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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7:14:11

다나카 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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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
<colbgcolor=#ddd,#353535> 본명 다나카 요시키/田中 美樹 (たなか よしき)
필명 다나카 요시키/田中 芳樹 (たなか よしき)
리노이에 유타카/李家 豊(りのいえ ゆたか)
출생 1952년 10월 22일 ([age(1952-10-22)]세)
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1]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학력 가쿠슈인대학 (국문학 / 졸업)
직업 소설가
1. 개요2. 생애3. 작품 목록
3.1. 대하소설, 시리즈3.2. 단권소설 및 단편집3.3. 단편3.4. 편역3.5. 에세이, 대담, 논문 등3.6. 원안3.7. 만화
4. 수상 경력 및 수상작5. 비판
5.1. 엘리트주의와 반민주주의
5.1.1. 비판5.1.2. 반론
5.2. 역사, 전쟁, 정치, 과도한 주인공 보정, 비현실성5.3. 반종교, 반기독교
5.3.1. 반론
5.4. 연중작가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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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소설가.

대표작은 사이언스 픽션/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인《은하영웅전설》. 작풍은 스페이스 오페라, SF, 판타지, 전기물, 미스테리주말 드라마까지 취향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작가로, 중국사에 관심이 깊어 중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파격적인 연출을 좋아하여 《창룡전》에서는 연재 개시 3권만에 도쿄도청레인보우 브릿지, 도쿄 디즈니랜드, 도쿄 돔 등을 박살냈다.

대한민국에 정식 발매된 작품으로 《은하영웅전설》, 《아르슬란 전기》, 《일곱 도시 이야기》, 《창룡전》,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KLAN》[2] 등이 있는데, 이 중 은하영웅전설과 KLAN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일부만 발매되었으며,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와 KLAN은 절판되었다.

수많은 작품을 히트쳐서 작품의 애니메이션화도 많이 되었다. 은하영웅전설과 아르슬란 전기는 모두 2번 애니화 되었고 아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타이타니아, 일곱 도시 이야기, 아펠란트 이야기도 애니화 되었는데 이 중에 성공을 거둔 것은 은하영웅전설과 2015년판 아르슬란 전기 뿐,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다.[3]

2. 생애

1952년 일본 구마모토현 혼도시(현 아마쿠사시)에서 태어났다. 1살 때 구마모토시로 이주했으며, 구마모토 시립 쿠로카미 소학교, 구마모토 시립 사쿠라야마 중학교, 구마모토 상과대학 부속고등학교를 나왔다. 이후 가쿠슈인대학에 입학하여 1976년 3월에 문학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 3월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만기 졸업하였다. 재학 중 1975년 소설 《한천정의 살인》을 발표하여 학내 잡지인 '가쿠슈인 보인회 잡지'에 입선하였다.

1978년 문예지 '환영성'에서 리노이에 유타카라는 필명으로 《푸른 초원에...》를 발표, 환영성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환영성에서 《은하의 체스 게임》이라는 소설을 연재하려고 했지만 연재하기도 전에 환영성이 폐간되면서 무산되었다. 1981년에 첫 장편소설 《백야의 조종》을 발표하였는데 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KGB가 선역으로 나오는 독특한 작품이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은하의 체스 게임》의 연재 중단 이후 도쿠마 쇼텐의 편집자의 권유를 받아 소설을 재구성하여 새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바로 본인의 대표작인 은하영웅전설이다. 은하영웅전설은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했을 뿐만 아니라 평가도 좋아서 단번에 다나카 요시키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한국에서 다나카 요시키의 이름이 알려진 것도 1991년 을지서적에서 은하영웅전설 해적판을 출간하면서부터였다. 다나카 요시키는 은영전의 성공과 함께 《창룡전》, 《아르슬란 전기》, 《마바르 연대기》, 《타이타니아》 등 여러 장편 소설들을 전개했고 《일곱 도시 이야기》, 《아펠란트 이야기》 같은 단편, 단권 소설도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장편 작품들이 하나 둘 연재중단되기 시작했다. 활동 내력만 따지면 매년 소설 1~2권을 발간할 정도로 왕성히 활동했지만 그 소설들은 대부분 단권 소설들이었고 장편 소설들은 1990년대부터 연재 주기가 느려지더니 2000년대에 접어들어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연중되었다. 《KLAN》, 《작열의 용기병》과 같은 일부 작품들은 원안으로 물러나 후배 작가들이 집필하는 방식으로 바꿨지만 이마저도 완결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겨우 미완결 작품들을 하나하나 완결지었다.

3. 작품 목록

장편 소설 중 완결된 작품은 볼드체, 한국에 작품 전체가 정식발매된 작품은 ★, 일부만 발매된 작품은 ☆로 표시한다.

3.1. 대하소설, 시리즈

3.2. 단권소설 및 단편집

3.3. 단편

3.4. 편역

3.5. 에세이, 대담, 논문 등

3.6. 원안

3.7. 만화

4. 수상 경력 및 수상작

5. 비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은하영웅전설/비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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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본 문서에 다 서술되지 않은 비판들도 있으니, 다나카 요시키가 저술한 작품들의 항목에 적혀있는 비판점도 참조하면서 해당 문서를 보는 것이 좋다.

5.1. 엘리트주의와 반민주주의

5.1.1. 비판

작중에서 우익, 군국주의 등을 싫어하는 발언을 많이 써내지만 일견 엘리트주의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또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해 어딘가 부정적인 편견을 보이고도 있다.

일례로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통일이 되어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후대의 역사가의 서술을 넣기도 하고 유비에 대해서도 조조에게 저항해 난세를 늘어지게 했다고 쓴 적이 있다.

물론 작중 이 역사가의 관점이 전부 작가의 페르소나로 이용되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작품 내에서 작가가 양 웬리에 대해 어마어마한 호의를 보내고 있기도 하니, 양 웬리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양 웬리에게 비판적인 역사가의 서술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여러 역사가의 서술 중 하나이며, 이와는 정 반대로 양 웬리를 영웅시하는 역사가의 서술 역시 작중에 등장함을 참고하도록 하자. 양 웬리의 대척점인 라인하르트에 대해서는 까는 부분은 역사가의 서술 형식이 아니라 아예 직접적으로 깐다.

