, 광주시민들은 외신기자인 피터를 열렬히 환영하고,[32] 젊은 여성 한 분과 노인 한 분은 피터 일행에게 주먹밥까지 쥐어준다.

5.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

이내 행렬이 금남로로 이동하고, 피터 일행은 민주화 운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근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이 와중에도 만섭은 차가 망가질 것을 염려해 자기 택시를 방수포로 덮어둔다. 옥상으로 올라온 피터, 만섭, 재식은 조금 전 광주 택시기사들에게 면박을 들었던 그 기자를 만나게 된다. 사진을 촬영중이던 그는 자신을 현지 신문사의 기자 최 씨라고 소개하며 피터에게 어떻게 왔는지 묻는다. 이후 그가 택시를 타고왔다는 걸 알고는 국내 언론사도 통제하는 마당에 외국인 기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을 도와준 사람까지도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피터와 재식은 좀전까지만 해도 필름가방 소동으로 못마땅해하던 만섭을 바라봤다. 그저 택시기사로서 손님을 태웠을 뿐 시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만섭이 위험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를 모르는 만섭은 음식은 역시 전라도가 맛있다며 식사중이었고, 좀 전에 받은 주먹밥을 더 먹고 싶다는 걸로 알아들으며 주먹밥을 권하기만 한다. 피터와 최 기자는 본격적으로 훌라송을 부르며 행진하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고 뿌연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공수부대 군인이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살포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진압봉[33]철심을 박아놔 상대에게 내려치는 순간 머리가 깨져 가 드러날 정도였다고 한다.]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먹밥을 먹으며 밑을 내려다 보던 만섭은 생각치도 못한 참혹한 광경에 그만 얼어붙었고 재식은 내려가서 도우려 들었지만 만섭은 "학생이 내려간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며 험한꼴 당하기 싫으면 여기 있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피터와 최 기자마저도 현장을 자세히 찍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버리자 만섭은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34]

최루탄 가스, 도망가는 군중들, 습격하는 공수부대원들. 만섭은 시위대의 비명, 최루탄 터지는 소리, 공수부대원들의 노성, 사람들이 얻어맞는 소리 등 어마어마한 소음과 가스로 희미해진 시야, 엄청난 가스냄새, 여기저기 내달리는 인파들 등 모든 감각이 엄청난 자극을 받은 끝에 오감마저 희미해지는 대혼란의 현장 속에 휘말린다.[35]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피터의 어깨를 잡아세우고 찍더라도 조금 피해서 찍자고 하지만 피터는 당연히 요지부동이다. 군중들 사이에서 정신없이 도망치던 한 남자는 멍하니 서 있던 어떤 남자를 이끌고 같이 도망가자고 하지만 그 남자는 돌연 빨갱이 새끼라고 남자를 붙잡더니 폭력을 가했고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 끌고가라고 소리친다. 그는 사복을 입고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보안사 사복조장이었다. 이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던 사복조장의 눈에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찍어대는 피터가 눈에 들어왔고 단박에 외신기자임을 직감하고는 잡으라고 소리친다.

이에 잔뜩 겁에 질린 만섭은 피터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치다 뜻하지 않게 카메라 렌즈 후드를 부수고 말았고 피터는 잔뜩 화가 나 역정을 낸다. 예상치 못한 난감에 만섭은 얼어붙었지만 짧은 영어로 해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던지라 세 사람 모두 도망가는 길을 택했다. 간신히 택시를 세워둔 골목길에 온 세 사람. 그런데 아까부터 문제였던 택시가 말썽인지라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머리를 산발하고 머리와 옆구리는 다쳤는지 피칠갑을 한 등 만신창이가 된 한 여성이 보닛에 부딪히는데 그 여성은 다름아닌, 아까 주먹밥을 줬던 사람이었고 만섭은 경악한다.[36] 그녀는 이내 곧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피하나, 방독면을 착용한 공수부대원 한 명이 시동거는 소리를 듣고 만섭의 택시를 향해 쫓아온다.[37] 급박한 순간에 천만다행으로 시동이 걸리고, 피터 일행은 다급히 도망친다.

6. 고장난 택시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만섭은 재식을 집까지 태워다 준다. "대학가요제에 나오면 응원하겠다"고 격려하며 서울로 출발하려는데, 하필 그때 택시가 완전히 멈춰버리고, 시동이 전혀 걸리지 않게 된다. 만섭은 보닛을 열어 상태를 확인하는데, 인적 없는 거리 맞은편에서 차량 전조등 불빛이 나타난다. 군 차량인 줄 알고 만섭 일행은 잔뜩 긴장하지만 다행히 전조등의 정체는 어느 택시 한 대. 이어 두 사람이 내리는데 한 명은 병원에서 만섭을 어느 정도 변호해 주던 개인 택시 기사 황태술이였고 다른 한 명은 만섭을 윽박지르던 또 다른 개인 택시 기사 신 씨였다.[38] 만섭의 차가 고장이 난 것을 알게 된 태술과 신 기사는 병원에서의 태도와는 다르게 이미 정비소도 문을 닫아서 임시 정비를 위해서 고장이 난 만섭의 택시를 케이블로 연결하여 견인해 택시 차고지로 간다.

견인되던 중 만섭은 혼자 있을 딸이 생각나서 택시의 룸미러에 걸린 가족사진을 챠양 주머니에서 꺼내어 본다. 재식이 이를 보고, 분위기 환기 차 "아내 분과 딸아이가 예쁘다"며 칭찬한다.[39] 피터에게도 재식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뒷좌석에 앉은 피터가 사진을 자세히 보려고 당기는 순간 사진을 걸고있던 목걸이 줄이 끊어지고 만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만섭 역시 피터에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던지라, "노 터치(No touch)"라며[40] 신경질적으로 사진을 뺏어든다.

이후 다들 신일택시 차고지에 모였고 회사 기사들까지 합세해 점퍼 케이블로 시동을 걸어보려는 등 만섭의 택시 상태를 확인하다 배전기 (distributor)가[41]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된다. 이미 서울에서부터 60만 km라는 엄청난 킬로 수를 세운데다 장거리까지 뛰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태술이 "우리들 택시의 부품으로 바꿔주면[42] 30분 정도는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만섭은 밤 8시 10분 정도 되는 시계를 보며 금방 고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는 집에 11살 밖에 안된 딸아이가 혼자 있어서 통금시간 전까지는 돌아가야 한다고 덧붙였지만 차를 손보던 기사는 수리하는데 한두 시간은 넘는데다 광주는 서울과는 달리 통금이 9시까지여서 지금 어딜 가려고 움직이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시외전화까지 군인들에 의해 차단되어서 안부전화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에는 내일 가야한다고 말하자 만섭은 침울해진다.

피터는 만섭이 수리비가 필요해서 그런 거라고 오해해서 돈을 내미는데, 만섭은 "이런 생지옥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말도 안 하고 나를 이용했냐"며 분노하고 피터는 당신도 다 알고 온거 아니냐고 화를 내며 반문하지만 당연히 만섭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통역을 해주던 재식에게도 화를 내다가 이내 몸싸움을 벌인다.[43]만섭은 트렁크에 부딪혀 코피가 나고, 재식은 피터에게 "어린 딸이 혼자 기다리고 있다"며 만섭의 사정을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할 수 없이 태술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한편, 군부에서는 피터를 찾아내려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었다. 사복조장은 계엄 사령관인 권영무 중령에게 피터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고 서울 택시를 찾을 것을 지시한다.

