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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2:48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

2012 공영방송 총파업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전개
2.1. 정연주 사장, 엄기영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2.2. 김재철 사장 취임
2.2.1. 김재철 사장이 부임하기까지2.2.2. 김재철 사장 임명 논란
2.3. 문제점
2.3.1. MBC 파업 시작2.3.2. 파업 후폭풍
2.3.2.1. 2012 런던 올림픽 중계와 이후2.3.2.2. 이후
2.4. 김재철 사장 해임2.5. YTN 파업2.6. KBS 파업
3. 파업 응원가4. 이후5. 대법원 판단6. 참고/관련 자료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2012년 KBSMBC, YTN 등이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면서 잇따라 파업을 결의한 사건.

2. 전개

2.1. 정연주 사장, 엄기영 사장에 대한 사퇴 압박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KBS 사장 퇴진을 위해 감사원, 국세청, 검찰 등을 동원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한국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해 온 독립제작 업체들에 대해 전격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자세한 설명은 정연주 한국방송공사 사장 해임 사건 항목 참조.

MBC도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대대적인 검찰 조사와 표적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고 후술하듯 결국 엄기영 사장이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2.2. 김재철 사장 취임

2.2.1. 김재철 사장이 부임하기까지

이명박 정부 초기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2008년 촛불집회 등의 그 일련의 사건에 대해 다룬 MBC를 상대로 이명박 정부가 치고받고를 계속해 왔고 극우 단체까지 나서서 MBC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2009년 6월 29일 들어 이명박 정부는 21년 동안 지속돼 온 방송문화진흥회의 'MBC 노사 이사 추천 관행'을 무시하고자 했고 7월 27일에는 이민웅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가 방문진 이사 신청을 철회하면서 한나라당 의원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대신해서 선임회의 전에 "모 대학 명예교수를 방문진 이사장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며 통보를 받았다고 증언하면서 방문진 이사 선임에 정부가 개입됐을 거라는 의혹이 있음을 암시했으며 노조 측도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동월 31일에 방통위는 '사전 내정설'의 중심 인물로 거론된 김우룡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 등 새 이사진 9명을 선임했고 8월 10일에는 김우룡을 새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김우룡 휘하의 방문진은 8월 19~20일 업무보고 때부터 엄기영 사장의 퇴진을 거론하며 경영진들을 비판하자 노조는 이를 규탄했다. 11월 30일, 김우룡 이사장이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개혁 실패의 책임을 엄 사장에게 물어 자진 사퇴를 압박하자 12월 7일에 엄 사장 등 임원 8명이 일괄 사표를 냈다가 3일 후 엄 사장 등 4명의 사표가 반려됐다. 이에 김우룡 측은 MBC의 개혁 의지를 주시코자 한다고 했으나 MBC 내외부에선 엄 사장이 방문진에 의해 '식물 사장'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12월 14일에 방문진이 차기 MBC 임원진을 선출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고 김우룡과 엄 사장 양측이 단독 협의를 통해 보궐임원 4명을 선출하기로 합의했으나 15일에 엄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합의안 대신 새 임원진 명단을 제시하자 김우룡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에 엄 사장은 21일 본부장별로 후보 2~3명을 제시하고 1순위를 뽑는 추천안을 제시하려다 이마저도 김우룡의 반대로 무산됐고 야당 이사들이 항의하자 경영본부장을 뺀 임원 인선이 중지됐다.

2010년 2월 8일, 방문진이 엄 사장이 추천한 인사들을 무시한 채 황희만 울산MBC 사장을 보도본부장, 윤혁 편성제작국 외주제작1부 부국장을 TV제작본부장, 안광한 편성국장을 편성본부장으로 각각 일괄적으로 짜자 야당 이사들이 반발해서 퇴장한 가운데 방문진은 임원을 새로 짰고 엄 사장이 이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그의 빈 자리는 김종국 당시 기획조정실장이 며칠 간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2월 22일에 방송문화진흥회는 차기 사장 공모를 열어 이틀 후 공모자 15명[1] 중 김재철 청주MBC 사장, 구영회 MBC미술센터 사장, 박명규 전 MBC아카데미 사장을 후보로 뽑았으며 26일에 김연아가 금메달 따는 그 틈을 타(?) 이 세 후보들 중 김재철을 새로운 사장으로 선임했다.

