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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가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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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노건호 | |||||
손녀 노서은 | |||||
[1]: 권오석의 딸. |
<colbgcolor=#000><colcolor=#fff> 노건호 盧建昊[1] | Roh Geon-ho | |
출생 | 1973년 5월 6일[족보상] ([age(1973-05-06)]세) |
부산광역시 | |
본관 | 광주 노씨 (光州 盧氏)[3][4] |
부모 | 아버지 노무현, 어머니 권양숙 |
형제자매 | 여동생 노정연 |
배우자 | 배정민[5] |
친인척 | 매부 곽상언 백부 노건평 |
자녀 | 장녀 노서은[6] 차녀 노영진 장남 노하진 |
학력 | 부산대천중학교[7] (전학) 윤중중학교 (졸업)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이과대학 (화학 92 / 중퇴)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96 / 학사[8])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베이징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국제경제학 / 박사과정 수료) |
병역 | 육군 제27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9] (1993년 3월 16일 ~ 1995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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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문.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장남.2. 생애
1973년 5월 6일 부산광역시에서 아버지 노무현과 어머니 권양숙 사이에서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노신걸(盧信傑)이었는데 1979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의 허가로 현재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부산광역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대천중학교에 진학했다. 1988년 아버지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상경하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윤중중학교로 전학했고, 졸업 후 여의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92년 2월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2년 3월 동국대학교 이과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3년 휴학을 하고, 1993년 3월 16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이후 제1야전군사령부 제102보충대대를 거쳐 강원도 화천군 소재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제78보병연대(독수리연대) 제3대대 지원중대 화기소대에서 60mm 박격포병으로 복무했고, 1995년 5월 18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전역 후인 1998년 전혀 다른 전공인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96학번)로 편입학했다. 나중에 편입 관련 논란이 나왔을 때 노건호가 1996년에 편입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반론이 나왔는데, 노건호가 편입한 시점은 1998년이다.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되면 2년 전 학번이 주어지므로 1998년에 3학년으로 일반편입한 경우 96학번을 부여받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언론에는 동국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전역 후 재수하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 신입학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으며, 실제로는 편입학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당시 이 편입은 연세대 익명 커뮤니티[10]에서 엄청 논란이 되었다.
당시 연세대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엄격한 전공 편입시험으로 편입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주로 타학교 해당 학과 수석급들이 연세대학교로 편입해 왔다.[11] 그런데 노건호는 전혀 다른 전공으로 편입했는데, 이게 당시 연세대학교 편입 제도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기학과였던 법학과 편입은 엄청나게 경쟁률이 높았고, 특히 당시는 사법시험 제도가 있었는데, 몇 명 뽑는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편입이 천 명을 뽑던 사법시험보다 합격이 더 어렵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사법시험 합격 후에도 학벌이 작용하기 때문에 사법시험 공부 중에 굳이 연세대학교 편입 시험을 보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편입 제도가 사실상 없었고[12], 당시 고려대학교는 전공시험이 아니라 영어 시험으로 편입생을 선발했었기에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편입으로 몰렸었다. 그래서 한동안 연세대학교 내부 커뮤니티에서는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당시 노무현을 지지하며 쉴드치는 사람도 많았고 이슈화되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여론 등으로 묻히며 연대 밖으로는 이슈화되지 않았다.
