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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4:02:11

진순신

1. 개요2. 특징3. 평가4. 여담5. 주요 저서


陳舜臣(チン・シュンシン)[1]

1. 개요

일본소설가 및 역사저술가. 1924년 2월 18일 ~ 2015년 1월 21일 (향년 90세).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4년 일본 고베에서 출생한 대만 본성인 출신 대만계 일본인이다. 본적은 타이베이. 1990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2. 특징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풀어내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당대 일본 최고의 문학가 중 한명. 주요 분야는 역사, 추리소설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중국계 작가라는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정통 한문과 명, 청 시대의 백화는 물론 현대 중국어에도 능할 뿐 아니라, 힌디어페르시아어까지 공부한 언어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런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25왕조의 정사를 모두 독파했을 뿐 아니라 중국사, 중국 사상에 관련된 수많은 사료를 섭렵했고 15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집필했다.

생전 '아편전쟁', '청일전쟁', '소설 십팔사략', '태평천국', '칭기즈 칸 일족', '비본 삼국지', '중국역사단편집', '소설 제갈공명' 등의 작품을 저술했다. 국내에도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다. 때문인지 한국에서 다수 작가들이 진순신의 책을 참고했고 이를 넘어 베끼는 경우도 있었다. 모 무협작가는 중국 의협전에서 어린아이가 자기 혀를 씹는 장면을 베꼈다가 재발매하면서 삭제한 적이 있고, 1980년대에 출판되어 여전히 팔리고 있는 모 출판사의 "이야기 중국사"는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현재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로 정식 발간)를 불법 번역한 책이기도 했다. 사실 완역도 아니고 발췌 번역판에 가까운데 아직도 팔리고 있다.

독자의 개인별 감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술하는 방식이 지극히 차분하여 역사에 대해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재미없게 여길수도 있다. 특히 멋진 전쟁 장면이나 화려한 영웅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책을 집은 독자라면 확실히 실망하게 될지도.

3. 평가

진순신의 역사 서술은 중일 분야에 치중되어있다보니, 일부 역덕들은 빈약한 한국사에 분량에 대해선 비판하기도 한다. 진순신의 임진왜란 관련 서술을 보면 조선의 자체적인 노력은 거의 배제된 채 일본의 압도적 무력과 명나라의 도움만 강조되어 있고, 당나라 관련 서술을 보면 고구려백제 멸망에서 당나라와 일본이 준 영향만 부각되어 있다. 물론 나당전쟁 역시 매우 중요한 맥락인데 통째로 사라져 있고, 중국의 군주들은 이름이나 시호, 묘호로 칭하는 반면 한국의 군주들은 그냥 이름만 언급할 때가 상당히 잦다.

물론 활동 배경을 고려한다면 해명할 거리는 있다. 20세기 후반까진 서양은커녕 중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조차 전통적인 한반도 국가들을 중국의 번국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외 동아시아학에서도 한국이나 한반도 국가들에게 그나마 의미있는 지분이 있게 된 건 대략 2000년대 이후부터며, 그 전에는 중국/일본을 이야기하면서 곁가지로 곁들이던 정도였다. 한마디로 진순신이 딱히 반한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미흡했다기보단 그가 교육받거나 활동하던 시기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딱 그 정도였다.[2] 더욱이 일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급상승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분기점이었고, 이후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 드라마와 이후 K팝 열풍까지 더해지며 일본 사회에 자리매김한다.

전문 역사서로 쓴 게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교양역사서지 역사소설로 쓴 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자기가 모르거나 관심 없는 부분은 중요한데도 마구 누락하는 건 역사 관련 저술에 있어서 큰 결함이긴 하다. 물론 진순신과 당대에 살던 일본인들의 한국이나 조선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았다.

진순신의 서술 태도와 대비될 정도로 한국사의 비중이 커진 일본의 동아시아 역사서나 대중역사서들도 사실 진순신의 아들이나 손자뻘인 1940~70년대생들이 쓴 것이며, 진순신의 동년배들인 일본 작가들의 수준은 그 정도이다. 예를 들어, 시바 료타로가 펴낸 여러 역사소설에도 한국이나 조선의 비중은 지나가는 수준이며 주체성은 전혀 없고 외세에 시달리는 대상으로만 나타난다.[3] 기본적으로 진순신은 중국-일본사 전문 저술가였고, 그의 독자들인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그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에서 펴낸 동아시아사도 한국/조선은 건너가는 수준이다. 이렇게 진순신의 한국사 경시가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오류나 결함이라고 보일 수 있을 것이지만, 이는 시대의 한계이며, 그가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4. 여담

진순신보다 오히려 더 유명한 작가인 시바 료타로의 오사카 외국어학교 1년 선배로 재학 중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으나 이후 자주 엮이게 되었다. 역시 이 학교 출신인 서석연이 이 사람의 작품을 많이 번역하였다.

5. 주요 저서



[1] 참고로 진순신의 '순신'은 충무공 이순신의 성명과 한자까지 똑같다. 그래서 언젠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 분들 중 저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충무공을 거론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2] 이는 한국도 역사 분야에서는 비슷한게, 동아시아사 하면 중국사 위주로 배우지 일본사를 꿰뚫고 있는 한국인들은 드물다. 또한 중국 본토와 수교 전까지 대만이나 일본을 통해 중국사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중국의 명청시대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한국인이라면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명청시대와 동시대인 일본의 아시카가나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구분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3]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 다룬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을 보면 이런 일본인들의 심리가 딱 드러난다. 현재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개전원인은 대체로 조선을 먹기 위해 일본이 청, 러시아와 대립한 것이지만,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안보를 위해 청,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한 예방전쟁 수준으로 묘사한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이렇게 조선의 자리는 거의 없으며, "착한 일본인"이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했다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