물론 성향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전 정권에서 포진시켜 놓은 반 MB 정부 인사들과 정반대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맞추어 KBS 정연주 전 사장을 해임시키고 이병순을 선임한 전례와 똑같은 일을 불과 2년도 안 되어 재현됐다. 당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김연아의 금메달 소식으로만 도배한 상태에서 김재철의 사장 선임에 대한 얘기는 코뿔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데자뷰였으며 3월 2일에는 그의 첫 출근이 노조에 의해 가로막히면서 갈등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3월 인사에서는 황희만 울산MBC 사장을 보도본부장, 윤혁 전 시사교양국 1CP를 TV제작본부장, 안광한 편성국장을 편성본부장, 김재형 기획조정실 부실장을 경영본부장으로 각각 선임했다가 노사 간의 합의 문제로 황희만 및 윤혁을 특임이사로 변경시켰다. 이후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3월 17일에 간행된 신동아 2010년 4월호 인터뷰에서 "문화방송 새 사장은 큰집에 끌려가서 쪼인트 까이고 매도 맞은 인사이며 나의 좌파 청소부 역할이다"라며 대놓고 언론 장악의 음모를 드러낸 발언을 함으로써 도리어 고된 역풍을 맞고 이틀 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2] 결국 MBC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며 김우룡 사퇴 3일 후에는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가 "MBC의 문제는 김 이사장 사퇴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권에 의한 언론 장악"이라고 규탄하면서 '청와대·방문진 MBC 장악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반면 김재철은 김우룡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채[3] 동월 18일엔 전영배 특보를 기획조정실장, 이우철 디지털기술국장을 디지털본부장으로 각각 선임하고 23일에는 차경호 보도국장을 보도본부장, 조중현 드라마국장을 TV제작본부장, 배수한 경영지원국장을 감사실장으로 각각 선임한 후 4월 2일 황희만 특임이사를 부사장으로 선임했다.

위 사건 때문에 MBC 노조 측은 4월 5일 총파업을 결의했다. 2008년 말 미디어법 논란에 따른 파업 이후 1년 2개월만이었다. 이에 김재철 측은 "명분 없는 파업"이라 하며 자진 철회 및 노사간담회를 제의하는 한편 파업 시 무노동-무임금 원칙도 적용한다고 했다. 5월 12일에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문인 김재우(전 아주그룹 부회장)를 방문진 보궐이사로 선임하자 언론노조 및 시민사회단체가 김재우의 언론/방송 경력 전무, 수익성 위주의 구조조정 등을 문제삼아 '인사 철회'를 요구했으나 7일 뒤에 방문진은 김재우를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2.2.2. 김재철 사장 임명 논란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의 인사가 아닙니다. 큰집[4]에 불려가서 쪼인트 까이고 매도 맞고 해서..."
- 2010년 김재철 사장의 인사조치 당시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5]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더 강한 게 말입니다. 제가 이 약속[6]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사원들이 저를 한강에 매달아서 버리세요."
- 2010년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 노조위원장과의 토론에서

2.3. 문제점

5월 14일부로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친정부 성향의 새로운 사장이 취임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만한 프로그램들은 줄줄이 종영되기 시작됐으며 인적 청산도 자행됐다. 6월 4일 회사는 이근행 노조위원장 등 관련자 41명을 징계하자 7월 1일 정상모 방문진 이사가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냈지만 6일 뒤 방문진은 이를 부결시켰다. 9월에는 세계와 나 W, 후 플러스, 음악여행 라라라, 주말의 명화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9개가 종영되었고 그 시간대에 예능/오락 프로그램을 새로 채워넣는다는 발표를 했다. 당연히 표면적인 이유는 시청률 문제. 사실상 '공영방송'을 포기해 버린 셈이다. 폐지된 프로그램은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여우의 집사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대신했다. 위탄은 그나마 2013년 시즌 3까지 진행됐지만 여우의 집사는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재미 없는 연예프로 MBC 부문' 1위에 오르면서 처절하게 동년 말에 막을 내렸다.

그해 12월 MBC 방송연예대상연기대상에서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이 '가열찬 삽질'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황희만 부사장은 연예대상 수상자 발표를 시청자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바로 "대상은 <무한도전>,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유..."라고 말해 사상 최악의 스포일링 사고를 냈다.[7] 옆에 있던 진행자 이경실이 "방송을 모른다"며 구박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안 그래도 예전부터 연예대상 조작 논란으로 시끄러운 마당에 이런 팀킬로 시청률이 폭락하였다.

하지만 악재는 끝나지 않았으니 이번엔 연기대상에서 사장 김재철의 일장연설로 논란이 일었다. 김재철은 고현정과 함께 연기대상 시상자로 나와서는 갑자기 앞에 앉아 있던 배우들을 일일이 호명하더니 "뒤쪽을 보니까요. 일본 분들과 중국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잘 듣지도 못하면서 화면만 뚫어져라 보시더라고요. 한류가 계속 세계로 가고 있어요"라며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해 대면서 일본중국에서 온 방청객들을 까 버렸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문을 보니까 고현정 씨가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했더라, 보셨죠?"라며 "제가 보기에 SBS 연기대상에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하다."며 타 방송사의 연기대상까지 언급했다.[8] 이러한 일장연설에 고현정이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고 네티즌들은 신나게 깠다. 역시나 시청률은 폭락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으니 2010 MBC 방송연예대상 조작 논란 참고.

