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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37:18

제국의 아침/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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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등장인물
2.1. 황실
2.1.1. 황제2.1.2. 왕(황)후·황실 부인들
2.1.2.1. 태조(왕건) 관련2.1.2.2. 혜종(왕무) 관련2.1.2.3. 정종(왕요) 관련2.1.2.4. 광종(왕소) 관련
2.1.3. 왕자·공주2.1.4. 내관·상궁
2.2. 주요 신료&호족
2.2.1. 왕규(광주) 세력2.2.2. 왕식렴(서경) 세력2.2.3. 평주 세력2.2.4. 황주 세력2.2.5. 신라계2.2.6. 광종의 측근2.2.7. 그 외 신료들2.2.8. 주요 호족들
2.3. 승려2.4. 그 외의 인물2.5. 회상으로 등장한 인물

1. 개요

2002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2. 등장인물

이전작인 태조 왕건과 후속작인 무인시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가 연출을 했던 야인시대 등에 출연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여담으로. 본 문서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2.1. 황실

2.1.1. 황제

2.1.2. 왕(황)후·황실 부인들

2.1.2.1. 태조(왕건) 관련
2.1.2.2. 혜종(왕무) 관련
2.1.2.3. 정종(왕요) 관련
2.1.2.4. 광종(왕소) 관련

2.1.3. 왕자·공주

2.1.4. 내관·상궁

2.2. 주요 신료&호족

대다수의 신료 및 장군들이 한다하는 호족들이기 때문에, 주요 특정 인물들의 세력을 중심으로 다루고, 그 외의 신료들도 이름 옆이나 설명에 주요 지역이나 극 중에 맡았던 직책들을 다룬다.

2.2.1. 왕규(광주) 세력

2.2.2. 왕식렴(서경) 세력

극에 등장할 때부터 왕규를 탐탁지 않게 노렸으며, 자신의 장조카 대신 다른 조카들을 저울질하다가 왕요, 왕소 형제와 손을 잡고, 혜종 사후에 왕규 일파를 처단하고 스스로 집정에 올라 정권을 장악한다.[39] 이후 서경 천도를 적극 지지하면서 동시에 왕소를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서경 공역장에서의 역부들의 반란[40]으로 둘째 아들인 왕함순이 죽고, 뒤늦게나마 서경에 당도하긴 했지만, 그 때부터 심적 고통이 심해지다가 뒤이어 역부들에 의해 공역장이 전부 불에 타자 순시 중에 그 광경을 보고 낙마하여 숨을 거둔다. 죽기 전까지도 "서경"을 외칠 정도로 서경을 생각했었다.

2.2.3. 평주 세력

2.2.4. 황주 세력

2.2.5. 신라계

2.2.6. 광종의 측근

유신성과 이몽유에 비해 관련 문서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일부에서는 가상 인물설까지 나오긴 하지만 분명한 실존인물이다. 본래는 '장단열'이 맞으며,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 보물로 지정된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의 비문을 작성한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관련 지식백과 다만, 광종의 책사 역할을 하는 것은 극중 창작으로 보인다.

2.2.7. 그 외 신료들

2.2.8. 주요 호족들

정종 즉위 이후부터 광종 대까지는 박영규와 함께 다니면서 원로로서 내의성의 대부로 있었다가, 광종의 호족 견제의 여파로 관직에 물러나 그저 숨 죽은듯이 조용히 지내는 와중에 평주 호족들과 반역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숙청, 국문 과정에서 연로한 것을 감안하여 고문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외손자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박영규와 같이 유배 도중에 광종이 보낸 독주를 마시고 사사된다. 번외로 김긍률과 박영규의 당여들이 있었는데 그 중 여인들은 노비로 삼게 되었고 나머지는 참형에 처했다.

