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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7:52:20

히타치 제작소

히타치(기업)에서 넘어옴
<colbgcolor=#3e3a39><colcolor=#fff> 주식회사 히타치제작소
株式会社 日立製作所 | Hitachi, Ltd.
파일:히타치 제작소 로고.svg
종류 주식회사
기관 설계 지명위원회 등 설치회사
시장 정보 도쿄증권거래소 1부 6501
나고야증권거래소 1부 6501
약어 히타치(日立), 닛세이(日製), HITACHI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본사 소재지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1초메 6-6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一丁目6-6)
창립 1920년 2월 1일
업종 전기 기기
규모 대기업
법인 번호 7010001008844
사업 영역 컴퓨터, 통신 기기, 철도 차량, 가전 제품
대표 회장 히가시하라 토시아키(東原敏昭) .
사장 코지마 케이지(小島啓二)
자본금 4,598억 6,200만 엔
(2020년 3월 기준)
매출 연결: 8조 7,291억 9,600만 엔
(2021년 3월 기준)
영업 이익 연결: 4,951억 8,000만 엔
(2021년 3월 기준)
경상 이익 연결: 8,444억 4,300만 엔
(2021년 3월 기준)
순이익 연결: 5,016억 1,300만 엔
(2021년 3월 기준)
순자산 연결: 5조 3,355억 6,700만 엔
(2023년 3월 기준)
총자산 연결: 12조 5,014억 1,400만 엔
(2023년 3월 기준)
종업원 수 연결: 301,056명
단독: 31,442명
(2020년 3월 기준)
결산일 3월 31일
IR 공식 홈페이지
회계감사 EY신일본 유한책임 감사법인
외부 링크 공식 홈페이지
한국 홈페이지
<nopad> 파일:일본생명 마루노우치 빌딩.jpg
본사 건물 (일본생명 마루노우치 빌딩)[1]
히타치 그룹 공식 회사 소개 영상
「日立グループ 会社紹介映像」 (2024)

1. 개요2. 역사3. 사가4. 본사 및 지사, 공장5. 사업 분야
5.1. IT5.2. 에너지5.3. 기타5.4. 철도차량
5.4.1. 히타치 레일 이탈리아5.4.2. 히타치 레일 STS
5.5.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5.6. 정밀기기5.7. 방위 산업
6. 철수/매각한 사업
6.1. maxell6.2. 히타치건기6.3. 히타치 중공업건설 크레인6.4. HGST6.5. 히타치 제작소 반도체 사업부6.6. 그 외
7. 한국과의 관계8. 히타치 조선과의 관계9. 여담

[clearfix]

1. 개요

Inspire the Next
히타치 제작소의 슬로건

일본의 복합 기업. 사업 분야는 전기 전자 산업, 중공업,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한다. 가전제품부터 서버, 스토리지, 고속철도,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과거에는 VHS, TV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오랜 역사와 방대한 사업분야를 영위하며 일본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복합 기업으로, 연결 자회사 수 기준으로 소니그룹에 이어 일본 2위(2022년 770개)이며 직원 수로는 30만명으로 이 쪽이 더 많다. 국제적으로도 포춘 선정 전세계 글로벌 500대 기업 중 95위에 선정된 다국적 대기업이며(#[2]) 2022년에는 Clarivate Analytics(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구 톰슨 로이터 IP&S)가 선정한 탑 100 글로벌 혁신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

기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IT위주의 사업과 해외에 포트폴리오를 60~70%에 집중시킨 결과, 2020년 1월 31일 기준 846엔이었던 주가는 2024년 6월 28일 3,601엔을 달성하는 놀라운 기업가치 향상을 이루었다. 2024년 기준 현재, 히타치는 고부가가치 사업+해외 포트폴리오 확대라는 기회를 통해 엔저의 수혜를 톡톡히 받은 기업이다.

