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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21:29:31

예양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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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생년 미상 ~ 기원전 451년)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기에 유명한 협객. 형가와 더불어 협객의 시초로 분류되는 인물로, 사마천사기 중 <자객열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복수귀로서도 전설적인 실존 인물이다.

2. 생애

(晉)나라에서 여섯 가문[1]이 싸웠는데 그는 맨처음에 범씨, 순씨를 섬기다가 지씨를 섬겼다. 후에 그가 밝히기로는 범길역, 순인[2]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고, 반면에 지백(智伯)[3]은 심복으로 놔두어 자신을 알아주었다는 이유로 지백을 섬겼다.

한, 위, 조 세 가문을 멸하려 한 지씨의 수장인 지백이 역관광좆망테크를 타고 그 두개골이 옻칠, 금칠되어 조씨의 수장인 조양자(趙襄子)의 술잔[4]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분개하여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예양은 죄인으로 가장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며 조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노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양자가 예양을 수색하자 곧 붙잡히고 말았다. 조양자는 그 충성심에 감탄하며 주위 가신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양을 풀어줬다.

풀려난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숯을 먹어 목소리를 바꿨으며, 얼굴엔 옻칠을 하여 얼굴을 변형시켰다.[5] 이러한 차림으로 구걸하는 그를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우연히 그를 알아보게 된 친우가 그렇게까지 행동하는 이유를 묻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고 답했다.[6] 또, 이로 인해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함을 칠신탄탄(漆身呑炭)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신의 재주면 능히 조양자의 총애를 받으며 심복이 될 수 있으니 조양자의 심복이 되어 가까이 모시다가 조양자를 죽이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 왜 어려운 방법을 고집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이미 그의 신하가 되었으면서 또 그를 죽이고자 하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네. 내가 극히 어려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천하 후세의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당시 조의 수도 한단에 새롭게 지어지는 다리를 조양자가 첫번째로 지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안 예양은 시체로 분장하고 다리 밑에 숨어 조양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조양자가 탄 말이 살기를 느끼자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 섰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조양자가 새로 지어진 다리 밑에 시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사들을 보내 다리 밑을 수색하였고, 결국 예양의 두번째 암살시도는 실패한다.

일전에 살려줬던 예양이 아직도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안 조양자는 짜증이 나서 "너는 옛날에 다른 이들을 섬겼는데 그들을 죽인 것은 지백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의 신하가 되어 나를 노리는 것이냐(혹은 '왜 옛 주인들을 죽인 지백에겐 관대하고, 지백을 죽인 나에겐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느냐')"고 예양에게 물었다. 그러자 예양은 "맞다. 나는 범씨와 중항씨를 섬긴 일이 있다. 범씨와 중항씨는 모두 나를 보통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백은 나를 선비로 여겼으니, 나도 마땅히 선비로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이다(國士遇之國士報之)"라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조양자는 예양의 충의에 감탄하며 눈물을 흘리며 "예자(豫子)[7]여!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절을 다한 명예는 이미 이루어졌고, 내가 그대를 용서함도 충분하였으니 응당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라(혹은 '그대는 이제 스스로 살 길을 구하라')"며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포위했다.[8] 그러자 예양은 "당신은 (臣)[9]을 이미 관대히 용서하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의 어짊을 칭송한다.[10][11] 이제 죽어 마땅하나 당신의 옷이라도 벨 수 있게 해주길 청한다[12]"고 하였다. 이에 조양자가 겉옷을 벗어 바닥에 놓아 그의 옷을 벨 기회를 주자 이쯤 되면 조양자도 굉장한 대인배 세 번 뛰어 그 옷을 베었으며 "내가 비로소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답할 수 있게 되었노라!"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칼에 엎어져 목숨을 끊었다. 예양이 죽자 삼진의 식자들은 애통해하였다고 한다.[13]

옷에 맺힌 선혈에 충격을 받아 조양자는 얼마 되지 않아 병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기와 자치통감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여태후본기〉에서 여후의 옆구리를 치고 간 개의 이야기나 〈위기후·무안후 열전〉에서 귀신이 씌어 비참하게 죽은 이야기까지 적었던 사마천이 굳이 조양자의 이야기를 누락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놀란 조양자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는 기술은 후대의 소설인 열국지에만 등장한다. 참고로 기록에 따르면 조양자는 8년 후에 죽었다. 한편 열국지에선 위에 언급한 다리의 이름을 조양자가 예양을 기리기 위해 '예양교'라고 붙였다는 내용도 나온다.

참고로 이문열은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예양의 고사를 인용한 것을 예와 양 땅의 사람들이라는 희대의 오역을 저질렀다. 개정판에서는 수정했다.[14]

일본에서 그려진 만화(해적판으로도 나왔고 황금가지에서도 정발된 바 있다.)에선 2번째로 조양자를 노리던 예양을 조양자의 부하들이 제압한다. 맨 몸에 칼 하나만 있는 예양으로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이들에겐 밀렸기 때문이다. 팔에 창을 맞고 다쳐 쓰러진 그를 부하 하나가 결정타를 날리려고 할때, 조양자가 막게한다. 부하들이 당황해하면서도 굳건히 "안됩니다! 나리! 이놈은 나리께서 특별히 살려주셨음에도 또 2번씩이나 나리를 노리려 했습니다! 살려준다고 해도 그 후로도 계속 노릴 것이옵니다! 이 기회에 숨을 끊어야 하옵니다!"라고 간청하자 안다면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말하며 이전 모시던 군주들 이야기를 한다. 이 만화에서 예양이 가정도 포기하고 복수귀로 살아가고자 얼굴을 화상입히는데 아내도 그를 못 알아봤다.하지만, 어릴적부터 둘도 없던 친구는 그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자 뒤돌아본다. 친구가 위에 나온 대로 이야기하자 대답하고 복수를 다하면 나도 죽을 것이라고 하니 친구로선 안타까워하면서도 "그저 자네의 식솔들은 걱정말게, 내가 잘 돌보겠네!" 라고 말하자 예양은 이로서 난 세상에 더 미련이 없게되었다라고 마음을 놓는다. 여기선 얼굴이 화상입은 채로 다리에서 나온 예양을 본 조양자가 진땀흘리며 "넌?예양이냐? 세상에, 저렇게까지 얼굴을 하고 또 나를 노린다고?" 라고 경악했다.

