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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4:02:51

스페이스 인베이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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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50대 비디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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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미국 주간지 타임역대 최고의 비디오 게임 50개를 선정했고 하단은 선정된 비디오 게임들이다. 출처
4위
11위
문명 4
14위
퀘이크
20위
Zork
28위
동키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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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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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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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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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01 videogame.jpg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비디오 게임 1001|'''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비디오 게임]]

1978년 발매'''


파일:attachment/spaceinv.png
파일:attachment/스페이스 인베이더/썅.png
아케이드판[1] 패미컴
파일:external/mrdo.mameworld.info/invaders0001.png
파일:4bvt02.png
오른쪽은 100여 종에 달하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클론 중에서 가장 성공한 스페이스 워(1979 Sanritsu). 하지만 저작권의 문제로...

1. 소개2. 개발3. 상세
3.1. 대한민국의 경우
4. 캐릭터들5. 이후6. 현실에서의 인베이더7. 시리즈 일람8. 스페이스 인베이더 3장 기판을 사용한 게임들9.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아류 게임/불법복제 기판10. 패러디11. 관련 문서

1. 소개


타이토에서 제작해 1978년 6월 16일에 발표하고 8월 중순에 정식으로 발매한, 외계인이 적으로 등장하는 첫 번째 게임이자 원시적인 형태로 아주 간단한 초기 아케이드 슈팅 게임. 인베이더들은 각각 문어, , 오징어들인데, 사실상 해산물 슈팅게임 다라이어스 시리즈의 원조다.

2018년 6월 16일, 발표 40주년을 맞이했다. 타이토 공식 발표로는 36만 대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오락실용 기계를 판매했다고 하나, 여기에 전세계에서 제작된 클론이나, 이 기판을 이용한 게임을 포함하여 130만대 이상 팔렸다고 추측이 된다. 기판만의 판매로는 전세계 부동의 1위이며, 2위는 남코팩맨으로, 시리즈 포함하여 50만대, 3위는 1991~1993년 발매작인 캡콤스트리트 파이터 2 시리즈인데, 이쪽은 기판 판매로 20~30만대 정도에 불과하다.

2007년자 더 타임즈가 선정한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비디오 게임 TOP 10 중 1위를 차지하였다.[2] #

당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인베이더”(“스페이스”는 빼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엔 누구도 이 게임을 인베이더라 부르지 않으며 반드시 스페이스 인베이더라 부른다. 오늘날 이 게임을 인베이더라 부른다면 당시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즐겨 했던 장년 게이머일 가능성이 높다.

2. 개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개발자는 '니시카도 토모히로(西角友宏, 1944.3.31.~)'.[3] 1969년에 타이토의 자회사인 퍼시픽 공업에 입사하여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그는 1972년에 미국아타리가 발매한 을 보고 충격에 빠져 비디오 게임의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니시카도는 나중에 '축구', '스피스', '웨스턴 건' 등을 개발했으며,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그가 입사한 지 9년차인 34세 무렵의 작품이다.

개발 과정에서 보다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게임은 아타리의 또 다른 게임인 브레이크아웃으로 공 튀기기라는 플레이 방식을 약간의 변주를 주어 슈팅 게임으로 탈바꿈시킨 게 스페이스 인베이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밖에 게임의 배경을 우주로 선택한 것은 개발자 본인이 인상깊게 보았던 우주전함 야마토스타워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게임 속 외계인의 생김새는 소설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 속 외계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4]

정작 개발 당시에 개발사인 타이토 내부에서는 전혀 기대되지 않는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신제품 발표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에게 혹평을 들었다고 했는데, 이유는 "상대가 공격을 해 오는 것"이기 때문. 상대가 공격을 해 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금방 죽을 수도 있으므로 사람들이 이런 어려운 게임에 불평하고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개발자인 니시카도는 업계 관계자들이 악평을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작 회사 내 젊은 사람들의 평가는 아주 좋았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테스트를 좀 해 달라고 하면 모두 게임에만 푹 빠져서 열중했기 때문. 결국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전무후무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러한 가장 큰 이유는 업계 관계자들이 혹평한 '긴장감' 때문이다. 정작 게임업계 사람들은 기존의 것을 고수했지만,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거부감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적이 공격을 해 온다는 설정이 즐거운 긴장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5]

