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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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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 소속 좌완 투수 류현진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2.1. 고등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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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국대 시절 이재원과 함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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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을 일찍 인정받아, 동산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열린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결승전까지 4경기에 연속출전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4연속 등판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던 터라 휴식을 위해 등판하지 않았고, 이때 동산고 감독은 류현진 대신 금민철을 선발로 등판시켰다.

2.2. 프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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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SK가 류현진 선수를 그때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그 이전에 SK가 동산고 출신들 계속 뽑았잖아요. 정상호 선수라든지 송은범 선수라든지. 그때만 해도 그 선수들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윗선에서 그때 사장님이 좀 약간 다혈질이셨는데 "앞으로 동산고 뽑지마!" 이런 식으로 나와가지고 동산고와 인연이 조금 안좋았어요. 류현진 선수가 물론 수술도 한 전력도 있고 이러겠지만, 동산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또 잘못 뽑았다가 (구단 고위직에게) 또 혼날 수도 있으니까 그랬던 부분이 사실 있었거든요.
ㅡ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에서 이재국 기자[2]
소속 학교와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했던 류현진이었지만 고향 팀 SK에서는 인천고등학교 포수 이재원을 1차 지명하였다. 동산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점이 류현진의 평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SK 감독이었던 조범현이 이재원을 지명해달라는 강력한 요청도 있었다.[3]

프로 지명 과정에서 고향팀 SK 와이번스에 버림받은 뒤 롯데 자이언츠도 류현진을 거르고 2차 1순위로 광주제일고의 사이드암 투수 나승현을 지명하자, 결국 턴이 넘어온 한화 이글스가 2차 2순위로 류현진을 지명하여 계약금 2억 5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류현진이 자기들 차례까지 넘어온 한화 이글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당시 고교 빅 3(한기주, 유원상, 김성훈)중 한 명으로 평가되던 북일고 유원상을 1차에 지명했던 한화는 그에 못지않은 인천 동산고 류현진까지 2차 1라운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 당시 롯데 팬들도 류현진이 2차지명까지 밀리자 류현진의 싸이월드까지 찾아가서 환영인사를 남기고 류현진도 부산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롯데가 나승현을 지명하자 양쪽 모두 경악했다. 당시에야 나승현도 좋은 투수라고 정신승리 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나승현은 고교용 구위라며 극히 싫어했다. 실제로 당시 국내야구 갤러리의 롯데 팬들은 초상집이었고, 한화 팬들은 비웃기 바빴다.

한화 이글스의 코치진은 류현진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전지훈련 때부터 선발 자원으로 낙점한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얇은 불펜진에 비해 선발 자원은 상당히 풍족한 편[4]이었으며, 계투진에 기대할 만한 좌완 투수가 차명주를 빼곤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기용이었다. 일찌감치 1군 선수단에 합류한 류현진은 KBO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투수들인 구대성송진우, 그리고 정민철에게 투수로서의 배짱과 마음가짐, 제구력 관리와 변화구(써클 체인지업) 등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애리조나 캠프를 통해 팀에 새로 합류한 박찬호가 류현진에게 미국 리그에 대한 조언과 동시에 몸 관리 방법 등을 전수했다. 박찬호는 오래전부터 류현진에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에 대비하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5] 물론 여기에는 본인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메이저 리그 진출이 가능했다.

과거, 이를 두고 김인식 감독과 최동원 코치 중 어느 쪽이 더 류현진의 개화(開花)에 기여했는가를 두고 수정과 반박이 격하게 오고갔었다.

현재 남아있는 공신력 있는 기록들, 그러니까 공식으로 보도된 기사들에 따르면 최동원 코치는 2005년 10월 25일에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으며, 2006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기긴 하지만 그건 이미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7월 25일의 일이다. 그러니까 코치진이 신인 투수의 보직을 결정할 시기(전훈 ~ 시범경기)에 최동원 코치는 1군 투수코치였다는 얘기다. KBO에서 1군 투수코치면 신인 투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큰 발언권을 가진 자리이고, 최동원 코치가 투구폼 교정 등 프로 초년생 시절의 류현진에게 이래저래 신경을 썼던 것 또한 사실이므로 최동원 코치가 류현진을 선발자원으로 추천했다는 소문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인식 감독의 역할 또한 결코 낮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최동원 코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시범경기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고졸 신인을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넣는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은 김인식 감독이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킬인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재임 기간 동안 다른 투수들을 신나게 갈아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류현진만큼은 불펜 알바를 거의 시키지 않았고 로테이션도 최대한 지켜줬다. 물론 투구수 관리 면에서는 혹사가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이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관리를 해준 것도 남들이 빡세게 굴리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문제삼을 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인식 감독이 류현진을 다른 투수들보다 신경써서 관리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요약하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고졸신인을 과감히 선발 로테이션에 올린 것은 두 사람의 합의에 따른 결단이므로, 양쪽 모두의 공이라 할 수 있다.