7. 잠깐의 휴식

이후 태술의 집인 동네 슈퍼로 장면이 바뀐다. 반찬 별로 없다면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낸 식사를 만섭일행이 대접받는다. 뭣 모르고 갓김치를 먹었다가 매워서 죽으려고 하는 피터의 모습이 인상적. 당황해서 영어도 아닌 독일어가 튀어나온다.[44][45] 식사 중에, 피터에게 왜 기자가 되었는지 만섭 일행이 묻기도 한다.[46]

8. 왜곡된 기사와 뉴스

야심한 밤, 전남매일신문사 윤전실(인쇄실). 최 기자를 비롯한 몇몇 기자들이 모여 용기를 내어 진실을 보도하는 신문을 제작하고 있었다. 일행 중 한명이 광주의 참상을 그대로 전하는 기사들이 만들어져나오는 것을 보고 이제야 신문다운 신문이 나왔다며 뿌듯해한다. 하지만 최 기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 신문이 나갔다가는 다시는 기자질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지금이라도 무르자고 했지만 옆에 있던 후배가 선배만 기자냐면서 입을 막는다. 그때 온갖 기구로 막아둔 문밖에서 부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손잡이가 부서지고 부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이 나타나 "이 기사 나가면 그날로 신문사 문 닫고 보안사 끌려가는 것이여"라며 윤전실 전원을 내린 뒤 활판을 엎어버리고 기자들을 끌고나가며 결국 신문 제작을 좌절시키고 만다.

다시 태술의 집. 재식과 함께 창문을 이불로 덮으며 불빛을 막고 무슨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 싶어 TV를 켜는 태술. 그러나 뉴스를 보던 만섭 일행은, 앵커가 광주가 폭도들에게 점령되었다고 보도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태술은 신경질을 내며 바로 텔레비전을 끈다.

엉터리 보도를 내보내는 뉴스 대신 대학가요제에 나가려 대학을 갔다던 재식의 무대를 보게 된다. 재식은 입기타를 치며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불렀는데, 문제는 재식이 가수가 아닌 기타리스트여서 입기타 소리를 뺀 노래실력이 처참했다는 것. 오죽하면 만섭이 신곡이냐고 물을 정도. 무대가 끝난 뒤, 일행은 이런 저런 잡담을 한다. 따지고 보면 엉터리 뉴스 피하다가 엉터리 노래까지 들은 셈....[47]

9. 불타는 광주MBC

하지만 쉬던 와중에, 갑자기 바깥에서 총소리와 폭발음[48]이 들려온다.

소리를 들은 그들은 2층에 올라간다. 태술은 "불길이 치솟는 위치가 방송국 근처"라며 안절부절 못하는데, 이내 신 기사가 택시를 몰고와 "시민들과 택시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고 있다"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일행은 1980년 5월 20일의 불타는 광주MBC로 몰려간다. 태술은 불타는 건물을 망연히 바라보고, 피터가 만섭과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를 촬영하는 중[49] 멀리서 군용 트럭들이 연기를 뚫으며 지나간다. 그 때, 지프차에 타고 있던 보안사 군인 한 명이 창 밖을 살피던 중 피터를 목격하고 무전을 보낸 후, 차 한대의 문이 열리고 문제의 사복조장과 그 일행들이 내린다. 멀리서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챈 재식은 곧바로 만섭과 피터에게 이를 알려 도망치고, 보안사 일당도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세 사람은 어두운 골목 안으로 도망쳐 잘 따돌리나 싶었지만, 계단을 올라가다가 재식이 넘어져버리면서 피터의 필름통 하나를 떨어뜨린다. 통조림같은 형태와 재질 때문에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크게 울려버려 세 사람은 얼어붙는다. 이윽고 재식이 두 사람에게 먼저 올라가라 하고 필름통을 줍지만, 그러다가 사복조장과 마주치고 만다. 사복조장이 피터의 행방을 추궁하자 "이미 갈라졌다"고 둘러대지만 위에서 인기척이 나는 바람에 들키고, 거짓말임을 눈치챈 사복조장은 재식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무릎을 꿇려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재식을 인질로 삼는다.

사복조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만섭과 피터가)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며 지금까지 찍은 카메라와 필름만 돌려주면 세 사람 모두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고, 재식이 죽을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만섭은 피터에게 일단 사람부터 살리자며 돌려주자고 한다. 그 사이 사복조장은 10을 세기 시작했고 9까지 센 순간 재식이 사복조장에게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외국인한테 나 좀 살려달라고 해보겠다"라고 말하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사복조장은 숫자 세던 걸 멈추고 그러라고 한다.[50] 이어 그는 영어로 "나는 괜찮으니, 꼭 진실을 세계에 알려달라!!"고 외친다.[51] 이에 피터와 만섭은 눈물을 머금고 도망친다. 사복조장은 그들을 권총으로 맞히려 하나 재식이 이를 방해하고, 이내 총소리가 들린다. 피터와 만섭은 재식이 총에 맞은 줄 알고 놀라 굳어버리지만, "나는 괜찮으니 가라."라고 소리치는 재식의 목소리에 마지못해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내 다수의 보안사 군인들이 피터와 만섭을 쫓는다.

계단 내리막에서 넘어져버린 만섭은, 피터와 다른 방향으로 도주한다. 어느 정도 도망가서 한숨 돌리던 만섭은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의 옷을 벗긴 채 무자비한 폭행을 하며 강제로 군용 트럭에 태우는 것을 목격한다. 이내 만섭은 뒤에서 사복조장이 쫓아오는 것을 느끼고 도망치나 막다른 길에 몰려 결국 붙잡히고 만다. 사복조장에게 수차례 구타를 당하는 와중에도 만섭은 "저 빨갱이 아닙니다... 서울 사람이예요..."라며 주소를 처절하게 읊는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화양동이라고...[52] 하지만 사복조장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돈 몇 푼나라를 팔아먹는 너 같은 새끼가 빨갱이"라면서 발길질을 하다가 이내 진압봉으로 만섭의 목을 조른다.[53]

이 순간 피터가 나타나 카메라로 사복조장의 뒷통수를 내려쳐 기절시키고[54] 만섭을 구해주고, 둘은 천신만고 끝에 태술의 집으로 복귀한다.

10. 떠나는 만섭, 그러나...

방안에 기대어 앉아 있는 피터와 뒤돌아서 누워있는 만섭. 둘 다 재식 걱정에 침통한 기색이다. 그때 만섭은 생각치도 못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과거 사우디에서 트럭운전수로 떼돈을 벌고 있었지만 아픈 아내의 병원비로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때 아내한테서 "나는 가망이 없으니, 우리 은정이를 먹여 살리려면 택시라도 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만섭은 아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부탁에 못이겨 택시를 산다.[55] 이후 아내가 세상을 뜨고나서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매일 술만 마셔댔지만 어느날, 아내의 옷을 끌어안고 우는 딸아이를 보면서 이제 딸에게 남은 건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로 술을 끊었다는 것이다. 영어가 아닌 한국말이어서 피터는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잠자코 듣고 있었다.[56]

그리고 다음날 새벽,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만섭은 조용히 태술의 집을 나선다. 피터는 깨어 있었으나, 그런 만섭을 잡지 않는다. 차고지에 들어선 만섭은 임시로 수리된 자신의 택시를 찾아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태술이 뛰어와 "서울 택시는 공수놈들이 보이는대로 잡아들인다"며 다른 택시에 붙어있던 전라남도 번호판[57]을 주고[58] 광주의 지도를 주며 빠져나갈 샛길을 알려준다. 또한 "피터가 택시비를 가져가라고 했다"며 돈을 챙겨준다. 만섭은 “제가 이 돈을 어떻게 받느냐”며 거절하지만 태술은 "택시가 손님을 태웠으면 택시비 받는 게 당연하다"며 한사코 쥐여준다. "미안하다"는 만섭에게 태술은 "나쁜 놈들은 저기 따로 있는데 왜 당신이 미안하냐??"면서 "여기 일은 여기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 이제 걱정말고 올라가라"고 그를 배웅한다.