[1] 육경(六卿)이라고도 한다. 진나라의 유력 가문으로 범씨(范氏), 위씨(魏氏), 한씨(韓氏), 조씨(趙氏), 중항씨(中行氏)=순씨(荀氏), 지씨(智氏).[2] 순(荀)씨와 중항(仲行)씨는 같은 집안이기에 중항인이라고도 한다.[3] 본명은 지요. 성은 희, 씨가 지, 명은 요(瑤)다. 지양자(智襄子)로 부르기도 한다.[4] 어떤 학자는 술잔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소변통이라 하기도 한다. 자치통감에는 술잔으로 되어있고, 여씨춘추에는 소변통이라 되어있다. 여담으로 고우영열국지십팔사략에서는 요강으로 되었다.[5] 옻나무에서 채취되는 옻은 독성이 매우 강해 생옻이 피부에 닿게되면 염증이 생기고 흉이 져 피부가 변성된다. 옻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6] 이게 그 유명한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이다. 이 발언이 워낙 간지나는지라 이후로 "OO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이게 된다. OO안에는 충신, 사나이, 기타 등등 다양한 대명사가 들어간다.[7] 예양을 존중하는 의미로 성 뒤에 '子'를 붙인 것이다. 오늘날에 정확히 대응될 단어는 찾기 힘들겠으나 굳이 있다면 '선생'(현대에는 학문이 뛰어나거나 위인인 사람에게 붙여진다.) 정도. 즉 예양을 "예양씨" 라고 부르는 것보다 좀 더 격식을 차려 "예양 선생" 이라고 정중히 부른 것이다.[8] 현대어로 풀이하면 "네 충성심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를 또 노렸으니 (군주로서의 책임 때문에) 이제 그냥 놓아줄 수는 없겠구나. 그러니 너는 스스로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거라." 정도 의미가 된다. 뭐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해봤자 조양자의 호위병들에게 포위당한 상항에서는 '자결'이나 '전사'밖에 남은 선택지가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상대이기 때문인지 대놓고 '죽이겠다'고 말하기는 싫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 당시 사회의 정서와 가치관에서 그나마 '암살범으로 처형당하는 것' 보다는 명예롭게 여겨지는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게 해 주는 최후의 아량을 베풀어주겠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그리고 아예 좀 더 급진적으로 접근해보면 조양자에게 귀순해서 섬기는 것도 '살 길'이 될 수 있기는 하다. 방금 전까지 죽이려던 상대를 섬기겠다고 하면 우스워보일수도 있겠지만,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예양이 두번이나 목숨을 건 이상 지백에 대한 예양의 충성과 의리가 모자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목숨이 그의 모든 것인데, 지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다 걸었다가 운 좋게 목숨을 건지고도 또 한번 아낌없이 목숨을 걸었으니 한 사람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 이상을 바쳐서 보답했다고 말할 명분이 충분히 생기는 것. 그리고 예양이 지백에게 그처럼 지극한 충성을 다한 것은 결국 지백이 예양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인데, 후술된 바와 같이 조양자 역시 지백 못지 않게 지백을 특별하게 여기고 높이 인정해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양이 '지백을 위해 두번 죽은 것으로 그의 은혜를 갚은 셈 치고, 이제는 조양자를 섬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도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말은 아니다. 결국 조양자의 말은 예양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입장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든 마지막 선택을 할 여지를 열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9] "(비록 죽여야 할 대상이지만) 당신은 나의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10] 조양자가 한 '모두가 너의 충성을 알 것'이라는 말의 답례. 신하의 최고 덕목이 충성이니 군주로서의 최고 덕목인 인(仁)을 들어 칭송한 것.[11] 흥미롭게도 아버지인 조간자도 한때 어질다는 평을 들어서 공자가 그를 찾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는데 이유는 조간자가 휘하의 선비 둘을 죽였기 때문인데 공자는 어진 선비인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정치한 사람이 권세가 강해지자 그들을 죽였으니 어찌 의로운 사람이겠냐 말했다.[12] 이 역시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한다. 사실 조양자도 (자신을 죽이려는 적인데도 불구하고) 지백 못지 않게 예양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우했으므로 예양은 이에 보답해야 하지, 조양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는 뭣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충성을 돌릴 수는 없으므로(즉 지백을 위해 조양자를 죽이겠다는 입장 자체를 바꿀 순 없으므로),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예양은 "님이 이렇게까지 해 줄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제가 이걸 요청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만…순수한 호의로써 마지막 부탁 딱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라고 정중히 요청한 것이다.[13] 상기된 것처럼 이 에피소드 자체가 거의 단어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정도로 강렬한 함축성이 있다. 사기는 결국 사마천이 자신이 취합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사마천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문장을 재구성했다고 생각할 만한 부분.[14] 더 웃기는 것은 이를 고치지 않던 시절에 참조한 판본의 오류 때문인지 교묘하게 고쳤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예(豫)는 그대로 써놓고서는 양(讓)은 양(襄)이라 써놓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