3. 한화 이글스 1기

파일:20210521_232652.jpg

프로 데뷔시즌부터 신인최초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이뤄내며 신인왕과 MVP를 동시 수상했던 것을 시작으로, 2번의 투수 골든글러브[6]를 포함한 전설적인 기록을 써내려갔다. 한화에서 단 7년 뛰는 동안 통산 98승, 5번의 탈삼진 1위, 3번의 WAR 1위, 2번의 평균자책점 1위의 기록을 세웠으며, 그 밖에도 29회 연속 퀄리티스타트, 한 경기 9이닝 최다탈삼진 기록인 17K, 21세기 유일의 단일 시즌 1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시리즈 우승을 제외하고 개인 커리어로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암흑기 한화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단 7년만 뛰고도 KBO 통산 투수 WAR 13위를 기록한 압도적인 에이스로 리그를 평정했다.

3.1. 2006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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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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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008 시즌

파일:이도류현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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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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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0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10)
파일:류현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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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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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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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포스팅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에 의한 해외진출에 필요한 프로 연차 7년을 채움에 따라 본인이나 야구 팬들이나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2012년을 시즌 도중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 경질되고 차기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잔류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10월 8일 김응용이 한화의 차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류현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김응룡 부임 이후 인터뷰 내용("구단 전체적인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이나 주루코치로 영입된 이종범의 인터뷰("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 FA 자격 취득 후 해외로 나가는 게 낫다.")를 보아 구단이 류현진의 포스팅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7] 애시당초 초거물급 감독을 신임감독으로 초빙하면서 어느 정도의 전력은 보존시켜야하는 입장인 데다가 김응용 본인부터가 소문난 좌완 애호가라서… 게다가 김응용 감독이 팀 상황 등을 들어 류현진을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류현진 본인의 의지가 매우 강했고, 구단과 코치진도 류현진의 미래를 위해 통 크게 결단을 내리면서 포스팅 추진을 결정하였다. 11월 1일 포스팅을 신청했고 11월 2일부터 4일간 포스팅이 진행되었다.

몇몇 라이트 팬층은 이와쿠마 히사시의 1,700만 달러[8]을 거울삼아 1,000만 달러 이상의 거액의 포스팅 이적료를 기대했지만, 많은 MLB 팬들은 그 의견에 대해 폭소를 터트렸다.[9] 일본프로야구 통산 타율 3할 3푼에 빛나는 아오키 노리치카가 500만 불도 안 되는 이적료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진출했음을 감안하면 그저 굴욕이라며 조롱했다. 천웨이인의 수준에서 몸값이 책정될 거란 의견도 있지만 천웨이인은 3년간 1,140만불의 FA 계약이라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야구인들과 언론들이 이적료만 1,000만~2,000만불이라는 장밋빛 전망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까댔다. 20-80 스케일에서 모든 구종이 평균 내외[10]인 평균구속 89마일의 의사소통 되지 않는 4~5선발감 좌완에게 잭 그레인키를 영입할 수 있는 평균 연봉에 버금가는 이적료[11]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영입 의사를 타진할 메이저리그 구단이 쉽게 나타날지는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과거 국내 포스팅 잔혹사를 상기시키는 기사가 많이 뜨면서 많은 팬들도 상황이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2012-13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괜찮은 좌완 선발이 얼마 없기에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또 한편으로 보면 (한화가 적은 이적료를 감수한다는 전제하에) 이적료와 연봉총액을 합쳐서 1000만 불 전후라면 쉽게 수긍이 가는 금액이기도 했다.

2012년 11월 9일 스포츠조선 기사에 따르면 류현진이 정한 MLB 진출을 위한 포스팅비 하한선은 무려 1,000만 달러라고 한다. 류현진의 MLB 진출을 기원하던 팬들은 일제히 멘붕. 해외야구 갤러리에서는 테오 엡스타인시카고 컵스9,999,999.99달러[12]를 질렀다가 1센트가 부족해서[13] MLB 진출 실패라는 등의 드립을 뿜어냈다. 엠엘비파크 엠엘비/한국야구타운은 국내기사에 대해 절대 신뢰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작 이 기사가 나오자 많은 이들이 멘붕을 일으켰다. 이런 혼란이 일어날 만도 했던 것이, 포스팅이 끝나고 결과가 MLB에서 KBO로 전달된 마당에도 관련 기사가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없었다. 심지어 팬들은 물론이고 일부 기자들조차 Ryu Hyun-Jin[14]에서 -기호를 잘못 써서 Ryu-Hyun Jin이라 하며 결과적으로 진류현이란 괴상한 이름을 창시하는가 하면, 트위터에서 외국인들의 질문이 쏟아져 한국인들이 답해줄 정도. 팬들은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꼴을 보며 불안감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포스팅 이적료로 2,573만 7,737달러 33센트[15]라는 위엄돋는 금액이 나왔다. 포스팅에 성공한 팀으로 대다수가 시카고 컵스 또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점쳤다. 하지만 밝혀진 당첨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6][17]. 이제 류현진의 타격을 볼 수 있다![18] 앞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고 비난받던 언론들은 역으로 고작 예상 금액 천만 달러 정도의 비관론만 늘어놓았다며 까이는 신세가 됐다. 여담으로,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2,000만 이상 베팅한 팀이 2~3팀이었고 그 중 컵스는 당연히 자기 팀에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포스팅 이후 사이닝 데드라인까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위시한 양측의 이견차가 좁혀지지 못했고, 다저스는 그 사이에 FA 최대어인 선발투수 잭 그레인키를 영입하며 클레이튼 커쇼-잭 그레인키-조시 베켓-채드 빌링슬리로 이어지는 로테이션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남은 5선발 자원만 해도 테드 릴리, 크리스 카푸아노, 애런 하랑이 남는 포화상태가 되었고 이로 인해 협상의 주도권은 사실상 다저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시각으로 12월 9일, 스포츠동아의 이재국 기자에 따르면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6년 3000만달러를 최종 제시했다고 한다.
파일:Tommy+Lasorda+Ervin+Magic+Johnson+l.jpg
12월 10일,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 계약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KBO 최초 메이저리그 직행자 탄생.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총 750이닝 이상을 소화할 경우, 그 다음 해에 옵트아웃을 선언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이닝 소화에 따른 최대 백만 달러의 인센티브가 걸려있고[19], 사이 영 상 투표 순위에 따라 연봉이 상승된다. 다저스는 통역비용을 부담하고 양측의 서면합의 없이 류현진을 마이너리그로 내릴 수 없다.[20]

