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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4 16:14:21

해방함

1. Coastal defence ship
1.1. 정의1.2. 해방함의 등장1.3. 해방함의 몰락1.4. 해방함 목록
2. 海防艦(かいぼうかん)
2.1. 소개2.2. 역사2.3. 분류
2.3.1. 1898년 ~ 1931년2.3.2. 1942년 이후


1. Coastal defence ship

파일:external/www.photoship.co.uk/Vainamoinen-01.jpg
대표적 해방함인 배이내뫼이넨급 해방함.

1.1. 정의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함급[1]으로 연안방어에 중점을 둔다. 과거 전열함에서 이어져오는, 대형함에 비해 작지만 주력함 수준의 화력을 가진 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2] 해방함은 주력함에 쓰이는 거포 2~4문 정도의 무장에 20노트 수준의 느린 속력을 가졌다.

다만 정의가 꽤나 애매모호하다보니 각나라마다 명칭이 제각각이었다. 영국에서 해안방어함이라고 부른 반면, 당시 라이벌이었던 독일에서는 해안장갑함,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경우 철갑함 또는 장갑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크기나 무장(특히 보조무장)도 나라마다 다르다.

1.2. 해방함의 등장

해방함은 대략 1860년대쯤부터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프리드레드노트(Pre-dreadnought)형 전함이라고 하면 전, 후방에 주포를 장착한 포탑이 있고 현측에 포곽(Casemate)식 부포가 전열함처럼 주렁주렁달려 있는 형태를 생각하는데, 철갑선이 첫 등장하자마자 바로 그런 안정적은 구조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프리드레드노트시절 설계가 일정하지 못하던 시절,[3] 유럽에서 신형군함을 건조 할 수 있는 나라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당연히 어떤 설계와 형태가 제일 좋은지 알 수 없었기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해방함이다. 해방함이라는 발상이 등장한 이유는 비용과 예산 또는 기술의 부족이었다. 왜 두 가지 이유가 되냐면 두 이유가 복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인 비용과 예산, 이점은 철갑선증기기관의 등장으로 필연이었다. 당연히 기존의 목재 범선과 비교하면 건조비용이 비싸졌으며 증기기관을 장착하면서 유지비도 급증했다. 그러다보니 전열함의 연장에 가까웠던 주력함을 마냥 범선처럼 만들기에는 예산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발상이 나왔는데, 바로 주력함을 축소해서 해안을 방어 할 수 있는 함급을 만들자는 것이다.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으며 실제 대부분의 해방함은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 나중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열함이 아닌, 드레드노트급이 등장한 뒤에도 프리드레드노트, 또는 드레드노트를 축소시킨 형태의 해방함이 등장하는데 이또한 같은 맥락이다.

두번째 이유인 기술의 부족은 마찬가지로 철갑선과 연관이 깊다. 모니터함(영국이 만든 화력지원용 모니터가 아니라 미군의 모니터함)을 보면 알겠지만 쇠로 배를 만드니 무게가 많이 나가서 거의 포를 물위에 띄운듯한 형태를 볼 수 있는데, 당연히 이런 배는 원양항해가 될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원양항해가 가능한 주력함을 만드는 것은 물건너간 이야기다. 물론 배를 많이 만들어본 영국이나 신기술의 요람인 프랑스같은 경우는 뭔가 그럴싸하게 철갑선을 만들었지만 독일 제국같이 막 해군을 키우는 나라는 배도 만들어 본적이 없는데 위에서 까라고 해서 '팍'하고 큰 배를 만들 수 없으니 일단 작은 배부터 만들면서 경험을 쌓아보기 위해 일단 연안항해가 가능한 수준의 군함부터 건조해서 해방함이 탄생하게 되었다.