차고지를 나와 텅 빈 시내를 달리던 만섭은 지프차를 몰고 단체로 이동 중인 공수부대 무리들과 마주치지만 전남 번호판을 보고 그냥 지나쳤고 덕분에 무사히 광주 밖으로 빠져나간다.

냇가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그늘에선 노인들이 쉬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들을 지나치며 만섭은 전남 순천시[59]에 도착한다. 부처님 오신 날 분위기에 들떠 있는 순천의 모습은 마치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이다. 순천 정비소에 차량 수리를 맡기고, 정비소 주인은 "수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근처 부처님 오신 날 행사라도 구경하다가 오시라"고 한다.[60] 하지만 그는 구경 대신 전화를 빌려 서울의 사글세집에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 동수 역시 그가 말도 없이 외박을 한 것도 모자라 이제서야 통화를 하자 "왜 안들어오냐"며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때 아내가 남편의 전화를 빼앗듯 낚아채더니 "은정이가 '아빠랑 부처님 오신 날에 놀러가기로 했다'면서 한참을 기다리다 잠들었다"고 타박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만섭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만섭은 신발이 작아진 딸을 위해, 차량을 수리하는 동안 재래시장에서 예쁜 운동화구두를 산다. 이후 국수집에 들어가 국수를 시켜먹는데, 광주 바깥의 사람들은 왜곡된 뉴스 때문에 광주의 참상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게 주인과 손님 2명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광주가 영 심상찮다"는 얘기를 늘어놓다가 뉴스를 근거로 "서울에서 내려온 깡패와 빨갱이들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한다. 그나마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주인 아주머니도, "뉴스에 다 나왔다"는 말에 꺼림칙해 하면서도 생각을 바꾸게 된다.[61] 만섭도 근처에 있던 신문을 집어들어 보는데, 자신이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왜곡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것만 보게 된다.

불편해하며[62] 어서 먹고 나가려 국수를 폭풍흡입하는 만섭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서비스로 주먹밥을 주는데, 크기만 작을 뿐 광주에서 먹은 주먹밥과 똑같은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이 백미.

만섭은 딸에게 줄 신발을 챙기고 수리가 끝난 택시에 올라탄다. 택시를 타려던 손님이 보이자 바로 나와있던 미터기도 꺾는 등 서울로 가려는 생각에 제3 한강교를 부르지만, 이내 피터와 광주에서의 참상을 떠올리고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63] 서울로 가는 갈림길 위에서 한참을 울며 엄청난 갈등을 겪던 만섭은,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운전대를 다시 돌린다. 만섭은 부랴부랴 아까 그 정비소로 다시 가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소풍은 다음에 가자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만섭은 전화를 끊은 뒤 다시 광주로 향한다.

11. 다시 광주

영화 시점은 다시 광주로 전환된다. 전남도청[64] 앞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 병력과 대치하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고, 권영무 중령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지나간다.[65]

만섭은 태술의 집을 찾아갔지만 부인이 나오더니 병원에 갔다고 한다. 이어 만섭은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어제보다 훨씬 분위기가 심각해진 병원은 피투성이가 된 채 물밀듯이 실려오는 부상자들, 죽어가는 중환자들, 주저앉아 오열하는 가족들로 난장판이었고 병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만섭은 어느 방 한켠에 절망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피터를 발견했다. 그곳은 정리되지 않은 관, 관도 없이 태극기로만 덮인 시신, 그 태극기도 없어서 흰 천으로만 덮인 시신, 관속에 눕혀진 시신을 앞에 두고 울부짖는 유족들로 아수라장이었다.[66]

이어 어느 흰천이 덮힌 시체와 그 옆에서 오열하는 태술을 발견했고, 만섭은 떨리는 손으로 천을 들춘다. 그러자 나타난건 싸늘한 시신이 된 재식. 태술의 말을 들어보니 논두렁에서 시체로 발견됐는데 군인들이 끌고가다가 죽어버리자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이었다[67][68] 만섭은 얘기를 듣고 시선을 돌리다, 신발이 벗겨진 재식의 오른발을 보게 된다. 만섭은 재식의 오른발 근처에 떨어져 있는 신발을 신겨주고[69][70] 일어선다. 그리고 병실 구석에 앉아 넋이 나간 피터에게 "이걸 찍어서 널리 알리는 게 당신 일 아니냐"고 격려하며 그가 언론인로서의 사명감으로 이곳에 왔음을 상기시키며 카메라 필름을 손에 쥐어 준다.

만섭의 격려에 피터가 울음을 삼키며 병원을 촬영하던 중, 광주 택시 기사들이 뛰어들어와 "금남로에서 공수부대가 애국가에 맞춰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가하고 있다."고 외친다. "빨리 가서 도와야 한다"는 기사들의 말에 피터도 취재하러 가려다가 만섭에게 "당신은 이제 서울로 가라"고 하는데, 만섭은 "위 고 투게더. 아이 택시 드라이버, 유 택시 손님" 이라면서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말한다.

12. 광주 대학살

금남로에 도착한 만섭과 피터.[71] 그곳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군인들의 총격에 맞아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 쓰러진 사람을 붙잡고 통곡하는 사람들, 피격당한 부상자를 재빨리 실어가는 사람들로 널브러져 있었다.[72] 이에 만섭은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하며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도중 금남로 도로에 나란히 서서 각을 잡고 있는 공수부대원들을 보게 되는데, 그전까지의 최루탄 살포와 몽둥이질 세례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젠 아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저 눈에 띄는 모든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그냥 무차별적으로 M16A1을 난사하고 쓰러진 시민들을 구하려는 사람들마저 사격하며, 심지어는 백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에게도 총격을 가했다.[73] 이걸 찍던 피터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너무 참혹한 나머지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물을 훔치고 만다.[74]

총격에 맞아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태술은 동료 택시 기사들에게 일제히 택시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만섭도 이에 동참한다.[75] 택시들의 행렬이 금남로를 가로지르자, 광주 시민들은 환호성을 터뜨린다. 그러나 도중에 만섭의 바로 뒤에 있던 택시 기사 한 명이 피격되어 시민들이 먼저 만들어 두었던 버스 바리케이드를 들이받아 바리케이드 중앙이 뻥 뚫린다. 택시 기사들과 최 기자, 다른 시민 몇명이 총격 속에서 부상자들을 구호하지만, 피격된 택시가 원래 차를 세울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받는 바람에 생긴 공간 때문에 크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택시 뒤로 부상자를 옮기는 정도의 제한적인 구조만 가능했다.