한 가지 흥미로운 조항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다저스가 류현진을 트레이드 할 경우, 류현진은 트레이드 된 시즌만 뛰고난 뒤 다시 FA 로 풀릴 수 있다! 이 조항은 사실상 다저스의 안전장치였는데, 류현진이 좋지 않은 성적을 찍을 경우 트레이드를 하고 싶어도 6년에 달하는 장기 계약 때문에 다른 팀들이 부담스러워 할 경우를 대비해 혹시나 아니다 싶으면 싼 값에라도 팔아버릴 수 있게 삽입한 조항이다.[21] 반대로 말하면 이 조항 덕분에 류현진의 트레이드 가치는 본인의 활약 대비 상당히 낮아졌기 때문에 류현진이 2013 시즌 같은 활약을 계속 해 나간다면 계약 말미가 아니라면 트레이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포스팅에 관한 국내 메이저리그 팬사이트들에서는 당시 메이저리그 언론과 각 구단들이 매우 조용했기에 그냥 국내에서만 요란하지 현지에서는 시큰둥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느 정도 파악이 된 것이지만 포스팅 당시 현지가 너무나도 조용했던 건 KBO 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선례가 없었고, 이웃인 일본이야 꾸준히 그곳에서 포스팅이나 FA를 통해 메이저로 건너온 일본 선수들이 있었다지만 한국은 그런 선수들이 지금까지 없었기에 류현진에 대해 알려진 것이 사실상 없는 만큼 현지 언론이 조용한 것이 당연했다. 그의 이적이 확정되고, 스프링캠프는 물론 시즌 초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현지 평가가 조심스럽거나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도 일본과 비교해 야구변방국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직행한 최초의 선수였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협상 비화로 '마이너 조항있으면 나 그냥 한국감'이라고 류현진이 버티는 바람에 마감 1분 전이 되어서야 다저스가 마이너 조항을 빼겠다고 물러서면서 '마이너 조항 빼줄 테니까 빨리 계약 고고'라고 말했지만 스캇 보라스'님 뭔소리? 아직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음'이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20초 남긴 상황에서 보라스가 6년 $42M을 불렀고 다저스가 몸값을 $6M이나 올려주면서 $36M에 합의봤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협상 마감기한 1초를 남긴 상황에서 전부 종결이 되었다고. 물론 이건 예능에서의 발언이니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있긴 할 것이다.

한편 류현진의 등번호는 한화 시절과 똑같이 99번이 되었다. 매니 라미레즈가 다저스로 왔을 때의 등번호를 물려받은 셈인데, 하필 번호의 이전 주인이 주인이기에 현지 언론 중 일부에선 이걸 두고 류현진을 씹어대기도 했다.

한편, 후에 류현진의 성공에 고무된 선수들이 2014 시즌 종료 후 포스팅을 신청했으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해외의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받아 결국 꿈을 접는 모습을 잇달아 보였다. 사실 메이저 입장에서는 그들이 류현진과 같은 급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류현진급의 대우(높은 합의금, 마이너 금지 조항 등)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인데, 류현진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들도 반은 가겠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한 점이 크다. 결과적으로 자기들이 바라는 대우는 안 해줄 것 같고 국내 FA시장이 미친 듯한 인플레를 보여주자 국내에 남는 편이 돈을 더 받을 것 같으니까 메이저 행을 접은, 결국에는 돈 문제로 인한 결과인데 국내 기레기들은 한국의 자존심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애초에 진짜로 도전할 생각이었다면 포스팅 금액이나 마이너 금지 조항 같은 배부른 조건을 걸지는 말았어야 정상이다.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메이저에서 한국선수를 위한 특별 대우를 해줄 이유가 전혀 없으니 정 메이저로 가고 싶으면 악조건을 감수하든가 실력을 더 키워야 하는데 류현진의 사례를 보고는 자기도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자만한 선수들과 이를 부추긴 언론의 문제다. 결과적으로 6년 3,600만 달러 계약은 두 시즌 류현진이 부상으로 이탈해서 4년 3,600만 달러로 봐도 혜자 계약이 되었다.

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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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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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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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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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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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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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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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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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FA

파일:류현진토론토에가다(영광의순간).jpg

2019년 12월 22일, 4년 8천만 달러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하였다.