보통 다나카의 성향과 관련해서 자주 이야기되는 <은하영웅전설>을 보더라도, 결국 민주주의(자유행성동맹)와 제정(은하제국)의 대립은 양측의 엘리트[6]들의 싸움으로 끝날 뿐 시민 사회의 역할이나 민주주의 사회의 역동성 따위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자. <은하영웅전설>에서 자유행성동맹 의회 선거라거나 동맹 의회 내 여야간의 갈등, 법안의 논의와 같이 건전한 민주국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보통의 정치행위들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묘사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7]. 민주공화주의 가운데 "공화주의" 정도만이 강조되는 수준이다.[8] 결국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에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이나 일반 시민들의 힘은 무대 위로 올라오지조차 못한다. 그저 소요하고 부유하여 결국 지배세력에 의해 진압되거나, 베스터란트처럼 핵무기 등으로 몰살당하며, 이따금 신권위에 맹목적으로 환호하는 수준이며, 제시카 에드워즈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의 암살자를 제외하면 이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조차 없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짧은 시간동안 학살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나지만, "비극"이라는 수준으로만 간단하게 스치고 넘어간다.

이런 정치적인 측면과 더불어 영웅주의적인 인물과 전개(즉 역사관) 때문에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상당히 명백하다. 최대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성향을 호의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그의 작품이 그려내는 역사관이 굉장히 인물 중심적이며 단편적이고 단면적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성상 정치가 인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있는데, 이는 은하영웅전설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미숙한 묘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스타워즈스타트렉 시리즈 등에서는 민주적 합의에 따른 정치과정이 잘만 나타난다. 은하영웅전설의 장르를 영웅담으로 본다 해도 마찬가지. 사실 영웅담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부터가 요시키의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특히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의 경우, 다나카 요시키의 출신 학교인 가쿠슈인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쿠슈인(#)은 일본 황실 자제들과 화족(귀족) 출신들을 위한 학교로 유명하다. 결국 이 대학에 진학한 다나카가 비록 엘리트주의나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을 써도 결론은 우수한 엘리트라면 괜찮다는 시선이 묻어나는 모순을 범하는 것 아니냐는 것. 시오노 나나미도 같은 대학 출신인데, 종종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는 사례로 볼 때 꽤 그럴듯하다. 그래도 다나카 요시키는 팬픽을 실제 역사라고 주장하지는 않잖어 이 대학 출신의 또 다른 유명인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후세대로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또 은근슬쩍 초인론이 많이 나오니 이것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단 미야자키는 젊은 초인이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평화롭게 섞여 산다는 것을 보면 위 두 작가와는 확실히 다르다.

반민주주의적이라는 평가의 예시는 여기에서는 은하영웅전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주인공을 조롱하고 전제주의에서 가능성을 찾는다."고 비판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주의나 사상보다는 (그 주의를 몸으로 표방하는) 인간을 따른다"라는, 은하영웅전설 작중에 수 차례 등장한 주장을 다나카의 사상으로 보아 이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먼치킨, 인재 우월적인 중심으로 이끌어간다는 점도 나온다. 물론 많은 서브컬처 대중매체......소설이니 애니이니 만화에서도 지겹게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한국 게임인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주인공 시라노 번스타인이 32살이라는 것에 이걸 일본 발매판으로 한 일본 게이머들이 롤플레잉 게임에 30대 아저씨라니!? 놀랐다는 후문처럼) 10대 나이에 중령이니 대령이니 장군이니....이런 게 허다한 일본 대중매체라는 점도 있지만. 이런 것에 모에적인 걸 내세우지 않음에도 그의 소설을 봐도 엄청 나이 어린 것에 대한 엘리트주의가 노골적이다. 은하영웅전설만 봐도 제국군이고 동맹군이고 40대 이상은 별로 없고 보통 20 ~ 30대다.[9] 제국군과 전쟁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던 링 파오만 해도 고작해야 우주해적 소탕이니 그런 일에 나섰을 뿐일텐데도 30대 초반에 이미 중장이자 함대 사령관이다. 물론 그걸 이상하지 않게 여기게 하기 위해서인지 다곤 성역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군으로 나오지만 차라리 선후를 바꾸어 다곤 성역 회전에서 승리한 장군이라는 설정을 만들기 위해서 30대 중장에 함대 사령관으로 나오게 하고 그것에 개연성이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래도 우주해적을 때려잡았다 정도로 나오게 한 듯하다.[10]

더불어 타이타니아도 그렇고 일곱 도시 이야기도 그렇다. 타이타니아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타이타니아 일족이 우주를 휘어잡아서 어린 나이에 출세 지름길을 간다고 쳐도 저항하는 이들도 20대~30대에 지휘관급이니 말 다했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별다른 공로도 없는데 능력 있다고 사령관 맡겨야 한다면 그에 맞게 진급시킨다며 거저로 장군에 올리지 않나, 그것도 한번에 2계급 진급해야 한다느니 그러다가 반발도 크다고 1계급으로 감안한다(...). 우주제일의 무책임 남자는 더하지만 20대 후반에 이미 장군이요, 32살에 중장이자, 사실상 전군 총사령관급이지 않나....등장 장군들 주역이 거의 나이가 똑같다. 물론 일곱 도시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갑작스런 정권교체와 그에 뒤따른 대숙청으로 군부의 높으신 분들이 대거 쓸려나가거나, 심지어 외적이 선전포고한 가운데 간부 대다수가 식중독으로 쓰러져 가장 계급높은 대령이 임시 사령관이 되었다든지 이런 상황을 설정하기는 했지만. 다나카의 소설 대다수가 거의 주역 나이가 그렇다(...). 특히 이중에 제일 압권은 다름아닌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으로 라인하르트 폰 뮈젤 시절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가 고작 17세였으며, 첫 계급을 부여받았을 때가 15세에 소위로 시작했음을 감안해보면 빨라도 너무 빠르다(...)[11]

