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야마 히데키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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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B 일본시리즈 우승감독 | ||||||||||||||||||||||||||||||||||||||||||||||||||||||||||||||||||||
2016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감독 |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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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298><colcolor=#ffffff>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CBO | |
쿠리야마 히데키 栗山英樹 | Hideki Kuriyama | |
생년월일 | 1961년 4월 26일 ([age(1961-04-26)]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도쿄도 코다이라시 |
학력 | 소카고등학교 - 도쿄학예대학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83년 드래프트 번외 |
소속팀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984~1990) |
지도자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2012~2021)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2~2023) |
프런트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CBO (2024~) |
1. 개요2. 선수 커리어3. 은퇴 후, 그리고 지도자 생활
3.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3.2.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4. 프런트 경력4.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CBO
5. 기타6. 관련 문서7.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일본의 야구지도자. 前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現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CBO.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국 대표팀의 전승 우승을 달성하는데 크게 일조한 감독으로서 오타니 쇼헤이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야구계에서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해설자를 전부 다 겪어 보고 프로팀+국가대표팀 우승까지 기록한 몇 안 되는 인사이기도 하다.
2. 선수 커리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배구부에서 뛰었는데 그때 익힌 플라잉 리시브는 그 후 선수 시절 기막힌 호수비의 토대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는 3학년때 팀의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이끌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교사를 지망하여 도쿄학예대학 교육학부에 진학하였다. 훗날 쿠리야마는 WBC마저 우승한 이후 2023년 도쿄학예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대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서 투수 겸 외야수로 활약하였다. 투수로는 1학년과 2학년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나 팔꿈치 부상 이후로 주로 야수로 뛰었다. 대학에서의 통산 성적은 투수 : 25승 8패 타자 : 0.389.
고교 시절에는 배우가 꿈이었고, 대학교 재학 중 교원 자격증을 획득하였으나 야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983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1년차인 1984년에는 유격수로 뛰었으나 2년차인 1985년에 스위치 히터 겸 외야수로 전향하여 1986년에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1985년 발병한 메니에르병[1]에 시달렸으며, 경기 도중에 어지럼증이 나타난 적도 있었다. 결국 1986년 시즌 종료 후 치료에 전념하였고, 그로 인해 1987년 시즌에는 팀 전력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 후 시즌 후반에서 2군 연습에 주력하였으나 시즌 종료 후 스프링 캠프에서 왼발 근육 부상을 입었다.
1988년에는 왼발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좀 늦게 시작하였으나 1번 중견수로 맹활약하며 .331의 타율을 기록해 야쿠르트의 4위 기록에 기여하였다. 1989년 시즌에는 2번 타자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활약하면서 타율은 .255에 그쳤으나 넒은 수비 범위로 그 해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그러나 1990년에 노무라 카츠야 신임 감독에 의해 주전에서 밀려났고, 오른쪽 팔꿈치 통증과 메니에르병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프로 통산 성적은 7시즌 494경기 1339타석 1204타수 336안타 7홈런 67타점 타율 .279.
3. 은퇴 후, 그리고 지도자 생활
은퇴 후에는 1991년 테레비 아사히 출연을 시작으로 스포츠 해설가와 캐스터로 맹활약하였다.[2] 또한 모교 도쿄학예대학의 강사와 하쿠오 대학의 교수[3]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참고로 퇴직이 아닌 장기휴직처리되어 현재도 교수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3.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2011년 11월 3일 나시다 마사타카의 후임으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감독에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국립대학 및 대학교수 출신으로는 처음이고 코치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에서 의문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감독 첫 해인 2012년 시즌에 팀을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그 말은 쏙 들어갔다. 2013년 시즌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때문인지 파리그 꼴찌를 했고, 2014년 시즌에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리그 3위를 차지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오릭스 버팔로즈를 2승 1패로 제압하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3승 4패로 아쉽게 패퇴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2016년은 교류전까지 선두 소프트뱅크와 무려 11.5게임 차이가 나는 3위로 쳐지면서 3년 연속 A클래스 진입에 만족하는 듯 했으나, 교류전 이후 파죽의 15연승을 달리면서 2위로 부상, 8월 25일 자로 선두로 치고 올랐고, 이 후 1개월 여동안 소프트뱅크와 1, 2위를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9월 28일 세이부 라이온즈 전에서 이도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의 완봉승으로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들면서 개인 통산 2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그리고 이후 2016년 일본시리즈도 2연패 뒤 4연승의 리버스 스윕으로 우승을 거머쥐며 팀의 통산 세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말 그대로 쿠리야마 매직의 시대가 온 것.