2004년에 현직 연세대학교 총장인 김우식이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발탁되었다. 1998년 노건호가 연세대에 편입했을 당시 김우식은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이었다. 당시 총장은 의학과 출신 김병수 총장이었는데, 의대 출신 총장은 비의대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연세대의 암묵적인 전통 때문에 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의 학사와 행정은 김우식 부총장이 사실상 책임지고 있었다.[13]
김우식은 90년대부터 기여입학제를 주장하여 연세대 학내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던 인물인데 연세대 총장 재임 시절 연세대에 (수십억원 상당의) 금전적[14] 혹은 정신적[15]으로 기여한 인물의 자녀를 연세대에 입학시켜 주겠다는 내용의 기여입학제를 추진했다. 이미 총장이 되기 전 후보 시절과 부총장 시절부터 줄기차게 기여입학제를 주장하였고, 총장이 되자 2003년부터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하여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김우식의 기여입학제 추진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이건 도저히 아니다라며 큰 비난을 받았다.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과는 완전히 상극인 것으로 보이는 정치 성향을 지닌 인물이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및 부총리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물론 김우식은 비서실장과 부총리는 역임하는 동안 대통령과 정권의 정치적 스탠스에 보폭을 맞췄다.[16]
공교롭게도 김우식이 부총리를 역임하고, 참여정부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던 2007년 말 후임 연세대 총장이 돈을 받고 편입시켜 준 비리에 연루되어 불명예 사퇴하는 흑역사가 발생하였다. 편입학 의혹 정창영 연대총장 사퇴 당시 연세대 편입 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은 특별감사 결과 연세대에서 무더기 편입학 부정 단서가 포착되었다고 밝혔다. 檢, 연세대 무더기 편입학 부정 단서 포착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에 연세대 편입비리를 기소하지 않고 덮어 버려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한겨레) 연세대 ‘편입비리’ 기소않고 덮나
한편, 노건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2년 5월 LG전자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하여 같은 해 7월 입사했다. 2002년 12월 연세대학교 후배인 배정민과 결혼했다. 2006년 9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MBA 과정 유학을 위해 무급 휴직을 했고, 2년간 자비로 유학하여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하여 2008년 10월 복직했다. 2009년 1월 LG전자 미국법인 과장으로 발령되어 이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검찰청의 조사를 받기 위해 2009년 4월 귀국했고, 같은 해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는 장례를 치르고 노무현재단과 관련한 일을 정리하느라 다시 휴직계를 제출하고 한동안 봉하마을에 머물렀다. 2009년 10월 복직해 미국법인으로 돌아갔고, 2011년에는 중국 베이징시에 있는 중국법인으로 발령되어 차장 직급으로 근무했다.
2013년 9월, 베이징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국제경제학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고 알려졌다. LG전자를 퇴사하고, 베이징대학에 유학을 갔다고 보도한 언론기사가 있는 반면 LG전자 중국법인 소속으로 있으면서 베이징대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보도도 존재한다. LG전자를 퇴사했다가 LG전자 중국법인에 재취업한 것일 수도 있다.[17]
이후 학위 취득 여부는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며, LG전자 중국법인에서 부장으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3. 논란 및 사건사고
3.1. 박연차 게이트
대검 중수부(부장 이인규)는 14일 박연차가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500만 달러 중 300만 달러가 노건호가 대주주로 있는 창업투자회사인 '엘리쉬앤파트너스'에 투자된 사실을 확인했다.타나도인베스트먼트는 연철호(36)가 설립한 창업투자회사이며, 엘리쉬앤파트너스는 노건호가 대주주로 있다. 검찰은 건호 씨와 연 씨가 박 씨에게서 전달받은 500만 달러를 서로 분배했을 것으로 봤다. 검찰은 이미 연 씨 등한테서 "500만 달러와 관련해 건호 씨와 돈을 받는 방법을 사전 논의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 권양숙 여사가 미국에 살던 아들 노건호에게 유학 자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당시 미국에 근무하던 국정원 고위간부가 직접 개입한 사실을 국정원 보고서를 통해 검찰이 확인하기도 하였으나[19] 노무현 대통령 사후 노건호와 관련된 수사는 모두 중단되었다.
- 10년이 지난 2019년 7월에 노건호가 이 시기에 호화생활을 했다는 누명을 씌운 기자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시키고자 거짓된 기사를 실었단 고백을 했다.기사페이스북 해당 게시글에 따르면 LG 외에도 국정원, 검경이 모두 연루되어 모함한 정황이 확인된다.