좋은 계약을 받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로저스 센터쿠어스 필드체이스 필드 못지 않은 타자친화구장으로[22] 특히 인조잔디의 영향으로 공이 빨리 굴러가기 때문에 땅볼 유도가 중요한 류현진에게는 큰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9 시즌 토론토는 UZR(수비 기여도)이 -24.9로 전체 27위에 DRS 순위가 전체 20위,포지션별 DRS도 대부분 20위권에서 놀 정도로 수비가 좋은 팀도 아니며[23], 속한 지구는 타격 좋은 팀들이 모여있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여기에 리그 전체의 타고투저 추세까지 감안하면 사실 유리한게 하나도 없다.이현우 기자의 칼럼을 보면 지구 내 팀들의 wRC+ 및 홈구장 파크팩터 등에서 AL 동부지구가 NL 서부지구와 (투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차이가 크다는걸 알 수 있다.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로 왔기에 최지만과의 맞대결도 성사될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좌타인 최지만이 플래툰에서 벗어나 주전을 꿰찬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친정팀 다저스와는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2022 시즌에나 만날 수 있다.[24] 이와는 별개로 2020년에 올스타전이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리기에 아메리칸 리그 투수 올스타에 뽑히게 된다면 토론토 소속으로 다저 스타디움을 방문할 수 있다.

뉴욕 양키스에서 게릿 콜을 영입했기 때문에 콜과의 맞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25] 또한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있는 다나카 마사히로와의 맞대결 여부도 관심을 보이는 매체와 팬들도 있다.

한편 2020 시즌 인터리그에서는 토론토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대결이 홈/원정 2경기씩 총 4경기가 예정돼 있는데, KBO에서 성사되지 못했던 김광현과의 선발 대결을 볼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26] 김광현이 선발 로테이션에 들 수 있을지 아직 불확실하긴 하지만.

12월 24일 메디컬테스트를 위해 토론토로 출국했으며 12월 26일 메디컬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12월 27일 블루제이스 측에서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파일:D5329AC5-6F55-4F9A-A55F-1EA03B60DBA3.jpg

12월 27일 오후 4시 30분부터 입단식 및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헬로, 캐나다, 봉주르."로 인사했고, 토론토에 와 행복하고 좋은 활약을 펼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자세한 인터뷰 등번호는 류현진의 상징과 같은 99번을 그대로 단다.[27][28]
파일:HyunJin_Ryu_TOR_FA.jpg

입단식이 끝난 후 SNS를 통해 다저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저스에서 동료였던 작 피더슨은 댓글에 "내 비행기 파트너를 잃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6년간 함께 했던 저스틴 터너는 본인 SNS에 류현진과 손을 맞잡은 사진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류현진을 그리워 할 것이다. 좋은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네가 아메리칸리그로 떠나기 전에 첫 홈런을 기록한 것을 봐서 기뻤어."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워커 뷸러 또한 SNS에 류현진과 장난치는 사진과 함께 "(좋은 계약을 해서) 무척 기분이 좋아. 떠나는 모습을 봐야 해서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토론토에서 잘 지내."라며 류현진의 앞길을 응원했다. 이 외에도 코디 벨린저, 키케 에르난데스, 마에다 겐타가 아쉬움과 함께 작별인사를 건넸다.[29]
류현진의 다저스 작별인사 전문
Dodgers fans,
Thank you for great 7 years supporting me. I had a wonderful time during those years. I will keep those moments in my heart.
Happy new years!

다저스 팬 여러분,
저를 응원해주신 7년에 감사합니다. 저는 이 시간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이 순간들을 담아놓을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편 류현진의 이적은 블루제이스 선수들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왔다. 보 비솃 등 여러 선수들은 '구단에서 우릴 믿고 투자를 하겠다는 뜻을 보여줬다'라며 환영의 뜻을 보였고, 실제 앳킨스 단장은 계약 이후 선수들과 몬토요 감독에게 많은 문자를 받았다고 하였다. 블루제이스의 선발감으로 꼽히는 라이언 보루키는 류현진의 커터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하였고, 지난 시즌 선발로 나섰던 트렌트 손튼은 류현진의 경기 영상들을 보며 연구를 했고 체인지업을 배우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신인 포수 리즈 맥과이어러셀 마틴에게 연락까지 하며 류현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5. 토론토 블루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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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20 시즌

파일:Ryu_20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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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1 시즌

파일:21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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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2022 시즌

파일:22류현진 등판 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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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3 시즌

파일:23류현진 등판 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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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

6. 한화 이글스 2기

6.1.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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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친정 팀 한화로 복귀한 첫 시즌.

7. 국가대표 경력

파일:20210521_2323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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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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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상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류현진의 KBO 수상 경력
2006 MVP / 신인왕 / 골든글러브 / 다승 1위 / ERA 1위 / 탈삼진 1위
2007 탈삼진 1위
2009 탈삼진 1위
2010 골든글러브 / ERA 1위 / 탈삼진 1위
2012 탈삼진 1위


파일:MLB 로고.svg

류현진의 MLB 수상 경력
2019 NL ERA 1위 / NL 올스타 / NL 사이영상 2위 / All-MLB 세컨드팀
2020 워렌 스판 상 / AL 사이영상 3위 / All-MLB 세컨드팀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 2.svg

