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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 예성 → 부여성 | |
| 고구려 | 졸본성 → 국내성 → 장안성 | |
| 백제 | 위례성(한성) → 웅진성 → 사비성 | |
| 신라 | 금성(서라벌) | |
| 가야 | 금관국(금관가야) → 반파국(대가야) | |
| 발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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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 서울특별시 | }}}}}}}}} |
1. 개요
《위서(魏書)》[1]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白州)[2]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그것이다.」 나라를 개창하여 조선(朝鮮)이라 했으니 고(高)[3]와 같은 시대이다.”
魏書云, “乃徃二千載有壇君王倹立都阿斯逹. [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4] 開國號朝鮮, 與髙同時.”
아사달(阿斯達)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이 고조선의 수도로 정하고 다스렸다고 전하는 지명이다. 魏書云, “乃徃二千載有壇君王倹立都阿斯逹. [経云無葉山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4] 開國號朝鮮, 與髙同時.”
후술하듯 '조선'은 '아사달'의 훈차이며 국명도 아사달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계림이라는 단어처럼 대한민국의 이명(異名)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고려사》에서는 아사달(阿思達) 혹은 아질달(阿叱達)로 표기되기도 했는데, 당시 향찰이나 이두의 표기 사례를 고려했을 때[5] 아사달의 본래 발음은 '아ㅅㅡ달(Asdal)'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2. 위치
정확한 위치는 불명확하다. 위 《삼국유사》의 원문의 주석에서는 황해도 배천 혹은 경기도 개성 즈음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황해도 신천군 구월산으로 보고 있다.#[6] 요(堯)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舜) 임금 때를 지나 하(夏)나라 때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 [지금의 구월산(九月山)으로 일명 궁홀(弓忽) 또는 삼위(三危)라고 부르는데, 사당(祠堂)이 아직도 있다.\][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 爲神, 不死故也.\] 竝與帝高興戊辰, 經虞歷夏居中宸. 於殷虎丁八乙未, 入阿斯達山爲神.[今九月山也, 一名弓忽, 又名三危, 祠堂猶在.\]#] 구월산은 '아사달산'이라고도 한다.[7][8] 단군신화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삼성사를 비롯하여 단군대·어천석 등이 있으며 구월산 아사봉 꼭대기에 신단수(수목 숭배 신앙)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구월산은 박달나무가 많은 산이다.
혹은 평양 부근의 백악산[9]이라는 설도 있고, 졸본(랴오닝성 번시시 환런 만족 자치현)[10]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요서 십이대영자 유적과 요동 정가와자 유적을 고조선의 유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라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서➝ 요동➝ 평안도 순서로 옮겨졌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아사달을 현재 요서의 차오양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3. 한자어 조선과의 연관성
'아사달'과 '조선'은 별개의 단어가 아니라, 당시 고조선의 국호인 '조선'(朝鮮)이 '아사달'의 한자식 표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다시 말해 고조선을 건국했을 당시 '조선'이라고 국호를 정하고 도읍의 이름을 '아사달'이라고 따로 정한게 아니라, 원래 나라 이름도 '아사달'이었고 이걸 사서에 기록하거나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 한자로 훈차하여 만들어낸 표기가 바로 '조선(朝鮮)' 아니냐는 것이다.어원적 측면을 다루기 전에 일단 고대사학적 측면에서 세계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아사달이 도읍 이름이자 국호를 겸했을 가능성은 꽤 높다. 우선 어느 정도 문명 규모가 발달한 시기가 아니라 성읍국가 내지는 도시국가가 세워지던 시기에는 나라를 세울 때 수도를 따로 정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나라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므로 굳이 분리해서 도읍과 도읍이 아닌 지역을 구분할 필요가 옅었기 때문이다. 고조선보다 더 후대 국가인 신라도 원래 도읍이자 국호가 '서라벌'로 동일했으며 서라벌을 중심으로 한 연맹왕국으로 시작해 발전을 거듭하여 후대에 지증왕이 정식으로 국호를 '신라'로 정했다.[11]
아래에서 보듯 의견은 분분하나 현재 고대 한국어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언어사 연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아사달=조선 가설이 과연 사실인지 밝혀내는 연구 또한 안타깝게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새로운 사료가 나올 가능성도 적어 보이고 말이다.