1.3. 해방함의 몰락

해방함의 장점은 역시 비용과 배수량에 비해 좋은 화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많은 나라가 거함을 만들려고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배는 크면(배수량) 강하다.' 라는 단순한 원칙 때문이다. 배가 크면 갑판도 넓어지며 그 넓은 갑판위에 더 무거운 또는 더 많은 무장을 할 수 있게 된다. 혹은 부력이 견딜 수 있을때까지 장갑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해방함의 한계가 나타난다. 해방함은 아무리 노력해도 주력함보다 약하거나 적은 화력을 가지게 된다. 장갑이야 배가 작으니 잘 설계하면 최소한의 장갑으로 효율을 낼 수 있겠지만 화력은 불가능하다. 실제 해방함의 주포만 떼놓고 보면 주력함'급' 화력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실제 함선의 전반적인 화력은 여러 한계로 인해 주력함과 동등해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화력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배가 작은데 그 한정된 공간안에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무장을 넣어야 하니 동력원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기술로는 같은 공간대비 효율이 좋은 중유보일러같은 것이 없었으니[4] 연료는 무조건 석탄이었는데, 같은 동력원을 쓰면서 더 작은(또는 적은) 보일러에서 주력함 수준의 출력을 낼 수는 없었다. 물론 배가 작으니까 적은 출력으로도 주력함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력을 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여기서 또다른 한계가 나타난다. 선체의 형상에 따라 출력대비 배수량이 많이 나가더라도 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한데,[5] 해방함은 큰 포를 달아야 했기 때문에 선체를 고속에 적합한 긴 형태로 만들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해방함은 짜리몽땅한데, 바로 포의 반동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 이러니 주력함을 능가하는 속력을 내게 하는 것은 물건너 간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해방함은 화력과 속력, 두 문제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했고, 전함 HMS 드레드노트(1906)가 등장하면서 함선 건조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 드레드노트는 드레드노트급이라는 새로운 주력함 개념을 만들었고, 드레드노트 이전에 개발된 주력함을 전부 '프리드레드노트'로 일컫게 되는 원인이 된 함선이다. 당장 프리드레드노트 함선들과 비슷한 수준의 무장을 소수 장착하는 것이 한계였던 해방함은 더 강력하고, 더 많은 화력을 낭비하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투사할 수 있게 된 드레드노트를 능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드레드노트가 건조된 이후 개발된 해방함은 주력함을 대체하는 목적이 아닌, 자국의 국방 수준이나 지형에 알맞는 군함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대표적 사례가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인 핀란드의 배이내뫼이넨급 해방함이다. 실제 배이내뫼이넨은 쇄빙선인데, 핀란드의 기후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기도 하다. 또 다른 사례로는 태국의 톤부리급 해방함을 들 수 있는데, 톤부리급은 태국의 국방력 수준에 맞춘 함선이다.

물론 소수의 나라는 해방함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발상으로 '드레드노트'를 축소한(!?) 해방함을 개발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의 소국에서 주로 연구한 방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장 유명한(이자 거의 유일한) 해방함이 바로 스웨덴스베리예급 해안경비함(해방함)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이런 비슷한 발상을 했지만, 네덜란드는 본토가 아닌 식민지 방어를 위해 주력함을 경량화시킨 함선을 해방함으로 부른 케이스라 좀 애매하다.[6]

1.4. 해방함 목록

해방함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는 나라는 별로 없으나, 대충 해방함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 배들을 적어둔다. 단, 모니터함은 해방함과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른 함급이므로 목록에서 제외한다.

2. 海防艦(かいぼうか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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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개

海防艦. 구 일본군 해군이 운용했던 특이한 종류의 군함을 말한다. 배수량 1000톤 안팎의 소형함정으로 주로 선단호위와 대잠 등의 임무를 맡은 특수목적함이었다. 현대 해군 기준으로는 연안전투함의 개념 안에 든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은 호위함(Escort ship)으로 분류했다.

당시 미국 해군(특히 잠수함 부대)의 주된 적수 중 하나가 일본 해방함이었는데, 미 해군이 해방함을 당시 “kaibokan"이 아니라 ”kibokan"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키보칸”으로 읽는다고 알고 있던 미 해군 장병들이 많았다. 군사 다큐멘타리에서 옛 미 해군 참전용사들이 키보칸이란 말을 하면 카이보칸, 즉 옛 일본 해방함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2.2. 역사

해방함이라는 함종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8년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주 목적은 해안 방어였다.