다시 말해, 2009년의 대적자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일본 메이커의 문어발식 사업에서 탈피하여 전보다는 좁아진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하여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급성장으로 인해 8년차에 900~1,000만엔 연봉이 가능하는 등 일본 사회에서 시간의 흐름에 지지않는 우량한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 역사

파일:히타치제작소 초기 기업광고.jpg
초창기 기업광고

파일:히타치 제작소 로고(1968-1992).svg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사용했던 로고. 지금도 일본의 엘리베이터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920년 설립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본 15대 재벌이었던 아유카와(鮎川) 재벌이라고도 불렸던 닛산 콘체른[3] 계열사들 중 하나였다. 창업자는 오다이라 나미헤이(小平 浪平)이며 히타치 제작소라는 사명의 유래는 이바라키현히타치시에 있는 히타치 구리 광산이다.[4] 이 광산 작업용 기계수리소에서 일본 최초로 5마력 모터를 자체 개발한 것이 히타치제작소의 기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재벌 해체 작업에 의해 1946년 닛산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독립 기업이 되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전자업계 사상 최대 적자폭인 7,880억(당시 환율로는 10조에 육박)의 적자를 냈다. 심지어 본사 사옥도 팔고 이사 갔다. 하지만 2010년 들어서 다시 대규모 흑자를 기록. 2013년도에는 5,328억엔의 영업이익 및 3,640억엔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해 과거 최고 이익을 갱신했다.

2011년 8월 4일 갑자기 업계에서 루머 하나가 돌았다.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사업 합병설이 사실이냐?"라고. 그리고 확인되었다. 다만 그 견해차가 있었다고. 결국 8월 4일 석간에 경영통합 합의 '환영' 사설과 기사가 나갔는데, 다음날 자정에 일본 각 통신사들은 속보로 "통합 합의를 잠정 유보했다"라고 속보로 타전. 그러다가 결국 화력 발전 부문을 2014년 1월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전통적인 제조업을 포기하고 고부가가치 사업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6월, 히타치의 화학 자회사인 '히타치 화성(日立化成)'이 납 축전지 데이터 날조를 하다가 발각되는 사건으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대상 제품은 약 6만대로 납품처는 약 500사에 달한다고 한다. 복수의 원자력 발전소에도 납입되었다고.

2019년 화학 자회사인 히타치 화성을 일본 화학 기업 쇼와덴코에 9,600억엔(약 10조원)에 매각했다.

2020년에는 스위스의 중전기(重電機) 대기업인 ABB의 송배전 사업을 8조 2,000억원에 인수하여 지멘스 등 경쟁사를 제치고 송배전 사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올라섰다.#

3. 사가

히타치 그룹 사가
「日立のうた」 (H.I.T.A.C.H.I.日立)

4. 본사 및 지사, 공장

5. 사업 분야

일반 가전제품부터 서버, 스토리지, 고속철도,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단일 기업집단으로서는 매우 폭넓은 사업분야를 자랑한다. 회사의 모태가 된 제품이 모터이기 때문인지 관련 산업으로의 진출도 많은 편.

2018년(18년 3월~19년 4월) 기준 기타(Others)를 포함해서 8개 사업부가 존재하며 각 사업부가 평균 1조엔(원화로 약 1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5.1. IT

고객과 협력에 의한 사회 이노베이션 사업에 공헌이라는 목적으로 시스템 통합, 정보처리기기 및 통신기기 개발을 한다.

정보기기는 IBM호환 대형 범용기, PC서버, Unix서버 및 슈퍼 컴퓨터 제작, 산업용 PC, 하드디스크 등을 제작한다. IoT와 연계하는 클라우드 시스템 사업도 진행중이다. 다만 저장장치 사업 부문은 2011년 미국 웨스턴 디지털에 매각했다.

통신기기는 후지츠NEC, 오키전기공업과 함께 '덴덴가족'의 일각으로, 그룹을 포함한 NTT그룹에 교환기 등 통신장비를 공급하지만, 오키 전기공업과 함께 중견의 지위에 있다. 또한 금융기관의 ATM제조도 하고있다.

데이터 스토리지 분야에서는 5% 남짓의 점유율로 세계 5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5.2. 에너지

발전기, 변압기 및 전력설비를 생산하고, 일본내의 3개의 원자로 제조업체중 하나이다. GE버노바에서 도입한 비등수형 원자로 기술을 도시바와 함께 제작하여 도쿄전력을 비롯한 회사에 납품하고 있다. 원자력 관계자 중에서는 '미츠비시 중공업, 도시바, 히타치 중에 히타치꺼가 제일 낫더라'라는 평을 듣는다.

