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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의 영묘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40001,#222222><tablebgcolor=#e40001,#222222> | 금수산태양궁전 錦繡山太陽宮殿 Kŭmsusan Palace of the Sun |
▲ 금수산태양궁전의 모습 | |
<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다른 이름 | 주석궁 (主席宮) |
설립 | 1977년 4월 15일 |
연혁 |
|
규모 | 부지면적 3.5㎢ 건축면적 34,910㎡ |
목적 | 김일성 집무실(舊) 김일성, 김정일 시체 보존 북한 역대 최고지도자 숭배 |
상위 조직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금수산의사당경리부 |
주소 | 금수산태양궁전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 |
[clearfix]
1. 개요
북한의 영묘.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있다.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엠버밍된 시체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장소로 1973년 처음 착공되었으며 2층에는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체가, 1층에는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의 시체가 있다. 오직 수령만 안장될 수 있는 이곳은 북한의 1급 묘역이며 북한 인민들이 안장될 수 있는 최고의 묘역인 대성산혁명렬사릉조차 북한의 2급 묘역이다. '만경대고향집', '백두산밀영' 등과 함께 북한의 핵심 시설물에 해당된다. 운영과 예법 등에 대한 부문법은 금수산태양궁전법이다.[1]
별칭은 '주석궁(主席宮)'. 북한에는 주석이 오직 김일성뿐이고 실제로 김일성 생존 당시 주석궁으로 불리던 건물은 바로 이곳이다. 나이든 세대가 흔히 '진정한 통일은 주석궁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라는 투로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주석궁도 이곳을 가리킨다.[2]
북한을 방문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만경대고향집,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대성산혁명렬사릉, 애국렬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유라도 방문해서는 안 될 곳 중 하나에 해당된다.[3] 다만 북한에서는 관광 코스 중 하나로 반강제로 데리고 갈 수 있어서 북한에 발을 들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가게 될 때도 있다. 물론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배하는 경우는 책임 조각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다.
근처에 백화원영빈관, 조선중앙동물원, 자연박물관, 조선중앙식물원,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체가 엠버밍된 상태로 보관된 모습을 '생전/영생의 모습으로 계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2. 특징
<rowcolor=white> 북한의 종교 (2022년 10월 6일 공개분) |
김일성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무덤이 아니라 금수산의사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청와대, 대통령실 청사[4]와 유사한 역할인 국가주석 집무실 용도였다.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무덤으로 개조하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꾸었는데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덤이 아니라 김일성 미라 전시장에 가깝다. 김정일도 죽은 뒤 곁에 합장되었다. 북한을 흔히 김씨 왕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보면 조선 왕조의 종묘와 같이 역대 국왕을 추모하는 시설이 된 셈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의 용도를 알고 상술한 종묘나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피라미드와 뭐가 다르냐고 비판한다. 김정일의 70회 생일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칭했다.
참고로 김일성 사후 김정일-김정은은 이 건물 대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관저 및 집무실로 사용한다.
금수산은 지명이 아니라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하는 금수(錦繡)로, '금수강산' 할 때의 그 금수다. 일반명사에 가까운 지명이므로 발음과 한자가 같은 지명이 몇 군데 더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의 금수산, 사이비 종교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시설 금수원 등.
<rowcolor=white> 김일성의 입상만 있던 시절[5] |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일이 추가된 입상의 모습[6] |
<rowcolor=white> 김일성 사망 21년 이후 천연색으로 교체된 입상의 모습[7] | 금수산태양궁전 입상홀의 전체적인 구조[8] |
구글 위성 사진으로 보면 능라도 경기장을 제외하면 평양국제비행장(평양순안국제공항) 건물보다도 큰 북한 최대 규모의 건축이다. 비교하자면 아이파크몰을 포함한 용산역 전체 규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부에는 호위사령부 호위총국 제3호위대 소속 병력들이 의장대 겸 경비 임무를 위해 배치되어 있다. 군악대도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참배객 방문 시 장송곡을 연주한다.