2.3. 승려

2.4. 그 외의 인물

2.5. 회상으로 등장한 인물



[1] 작중에서는 혜종 역의 노영국의 아버지로 나오지만, 노영국이 동안인 탓에 1살이 적은데도(노영국은 1948년생. 이문수는 1949년생) 아버지 역으로 나왔다.회상에서 나오는 젊었을 적 모습은 최수종. 물론, 최수종이 직접 이 드라마에 나오는 건 아니고, 태조 왕건에서 촬영한 부분을 다시 틀어 준 것이다. 최수종이 왕건의 죽음을 연기한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혜종 역도 노영국이 아니라 태조 왕건에서의 담당 배우였던 안정훈이 그대로 맡는다고 소개하는 등 정확도가 영 떨어지는 기사다.[2] 여담으로 정종 역에는 이경영, 이성재 등이 거론됐다.[3] 이 배역에는 당초 최민식, 장동건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개인적인 이유들로 고사했다.[4] 태자 시절에는 세종이 될 것 같았는데 임금이 되니 태종이 되더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왕이 되기 전에는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다가 왕이 되니 강단있고 때에 따라서는 폭군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는 한국 사극 중에서는 달리 찾기 힘들다.[5] 예를 들어 자신은 격구나 하고 놀겠다며 격구를 잘 하는 병사들로 호위부대를 꾸리는데 이건 말 그대로 친위군을 강화한 것이었으며, 공신들을 대접하겠다며 공신각을 새로 지어 놓고는 공신이 너무 많아 누구를 더 잘 챙겨야 할지 모르겠으니 등급을 좀 나누고 싶다는 뜻을 비쳤는데 이건 서열 정리를 하겠다는 것이다.[6] 평주 일가와 효은태자는 물론 직접적으로 붙잡혔던 준홍과 왕승조차 방면해주었다. 다만 준홍과 왕승은 이미 방면 전에 당한 고문의 여파로 사망한 후였다.[7] 특히 측근 중 가장 아끼던 유신성이 희생되었다, 유신성의 희생에 광종 본인 역시 매우 상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것이 직접적인 폭주의 기폭제가 되어버린다.[8] 참고로 1기 오프닝에서 광종이 미묘하게 썩소를 짓는데 앞으로의 광종의 행보를 암시하는 듯 하다.[9] 재미있게도 스토리상으로 이 뒤를 잇는 천추태후에서는 신정왕후 황보씨로 나온다.[10] 태조 왕건에서 경애왕비 역, 무인시대에서 윤 상궁 역을 맡았다. 같은 작가의 드라마인 무풍지대에서 이정재의 처 역을 맡았다.[11] 태조 왕건의 딸이지만, 광종과 근친혼을 하면서 외가의 성인 황보씨라고 불리운다. 이는 고려조 내내 계속된다.[12] 전작 태조 왕건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SBS 주말드라마 그래도 사랑해에 출연하게 되면서 무산됐다.[13] 본명인 도지원으로 출연.[14] 실제 역사에서도 광종의 노비안검법에 대해 간언을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직접적으로 충돌했다는 기록은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려시대의 기록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은 편이지만, 적어도 남아 있는 기록 중에서는 없다. 덧붙여, 똑같이 개혁 군주의 왕비였던 노국대장공주의 경우 몇 건에 불과하지만 공민왕과 충돌했다는 기록이 있다.[15] 2010년 위암으로 요절했다. 다모에 김민준의 호위모사로 출연한 적이 있다.[16] 다만, 그래도 궁궐에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대목왕후가 늘 걱정하기도 하였다.[17] 이를 말리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미 측근의 죽음에 꼭지가 제대로 돌아버린 광종이 그냥 숙청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집행했던 인물이 바로 광종의 동생인 대종 왕욱이었는데, 그로서도 차마 못할 짓인 걸 알았는지 살려달라는 흥화군과 경춘원군에게서 고개를 돌리다시피 하며 "황실에 태어난 게 잘못이다... 잘 가라..." 라는 식의 말을 남긴다.[18] 실제 역사에서는 경종 이외에도 효화태자라는 아들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러나 따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요절한 것으로 추측된다.[19] 당시에는 정태수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였으며,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왕식렴 역을, 같은 작가의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으로 출연하였다.[20] 인두로 지지는 형벌[21] 코를 베는 형벌.[22]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형벌.[23] 낭심이나 성기를 자르는 형벌[24] 전작 태조 왕건에서 금산사 승려 등 여러 단역으로 출연[25] 그러나 유신성이 평주로 내려가는 효은을 말리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효은이 처음으로 연루된 반역 사건 때 효은의 처벌을 주장하던 쪽이었기 때문이다.[26] 실제 역사에서는 그냥 사사되었다. 한편 그 당시 아이까지 있었는데, 기록에는 그 아이는 광종의 배려(?)로 죄를 면하였고, 이 때문에 효은태자의 후손들이 현재 개성 왕씨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한다.[27] 전작 태조 왕건에서 왕신 역[28] 단역 전문 배우로, 태조 왕건에서 엄청 많은 역할을 맡았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초기에는 서남해지역의 호족 중 한 사람으로, 중반에는 왕창근과 최응을 따라 상주로 간 의원, 후반에는 고창 전투의 삼태사(三太師) 중 하나인 김행 역을 맡았다.[29] 태조 왕건에서 전이갑 역을 맡았다.[30] 태조 왕건에서 종훈 역을 맡았다.