증기 터빈 및 대형보일로는 미츠비시와의 합작회사인 미츠비시 히타치 파워 시스템즈로 이관되었다.

2020년 7월, 스위스의 대기업인 ABB의 파워그리드 부문을 인수하여, 히타치 ABB 전력망으로 새로 분사하였다. ABB의 전력사업이 세계 최고였기에, ABB의 파워그리드 부문을 인수하여 흡수한 지금은 히타치의 전력망 및 송배전사업이 세계 최고이다.

5.3. 기타

5.4. 철도차량

철도차량과 철도 차량에 탑재되는 전기기기, 전기설비, 좌석예약 및 발권 시스템, 신호기, 신호시스템, 중앙지령 등의 운행시스템까지 철도에 관한 모든 것을 만들수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히타치가 유일하다. 또한 야마구치현 쿠다마츠시카사도 사업장에서는 자사의 철도 차량도 제작하며, 신칸센 차량도 수주하고 있다.

국철 시대부터 도입하여 JR에서 대대적으로 사용중인 마르스는 히타치와 국철이 공동 개발하였으며, 1960년부터 시스템 개발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또한 JR 동일본의 중앙지령종합시스템인 ATOS도 JR 동일본과 히타치가 공동 개발을 통하여 시스템을 설계및 제작하였다.

스테인리스 차체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종합차량제작소와 달리, 히타치는 2004년경에 스테인리스 차체 생산 설비를 철거하고 A-train 기반 알루미늄 합금 차량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철도 차량의 제작공장은 히타치 제작소 카사도 사업소 참조.

5.4.1. 히타치 레일 이탈리아

2015년 이탈리아의 철도차량 제작사 안살도브레다[7]와 신호 시스템 제작업체인 안살도 STS를 인수했다.

안살도브레다 시절에는 기상천외한 결함으로 반품당한 뒤 베네룩스의 고속철 사업(Fyra)을 엎어버린 V250, 5년의 납기 지연에 더해 각종 결함으로 운행 중단을 겪다 아예 매각당한 DSB IC4[8][9]등 역사에 남을 걸출한 망작들을 배출한 유럽 시장의 문제아였다.

한때 부산김해경전철 차량을 제작할 예정이었지만 현대로템이 제작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히타치가 제작하였다면 아마 코펜하겐 지하철의 차량과 비슷한 차량이었을듯 하다.

5.4.2. 히타치 레일 STS

이탈리아 제노바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열차 신호장치 제작사이다.

2015년 안살도 STS가 히타치에 인수된 이후, 2019년 히타치 레일 STS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안살도 STS는 한때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계열사였던 유니온 스위치 & 시그널(US&S, Union Switch & Signal)을 1988년에 인수했으며, 2009년 안살도 브랜드로 통합되었다.

히타치 레일 STS는 한국철도공사ATP 차상장치를 공급하는 등 한국에도 진출했다.

다음은 국내에서 히타치 레일 STS(안살도 STS 시절 포함)의 ATP 차상장치를 장착한 차량 목록이다.

5.5.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건물 인프라 사업부인 히타치 빌딩 시스템 유닛 에서 전개하는 사업이다.

히타치엘리베이터 사업부는 예전부터 한국의 63빌딩[11], 북한의 고려호텔[12] 등 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왔으며, LG산전 승강기사업부가 오티스에 합병되기 전까지 기술 제휴를 했었다.[13]

2017년 12월 한국 재진출을 꾀했다.

2018년 기준 이 분야에서 세계 5위의 기업이다. 엘리베이터 테스트 타워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G1 타워를 보유하고 있으며,[14] 중국의 CTF 광저우에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인 분속 1,260m급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2019년 3월, 한국 사업을 접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BC 납품을 노리고 들어온 건데 뜻대로 되지 않자 곧바로 철수했다.기사 설치 현장도 매우 적고, 코네엘리베이터처럼 유지관리 인력까지 완벽하게 철수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부품 공급은 물론 정기검사 수검에도 난항을 겪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재진출 당시 주력 판매 기종들 대부분이 중국 지사에서 반입하는 모델이었고, 품질도 매우 조악했다고 한다.