그 순간, 온갖 가구와 타이어를 덧붙힌 시민군 소속 군용 트럭 한대가 금남로 뒤쪽에서 바리케이드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트럭의 운전사는 병원에서 보았던 막둥이 아들 홍용표. 그는 타고 오던 트럭으로 뚫렸던 빈틈을 막아 총탄이 들어올 곳을 더 줄인다. 이에 용기를 얻어 더 많은 시민들도 합류하고, 택시 기사들은 만섭의 차[76]를 비롯한 망가지지 않은 택시들을 구급차 삼아 부상자를 호송한다. 그러나 곧이어 공수부대 군인들이 바리케이드의 틈새를 넘어서며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

상황이 악화되자, 옆에서 취재 및 구조를 돕던 최 기자가 "이 이상 머물면 광주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어서 떠나서, 염치 없지만[77] 대신해서 보도를 부탁한다."고 말하며, 태술도 어서 올라가서 "저놈들의 거짓말을 싹 다 알리라고" 말한다. 이에 만섭과 피터는 광주를 벗어나려고 택시에 오른다.[78] 피터가 탄 택시가 출발하는 것을 본 보안사 사복 군인들이 쫓아오지만, 다행히 간발의 차로 무사히 달아난다. 샛길로 향하던 중, 만섭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차량을 한 번 멈춰세우고 최루탄이 자욱한 뒤쪽을 룸미러로 응시한다. 피터가 우리는 가야한다면서 다시 택시가 출발하는데 위에 걸린, 언론은 정직해야 한다는 취지의 현수막이 보인다.[79] 곧이어 택시를 놓친 사복 군인들이 관용 순찰차 4대를 몰고 피터를 뒤쫒으려 도로로 향하고, 사복조장은 광주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모든 길을 검문소로 전부 막을 것을 무전으로 알린다.

13. 기적

한편, 태술의 지도에 나온 순천으로 가는 샛길로 빠져나가기 위해 산으로 들어온 만섭과 피터 일행. 그러나 이미 순천으로 가는 샛길조차 어느새 군인들이 검문소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아서는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길로 돌아서지만, 두번째 산길에도 군인들이 검문소를 쳐놓고 있었다. 이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으나 무슨 일이 있어도 피터를 김포공항까지 데려가야 한다고 굳게 다짐한 만섭은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초병들은 전남 택시 번호판을 달고 있으면서 서울말을 쓰고 집주소를 못대는 만섭을 수상히 여겼고 욕을 섞어가며 윽박지르는 등 초반의 호남고속도로를 막아서던 군인들처럼 매우 무례했다. 이 와중에 피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끼어들자[80], 4년제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일병을 불러 통역하게 한다.

병장이 "외국인이라고 봐줄 줄 아느냐"며 총까지 겨누며 내리라고 위협을 하는 와중에 검문조장 박성학 중사는 고압적인 태도이기는 해도 일단 존댓말로 피터와 만섭에게 하차를 요구하고 택시를 직접 수색한다. 중사는 트렁크 속에서 "외국인 손님의 부처님 오신 날 기념품"이라는 물건[81]들을 들추다가, 결국 서울 택시 번호판과 카메라 가방을 발견한다. 소름끼칠 정도의 정적이 흐르고 만섭과 힌츠페터는 이제 끝났구나 체념하는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 중사는 트렁크를 조용히 닫으며, 통과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지 않냐며 주저하는 부하들에게 박 중사는 "기자도 아니고 서울 택시도 아닌데 뭐 어쩌게?"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그냥 보낼 것을 지시한다.[82] 박 중사의 명령으로 부하들이 바리케이드를 여는 도중에 만섭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만섭과 피터가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하는가 싶었지만 곧 무전이 오는 소리가 들렸고 만섭은 몰래 택시에 기어를 넣으며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그 무전은 아니나 다를까 "외국인이 탄 택시를 발견하면 즉시 연락하라"는 보안사의 명령이었고 군인들은 재빨리 바리케이드를 다시 닫으려 한다. 만섭은 가속 페달을 꽉 밟아 문짝에 달라붙은 병사 한 명을 아슬아슬하게 뿌리치고, 군인들은 멀어져 가는 만섭의 차를 향해 M1 카빈을 난사한다. 0310이라는 차량 번호를 무전으로 통신하는 군인들 속에서, 박 중사는 옆에 멀쩡히 놓여진 기관총 포좌로 가거나 개인화기도 들지 않은 채 묘한 표정으로 택시를 응시한다.

이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자주 나온 클리셰이지만,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해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한다. 실제로 피터도 광주에서 돌아올 때 쿠키통에 광주 대학살의 실체가 담긴 필름을 숨겨서 가져가다가 군인에게 딱 걸렸는데, 그 군인이 그냥 눈감아주고 통과시켜줬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군인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상 걸렸다면 당연히 곤욕을 치렀겠지만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14.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

만섭의 택시는 총탄 몇 발을 맞았지만 그대로 도주한다. 한참 달리던 중 갑자기 들려오는 총성에 뒤를 보니 좀전에 출발하였던 보안사 사복 군인들의 순찰차[83] 무전을 받고 도착한 것이였다. 순찰차들이 만섭의 택시를 따라잡아 포위하던 찰나, 갈림길에서 태술이 택시를 타고와 만섭의 택시 앞에 가던 순찰차 한대를 밀어내 만섭을 빠져나가게 해주고 곧이어 경적 소리와 함께 택시 3대가 더 난입하여 보안사 순찰차들의 길을 막으며 방해한다. 이에 사복조장은 밀어버리라고 지시하지만 그럼에도 택시들이 길을 비키지 않자 격노하며 발포명령을 내린다.

택시가 피격되는 와중에서도 광주 택시기사들이 만섭과 피터의 탈출을 돕던 중 류 기사의 택시가 타이어에 권총탄을 맞고 무력화되어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지나가던 순찰차에 들이받혀 완파된다. 이를 본 신 기사가 갈 때까지 가보자며 택시로 순찰차를 들이받아 전복시켜 추격하던 보안사 일당의 순찰차 한 대를 줄이고 도로를 틀어막아 나머지 차량들을 지체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본인 역시 중상을 입은 체 일행에서 낙오되며, 보안사 일당은 넘어진 순찰차와 신 기사의 택시를 밀어내고 추격을 재개한다. 시간을 벌어준 틈을타서 택시들은 거리를 벌리지만, 만섭의 택시와 부품을 바꾼 것으로 보이는 차 기사의 택시가 추격전 중반부터 엔진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태술한테 미안하다며 결국 길 한복판에서 멈춰버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태술은 만섭의 옆으로 가서 "조심해서 가쇼잉! 여긴 걱정하지 마시고!"라고 필사적으로 외친 뒤,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완전히 밟아 남은 차량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부딪힌다.[84]

이 장면에서 택시들의 등장과 사복 군인들 차량과의 사투는 복선도 거의 없었고[85], 등장할 명분도 이유도 없기에, 내용 전개 상 뜬금없는 연출이라는 의견이 많다. 장훈 감독 또한 비슷한 이유로 이 장면을 꼭 찍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작중에 박성학 중사를 비롯한 여러 군인들이 중무장한 채로, 평소라면 차량이 지나다닐 거라고는 생각하기도 힘든 샛길들조차 철저히 봉쇄하고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택시가 네다섯 대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왔다는 건 개연성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만섭과 힌츠페터도 겨우 통과했는데 광주 택시들은 대체 어떻게 해서 무려 네다섯대가 그 장소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검문소 이전에 광주 시내에서 비슷한 추격전이 벌어졌다면 좀 더 현실성이 있었을 것이다. 감독도 이 장면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의 참상을 알릴 수 있었던 데는 일반 광주 시민들의 희생도 있었기에, 이를 기리기 위해서 해당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원래 영화는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과장을 하기도 하고 허구적인 요소를 집어넣기도 하는 일이니 감독의 의도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이 장면에 아쉬움을 느끼는 관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외에도 만섭의 택시에 군인들이 소총으로 총격을 가하는 장면에서도 플롯 아머가 좀 느껴진다. 바퀴에 쏘거나 뒷유리에 난사하면 무력화되는 걸, 굳이 트렁크 부분에만 쏴 갈긴다. 차가 거의 30발에 가까이 피격되는데, 뒷유리엔 보안사 요원이 쏜 딱 1발만 맞는다.[86]

15. 서로 각자 갈 곳으로...