3.1. '달' 관련
성균관대 김영하 교수 등은 고대 한국어와 튀르크어의 유사성을 주장했다. 우즈베크어에는 "들판", "벌"이라는 뜻의 'dala'라는 단어가 있으며 '들', '벌'이라는 뜻의 고대 튀르크어 'bora'라는 단어 또한 있는데 서라벌의 '벌' 또한 이곳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어에도 'tara'(현대 표기에 가까운 발음은 '다라')라는 말이 있다. 뜻은 '땅, 들' 혹은 '높다'라는 뜻이다. 학자들은 고조선의 영토에 세워진 고구려도 조선어계 언어를 썼으리라 상정하고, '아사달'의 '달'과 고구려어의 'tara'가 같은 뜻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근래의 비교언어학에서는 한국어의 기저를 튀르크어 등과 연관짓는 우랄알타이설을 부정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한편 2019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의 박광민(67) 연구위원이 《온지논총》 제60집에 발표한 〈고조선 국명 및 지명에 대한 어원적 고찰〉이란 논문에서 아사달이 조선을 이르는 말이었다는 주장의 추가적 근거를 당대 사료를 통해 제시했다. 《시경》(詩經)과 《일주서》(逸周書)에 달린 주석을 바탕으로 '선'(鮮)을 '산'의 의미로 읽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는데, 해당 문구와 주석은 다음과 같다.
《일주서》(逸周書) 제4권}}}
度其鮮原 居岐之陽
산과 언덕을 헤아려, 기산의 남쪽에 터를 잡으셨네
{{{#!wiki style="text-align: right"
《시경》 - <대아>(大雅) -황의(皇矣)편-}}}산과 언덕을 헤아려, 기산의 남쪽에 터를 잡으셨네
{{{#!wiki style="text-align: right"
《일주서》는 서주 시대, 《시경》은 춘추 시대에 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에 따르면 '조선'은 '아침 땅'이나 '아침 산' 정도의 뜻을 가진 고대어 '아사달'을 당대의 고대 중국인들이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학설이다.
한편 '달(達)'이 고대 한국어에서 들 또는 산을 뜻한다는 것에는 학자들이 대부분 이견 없이 동의한다. 자세한 것은 달 문서 참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대 한국어, 특히 고구려어에서 '달(達)'은 들 또는 산을 뜻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 이로 비추어 보았을 때 고조선어에서도 '달'이 '들'을 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3.2. '아사' 관련
옛 중국 기록을 비판 없이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학의 연구는 언어학과 고고학이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아침에 해당하는 '아사'가 문제다. '아침'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는 '아참'(阿慘)[13][14], 조선 초기에는 '아ᄎᆞᆷ'이었다. 이 '아침'은 드문 것의 옛말 '앛다'며 곧 앛ᄋᆞᆷ>아ᄎᆞᆷ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까지는 확실한 정설이고, 더 옛날의 고대 한국어 어휘를 찾아보려 하면 이제 추측이 많이 첨가된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대 한국어에서 'ㅊ[tsʰ]' 음가와 'ㅅ[s(ʰ)]' 음가는 터지는 소리 [t]의 유무를 제외하고는 조음점, 조음 방법이 거의 비슷한 발음이었다. 신라시대 인물인 '김용수'가 '김용춘' 등으로도 표기된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고대 국어에서는 치조 마찰음과 치조 파찰음이 잘 변별되지 않고 혼용되어 쓰였다. 해당 문서 참고.[15]'아사'는 한자의 음차로 중국인이 쓴 《위서》(魏書)와 《위서》를 참고한 《삼국유사》에 기록이 쓰여 있다. 고대 중국어에서 한자의 발음이 현대 발음과는 다르기 때문에, 고대 국어의 발음을 재구할 때도 옛날 한자음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16][17] 비슷한 발음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atshomX > 아ᄎᆞᆷ > 아츰 > 아침으로 변형되었다는 게 위 가설의 요지.