일본 내수용 기준 음성안내 성우는 과거 나카무라 케이코가 맡았으나 2000년대부터는 TTS를 비롯한 음성합성 기능을 사용한 기계음을 사용하고있다.

5.6. 정밀기기

대학이나 연구소용 전자 현미경이나 전자 측정장비 등의 사업분야가 있다. 이 분야는 판매처는 전 세계에 몇십, 몇백밖에 없지만 기기값이 아무리 싸도 10만 달러, 1억원 대가 기본값이다. (구모델이라 해도 약 7,000~8,000만원이다.) 특히 SEM 현미경 분야에서는 대단한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저런 장비는 고장 나면 히타치 본사나 제휴업체에서 A/S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 비용도 많이 든다.

5.7. 방위 산업

방위산업 쪽에도 발을 담그고 있어서, 96식 120mm 자주박격포를 제작하여 육상자위대에 납품하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치하나 96/99식 경기관총 등을 생산하여 일본군에 납품하기도 했다.

6. 철수/매각한 사업

6.1. maxell

'닛토덴코'(日東電工, 일동전공)[15]라는 회사를 히타치가 인수해서 자회사로 만든 뒤, 건전지와 자기테이프 부문을 다시 떼어내서 만든 회사이다. 닛토덴코는 2003년에 히타치에서 독립을하여 현재는 히타치와 무관한 회사이다. maxell[16]이란 브랜드의 뜻은 maximum과 dry cell(건전지)의 합성어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전산소모품 등을 maxell 브랜드로 만들어 와서 일반인들에게 인지도가 나름대로 높다. 2014년 상장, 2017년 지분 공개매각을 통해 그룹에서 이탈했지만 히타치가 여전히 소수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maxell 브랜드로 출시되었거나 생산중인 제품으로는 건전지, 공CD/DVD, 카세트테이프[17], 비디오테이프[18], 플로피 디스크, 디지털 백업 테이프 등이 있다. 대부분 당대 혹은 현재 시장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한다.

6.2. 히타치건기

2022년 기준 캐터필러, 코마츠 제작소에 이어 세계 3위권의 점유율을 자랑한다.[19]

2022년 지분의 과반수를 매각. 지분이 25.4%가 되어 연결 자회사가 아니며 관련 회사가 되었다.-그래도 한국 재계 기준으로 치면 계열사인 셈이다-

6.3. 히타치 중공업건설 크레인

건설기기 중 크레인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로, 2002년 스미토모그룹의 스미토모건설에서 분사한 스미토모중기계건설크레인과 합병, 히타치스미토모중기계크레인(영문명 Hitachi Sumitomo Crane, 약칭 HSC)로 탄생했으나 2018년 스미토모그룹에 지분을 모두 매각, 지금은 스미토모중기계건설크레인(Sumitomo Heavy Industries Construction Crane)이다. 사명은 변경되었으나 인터넷 도메인도 그렇고 약칭 또한 히타치스미토모 시절의 HSC를 사용한다.

6.4. HGST

히타치는 2003년 IBM의 스토리지 사업부를 인수하여 히타치제작소 스토리지사업부 HDD부문과 합병, 자회사인 히타치 글로벌 스토리지 테크놀러지스(Hitachi Global Storage Technologies; HGST)를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지분율은 히타치 7:IBM 3이었으나 IBM은 HGST 지분을 2005년 완전히 매각하였다.

하드디스크를 처음 개발한 원조기업인 IBM의 기술력에 힘입어 하드디스크 분야의 메이저 업체였으나, 2011년 웨스턴 디지털에 매각하였다. WD는 HGST 인수 이후에도 (IBM 시절부터 내려온) Ultrastar, Deskstar 등의 제품명과 함께 HGST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였으나, 2018년부터는 HGST 브랜드를 폐기하였다.

6.5. 히타치 제작소 반도체 사업부

히타치는 DRAM과 CPU, 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개발, 제조하는 메이저 업체 중 하나였다. 70년대에는 모토로라 68000 CPU를 라이센스 생산하였으며, 80년대에 개발한 자체 저전력 CPU 아키텍처인 SuperH는 일본 전자회사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다.