기판은 인텔 8080 CPU를 썼다. 정식 명칭은 '타이토 8080 하드웨어'이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유명해졌기에 흔히 '스페이스 인베이더 3장 기판'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스페이스 인베이더 파트 2 아케이드 버전에 표시되는 글꼴아타리의 라일 레인스가 1976년에 스프린트 2를 개발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의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들이 많이 써 먹었고, 1978년 개발된 남코 글꼴보다도 2년 앞섰다.

이 게임의 큰 성공은 금방 독이 되어 돌아와서, 파트 2마저도 생명 주기가 끝나고 남은 것은 산더미 같은 게임기의 재고 뿐이었고, 타이토는 이 남은 기판을 활용할 신작 개발을 니시카도에게 지시하게 됐다.[6] 한편 독자적으로 자일로그의 Z80 CPU를 이용한 스프라이트 개념의 기판을 연구설계[7] 하며 거의 완성하고 있던 니시카도는 이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고, 구세대 기판을 가지고 억지로 게임을 만들고 있을 즈음에 남코에서 갤럭시안이 나오고 팩맨이 나오게 됐다. 타이토의 명운은 사실상 여기서 끝났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설상가상으로 니시카도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면서 게임 개발에서 멀어졌다.[8] 애사심 때문에 스카웃 제의까지 마다한 니시카도이지만 결국 정년을 맞이하여 퇴직하고 독립하여 개인 사업체를 설립하였으며, 다시 타이토에 돌아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外1 外2 인터뷰 제4회 전반부분

3. 상세

화면 아래에는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대공포[9]와 방어벽이 있으며(방어벽은 공격을 맞으면 조금씩 파괴된다), 대공포를 좌우로 움직이며 총알을 쏘아 위에서 내려오는 외계인들을 모두 물리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임이다.

단, 외계인이 한 마리라도 맨 아랫줄로 내려오면 플레이어의 기체가 많이 있어도 플레이어 대공포가 파괴되는 연출과 함께 무조건 게임 오버가 된다.[10] 그리고 외계인의 수가 줄어들 수록 빨라져 마지막 1마리만 남으면 사기적인 스피드를 자랑한다. 이는 인텔 8080의 처리 성능 문제로 느려진 것이며, 외계인을 처리해 점점 처리해야 할 스프라이트 수가 줄어 움직임이 빨라진 것이다. 이런 점이 오히려 게임 유저들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해 일부러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가끔 적들 뒤로 화면 맨 윗쪽에 비행 접시가 지나가는데, 이 때 총알로 비행 접시를 맞추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외계인이 발사하는 적탄은 바로 아래가 아닌 조금 아래에서 발사된다. 그 때문에 아래에서 2번째 줄에 외계인이 당도했을 경우 플레이어 기체는 완전 무적이 된다. 외계인과 적탄의 탄 발사 지점사이의 간격이 플레이어 기체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공간이기 때문.[11] 이렇게 아래부터 두번째 줄에 외계인을 유도하고 잡는 샷 테크닉을 나고야 지역 게이머가 발견했기에 보통은 '나고야 쏘기'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미끼잡이'라는 속칭으로 알려진 듯. 타이토 공식 유튜브에서 시연 영상도 있으니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직접 보자. 이는 SPACE INVADERS INFINITY GENE에서 NAGOYA ATTACK이라는 시스템으로 변형되었다.[12] 외계인이 나고야 어택에 들어갈 때 추가 점수 배율이 크게 오르지만 체인 보너스는 없다. 나고야 어택 1000회 달성 트로피.

