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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소재지 | |||||
지역 | 해서 | ||||
면적 | ㎢ | ||||
행정구역 | |||||
시간대 | UTC+9 | ||||
인구 | 123,646명 | ||||
인구밀도 | |||||
시당위원장 | |||||
인민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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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해도[1] 남동쪽에 위치한 군. 광복 당시 1읍 13면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당시에는 동쪽으로 금천군, 남쪽으로는 연백군, 북쪽으로는 봉산군, 서흥군, 신계군과 접하고 있었다.2. 역사
해상리 회골에 있는 고회암용식 동굴이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밝혀짐으로써, 구석기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한사군 시대에는 대방군(帶方郡) 제해현(提奚縣)이었다. 3세기 중반에는 기리영 전투가 벌어졌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서 처음 다지홀(多知忽)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고 불리다가 뒤에 대곡군(大谷郡)으로 편성되면서 개정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방 요충지로 부각되어 748년(경덕왕 7)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永豐郡)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일단 삼국사기 지리지의 기록상으로는 신라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속했는데, 신라 후기인 782년(선덕왕 3)에 대곡성이 패강진(浿江鎭)으로 승격되었고, 이듬해부터 군주(軍主)가 두어져 예성강 이북, 대동강 이남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 및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패강진의 치소 위치에 대해서는 평양시, 봉산군 등 몇 가지 다른 설도 있지만 평산 위치설이 가장 정설인 상태다. 패강진의 위상을 한주와 구분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본다면 사실상 이 때 한주에서 독립하고 신라 서북지역 통치의 중심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826년(흥덕왕 1)에는 300리에 달하는 패강장성을 축조했다.
904년 패강진 관하의 10여 주현이 궁예(弓裔)에게 항복한 후부터 평주(平州)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두은점(豆殷坫)·유금필(庾黔弼)·박수경(朴守卿) 등 고구려계 패서 호족[2] 가운데 유력했던 인물들 상당수가 평산군 일대 출신이다.
995년(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 1018년(현종 9)에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부터 잠시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이때 해주목으로 서남부 지역을 떼주었다고 하며, 15세기 중엽의 인구는 총 2,130호 6,323명으로 해주에 버금가는 큰 고을이었다.
1733년(영조 9)에 태백산성이 개축되었는데, 4개의 몽성과 8개의 성문을 갖춘 요새로서 도호부사가 수성장을 겸하는 외에 별장과 승장을 따로 두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산군으로 고쳐졌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유림의 조직이 강력한 곳이었으며, 1896년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의병부대와 연계되어 일부는 제천에서, 일부는 황해도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9월 24일에 서남부 일부 면이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07년에는 박정빈을 대장으로 하는 평산의병이 조직되어 평산·배천·연안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3.1운동 때에는 천도교인 외에도 유림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특색을 보여주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해 활동한 바 있는 서의배·유상렬·조창선(趙昌善) 등과 이완용(李完用)의 암살을 시도했던 정의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이 있다.
1920년 군청을 평산면 태백산성 안[3]에서 보산면 신남천리로 이전하였고, 이후 1937년 보산면이 남천읍으로 승격되었다.
연백군이 38선으로 갈린 이후 적암면을 북측 연백군에 떼주었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때 일부지역을 떼줘 린산군을 설치하고, 남부 일부[4]는 1945년 이미 연백군 측에 내주었던 지역을 포함하여 신설된 평천군(현 봉천군)에 떼주었다. 1952년 북한 정권에 의해 남천읍이 평산읍이 되었다.
3. 지리
중부 지방과 북부 지방의 지리·문화적 경계선이라 할 수 있는 멸악산맥(滅惡山脈)이 군역 안을 통과하며, 영덕산(永德山, 398m)·청학산(靑鶴山, 525m)·천괘산(天掛山, 470m)·멸악산(816m) 등이 솟아 있다. 해방당시 행정구역 기준으로 평산군의 대부분 지역은 멸악산맥 남쪽 지역이나, 안성·문무· 상월·인산면 4면은 산맥 북쪽에 위치한다.]군의 동쪽을 예성강이 통과해서 개성, 배천 쪽으로 흐른다. 군면리 대폐합 이후 동쪽 경계가 되었다. 지류 중 남천, 누천[5]등이 이 군에 속한다.