단 위에 언급된 주인공들의 젊은 나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생각해볼 부분이, 은하영웅전설이나 일곱 도시 이야기를 쓰던 시기의 작가 나이가 주인공들의 연령대인 20~30대 초반이라는 점이다. 등장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작가의 필체상 주인공을 자신의 나이 또래 인물로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또한 이런 소설을 소비하는 독자층도 30대 이하 젊은 층들이 많기에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들과 비슷한 연령대로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5.1.2. 반론

작품은 민주국가의 양 웬리와 전제국가의 라인하르트라는 2인 주인공 체제에서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양 웬리의 사상을 훨씬 비중있게 나타내고 있다. 양 웬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그것이 중우정치로 변질되는 것을 혐오하는데, 중우정치로 변질될 수 있기에 민주주의를 혐오하는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기에 중우정치를 혐오하는 것이다. 작중에서 자유행성동맹의 멸망은 바로 양 웬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중우정치의 폐해로 보는 것이 맞지 '이러니까 민주주의는 안 된다'는 관점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눈여겨볼 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때 삼국지연의적인 요소를 작품에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목을 은하삼국지로 하려고 했을 정도로. 제국을 위(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졌으며 왕위를 찬탈한 새로운 왕조가 최후의 승자가 됨), 동맹을 촉(세력은 앞의 국가보다 약하지만 대의명분(은영전의 경우는 정치체제)에서 앞섬), 페잔을 오(제3의 세력. 실제로 작가는 페잔이라는 설정을 만들때 오나라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인증그래서 듣보잡인가)로 본다면 최후에 동맹이 쓰러진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소설의 주된 갈등을 민주주의나 독재냐와 같은 방법론적 갈등이 아닌 권위와 반권위라는 본질적 요소의 갈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은하영웅전설의 주된 갈등구조를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부패한 정권으로 상징되는 노쇠한 구 권위와 라인하르트로 상징되는 건강한 신 권위, 이에 더하여 양 웬리로 상징되는 반 권위간의 갈등으로 본다면 의회와 입헌제, 세습권력과 같은 신 은하제국의 특성은 신 권위가 스스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의 모색, 또는 모색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양 웬리라는 인물은 이에 대하여 모든 권위와 그 권위로 인한 권력에 대하여 반대입장을 취하는 일종의 이상론을 상징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도 살아서 점차 권위가 되고, 죽어서는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권위가 된다.[12] 신 권위 역시,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가 황후로서 섭정을 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극구 부정해왔던 "세습이 아닌 실력을 통한 권위"가 훼손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13] 또한 일시적으로는 로엔그람 왕조가 동맹을 쓰러트렸어도 이미 내부에서부터 전제주의가 가지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14]

같은 관점에서,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를 본다면 야쿠시지 료코라는 인물은 양 웬리와 같이 이상으로써 제시된 인물은 아니나 이 인물의 행동을 통해 현대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풍자되고 있는 것이다. 즉, 권위는 현실을 지배하며, 그 현실은 현실적으로 이상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담론이 현실과 현실권력, 현존하는 권위에 대한 풍자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모순을 품지 않은 인간은 돼지만도 못하다."라는 아르슬란 전기의 기술은 작가의 창작 태도 자체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작중의 주인공이 보이는 자기모순에 대한 설명인 동시에 모순과 고민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 대신 일사불란한 질서를 추구하는 기성질서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 이 문장이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을 읽어내는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양 웬리나 야쿠시지 료코를 비롯한 '엘리트' 등장인물들은 철저한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전통적인 근면성실한 군인상에 대한 대응으로 양 웬리는 낮잠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이며, 승리와 자기 의지의 관철로 상징되는 사회적 성취를 철저하게 비웃는 인물로써 심지어는 작전회의에서 졸다가 좌천당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사관학교 시절은 잘 하는 과목만 빼면 낙제를 겨우 면하고 그로 인해 졸업 등수는 겨우 중턱 수준의, 자기가 잘 하는 분야에 앉아 엘리트로 보이지 소위 시절에는 데스크 업무도 못하는 꼴통 취급받는 그런 인물이었다. 또한 야쿠시지 료코라는 인물은 커리어 관료로써 정부의 핵심구조에 속해 있으나 이 이름을 들을 때 경시총감을 비롯한 경찰 고위간부들이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대응하는 인물로써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 근면 성실하고 청렴하며 유능한 인물로써 제시되는 인물이 있으나, 이 인물들은 여러 형태로 희화화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청교도적인 경찰질서의 옹호자로 나오는 무로마치 유키코의 경우, 작중에서는 활약보다는 개그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라인하르트군의 기라성 같은 명장들은 위풍당당하고 존경받을만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부패한 구질서에 대항할만한 대단한 인물들임을 인정받지만, 양 웬리에게 돌아가며 털림으로써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즉, 현실의 방법론(정치체제로서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간주할 때 자기모순에 빠지는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들은 풍자로써 읽을 때 권위에 대한 일관적인 조롱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위에서 명시된 것처럼 요시키 자신이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리고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의 저항 때문에 무익한 피가 흐르고 우주의 통일이 늦어졌다'는 후세 역사가의 서술이 등장한다는 것이 작가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로써 인용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이는 해당 작품을 극히 단편적이고 편향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작중에는 앞의 서술과는 정 반대로 '양 웬리의 노력과 그 뒤를 이은 율리안의 노력으로 겨우 살아남은 민주공화정치의 씨앗이 우주력 800년대 후반에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서술도 나오는데, 굳이 양 웬리에게 비판적인 입장의 서술만을 찍어내서 그것이 곧 작가의 입장이라고 볼 이유가 있는가? 뿐만 아니라, 4권을 보면 은하제국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는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에 대해서 '제국의 내부 붕괴를 막아내고 재건의 초석을 쌓았다' 면서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 이후 1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동맹과 제국의 전쟁 책임은 제국을 재건시킨 그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서술이 작가가 명군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암군을 찬양한다는 증거가 되겠는가? 결국, 후세 역사가의 서술이라는 형태로 작중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소설에서 그 중 하나만을 찍어내서 작가의 역사관이 그렇다고 보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판인 것.