만섭과 피터는 김포공항을 향해 달린다. 석양이 지는 도로를 달리던 피터는,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 만섭의 가족사진을 다시 룸미러에 달아준다. 어느덧 든든한 친구가 된 둘은 잠시 서로를 응시한다.

공항 보안사에서는 피터의 출국을 감시하고 있는데, 전화로 "다음 날 10시 비행기를 30분 전에 예약했다"고 하며 피터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피터는 공항 데스크에서 예약된 비행기를 취소하고, 지금 당장 일본 가는 비행기[87] 1등석 표를 끊는다.[88] 그 뒤 택시 안에서 만섭과 함께 과자 깡통 뚜껑을 열고, 안에 필름들을 놓은 뒤 그 위를 다시 과자로 덮고, 다른 과자 깡통 두개를 위아래에 묶어 위장한다.[89] 피터가 과자통들을 쌓아서 끈으로 고정시키고 리본을 묶는데, 만섭이 그 줄을 풀어 딸의 머리를 묶어 주었던 모양으로 다시 한 번 묶어 주어 선물 상자로 위장시켜준다. 피터는 만섭에게 "일본에 가서 곧바로 보도만 하고, 다시 한국에 입국하여 찾아 택시 수리비를 청구해줄 테니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달라"고 수첩을 내민다. 만섭은 순간, 여러 생각을 하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90] 그리고 차 안에 놓인 바구니의 담배 갑을 보며 "담배를 안 사왔다"고 중얼거리다가 사복이라는 상호와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김사복'이라는 가짜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입해서 건네준다. 피터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만섭을 안아주며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You are a good man)"라고, 잘 해주었다고 한다. 만섭은 "다음에 한국 올 땐 한국어 좀 배워 오라"고 농담을 건네며 훈훈하게 그를 배웅한다.

한편 서울에서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은정은, 집 밖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이내 상구가 은정에게 과일로 약올리면서 "너희 아버지 밀린 집값[91] 때문에 도망간 거다"라고 놀려댄다. 화가 난 은정이 상구를 때리고 상구가 맞받아 치려는 찰나에 상구의 엄마가 등장한다. 그런데 항상 자기 아이부터 싸고돌았을 평소와는 달리 아들에게 친구 좀 그만 괴롭히라고 나무란뒤 은정을 달래서 같이 데리고 들어간다.

마지못해 들어가려는 은정의 뒤에서 총탄과 충돌에 의해 파손된 만섭의 택시가 돌아오고, 만섭은 딸을 꼭 안으며 눈물을 흘린다.[92] 은정은 그런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가만히 안아준다.

피터와 다른 외신 기자들은 일본 프레스센터에서 타게스샤우에 보낸 보도자료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다. 몇 달 후[93] 피터의 부탁을 받고 김사복이라는 택시기사를 수소문하던 이 기자는 한국에 들어온 피터에게 그런 이름의 택시기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김사복이란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닌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도 찾는건 그만두라고 한다. 피터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민주화운동 보도 때문에 감시가 붙은 상황.[94] 여기에 만섭의 존재까지 알게 된다면 그들이 만섭에게 무슨 위해를 가할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결국 김사복(만섭)을 찾는걸 포기한다.

16. 에필로그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러 2003년 12월 눈 내리는 겨울 날, 인천국제공항[95]을 통해 한국을 다시 찾은 피터는 한국에서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한다.[96] 피터는 수상 소감을 말한다.
그 날의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 용감한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를 지금이라도 만나면 정말로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합니다.

한편, 만섭은 2003년에도 여전히 택시 기사로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택시 차종은 바뀌어있지만[97] 심성은 여전해서, 을 마신 학생을 태워다 주고 돈이 부족하다는 말에 만 원만 받고 보내준다. 차에 타려다가 뒷좌석에 학생이 두고 내린 공시책과 신문을 발견하고 학생을 부르지만, 학생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물건을 놓고 다시 운전대를 잡으려는데, 그 순간 대학생 승객이 두고 간 신문에서 피터의 수상 소식이 실린 기사를 발견한다. 피터의 사진을 보며 "한 번 다시 보고 싶었던 친구였는데, 이렇게 보니 좋다"고 중얼거리는 만섭. 바뀐 택시에도 여전히 룸미러에는 피터의 목걸이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이내 새로 탄 손님이 광화문으로 가자고 하여, 만섭은 광화문으로 차를 몬다. 그리고 첫 화면에 나온 1980년대 남산 및 서울의 광경과 거의 같은 구도로 눈 내리는 도산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2015년 11월 인터뷰가 나온다. 김사복 씨를 그리워하며 "그의 택시를 타고, 같이 변화한 대한민국을 둘러보고 싶다"는 힌츠페터의 말과, 힌츠페터가 생전에 계속 김사복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그를 찾지 못한 채 2016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자막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영화 개봉 이후에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사복은 1984년에 세상을 떠나 영화와 달리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98]