히타치 반도체의 주요 고객사로는 세가가 있었다. 메가드라이브의 CPU를 원제작사인 모토로라로부터 하청 생산하여 세가에 납품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이후 세가 새턴드림캐스트에서도 자사의 CPU인 SH-2, SH-4를 채용하였다. 이렇게 CPU를 독자 설계하는 기술력을 보유했던 히타치의 반도체 사업부는 2003년 르네사스 테크놀러지가 설립될 때 주축이 되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아케이드 게임의 기판 설계에 히타치의 영향력이 제법 있었다. 어떨 정도냐면 중견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 카네코에서 히타치의 부품을 제공받아 만든 슈퍼노바 기판에 특허권 문제가 발생하자 뿔난 히타치 측에서 소송을 걸었고, 카네코가 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기존 SuperH가 강점을 보이던 저전력 임베디드 시장을 ARM이 먹어치우고, 주요 고객사인 세가가 콘솔 시장을 철수하는 등 일본 전자산업이 침체하면서 히타치의 반도체 매출은 하락세를 보였다. 이에 히타치는 반도체 사업부를 2003년 미쓰비시전기의 마이크로컨트롤러 부문과 통합하여 르네사스 테크놀러지를 형성한다. 이후 NEC의 반도체 사업부도 르네사스에 합류한다.

히타치는 2010년대까지 르네사스의 대주주로 남아 있었고 그룹 차원의 지원도 계속했지만, 사업 부진 중에 결정타를 때린 동일본 대지진으로 르네사스는 경영 위기에 빠졌다. 이에 일본 정부의 주도로 유상증자를 통한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았고, 이에 따라 히타치의 지분율은 3%대로 쪼그라들어 이제는 사실상 남남이 되었다.

6.6. 그 외

오랜 역사와 방대한 사업 분야를 갖고 있는 만큼 그동안 철수한 사업도 굉장히 많다.

7. 한국과의 관계

LG그룹과 연관이 깊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시절 1960년대 말부터 히타치와 제휴했다.[23] 또한 오티스 엘리베이터와 제휴하기 전까지 엘리베이터 부문에서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했다. 현재 합작 사업으로는 히타치 계열[24]인 LG히다찌, Hitachi-LG Data Storage[25]와 LG그룹 계열[26]# LG-히타치워터솔루션이 있다. 이 외에 현재는 LS산전 등의 회사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27][28]

1970~1980년대에 걸쳐 대우중공업에서 히타치 굴삭기를 절찬리에 라이선스 생산했던 덕분에 히타치 굴삭기는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29][30] 그 외에도 대우중공업이 히타치 제작소와 기술제휴로 새마을호 객차 및 최초의 국산 전동차인 한국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1X15 편성을 제작한 적도 있고, EEC 전동차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1차 반입분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한국이 수입자유화를 시행하기 이전이라 사실상 보호무역의 틀 안에서 기술제휴 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중국이 행하는 사업관행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여기있는 제휴 사례들은 정식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철도 분야에서는 1944년에 데로2형 전기기관차를 납품하였으며, 1974년 대한민국이 최초로 서울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때 히타치제작소에서 제작된 전동차를 도입하였으며, 2009년 누리로 열차 및 대구 3호선 전동차도 히타치와의 기술제휴로 제작되었다.

설립 시기에서 짐작가능하듯이 이 회사도 소위 '전범기업' 가운데 하나로, 상기하였듯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치하96/99식 경기관총 등을 생산하여 일본군에 납품했다. 그렇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지금까지도 주로 합작회사를 통해 사업을 해오고 있어서 기껏해야 굴착기나 하드디스크 제조사 정도로나 명성이 있는 편인데다, 대표적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그룹에 가려서 존재가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무라타 제작소, 코마츠 제작소, 시마즈 제작소, 카토 제작소, 에바라 제작소, 카와이 악기 제작소, 호리바 제작소 등과 같이,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름에 제작소가 들어가는지라 한국에서 관련 업종 종사자 외에는 철공소나 중소기업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본 회사명을 한국어로 '히치' 또는 '히다'라 읽는 경우가 있으나 표준 외래어 표기법이든 통용 표기든 '히타치'가 옳다. 아무래도 구식 표현인 듯하다.[31][32] 그러나 한국 내의 LG와의 합작법인명은 여전히 'LG히다찌[33]'였다.[34]

에어컨 부문은 1970년 설립된 세기냉동(현 경원세기센추리)과 제휴했다.