그러나 2017년 오타니 쇼헤이가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이탈한 것을 시작으로 브랜든 레어드의 부진 등등 안 좋은 요소가 하나하나 누적되며 시즌 초반부터 10연패로 바닥을 깔더니 8월 말에는 하마터면 최하위까지 침몰할 뻔 했다. 롯데가 시즌 내내 폭망해서 그나마 꼴찌는 면했지만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거기다가 다음 시즌부터는 오타니와 함께 핵심 불펜투수였던 크리스 마틴도 없을 예정이라 감독으로서 진짜 실력이 판가름날 듯 했는데.
2016년 11월 2일, 닛폰햄은 구단 홈페이지 201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원문
부진한 시즌을 보냈음에도 2017년 10월 11일자로 다시 계약을 연장, 2018년에도 팀의 사령탑을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지난 시즌의 부진을 만회하며 2018년 8월 현재 리그 2위를 기록중이며, 선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리그 3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다시 A클래스에서 포스트시즌 경쟁을 무난하게 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는 브랜든 레어드가 살짝 부진하고 있지만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외국인 타자인 오스왈도 아르시아가 나름대로 자기의 몫은 하고 있고, 선발 요원으로 영입된 닉 마르티네즈[4]가 2점대의 평자점으로 순항하고 있으며 전 미네소타 트윈스 출신의 마이클 톤킨이 뒷문을 확실하게 잡아주며 외국인 농사도 준수하게 한 모습이다. 현재까지의 모습은 2017년 시즌이 단순히 운이 없었던 시즌이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5] 결국 2018년은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팀이 5위로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쨌든 재계약은 했지만. 사실 감독을 못했다기 보다는 타선이 스스로 개판이 나 버린게 커서 감독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좀 아닌 상황이었다.
2020년 또다시 5위로 마무리하며 홋카이도 이전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B클래스 달성. 다만 감독 개인으로선 어떻게서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프너, 불펜데이 등으로 최대한 노력했으나 선수들이 받쳐주지 못했다. 그런 성적을 내고도 2021시즌까지 재계약에 성공했다.
2021시즌 시즌 시작부터 팀 타선의 침체로 5위를 넘어 최하위로 추락하고 드디어 경질설이 나왔다. 거기에 나카타 쇼의 이구치 카즈토모 폭행사건으로 선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인증하고[6] 다른 선수들도 나카타의 장난에 불만을 토로했다. 쿠리야마는 일단 나카타 방출설에 긍정적인 대답을 했고 나카타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무상 트레이드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7] 하지만 3년 연속으로 부진한 팀 성적과 감독 장기집권 체제에서 드러나는 여러 문제점 때문에 쿠리야마 감독 본인도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나카타 쇼의 요미우리행 이후로는 5할에 가까운 승부를 벌이면서[8] 탈꼴찌 경쟁을 했다.
2021년 10월 5일 감독 사임 및 프런트 이동[9]이 공식 발표되었으며, 감독 사임 발표식에서 오타니 쇼헤이가 영상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공석이 된 감독 자리는 이나바 아츠노리를 선임한다는 설이 돌았으나, 10월 30일 신조 츠요시가 감독으로 정식 선임되었다. 같은 날 치바 롯데를 이기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42년만의 최하위라는 굴욕을 안겨주는 데 성공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3.2.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이나바 감독의 뒤를 이어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고 결국 2021년 11월 29일 일본 국가대표 감독으로 내정이 되었다.2022년 10월 24일 한국팀 전력 분석을 위해 KBO 플레이오프 1차전을 관전했다.
대표팀 감독으로 뽑힌 후 연습에서 오카모토 카즈마를 유격수, 무라카미 무네타카를 2루수로 쓰는 기행을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둘 다 3루수고 몸집이 커서 유격수와 2루수에는 도저히 맞지 않다(...).
2023년 2월 17일부터 27일까지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강화훈련을 실시한다.
2023년 2월 25일-26일은 소프트뱅크 호크스 , 3월 3일-4일은 주니치 드래곤스 , 3월 6일 한신 타이거스 , 3월 7일 오릭스 버팔로스 와의 평가전을 치르고 3월 9일 WBC 본선경기에 임한다.