3. 시설 구조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아래 사진 외 내부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찾기는 힘들다. 북한 관영매체에서도 보통 입상홀에서의 모습, 시신이 전시된 장소만 비추는 경우가 태반이다.<rowcolor=white> 정면에서 바라본 본관 건물 |
<rowcolor=white> 본관 정문[9] |
<rowcolor=white> 동상이 전시된 입상홀 |
<rowcolor=white> 1층 홀 |
<rowcolor=white> 2층 홀 |
<rowcolor=white> 김일성이 생전에 이용한 전용 열차의 일부가 전시된 모습[10] |
<rowcolor=white> 김정일이 생전에 받은 물품들이 전시된 모습[11] |
<rowcolor=white> 김정일이 생전에 이용한 전용 선박이 전시된 모습[12] |
<rowcolor=white> 애탄(哀歎, lamentation)홀[13] |
<rowcolor=white> 방문객들 전용 방문기념홀[14] |
4. 역사
4.1. 주석궁 시절
김일성 사망 이전 집무실로 쓰이던 시절의 주석궁 |
외교관 등 외국인 인사가 방북하면 여기로 데려가기 때문에 내부를 관람한 사람도 꽤 많고 방송에서도 종종 보여주는데 내부는 이름처럼 궁전 구조로 되어 있고 인테리어는 아름답다고 한다. 한국 고위 인사들 중 1990년에 강영훈 당시 총리가 면담차 이곳에 들렀다.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1971년 방북 당시 금수산 의사당에 큰 감명을 받고 루마니아에 돌아가 이를 모티브로 한 인민궁전을 세우기도 했다.
상세 정보①, 상세 정보②
4.2. 김일성 시체 안치 (금수산기념궁전)
미라화되기 전에 임시 보관된 김일성의 시체.[15] |
1994년 엠버밍 처리한 김일성의 시체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김일성이 생전에 생활하던 주석궁을 개조했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되었다.[16] 미라의 관리는 기술력이 있는 러시아에 큰 돈을 내면서 전담하게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입장자는 한 자리에 서서 관람할 수 없으며 지나가면서 보고 퇴실해야 한다. 이는 모스크바의 레닌 영묘에 안치되어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 베이징의 모주석기념당에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하노이의 호찌민 주석릉에 안치되어 있는 호찌민의 시신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이들을 따라한 것이다. 단, 일부 특권층은 서 있어도 상관 없는 듯하다.
궁전 내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이나 열차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주석궁 개조 비용은 핵심계층이 '충성심 입증' 차원에서 바친 재산으로 충당되었다. 인력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그 재산과 노동력이 다 누굴 쥐어짜서 나온 것이냐'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에 더해 인민들을 상대로 외화 헌납 운동이란 것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인민들에게 건설 노동까지 시키면서 "수령님 궁전 좀 크고 반짝이게 짓게 돈 좀."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일성 시체를 보존 작업하던 시기가 하필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하던 1990년대 중후반인데 상당수의 인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시기에 이 건물을 지었다.
사실 김일성 본인은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우상화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이양한 후에는 주석궁의 자기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대성산혁명렬사릉[17]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게 주요 일과였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에게 '내가 죽으면 과거 함께 싸웠던 동지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즉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누누이 말했다지만 김정일은 권력 이양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은 깔끔하게 무시해 버리고 있는 예산 없는 예산 싸그리 다 끌어다 박제 후 궁전을 지었다.
매년 1월 1일 자정이 되면 김정은과 수뇌부 핵심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참배한다. # 이 외에도 북한 내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참배를 한다. 예외적으로 비정기적 참배도 간간히 있는데 주로 북한과 사이가 좋은 국가의 대표급 인물이 방문했을 때[18]와 뭔가 큰 일이 있을 때[19]도 참배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고 한다.