[1]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만섭이 직접 따라 부른다.[2] 후술하겠지만 만섭의 집이 성동구라는 것을 한남대교 달리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한남대교 강북 방향으로 가도 바로 성동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바로 나오는 한남오거리에서 800m 정도만 가도 성동구에 들어서게된다.[3] 이때 최루가스가 주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코 밑에 치약을 바른다. 이때 사용한 치약은 바로 럭키치약.[4] 1980년대 당시 차량은 사이드미러가 보닛 앞부분에 부착된 펜더 미러 형태이기에 보닛 부분이 살짝만 긁혀도 미러가 나가기 일쑤였다.[5] 상구도 싸움으로 상처가 난 것을 안 만섭이 "우리 애가 밥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변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만섭 역의 송강호가 과거 <살인의 추억>에서 한 "밥은 먹고 다니냐?"를 연상시키기 쉬운 대사인데, 그 때문인지 여기서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도 있다.[6] 1980년대 물가를 감안하면, 영화가 개봉한 2017년 당시 가치로 4.7배 정도인 약 47만 원이다.[7] 하지만 만섭 부녀가 이날 저녁에 먹던 국이 상구 엄마가 가져다준 것이라는 걸 보면, 말은 이렇게 해도 정이 깊은 사람이다. 물론, 이걸 들은 만섭이 먹던 걸 짜다며 바로 뱉어버린다.[8] 도쿄 타워와 타워 근처를 비추는데, 이때 나오는 곡은 일본의 민요인 '사쿠라사쿠라(さくらさくら)'다. 이때 1980년 5월 19일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즉 피터가 한국에 도착한 시점은 20일 아침인 셈. 또 택시 번호판이 시나가와(品川 7 が 67-75)이다. 시나가와 번호판은 치요다구, 미나토구, 시부야구, 주오구, 시나가와구, 메구로구, 오타구, 세타가야구(2014년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시나가와 육운국에서 발행하는 번호판이기에 해당 장소가 시나가와구라 특정할 수는 없다.[9] 입국 심사 때 입국 심사관에게 자신을 '선교사'라고 말하며 'MISSIONARY(선교사)'라고 쓰여진 부분을 가리킨다. 기자라고 알리면 활동에 감시가 붙을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신분을 속인 것. 그리고 그 입국 심사관은 한참동안 의심하다가 결국엔 속아넘어가고 여권도장을 찍어주었다.[10] 문제는, 광주로 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내용은 못 들었다는 것. 만섭의 성격과 그가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운다는 걸 생각하면, 이 뒷이야기까지 들었으면 안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피터를 태우기로 했던 택시 기사가 기사식당에서 동료들과 얘기할 때 걱정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내내 자랑조였고 피터를 '외국 호구'라고 불렀던 걸 보면, 처음부터 그 사람도 잘 몰랐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듯 하다. 이 기자는 다 설명했다고 말했지만... 일단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일어날지도 모르는지 전혀 알 리가 없으니 별 경각심을 안 가지는 게 말도 안되는 건 아니다.[11] 시대가 시대인지라 보안사가 눈치채고 끌고간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12] 과거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어느 정도 영어는 할 줄 알지만, 아무래도 완벽한 회화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사가 들어갈 자리를 생략하는 등 엉터리 영어를 사용한다. 그래도 단어 몇 개와 눈치만으로 어찌어찌 대화를 이어나간다.[13]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그 넓은 고속도로에 광주로 가는 방향의 차가 오직 내가 탄 택시 하나뿐인 걸 보았을 때, 이미 불길함을 감지했다"고 한 바 있다.[14] M16A1 소총과 얼룩무늬 패턴의 충정복 차림인 광주의 공수부대와 달리 일반 육군의 국방색 민무늬를 착용하고 M1 카빈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부대 마크도 육군특수전사령부의 독수리 마크가 아닌 제31보병사단의 변형 마크이다.[15] 실제로 배우 송강호 본인도 7사단 출신이다.[16] 당시에는 군사정권 시절이었던데다 계엄령까지 선포된 상황이라 군인은 사람 그 자체가 절대적인 권력이었어서 입지가 매우 강했다.[17] 피터를 사업가로 인식하는 순간 만섭의 태도가 변하는데, 만섭의 여린 마음과 그 당시 외화와 수출에 대한 인식 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본인도 외화를 벌어들이려 외지에서 힘든 근무를 해 보았으니 더더욱.[18]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외국 회사 주재원으로 위장하고 "광주에 남아 있는 회사 부장을 빼오겠다"면서 검문소 군인들을 속여서 광주로 진입했다.[19] 여기에는 군인들의 외국인/영어 울렁증도 살짝 작용했다. 실제로 지금이야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신기하지도 않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에 대해 동경심을 갖거나 주눅 드는 경향이 흔했다. 특히 백인들에겐 더 강했다. 그래서 영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당시엔 훨씬 많았다. 작중 묘사로 후반부 택시 검문씬에서도 외국인인 피터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야 4년제. 이리 와봐“ 라고 하며 대학을 다니는 병사를 찾는 묘사가 나온다. 알다시피 이 시절은 대학 진학률도 낮아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고선 대학에 갈 형편도 못 되어 군인 사회 역시 장교들만 육해공 사관학교(심지어 학사장교도 없을 때다. 학사장교 제도는 이듬해인 1981년부터 출범했다.) 출신 엘리트들이고 사병들은 고졸도 드물어서 영어 할 줄 아는 사병들도 드물었다.[20] 그런데 발음은 좀 그렇긴 하지만 영어 구사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마치 영어를 한국말 쓰듯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하루이틀 공부한 게 아닌 모양.[21] 당시의 소시민이던 만섭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공부하러 대학간 놈들이 허구헌 날 데모나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작품 초반부터 시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군부독재이던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국가 발전은 눈부시게 이루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그 당시 중장년층들은 당연히 반정부적인 젊은세대들을 이해하지 않았고, 또한 그 당시 외부에서는 광주시위에 대한 기사 보도를 철저히 검열했고, 출입을 허용해줬던 검문소 군인들조차도 시위대를 '폭도'로 간주했기 때문. 상황을 처음부터 겪지 않았던 만섭은 자연히 여기에 동요될 수밖에 없었다. 또 이미 서울에서 대학생 시위대가 택시 백미러리를 망가뜨린 사건 때문에 차를 두 번 수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점도 있다.[22] 사실 이때 승차거부를 당한 최 기자로서는 억울한 오해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정직한 기자였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기자들이 침묵했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언론을 불신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오해를 산 것. 당장 그 역시 다음 장면에서 엔진룸이 우그러진 택시가 부상자를 내려두자, 기사들과 운동가들이 병원으로 환자를 호송하는 장면을 촬영하러 발빠르게 뛰었다.[23] 머리가 깨졌다고 했지만 무슨 생명에 위협이 있는 정도는 아니고, 이마가 조금 찢어진 정도.[24] 당연히 만섭은 그의 물건을 훔쳐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트럭을 따라가다 차를 돌린 것도 그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을 뿐이다.[25] 그러면서 피터는 너도 다 설명듣고 온것 아니냐며 따진다. 하지만 만섭은 당연히 그저 10만원에 광주 왕복운전이라는 호구손님이라고만 생각하고 낚아챈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실 원래 운전하기로 했던 택시운전사 역시 피터를 그저 호구손님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원래 태우기로한 기사는 피터가 기자라는 설명도 미리 들었긴 하지만...[26] 유일하게 택시 기사들의 형님인 태술만이 만섭을 변호한다. 설마 돈만 받아먹고 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물론 바로 옆에서 돈을 낚아채던 신 기사는 형님은 너무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한다.[27] 처음에는 택시에 혼자 탔다가, 힘들게 시동이 걸리자 다시 내려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피터에게 타라고 말한다.[28] 이 시절에는 전남도청이 광주에 있었다. 광주직할시 승격 전이라 광주도 도 산하 일반시였고, 당시에는 대구와 인천도 도 산하 일반시일 때라 직할시는 부산직할시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의 전라남도 구 청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민주평화교류원 건물이 되어 있다.