직선거리 및 경의선·경의가도 기준으로, 서울과 평양의 중간점이다. 이에 후술하듯이 교통의 요지로 발달됐다.
4. 교통
평산의 중앙[6]으로 평부선(경의선)과 함께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1번 국도(목포∼서울∼신의주)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또한 평산에서 신계군를 거쳐 강원도 세포군에 이르는 청년이천선이 건설되어 북한의 동서 교통의 간선이 되었다. 하지만 군 서쪽 지방은 철도 교통과는 인연이 없다.
평산을 중심으로 봉산군·해주시·신계군과의 사이에도 도로가 통해 있다. 예성강의 한포(汗浦)까지는 상당히 큰 배가 다닌다.
옛부터 교통의 주요 시설인 역참(驛站)과 원점(院店)이 많았는데 그 유지가 아직도 다수 남아 있다. 『고려사』 병지(兵志)에서는 개경에서 서북으로 나가는 금교도(金郊道) 관하의 16개 우역(郵驛) 가운데 금암·보산·안성·반석·기린·온천 등의 6개 역이 이 곳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금암·보산·안성의 3개 역은 역정(驛丁) 75명씩을 배치한 일과역(一科驛), 즉 1등역에 속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5. 산업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이고, 그 밖에 벼·콩 등이 생산된다. 과일은 사과가 많이 생산되고, 배·복숭아 등도 재배되고 있으며, 남부의 주포리·봉탄리 일대에서는 밤을 가꾸어 ‘평양밤’으로 거래되고 있다. 또 ‘평산대추’는 유명한 특산물이다.지하자원이 풍부해, 임산리 부근에서는 슬레이트, 봉천리 일대에서는 대리석·화강암 등이 많이 채굴되고 있으며, 군의 여러 곳에서 나는 형석은 질과 양에서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되어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북한 최대의 우라늄 광산 중 하나가 평산군 마장산 인근에 위치해 있다. 우라늄 광산 옆에 있는 정련정광 공장은 북한 최대의 우라늄 정광 시설이며, 이곳에서 정광된 우라늄을 재료로 만든 핵무기들 또한 이곳을 중심으로 황해도 곳곳에 다수 배치되어 있다.
6. 문화재
- 태백산성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되었던 관계로 이 지역에는 평산면 산성리에 태백산성(太白山城), 마산면 다보산에 자모산성(慈母山城), 서봉면 철봉리에 철봉산성(鐵峰山城) 등의 성지가 있으며, 성내에는 당시의 시설물인 장대(將臺)·문루·군기고·창고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태백산성은 대곡성·평산산성·성황산성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영조 때 개축된 것인데, 성내에는 태사사(太師祠, 6·25전쟁 때 불탔으나 지금은 복구되었다.)라는 사당이 있는 등 매우 큰 규모에 속하는 산성으로 주목된다. 태사사는 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黔弼)·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 등의 신상(神像)을 모신 곳으로, 고려 때 창건되었다가 1796년(정조 20)에 사액되었다.
- 영소대
영소대는 병자호란 다음 해 이른바 남한산성조약에 따라 소현세자·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 등 왕자 일행이 중국 청나라로 끌려가 8년 동안 치욕적인 억류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서울로 향하던 도중 하루를 묵은 곳이다.
- 관북사, 북수사
원효가 창건했다는 인산면 기린리 성적산에 관북사와, 평산면 은담리 방원산에 있는 북수사(北岫寺)가 있다. 또한 서봉면 월봉리에서는 고려 후기에 속하는 종(鐘)이 출토된 바 있다. 금암면 제궁리에는 10∼11세기에 해당하는 청자도요지가 있다.
- 동양서원, 구봉서원
동양서원[7]과 구봉서원(九峰書院)이 있다. 평산온천 부근에는 고려 말의 신안이 종신하도록 이 곳에서 머물며 조선에서 보내는 녹봉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배록동유허비(排祿洞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 멸악산
멸악산에는 주천자(周天子) 또는 여진(女眞) 금황제(金皇帝)의 시조묘라고도 전하는 천자묘(天子墓)가 있다. 멸악산은 멸악산식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갈나무를 비롯해 북부광엽수림(北部廣葉樹林)과 신갈나무가 섞인 혼합림으로 되어 있다.