2000 남북정상회담 당시 하마터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길 가야 할 뻔했다고 한다. 회담 참석 조건으로 북한 측이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끈질기게 요구했다는데 다행히 이 조건 자체가 폐기되고 참배 일정은 뺀 상태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엔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가 회담 4년 뒤인 2004년에야 공개했다. 간단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려던 시기였는데 이를 공개할 경우 전술했듯이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당시 어렵게 조성해 놓은 남북 화해 무드를 깨뜨릴까 봐 우려했던 것이기 때문에 회담 4년 뒤에 이 사실을 밝혔다. 이후에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이곳은 참배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답시고 야스쿠니 신사나 순국칠사묘에 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북한 측의 요구와 상관 없이 참배하지 않는 쪽을 견지하는 것이다.
유럽이나 북미 쪽 인사가 방북하면 이쪽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북한 주재 외국 대사는 부임할 때마다 이쪽으로 최소 한 번씩은 끌려가서 참배하게 된다. 대사 본인은 가고 싶지 않아도 다른 일정 소화 중 갑자기 차를 꺾어서 이쪽으로 끌고 가므로 대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러시아 대사, 영국 대사, 스웨덴 대사는 꽤 자주 끌려가고 그 참배 광경이 북한의 지상파를 타는데 이런 강대국 대사들도 우리의 위대한 수령에게 참배를 한다는 선전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4.3. 김정일 시체 안치 (금수산태양궁전)
2011년 12월 17일 공식적으로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정일도 이 곳으로 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급으로 보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결국 그것은 2011년 12월 20일 사실이 되었다. 관련 기사김정일의 시체. 사체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꽃은 일본의 식물학자 카모 모토테루가 1988년 김정일의 생일 선물로 보낸 베고니아의 인공 개량종인 김정일화(花)[20]라고 한다. |
위의 사진은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임시 상태지만 궁전 자체가 결국 김씨 일가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장소인 만큼 단순한 무덤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김정일 신격화 작업의 밑거름이라고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궁전이라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김정일 장례식과 뒤이은 조선인민군 장병 결의대회 등의 공식 일정 뒤 대규모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김정일 사후 1주기였던 2012년 12월 17일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치권과 군부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재개관했다. 김정일 사체의 엠버밍 작업도 완료되었다고 하며 김일성 조각상만 있던 중앙홀에 김정일 조각상이 추가되고 김정일의 '유품'이 전시된 전시실도 새로 개관한 데다 밖에 꽃밭[21]도 꾸미는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묘소가 되었다.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변경되었다.
김정은도 개인숭배 체계를 만드는 것을 보면 김정은 역시 사후 이곳에 안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습이 계속되어 역대 수령들이 계속 입주하면 김일성 우상화 장소를 벗어나서 판테온이나 파르테논 신전, 종묘와 같은 북한 사상의 상징적인 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5. 現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관련 문서: 남북통일/인프라 문제5.1. 재활용할 것인가?
5.1.1. 다른 용도로 전환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통일이 된 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체제 경쟁의 승리와 정복 기념의 의미가 부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고로 전쟁기념관 같은 국가안보박물관, 국립인권박물관이나 북한 역사박물관 등으로 바뀔 수 있다.[22]예를 들어 강명도는 철거하지 않고 남겨둬서 독재자의 패악질을 알리는 국립민주주의교육관으로 쓰는 것을 제안했다. 남북으로 나뉘었다가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한 베트남도 남베트남의 옛 대통령 집무실 통일궁을 분단 시대 관련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진 자료나 처음 통일궁에 진입한 북베트남 탱크인 T-54, 59식 전차의 복제품 등 북베트남의 우위를 선전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 한국의 정부청사로 쓸 수도 있다. 평안남도청·평양시청과 도의회·시의회 청사, 가칭 '정부평양지방합동청사' 내지 '정부평양청사' 등이 입주하는 것이다.[23] 그런데 이 기능은 만수대의사당과 겹치다 보니 같이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많을 수도 있다.