[29] 이 때 만섭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정말 데모만 하려고 대학 운동권에 들어갔나 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30] 또한 혼자 집에 있는 11살 딸 때문에라도 돌아가야 했다.[31] 시위용 깃발과 푯말들만 빼면 그냥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였고, 검문소 군인이 말한 폭도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질서 정연한 모습이였다.[32] 실제로 당시 국내 기자들은 와봤자 "폭도가 광주를 점령하고 있다"는 거짓 보도만 했기에, 외신기자가 더욱 환영받았다. 덕분에 외신기자들은 시민군이 점령하여 상황실로 사용하던 도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33] 전투경찰들이 쓰는 일반적인 진압봉이 아닌 웬만해선 잘 부러지지 않고 타격감이 뛰어난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일명 충정봉을 사용했다. 당시 시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부는[34] 감독이 GV 때 한 말에 따르면, 이 장면은 옥상에 있던 만섭이 멀리서 방관자 입장으로 보다가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들 입장으로 스며드는 순간이다.[35] 카메라워크 역시 만섭을 중심으로 어지럽게 돌아가며, 그가 충격적인 현장의 한복판에서 어떤 감각에 휩싸이는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36] 이때 만섭이 "어 주먹밥..."이라고 하는데, 말을 끝마치지 못하는 것을 보아 꽤나 큰 충격이였을 듯.[37] 이때 그 공수부대원의 시점이 피터를 향하는 걸 보면 위의 사복조장처럼 외신기자임을 눈치챈 걸로 보인다.[38] 택시에서 내릴 때 "서울 기사양반 맞잖아."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다 모퉁이에서 나온 불빛을 보고 군 차량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가까이에서 확인해보고 안심한 듯.[39] 이때 만섭이 여전히 시무룩한 것을 보고는, 사정(사별)을 조금은 짐작한 듯 하다.[40] 이전에 시위현장에서 만섭이 피터 카메라를 파손시켰을 때, 화가 난 피터가 "돈 터치(Don't touch)"라고 하는 장면과 대사가 비슷하다.[41] 각각의 점화 플러그의 전기를 배분해 주는 장치로 이게 망가지면 엔진 점화 자체가 안된다.[42] 이 때문에 후반부 택시 추격 장면에서는, 부품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는 택시의 보닛에서 연기가 서서히 나다가 결국 멈춰 선다.[43]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혼란스러운데다 딸까지 걱정되는 와중에, 대놓고 속물 취급까지 받자 폭발한 듯 보인다.[44] 매워서 독어로 scharf라고 하고 이어 물을 달라고 할 때 영어 water가 아니라 독어 wasser라고 한다.[45] 일부는 이 부분을 두고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가 또 나왔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허나 여기서 갓김치는, 태술이 풍족하지 않은 일반 시민임을 보여 주는 장치 중 하나이다. 결정적으로 재식이 피터가 갓김치를 먹기 전 "매울 수 있다"고 만류하지만 피터가 "나 매운 거 잘 먹는다"면서 스스로 집어먹는다. 애초에 이 장면은 외국인에게 괜한 국뽕에 취해 김치를 억지로 먹이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광주의 현 상황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기꺼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달려와준 외신 기자가 고마워서, 없는 살림에도 탁상 부러지게 식사를 차려주는 장면이다.[46] 재식이 지폐를 세는 모습을 보이자 태술은 화투냐고 물어본다. 한술 더 떠 왕년에 자신도 화투로 날렸다고 말한다. 유해진이 타짜에서 고광렬 역을 맡은 것에 대한 배우개그인 듯.[47] 물론 엉터리 노래 듣는 게 낫다만...[48] 최초 폭음과 이후 울리는 소리는 총소리처럼 들린다. 폭음 1회와 총소리가 11회 들린다.[49] 이때 사방이 온통 붉은 연기로 가득 차,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화재를 일으킨 당사자가 누군지는 나오지 않는다. 통설은 '광주의 상황을 왜곡해서 방송하는 MBC 방송국 때문에 분노해서 광주 시민들이 방화했다'이지만, '시민들이 항의하러 모이기 전에 불길이 일어났다'라는 증언도 있고, 아예 보안사에서 여론조작을 위해 일부러 방화했다는 주장도 있다.[50] 물론 갑자기 인간적인 정이 생겨나거나 한 건 아니고, 어쨌든 외국인인 피터를 불러낼 수도 있겠다 싶어 허락한 것.[51] 사복조장이 영어를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52] 성동구광진구로 분구된 건 15년 후인 1995년이다. 화양동이 광진구에 편입된 것도 이때부터다. 작중 배경인 1980년에는 광진구 자체가 없어서 화양동도 성동구에 속해 있었다.[53] 어떻게 보면 만섭의 기존 가치관이 무너져버린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초반부에 대학에 공부하러 갔지 데모하러 갔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이라고 말했지만, 중동 건설 붐 때 나가 외화벌이를 해오며 나라 경제발전에 이바지 했더니 돈 몇푼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서울 택시 기사 빨갱이라며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으니 멘탈이 나갔을 것이다.[54] 어두운데서 빠르게 움직여서 뭔가 둔기로 내려친 것 같아보이지만, 일시정지해서 보면 카메라가 맞다.[55] 아내에게 더 해 줄 수 있었음에도 아내의 부탁에 따라 그 돈으로 택시를 샀기에, 작중 만섭은 돈에 예민하지만 아내의 유품과도 같은 택시를 돈보다 더 애지중지한다. 초반에 사이드미러가 파손당했을 때와 정비사가 보닛을 두드릴 때 상당히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 것, 항상 방수포로 차를 덮고 아이들을 다른 곳에서 놀라고 한 것이나 광주에 와서 벌인 유턴 사건도 이 때문.[56] 영화상에서 그랬는지 실제로 당시 영어로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57] 1980년 당시 번호판에는 지역이 표기되어 있었고, 현재에도 일반 차량은 2004년부터 지역 표기가 사라졌지만 영업용 차량에는 지역 표시가 남아 있다. 따라서 만섭의 택시 번호판에는 서울이라고 표시됐다. 또한 광주의 직할시 승격은 6년 뒤인 1986년이기 때문에 이때는 전남 표기를 했다. 1980년 시점에서의 직할시는 부산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 대구와 인천의 직할시 승격은 5.18 이듬해인 1981년 7월 1일부터다.[58] 이 때 택시 번호판이 '전남2 나 0310'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근혜 탄핵일의 날짜도 3월 10일.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는 광화문이 나오기까지 한다. 물론 이 영화의 촬영은 2016년이고 이 때는 박근혜 게이트 관련 내용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에 의도적이기는 불가능하며, 감독 역시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밝혔다. 영화를 찍고 보니 광화문이 또 다른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어있었다고.[59] 현재 버스 기준, 현재 도로 기준으로 1시간 18분이다. 그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모를 정도면 언론통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60] 부처님 오신 날에 딸과 소풍 가기로 했던 약속이 상기되는 부분.[61] 당시엔 인터넷도 SNS도 없었기에 언론 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었고, 그 언론을 정부가 쥐고 있으니 왜곡보도를 하기가 쉬웠다.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타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광주에서 '빨갱이'가 난동을 부렸다고 알고 있거나,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선 애초에 무슨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조차 거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62] 만섭의 심경의 변화를 암시하는 장면. 초반부에서 대학생들의 데모라 생각했던 게 사실은 군부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끔찍한 현장의 한복판에서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깨닫고 이해했다.[63] 이 때 만섭이 부르는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라는 가사가 묘하게 투쟁을 계속하는 광주 시민들, 그리고 그들과 인연을 맺었던 만섭의 상황과 겹친다. 이 때 그 흐느낌을 잘 들어보면 "은정아 아빠 어떡하냐?"라는 말이 들린다. 이 장면은 감독이 추천한 세 장면 중 하나이다. 송강호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명장면.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만섭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이 가사는 사실 정부의 검열로 수정된 가사라는 점이다.[64] 현재는 리모델링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사용 중이다. 광주 도시철도 1호선문화전당역의 부역명이 구 도청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 현 전남도청은 목포시 근교 (무안군 삼향읍) 남악신도시에 있다.[65] 영화에 택시 기사들의 언급을 빼면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애국가가 거의 끝나갈 무렵 공수부대가 집중적으로 시민들에게 발포를 시작했다. 