이 밖에도 레인보우라면서 특정한 방법으로 쏘면 마지막 1기가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데, (타이토 공식에서의 재연영상) 이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익스트림에서 경우에 따라 마지막 남은 적이 잔상을 남기며 빨리 움직이는 식으로 재구현되기도 하였다.

이 게임은 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하이스코어만으로 랭킹이 기록되는 게임이다. 단 이부분이 게임 역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데 세계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공략하여 스코어를 경쟁하고 남기는 게임의 시초가 바로 이 스페이스 인베이더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전의 게임에도 스코어는 존재했다[13] 단, 스코어란 현실의 스포츠처럼 말그대로 승리할때마다 1점, 2점으로 점수를 매기며 상대방과 경쟁을 했었는데 스페이스 인베이더부터 UFO등의 공략요소를 가지고 이전에 플레이한 아케이드 머신에 남아있는 상대방의 스코어보다 높은 스코어를 노려서 경쟁을 하는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77년과 78년의 단 1년사이에 스코어 보드 개념이 완전히 바뀐다. 아타리의 77년대까지만 해도 점수는 개당 1점 혹은 10점,100점으로 과거 일렉트로 메카 게임의 점수판을 화면에 표시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요점은 과녁을 몇번 맞추었는가. 혹은 누가 몇골을 넣었는가의 카운트 게임이었다. 하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등장이후 게임을 잘할수있게 연습을 하는것에 그치지않고 공략해서 스코어링을 한다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고[14] 이것이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게임 역사를 논할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유중 하나이다.[15] 더블어 화면 정중앙선의 상단부에 스코어가 온다는 개념 역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구축했다. [16]

한때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게 어느 정도이냐면...

파일:invader_cafe.jpg
타이토는 1979년도 신고 소득액(수입에서 필요경비를 제한 금액)이 302억엔까지 올랐는데 1978년도 90억엔에서 약 3배 이상 뛴 수준이었다. 이 덕분에 타업종을 포함한 일본기업 종합 순위 5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상술한 재고처리 등의 문제로 1981년에는 5억엔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도 했다. 참고로 80년도에 착실히 성장한 닌텐도가 1986년도에 434억엔으로 이 기록을 따라잡았지만 일본기업 종합 순위는 65위에 머물렀다.

이 게임이 나온 당시에는 오락실 기계 모니터가 컬러가 아닌 흑백이라서 화면에다 잘라낸 색 셀로판지를 붙여 컬러 효과를 냈다고 하며, 나중에 발매된 PSP용 콜렉션 게임에서도 그 버전 게임도 충실하게 재현했다.

미드웨이에서 만든 <스페이스 인베이더 M>도 있는데, 흰색 업라이트 케이스가 특징이며, 일본에서 역수입한 것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 쓰인 타이토 8080 하드웨어는 하나의 하드웨어에 다양한 게임을 내놓고자 데이브 너팅(Dave Nutting, 1930. 12. 26.~2020. 9. 23.)이 1975년에 설계한 미드웨이 8080 하드웨어를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타이토는 화해의 조건으로 미드웨이에 북미 및 일부 유럽 지방의 유통 라이선스를 내줬다.

초창기에는 속도별로 인베이더, 킹투, 고속 에이전트의 3가지 게임이 있었다. 인베이더의 속도가 가장 늦었고, 특징으로 스페셜 스테이지가 가끔 나왔다. 일정 높이까지 내려오면 더 이상 내려 오지 않는 스테이지인데, 물론 정해진 시간이 있고 시간 안에 스테이지를 끝내면 보너스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고속 에이전트의 경우 속도가 빨라 진지 뒤에 숨어 있다가 재빨리 진지 밖으로 나와 총알을 쏘고 다시 적의 총알을 피해 진지 뒤로 숨는 당시로서는 나름의 고난도 스킬이 필요했다.

'킹투'는 코나미스페이스 킹 2, '고속 에이전트'는 칸사이 기업의 ‘스파크 인베이더’, ‘맨 파이라’를 의미한다.