5.1.2. 기존 용도로 유지
단순히 다른 세력의 상징을 넘어 나쁜 의도로 사용되었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보존할 가치는 있다. 현재는 철거된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된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학문적 연구 가치가 있었지만 이러한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이용될 우려가 높고 경복궁 복원에 지대한 방해물이었다는 점에서 국민 감정에 반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철거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문화역서울284(구 경성역사)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구 조선은행 본점) 등 일제강점기 건축물 중에도 보존되고 있는 건물은 꽤 많다.과거에 지어진 큰 물건들 중에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 폴란드의 문화과학궁전,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백성들을 강제로 혹사시켜 지은 것들이 제법 많지만 랜드마크로 활용하거나 일부 남겨 놔서 교육 용도로 쓰는 경우도 많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하진 않는다.
승리 등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과거 민족이 분단되어 조선로동당이라는 독재 정부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이 건물을 철거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철거되겠지만 김씨 왕조를 우상화했던 건물이라는 까닭으로 반드시 철거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우선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체도 처분하고 우상화 기념물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특히 김일성 부자 시신은 아돌프 히틀러나 베니토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에서 보듯 남북통일 후에도 어엿한 무덤을 만들면 통일 한국에 잔존하는 극소수의 종북주의자들의 '성지'로 계속 역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화장 처리 발표 후 화장한 과정까지는 보여준 다음 비밀 납골당을 만들어 안착하거나 망망대해에 뿌리거나 해야 할 것이다.[24] 설령 순국칠사묘처럼 이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화장된 유골이 몰래 빼돌려진다고 할지라도 전두환처럼 국민들의 기피 속에서 새 묫자리도 전혀 구할 수 없게 될 거란 것은 확실시되며 겨우겨우 무덤을 만들 수 있게 되더라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무덤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온 한반도 전역의 사람들의 빗발치는 훼손 시도로 인해 이완용[25], 프랑수아 뒤발리에[26], 폴 포트[27]의 무덤 이상으로 참혹한 꼴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김일성 부자의 유해는 어느 쪽이든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셈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련 붕괴 후에도 존경받는다는 점을 근거로 시신을 이장하지 않은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문제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정부패, 인권 탄압을 증명하기 위해 시체를 보관까지는 않더라도[28] 김일성 일가의 점거 기간 동안 있었던 사진이나 사치 행각을 했다는 증거 등을 갖고 전시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시체는 없어도 그가 가진 소지품을 전시하고 그가 어떻게 국민을 착취하고 전쟁을 일으켰는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건물 자체는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안보박물관, 인권박물관이나 통일기념관 등의 박물관/기념관 건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말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쓰이게 된다면 개장 전에 우상화를 위한 장식물을 모두 제거하고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리모델링을 당연히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5.1.3. 김일성종합대학 관련
남북통일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이 국립평양대학교로 전환되면 이 건물을 추가 캠퍼스나 부속 건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옆은 아니고 1.2km 정도 떨어져 있긴 한데 어차피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소수의 노후 주택과 건물들뿐이라 딱히 땅값 들어갈 것도 아니다. 애초에 사회주의 국가라 국유지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사실 지금 김대는 주로 인문학 쪽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시설이나 면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립종합대의 위상에 걸맞지도 않아 이 정도 확장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강의실 등으로는 이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원래 집무실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박물관이나 컨벤션센터, 도서관 등으로 재개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평양대학교 도서관이나 국립평양도서관으로 재활용된다면 국회도서관에 맞먹는 상당량의 장서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도서관 기능을 하자니 인민대학습당과 기능이 겹친다.
대학 교재나 논문을 관리하는 대학도서관과 시민들에게 자료를 대여하고 중요 문서를 보관하는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서울교육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가깝다고 둘 중 하나만 존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민대학습당 쪽이 기능으로나 취지로나 건전성으로나 도서관 기능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둘 다 도서관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가까운데 고작 7.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5.2. 철거할 것인가?