3.2. "김무성이 노무현 죽음으로 몰았다" 발언
2015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연설 중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겨냥해 "특별히 감사를 드릴 손님이 왔다"며 "전직 대통령이 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을 안 하려나 하는 기대도 생기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처벌받거나 반성한 일이 없으니 헛꿈을 꾸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한겨레YTN
이에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다 적절하고 필요한 말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추도식에 온 손님에 대한 예의나 이런 것들은 종합적으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고, 정치권에서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이어졌다. 일요신문
현장에는 마침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김무성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김무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다가 놀란 표정의 문재인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압권이다.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무성이 문재인에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 알고 있었어?"라고 얘기하자 문재인은 "아니, 나도 몰랐어."라고 부정했다고 한다. 둘이 정치적으론 대립했지만, 사적으로는 경남중학교 동문으로 친분이 두터워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
4. 여담
- 위의 김무성 저격이나 후술할 삭발 건에서 볼 수 있듯 한국사회 기준으로는 상당히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긴 언론노출 기간 동안 직접 발언이 몇 번 나온 적이 없는데도 아버지보다 더 짓궂은 유머와 센 발언을 잘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 혈통적 상징성뿐만이 아니라 언변과 스타성까지 결합되어 있는지라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부터 정계입문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본인은 2015년 정치할 생각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LG 중국법인 부장이면 직장인으로 상당한 위치라 당장 22대 총선에서는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28년 23대 총선 때도 55세밖에 되지 않아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노건호가 정계입문을 하지 않는 이상 노무현의 가족 중 정치적 계승 이미지는 곽상언이 보여주고 있다.
- 2017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삭발한 채로 나타나 큰 화제를 모았다.[20] 본인 말에 의하자면 헤어스타일 변화가 있었는데 정치적 의사 표시가 아니고 사회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의도도 아니다. 심한 탈모 때문에 민 것이라고 한다.[21] 전국의 탈모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며 추도사 도중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다음 해인 2018년 9주기 추도식에서는 탈모를 치료했는지[22] 다시 풍성한 머리숱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머리가 다시 났습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23] # 물론 탈모갤로부터 욕 먹는 건 못 피했지만(…).
- 2018년 10월 4일, 10.4 선언 기념으로 이해찬, 조명균 등과 함께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이로써 2007년 남북정상회담 주자들[24] 2세[25]끼리의 만남이 성사되는가 싶더니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 부자 관련 군복무 논란이 전혀 없다. 다만 전방지역 특성상 부자 간의 근무지가 GP/GOP냐 FEBA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노무현은 12사단에서 상병으로 만기전역했고, 노건호는 27사단에서 만기전역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YTN 돌발영상에서 자신의 출신 부대를 방문 했을때 일화를 풀었는데, 자기 아들 휴가왔을 때 "고참들이 '요새 군대 좋아졌다'는 소리만 한다" 라면서 푸념을 늘어 놓더니 시간이 흘러 노건호 자신이 말년 병장이 되더니 "아버지, 요새 군대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하더라며, "그런거 보면 바뀌고 있는건 맞나봐요" 라면서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본인도 선임으로부터 그런 발언을 똑같이 들었으며, 자신이 고참이 되었을 때도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면서 덧붙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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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이름은 노신걸(盧信傑)이었는데 1979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의 허가에 의해 노건호(盧建昊)로 개명되었다.[족보상] 1972년 12월 6일.