2011년 2월 16일 김재철 사장은 방문진 이사회에서 상대 후보들인 구영회 전 MBC미술센터 사장과 정흥보 춘천MBC 사장을 득표 수에서 앞서면서 연임이 성사됐고 뒤이어 23일 조직을 7본부 22국 104부에서 8본부 24국 87부로 개편하면서 기획조정실을 기획조정본부로, 편성본부 산하 사회공헌부를 사회공헌실로 확대 개편시켰으며 TV제작본부를 드라마예능본부로 분할시켰고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관시켰으며 드라마, 예능, 시사교양국의 콘텐츠 기획/개발부서들을 모아서 부사장 직속기구 '크리에이티브센터'로 개편시켰다.

이에 따라 안광한 편성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후 황희만 전 부사장을 MBC프로덕션-미디어텍 사장, 전영배 기획조정실장을 보도본부장, 차경호 보도본부장을 기획조정본부장, 조중현 TV제작본부장을 MBC미술센터 사장, 서경주 라디오본부장을 광주MBC 사장, 문철호 글로벌사업본부장을 보도국장 등으로 각각 이동시켰고 정경수 비서실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 백종문 편성국장을 편성제작본부장, 고민철 경영지원국장을 경영지원본부장, 장근수 드라마1국장을 드라마예능본부장으로 각각 선임시켰다. 25일에는 이우용 창사50주년기획단장이 라디오본부장으로 선임됐다.

4월 8일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MC 김미화가 하차되는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고 7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창원-진주MBC 통폐합 보류를 결정하자 김재철은 사의를 표했지만 8월에 방문진은 그를 재신임했다. 9월 1일 경상남도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원MBC와 진주MBC를 MBC경남으로의 무리한 통합을 강행하였는데, 이는 이후에도 지역민들에게 아주 악명 높다. 이러한 계열사들의 통폐합은 2015년 강릉-삼척(MBC강원영동)[9], 2016년 청주-충주(MBC충북)로 이어졌다.

2012년 2월 1일에는 자사의 게임 채널이었던 MBC GAME을 폐국하고 MBC MUSIC을 개국했는데, 이후 밝혀진 폐국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도 김재철 취임 후 막장화된 MBC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10] 뉴스의 질이 저하되기 시작한 2011년 무렵 게임 때리기식 보도인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 와갤 대 애갤 현피사건 왜곡 보도 등으로 인해 게임 팬들에게서 비판을 받았는데, 결정적으로 이 기사가 나온 시기는 MBC GAME이 음악 채널로 전환 절차를 밟기 시작한 시기와 완전히 겹쳤다. 후술할 2012년 대규모 파업이 시작된 날(1월 30일)은 MBC MUSIC이 개국한 날(2월 1일)과도 시기가 겹치며 당시 MBC 플러스미디어 안현덕 사장이 김재철 사장의 최측근이자 음악채널 개국 공로를 인정받아 MBC 아메리카 사장으로 부임했다는 점, 결정적으로 파업이 종료된 후 이승원, 김철민, 박상현[11] 등 전직 MBC GAME의 해설위원과 제작 인력들이 MBC GAME은 승부조작 뒤에도 적자가 나지 않았고 전직 MBC 사장이 음악채널 개국을 밀어붙인 정황을 폭로하면서 사실상 MBC GAME의 폐국은 이명박근혜 시기 MBC 막장화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MBC GAME 폐국과 관련해 벌어진 자세한 일들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또 2012년까지의 인위적 성향 개편에 대한 실체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가 확인해낸 <MBC 정상화 전략 추진방안(2010)> 등의 국정원 작성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2.3.1. MBC 파업 시작

2012년 1월 25일부터 MBC 소속 기자들이 방송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MBC의 불공정, 편파 보도를 비판'하면서 인적 쇄신을 요구한 것이었다.

1월 30일부터는 MBC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고 뒤이어 같은 공영방송 노조들인 KBS 제2노조(새노조)와 YTN 노조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무한도전 등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재방송으로 때웠으며 프로그램 제작을 외주 제작사에게 돌리거나 자회사인 MBC 플러스미디어의 프로그램들을 편성하기도 했다.[12] 2월 들어 방문진 야권 이사 3명이 김재철 사장의 자진 사퇴를 권고했고 노조 측이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3월 6일 회사 측은 노조에 3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4월 20일에는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시사교양국을 해체시키고 시사교양2~3부를 보도제작국에 흡수시켜 편성제작본부 산하 시사교양국으로 개편했고 시사교양1, 4부를 '교양제작국'으로 묶었다. 아울러 보도국 뉴미디어뉴스부를 '뉴미디어뉴스국'으로 승격시켰다.

