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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05 17:28:58

에이츠볼급 해방함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노르웨이 왕립 해군 함정 파일:노르웨이 정부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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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z6DLdZ.jpg
Eidsvold-class coastal defence ship[1]

1. 개요2. 상세3. 목록4. 제원5.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에이츠볼급은 2척 건조된 노르웨이 왕립 해군해방함으로, 일부 국가는 장갑함으로 분류했다.

2. 상세

1900년 초 노르웨이스웨덴동군연합 해체 및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립은 1905년에 국민투표와 양국간 협상으로 평화롭게 완료되긴 하였으나, 급격한 현상변경으로 인한 안보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노르웨이는 재무장을 추진했다. 에이츠볼급 해방함은 이러한 재무장 정책의 일환으로 영국에서 구매되어 도입되었다. 1912년 노르웨이 해군은 후속함으로 더 강력한 베르겐급 해방함 두 척을 영국에 발주했으나, 이내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정부가 37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두 군함을 강제로 매입하여 영국해군이 사용했다. 후속함 도입사업이 공중분해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에이츠볼급 해방함은 노르웨이 해군 최대의 군함으로 남게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듬해인 1940년 초, 알트마르크 나포 사건을 전후로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를 둘러싼 정세가 급격히 위태로워졌다. 노르웨이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철광석 수출항인 나르비크의 방비를 집중적으로 강화했고 에이츠볼급 해방함 두 척이 배치되었다. 에이츠볼급 해방함은 8.26인치 주포를 비롯해 상당한 화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에는 함령이 40년이나 되어 노후되어 취약했고, 결정적으로 수중장갑과 방뢰설계가 미비했다.[2] 이는 에이츠볼급 해방함 두 척이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격침되는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40년 4월 8일 독일군의 노르웨이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노르웨이군은 독일군의 전면 침공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독일군의 침공 당일에도 노르웨이 정부와 군 수뇌부는 상황판단과 지휘상의 극심한 혼선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같은 날 영국 해군이 노르웨이의 중립을 무시하고 영해에 기뢰를 부설하면서, 노르웨이 정부와 해군의 이목과 대응여력을 잡아끌고 있었다. 또한 독일군은 침공 이전에 미리 작전에 필요한 보급품을 실은 상선들을 노르웨이 항구에 보내놨는데,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노르웨이 해군은 만약 영국 해군이 이 상선들을 공격하려 들면 어떻게 대응할지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르비크에 배치된 에이츠볼과 노르게의 함장들은 노후하고 취약한 두 함선을 차라리 나르비크 항만 입구에 좌초시켜 해상포대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노르웨이 정부가 동원령 선포도 미적거리는 상황에서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침공 당일 나르비크 인근 해역은 파고가 높고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독일군은 총 여섯개 집단으로 나뉘었는데, 나르비크에 상륙하기 위해 접근하는 독일군은 제1집단의 구축함 10척이었다. 구축함에는 에두아르트 디틀 장군 휘하 제3산악사단 선봉 3개 대대 2천명의 병력이 나누어 승함했다. 10척의 구축함 중 기함인 Z21 빌헬름 하이드캄프를 비롯하여 구축함 세 척[3]이 나르비크 항만에 직접 상륙하기로 되어있었다. 나르비크 상륙 병력은 디틀 장군이 직접 인솔했다. 나머지 구축함들은 나르비크 인근 외곽의 노르웨이군 해안포대[4]와 무기고 제압에 나뉘어 투입되었다. 3시 10분 경 노르웨이 순시선이 구축함들을 확인하면서 베스트피오르로 외국군함의 접근을 알렸고, 나르비크 항만의 노르게와 에이츠볼에 경보가 전달되어 전투배치 명령이 하달되었다.