기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개막전인 중국과의 대결부터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내세우며 승리를 거뒀다. 이후 한일전에서 대승을 거둔데 이어 체코와 호주도 잡으며 조별리그 4전 전승으로 1라운드를 손쉽게 통과했다. 2라운드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으면서도 방심 하지 않는 운영을 보여주며 4강 진출에 성공했고, 4강전에서 멕시코를 만나 고전을 펼쳤으나 마지막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극적인 역전 끝내기 적시타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나 무라카미 타석에서 번트 지시도 고려했으나 무라카미를 믿고 가기로 결정했고 이 믿음에 야구에 무라카미가 보답을 하면서 더 극적인 스토리가 쓰여진 것 이다. 결승전에서 미국을 3 : 2로 이기면서 일본대표팀 통산 3번째 우승과 함께 7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써냈다.
WBC가 끝난 후 대표팀 감독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명예롭게 대표팀 감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4. 프런트 경력
4.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CBO
대표팀 감독 사임 이후에는 닛폰햄에 CBO(야구부문 책임 이사)로서 복귀하였다고 한다. 다만 감독이 워낙 튀는 인물인데다 프런트라는 위치상 공개석상엔 자주 안나오는 중.5. 기타
- 신인드래프트 추첨 픽 뽑기를 더럽게 못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신인드래프트 때부터 1차지명 5연패를 해서 결국 구단 측에서 2018년 신인드래프트 때에는 키다 마사오 GM에게 뽑기를 맡겼다. 결과는 대성공. 무려 7개구단이 지명한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 키요미야 코타로의 교섭권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감독 생활 중 뽑은 가장 큰 대어인 오타니 쇼헤이는 단독지명과 성공적 협상 후 입단으로 인하여 제비를 뽑을 일이 없었다.
- TV 아사히 해설위원 시절 성씨 덕분 홋카이도 쿠리야마초[10]의 관광 홍보대사를 맡았는데,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닛폰햄 감독에 취임한 뒤 아예 도쿄의 자택을 팔고 쿠리야마로 이사, 그 곳에서 자취를 하며 삿포로까지 출퇴근한다고 한다.
- WBC 2023 한일전에서 해당 경기의 시구자로 나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송구가 크게 오른쪽으로 벗어나자, 포수 위치에서 포구자로 대기하던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옆으로 이동해 원바운드로 공을 받았다. 일본 정부를 싫어하는 한국인들도 별 반응 없이 웃어넘기는 분위기였지만, 일본 입장에서 보면 국가 수장이 시구를 할 정도로 한일전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막강한 구위를 자랑하는 투수진과 미사일타선의 힘으로 13-4 대승을 거두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번번히 맥을 끊으며 콜드승에는 실패했다.
-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다. 찌라시성 정보에 의하면 야구 해설자로 활동하던 시절 거의 결혼까지 갈 뻔한 여성이 있었으나 쿠리야마의 바람기로 인해 헤어졌다고 한다. 그 여성이 바로 현재 이치로의 부인인 후쿠시마 유미코라고.. #
그러거나 말거나 난j의 캐주얼 호모 잉여들 사이에서 호모라는 근거없는 추정이 난무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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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 속 평형기관인 세반고리관에 이상이 생기는 병[2] 2006년에는 요미우리 제70대 4번타자였던 이승엽과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3] 자신의 대학 제자인 오오야마 유스케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4] 과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추신수의 팀 메이트로 뛴 그 선수가 맞다.[5] 하지만 마이클 톤킨은 후반기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평균자책점 3점대로 준수한데다 다년 계약인데도 남은 돈 다 주면서 1년만에 방출해버렸다.[6] 쿠리야마 감독은 군기를 절대 안 잡고 자유롭게 선수들을 대하기로 유명하다. 문제는 고참이 신인에게 군기를 잡는 것도 선수에게 군기를 잡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안 잡아서 나카타가 그리 활개를 치고 다닌 것.[7] 하라 타츠노리 감독에게 직접 전화로 요청을 했다고 한다. 나카타의 야구인생을 이대로 끝나게 할 수 없다며...[8] 사실 교진이 더 심하게 망해버렸는데, 3할대 월간 승률 + 시즌 내내 4위권을 유지하던 히로시마 카프에 2.5경기 차까지 추격 허용 + 5할 승률 붕괴 이렇게 안 좋은 장면들을 모조리 만들어 내면서 무너졌다. 그래도 가을야구 턱걸이는 했지만.[9] 교수 경험을 살려 선수들을 상대로 자문 및 강의를 한다고 한다.[10] 삿포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도 시골 오지 분위기의 동네다. 무로란 본선 쿠리야마역이 있는데 정작 그 일대에 지나다니는 열차는 하루에 몇 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