뒤이어 드라마1국에 드라마프로듀싱부, 보도국에 라디오뉴스부를 새로 만들고 기획조정본부에 홍보국을 편입시켜 '기획홍보본부'로 고치는 한편 라디오본부를 '라디오제작국'으로 격하시켜 편성제작본부 산하로 편입시켰다. 이에 따라 차경호 기획조정본부장을 대구MBC 사장, 전영배 특임이사[13]를 MBC C&I 사장, 고민철 경영지원본부장을 원주MBC 사장, 정경수 글로벌사업본부장을 MBC경남 사장 등으로 각각 이동시키고 이진숙 홍보국장을 기획홍보본부장, 이용석 경인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 방성근 예능1국 부국장을 예능본부장, 조규승 기획조정본부 부국장을 경영지원본부장, 정성채 경인지사 성남용인지국장을 경인지사장 등으로 각각 앉혔다.

최일구 앵커도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보도국 부국장직을 그만두고[14]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 중 양승은 아나운서가 종교적 이유로 파업 대열에서 나가고 노조를 탈퇴하고 업무에 복귀했으며 배현진 아나운서도 "적어도 뉴스 앵커로서 시청자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습니다''라며 언론노조를 탈퇴하고 5월 11일 뉴스데스크로 복귀했다.[15] 동료 아나운서들은 당연히 두 아나운서를 비판·비난했다. 최대현 아나운서도 파업 99일째에 노조를 떠나 업무에 복귀했고 김세의 기자는 파업 마지막 날까지 다 출석했으나 이후에 벌어진 내부 대립 등으로 인해 2013년에 노조를 떠났다.

5월 17일에는 뉴스데스크에서 언론노조 때문에 권재홍 보도본부장이 다쳤다고 보도했고 이에 사측은 권 본부장의 출근 저지 시위를 벌인 박성호 기자회장에겐 해직, 최형문 기자회 대변인에게 정직 6개월, 왕종명 기자에게 정직 1개월을 각각 내렸다. # 이에 대해 노조 측이 당시 영상을 공개하면서 해당 본부장과의 물리적 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자 사측은 정신적 상해를 당했다고 말을 바꾸는 코미디 같은 행태를 보였다.[16] 노조가 소송을 벌여 2013년 서울남부지방법원 1심 및 이듬해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 MBC의 정정보도를 인정하고 2,000만원짜리 손해배상 판결을 냈으나 2015년에 대법원은 "일부 사실과 다른 과장이 있으나 허위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파기환송시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6년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MBC로 하여금 문제의 위 보도에 대해 반론보도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3월 11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반론보도문을 냈다.

MBC 노조에서는 인터넷 상에서 '파업채널 M'[17]을 통하여 <제대로 뉴스데스크>, <파워업 피디수첩> 등 자체 콘텐츠들을 만들어서 보도했다. 보도의 주 내용은 배임, 횡령, 내연녀인 재일교포 무용수 J씨에게 일감 몰아주기, 부동산 실명제 위반 등 김재철 사장의 비리와 MBC 보도 내용 비판 등이었다. 이에 대해 사측에서는 노조의 파업을 '불법 정치 파업'으로 보고 6명을 해고하고 1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정직, 대기발령 등 중징계를 내렸으며 김재철 사장은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며 버텼으며 6월 13일에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액을 195억원으로 올렸다.

6월 29일, 여야 양측은 제19대 국회 개원 협상에서 새 방문진 이사회가 MBC 문제를 처리하도록 합의했고 170일만인 7월 18일에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방송사 파업 중 최장 기간이다. 얼마나 이명박 정부의 영향력이 컸는지 예상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정부 비판 프로그램은 거의 다 막아 버렸고 정말 크게 다뤄야 할 문제는 축소되어 보도되었다.[18] 이는 이전까지 최장기 파업이었던 1992년 52일 파업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사측에서는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김재철 사장이 노조의 부당한 압력과 상관 없이 2014년까지 임기를 채울 거라고 단언하며 방문진 이사회 선출까지 오해를 풀겠다고 했다.

2.3.2. 파업 후폭풍

파업 이후 회사는 인사 및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미래전략실, 보도국 주말뉴스부, 중부권 취재센터 등을 신설했고 황헌 보도국장을 선거방송기획단장으로 발령시키면서 황용구 논설위원실장을 신임 보도국장으로 임명시켰다. 평사원 인사대상자 128명 중 허일후 아나운서 등 50여명을 미래전략실 등 타 부문으로 내보냈다. 8월에 방문진 측은 김재우 이사장을 유임한 채 김광동 등으로 9기 이사진을 짰다.