또한, 은하영웅전설을 비롯한 작가의 대표작들이 '라이트 노벨'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에 출간되었으니 흥행을 위해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라이트 노벨의 특성을 가졌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다소 무리한 주장이다. 일단 은하영웅전설 자체가 라이트노벨 장르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 작품임을 감안해야 하고, 대중적 인기를 위해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특성이 라이트 노벨만의 특성이 아님 역시 감안해야 한다. 이 점에서, 다나카 요시키가 선호하는 작품 스타일은 영웅담, 또는 영웅 중심 서사이고, 이런 영웅 중심 서사 스타일 자체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가능하겠으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영웅담이니 곧 작가는 반민주주의적 태도로 작품을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은하영웅전설에서 은하제국이 결국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제정치를 옹호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주의를 까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 작가는 민주정치란 어떤 것이고, 민주정치에서 어떻게 독재가 등장하는가에 대해서 민주정치와 독재를 끊임없이 대비시키면서, 독재를 어디까지 올려놓고, 민주정치를 어떻게 떨어뜨려야 비등해질 것인가에 대해서 비교한다. 이를 통해서 결국 다시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이상적 지도자가 다스리는 독재정치가 마침내는 전제 군주 정치와 손을 잡은[15][16] 민주주의 국가를 격파하고 승리한다. 은하영웅전설의 민주주의 vs 독재 부분을, 대중의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면 어느샌가 이상적 독재에 대한 추구가 등장하게 된다고 생각해본다면 이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은하영웅전설이 반민주주의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관점의 상당부분이 결국 본작에서 최후의 승자는 라인하르트의 은하제국이고, 양 웬리가 지키려 했던 자유행성동맹은 패배하여 멸망했음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떤 작품의 결말에서 승리하는 쪽이 꼭 작가의 관점을 대변하는 주동인물이라는 법은 없다는 점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극적 결말이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기에 수천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것이며, 본작의 결말 역시 비극적 관점에서 보면 '현대인 독자가 공감하기 쉬운 가치'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주인공인 양 웬리의 비극적이지만 영웅적인 최후(+그리고 그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후계자들이 보여주는 결말)로써 모범적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구성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결국 제국이 이겼으니까 반민주주의적인 작품이다>라는 식으로 단정한다는 것은 예를들어 <삼국지연의는 결국 위진의 삼국통일로 끝나니까 위빠 조위정통론에 기반한 작품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착한편은 이기고 나쁜편은 져야 한다"는 식의 유아적이고 평면적인 이야기 구성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역동성은 묘사되지 않으며 욥 트뤼니히트같은 선동가에 매국노를 찍어줄 정도로 동맹 시민들이 우민적 모습도 보여주지만 적어도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은 망각하지 않아서 구국군사회의 쿠데타에서는 20만명의 시민들이 집결해 반 쿠데타 집회를 열었고 이에 구국군사회의가 폭력대응에 나섰음에도 쫄아버리기는 커녕 똑같이 나와서 맨주먹이나 다름없는 시민들이 3천명의 진압군을 상대로 2만명이나 죽긴 했어도 진압군도 절반인 1500명이 맞아죽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나왔고 결국 자유행성동맹이 은하제국에게 망한 후에도 기회만 되면 들고 일어났다. 허나 작중에서 은하제국이 통치에 결격사유가 있었다고 나오진 않는다. 민주주의적 법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하자는 있지만 자유행성동맹이 존속하던 시기의 문제 있던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대거 처벌하는 등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했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저런 것은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에게 은하제국은 자유행성동맹의 정치인들보다 더 정치를 잘 했건 말건 그저 은하제국은 조국을 짓밟은 침략자에다 민주주의를 없앤 압제자에 불과했다고 인식되었고 멸망한 조국과 사라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나선 것이라는 해석 외에 나올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실제 정치 체계의 모순을 까면 깠지, 엘리트주의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은하영웅전설에서 동맹을 아무리 봐도 작가는 민주주의 자체를 까고 엘리트주의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약점을 파는 악용이 비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선출된 이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해 국민을 농락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지, 언제 다시 나올지도 모를 대단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5.2. 역사, 전쟁, 정치, 과도한 주인공 보정, 비현실성

역사나 신화를 양념으로 써서 소설을 쓰는 사람[17]치고는, 핏대 세우는 듯한 주의/주장에 비해 각개 현상에 대한 인식이 얕아서 역사 관련 교양이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까인다. 특히 과도한 주인공 보정과 현실성을 무시한 설정은 심하게 욕먹는 점이다. 보다보면 말도 안되는 어거지 전개라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아르슬란 전기에서 나타난 이상한 전투방식과 사기캐들을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주인공 세력인 파르스에 대한 우대가 심하다. 파르스가 기마민족이라며 주요 적국인 루시타니아와 다른 국가들을 사기적인 수준으로 쳐바른다. 또한 파르스군 개인의 전투력이 다른 나라 병사 6명을 거뜬히 상대한다는 설정은 정말 지나치다. 게다가 주인공의 나라인 파르스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선한 나라이며 대적하는 세력들은 전부 악당이거나 저능아들이다.파워 디플레[18]

은영전이나 아르슬란 전기나 양 웬리 또는 나르사스 등의 입을 빌려 전투는 충분한 보급과 장비의 개선, 양적인 우위 확보 내지는 극복, 병사들의 충실한 훈련도와 상하 신뢰관계 등을 강조하고 이른바 현란한 기책과 정신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거창하게 늘어놓고 전투만 돌입하면 개연성없는 현란한 기책을 마구 펼쳐놓는다. 특히 아르슬란 전기의 전투방식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개사기이다. 또한 무적인 전략은 없는데 나르사스랑 양 웬리가 하는 전략은 무적으로 무조건 성공하며 알아차리고 대응하는 것이 아무도 없다.[19] 세계 전사 어디를 참조했느니 말은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 전사가 아니다. 특히 아르슬란 전기의 전투는 일본 전국시대 영웅들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방식의 군담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일본 전국시대 군담 느낌이 많이 든다. 게다가 일곱 도시 이야기에서는 말도 안되는 병력 동원을 설정하여 비판을 받았다.