[31]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의 최측근인 내금위장 정만쇠로, 야인시대에는 홍만길의 중년 시절을 맡았다.[32] 역사상으로 먼 훗날, 왕씨의 사직을 끝내는 여말선초 시기를 다룬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왕씨의 사직을 끝내는 이성계 역을 맡아서 열연한 바 있다.[33] 드라마에선 '고기'라고 말한다.[34] 전작 태조 왕건에서 고창의 호족(삼태사) 중 한 사람인 김선평 역으로 출연.[35] 야인시대에서 최동열의 아버지인 최상우 역을 맡았다.[36] 야인시대에서 인촌 김성수 역을 맡았다.[37] 재미있게도 한참 전 대하드라마인 용의 눈물에서는 위의 왕규 역을 맡은 김무생을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는 정도전 역할을 맡았다.[38] 물론 장화왕후 오씨나 왕규는 그가 개경에 머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 늘 내쫓으려 하지만, 왕식렴이 여러 이유들을 들먹거리면서 무산되기도 하였다.[39] 이 과정을 보면 나름 치밀한데, 왕요 형제와 손을 잡을 때 일이 성공하면 자신도 한 몫 챙기겠다고 슬쩍 언급했고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고 감격한 왕요가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 말해 버린 걸 이용해 먹는다. 왕요의 등극 직전에 저 일들을 이야기하며 "집정"이라는 벼슬을 만들어 앉겠다고 통보하다시피 하며, 그 몫이라는 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왕소는 이렇게 되면 형님(왕요)이 혜종 형님하고 다른 게 뭐냐며 경악한다.[40] 해당 반란은 드라마 상 가상 설정으로 실제로 역부들의 반란이 일어난 적은 없었으며, 『고려사』 기록에는 정종이 죽고 나서, 서경 천도 공역이 중지가 되자, 동원된 일꾼들이 환호했다는 기록이 있다.[41]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의 동생인 환향식 역을,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 이고의 측근이었던 김교위 역을 맡았다.[42]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충주 호족 유긍달 역으로 출연하였다.[43] 철저히 대 호족들과 그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던 중앙군을 중소 호족과 평민 위주의 구성으로 개편하여 호족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중앙군을 국왕의 직속 군대가 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조치였다. 실제로도 국왕 직속의 친위군 양성은 왕권 강화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에서도 정조가 왕권을 강화시키고, 군부에서의 노론 영향력 배제를 위해 장용영이라는 국왕 직속 친위군을 육성한 바 있다.[44] 용의 눈물에서 최영 장군 역,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강장자 역을 맡았다.[45] 총 책임자는 왕소였지만, 이는 그를 견제하던 왕식렴에 의해 명목상 혹은 책임을 덮어씌울 희생양으로 보내진 것에 불과했다.[46] 다음 해 야인시대 심영으로 고초를 겪는 그 분과는 동명이인인 원로 배우로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이총언 역을 맡았다. 이 분은 무려 무풍지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으신 분이다.[47] 용의 눈물에서 이숭인 역을 맡았으며,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 암살 시도한 자객 등 여러 단역을 출연한 바 있다.[48]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진호 등 여러 단역을 출연한 바 있다.[49] 다른 사극에서 자주 나오는 주리틀기, 인두 지지기는 물론 의형(코 베기)에 월형(발뒤꿈치 베기), 궁형(거세)까지 당했다. 사실상 살아있는게 용한 수준. 그나마 광종이 이 당시까진 인간성이 남은 상태여서 이들을 옥에서 풀어주고 식솔들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다만 사망한 후였기에 주검이 되어 감옥에서 나갔다.[50] 광종의 장모인 신정왕후의 사촌동생이라 해놓고 언제부턴가 대목왕후의 사촌오빠로 바뀌어 나왔다. 이는 황보제공도 마찬가지.[51] 전작 태조 왕건에서 배현경으로, 후속작 무인시대에서 문장필 역으로 출연.[52] 공교롭게도 배우 신동훈은 용의 눈물에선 강력한 외척으로 태종의 숙청 대상 1호에 올랐던 민무구 역할을 맡은 바 있다.[53] 전작 태조 왕건에서 김락으로 무인시대에서는 백임지 역으로 출연했다.[54] 전작 태조 왕건에서의 배우(신귀식)보다 젊은 몇 안되는 배우이다. 사실 전작의 신귀식이 실존인물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가 많긴 했다.[55] 실제로 광종은 평주, 청주, 승주의 호족들이 숙청된 후, 이들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채우게 될 신라계 관료들이 과거를 주관하고 신진관료의 교육까지 담당하는 상황에 대해 당파를 형성한다고 하여 경계하였다.[56] 부친 최언위는 전작 태조 왕건에서는 언급만 되었을 뿐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57] 정확히 상황을 설명하자면, 탄문 대사를 송별하는 술자리에서 최지몽의 발언으로 광종이 분노하게 되고, 그를 옥사에 보내게 된 상황에서 최행귀가 광종을 칭송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거기에서 "신라계 학사들과 쌍기 공이 함께 학문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발언을 한다. 