일본은 좁고 긴 국토에 섬이 많은 데다가 해안선의 형태가 매우 복잡해서 29,000km에 달한다.[17] 또한 섬나라인 일본은 자연히 해안 방어의 주용성이 매우 높았는데, 문제는 연합함대가 함대결전사상 교리에 의거 한 방 싸움만을 상정해 전함, 순양함, 항모(당시엔 항모가 없었지만) 등의 주력함과 그 보조용으로 건조된 후부키급 구축함, 카게로급 구축함 같은 럭셔리한 물건만 보유했기에 정작 긴 해안선을 방어할 군함이 없었다. 물론 일본도 이 점을 잘 알았기에 해안을 방어할 목적의 함정을 확보하려 노력한 결과 해방함이 탄생했다.

그러나 함대결전 교리에 빠져있던 일본 해군이 해안 방어를 담당할 함선의 필요성을 알고 있긴 했으나 해방함들을 신규 건조한 것은 아니다. 해방함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898년이지만, 당시의 '해방함'은 함령이 20년이 넘어가는 구식 전함이나 장갑순양함 등을 모아서 해안 방어를 맡긴 3선급 구식함들이었다. 당장 퇴역해야 될 정도로 노후화된 배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심지어 청일전쟁에서 노획한 배들도 있었다.참고

하지만 '해방함'이라는 이름과 달리 주력함 출신인 데다 타국 인사와 접촉할 가능성도 있어 함장은 중좌가 임명되었으며 '군함' 취급을 받아 순양함 이상 함급에만 허락되는 국화문장을 배에 달고 다녔다.[18] 시무슈형 이후에야 이 제도가 바뀌었다.[19]

하지만 1930년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구축함의 보유량 제한이 걸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일본은 소련을 의식해 북방해역 경비에 구식 카미카제급 구축함들을 투입하고 있었는데, 구축함에도 보유량 제한이 걸려 이들이 일선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경비에 사용할 구축함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래서 런던 해군 군축조약 직후 1931년 조약에 걸리지 않는 보조함 한도 내에서 신형함을 새로 건조해 구축함을 대신해 해역 경비를 맡기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기각되고 대신 구식 구축함들을 모아 해당 임무에 투입했다.

그러나 1937년 시무슈(占守)형 4척의 건조가 결정되고, 여기에 더해서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 이전부터 남방자원지대와 본토를 잇는 해역의 확보와 수송선단의 호위를 위해 전용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미 해안경비에 쓰이고 있던 시무슈형을 선단호위에 맞게 개량하여 이를 충당하기로 한다. 새로 건조되는 호위함은 1941년 전시응급조함계획에서 30척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노후함들을 전용한 기존 해방함들은 태평양 전쟁 개전 때까지도 존재했고, 이들은 1942년 7월 20일 해방함에서 연습특무함 등으로 재분류되어 해방함의 의미가 '해안경비와 선단호위를 목적으로 설계된 전용함'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1944년부터는 탐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레이더를 장비하기 시작했다. 크게 1호 3형(13형)과 2호 2형(22형)의 두 종류가 있었으며 대공용의 13호 전탐은 후부 마스트에, 대수상 탐색용의 22호 전탐은 전방부 마스트에 장착한다.

최소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장은 대부분 빈약했다. 함포는 5인치 내외 단장포 2~3기에 25mm 연장 대공포 다수, 대잠전을 위해 수중청음기와 폭뢰 발사기를 장착했으며 폭뢰 탑재량 자체도 구축함보다 많았으며 어뢰는 장비하지 않았다. 대전 말기에는 대잠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8cm 박격포(97식 곡사보병포/3식 81mm 박격포)를 장비했으나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해방함 히부리, 마츠와, 사도 세 척은 대잠작전 중 역으로 잠수함에게 격침당했다.

최대 20노트를 넘기지 못하는 느린 속도도 큰 문제로 작용했다. 당시 미 해군 주력 잠수함이었던 가토급, 발라오급 잠수함들은 수상에서 최대 20.25노트(38km/h)까지 낼 수 있었기에 미군 잠수함들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승무원들의 기량도 문제라서 함장과 고급사관도 기존 상선사관이나 후보생 중 급한대로 충당했고, 당연히 휘하 승조원들의 훈련도와 기량은 더 떨어졌다.