약 한 시간 뒤 나르비크로 향하던 독일 구축함 세 척은 시계가 극히 불량한 상황 속에서 4시 15분 경 항만 입구에서 급작스레 에이츠볼과 마주쳤다. 에이츠볼은 경고 사격 후 정선명령을 내렸고, 독일 측 기함인 Z21 빌헬름 하이드캄프에서는 장교를 에이츠볼에 승선시켜 교섭을 시도했다. 교섭이 진행되는 사이 나머지 두 척의 독일 구축함은 그대로 나르비크에 진입해서 상륙을 개시했다.(...) 에이츠볼의 함장은 독일 측에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발포할 것이다고 친절하게 통보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몇 시간 전에 독일군이 노르웨이 남부를 침공 중인 사실이 전파되었고, 노르웨이 해군은 공격자에 대해서 무력사용도 승인 받았기 때문에, 에이츠볼은 나르비크에 진입중인 함선이 독일군임을 확인한 즉각 교전에 돌입한 권한이 있었다. 독일 장교는 경례 후 에이츠볼에서 퇴선하며 항복거부를 의미하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Z21 빌헬름 하이데캄프 쪽에서는 이제 선택을 해야했다. 독일 해군은 침공 당일에 노르웨이 측이 먼저 발포하지 않는 한 공격금지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건 구축함을 단 번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화력의 해방함으로, 구축함으로서는 선제사격을 허용하는 건 도저히 감수하기가 어려웠다. 함교에 같이 승함해 있던 에두아르트 디틀 장군도 즉시 에이츠볼을 공격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결국 700미터의 근거리에서 빌헬름 하이드캄프가 기습적으로 4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이를 확인한 에이츠볼도 즉각 응사를 준비했으나 좌현에 세 발의 어뢰를 피격당했고 탄약고가 직격당하며 몇 초만에 침몰했다. 에이츠볼의 승조원 181명 중 6명만이 생존했고 함장은 전사했다.

한편 먼저 나르비크에 진입한 나머지 두 척의 독일 구축함은 항구에서 노르게를 마주쳤다. 노르게는 국적 확인을 시도했으나, 독일 구축함들은 이를 무시하고 부두에서 즉각 침공군의 하선을 개시했다. 노르게는 에이츠볼로부터 교신을 통해 상대가 독일군임을 알아챘고, 곧 이어 에이츠볼이 있는 항만 입구 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악천후로 시야가 불량했기 때문에 노르게는 에이츠볼의 격침을 확인하진 못 했으나, 즉각 사격을 개시했다. 노르게는 약 800미터 거리에서 주포 4~5발과 6인치포 5회 일제사격을 가했다. 독일 구축함 두 척은 좌현으로는 노르게에게 응사하는 한편 나머지 우현에서는 병력들이 눈보라와 포화 속에서 뛰어내려 하선하면서 상황은 난장판이 되었다. 근거리임에도 악천후로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아, 양측 모두 명중탄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독일 구축함 Z11 베른트 폰 아르님에서 어뢰 7발을 발사했다. 노르게는 어뢰 궤적을 관측하고 곧장 회피를 시도했다. 첫 다섯 발이 빗나갔으나 마지막 두 발이 후미와 선체 중앙에 명중했다. 에이츠볼과 마찬가지로 노르게는 1분도 안되어 우현으로 기울며 침몰했다. 승조원 191명 중 101명이 사망했고, 함장은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되어 육상으로 후송되었다.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노르웨이 침공 당일, 노르웨이 해군의 가장 큰 함선인 에이츠볼급 해방함 두 척이 나르비크 해역에서 3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모두 격침되었고 27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3. 목록

4. 제원

이전 함급 톨덴스키욜드급
다음 함급 비에르그빈급
만재 배수량 4,233톤
전장 94.6미터
전폭 15.7미터
흘수 5.4미터
추진 장치 4,500HP급 증기 기관 ?기
최고 속력 17.2노트(약 31.8km/h)
탑승 270명
주포 21cm 2문
15cm 6문
부포 7.6cm 8문
4.7cm 4문
어뢰 발사관 450mm 2문
장갑 측면 : 15.24cm
포탑 : 22.86cm

5. 매체에서의 등장

함대 컬렉션에서 에이츠볼, 노르게가 모두 등장하며 칸코레의 첫 해방전함 칸무스가 되었다.


[1] 사진은 HNoMS 노르게[2] 군함의 수중장갑과 방뢰설계는 러일전쟁에서 일본 어뢰정들의 활약으로 각국에서 급격히 논의되고 개선되었다. 에이츠볼급 해방함은 그 이전에 설계되어 이러한 요소가 반영되지 못 했다.[3] Z2 게오르그 티엘레, Z11 베른트 폰 아르님[4] 사실 나르비크 인근의 해안포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고 독일측의 잘못된 정보였다. 노르웨이군 해안포대 제압 임무에 투입된 독일군은 상륙 후 눈밭을 헤매며 허탕을 치다가 아침이 되자 그냥 나르비크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