'아사'가 과연 고대 한국어에서 아침을 뜻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 근거로는 조선시대 문헌과 현대 한국어의 방언에서 아침을 "아적" 또는 "아젹"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있으므로 고대 한국어에서 아침을 재구하면 "아젹"이 본래 형태에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아사'는 아침을 뜻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이병선은 '아사' 각각 '아사 > 아ᄌᆞ > 아ᄌᆞᆷ > 아ᄎᆞᆷ > 아침'과 '아사 > 아ᄌᆞ > 아젹 > 아적'으로 발달 했다는 주장을 하였다.[18][19]
'아사'를 '작다(小)'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양주동[20], 천소영[21], 박광해) 즉 '아시달'(阿斯達)의 의미를 작은 산(小山, 子山), 또는 버금산(次山)으로 해석한다. 이와 관련된 지명들로 '동자골/구사파의(童子忽/仇斯波衣)', '아진압/궁악/안협(阿珍押/窮嶽/安峽)'[22], '평진파의(平珍波衣)'[23], '구시진혜/귀단(仇斯珍兮/貴旦)', '백악(白岳)'[24] 등을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25][26] 지명은 주로 '지형의 특징'[27] + '지형의 종류'[28]로 구성된다고 보는데[29] 이러한 지명학적 관점에도 부합하는 설이다.
한편 '아시'를 어버이를 뜻하는 중세어 '어ᅀᅵ'의 원형으로 해석하고 '다라'는 '성(城)'으로 해석하여 '아사달'을 '王城', '王邑', 혹은 '大城'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다.[30][31] 이에 따르면 일본어 'osi(大)' 역시 동원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아사달(阿斯達)'의 '사(斯)'가 성부 '근(斤)'을 가지는 한자, 예를 들어 '흔(忻)'(상고한어 추정 발음 *xjɨn)이 잘못 기록된 결과일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아사달'이 구월산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점과 '아홉'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어근으로 `*ahV-`를 상정할 경우, '사(斯)'를 '흔(忻)'의 오기로 간주하면 '아사달'을 '아홉 산' 또는 '아홉 땅'과 같이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흔(忻)'은 '흔량매현(欣良買縣)'이나 '시산군 일운 흔문(屎山郡 一云忻文)' 등에서 음차자로 사용된 예가 있으며, 특히 '시산군 일운 흔문'의 경우 '문(文)'의 첫 비음 'm-'을 '-n'으로 대응하여 적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흔(忻)'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수사 '일곱', '여덟', '아홉'의 말음 'ㅂ'(-p)이 이차적일 가능성도 제기되며, 이는 도수희 교수가 "아홉"과 "아궁이(akwuy)"의 관련성을 찾은 연구(九皐縣 本百濟堗坪縣)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이 가설은 '아사(阿斯)'를 "아홉"의 의미로 해석하기 위해 별도의 s~h 자음 교체를 상정하는 것보다 오자를 가정하는 것이 더 간단하고 합리적이라고 본다. 또한, '아사달' 표기의 근원적인 출처로 여겨지는 《삼국유사》에 인용된 옛 책 《위서(魏書)》의 판본에 이미 '흔(忻)'을 '사(斯)'로 잘못 적은 오자가 존재했다면, 이후 모든 기록이 동일한 오자를 공유하는 것도 설명 가능하다고 본다.