류현진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10. 연도별 성적

10.1. KBO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류현진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6 한화 30 18
(1위)
6 1 0 201⅔
(2위)
2.23
(1위)
159 11 52 2 204
(1위)
1.05
(1위)
168.0 7.78
(1위)
2007 30 17
(2위)
7 0 0 211
(2위)
2.94
(4위)
195 15 68 3 178
(1위)
1.25 136.6 6.81
(2위)
2008 26 14
(2위)
7 0 0 165⅔ 3.31 144 12 67 1 143
(2위)
1.27 128.0 4.63
2009 28 13
(4위)
12 0 0 189⅓
(2위)
3.57 180 19 67 2 188
(1위)
1.31 137.3 6.39
(2위)
2010 25 16
(2위)
4 0 0 192⅔
(2위)
1.82
(1위)
149 11 45 9 187
(1위)
1.01
(1위)
253.6 9.20
(1위)
2011 24 11 7 0 0 126 3.36 101 12 38 1 128 1.10 124.5 3.41
2012 27 9 9 0 0 182⅔
(3위)
2.66
(5위)
153 12 46 5 210
(1위)
1.09
(2위)
146.9 6.54
(1위)
KBO 통산
(7시즌)
190 98 52 1 0 1269 2.80
(4위)
1081 92 383 23 1238 1.15
(4위)
151.5 44.74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6 6완투
(1위)
1완봉
(2위)
2007 6완투
(1위)
1완봉
(2위)
2008 2완투
(2위)
1완봉
(2위)
2009 4완투
(1위)
2완봉
(2위)
2010 5완투
(1위)
3완봉
(1위)
2011 3완투
(1위)
0완봉
2012 1완투 0완봉
KBO 통산 27완투 8완봉

10.2. MLB

파일:MLB 로고.svg 류현진의 역대 MLB 투수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13 LAD 30 14 8 0 0 192 3.00 182 15 49 1 154 1.203 119 3.8 3.5
2014 26 14 7 0 0 152 3.38 152 8 29 3 139 1.191 103 4.0 1.9
2015 기록 없음 (수술 후 재활)
2016 1 0 1 0 0 4⅔ 11.57 8 1 2 0 4 2.143 37 0.0 -0.3
2017 25 5 9 1 0 126⅔ 3.77 128 22 45 4 116 1.366 110 0.6 1.3
2018 15 7 3 0 0 82⅓ 1.97 68 8 15 1 89 1.008 198 1.9 2.2
2019 29 14 5 0 0 182⅔ 2.32 160 17 24 4 163 1.007 179 4.9 5.1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20[A] TOR 12 5 2 0 0 67 2.69 60 6 17 1 72 1.149 164 1.9 2.9
2021 31 14 10 0 0 169 4.37 170 24 37 2 143 1.225 102 2.5 2.0
2022 6 2 0 0 0 27 5.67 32 5 4 0 16 1.333 69 0.1 -0.3
2023 11 3 3 0 0 52 3.46 53 9 14 1 38 1.288 123 0.4 0.4
MLB 통산
(10시즌)
186 78 48 1 0 1055⅓ 3.27 1013 116 236 17 934 1.184 122 20.1 18.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13 2완투 1완봉
2019 1완투 1완봉
2021 1완투 1완봉[31]
MLB 통산 4완투 3완봉

파일:MLB 로고.svg 류현진의 역대 MLB 타자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13 LAD 30 58 .207 12 3 1 0 5 5 0 2 .233 .293 .526 0.5 0.3
2014 26 47 .149 7 2 0 0 2 4 0 1 .167 .191 .358 0.1 0.1
2015 기록 없음 (수술 후 재활)
2016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 0.0
2017 23 30 .133 4 1 0 0 0 3 0 4 .235 .167 .402 0.2 0.2
2018 16 26 .269 7 1 0 0 2 4 0 2 .321 .308 .639 0.4 0.3
2019 28 51 .157 8 1 0 1 3 3 0 4 .218 .235 .453 0.3 0.3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20[A] TOR 기록 없음
2021 2 4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 -0.1
MLB 통산
(9시즌)
121 217 .175 38 8 1 1 12 19 0 13 .222 .235 .457 1.4 1.2

10.3. MiLB

역대 투수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6 렌초쿠카몽가 퀘이크스(A+) 5 18 1 1 0 0 .500 2.00 15 2 1 14 7 4 0.89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AAA) 3 9⅔ 0 1 0 0 .000 8.38 17 2 0 9 9 9 1.76
2016 시즌 합계 8 27⅔ 1 2 0 0 .333 4.23 32 4 1 23 16 13 1.19
2018 렌초쿠카몽가 퀘이크스(A+) 1 4 0 0 0 0 - 0.00 2 0 0 4 0 0 0.50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AAA) 1 5 0 1 0 0 .000 1.80 5 0 0 3 1 1 1.00
2018 시즌 합계 2 9 0 1 0 0 .000 1.00 7 0 0 7 1 1 0.78
2022 버팔로 바이슨스(AAA) 1 4 0 1 0 0 .000 4.50 5 1 0 6 5 2 1.25
2023 FCL 블루제이스(Rk) 1 3 0 0 0 0 - 3.00 4 0 0 5 1 1 1.33
더니든 블루제이스(A-) 1 4 0 0 0 0 - 0.00 3 0 0 1 0 0 0.75
버팔로 바이슨스(AAA) 2 11 2 0 0 0 1.000 2.45 6 3 1 10 3 3 0.64
2023 시즌 합계 4 18 2 0 0 0 1.000 2.00 13 3 1 16 4 4 0.78
<colbgcolor=#ffff88> MiLB 통산
(4시즌)
15 58⅔ 3 4 0 0 .429 3.07 57 8 2 52 26 20 1.01