7. 출신 인물
8. 여담
9.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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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군 平山郡 / P'yŏngsan County | |
| |
광복 당시 면적 | 1,334㎢ |
이북5도 행정구역 | 1읍 13면 |
- 남천읍(南川邑)
- 관할 리 : 신남천(新南川), 갈탄(葛灘), 남천(南川), 노동(盧洞), 두무(斗武), 보산(寶山), 산막(山幕), 삼가(三佳), 수구(水口), 양암(陽巖), 운천(雲川), 월하(月下)
- 읍사무소와 군청이 신남천리에 있었다. 원래 평산군 보상면(寶上面), 보하면(寶下面)이었으나 1914년 보산면(寶山面)으로 통폐합되었고 1937년 읍으로 승격되면서 개칭됐다. 평부선 평산역(구 남천역) 소재.
- 양암리 부근에 북한이 세운 우라늄 정련공장이 있다. 문제는 부근 저수지로 방사성 폐기물을 방출한다는 것으로 지도 아예 방사성 물질이 남천(南川, 위 지도에서 "예성강 지류"로 나온 강이자 읍 이름의 유래가 된 하천)과 예성강을 타고 서해로 흘러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참고로 이 공장 단지는 경의선 철로에서 1.2km, '청년이천선' 철로에서 6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다.
- 고지면(古之面)
- 관할 리 : 서오(書梧), 금릉(金陵), 달성(達城), 대룡(大龍), 봉암(鳳巖), 세관(洗冠), 송정(松亭), 완정(浣亭)
- 신암면에서 발원한 누천(漏川)이 북쪽 서봉면과의 경계를 이루다가 세곡면에서 발원한 고지천과 합류, 금암면 방향으로 빠진다.
- 금암면(金巖面)
- 마산면(馬山面)
- 문무면(文武面)
- 상월면(上月面)
- 관할 리 : 신촌(新村), 계동(桂洞), 녹탄(綠灘), 대촌(大村), 동막(東幕), 석교(石橋), 용수(龍水), 하월(下月)
- 서봉면(西峰面)
- 관할 리 : 당우(塘隅), 만탄(晩灘), 범안(泛雁), 봉동(鳳洞), 삼산(三山), 상령(商嶺), 어사천(御史川), 용두(龍頭), 월봉(月峰), 장륙당(藏六堂), 주촌(舟村), 진포(進浦), 철봉(鐵峰), 해수(海水).
- 1914년 서상면(西上面)과 서하면(西下面)을 병합하여 신설되었다.
- 세곡면(細谷面)
- 신암면(新巖面)
- 관할 리 : 배천(白川), 가정(柯亭), 검현(劒峴), 남산(南山), 당평(堂坪), 대촌(大村), 문림(文林), 반월(半月), 성북(城北), 수회(水回), 원전(院田), 월봉(月峰), 장동(長洞), 재동(齋洞), 주상(舟上), 청룡(靑龍), 태봉(台峰)
- 1914년 신읍면(新邑面)과 주암면(舟岩面)을 병합하여 신설되었다.
- 면 서부에서 누천(漏川)이 발원해 세곡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 안성면(安城面)
- 용산면(龍山面)
- 인산면(鱗山面)
- 관할 리 : 기린(麒麟), 강도(綱桃), 건천(乾川), 낙촌(洛村), 대미(大美), 수마(水麻), 주련(住輦), 진석(眞石), 진천(眞川), 토옥(土沃), 평촌(坪村), 허사(許沙)
- 적암면(積巖面)
- 관할 리 : 온정(溫井), 갈산(葛山), 녹동(祿洞), 면곡(綿谷), 세동(細洞), 송암(松巖), 신답(新畓), 위동(位洞), 한정(寒井), 행정(杏亭)
- 북한 행정구역상 봉천군 소재지. '봉천'군의 '천(泉)'이 온정리에 있는 '학래온천(鶴來溫泉)'에서 딴 것이다.
- 평산면(平山面)
[1] 現 황해북도.[2] 단, 박수경은 신라계다.[3] 평산역(現 태백산성역) 부근.[4] 누천 이남 지역.[5] 現 루천.[6] 남천읍 일대.[7] 東陽書院, 6.25 전쟁 당시 소실되었다.[8] 동양(東陽)은 평산군의 옛 별호. 신숭겸과 이색 등의 위패를 모셨다.[9] 舊 평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