반면 본사 제작진을 맞이한 건 악재들뿐이었다. 일일 평균 시청률이 파업 이전의 반토막이 돼 버렸고 광고 매출은 약 200억이 감소한 상태였으며 시사교양국은 전체 인원의 1/3이 징계를 받아 특히 심각한 상태로 프로그램 제작 자체에 문제가 생겼고 그 부서마저 파업 중이던 2012년 4월 조직개편에 따라 시사교양국이 교양제작국 및 시사제작국으로 분할되었으며 보도제작국 자체가 시사제작국에 흡수됐다.[19] 예능본부는 예능 프로그램 중 동시간대에 1위를 하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파업 과정 중에서 징계를 받은 인원에 대한 조치도 또 다른 과제였다. 파업 대체 인원으로 사측에서 뽑은 1년 계약직 인원만 해도 90여 명으로 복귀한 상황이라 노조측 인원들과 충돌이 예상됐고 2013년에는 시용 기자 19명 중 17명에게 정규직 전환 조치를 내렸다.[20] 이런 사정 탓에 2017년 파업 이후까지 보도국 안에서도 언론노조 소속과 경력직 간에 감정의 골은 점차 깊어만 갔다. 그렇다고 경력기자들이라고 전부 회사와 정권의 뜻에 따르기만 한 건 아니었다.

2014년 1월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등 2012년 총파업 당시 해고자 6명에 대한 징계 및 해고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했다. 2014년 1월 23일 서울남부지법에 회사는 노조측에게 195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남부지법은 노조 측의 파업은 정당하다며 MBC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법은 6월 27일 해고자 6명에 대해 복직 명령을 내리자(2012가합16200) 회사가 이에 항소했지만 2015년 서울고등법원의 2심에서도 노조 측의 손을 또 들어주었다.(2014나11910) 그럼에도 회사 측이 상고하면서 결론이 안 나온 탓에 계류 상태였다가 2017년 12월 8일 최승호가 사장으로 취임한 후 해당 소송을 취하해 가면서 나머지 5명을 전원 복직시켰다.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 방송사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서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이로써 파업으로 회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MBC 노동조합 집행부에게 약 10년 만에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015도8190) 1심 판결문은 서울남부지방법원 2014. 5. 27. 선고 2014고합9 판결 참고. 대법원 판결문은 2015도8190_판결문_검수완료.pdf, 대법원 선고 2015도8190 업무방해 등 사건에 관한 보도자료 참고.

[판결] "'방송 공정성 확보 방안 마련'도 방송근로자 쟁의행위 목적 될 수 있다"
대법 “공정방송 파업은 정당”…‘김재철 퇴진’ 쟁의 MBC 노조 무죄
2.3.2.1. 2012 런던 올림픽 중계와 이후
특히 2012 런던 올림픽 취재단 파견에 문제가 생겼는데 파업 미참가 인원+프리랜서 인원으로 조직한 취재단[21]을 이미 확정하고 노조 복귀 인원을 추가하지 않았다.

올림픽 같은 국제적 행사는 방송국으로서 매우 중요한 행사지만 MBC는 파업의 여파로 계약직 아나운서들이나 초보들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런던 올림픽 기간 동안 여러모로 서툰 모습을 보였다.

겨우 개막식 하나가 끝났을 뿐인데 각종 사건 사고[22]가 터지고 해설을 제일 못 하는 방송사로 꼽히면서 엄청나게 까이기도 했다.

편파, 차별중계도 심했다. 여자 펜싱 에페 단체 경기 때 '신아람 출전'이라는 자막을 대놓고 띄웠고 손연재 경기 영상을 2번이나 재탕했으며 박태환이 1500m 결승전에서 4위를 했는데 메달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결과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게 결정된 순간 바로 축구로 휙 돌려버렸다.

그렇다고 중계 요원들한테 욕할 수도 없는 것이, 파견 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대응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올림픽 같은 큰 행사는 사전에 충분한 교육을 받고 떠나는데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떠난 셈이다.

이후 MBC의 스포츠 관련 취재 및 중계 인력은 자회사인 MBC SPORTS+ 출신들을 충원하고 있다. 2013년 류현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중계 때 캐스터로 한명재 아나운서가 나서는가 하면 MBC ESPN 시절에 활동하던 이정민 아나운서, 이명진 아나운서가 MBC 스포츠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23]

파업 전후로 해서 한 가지 좀 안타까운 점을 들자면 야구, 축구 등 인기 스포츠의 중계진 중 젊은 캐스터가 거의 전무하다는 게 문제다. 상술했듯 엠스플의 간판인 한명재 캐스터가 본사에 와서 알바 뛰는 실정이었는데 MBC 본사 야구 중계 캐스터는 한광섭 아나운서를 빼면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없을 뻔 했다. 한광섭 아나운서마저도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김완태 아나운서가 2014 시즌 한국프로야구 개막전 중계에 투입되면서 위기 상황을 면했지만 포스트시즌 중계에서 LG 편파중계를 해서 1년만에 한명재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이후 이성배 아나운서가 엠스플의 메이저리그 중계에 투입되었다.