3.3. 음차어 설
한편 朝鮮(조선)이 훈차가 아닌 음차 표기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아사달=조선 가설을 아예 부정한다. 주로 이쪽은 숙신, 여진, 조선 등이 같은 어원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주류 언어학계에서도 이 셋의 발음적 연관성에 주목하여 朝鮮(조선)이 음차 표기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꽤 있다. 당연히 이 경우 조선이 훈차 표기라고 주장하는 아사달=조선 가설과 정면 충돌한다. 다만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이 가설에 상당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고, 언어학계 안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는 데다, 사료가 부족해서 검증이 힘든 가설인 것은 이 역시 마찬가지라 가설 검증에 영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3.4. 기타
일부 재야 사학자들은 안시성과 아사달의 명칭에 포함된 '아시', '아사'가 '아침', '시작'이나 '새(봉황)'을 의미하는 고어라는 공통점에서 착안하여, 안시성이 다른 이름으로 '안정홀(安丁忽)'이라고도 불렸으며 이 '홀'이 '아사달'과 연관이 있거나 안시성이 단군조선의 도읍지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 "위서"라는 이름의 책은 여러 권이 있으나 현재 확인되는 문헌에서는 본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2] 현 황해남도 배천군의 옛 이름이다.[3] 삼황오제의 요(堯)를 가리킨다. 고려 정종(定宗)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쓰기 때문에 "높다"를 의미하는 다른 글자인 高로 바꾸어 피휘한 것이다.[4] 《삼국유사》 원문에도 이렇게 주석처럼 적혀 있으며, 1행 2자의 작은 글자로 되어있다.[5] 특히 叱과 약자 ヒ는 석독구결 자료에서 속격 ㅅ의 표기로 매우 흔하게 쓰인다.[6] 원문:
(…전략) 그리하여 (단군은)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沃沮), 동북 부여(夫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었다.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阿斯達) 산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으니, 〈이는 단군이〉 죽지 않은 까닭이다.\[7] '구(九)'는 '아호~아구~아사'의 훈음이며 '달(月)'은 고대한국어 '산(山)'으로 한역이 가능하다. '궁홀(弓忽)'은 'ᄀᆞᆷ'과 비슷한 음으로 '신(神)'에 대한 고유어인데,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 도수희, 벌나(平那平壤)와 아사달(阿斯達九月山)에 대하여, 인문언어 19, 2017.[8] 계림유사에 '구(九)'는 '鴉好(아호)'로 표기되어 있는데, 벡스터-사가 재구에 따르면 '好'의 중고 한음은 /*xaw/이다.[9] '백(白)'을 이두로 'ᄉᆞᆲ(東)'이라 하였다. '아침(朝)'과 '새(東)'의 의미 관계는 지극히 밀접하다. 그래서 '東'의 고유어를 '白'의 훈음 'ᄉᆞᆲ'으로 적은 것이다. - 도수희, 벌나(平那平壤)와 아사달(阿斯達九月山)에 대하여, 인문언어 19, 2017.[10] 고구려의 첫 도읍이기도 하다. 환런(桓仁)이라는 지명 때문에 환인이 연상되긴 하지만 이 지명은 최근에 붙은 지명이다.[11] 이 주장을 펼친 이 중 대표적인 사람은 이병도인데, '아사'는 현대 한국어의 '아침'이며 '달'은 현대 한국어의 '땅'이나 '들' 또는 '산'을 의미하며, 고대 한국어에서는 지명에 붙이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라서 이 가설에 따르면 '아사달'이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이다. 또한 《시경》의 주석에 따르면, '鮮'은 상고한어에서 '산'(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조선(朝鮮)'이라는 국호가 '아사달'의 뜻과 일맥상통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다.