8. 히타치 조선과의 관계

히타치 조선(日立造船, Hitachi Zosen)이라는 회사는 현재의 히타치 제작소와는 관련이 없는 기업이다.

히타치 조선은 영국인 설립자에 의해 오사카 철공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 1930년대 본 문서의 히타치 그룹에 인수되어 '히타치 조선'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1946년에 GHQ에 의해 재벌해체 이후 다시 분리되어 70년 이상 히타치 그룹과 연관이 없는 회사로 이르고 있는데 히타치라는 이름을 원래대로 환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선'을 영어로 Zosen으로 적으며[35] '히타치 조선'을 하나의 고유명사로 쓰고 있다. 이름에 조선이 들어가지만 현재는 조선업은 철수해 있다. 즉 이름은 조선이지만 배는 전혀 만들지 않고 있는 특이한 기업이다.

중공업 분야에서 히타치제작소와 사업영역이 겹치는 분야가 많아 혼동하기 쉽다. 한때는 민수용 PC도 만들었었다. 현재는 완제품 PC는 만들지 않지만 각종 자동화 시스템에 들어가는 특화된 컴퓨터 메인보드, 전용 콘트롤러 보드들은 제조한다. 히타치제작소와 마찬가지로 방위산업에도 참여하고 있어서, 94식 기뢰 부설차를 제작하여 육상자위대에 납품하기도 했고 해상자위대의 여러 전투함들의 건조에 관여하기도 했다.