킹투는 점수가 4000점이 되는 순간부터 인베이더가 쏘는 적탄의 탄속이 2배로 증가하여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고속 에이전트는 인베이더의 움직이는 속도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2.5배 빠르게 움직이고, 미끼잡이 공격이 통하지 않기에 난이도는 최상급이다.

3.1. 대한민국의 경우

1978년 10월, 육영재단이 운영하는 어린이 회관에 타이토 순정품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설치되면서 시작이 되었다.[19] 이 게임의 붐이 불 때, 초창기의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순정품 게임기가 상당히 많은 수량이 들어왔는데, 당시 판매가는 대당 130만 원. 원칙적으로는 수입 금지였으나, 고위층 또는 세관에 뇌물을 주고 암암리에 수입이 되었다. 당시의 원:엔 환율이 2.5:1이라도 당시의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값이나, 붐을 이룰 때는 2달이면 기판 값과 전기 요금, 자릿세를 빼고도 상당한 수익이 남았다고 한다. 당시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은 오락실이 보통 게임이 20~50원일 때, 유일하게 100원이라는 비싼 요금을 자랑했어도, 크레디트 수가 20을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기다리는 동안에 다른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도 많았다. 워낙 인기를 끌어 전자 오락실 업주들의 수요를 감당 못하자, 복사를 해서 팔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오리지널 기체는 앞면과 좌우면에 그림이 있으나, 복사판은 좌우면은 그림을 생략하여 빨간색 또는 녹색의 체크 무늬로 바꾸고, 앞면의 베젤에는 인베이더 대신 스타워즈다스 베이더를 그려 넣기도 하였다.

위 영향 때문에 한국의 신문사 광고로도 나왔는데, 당시의 판매사 측이 일본에서 인베이더 오락기로 월 60만 엔 선의 고수익을 낸다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면서 인베이더 오락기를 판매했다(#).

수많은 무허가 오락실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갤러그가 출시되고 1982년에 전대미문의 인기를 끌면서[20] 그 뒤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서서히 잊어졌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기를 끈 게임이라는 의의가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인기를 끌던 전성기에는 오락실 창업 열풍으로 무허가 오락실들이 급증해 1979년 여름에 청소년들이 오락실에서 돈을 탕진하고 탈선의 온상이 된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정도이다. 1980년에 서울 기준으로 무허가 오락실의 수(1000개소 이상)가 정식으로 허가받아 영업 중인 오락실 수(43개소)의 20배 이상에 닿을 정도가 되면서 신문에는 날마다 전자 오락을 비난하는 칼럼이 올랐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결국 정부에서 무허가 오락실들을 단속했지만 그럼에도 날로 번성하면서 당국을 제대로 따돌렸다. 결국 1983년에 정부에서 이들 무허가 오락실을 정식으로 허가하면서 제도권으로 끌어오게 되었다. # # # 여튼 대한민국에서도 오락실 붐의 시초를 화려하게 장식한 게임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와 더불어 당시 기성 세대들에게 게임을 부정적으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4. 캐릭터들

파일:external/cdn.wikimg.net/Space_Invaders_cannon.png 파일:external/cdn.wikimg.net/Space_Invaders_large.png 파일:external/cdn.wikimg.net/Space_Invaders_medium.png 파일:external/cdn.wikimg.net/Space_Invaders_small.png 파일:external/cdn.wikimg.net/Space_Invaders_saucer.png
대공포(플레이어) 옥토퍼스 (문어)
10점
크랩 (게)
20점
스퀴드 (오징어)
30점
UFO[21]
50~300점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니시카도 토모히로가 프로그래밍과 캐릭터 디자인까지 사실상 전부 혼자 한 게임인데, 니시카도는 어릴 적 허버트 조지 웰즈우주전쟁(소설)의 팬이었으며 그가 상상한 외계인 침략자는 웰즈의 화성인과 같이 문어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었다.
때문에 니시카도가 가장 먼저 만든 캐릭터 스프라이트는 문어(“타코”) 인베이더였으며, 이어서 오징어(“이카”)와 (“카니”) 인베이더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얼굴 마담은 카니(크랩) 인베이더인데, 이는 타코와 이카는 움직일 때 스프라이트의 변화가 다리 뿐으로 단조롭지만 카니 인베이더는 집게발에 해당하는 부분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동하기 때문에 개성적이라 가장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라 한다.