[주(註)] 산을 선이라 한다(小山曰鮮)[13] 출처는 《계림유사》(1103)[14] 물론 이때 고려 시대의 한자는 현대와 발음이 다르니 실제로 '아참'으로 발음난 것은 아니다. 중고한어의 발음을 보면 'atshomX이라고 발음났을 확률이 높다(Baxter-Sagart 중고한어 재구안 기준). 참고로 조선 시대 초에 만든 동국정운에서는 이 발음을 'ᅙᅡᆼ참〯'이라고 표기했다.[15] 물론 현대 한국어에서 ㅊ(tɕʰ)은 ㅅ 뒤에 ㅑ, ㅕ, ㅛ, ㅠ, ㅣ, ㅒ, ㅖ, ㅟ가 붙어 ㅅ이 (ɕ)로 발음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음점이 다르다. 'ㅊ' 음가와 'ㅅ' 음가 사이에 조음점과 조음 방법이 비슷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대 한국어에서나 성립하는 가설이다.[16] Baxter-Sagart의 재구안 기준으로 阿斯의 발음을 보면, 상고한어 발음대로 재구하면 ʔˤase라고 재구가 되고, 중고한어 발음대로 재구하면 'asje라고 재구가 된다. 이를 통해 고대 국어의 '아사' 비슷한 표현이라는 것이 'ᅙᅡᄉᆞ'[17] 조선시대 초에 만든 동국정운에서는 阿斯를 'ᅙᅡᆼᄉᆞᆼ'이라고 표기한 것이 출처이다.[18] 이병선, 《한국고대국명지명의 어원 연구》, 이화문화사, 2012.[19] 한편 이병선(2012)은 아적/아침의 고대어가 '아사'인데 동의하면서도 '아사달'의 '아사'는 '母', '大'의 뜻을 가진 '엇/어ᅀᅵ'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母城郡/也次忽', '於斯內縣/廣平縣', '於斯買/橫川縣' 등이 동계어라는 주장이다.[20] 阿斯達의 原語는 '앗달', 그 原義는 '子山·小山'의 뜻이다. '子·弟·小'의 古語가 '앚·아ᇫ·앛' 등. 우선 '阿斯'系의 地名은 左의 허다한 類例가 있다. 阿斯津草串, 在郡東西十里, 阿斯津桃串, 在郡 東二十里.<世宗實錄地理志 安岳> / 驛一, 達孝, 古名阿叱達.<世宗實錄地理志 平海> / 淸河縣, 本高句麗阿子縣, 新羅改名阿海<世宗實錄地理志 淸海> / 智證王十五年春正月, 置小京於阿尸村<三國史卷四 羅紀四> 上例에서도 ‘阿斯․阿尸․阿叱․阿子'(앗·앚) 등이 모두 '子·小'의 뜻임을 알 수 있거니와[21] 일찍이 劉昌惇(1954. PP.77~99)에서는 '아이'(幼兒)의 어원을 가시/갓(始․初)에서 찾은 바 있다. 이 견해는 '아시>앗'을 어원으로 보는 여타의 그것보다 훨씬 기원적인 고찰이라 여겨진다. 어두 'ㄱ' 의 유지형인 '가시'와 'ㄱ' 탈락형의 '아시'는 의미상으로 볼 때 전자는 本意인 始·初에 충실한 반면, 후자는 小, 幼, 弟, 次 등과 같은 부차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호인 朝鮮의 본 이름인 '아시달'(阿斯達)의 의미를 적은 산(小山, 子山), 또는 버금산(次山)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그런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22] '窮'는 '작다', '좁다', '얕다'의 뜻이 있음[23] '아>平'의 대응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권37 지리4 <三國有名未詳地分-支潯州九縣>의 "平夷縣本知留"라는 내용이 있어 '知>平'의 대응이 확인된다. '知'의 語幹이 '알다'이므로 '아>平'의 대응이 가능하고 '知留(아리)>平夷(아리)', 곧 ‘아ㅅㄷ.ㄹ>平珍'의 假說을 성립시킬 수 있다[24] 정인보의 '歌>長>아' 論과, 만주어의 '長醒了(ㅈ.ㅁ업다)>아무 수러커' 등으로 '長>아'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25] 고조선 국명 및 지명에 대한 語源的 考察, 박광해[26] 아침의 어원을 '앛'+'ㅁ'으로 보는데 '앛'은 '작다', '적다', '이르다', '시작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므로 '아사'와 '朝'의 연관성이 설명된다. 또한 '鮮'은 상술했듯이 '작은 산'을 뜻하는 한자로 쓰였다.[27] 높다, 낮다, 너르다, 좁다, 크다, 작다 등[28] 산, 강, 벌, 들, 섬 등[29] 지점이나 지역의 명칭인 지명은 '속성 표시부+유형 표시부'로 구성된다. '유형 표시부'는 지형의 유형을 나타내는 것이고, '속성 표시부'는 지형 유형의 특정적인 속성을 타나낸다.(富川 지명의 체계적 신해독, 이건식)[30] 이병선, tara(城)語와 多羅地名에 대하여 - KBS 歷史스페셜의 玉田古墳의 多羅里를 중심으로 -, 지명학 5, 2001[31] 천소영, 고대국어의 어휘연구,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1990.