가령 작품 내 세계관의 기준에서 보아 중세의 왕족 신분인 아르슬란이, 자신들의 백성에 대해 근대적인 만민평등주의적인 시각[20][21] 을 아무 위화감 없이 보인다든가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 부분은 후에 아르슬란이 실제로는 왕족도 뭐도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완화되고 여기에 나르사스의 가르침 등 배경설명이 깔리긴 한다. 애초에 무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노예해방을 한 나르사스가 노예근성이 만렙에 달한 이들로 인하여 겪는 좌절이 작중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럼 또 이번엔 나르사스의 계몽주의적 사상의 출처가 뜬금없어진다.[22] 거기에, 2부 초반 부분에서 노예해방의 후속 대책으로 내놓은 게 실제 노예해방이라기보단 '노예로 떨어진 하층민 구제책'에 가까운 것이었고[23], 노예해방의 영향이라면서 보병 병력을 모으기 힘들어져 기병 중심의 소수정예로 군이 편성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우며 개연성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위의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들은 물론 분명히 존재했을 여러가지 잡음이나 부작용[24] 일절 언급되지 않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해결시킨 것처럼 - 그것도 '영명한 지도자들[25]의 지도력으로' 이룬듯한 행간으로 - 전개되었기에 더 심한 비판을 받았다.[26]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파악한다는 의심이 드러나는 또 다른 예가 소설 '창룡전'에 나오는 '우종족'의 설정. 이 부분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

역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교양이 있기는 한데, 이 사람이 좋아하는 시대는 금과 남송이 대립하던 시기이다. 실제로 악비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악비전'을 쓴 전적이 있으며, 자신의 소설 상에서 남녀관계가 대부분 '전우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고 이타카판 뒤의 인터뷰에서는 이에 대해 무의식중에 한세충과 양홍옥을 모델로 삼은 게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삼국지는 좋아하지 않으며(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시대보다 이 때가 더 유명하고 인기도 많아서인지도), 그 때문인지 유비제갈량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기술하기도 한다. 제갈량에 대해서는 "역사상 중국을 통일한 영응은 많이 존재하지만, 제갈량은 통일에 실패한 인물(歴史上中国を統一した英雄は数多く存在しているが、諸葛亮は統一に失敗した人物である)", "능력은 사마의보다 쳐진다(能力は司馬懿に劣る)"며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한 바 있다.[27][28]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은하영웅전설의 동맹과 구체제의 제국에 나오는 정도로 무능한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실제 예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허다하다. 결코 이러한 인물들의 무능함은 과장이 아니며, 반대로 양 웬리라인하르트 수준의 통찰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행력을 가진 인물들은 500년에 한번 나올 인물까지는 아니여도 실제로도 큰 공헌을 할 것이다. 군대를 이끌거나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는 것은 뻔해보이는 것도 전혀 뻔하지 않으며,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뻔해보이지만 성공적인 전략과 전술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현실에서 충분히 높게 살만 하다. 약간의 완벽하지 못한 묘사가 있다 해서 작가의 뜻이 희석된다 보기는 힘들다.

5.3. 반종교, 반기독교

근대 계몽주의에 피상적으로 심취된 나머지 작중 대다수가 반종교적 느낌이며 특히 기독교와 엮어서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기독교 안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중 은하영웅전설은 상당히 반기독교적인 서술을 넣는데 은하영웅전설의 배경에서는 90년 전쟁으로 기존의 종교가 힘을 잃었으며, 기독교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현존 기독교인들이 분노할 만하다. 또한 작중에서 신설한 자유행성동맹군 제13함대의 함대 숫자를 두고 불길하다는 설명을 할 때, 지구에서 사라진 종교의 교주13번째 제자에게 배신당한 것에서 전해오는 인식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기독교 입장에서는 신의 아들을 겨우 교주라고 써놓는건 둘째치더라도,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기독교에 대한 비아냥이라든지 미래에는 기독교가 아예 박멸되었다는 설정을 봐도 화날 법하다. 더불어 이름값을 못 하던 크리스티앙이라던가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아군까지 토르 하머로 날려버리면서 요새 함락은 막았지만 막대한 아군 피해를 낸 죄로 모가지당한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클라이스트 대장처럼 기독교적 이름을 지닌 인물들이 무능한 인물들로 나오기도 한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리우스 전역으로 지구통일정부가 멸망하면서 지구의 많은 것들이 설정이다. 그러나 불교나 이슬람에 대해선 아예 거론도 하지 않은 반면에[29] 기독교는 저렇게 사라진 종교로 나오긴 했다.

실제로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들에서는 종교를 적대적으로라도 다룬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기독교 안티 성향이 강한 또다른 작품은 아르슬란 전기이다. 그것도 십자군 전쟁 시기의 기독교를 빼다 박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경우이지만,[30] 사실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기독교인들조차 십자군 전쟁은 정치적인 전쟁일 뿐 정당하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특히 이 부분의 경우 아무리 주인공 보정이 있다지만, 파르스에 지나치게 많은 버프를 주어서 십자군 전쟁을 유럽인'만'의 일방적인 병크로 보는 일부 편협된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있다. 이 부분은 아르슬란 전기 문서를 참고하자.

그러나 꼭 기독교가 아닌 전체적인 종교로 이야기하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지구교같은 사이비 종교를 악의 축으로 다뤘다는 점.

5.3.1. 반론

일부 안티들이 작가의 반종교(특히 반기독교)성향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딱히 객관적으로 비판받을만한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다나카 요시키가 대체로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시선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가 속한 일본이나 대부분의 나무위키 독자들이 속한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속적인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는 국가들 대부분에서 종교란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며, 따라서 작가가 종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역시 창작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물론 작가의 관점에 대해 특정 종교의 신자들이 불쾌하게 여길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본인들이 해당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으면 될 일이지, 작가의 관점 자체를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비판할수는 없는 것.