인베이더들의 외모와 점수는 다르지만 행동 패턴은 똑같다. 상술했듯이 크랩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관련 소재 사이에서 맨 앞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지금도 크랩은 타이토사가 운영하는 게임 센터(타이토 스테이션) 과 게임(그루브 코스터 아케이드)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시끌별 녀석들 여주, 라무는 일본의 오니+20점 크랩 인베이더가 모티브로 쓰였다.
다만, 이 게임의 제목을 고치는 장면에는 스퀴드가 쓰였다.

버블보블에서도 이 인베이더, 크랩의 모양에 머리는 스퀴드처럼 튀어나온 약간 섞인 형태의 몬스터로 등장한다. 스테이지 60부터 등장하며, 일정 시간대에 레이저를 아래로 발사하는 등 원작에 충실한 캐릭터. 단, 지상 이동 몬스터 가운데 유일하게 점프를 할 수 없고, 진 엔딩을 볼 수 있는 슈퍼 모드에선 나오지 않는다. 단, 버블 메모리즈에서는 노말 모드건 슈퍼 모드건 모두 등장하며, 몇몇 스테이지 클리어 시 클리어 아이템으로 나온다.

5. 이후

공식적으로 가정용으로 이식된 게임기는 아타리 2600아타리 5200, SG-1000 그리고 패미컴, 슈퍼 패미컴 뿐이다. 아타리가 북미 가정용 시장의 독점권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22]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1980년 아타리 2600의 독점 이식으로 지지부진했던 판매량이 4배나 증가했고, 200만장 이상 판매했다. 최초의 아타리 2600 밀리언 셀러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역시 일본에서만 발매된 게임기인 세가 SG-1000으로도 세가에서 이식했는데, 의외로 이쪽은 화면이 흑백이 아닌 컬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원작의 재현도가 꽤나 높은 편.

여러 기업에서 인기에 편승해 무허가로 복제판 및 변종 버전들을 제작도 했다. 세가, 반프레스토 닌텐도 같은 기업에서 제작한 첫번째 오리지널 게임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변종 버전이다. 닌텐도에서 동키콩을 내놓게 된 계기 또한 이 게임이었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에도 수록 되었을 정도. 한컴타자연습의 전신인 도스용 한/글타자에서 '침략자'라는 제목의 게임이 여기에서 착안하였다. 세운상가에서도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걸쳐 복제 기판이 활발하게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게임의 인기는 남코에서 나중에 갤럭시안갤러그라는 명작 슈팅 게임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정통 후속편으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파트 2, 리턴 오브 디 인베이더, 마제스틱 트웰브, 아칸베다가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DX 같은 복각판도 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에서는 오리지널의 현역 기종 이식인 Space Invaders for NESiCAxLive가 NESiCAxLive 플랫폼으로써 절찬리 서비스되기도하는 명실상부 현역 오락실 게임이기도 하다. 2018년 본작이 40주년을 맞았고, 타이토에서는 이에 별도의 특집 홈페이지를 개설, 기념품, 관련 굿즈 판매 및 이벤트(물론 일본 한정) 안내를 하고 있다.

유니코드 6.0에 U+1F47E로 추가되었다. 정식 이름은 ALIEN MONSTER지만 대부분의 기기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적 캐릭터로 렌더링된다.[23]

6. 현실에서의 인베이더

파일:attachment/sinvader.jpg
유명한 게임답게 그래픽과 사운드의 대중성이 높아서 인베이더 아티스트라는 한 예술가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건물벽에 알록달록한 타일로 인베이더 그림을 만들어 붙이고 사라지곤 한다.[24] [25] 타일을 작업실에서 만든 다음에 가져와서 붙이기만 하는 식이라 주로 야간에 스피디하게 작업해서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며, 영국이나 프랑스, 홍콩에서 전시회도 열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스노우캣의 여행기로 많이 알려진 듯. 건물에 붙인 타일과 같은 패턴 & 색상의 모자이크는 건물에 하나, 작가 본인의 아카이빙 도록에 하나, 딱 두점 작업한다고 한다. 덕분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데, 수억원대로 굉장히 비싸다(..).