(…전략) 그리하여 (단군은)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沃沮), 동북 부여(夫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었다.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阿斯達) 산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으니, 〈이는 단군이〉 죽지 않은 까닭이다.\[7] '구(九)'는 '아호~아구~아사'의 훈음이며 '달(月)'은 고대한국어 '산(山)'으로 한역이 가능하다. '궁홀(弓忽)'은 'ᄀᆞᆷ'과 비슷한 음으로 '신(神)'에 대한 고유어인데,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 도수희, 벌나(平那平壤)와 아사달(阿斯達九月山)에 대하여, 인문언어 19, 2017.[8] 계림유사에 '구(九)'는 '鴉好(아호)'로 표기되어 있는데, 벡스터-사가 재구에 따르면 '好'의 중고 한음은 /*xaw/이다.[9] '백(白)'을 이두로 'ᄉᆞᆲ(東)'이라 하였다. '아침(朝)'과 '새(東)'의 의미 관계는 지극히 밀접하다. 그래서 '東'의 고유어를 '白'의 훈음 'ᄉᆞᆲ'으로 적은 것이다. - 도수희, 벌나(平那平壤)와 아사달(阿斯達九月山)에 대하여, 인문언어 19, 2017.[10] 고구려의 첫 도읍이기도 하다. 환런(桓仁)이라는 지명 때문에 환인이 연상되긴 하지만 이 지명은 최근에 붙은 지명이다.[11] 이 주장을 펼친 이 중 대표적인 사람은 이병도인데, '아사'는 현대 한국어의 '아침'이며 '달'은 현대 한국어의 '땅'이나 '들' 또는 '산'을 의미하며, 고대 한국어에서는 지명에 붙이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라서 이 가설에 따르면 '아사달'이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이다. 또한 《시경》의 주석에 따르면, '鮮'은 상고한어에서 '산'(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조선(朝鮮)'이라는 국호가 '아사달'의 뜻과 일맥상통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다.[주(註)] 산을 선이라 한다(小山曰鮮)[13] 출처는 《계림유사》(1103)[14] 물론 이때 고려 시대의 한자는 현대와 발음이 다르니 실제로 '아참'으로 발음난 것은 아니다. 중고한어의 발음을 보면 'atshomX이라고 발음났을 확률이 높다(Baxter-Sagart 중고한어 재구안 기준). 참고로 조선 시대 초에 만든 동국정운에서는 이 발음을 'ᅙᅡᆼ참〯'이라고 표기했다.[15] 물론 현대 한국어에서 ㅊ(tɕʰ)은 ㅅ 뒤에 ㅑ, ㅕ, ㅛ, ㅠ, ㅣ, ㅒ, ㅖ, ㅟ가 붙어 ㅅ이 (ɕ)로 발음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음점이 다르다. 'ㅊ' 음가와 'ㅅ' 음가 사이에 조음점과 조음 방법이 비슷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대 한국어에서나 성립하는 가설이다.[16] Baxter-Sagart의 재구안 기준으로 阿斯의 발음을 보면, 상고한어 발음대로 재구하면 ʔˤase라고 재구가 되고, 중고한어 발음대로 재구하면 'asje라고 재구가 된다. 이를 통해 고대 국어의 '아사' 비슷한 표현이라는 것이 'ᅙᅡᄉᆞ'[17] 조선시대 초에 만든 동국정운에서는 阿斯를 'ᅙᅡᆼᄉᆞᆼ'이라고 표기한 것이 출처이다.