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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4-22 02:22:51

해(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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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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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解2. 海
2.1. 상세2.2.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인2.3. 가상 인물
3. 관련 문서

1.

해(解)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명으로 조사되었다. 해(解)씨의 어원은 태양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추정된다. 단군(檀君)의 성씨가 해(解)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의 선조 환인, 환웅의 '환'(桓)은 이 글자는 '환하다', '빛나다'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고대 동양에서는 '하늘'이나 '광명'을 상징하는 글자로 자주 사용되었다. 즉, 환(桓) 은 밝고 환한 하늘의 태양을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환하다'라는 표현이 '밝다'라는 표현으로 쓰는 것에서도 그 의미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은 밝달 단(檀) 임금 군(君)이 합쳐진 단어로 우리말 '밝'은 '밝다'라는 의미로 태양이나 하늘을 의미하며, '달'은 세계, 땅을 의미한다. 즉, 밝달임금이란 '밝'(밝은) + '달'(세계) + 임금(君,임금 군) 을 밝게 다스리는 큰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조선의 통치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라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또한, 한민족은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배달은 밝달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한 것이다. 즉, 한민족은 밝달의 민족, 단군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삼국유사>> 등 여러 잔존 고문서에서 단군의 성씨가 해(解)씨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고구려조에 따르면, 고구려 국왕 '주몽(朱蒙)이, 단군(壇君)의 아들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해모수와 주몽이 태양을 의미하는 해(解)씨를 성으로 삼았다는 기록은 밝달(태양)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단 해(解)씨는 우리나라 고대 성씨 중 하나로, 부여, 고구려, 백제의 왕성이었다. 부여의 시조인 해모수로부터 그 후손들이 내려와 고구려의 주몽으로 이어졌으며, 주몽의 아들이자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 역시 부여씨가 되기 전에는 해씨였다.[1] 온조가 성씨를 부여씨로 바꾸었지만 비류, 온조 세력이 남하할 때 해루를 비롯한 해씨 일파도 같이 남하하여 대성팔족 최고 가문으로써 해씨의 명맥을 이어갔다.

중국에도 해씨가 존재한다. 기원을 보면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姬姓)에서 계출되었고, 현 산시성 윈청시에 위치해 있었던 해현(解縣)을 주 왕실로부터 봉지로 받았기에 당시에 으레 그랬듯이 지명을 씨로 쓰게 된 것에 해당한다. 당서 열전에도 해완(解琬)이라는 인물이 등재되어 있다. 또한 원래 복성인 해비(解毗, 解批)씨가 성씨를 축약하면서 탄생한 해씨도 있다 한다. 중국의 백가성(百家姓) 중 161위이다.

2.

본관은 김해(金海) 단본이며, 시조는 명나라 홍무제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해서필(海瑞必)이다. 해서필은 호가 양촌(陽村)으로 홍무제의 명을 받아 대도독(大都督)의 직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조선 태조가 그의 공훈을 높이 사 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에 책봉하였다고 한다.[2] 시조의 묘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1 「앙엽기(盎葉記)」에 수록된 '동국제성(東國諸姓)'을 보면, 이덕무가 1789년(정조 13) 《동국여지승람》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사하며 당시 한성부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성씨를 모두 기록해놓았는데, 이 중에서도 해(海)씨가 나타난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 해(海)씨중 46.4%가 회족, 31.2%가 한족, 18.4%가 몽골족이다.

2.1. 상세

1930년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 당시에는 김해(金海) 6가구, 진주(晉州)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등 총 8가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지역별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 - 김해 해씨 해종한(海宗漢)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 - 김해 해씨 해춘수(海春洙), 해낙서(海洛瑞), 해경욱(海京旭) 3가구
●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하촌리(현 나주시 반남면 성계리) - 김해 해씨 해대례(海大禮), 해일순(海溢順) 2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 진주 해씨 해종수(海宗洙)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현 영암읍) 농덕리 - 본관 불명 해학중(海學仲) 1가구
※ 8가구 모두 전라남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영암군에 김해 해씨 3가구, 진주 해씨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그리고 나주시에 김해 해씨 2가구, 목포시에 김해 해씨 1가구가 나타났다.

이중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에 살던 해종한(海宗漢)씨는 해씨가 명 태조 때 중국에서 이주해 온 귀화성[3]이라고 전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살던 해종수(海宗洙)씨는 그 내력에 대해 당시로부터 약 50년 전[4]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주해왔다고 증언했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김해 본관 이외에 진주 본관이 사라지고, 영암(靈巖)과 함양(咸陽) 본관이 새로 나타났다. 인구는 전국에 270명(김해 150명, 영암 80명, 함양 10명, 기타 22명, 미상 8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전국에 322명(김해 149명, 영암 121명, 함양 48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영암 본관과 함양 본관이 다시 사라지고 김해 142명, 기타 4명 등 전국에 146명으로 인구가 대폭 줄었다.

아래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해덕진(海德珍, 1976. 2. 21 ~ )[5]과 전직 복싱 선수 해학기(海學基)[6]가 유명하다.

2.2.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인


2.3. 가상 인물

* 작품 문서에서 확인되는 장르가 여러 개인 경우, 원작을 기준으로 한다.
  • 작품은 가나다 순서대로 작성한다.
  • 주연인 경우 볼드체로 작성한다.

| 영화
* 드림 - 해맑은[7]
| 애니메이션
* 최강! 탑플레이트 - 해모수
| 소설
* 수호전 - 해진, 해보
| 기타
* 11번째 수학여행 - 해가준

3. 관련 문서


[1]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친자인지 혹은 온조 하나만 친자인지는 학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주몽이 고씨로 성을 바꾸기 전에는 둘 다 해씨였음이 명백하다. 소서노의 첫번째 남편인 우태가 해부루의 서손이었기 때문.[2] 해서필(海瑞必)이 조선에서 큰 공을 세워 봉군까지 될 정도였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단 한 차례라도 논하지 않았을리가 없으며, 또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부상서는 조선시대 이조판서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서 명나라 초기에 이부상서를 지낼만큼 고위관료였다면 적어도 바이두 백과(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어판 위키백과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의 이부상서(吏部尚书) 항목에 언급되었을텐데, 바이두 자체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신원이 불확실하므로 믿기는 어려운 정보이다.[3] 이와 관련하여 명나라의 유명한 청백리였던 해서가 있다.[4] 1880년경[5]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1기 수료.[6]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목포시 죽교3동에 살았다고 한다.[7] 박명훈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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