인베이더를 메인으로 고전게임 등 전반을 소재로 삼는듯 하며 의외로 고풍스러운 건물에도 잘 어울린다. 철거될거 같지 않는 건물이라든가 의외로 눈에 잘 띄는 곳이라든가 나름대로 위치 선정에 기준이 있는 듯. 1 2
파리가 근거지 아니냐는 말이 나올정도로 파리에 특히 많으며[26] 국내에서도 발견되었다.
인베이더 아티스트의 홈페이지 #
세계지도에 그가 작품을 남긴 나라는 표시를 해놨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 정ㅋ벅ㅋ할 수 있겠다. 한국에도 마크가 있다.
게다가 이 사람 ISS에도 남기고 왔다. 인증 샷도 있다.

하지만 2009년 9월에 홈페이지 대문이 업데이트 되었다. 바로 대전 시립 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전에 초청받아 설치한 것이라 하며 전시 종료후 철거 논란이 잠깐 있었으나 결국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영구 보존쪽으로 간듯 하다.

유명 DJ deadmau5도 자신의 목에 초록색 크랩의 문신을 새겼다. 지금 기준으로 약 13년 정도 된 오래된 문신이라고 한다.


2015년 12월 2일 기준으로 지도 업데이트가 되었다.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의 초반에 티에리 구에타의 친척으로 나온다. 현제 BTV는 무료이기에 시청해볼것을 권한다.[27]

파일:external/www.moon-age.com/toct25124.jpg
음악 쪽에서는 2004년에 25주년을 기념하여 켄 이시이, 토와 테이, United Future Organization, Mijk Van Dijk 등 슈퍼스타급 DJ들이 인베이더 게임에 실제로 사용된 사운드를 샘플링한 흥미로운 음악들이 실린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싱글 커트 된 켄 이시이의 Space Invaders 2003.
켄 이시이의 장기인 하이햇 배치와 귀여우면서도 슬픈 인생의 압축판[28] 같은 영상이 일품.


2008년 12월 3일에 30주년 앨범도 발매되었다. 일본 댄스음악 레이블의 최고봉인 에이벡스에서 발매. 위의 25주년 앨범에서 큰 인기를 끌던 곡 몇개와 전작에 못지 않는 유명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의 신곡들이 추가되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든 트랙을 샘플로 45초 동안 들을 수 있다.

심슨 가족윌리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하다가 양손 검지 손가락에 심각한 관절염에 얻어서 권총 방아쇠를 당길수 없다고 했다. 다음 장면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실제 상황이 아닌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받는다.
건물 단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한 사람도 있다.[29]
미국 드라마 스크럽스에서는 J.D.터크가 이를 현실에서 재현하는 기행을 보여준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가 있다.
패러디 영상도 있다. 변집동화 9편으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기반으로 역대 고전명작 슈팅게임의 주인공 기체들이 대거 등장한다. 등장 순서는 갤럭시안, 갤러그, 제비우스, 스타포스, 스타 솔저. 탄막은 도돈파치의 것들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동방 프로젝트의 탄막도 나온다. 필살 아이콘은 패미컴 초대 봄버맨의 것을 사용.