역대 타자 성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2016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AAA) 3 0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2018 1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colbgcolor=#ffff88> MiLB 통산
(2시즌)
4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10.4. 평가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류현진의 시즌 성적 순위는 다음과 같다. MLB(다저스, 블루제이스) 커리어하이는 파란색, KBO(이글스) 커리어하이는 주황색 표시.
2019 > 2020[33] > 2013 > 2014 ≥ 2018 > 2021 > 2017 > 2023 > 2022 > 2016
20102006 > 2007 > 2012 > 2009 > 2008 > 2011

메이저리그 시즌을 제외한 순수 한국야구 시절만 놓고 평가하면 커리어 하이가 2010시즌, 커리어 로우가 2011시즌이며, 2012시즌은 단지 승수가 적을 뿐 류현진 커리어 평균에 가장 가까운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커리어 로우 시즌과 하이 시즌은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당장 기초 성적만 놓고 보자면 2006년이나 2007년이 10시즌을 제외한 그 이후보다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피칭 내용상 변화구의 완성도·피칭 스터프 등은 오히려 성적 자체는 나빴던 2009년 이후로 눈에 띄게 발전했다. 다만 여기서 부진했다는 시즌은 말그대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류현진이 아닌 다른 일반적인 투수들의 경우에는 저정도 성적이면 커리어하이급 시즌이다.

또한 2010 커리어세이버메트릭스 성적으로 파고들자면, 류현진이 엄청나게 잘 던진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운도 엄청나게 따라줬다는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FIPERA의 차이가 1 가까이 난다. 반대로 2012년은 FIPERA보다 낮다.[34] 어느 정도 BABIP가 낮아지게끔 좋은 볼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운이 나쁜 피칭은 결코 아니었다는 얘기. 오히려 세이버메트릭스 성적상으론 2012년 성적이 정말로 압도적인 성적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성적이 삼진을 잘 잡는 투수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평가가 좋다고 할 수도 있는데, 2012년 류현진의 성적에서 삼진이 워낙 화려하기에 간과하기 쉬운 기록 중 하나가 사사구이다. 2012년 류현진은 182.2이닝 동안의 사사구(볼넷+몸에 맞는 공)가 51개로, 9이닝당 평균 사사구는 2006년을 제외하면 그 어떤 시즌보다 적었다. 타자들이 투수의 공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데뷔 시즌에 실제보다 약간 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구가 꾸준히 발전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제구는 계속 좋아졌다치면 구위는? 보통 구위를 가장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스탯은 탈삼진으로 통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2012 시즌 류현진의 구위가 2006 시즌 류현진의 구위보다 나았다고 볼 수 있는 게 2006 시즌 류현진은 갓 데뷔한 신인인데 기량 측면에서는 이미 완성이 되어 있어서 신인 특유의 생소함을 온전히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2012 시즌 류현진은 데뷔 7년차 투수로서 KBO 리그의 내로라하는 전력 분석원들과 코치들, 프로 선수들이 분석을 다 해 놓은 상황이었는데도 2006 시즌에 버금가는 볼삼비와 삼진 수를 기록한 것이다. 2006 시즌 류현진의 공은 '몰라서 못 치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겠지만 2012 시즌 류현진의 공은 '알고도 못 치는' 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2006년은 투고타저가 눈에 띄는 시절이고, 2010년은 완만한 타고투저였던걸 감안하면 2010년이 오히려 커리어하이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 해의 MVP는 타격 7관왕의 이대호지만 WAR은 류현진이 더 높았다는 걸 유심히 지켜보면 그렇다. 수상 실적을 감안하면 2006년이 더 좋겠지만 실제 기록을 봤을때는 2010 시즌이 우위기에 2010 시즌이 더 괴물이라 느끼는 사람도 많은 편.

실제로 KBO 선수들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스탯티즈에 따르면 류현진의 2010 시즌 sWAR은 9.20으로 KBO 커리어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2006 시즌 sWAR은 7.78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후 2007 시즌 6.81, 2012 시즌 6.54, 2009 시즌 6.39 순. 2012 시즌 류현진이 9승 밖에 거두지 못하고 ERA 역시 괴물 같았던 2010 시즌에 비해 아쉬운 감이 있어서 국내 라이트 팬들 사이에서는 류현진의 기량이 전성기에 비해 다소 떨어진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 류현진이 2013, 2014 시즌 연속으로 활약하면서 KBO 리그에서 9승에 ERA도 2.66이었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선 14승에 ERA 3.00이니 KBO도 MLB와 근접한 수준이 아니냐는 추측을 진지하게 하던 이들도 있었지만[35], 세이버 측면에서 보자면 류현진은 2011 시즌 부상 이후 한풀 꺾인 선수가 아니라 전성기 때의 기량을 거의 되찾은 KBO 리그의 아웃라이어였다.