축구는 김성주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전향 이후 사실상 축구를 맡을 캐스터는 전무했으며 그나마 젊은 아나운서 중 김정근 아나운서가 축구중계를 자주 나가고 있으나 KBS나 SBS의 젊은 캐스터들에 비해 평가가 나쁘다. 결국 MBC 쪽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아빠! 어디가?의 출연자인 김성주 아나운서-송종국·안정환 해설 조합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내보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2016년 1월 (1년 계약직으로) 스포츠 캐스터 채용 공고를 냈으며 이후 SPOTV 출신의 백근곤 캐스터가 채용되어 스포츠 중계방송에 캐스터로 출연하고 있다.
2.3.2.2. 이후
2012년 10월 11일 정오뉴스에서 김근태 새누리당 의원 의원직 상실과 관련된 방송 보도 중 자료화면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24] 사진으로 올리는 초대형 사고를 터뜨려 대차게 까이기도 하였다. 파업 이후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MBC 뉴스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 파업 종료 이후 최일구 앵커와 김세용, 강재형 아나운서 등 파업 참가자들은 대선이 임박한 시국에 MBC아카데미에서 '재교육'이라고 하여 브런치 만들기나 요가 배우기 등 실제 업무와 관계없는 걸 배우는 보복징계를 받고 있었고 2013년 1월 16일에 회사는 7개월 전에 정직 6개월을 받았던 김민식 PD(당시 노조 부위원장), 이중각 PD, 최형문 기자 등 4명에게 교육발령을 내렸으며 이미 교육 중이던 최일구 등 8명에겐 교육기간 3개월 연장 조치를 내렸다.(관련 기사: #1 #2 #3) 이들 중 최일구 앵커는 사측의 보복징계를 더 이상 못 참고 2013년 2월 8일 사직했다. #

2012년 10월 25일 '18대 대통령 선거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서 前 뉴스데스크의 앵커이자 국회의원이 된 민주통합당 신경민 의원이 나와서 연설했다.[25] 연설 내용은 흥미롭게도 전 MBC 앵커가 현 MBC 사장에 관한 법을 만들겠다는 점이며 일명 '김재철 방지법'으로 공영 방송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국민으로 되돌리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이후 '신경민 MBC 습격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 여담으로 MBC측에서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대변인이 올 줄 알았는데 신 의원이 오니 난리가 났다고 한다.

2013년 뉴스데스크에서 횡령 혐의자를 보도하던 와중에 문재인 의원의 사진을 횡령 혐의자의 실루엣으로 만들어서 내보내는 엄청난 방송사고를 일으켰다. 문화방송의 해명대로 CG 작업하는 직원이 임의로 선택해서 작업했다가 실수로 문재인 사진을 고른 순수한 실수일 수도 있지만 문화방송이 김재철 사장 이후 급격히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던 와중에 극우 수꼴 사이트에서나 나올 만할 짤방이 지상파 저녁 뉴스에 떡하니 나왔다는 사실에 진보 쪽 여론은 극히 나빠졌다. 순수한 실수라고 해도 횡령 혐의자 실루엣을 야권 대표의 얼굴을 알아볼 만하게 실루엣 처리해서 횡령범 실루엣으로 뉴스에 내보냈다는 건 엄청난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 결국 문제의 사진을 만든 여수문화방송의 보도국장은 해임되었다.

2013년 2월 18일 뉴스데스크에서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에 버금갈 만한 것이 방송되었다. '유전자와 이념...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나?' 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 뉴스는 요약하자면 '알통이 굵으면 보수, 알통이 얇으면 진보'라고 표현하였다. 논문을 인용하여 방송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논문의 내용을 왜곡하여 방송하였다. 논문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근육이 많으면 소득의 차이에 따라서 성향이 갈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즉, 근육이 많고 돈이 많으면 보수 쪽으로 갈 수 있고 근육이 많고 돈이 적으면 진보 쪽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는 내용인데 이것이 근육, 몸짱남이 보수, 운동 안하는 사람을 진보라고 매도하고 있다는 점이 잘못되었다. 편파방송이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지경이었다.[26][27] 자세한 내용은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 좌우 항목 참조. 뉴스데스크 해당 기사 다시보기

파일:attachment/mbc1.jpg
2013년 말 해당 고인드립성 합성 사진이 여과 없이 방송된 것에 대해 시청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MBC 노무현 전 대통령 합성 이미지 사건 참고.