2019년에 워너 브라더스 & 뉴 라인 시네마 영화화 제작 진행 중이라 발표했다.#

보드 게임화 되었다. 2017년에 주사위 게임으로 구현했고# 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 40주년 기념으로 한정판 보드 게임이 나왔다.#(닌텐도 스위치판 인빈시블 콜렉션에 동봉된 스페이스 인베이더 보드 게임과는 다른 물건이다.#)

2021년에는 원판의 느낌을 살린 스페이스 인베이더 보드 게임이 미국에서 발매되었다. 이쪽은 동적인 게임을 위해 플레이어의 샷을 투석기 형태로 구현했고 한칸만 내려오던 외계인들은 각각의 이동거리를 지니고 체력 개념이 생겨서 한방에 죽지 않는 등 플레이어를 시시각각 압박해온다. ProZD리뷰

7. 시리즈 일람

여기를 참조하는 것도 좋다.이외에도 타이토의 노래방반주기 X-55에 미니게임으로도 수록되었다는 듯.

7.1. 알카노이드 VS 인베이더

알카노이드 VS 인베이더 문서 참조.

8. 스페이스 인베이더 3장 기판을 사용한 게임들

이 곳을 참고

9.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아류 게임/불법복제 기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pace_Fever_Game-A.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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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을 보면 1980~1990년대는 잘 나가던 게임 메이커들도 처음에는 짝퉁이나 만들던 시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0. 패러디