[18] 이병선, 《한국고대국명지명의 어원 연구》, 이화문화사, 2012.[19] 한편 이병선(2012)은 아적/아침의 고대어가 '아사'인데 동의하면서도 '아사달'의 '아사'는 '母', '大'의 뜻을 가진 '엇/어ᅀᅵ'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母城郡/也次忽', '於斯內縣/廣平縣', '於斯買/橫川縣' 등이 동계어라는 주장이다.[20] 阿斯達의 原語는 '앗달', 그 原義는 '子山·小山'의 뜻이다. '子·弟·小'의 古語가 '앚·아ᇫ·앛' 등. 우선 '阿斯'系의 地名은 左의 허다한 類例가 있다. 阿斯津草串, 在郡東西十里, 阿斯津桃串, 在郡 東二十里.<世宗實錄地理志 安岳> / 驛一, 達孝, 古名阿叱達.<世宗實錄地理志 平海> / 淸河縣, 本高句麗阿子縣, 新羅改名阿海<世宗實錄地理志 淸海> / 智證王十五年春正月, 置小京於阿尸村<三國史卷四 羅紀四> 上例에서도 ‘阿斯․阿尸․阿叱․阿子'(앗·앚) 등이 모두 '子·小'의 뜻임을 알 수 있거니와[21] 일찍이 劉昌惇(1954. PP.77~99)에서는 '아이'(幼兒)의 어원을 가시/갓(始․初)에서 찾은 바 있다. 이 견해는 '아시>앗'을 어원으로 보는 여타의 그것보다 훨씬 기원적인 고찰이라 여겨진다. 어두 'ㄱ' 의 유지형인 '가시'와 'ㄱ' 탈락형의 '아시'는 의미상으로 볼 때 전자는 本意인 始·初에 충실한 반면, 후자는 小, 幼, 弟, 次 등과 같은 부차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호인 朝鮮의 본 이름인 '아시달'(阿斯達)의 의미를 적은 산(小山, 子山), 또는 버금산(次山)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그런데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22] '窮'는 '작다', '좁다', '얕다'의 뜻이 있음[23] '아>平'의 대응과 관련하여 삼국사기 권37 지리4 <三國有名未詳地分-支潯州九縣>의 "平夷縣本知留"라는 내용이 있어 '知>平'의 대응이 확인된다. '知'의 語幹이 '알다'이므로 '아>平'의 대응이 가능하고 '知留(아리)>平夷(아리)', 곧 ‘아ㅅㄷ.ㄹ>平珍'의 假說을 성립시킬 수 있다[24] 정인보의 '歌>長>아' 論과, 만주어의 '長醒了(ㅈ.ㅁ업다)>아무 수러커' 등으로 '長>아'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25] 고조선 국명 및 지명에 대한 語源的 考察, 박광해[26] 아침의 어원을 '앛'+'ㅁ'으로 보는데 '앛'은 '작다', '적다', '이르다', '시작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므로 '아사'와 '朝'의 연관성이 설명된다. 또한 '鮮'은 상술했듯이 '작은 산'을 뜻하는 한자로 쓰였다.[27] 높다, 낮다, 너르다, 좁다, 크다, 작다 등[28] 산, 강, 벌, 들, 섬 등[29] 지점이나 지역의 명칭인 지명은 '속성 표시부+유형 표시부'로 구성된다. '유형 표시부'는 지형의 유형을 나타내는 것이고, '속성 표시부'는 지형 유형의 특정적인 속성을 타나낸다.(富川 지명의 체계적 신해독, 이건식)[30] 이병선, tara(城)語와 多羅地名에 대하여 - KBS 歷史스페셜의 玉田古墳의 多羅里를 중심으로 -, 지명학 5, 2001[31] 천소영, 고대국어의 어휘연구,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