물론 표현의 자유에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은 있고, 도를 넘은 비방이나 사실관계의 왜곡과 같이 지나치게 악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경우라면 객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나카 요시키의 종교관이 그렇게까지 공격적인 반종교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은하영웅전설에서 드러나는 반종교적 서술이란 90년의 혼란기 당시 종교는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공헌하기보다는 오히려 증오와 폭력을 부추겨 갈등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 결과로 혼란기가 수습된 이후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고 몰락하였다는 배경서술이나 그래서 기독교 역시 작중 배경 시대에는 잊혀진 종교가 되었다는 묘사 정도 뿐으로, 이외에 특별히 어떤 종교나 교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31] 이 정도의 서술까지 '현존 기독교인들은 기분나빠할 것이다' 라고 문제시한다면 그 사람들을 기분나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작품이건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해서는 안 되고,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 그리고 작가를 편향적인 반종교주의자로 낙인찍기에는 저런 근거들이 너무 빈약하니 본 문서처럼 부정적인 인물 중 두어명의 이름이 기독교적이라거나, 은하영웅전설/비판 문서처럼 <환란이 있으면 종교가 위세를 얻어야 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 인데 환란을 겪으며 종교가 몰락했다는 것은 정합성이 어긋나는 내용이다> 같이 온갖 트집거리를 억지로 찾아내고 지어내게 되는 것. 당장 이름 시비만 보더라도, 안 그래도 등장인물 많은 소설에서 그만큼 많이 등장하는 것이 무능하고 부정적인 인물상들이다. 그중에서 특별히 다른 악역보다 눈에 띄지도 않는 단역 2명의 이름이 기독교적이라고 해서 기독교 안티라는 낙인을 찍으려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기독교적 이름을 가진 인물을 악역으로 등장시켜 기독교를 조롱할 의도였다면 왜 작중 최대의 악역인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이름을 기독교적으로 짓지 않았다는 말인가? 게다가 '클라이스트'나 '크리스티앙' 같은 이름이 안 그래도 기독교 전통에서 기반한 이름이 많은 유럽어권에서 특별히 기독교적인 이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다른 작품인 아르슬란 전기를 볼 경우, 일단 이 작품에서는 이알다보트교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르슬란 전기의 경우는 종교 이전에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좋은 편/나쁜 편이 명확히 갈리는 평면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종교뿐 아니라 파르스에 대한 것들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루시타니아에 대한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역시 특정 종교 자체에 대한 비하라기보다는 작품 구성이 가진 특징 및 한계로 볼 여지가 큰 문제이며, 무엇보다도 작중 등장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닌 이알다보트교이다. 현실에서 모티프를 얻은 가상의 대상을 현실에 실존하는 대상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것.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에서는 종교에 대한 언급이 잦은 편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비중이 높거나 서술이 상세한 편은 아니며,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집요한 악의를 가지고 비하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다나카 요시키 작품에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초점은 종교나 교리 그 자체보다는 '광신성'에 맞춰진 편이고, 많은 종교들에서 종종 일부 광신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 것 역시 사실인 것. 이런 정도의 부정적 서술조차 반종교주의적인 입장이라고 낙인찍고야 말겠다는 것이야 개인의 자유겠지만, 이런 태도를 객관적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판론에서는 작가를 "근대 계몽주의에 피상적으로 심취된 나머지 작중 대다수가 반종교적 느낌" 이라고 조롱하고 있으나, 실상은 이런 비판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오히려 종교를 절대시하는 중세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역으로 비판할수도 있는 것. 이런 비판론자들의 구미를 만족시키려면 작품에서 종교, 그리고 종교와 관련된(심하게는 종교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사소한 부분이라도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부정적인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 정도면 무슨 군사독재시절 문화검열만큼이나 지독한 독단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

5.4. 연중작가

생계형 작가가 돈을 벌면 도달하는 최종형태.

연중을 잘 하기로 소문난 작가. 《은하영웅전설》과 국내 미발매 된 《마바르 연대기》를 제외한 대부분 장편소설들이 십수년간 연중 상태로 있었다. 작가 본인도 마감 건망증이라고 밝힐 정도로 완결에 대해선 개념이 희박한 면이 있다. 덕분에 팬들에게 대차게 까이는 중. 심지어 《아르슬란 전기》의 경우 발간 도중 출판사와 판권 계약이 종료되어 타 출판사로 이적하여 간행하다가 끝을 맺었다.

아르슬란 전기는 1986년부터 출간한 작품으로 1부 완결까지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2부 들어 집필 속도가 느려지더니 2008년 13권 출간 이후 6년 만에 14권이 나왔으며, 16권 완결까지 31년이 걸렸다. 타이타니아1988년부터 집필한 작품이지만 3권 발매 후 4권이 나오기까지 22년 걸렸고, 5권 완결까지 27년 걸렸다. 빅토리아 괴기 모험담 시리즈도 3권 완결까지 10년 걸렸다. 심지어 창룡전1987년부터 집필했지만 2003년 13권 발매 이후 무려 십수 년을 후속권이 발매되지 않았다가 2020년에야 겨우 15권으로 끝맺으며 33년 만에 겨우 완결. 2010년대 이후 들어 오래간만에 완결하는 작품이 늘고 있다.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이렇게 장편 작품들을 방치하다시피 해서 일부 작품은 원안으로 물러나고 신인 작가들이 대신 집필하기도 했지만 이들도 연재중단 되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원안으로 물러나서 완결된 작품은 KLAN 밖에 없고, 나머지는 2000년대 들어 죄다 연중되었다.

이러한 지금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은하영웅전설》을 쓸 당시에는 집필 속도가 빠른 작가였다. 당시 대학생이었기에 학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 은하영웅전설은 정전, 외전 합쳐서 총 14권을[32] 단 6년 8개월 만에 완결지었다.

이렇게 연중을 자주 했지만 그 이상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매년 2~3권은 출판했다. 위의 작품 목록에서 보듯 수많은 단편과 단권 소설을 썼고 다른 작품의 원안도 많이 맡았으며 에세이도 많이 썼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장편, 시리즈물을 모조리 연중한 데다가 한국에서는 아르슬란 전기의 출간 정지에 창룡전 등 관심되는 책이 제한되어 있어서 더더욱 연중작가 이미지가 굳어졌다. 작가도 소설 후기에서 셀프디스 한 적도 있고.