9. 여담



[1] 도쿄역 마루노우치 출구를 나와서 바로 오른쪽에 있다.[2] 2021년 11월 기준 시가총액으로는 대한민국의 2위인 SK하이닉스 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규모.[3] 닛산자동차, 닛산화학 등 '닛산'의 명칭을 단 대기업들이 아유카와 재벌을 시원으로 한다.[4] 그래서 히타치시와 한자가 똑같으며 여전히 히타치 사의 공장이 제법 많다. 옛날에는 히타치 일대를 운영하는 사철 '히타치 전철'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 이후 폐선되어 버스 회사만 남았으나, 지금은 그 마저도 사라졌다.[5] 정확히는 본사 안의 핵심 컨트롤 타워가 되는 경영지원부, 마케팅부, 인사팀 등이 입주해 있는 건물 전체를 통칭하며, 이사회 및 사장 집무실 등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마루노우치 빌딩이 된다.[6] 매출 비중이 미미해도 이런 사업을 계속 하는 이유는 브랜드를 알리기 좋은 B2C 업종이기 때문. 반도체로 돈을 쓸어담고 있는 삼성전자가 돈 안되는 생활가전 등의 사업을 중소기업 OEM으로라도 계속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7] 히타치에 인수되기 전에는 구 핀메카니카 계열이었다.[8] 야심차게 도입했던 이 디젤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운행 지장 때문에 덴마크는 아예 철도망 전철화를 추진했을 정도다.[9] 납기 지연을 겪던 와중에도 한 편성이 뜬금없이 카다피에게 선물로 보내져서 리비아에 남아있다(...)[10] 8256~8283호 한정.[11] 1985년식이며 히타치에서 생산하고 금성산전에서 설치했다. 2006년 미쓰비시엘리베이터로 교체되었다.[12] 63빌딩의 것과 같은 1985년식인데 지금도 현역이다. 애초에 일본에서 원자재를 가져다 지어서 TOTO,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이 납품에 참여했다.[13] 이 기술제휴의 흔적은 의외로 최근까지도 남아있었는데, 오티스 미국 본사에서 개발한 벨트식 모델인 GeN2가 들어오기 전까지 주력 모델이었던 LG산전 Di1의 로프식 기어드 권상기가 그 대표적인 흔적이었다. 권상기 형태가 히타치 기술제휴 모델이었던 LVP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14] 높이는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아산타워보다 8m 높은 213m이다.[15] 이 회사는 일본의 유명한 화학소재 기업이다.[16] '맥셀'로 읽는다.[17] PO'z 시리즈가 유명하며, 상당히 잘 나갔던 1995년에는 쿠로유메가 CM에 출연하기도 했다.[18] 건식 비디오 헤드 클리너 포함[19] 건설기계는 압도적 캐터필러코마츠 제작소가 압도적인 1,2위를 형성하고 있다. 3위는 다소 복잡한데, 중국의 대형 건설기계사들과 볼보건설기계, 히타치 등이 3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다. 3위권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국내건설기계3사의 시장점유율을 모두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다.[20] PC 분야에서 당대 일본 PC 삼대장인 NEC, 사프, 후지쯔 바로 다음가는 4위 업체였다. 실제로 PC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역사도 70년대부터라 일본 타 전자회사에 비해 꽤 긴 편이다.[21] VHS 계열 VCR 중 당시 세계 제일로 쳐 주는 것이 National(파나소닉) 제품이고 그다음이 Hitachi. 그다음이 정작 VHS를 개발한 회사인 JVC 제품. 물론 이들 외에 일본의 듣보잡 메이커 제품의 VHS VCR도 당시 국내 삼성전자, 금성사 제품보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았고 성능도 뛰어났다.[22] B to B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할부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또한 B to C사업의 경우에도 판매하는 제품의 단가가 높은 경우 할부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두면 범위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23] 기술 수입 외에 면도기 등 일부 완제품의 OEM 수입도 있었다. 또한 LG디스플레이가 채용하고 있는 IPS LCD의 원류가 히타치이다. 다만 히타치의 LCD 사업은 이후 파나소닉 산하의 파나소닉 LCD(2016년 폐업)와 재팬 디스플레이로 분리되었다.[24] 지분율 히타치 51%, LG전자 49%.[25] 약칭 HLDS 또는 HL-DT-ST. LG 마크가 붙은 ODD를 생산한다.[26] LG전자 51%, 히타치 49%.[27] 아직도 LG 전자계열과 히타치의 관계는 돈독한지, LG의 제품을 분해해 보면 국내생산이 안되어 일본산 수입부품을 써야 하는 곳에는 히타치의 것을 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28] LG정유의 후신인 GS칼텍스 서울 KIXX도 이로 인해 히타치 리바레와 자매구단처럼 비시즌에 교류하고 있다.[29] 굴삭기 등 대형 건설기계는 건설현장 인근에서 브랜드명이 크게 노출되는 기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제품 중 하나이다. 70~80년대에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때문에 한국에서 일본 전자제품의 정식 수입이 어렵던 시절 히타치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제품이 바로 이 건설기계다. 건물 기초공사하는 현장 잘 보이는 위치에 대문짝만하게 HITACHI라고 써 있는 기기가 작동하니 지나가는 대중들이 모를 리 없다.[30]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착지 강제철거시 현대중공업이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철거현장사진이 세계 유력언론에 보도되는데 크고 아름답게 HYUNDAI라고 써 있는 건설기기들이 노출된 것. 이 사진을 보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스라엘에 굴삭기 등을 팔지 말라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 #[31] 미야모토를 미야모도로 읽는다.[32] 일본어의 무성음은 한국어의 거센소리에 비해 대체적으로 기식이 약한 편이다.[33] 2022. 12. 14.에 ‘클로센’으로 사명을 변경했다.[34] 다만 이름과는 별개로 경영권은 히타치 쪽에 있다.[35] 조선 시대 할때 조선은 'Chosen', 'Joseon' 이다.[36] 레이솔이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Rey, 태양을 뜻하는 Sol이며 모기업 히타치를 상징한다.[37] 기업에서 이런 일은 매우 흔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물자를 판매한 미국기업은 꽤 많다.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 하기 전이야 동맹국 영국의 눈치를 안볼수는 없지만 중립국이라 말이 된다 쳐도 미국이 유럽전선에 참전한 이후에도 계속 물자를 판매한 미국기업들은 제법 있다. IBM이 나치에 협력하고 스탠다드 오일이 독일에 석유 판매 자회사(DAPAG)를 전쟁중에도 운영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같은 일본 기업인 도시바냉전 시기 소련CNC 공작 기기를 몰래 팔아먹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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