그런데 광종은 이 무렵 평주의 박수문과 박수경 일가를 비롯해 청주의 김긍률, 승주의 박영규 등 주요 대호족들을 대거 숙청한 후부터 이들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채우게 될 신라계 관료들이 과거를 주관하고 거기에서 합격한 사람을 교육하는 상황에 대해 이들이 당파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여 상당히 경계를 하였다. 신라계 관료 우두머리 격이었던 최지몽도 이런 광종의 심성을 꿰뚫어보고 신라계 관료들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하였는데, 최행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신라계, 신라 출신 학자'라는 말을 내뱉었고, 이에 광종은 가뜩이나 최지몽의 발언으로 분노하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여 최행귀를 즉각적으로 죽이게 된다.[58] 야인시대에서 최영규 역을 맡았다.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염흔 역을 맡았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신립, 왕과 나에서는 박원종 역을 맡았다.[59] 전작 태조 왕건에서 윤신달 역으로 출연, 야인시대에서 의사 역을 맡았다.[60] 차려놓았던 주안상을 엎으면서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직언이다. 대목왕후(당시는 부인)는 물론 같이 온 균여조차 놀란 가운데, 왕소는 그의 말을 새겨들으면서 이후, 고통받았던 인부들을 치료하고 구휼하는 삶으로 전환했다.[61] 후술하는데로 역사상 본래 이름은 장단열인데 장단설로 나온다. 說은 사람 이름으로 읽을때는 열로 읽어야 하는데 제작진이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중항열과 같은 경우.[62] 태조 왕건에서 이총언의 아들 이영 역과 최승우의 집사 역을 맡았다.[63] 광종, 황후 다음으로 나오니 신료들중에서는 가장 먼저 나온다.[64]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 역을 맡았다.[65] 물론 갑옷은 아니다. 물론, 과거 혜종의 회상들 중에 박술희와 함께 갑옷을 입고 혜종과 함께 전장을 나선 적은 있었다.[66]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신명순성왕후의 별세로 인한 장례 중 문상을 하고 나오던 중, 문상을 하던 왕식렴 앞에서 "태후 폐하께서는 어느 늙은이로 인해 고통받는 서경 백성들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운명하셨다."는 직언을 날려 왕식렴 뒤에 있던 김긍률과 박영규까지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였다.[67] 재위 초반 속내를 감추던 광종이 대신이나 호족들에게 금으로 된 술잔을 하사할 때 서필만은 이를 거절하였다.[68] 실제로 사후에는 광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광도 누렸다.[69] 왕규, 박수경을 제외한 다른 시중들도 힘은 없었지만, 왕함민만큼 약하진 않았다. 박수문은 극 시작 이전부터 시중이었고 곧 왕건이 사망하여 비중이 적었을 뿐이었다. 권직은 왕식렴이 시중 위에 집정이라는 관직을 만들어 권한은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그는 시중직에 있는 동안 주로 서경 공역을 진두 지휘를 하는 역할이었다.[70] 전작 태조 왕건에서 전의갑 역으로 출연,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는 김보당 역으로 나온다.[71] 본명 박승규,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원극유 역을 맡았다.[72]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을 맡았던 태민영씨가 연기한 역할이었는데, 태민영씨가 안타깝게도 간암 악화로 별세하면서 배역 자체가 드라마내에서 일찍 증발했었다.[73] 태조 왕건에서 신라의 관료 연식 역을 맡있다.[74] 사실, 광종이 이성을 잃었다기보다는 균여만큼은 처형하기를 망설이면서도 황실의 위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황실의 위엄을 세우겠다고 호족과 황족들을 대거 숙청했는데, 그런 가운데서 천도제를 지내 그들의 명복을 빈 것은 광종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은 물론 그의 위엄까지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75] 당시에는 본명인 임경옥으로 나왔다.[76] 설정상 어린 시절 혼약을 맺었다가 각자의 사정으로 잊혀졌던 사이였다고 한다.[77] 당시 고려 백성 대부분은 과거 군인이었다는 설정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후삼국시대였으니 당연한 것. 때문에 반란도 일개 농민군 vs 관군이 아닌, 예비역 vs 현역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78] 사실 일반적인 민란은 그 원인이 참작할 만한 경우엔 민심 수습을 위해 주동자만 처형하고 불문에 부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 경우는 민란이 제압되지 않고 스스로 흩어졌기 때문에 주동자를 공식적으로 잡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79] 야인시대에서 김원봉, 법무장관 역으로 출연하였다.[80] 태조 왕건에서 양길의 사자, 입전, 박영규의 집사 역을 맡은 배우.[81] 태조 왕건에서 양길의 동생 명길을 맡았다.[82] 나중에 불멸의 이순신에서 안홍국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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