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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근육맨의 에피소드에 대한 내용은 근육맨/근육별 왕위쟁탈전 편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
War of Succession특정 국가의 왕위를 누가 계승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
군주라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건 가장 권력이 집중된 직위이며, 따라서 이를 노리는 야심가들도 수두룩한 만큼 왕위를 두고 다투는 일은 역사적으로 매우 자주 일어났으며 심지어 전쟁까지 일어났던 경우도 넘친다.
2. 국가간 왕위계승전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서유럽(라틴-게르만 문화권)에서만 있는 매우 독특한 역사적 현상으로 치부된다. 당장 동아시아 지역만 해도 왕조가 바뀌면 국명까지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하지만 서유럽 문화권이 다른 지역과 갖는 차이는 왕조와 국가가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던 타 문화권과 달리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며 따라서 한 왕조가 사라지거나 왕위에서 쫓겨날 경우 다른 왕조가 와서 왕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서유럽 문화권 내의 왕조인 것을 전제로 하지만. 즉, 여건만 된다면 어느 한 국가의 왕이 다른 국가의 왕위도 차지해 동군연합을 이룰 수도 있었으며 이를 잘 이용하면 유럽 내 세력 균형에서 우위에 설 수도 있는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다.[1] 게다가 유럽의 왕가 혹은 귀족 가문들은 타국 간에도 혈연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어느 한 국가의 부계 혈통이 끊기면 모계나 방계 등으로 얽힌 타 국가의 왕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왕위 계승 전쟁이 무수히 벌어졌으며 특히 국가라는 공적 개념이 희미했고 어느 가문의 영지라는 개념이 더 강했던 중세일수록 왕위 계승 전쟁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였다.[2] 게다가 국가별로 왕위 계승의 법칙도 조금씩 다른 것도 원인이 되기도 했다.[3]
3. 역사상의 사례
- 덴마크 내전[4] (1146-1157)
- 튀링겐 계승 전쟁[5] (1247-1264)
- 백년전쟁 (1337-1453)
- 장미 전쟁 (1455-1487)
- 백작 전쟁[6] (1534-1536)
- 포르투갈 계승 전쟁[7] (1580~1583)
- 반 시기스문드 전쟁[8] (1598-1599)
- 마르부르크 계승 전쟁 [9](1604-1648)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1714)
- 자바 전쟁
-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1735)
-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1748)
- 바이에른 계승 전쟁 (1778-1779)
4. 가상의 사례
[1] 예: 합스부르크 가문[2] 역설적으로 잘 알려진 왕위 계승 전쟁은 대부분 중세가 아닌 근대의 일이었는데 중세에 비해 빈도수는 줄어들었지만 국가들의 체급이 커져 전쟁이 터지면 훨씬 거대한 규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왕위 계승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거의 다 근세의 전쟁이다.[3] 예를 들면 프랑스나 프랑스계 혈통 왕조는 살리카법으로 인해 여성 및 여계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외 국가들은 인정했다. 독일 역시 카를 6세가 자신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자신의 작위들을 상속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기 전까진 그랬다. 때문에 왕위계승 제1순위가 여성이라면 프랑스나 프랑스계 혈통 왕조에선 반발할 수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프랑스계 혈통 왕조에선 살리카법 1순위 계승자가 왕위 계승 제1순위 여성과 정략결혼을 통해 반발을 최대한 줄이기도 했다.[4] 스벤 3세, 크누드 5세, 발데마르 1세 3명의 왕이 난립한 사건으로 발데마르 1세에 의해 내전이 종식되었다.[5] 본래 튀링겐을 통치했던 루도빙거 가문의 마지막 변경백 하인리히 라스페가 후사 없이 죽으면서 하인리히 라스페의 외조카였던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와 조카딸인 브라반트 공작 부인 튀링겐의 조피가 서로 상속권을 주장하며 벌인 전쟁. 튀링겐은 결국 하인리히 3세가 가져갔으나 일부를 조피에게 떼주면서 탄생한 곳이 헤센으로 조피의 아들 하인리히 1세가 헤센 가문의 시조이다.[6] 덴마크 최후의 왕위 계승 전쟁으로 프레데리크 1세의 아들 크리스티안 3세와 전(前) 왕 크리스티안 2세의 복귀를 지원한 올덴부르크 백국 본가, 코펜하겐과 말뫼의 시장이 격돌한 끝에 크리스티안 3세가 덴마크 국왕으로 즉위했고 종교 개혁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루터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켰던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속주 취급으로 굴러떨어졌다.[7] 세바스티앙 1세가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에서 전사한 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아비스 왕조의 모든 방계를 물리치고 포르투갈 국왕으로 즉위하여 이베리아 연합을 형성하였다.[8] 조카 시기스문드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체류하는 틈을 타 숙부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이 시기스문드의 가톨릭화 정책을 미끼로 일으킨 전쟁. 시기스문드는 결국 패하여 스웨덴 왕위에서 폐위당했고 바사 왕조간의 전쟁은 대홍수로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가 스웨덴 왕위 주장을 포기하면서 끝났다.[9] 마르부르크를 두고 헤센 가문의 헤센카셀 방백국과 헤센다름슈타트 방백국이 벌인 전쟁. 30년 전쟁으로 연장된 끝에 헤센카셀이 마르부르크를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