메이저리그 이적 이후 첫 전성기는 2013년~2014년까지이며,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으로 팀의 3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15~2016년 어깨 부상 등으로 고전하였다. 이후 2017년 후반부터 커터를 사용하면서 부진과 재활 탈출에 성공하였고 2018 시즌부터는 두 번째 전성기를 맞으면서 1~2선발급 투수로 한 단계 레벨업한다. 2018시즌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날렸지만 나오는 경기는 확실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규정이닝 미달이지만 ERA 1점대를 기록했고, 2019년은 ERA 1점대를 시즌 내내 유지하고 제이콥 디그롬과 사이영상 경쟁을 했다가 8월에 주춤했지만, 여전히 평자점 2.32라는 메이저리그 통틀어 뛰어난 성적을 남긴 2019시즌이 단연코 1위로 압도적이며, 그 다음은 다저스의 완벽한 선발진을 맡았던 2013시즌을 주로 꼽는다. 2020시즌도 단축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2021시즌은 전반기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기에는 무너지며 하락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며, 하락세가 지속될지, 반등에 성공할 지에 대해서는 2022년이 중요했으나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잔여 시즌을 포기하고 말았다.


[1] 그리고 이 둘은 한화 이글스에서 함께 뛰게 된다.[2] 이재국 기자는 당시 스포츠동아의 SK 와이번스 담당 기자였다.[3] 관계자의 말로는 조범현 감독이 상당히 험악할 정도로 아주 강력히 지명을 요청했다고 한다.[4] 문동환, 송진우, 정민철, 최영필, 김해님, 양훈[5] 출처[6] 06년과 10년 수상. 다만 상복이 참 불운했는데 07년에는 당시 골글 수상자인 다니엘 리오스가 다음해에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탓에 리오스만 아니었으면 류현진이 확정으로 수상했을 것이며, 12년에는 승리만 적었지 세부스탯이 압도적이라 넥센의 브랜든 나이트와 치열한 골글경합을 했어야 하나 실제로는 장원삼이 수상했다.[7] 류현진의 팀동료는 아니지만 이대호도 비슷하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을 내기도 하였다. 반대로 1살이라도 더 젊을 때 메이저에서 불러준다면 빨리 가는 것이 나을 거라는 의견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 선배들이라 할 수 있는 박찬호, 김병현, 봉중근이고, 의외로 홍성흔도 지지했다. 홍성흔은 앞의 세 사람과 다르게 신중히 팀과 의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지만.[8] 이는 빌리 빈의 계략으로, 서부지구 팀들로의 이적을 막기 위해 실제 가치에 비해 높게 불렀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이후 이와쿠마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이적료를 돌려받았다.[9]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메이저 기사를 주로 다루는 김형준 기자도 300만~500만을 예상하며 좆문가로 전락, 박동희만이 갓동희로 찬양되었다. 단, 이때는 유례가 없던 상황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10] 이는 2012년 어느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른 것으로, 2010년의 한 리포트에는 체인지업에 대한 평가가 조금 더 높았다. 다만, 2012년 체인지업 평가 점수로 알려진 55점은 구속인 77마일을 잘못 읽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점수를 적는 칸이 아닌 밑에 적혀 있었기 때문.[11] 다르빗슈 유가 웬만한 최고수준 FA 투수들의 연봉총액인 1억 불을 넘는 이적료+연봉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하였다는 사례를 들 수도 있지만,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전체적인 수준차와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온 것처럼 다르빗슈와 류현진 사이의 객관적인 기량차를 생각해야 하고 다르빗슈의 경우는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다르빗슈는 사실상 텍사스에서 프런트라인 선발로 쓰고자 데려온 선수다. 그나마도 오버페이라고 아직까지 까는 의견이 존재하고.[12] 컵스 엡스타인 사장은 레드삭스 단장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 포스팅에서 51,111,111.11달러라는 황당한 금액을 써낸 바 있다.[13] 류현진은 MVP 시상식 때 1센트라도 부족하면 안 간다고 말한 바 있다.[14] 위키백과 영어판에서도 Yu Darvish 등으로 표기된 일본인 선수들과 달리 성-이름 순으로 표기되어 있어 이런 혼란이 더 가중되는 것으로 보인다.[15] 한국인들이 3과 7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서 저렇게 써넣었다고 한다.[16] 계약 성사 후 비화에 따르면 다저스는 류현진을 고교 시절 때부터 줄곧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텍사스 레인저스도 마찬가지였고.[17] 다저스를 예측한 팬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보라스 코퍼레이션 본사가 로스앤젤레스에 있어서 류현진이 로스앤젤레스로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말로 다저스 아니냐고 확신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저 보라스 만나러 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2012년 당시 다저스 선발진은 소위 포화상태라 자리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18] 국내의 경우, 포스팅 시스템으로 이적할 경우 원소속 구단이 해당 선수에 대해 임의탈퇴를 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만약 국내로 복귀할 경우에는 한화 외의 타 구단으로 갈 수 없다.[19] 170이닝부터 10이닝당 25만 불이 추가된다고 한다. 200이닝을 소화하면 100만 불을 추가로 버는 셈.[20] 사실 이론상으로는 지명할당도 있고 해서 내릴 수야 있는데, 현실의 류현진이 첫 해부터 대박을 쳐서 그렇게 될 일이 없기도 했지만 본적으로 거부권이 있는데 마이너에 강등되는 경우는 드물다. 