2.4. 김재철 사장 해임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3월 12일에 김재우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14일에 방통위는 김문환 전 시청자위원장을 방문진 보궐이사로 선출했다. 이에 최강욱 당시 야당측 이사는 김문환 보궐이사가 MBC 시청자위원장을 빼고 방송계 경력이 전무하다고 하면서 권력의 개입과 방송장악 의혹만 더 커질지 모른다고 반발했지만 별 충돌 없이 21일 이사장직에 선임됐다. #

동월 26일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가결하여 김 사장을 사실상 해임시켰는데 1988년 방문진 설립 후 최초로 방문진이 MBC 사장 해임안에 가결한 사례다. 당시 해임안 내용은 방문진의 임원 선임권 침해, 운영제도 위반, 관리감독기관인 방문진에 충실 의무 위반, 대표이사 지위를 이용한 MBC의 공적 지위 훼손 등이었는데# 김 사장이 사흘 전 방문진과 사전협의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 내정자를 전격 발표한 것이 해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방문진은 2번째로 지분을 소유한 정수장학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사장 해임을 확정하면 공식적으로 사장 지위가 박탈된다. #

그러나 공식적으로 해임되기 직전 사표를 내고 자진사퇴를 선언하면서 3억 가까이 되는 퇴직연금을 고스란히 챙겨갔으며 MBC 사장직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시장후보 경선에서 96표를 얻고 탈락했다. 2015년 2월 13일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에서 배임과 감사원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2014고단339, #) 7월 항소심에서 벌금 2천만 원으로 감형되었다. #

2016년 6월에 김재철 전 사장은 3년 전 사임 당시 MBC로부터 특별퇴직위로금 및 고문료를 못 받았다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2억 3,793만원 가량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9월 1일 1심#, 2017년 6월 20일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 각각 패소당했다.

2.5. YTN 파업

2.6. KBS 파업

전국언론노조 KBS본부(통칭 새노조, 제2노조)가 김인규 사장 퇴진과 부당 징계 철회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YTNMBC 노조[28]에 이어 이들과 연대한 만큼 파장도 만만치 않았고 사태를 관망하던 제1노조[29]까지 가세하였지만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여당에게 의석수에서 밀린 것으로 나타나자 기세가 꺾여 버렸고 무엇보다도 김인규 사장의 임기가 많이 남지 않았던 상태라 6월에 종료되었으며 이후 길환영이 KBS 사장에 등극하였다.


당시 1박 2일나영석 PD가 파업에 참여했다.

3. 파업 응원가


4. 이후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전까지 있었던 일들은 MBC/논란 및 사건 사고, 한국방송공사/논란 및 사건 사고 등 참고.

5. 대법원 판단

나)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파업이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파업의 주된 목적은 G 사장의 퇴진이 아닌 방송의 공정성 확보에 있다. F은 관계 법령 및 단체협약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하고 그 구성원들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 A 등을 비롯한 F의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할 수 있다. 피고인 A 등의 요구사항은 단순히 기존의 단체협약의 해석, 적용에 관한 사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방송을 위한 단체협약의 이행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 이 사건 파업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2) 이 사건 파업 개시의 시기나 절차와 관련하여 관련 법규에 정한 요건에 다소 미비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이 사건 파업의 정당성이 상실된다고까지 볼 수는 없다.

(3) 쟁의행위 자체의 정당성과 이를 구성하거나 부수되는 개개의 행위의 정당성은 구별되어야 하므로, 일부 소수의 근로자가 폭력행위 등의 위법행위를 하더라도 쟁의행위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 사건 파업은 수단 및 방법의 적정성이 인정된다.