북한의 정권 붕괴와 중국의 불개입이 맞물려 운 좋게 남한 주도로 하루아침에 통일이 되더라도 평양 주민의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격한 행정을 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록 용도가 불순하였더라도 평양 주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철거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반대로 금수산태양궁전의 폐기물은 처음에는 정부 청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결국 순수하게 '주체사상의 홍보'와 '김일성, 김정일 박제 보관용'인지라 전술했듯 '주체사상의 성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우셰스쿠의 인민궁전은 정부 청사로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에 동유럽 혁명 루마니아 정부가 그대로 쓸 수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해방 직후에도 조선신궁과는 다르게 서대문형무소나 조선총독부 청사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슷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1995년에 해체되기 전까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인 적이 있었다.
즉, 조선총독부 청사[29]처럼 흑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므로 폭파 및 해체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일대가 옛 고구려의 유적지로써 일대가 청암리토성과 청암리사지[30]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헐릴 가능성도 높다. 고고학적 조사 이후 유적지가 확실하다면 파괴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전술한 문화재 발굴 및 복원을 위한 취지를 근거로 기념궁전 건물을 철거한다면 철거하면서 부지의 정원과 부속 토지 일대를 싹 갈아엎으면서 발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유적지 복원을 명분으로 헐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미 건설 전후부터 유구까지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와 권역은 모른다.
그러나 북한답지 않게 날림이 아닌 튼튼하고 신중하게 만든 건물이기 때문에 안정성은 어느 정도 보장될 수도 있다. 그래도 만약 대한민국의 안전 기준에 따라 검사해봤을 때 붕괴 가능성이 높다면 굳이 돈을 들여 보강하느니 철거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면 약간의 보수만 해서 재사용을 할 수도 있다.
다만 금수산태양궁전 터는 어떻게 보면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매우 많기 때문에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이후 이 장소를 철거할 지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사전조사는 물론이고 철거 시 이익이 되는 부분과 손해가 되는 부분 등을 면밀이 조사해야만 한다. 남북통일을 한국이 주도한다고 해서 북한의 잔재를 닥치는 대로 없앤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31]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사전 조사할 시간이 충분한데도 남한 지역의 여론에만 의지해 성급하게, 멋대로 철거한다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합당한 명분과 이유가 있을 때 철거해도 절대로 늦지 않다.
다만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면전이 벌어지고 한국군이 이곳까지 점령하는 형태로 통일될 경우 현장 지휘관의 독단이나 교전 중 유탄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데 북한 정권의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32] 물론 북한 주민들도 이미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속고 살았다는 것을 진작부터 다 알고 있었으니 오히려 국군과 협력해서 자발적으로 때려 부술 가능성도 높다.
당장 베를린 전투 당시 독일 국회의사당이 최후까지도 전투가 벌어져 철저히 파손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적의 선전물은 파괴하기 좋은 목표물임을 알 수 있다. 군에서는 북한의 핵심적인 우상화 건물이기 때문에 수립한 대량응징보복 계획안에서도 해당 건물을 원거리 타격 무기의 목표물로 설정하기도 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체 역시 이 과정에서 파괴되거나 한국군 장병들 혹은 북한 주민들에 의해서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6. 기타
금수산태양궁전 때문에 평양 지하철도 혁신선의 광명역이 폐역되었다. 대신 삼흥역에서 이곳까지 금성거리 궤도전차 혹은 금수산선이라는 이름의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전용 노면전차[33]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입구에서 김씨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는데 실제 위성 사진으로 보면 광명역에서 금수산태양궁전 입구까지 4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넓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입장 전 수속과 안내, 이전의 내부 전시물 관람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까지 합한 시간으로 보인다.
실제로 들어가고 참배하는데 여러 절차를 거치는데 다음과 같다. #
- 들어가기 전에 보위부 측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방문객을 약 1시간 동안 밖에 서있게 한다. 추운 날이거나 찜통 더위라도 마찬가지.
- 신원 확인이 끝나면 방문객은 모든 소지품을 맡겨 놓아야 한다. 카메라, 담배는 물론 외투까지 맡겨야 한다.
- 전동식 솔로 구두를 한번 닦고, 강력한 바람으로 먼지를 제거한다.