알아서 마이너로 꺼지라고 압박을 주는 방법은 크게 언플과 방출 위협이 있을 수 있는데, 방출의 경우에는 출전 기회를 잔여 연봉을 일시불로 줘야 하기 때문에 구단 입장에선 매우 어려운, 그리고 선수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는 거래이며 괜한 언플을 하다가는 선수를 부당하게 압박하는 구단으로 찍혀서 돈 몇 푼 아끼려다가 FA나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 수급 길이 막혀버릴 수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마이너 옵션이 없는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가 마이너로 내려갈 일은 드물다고 봐야 한다. 단 어디나 그렇듯 예외는 있다. 예를 들어 러스니 카스티요나 조쉬 린드블럼의 사례처럼 선수 본인의 선택으로 팀을 떠나지 않고 마이너에서 뛰면서 보장된 돈을 받는 케이스가 있긴 있으니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으며,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구단에서 방출하는 사례는 꽤 많다. 보통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는데 계약기간이 많이 남은 선수의 케이스가 많긴 하지만 방출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마지막으로 최저연봉 계약 혹은 최저연봉은 아니지만 몸값이 낮은 선수들의 경우(보통 연봉 10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정도의 선수들. 이 정도면 메이저 평균 연봉의 반도 안 된다.) 마이너 거부권이 있어도 지명할당 잘만 당한다. 전자의 경우 연봉계약을 따로 맺은 것이 아니라서 지명할당으로 팀을 나가거나 마이너로 강등되면 메이저리그 연봉이 보장되지 않으니 마이너 거부권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파리목숨이며. 후자의 경우 방출당하거나 마이너로 가도 잔여 연봉을 보장해줘야 하지만 소액이라서 부담 없이 내보낼 수 있다.[21] 스탠 카스텐 사장의 '고효율은 포기하더라도 고효과는 포기 못 한다' 는 매우 합리적인 빅마켓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절대 계약에 트레이드 거부권을 넣지 않기로 유명하고 본인 역시 죽을 때까지 No Trade 계약은 안 할 거라고.[22] 특히 2019년 홈런팩터는 그 악명높은 쿠어스 필드를 제치고 전체 1위를 찍었다.[23] 그나마 영건인 대니 잰슨과 리즈 맥과이어가 있는 포수자리는 양호한 편.[24] 다저스는 이미 2019 시즌에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와 인터리그를 치렀기 때문에 지역 라이벌전을 제외하면 3년 주기로 돌아가는 인터리그의 성격상 2022 시즌에 다시 토론토와 만나게 된다. 게다가 이마저도 직접 상대하는데는 로테이션상 운이 따라줘야 하는데, 예를 들어 2019년에 블루제이스와 다저스가 만나긴 했어도 류현진은 이 시리즈에 로테이션상 걸리지 않아 서로 상대하지 않았다.[25] 더군다나 토론토와 양키스는 같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속해있기 때문에 한 시즌에 19번이나 만난다.[26] 2010년에 불발된 바 있다.[27] 토론토 블루제이스 사상 최초로 등번호 99번을 달고 뛰게 된다. 캐나다에서는 99번이라는 등번호가 매우 의미가 있는 번호인데,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가 달았던 등번호가 NHL 영구결번이기도 한 99번이기 때문이다. 이 영향이었는지 토론토 블루제이스도 류현진이 입단하기 전까지 99번을 사용한 선수가 없었다. 당연히 입단식에서도 등번호 관련 질문이 있었는데 스캇 보라스는 이를 두고 그레츠키가 LA 킹스로 트레이드됐던 점을 들어 '캐나다가 LA에게 99번을 빌려줬는데 류현진이 이번에 99번을 가지고 캐나다로 왔다'라고 표현했다.[28] 이를 두고 몇몇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야구랑 아이스하키랑 하등 상관없는 스포츠인데 99번 줬다고 예우라고 한다"며 태클을 걸고 있지만, 이건 최소한 캐나다, 토론토의 스포츠 역사를 모르고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나오는 발언이다. 아이스하키를 떠나 웨인 그레츠키는 캐나다, 특히 토론토에선 영웅 그 자체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가 달았던 99번의 번호를 예우하기 위해 토론토의 다른 스포츠 팀들도 99번을 일부러 비워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블루제이스로서는 거금인 8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보라스의 말처럼 LA에서 다시 99번을 가져온다는 명분도 있었기에 류현진도 자신의 번호를 그대로 가져온다는 예우와 토론토의 영웅의 번호를 되찾아왔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챙긴 것이다.[29] 마에다는 이후 류현진 영입 의사에 적극적인 구단 중 하나이던 미네소타 트윈스로 갔다.[A]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 (60경기)[31] 더블헤더 경기라 7이닝 경기로 열려 9이닝이 아닌 7이닝 완봉승이다.[A]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 (60경기[33] 단축 시즌[34] 2012 시즌 엄청난 불운과 행복 수비로 고통받은 것을 FIP가 증명한다…[35] 2012 시즌 류현진의 9승 기록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MLB에서도 풀타임 선발로 뛸 수 있는 류현진을 데리고도 9승 밖에 못 시켜준 한화 이글스를 투수 사관학교라고 희화화하는 밈으로 쓰이고 있지만, 류현진의 MLB 진출 초기 당시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던 때라 진심으로 KBO 리그의 수준을 NPB보다 높고, MLB와 비견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던 라이트 팬들도 꽤 있었다. 마침 해설위원이었던 성민규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을 깎아내리는 언동을 자주 했기에 그에 대한 반발심도 피어오르던 차였고... 다만 타이중 참사그 기세는 한풀 꺾이고, 고척돔 참사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팬층은 거의 소멸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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