11. 관련 문서

스페이스 인베이더/리듬 게임 수록: GROOVE COASTER에 시리즈의 음악이 몇 가지 수록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 셀로판지를 붙여 컬러 효과를 낸 것을 재현한 것이다.[2] 여러모로 후대의 게임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심각한 흥행 부진으로 망해가고 있던 아타리 2600에 이식되어 아타리를 기사회생시킨 것은 물론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산업에 투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게임이기도 하다. 이 게임과 닌텐도가 후의 비디오 게임 업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이 게임이 없었다면 게임판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다.[3]타이토 어뮤즈먼트 개발 고문.[4] 원래는 인간을 쏘는 것으로 하였지만 너무 잔인하다고 하여서 변경하였다고 한다.[5] 이렇듯 관계자들로부터는 혹평을 받지만 정작 출시돼서 흥행을 하는 게임들은 특히 초기에 상당히 많았다. 기존의 다른 매체(영화만화 같은)들의 특성을 게임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다 생긴 오판들과 그리고 이런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누적되다 폭발한 것이 그 유명한 아타리 쇼크이다.[6] 남은 기판을 활용하여 제작한 게임이 루나 레스큐, 벌룬 봄버 등이 있다.[7] 타이토는 남코와 달리 아타리와 제휴관계가 없었다.[8] 일부 가정용 게임의 스태프롤에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Executive producer)로 기재되어 있다.[9] 버블 심포니를 비롯해 타이토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식 명칭이 'Cannon'이므로 대공포(對空砲)가 맞다.[10] 다만, 아칸베다에서는 적이 아랫줄으로 내려오더라도 바로 게임 오버되지는 않으며, 잔기를 한 개 잃고 스테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익스트림도 잔기 하나 줄고 해당 스테이지를 다시 진행한다.[11] 슈퍼로봇대전으로 치면 사정거리 2부터 시작하는 무기로, 스타크래프트 공성 전차의 공성 모드로 생각하면 된다.[12] 정확히는 탄 자체가 외계인에게서 발사되지만, 발사된 직후부터 일정 시간에 흐릿하게 표시되어 그 동안은 피격 판정이 발생하지 않는다.[13] 아케이드 게임의 시조인 스페이스 워부터 스코어라는 개념은 존재하며 이는 비디오 게임의 전신인 일렉트로 메카의 스코어 판에 유래한다[14]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적의 종류와 파괴 순서에 따라 스코어가 변동하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다[15]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미국의 미드웨이사가 퍼블리셔하여 일본 발매이후 빠르게 미국에도 판매되었다. 애초 타이토가 퐁을 보고 해외에 팔리는 게임을 목표로 만들어서 미국의 판매 개척을 해놓은 영향이 컷다[16] 이전까지만 해도 각 플레이어의 화면 위에 하나씩, 혹은 왼쪽 상단부에 위치해있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1년후에는 아타리의 게임들도 모두 정중앙 상단이 기본위치로 이동했다. 아타리의 79년작 아스테로이드가 좋은 예다.[17] 인베이더를 구동하는 캐비닛 중 하나가 1980년대까지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용으로 주로 쓰였던 테이블식 캐비닛인데, 테이블식 캐비닛의 수요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18] 다만 동전 품귀 현상은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 이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자판기의 보급으로 동전 수요가 폭증해서 정부에서는 지폐 발행량을 줄이되 동전을 이미 평상시보다 4배 정도 더 찍어내고 있었는데, 어찌꼭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도 이 시기에 터져서 '스페이스 인베이더 때문에 동전이 품귀되었다'는 오해가 생겼다는 것.[19] 참고로 이는 국내 최초의 오락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20] 불법 복제 아케이드 기판이었지만 이것이 더 유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갤러그 문서 참고.[21] 인베이더 편대 위에서 좌우로 나타난다. 점수 규칙이 있어서 최대점인 300점을 얻으려면 처음에는 23발째, 나중에 15발째 샷으로 UFO를 격추하면 된다. #.[22] 패미컴판은 이 때문에 일본에만 발매되었다. 여담으로, 패미컴판은 외계인의 크기가 작아서 아케이드판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23] 다만 다른 모양으로 렌더링되는 경우도 있다.[24] 인베이더는 이를 인베이전(Invasion)이라고 부른다.[25] 건물주에게 허락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 붙이고 사라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익명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이다보니 허락을 구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인베이더 작품이 워낙 고가에 판매되고, 유명세도 있어서 건물주들도 대충 내버려두는듯.[26] 인베이더가 만든 지도를 보면 도시마다 WAVES라고 방문 및 침략수가 표시되는데 파리는 WAVES가 Permanent라고 표시되어있다. 참고로 2015년 5월 29일까지 진행한 Invasion들 수는 3323번인데 그 중 파리는 1199번 있었다.[27] 영화의 감독이자 화자? 역은 뱅크시이고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며 내용은 티에라 구에타를 디스하는 것이다. 초반에 뱅크시가 마치 뛰어난 예술가를 소개하는 것처럼 말문을 열기에 모르고 끝까지 보면 당혹스럽다.[28] 주인공 노란색 크랩은 자기 고향 행성에서 가정을 꾸리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만, 지구 침공에 징집되었고 플레이어들(주인공 대공전차)에게 목숨을 잃는다. 주인공 크랩 뿐만 아니라 크랩과 관련된 여러 기억들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플레이하는 인간들의 공격 버튼 하나에 없어진다. 비록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그렇다고 생각없이 적들을 죽여도 되는가를 묻는 듯한 연출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29] 페이크 영상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건물 전체가 번쩍거리는 것을 이유로 드는데, 이는 MIT의 한 유리벽 건물에서 테트리스를 한 것을 생각해 보면...[30] JAMMA 규격에 따라 모든 캐비닛에는 자체 테스트 기판이 제공되었다. 그 와중에 테스트 기판을 게임으로 만든 것이 이것으로, 게임이라기 보다는 캐비닛 테스트에 가깝다.[31] 유럽 수출명은 스페이스 인베이더: 인베이젼 데이[32] 국내에서는 엠드림을 통해 정발되었다. 참고로 게임큐브 판의 경우 THQ니모를 찾아서와 더불어 유이한 한글화 게임이다.[33] 스페이스 인베이더 40주년 기념작, Steam으로 출시[A] 당시 코나미 게임의 일본 판매권을 쥐고 있던 업체. 코나미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별개의 기업이며 1981년 9월에 코나미 제품의 일본 판매권을 코나미에 반납했다.[A] [36] 오늘날의 심즈, 게임 이름 아님.[37] 후일은 '선소프트'라는 게임 브랜드를 내기도 했다.[38] 세가에서 제작한 이름이 같은 게임과는 다른 것[39] 코어랜드를 거쳐서 현재의 반프레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