다)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쟁의행위의 정당성,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 국민참여재판의 한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채 판단을 누락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대법원 2022. 12. 16. 선고 2015도8190 판결
대한민국 대법원은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 방송사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서 쟁의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6. 참고/관련 자료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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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ㆍ감봉 이춘근 김보슬 조능희 송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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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술할 김재철, 구영회, 박명규 외에 이상로 공정방송노조(2노조) 위원장, 정수채 및 최도영 전 공정방송노조 위원장, 노재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강철용 전 안동MBC 사장, 곽희용 소설가, 문승호 전 전일고등학교 교사, 유무정 전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은희현 전 제주MBC 사장, 정재홍 전 충주MBC 보도국장, 하동근 전 iMBC 사장, 신종인 전 부사장 등이 있었으며 상당수가 친여 인사들이었다.[2] 이 발언은 MBC 김재철 신임 사장과 방문진 인사들에게도 비판받았다.[3] 8월 12월 노사협의회에서는 김우룡을 고소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김우룡 전 이사장은 2012년 <한겨레>에서 2년 전 발언의 경위를 밝혔다.[4] 이 '큰집'은 청와대라는 설이 일반적이다.[5] 일명 '큰집 쪼인트' 발언. 해당 발언으로 인해 파문이 일자 방문진 이사장 직에서 자진사퇴하였다.[6] "방문진, 방통위에 맞서서 MBC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 조만간 이루어질 내 인사조치를 지켜보라"는 내용의 약속이었다. 이 약속을 하고 얼마 가지 않아 김 사장은 학벌·지역주의 인사를 단행했다.[7] 대상 발표를 소개하는 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이다.[8] K본부, M본부, S본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타 방송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엄연한 실례이다.[9] 그나마 이쪽은 양 방송사 간의 거리가 가까워서 다른 곳에 비하면 잡음이 적었다.[10] 실제로 MBC GAME 폐국의 단초가 되었던 1.23 정전사건 직후 엄기영이 물러나고 김재철이 사장으로 취임하였다.[11] 특히 박상현 캐스터는 훗날 폐국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예 음악 방송 자체를 시청하지 않는다고 하며 뮤직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흥분할 정도라고 한다. 이거는 정인호 등 다른 해설도 마찬가지였다.[12]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BC MUSIC), 히스토리 후(MBC L!FE), 무한걸스(MBC every1) 등.[13] 이미 2달 전에 보도본부장 자리를 권재홍 <MBC 뉴스데스크> 앵커에게 넘겼다.[14] 간부급 직원은 파업 참여 불가.[15] 배현진 아나운서는 2014년 기자로 전직하였고 2017년 12월 최승호 사장이 취임하면서 뉴스데스크에서 하차되어 대기발령 상태에 있다가 2018년 MBC를 퇴사하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하였으며 2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16] 이 사건으로 당사자인 권재홍 앵커는 '허리우드(할리우드 액션+허리 wood)'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고 혹자는 권재홍 앵커가 장풍을 맞은 게 아니냐며 비꼬기도 했다.[17]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saveourmbc.com'. 세월이 흘러 사이트가 없어졌으나 유튜브 채널은 남아있다.[18] 단, 8월에 김재철 사장이 퇴진하지 않을 때는 재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뜻에서 잠정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19] 다만 2017년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후 보도제작국과 시사교양본부로 재분리.[20] 2012년 파업 당시 대체인력 격의 '시용' 형식으로 채용된 기자들은 큰 논란의 대상이 되어 최승호 체제 출범 직후 전원 직위가 해제되었다. 이후 박영춘 감사, 노조 등 사내에서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강경파의 계약해지 요구가 있기도 했지만 2018년 12월 결국 시용 출신 기자들의 고용 유지가 결정되었다. 직위해제된 시용 출신 기자 일부는 타 직종으로 전직하였지만 다수는 박성제 체제가 출범한 2020년 이후 부분적으로나마 취재기자직에 복귀하였다.[21] 프리랜서 인원은 김성주, 임경진, 박은지 등 MBC 출신들을 썼고 MBC 스포츠플러스 소속 김민아 아나운서가 동원되었다. 심지어 정년퇴임 후 방송계를 떠난 고창근 전 아나운서까지 급히 불러왔을 정도였다.[22] 위탄2 출신인 배수정의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발언, 개막식 중 악틱 몽키즈와 폴 매카트니의 노래 소리를 줄이고 계속 멘트를 넣다가 'Hey Jude'가 나오자 광고로 넘어간 사태, 박태환의 실격 당시 인터뷰 강행 논란, 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딴 걸 가지고 '최악의 성적'이라고 운운하기 등.[23] 참고로 두 기자는 MBC 본사 이전에 TV조선 기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24] 참고로 이 김근태는 2011년 12월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할 고인 모욕이다![25] 신경민 전 앵커는 정치적 외압으로 해임되었다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돌았다. 관련 기사 지역구도 당시 MBC가 있었던 서울 영등포구 을이었다.[26] 논문의 내용은 근육이 많은 남성이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는 내용으로, 근육의 양이 좌우를 가른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27] 막상 아이러니한 것은 그 알통 뉴스를 기획한 권순표 기자는 언론노조 MBC본부(MBC 제1노조)소속 기자였으며(...) 김재철 사장 선임반대 파업으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경질된 인물이고 게임의 폭력성 실험을 한 유충환 기자도 동일 노조에 속해 있다.[28] 김재철 MBC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다.[29] 제1노조는 보도국 위주/언론노조 산하의 제2노조와 달리 일선 제작스태프나 송출/음향/영상담당 엔지니어 등 현장인력들이 많이 가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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