동일한 시기를 다룬 화려한 휴가에는 이 장면이 제대로 그려진다.[66] 나중에 태술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시체를 보관할 관이 부족할 지경이라 학생들이 관을 가지러 갔다고 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관을 가지러 가던 버스에 탄 사람들이 잠복 중이던 공수부대의 집중사격과 총탄 난사를 당해 거의 몰살당한 사건도 있다. 주남마을 총격사건 참조.[67] 총을 쏘려는 사복조장을 제지하고 난 직후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며 잡혀가던 도중 숨이 끊어진듯 하다. 그 총도 재식이 붙잡아서 빗나갔는데 이 때 팔 같은 곳에 맞았을지도 모른다.[68] 실제 힌츠페터도 자신이 만났던 광주 청년이 며칠 후 죽어 시체가 되어있는 것을 목격한 에피소드가 있다.[69] 좀 전에 딸을 위해서 신발을 사들고 가던 것과 대치되는 장면. 평온한 일상을 누리던 소시민 만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70] 사족으로, 이 장면은 과거에 이한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께서 실제로 아들의 떨어진 신발을 신겨주시는 장면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71] 이 때 군용 헬기가 광주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는 전단지를 살포하고 있었다.[72] 작중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당시 군용헬기들은 시민들을 상대로 기총사격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증언을 보면, 병원에서 헌혈을 하려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헬기가 사격을 감행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전시 같으면 이미 제네바 협약 위반으로 전범 처벌 대상이다. 당시 금남로 1가 전일빌딩 옥상에는 저격수가 배치되어 확인사살을 하였으며, 창문으로 내다보는 "목격자들을" 사진 촬영할 우려가 있으니 저격하기도 했다. 도청 근방 도심빌딩의 건물주 노인 황호정은 가족들을 방으로 밀어넣고 혼자 창 밖을 살피다 피격당해 죽었으며, 현재 충장서림이 있는 자리에 있었던 아파트 주민 일부가 이때 저격으로 숨지기도 하였다.[73] 백기를 흔드는 사람 공격하는 것도 제네바 협약에 의하여 명백한 전쟁 범죄 행위로 간주된다. 심지어 이건 적군에게도 적용되는 규정이다.[74]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5.18 광주만큼 참혹하고 끔찍한 광경은 처음 봤으며 영상을 찍다가도 몇 번이나 눈물이 터져나와 영상찍는게 몇 번이나 중지됐다고 한 바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기자도 해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75] 작중 한 푼이라도 아끼려 혈안이 되어있던 모습과 비교되며, 택시를 아내의 유품처럼 생각하는 만섭이 그걸로 바리케이드를 치려고 한다는 것에서 어떠한 심적 변화를 겪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76] 버스에 가로막혀서 총격을 받지 않았다.[77] 자막으로는 이렇게 나왔지만 영어 대사는 '우리들을 위해서'(for us)라고 정중한 표현을 썼다.[78] 여기서 피터의 심경변화를 볼 수 있는데, 서울에서 광주로 올 때 피터는 조수석 뒷자리(상석)에 앉아서 왔는데, 여기서는 조수석에 앉았다. 만섭과 같이 사지를 헤쳐온 피터의 생각을 볼 수 있다.[79]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피터 또한 이러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편하게 있던 일본을 떠나 광주로 온 것이다.[80]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당시 군인들, 그 이전에 일반인 대부분은 영어를 잘 못했고 외국인이나 영어에 울렁증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81] 순천에서 사온 커다란 연등과 향 상자 몇 개를 방수포 위에 얹어 놓았고, 방수포 밑에 카메라와 번호판 등이 있었다.[82] 박 중사가 만섭과 피터를 못 본 척 해준 이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신군부의 명령을 별다른 의문 없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부하들과 달리 박 중사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학살의 실체를 알고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려던 일부 군인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라면 최초 시위진압을 명 받고 투입됐다가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강경 대응을 피한 31사단장 정웅 소장이나, 군인이 보호해야 할 대상인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라는 신군부의 부조리한 명령을 능동적으로 거부한 일부 진압군이 알음알음 구전되어 소재로 채택된 것으로 추정. 정웅 소장은 비록 이 건으로 중장 진급에 실패하고 전역했지만, 88년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91.5%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국회에 등원했는데, 초선 의원이 이 정도로 득표한 사례가 드물다. 그리고 정웅 의원은 5공 청문회의 증인석에 서서, 당시 상황을 증언한다. 1년 전, 부마항쟁에서도 해병대 박구일 7연대장이 온건 대응 전략을 고수한 덕분에, 2차 진압군이 오기 전까지 유혈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5.18과 부마항쟁의 공통점은, 바로 '2차 진압군들이 민간 요소(civilization)를 외면하고 강경진압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광주의 2차 진압군들이 시민들을 "무차별 구타"하는 대신 1차 진압군의 온건대응방침을 유지하기만 했어도, 진압대상을 '시위 학생'으로 한정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부산-마산의 박구일 대령은 이후 중장으로 전역, 92년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전국구 공천을 받아 등원한다.[83] 차종은 쌍용 코란도 1세대 후기형.[84] 직접적인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사복조장이 운전병에게 "밟아!"라며 닥달하고 태술은 고함을 지르며 후진하다 충돌하는 소리가 울린다. 그래서 태술과 사복조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사 역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태술과 동료 기사들은 죽으면 죽었고, 살아 남았다고 해도 잘 도망을 갔거나 보안사로 끌려갔거나 병원에 실려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요원들에게 잡혔다면 얄짤없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을 것이다. 일단 최우선 목표인 피터와 만섭을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는 걸 보면 태술의 동귀어진에 최소한 차량은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85] 보안사 군인들이 뛰어가며 만섭의 택시를 쫓는 것을 태술이 본 정도.[86] 유리창 근처나 타이어 근처에 맞기는 했지만 유효타는 아니었다. 덤으로 택시들은 지프차가 들이박자 종잇장처럼 우겨지지만 만섭의 택시는 어떻게든 빠져 나간다. 비교적 선두로 빠져나갔으니 충돌은 물론 유효사거리 밖으로 나갔다는 것으로 변명은 가능하다.[87] 당시 하네다 국제공항은 한국에게 운수권 허가가 안났을 가능성으로 추정되며 일본항공,전일본공수가 당시에 운항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88] 10시 예약은 사실 위장이고, 바로 출발하려는 교란 작전이라고 볼 수 있다.[89]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도 이렇게 필름을 숨겨갔다. 나머지는 바지 허리띠 부분 안에 넣었다.[90] 아마 광주에서 보았던 군부정권의 모습과, 자신이 언론에 노출된다면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들이 무슨 끔찍한 변을 당하게 될 지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91] 전술했듯이, 집이 성동구에 위치하는걸 다시 증명하는 장면이다. 은정이가 앉아있을때 등 뒤에 있는 건물에 성동용달 이라 써져있다.그리고 시대상을 생각하면 화양동이 실제로도 저랬다. 그리고 밀린 집값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지금 아파트가 많이 들어선 옥수동이나 행당동 집값을 생각하면... 전술했듯 현재는 화양동광진구의 법정동이다.[92] 은정은 만섭에게 "아빠, 왜 울어?"라고 묻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관객마다 해석이 다르다.[93] 눈이 내리고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이는 등, 겨울이다.[94] 피터가 뒤를 돌아보면 사복 경찰들이 앉아있다.[95] 이것도 시대변화를 느끼게 하는 요소다. 인천국제공항은 80년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2001년에 개항했으니까.[96] 힌츠페터는 여러 언론상을 수상했는데, 2003년에 한국에서 받은 것은 송건호언론상이다. 작중에 나오는 상패나 신문기사, 크레딧의 '송건호언론상 사회자'로도 알 수 있다.[97] 기아 브리사가 아닌 현대 쏘나타다. 4세대 모델인 뉴 EF 쏘나타인데, 2003년 당시로는 최신 모델이었다.[98] 영화가 개봉된 후에 아들인 김승필의 제보로 실존인물 김사복의 일대기가 밝혀졌는데, 별탈 없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광주의 참극을 목격한 충격을 술로 달래며 살다 폭음으로 건강을 해쳐 간암을 얻었고, 5.18 4년 뒤인 1984년 숨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