6. 기타



[1] 출생 당시 혼도시.[2] 다만 1권만 이 작가 거고 이후로는 다른 작가가 썼다. 희대의 낚시(...)인 2권부터는 필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거다.[3] 다만 대부분 온전한 애니화가 된 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다.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는 오리지널 스토리고 일곱 도시 이야기는 전체 스토리가 아닌 일부분만 애니화되었고 타이타니아 이야기는 사실상 은하영웅전설의 짭퉁같은 이야기라 처음부터 그리 인기가 있지 않았다.[4]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왕국으로, 수도는 샤를 로텐부르크이다.[5] 다나카 요시키가 쓴 단편과 미야베 미유키, 아야쓰지 유키토, 시마다 소지 등 미스터리 소설가 8명이 쓴 단편 8편을 합친 미스터리 소설 단편집.[6] 물론 양 웬리의 경우 우리가 일상적으로 '엘리트'하면 생각하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군 장성이자 고급 지휘관이며 후반부에 가면 사실상 국가 원수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엘리트 이론으로 따져봐도 확실히 엘리트다. 아르슬란 전기의 개혁가라는 나르사스 역시 서자일뿐이지 귀족 교육을 받았기에 어디까지나 양 웬리처럼 엘리트이다.[7] 물론 동맹 멸망 후에도 동맹령에서 시민집회가 자주 열려서 동맹 시민들의 저항을 보여주지만, 결국 이것이 제국의 통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제국에 입헌주의란 요소를 각인시킬 수 있던 것은 결국 율리안이 이끄는 이젤론 군의 무력 돌파였다.[8] 물론 이 당시의 자유행성동맹 자체가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처럼 워낙에 막장 테크를 걷고 있는 상황인 것은 맞지만. 애초에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가 결국에는 막장으로 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9] 있긴 해도 대다수는 무능한 이미지로 나오거나 결국은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극히 드물게 시드니 시톨레알렉산드르 뷰코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좀 더 하위급 혹은 비중이 낮은 인물로 가면 랄프 칼센, 라이오넬 모톤같은 인물들도 있긴 한데 말 그대로 비중이 적은 수준 최소한 '주인공 집단'인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이나 양 웬리 함대에서는 40대 부터는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어진다.[10] 사실 당시 자유행성동맹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군공을 얻을 수단은 우주해적 토벌밖에 없긴 했다. 마땅할 적국인 은하제국과는 맞닥뜨리지도 않았기 때문[11] 아무리 좋게 봐줘도 2년만에 6계단이나 진급하는 것은 비정상이다.[12] 이를 희극적으로 묘사하는 것 중 하나가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에서 양 웬리 만세를 외치는 구 동맹 시민들이다.[13] 이상하게도 세습을 통한 권력 획득을 좋지 않게 보는 라인하르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이미 5백년간 혈통 세습을 당연시하던 제국의 사회상에서 보면 라인하르트가 주장한 '세습 부정'쪽이 극단론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하다. 게다가 라인하르트 사후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실력을 통한 계승'을 시도한다는 것은 사실상 군사정권인 라인하르트 정권의 성격까지 생각하면 라인하르트 막하의 숙장들이 정권을 둘러싼 대규모의 내전을 벌인다는 것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양과 라인하르트가 모두 살아있던 당시, 위기에 처한 동맹을 구할 마지막 수단은 라인하르트를 전장에서 쓰러트리는 것이며, 라인하르트를 전사시킬 경우 적절한 계승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 막하의 제독들은 차기 최고권력자 자리를 두고 내전을 벌이기 위해 제국으로 귀환할 것이다, 따라서 동맹 침공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을 것이며 심한 경우 본토로 귀환하는 와중에 경쟁자를 손쉽게 제거하기 위해 그 정보를 양에게 넘겨 차도살인을 시도하는 이가 나오는 상황까지도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작중에서 나온다.) 따라서 라인하르트의 혈통을 내세운 세습 외에는 대규모 내전으로 인한 유혈사태와 신 제국의 사분오열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 사실은 이 자체가 라인하르트의 신 권위, 즉 신 제국 체제가 전제주의로써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14] 이미 이 점에 대해서는 양 웬리가 라인하르트에게 직접 지적한 적도 있다.[15] 자유행성동맹은 마지막에 은하제국 황제인 요제프 망명정부와 손을 잡는다. 이 시점에서 자유행성동맹은 민주주의라는 명분도 상실한 것이다. 이건 마치 북한에서 내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국가가 그나마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김정은의 아들이 망명해오자 대한민국 정부와 일반 국민들이 김정은 아들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같이 북한을 공격해서 김정은 아들을 4대 세습시켜주려고 하는 꼴이다.[16] 다만 은영전 팬덤의 역사도 길어지면서 <동맹정부가 에르빈 요제프를 옹립한 명명정부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를 잘못이라고 평가하는 의견은 기본적으로 동맹 정부의 입장에서 라인하르트의 새로운 제국 정권이 구 은하제국 정권보다는 더 나은 상대, 예를 들어 합리적인 대화와 공존이 가능한 상대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작품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라인하르트의 집권 직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이라는 기상천외한 대규모의 군사적 침공이 벌어진 것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동맹측의 입장에서 보면 라인하르트 역시 '동맹과의 공존의사가 전혀 없는 군사적 모험주의자'이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제국은 여전히 동맹을 정복하려는 야욕에 불타고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적'일 수 밖에 없는 은하제국을 상대하는데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라도 더 확보해두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다. 비판적인 의견처럼 제국의 체제전환을 '북한 내부에서 일어난 정권 변화'에 비유한다면 김정은 정권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김정남이나 김한솔의 망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유하는 쪽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국 내부를 기준으로 보면 라인하르트의 신정권이 문벌귀족의 구정권보다 훨씬 나은 정권이겠지만, 제국의 군사적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동맹의 입장에서 라인하르트는 유능한만큼 더 위험한 적일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망명정부는 속마음이야 어쨌건 입헌군주정 도입을 약속이라도 한 데 비해, 라인하르트의 체제는 어디까지나 '선의의' 전제군주정에 머무르고 있었음도 감안해야 하는 것.