- 위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궁전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약 5m 높이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 이후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을 관람할 수 있게 되는데 백두혈통 등의 수뇌부가 아닌 방문객들은 가만히 서서 관람할 수 없고 지나가면서 홅어보아야 한다.
- 관람이 끝나면 김일성, 김정일이 생전에 타고 다녔던 관용차나 여러 친필, 우상화물 등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때 안내원이 물건 하나하나마다 사연을 설명해준다(...)
- 마지막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방명록을 써야 한다. 만약 쓰지 않으면 안내원이 수령에게 무례를 저질렀다며 난리를 친다고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에서는 평양시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강제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게 시키고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강제로 참배하도록 시키지만 아프다고 하거나 체력이 떨어졌다고 하거나 시차 적응이 안 됐다고 하거나 하는 단순한 핑계 정도 대면 괜히 억지로 데려갔다가 사고칠 것을 우려한 북한 가이드들이 그냥 숙소에서 쉬게 해 준다. 가이드들이나 북한 정권 입장에서 가장 악몽스러운 상황은 특유의 힙스터 기질을 북한에서도 한 번 발휘해 보고 싶어서 간질간질한 사고뭉치들인데 한 번은 서양인 관광객 한 명이 금수산태양궁전에 가서 물구나무를 서고 까불다가(...) 여행단이 통째로 다 추방당했고 가이드들은 모조리 해고되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 시 오픈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핫팬츠, 티셔츠, 청바지, 맨발 샌들을 신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
김정일·김정은 시대 북한 최고지도자의 집무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1호 청사)이다.
2024년 기준으로 김정일과 김일성 생일에 김정은이 금수산태양궁전에 참배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아예 참배를 안 했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 다만 김일성 기일에는 참배했다. #
[1] 이 부문법 안에 설립 근거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2] 다만 젊은 층이 이 표현을 쓰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 경우에는 김정은의 집무실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대 대한민국 국민 중에는 북한 정치판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김정은의 집무실이 어딘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과거부터 쓰이던 '주석궁'이란 표현을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3] 북측이 당신에게 이곳의 방문을 권유한다는 것은 '당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겠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성도 있다.[4] 현재 북한에서 주석궁 역할을 하는 건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이다. 김정은이 당, 정, 군의 전권을 갖고 있고 당의 권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5]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된 후의 모습이다.[6] 실제로는 김일성이 김정일보다 15cm 정도 더 키가 크지만 입상은 키가 비슷하게 묘사했다.[7] 이 교체 작업으로 김일성·김정일 입상이 이전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머리 모양과 얼굴 형태, 복장 등을 김 부자의 생전 모습과 최대한 닮게 만들었다. 이러한 개편 작업은 상당히 실리적인 이유가 크다. 우선 입상이 너무 크면 그 크기가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정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위압감을 주기에 적당한 크기로 축소를 한 것이다. 또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핵심인 입상을 '색상'으로 꾸민 것은 젊은 김정은의 세련된 '감각'을 외부와 주민들에게 선전하려는 의도도 있다.[8] 광명성절, 태양절, 노동당 창건일 등 중요한 날이면 김정은과 당정군 고위급 간부들이 찾아가 참배한다.[9] 고위급 인물이 방문할 때는 이 문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이 입장할 때는 외곽에 위치한 기다란 직선 통로를 통해 입장한다.[10] 생전에 이용한 벤츠 자가용도 전시되어 있다.[11] 주로 외국에서 수여 받은 학위 문서, 훈장들이다.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은 대부분 묘향산에 있다.[12] 이 외에도 생전에 이용한 전용 열차, 벤츠 자가용, 골프 카트 등이 전시되어 있다.