영국 해군의 플라워급 초계함 역시 포경선을 기반으로 설계한 탓에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으나, 플라워급은 어디까지나 대잠 호위함으로서 연합군이 수상 제해권을 주도하는 가운데 유보트나 소수의 육상발진 항공기 정도를 상대해야 했던 반면 일본 해방함은 연합함대가 궤멸되어 가는 가운데 연합군의 수많은 배와 항공기들을 상대해야 했다. 결국 173척의 해방함 가운데 71척이 격침당하고 1만명 이상의 승조원이 전사했다.

2.3. 분류

2.3.1. 1898년 ~ 1931년

2.3.2. 1942년 이후


여담이지만 미쿠라급의 경우 기공 시점에는 을형 해방함으로 분류되었으나 병형, 정형 해방함 건조가 결정된 후 갑형으로 분류가 변경되었다.


[1] 해방함이 거의 언급이 안되는 함종이다 보니, 의외로 해방(解放)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꽤 많다. 리버티쉽[2] 태국톤부리급 해방함처럼 중순양함 수준의 화력을 가진 사례도 있다.[3] 설계적 결함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종종 실험적인 도전을 하다가 결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다양한 시도 및 실패를 겪으면서 표준적인 설계가 등장하기 전이라는 말이다.[4] 중유보일러는 영국이 트라이벌급 구축함에 처음 적용했고 주력함에 적용하는 것은 그보다 뒤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서 처음 적용되었다.[5] 대표적인 예로 볼티모어급 중순양함디모인급 중순양함이 있다. 실제 두 함급은 배수량차이가 제법 나지만 함의 동력원이 낼 수 있는 출력은 같다. 하지만 디모인급은 선체를 잘 가다듬은 결과 볼티모어급 수준의 최고속력을 가지게 되었다. 단 추중비는 차이가 나긴 한다.[6] 실제 네덜란드는 드레드노트를 개발한 나라중 하나지만 당시 국제정치 사정이 좋지 못해서 보유를 포기했다.[7] ARA 인디펜덴시아(독립)ARA 리버타드(자유) 두 척이 건조되었다.[8] 전함 수준의 무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9] 이게 바로 주력함을 축소한 해방함이다. 1940년에 건조하려 하였으나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취소되었다. 무장은 28cm 3연장 포탑 9기인데, 바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더 작고 가벼운 함선으로 축소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프랑스의 됭케르크급 전함을 참고하고 싶었지만, 프랑스가 기술제공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함선의 최대속력은 30노트가 넘을 것으로 보았으며 장갑은 대략 9인치 수준이었다.[10] 영국에서 건조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이 구매했다.[11] 노르웨이 침공 당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군함이었다.[12] 무장이 15cm 단장포 10문으로 경순양함 수준인 것이 특징이다.[13] 실제 독일은 도이칠란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전까지 함선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참고로 도이칠란트급은 독일의 마지막 프리드레드노트이다.[14] 러일전쟁에 참전했지만 쓰시마 해전에서 1척이 격침되고 2척이 나포되었다.[15] 나중에 모나르히급을 대체하기 위해 에르자츠 모나르히급 전함을 계획하게 되었다.[16] 화력은 톤부리가 200mm인데 반해서 라모트 피케가 155mm로 불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함포의 수는 톤부리는 2문인데 반해서 라모트 피케는 8문으로 화력을 함포수로 커버가능하다.[17] 중국이나 호주보다도 길다, 다만 해안선이 아니라 영해선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게 긴 편은 아니다.[18] 구축함은 함장으로 소좌가 임명되며 구축대를 결성해야 비로소 군함으로 취급되었다.[19] 이 때문에 시무슈형 쿠나시리를 보고 작은 배로 오인한 하츠하루형 구축함 네노히가 왜 함대함 경례 안하냐고 무전 날렸다가 쿠나시리란 말에 데꿀멍해버린 일화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