[17] 예를 들어, 아르슬란 전기의 관련 설정들은 십자군 원정 시기 역사와 중동 지방 역사, 페르시아 신화를 기반으로 만든 흔적이 많이 보인다.[18] 이러한 시각은 근대 이후로 형성된 서구에서의 과거사(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등) 반성과 그로 인한 중동 지역에 대한 고평가 바람이 작가에게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지금도 국내의 교양 서적에서 '십자군=닥치고 악당'이라는 묘사가 많은데, 이 역시도 아르슬란 전기에서 파르스가 지나치게 선하게 묘사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실제로 십자군 전쟁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마냥 악하다고 몰아가기에는 심히 곤란한 전쟁이다. 자세한 것은 십자군 전쟁 문서를 참조해보자.[19] 작중에서 나르사스와 양 웬리의 전략을 보면 노련한 전략가일 경우 이 둘의 전략에 잘 대처할수 있으며 오히려 적에게 당하기 쉽다.[20] 이런 생각이였다면 노예제 폐지뿐만 아니라 귀족제도 폐지해야 한다. 그런데 아르슬란 전기에선 귀족제는 죽어도 폐지안한다. 또한 나르사스와 그의 어머니가 평민이며 서자로서의 당했던 차별이 나오는데도 이것도 개선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언급이 하나도 없다. 그러고도 만민평등주의적인 시각을 주장한다는게 독자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다만, 아르슬란이나 나르사스가 근대적인 의미의 계몽주의자나 평등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노예들의 열악한 처지를 보고 그들을 동정했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단순한 동정심이라기에는 나르사스의 인권 개념이 '어중간하게' 진취적이다.[21] 그런데 근대 계몽주의는 사실 만민평등주의는 아니었다. 당장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는 여성차별적인 시각을 대놓고 표방했으며, 여타 근대 계몽주의자들도 이와 시각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외에도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수구꼴통, 반동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는 사상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22] 이 때문인지, 아라카와 히로무가 코미컬라이즈 중인 아르슬란 전기 만화의 경우, 1화에서 아르슬란과 루시타니아 포로였던 에스텔과의 대화를 통해 파르스 사회가 노예제를 당연시하는 것을 비난하는 장면이 들어갔다. 다만 에스텔의 대사가 웃긴 것이 자기 종교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두 평등해라는데, 다음 컷에서 '그런 종교를 믿지 않고 신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이교도는 차별하고 죽여도 된다'라고 해서 아르슬란의 냉소를 받는 것은 차처하고, 루시타니아는 귀족과 농노가 엄존하는 계급제 사회다. 그런데 그거 안 따지는 에스텔은 어디서 튀어나온 혁신파인가. 정신가고 횡설수설하는 소년에게서 노예해방 출처를 얻었다고 보면 이건 이것대로 웃긴데(...) 다만 에스텔이란 캐릭터가 광신에 빠졌다가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캐릭터인 만큼, 저 대사는 성서의 말씀을 앵무새 마냥 읊조렸을 뿐인 광신도적인 발언으로 봐야한다.[23] 고려 광종이 실시했던 노비안검법과 같은 제도이다. 귀족들의 힘을 줄이고 왕권을 강화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법을 시행하는데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기에 광종이 귀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야 했다. 결국 광종이 죽고나서 성종 때 노비환천법으로 양민이 된 노비들이 다시 노비로 전락함에 따라 광종의 노예해방은 실패한다.[24] 노예해방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했기에 노예해방을 추진한 개혁가들이 이 기득권층과 싸우고 노예해방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엄청난 개고생을 했다. 더군다나, 노예 해방이란 것은 해당 사회의 '상식'과 '시스템', 혹은 '성장 동력'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하는 대사업으로, 현실에서도 산업혁명 등의 여파로 인해 더 이상 인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생산 방식이 도래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시행되고 보편화되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25] 이전 각주에서는 타국의 왕들을 들먹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들은 아르슬란을 필두로 한 나르사스 등의 '파르스 내 지배층'을 얘기하는 것.[26] 이것 때문에 엘리트주의뿐만 아니라 전제주의를 찬양한다는 비판도 심하게 받았다.[27] 자신의 저서인 <중국무장열전>에서 언급한 말.[28] 아르슬란 전기에서 아르슬란이 유비의 위치이고 그의 부하인 16익장들이 유비의 충신들의 위치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후한 광무제와 운대 28장에 더 가깝다.[29] 엄밀히 말하면 이슬람이 딱 한 번 언급되긴 한다. 페잔 점령 작전으로 졸지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은하제국 정통정부 내각 각료들이 과거 무슬림들이 싸우던 도중 한쪽에서 코란 원본을 내걸자 반대편이 싸움을 멈추고 도망친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어린 황제가 있는데 어찌 병사들이 총을 겨누겠나고 희망고문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과 달리 은하제국군은 황제에게 총구를 겨누길 주저하지 않았다.[30] 그런데 작중 나오는 이알다바오트 교의 겉모습은 기독교스럽지만, 사상은 유대교, 이슬람교와 더 흡사하다.[31] 반대로 은하연방의 타락과 몰락에 대해서 역사가 E.J. 매킨지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이는 종교의 부재가 원인으로 절대적인 구세주가 없다고 여기기에 연방의 전성기에는 적극성의 동력이 되었으나 연방의 쇠퇴기가 찾아오자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준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32] 단편집 《황금의 날개》 제외.[33] 이 에어컨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에어콘이 아니다. NBC방호를 위해 장착하는 양압식 공기 조절 체계를 의미한다. 내부의 압력을 일반 대기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기압으로 올림으로서 NBC오염으로 부터 어느 정도 차단하는 효과를 부여하는 장비라고. 이 부분을 정확하게 말하면 90식 전차를 탈취하여 달리는 도중 전차 바닥에서 물이 새는 장면에서 나온다. 하부 장갑이 약하다는 빈정거림인데, '그래도 시원하게 왔잖아'라는 식으로 역시 비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