[13] 김일성과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애탄하는 장소라고 한다. 에탄올이 아니다.[14] 북한에서는 소감 발표장이라고도 한다.[15] 과학동아에 따르면 유지비 절감을 위해 처음 부검할 때도 장기, 뇌, 안구 등 썩기 쉬운 부위는 다 제거했다고 한다.[16] 이 개조 과정에서 주석궁의 모든 창문을 전부 막는 공사를 했기 때문에 주석궁 시절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다른 걸 알 수 있다.[17] 북한판 국립현충원으로 항일 빨치산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6.25 전쟁 유공자(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상대진영인 적군)들이 묻혀 있다.[18]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19] 김일성 5년 주기 기념, 조선로동당 대표자 회의 개막전 등.[20] 정식 명칭은 김정일리아(Kimjongilia).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내용은 꽃과는 전혀 상관 없는 북한이탈주민의 고난과 역경을 다루고 있다.[21] 북한에서는 이를 '수령영생의 대화원' '락원의 꽃밭'이라고 부르며, 그 아름다움도 '옛말에 나오는 무릉도원도 이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요, 옥황상제가 신선과 선녀들을 거느리고 노닌다는 천계도 이에서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온 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진귀한 꽃나무들이 모두 함께 자라나 신비한 기적의 얼매를 맺는 천하제일성지'로 포장했다.[22] 실제로 승전국이나 한 나라를 정복한 국가들이 정복지나 적국의 랜드마크나 성소 등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략적으로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쓰레기장이나 화장실 등으로 써서 모욕을 주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그 건물을 보존하되 경쟁의 승리를 위한 의미를 부여하여 개조하거나 자국의 우위를 표시할 수 있는 건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고대에 많이 쓴 방식이고 후자는 근대에 많이 쓴 방식이다.[23] 이 둘이 무슨 차이가 있냐면, '정부평양지방합동청사'는 '평안남도(또는 평양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평양지방국세청', '평양지방고용노동청' 등이 입주하는 곳이고, '정부평양청사'는 중앙 정부의 부처청 본관이 여기로 옮기는 것이다.[24] 뼛가루를 폐기 또는 뿌린 장소가 드러날 경우 히틀러의 무덤을 찾으려고 하는 네오나치나 일본 극우들의 성지가 된 순국칠사묘의 사례처럼 김일성 일가의 추종 세력들의 성지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만 화장 처리함을 발표하고 처리 자체는 당연히 비공개로 집행할 것이다.[25] 해방 후 민중들에 의해 무덤이 수시로 훼손되자 결국 이를 보다못한 이완용의 증손자가 시신을 불태웠다.[26] 대리석 영묘에 안장되었으나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축출되기 직전에 무덤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시신이 빼돌려져 비밀리에 안장되었고 빈 무덤은 분노한 민중들의 손에 파괴된 후 '뒤발리에는 에이즈 환자'라는 말이 순해 보일 정도로 온갖 증오에 빗발친 욕설이 담긴 낙서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27] 부하들에 의해 폐타이어, 쓰레기와 함께 화장된 후 무덤에 안장되었지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의 무덤을 찾아 오줌을 싸거나 침을 뱉고 있다고 한다.[28] 이쪽은 당연히 비용 문제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순국선열들에게도 하지 못할 예우를 위해 교정시설의 무기징역수를 비롯한 장기복역자들의 의식주 비용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세금으로 치러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29] 실제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린 이유는 상징성도 있겠지만 경복궁 훼손도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세종대로 지역에 일제강점기의 상징인 데다가 주변 경관과도 잘 안 어울리는 건물이 한국 건축과 부조화스럽게 세워져 있다는 점도 있다. 반면 금수산태양궁전은 딱히 주변 경관에 비해 어색하지 않고 논밭을 제외한 평양의 가장자리에 있고 후술할 '터'를 제외하면 부숴 날려먹은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30] 고구려 시절 금강사로 추정되는 지역이다.[31] 참고로 헌법상 북한 주민들은 피지배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32] 물론 유탄이 아니라 심리전 목적으로 조준폭격할 가능성도 높다.[33] 평양 노면전차는 1,435mm 표준궤를 사용하는데 이곳만 1,000mm 협궤를 사용한다. 이 궤도를 운영하는 차량은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인 스위스에서 구매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