[3] 광주군계 매죽와공파 32세손 태○(泰○) 항렬. 족보명 노태윤(盧泰潤).(족보)[4] ▶ 광주 노씨: 도시조 수(穗), 관시조 해(垓) ▶ 광주군파: 1세 만(蔓) ▶ 규정공(영남)파: 8세 승조(承肇) ▶ 매죽와공파: 18세 극성(克誠) ※ 광주 노씨 광주군파의 항렬자는 8세를 기준으로 큰집 승조의 규정공(영남)파와 작은집 승관의 헌납공(호남)파 계통으로 구분한다.[5]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이다.[6] 2004년 1월 14일생. 할아버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청와대에서 할아버지와 장난을 치던 사진이 유명해지기도 했다. 서거 10주기 추도식인 2019년 5월 23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추도식 현장에 나왔다. 2022년 상반기까지 베이징의 미국계 국제학교에 재학하다가 '2022학년도 후기 글로벌인재특별전형'을 통해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해 2022년 9월에 입학했다. #[7] 부산 대천중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윤중중학교에 전학했다.[8] 동국대학교 화학과 중퇴 후 편입학. 이를 두고 부정입학 논란이 있었으나 뚜렷한 근거가 없어서 흐지부지되었다.[9] 노무현-노건호 부자는 모두 현역으로 병역을 이행했기에 병역 논란이 전혀 없다.[10] '연세대 정보공유'라는 프리챌에 개설된 커뮤니티였다. 줄여서 연정공이라고 불렀다.[11] 쉽게 생각해서 연세대학교 편입 전공시험은 엄청난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본고사 수준이라고 보면된다. 당시 법대뿐만 아니라 상경대학(경영학과, 경제학과, 응용통계학과), 문과대학, 공과대학 등에 합격한 연세대학교 편입생들의 전적대학 학과를 보면 타대학과 다르게 유달리 동일 학과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비전공자 수준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의도의 전공시험 때문이었다.[12]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자교 학사 출신을 대상으로 한 학사편입과 군위탁편입만이 존재했다.[13] 연세대는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합병되어 출범하였는데, 양교 합병 논의 당시 많은 진통이 있었고 타협의 결과 연세대는 의대와 비의대 사이에 몇 가지 암묵적인 룰이 지켜져 오고 있었다.[26] 연세대는 의대와 비의대의 행정과 학사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의대와 비의대 출신이 번갈아 총장이 되는 암묵적인 전통이 있었다. 비의대 출신이 총장이 될 경우 의대 학사는 의대 출신 의무부총장이 전담하고 총장은 관여하지 않으며, 반대로 의대 출신이 총장이 될 경우 의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는 비의대 출신 부총장이 사실상 총장과 다름없이 거의 모든 행정을 책임졌다. 김우식은 이미 90년대 중반 연세대 학내에서 차기 총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의대 출신이 번갈아 총장을 맡는 학내 전통으로 1996년 김병수 의대 교수가 총장에 오르고 김우식은 한텀 지난 후 총장이 되었고, 김병수 총장 재임 기간에는 공과대학 학장 잔여임기를 마친 후 부총장을 역임했다. 때문에 김우식은 부총장 재임 당시에도 엄청난 실권을 행사했다.[14] 당시 기여입학 기부액으로 20억원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었다.[15] 정치적, 사회적 유력 인사들의 자녀를 입학시켜주기 위한 의미로 알려져 있다.[16] 물론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반기 정권이 보다 중도적인 방향으로 운용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17] 본사에서 퇴사한 뒤 중국법인에 재취업했다는 것은 적어도 주재원으로 파견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재원으로 파견되었다면 본사 소속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18] 세계일보의 2009년 4월 15일 기사. 참조.[19] MBC의 2009년 5월 3일 기사. 참조.[20] 진짜 탈모가 심해서 그랬던 듯하다. 실제로 탈모가 심한 사람들 중에는 머리를 그냥 밀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홍석천이 대표적인 예시다. 한국에서는 이미지나 인식 때문에 비교적 경우가 적지만 일본에서는 탈모와 대머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 노년층에서 탈모가 오면 시원하게 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21] 예상 외라는 말도 있었지만 이미 옆 나라 일본의 노인들은 탈모가 오면 그냥 머리를 밀어버리는 이들도 많고 한국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아마 해마다 더워지는 날씨 때문도 있을 것이다.[22] 평범한 남성형 탈모는 저런 극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를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3] 노무현은 머리숱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말년에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탈모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탈모갤이나 대다모 등의 탈모 커뮤니티에서 한국에서 머리숱이 가장 많은 사람을 꼽으라면 항상 언급된다. 노건호도 이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듯하다. 노건호는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성 탈모였을 가능성이 높다.[24] 당시 노무현, 김정일.[25] 노건호, 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