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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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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토지 제1부
작가박경리
장르대하소설
발표제1편 어둠의 발소리
현대문학 1969년 9월호~1970년 3월호
제2편 추적과 음모
현대문학 1970년 3월호~1970년 11월호
제3편 종말과 발아
현대문학 1970년 12월호~1971년 6월호
제4편 역병과 흉년
현대문학 1971년 7월호~1972년 2월호
제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현대문학 1972년 3월호~1972년 9월호
출간토지 제1부 (삼성출판사, 1973)

1. 개요2. 줄거리3. 주요 사건
3.1. 작중 사건3.2. 역사적 사건
4. 등장인물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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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경리대하소설 토지의 전체 5부 중의 1부. 1969년 연재를 시작해 1972년 끝마쳤다. 1972년 7월의 한 회 분을 제외하고 총 36회에 걸쳐 연재되었으며, 후반부로 가면서 연재량이 조금 바뀌었지만 평균적으로 원고지 150매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편 나눔이 약간 바뀌었고 전반부를 약간 수정하기도 했다.

토지 1부를 집필하던 중 박경리는 수술을 해야 했고, 이에 관한 언급을 자서(自序)에서 하기도 했다.
《土地》 제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중이던 1971년 8월, 암이라는 진단에 의해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수술 첫날 병실 창가에서 동대문 쪽으로부터 남산까지 길게 걸린 무지개를 보았다. 참 긴 무지개였었다. 아마 나를 데려가려나 보다, 하고 나는 혼자 무심히 중얼거렸다. 그날 회진 온 의사에게 물었다. 수술은 몇 시간이나 걸리느냐고. 세 시간쯤 걸린다는 대답이었다. 대수술이군요, 하고 뇌었다. 에 보복을 끝낸 것처럼 평온한 마음이었다. 휴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기도 했다. 야릇한 쾌감 비슷한 것도 있었다.

정작 죽음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가을, 회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언덕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시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은,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 진실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고 그것들을 위해 좀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고뇌스러운 희망이었다.

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붕대를 감은 채 《土地》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장을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전신에 엄습해오는 통증과 급격한 시력의 감퇴와 밤낮으로 물고늘어지는 치통과, 내 작업은 붕괴되어 가는 체력과의 맹렬한 투쟁이었다.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로는, 그렇다,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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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부터 1908년까지.

구한말인 1897년 무렵,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에는 5대째 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만석꾼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농민들인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최씨 가의 유일한 혈육인 5살배기 아이 어린 서희는,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할머니 윤씨 부인과 무서운 아버지 최치수, 슬픈 어머니 별당 아씨 밑에서 침모 일을 하는 봉순네의 하녀 봉순이를 동무하며 자라고 있고, 에 지내다 이곳에 온 소년 머슴인 길상이는 이곳에 지내면서 최치수의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이후 머슴으로 들어온 청년 구천이는 무언가 많은 고뇌와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구천이는, 최 참판 댁의 정신적 지주인 윤씨 부인이 청상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훗날 동학당 접주가 되어 사형당하는 김개주[1][2]에게 겁탈당하여 낳게 된 사생아아들 '환'이었다[3]. 아버지를 따라 동학당에 참가했던 환은 몸을 숨기기 위해 도망자 구천이라는 가명으로 최 참판 댁에 찾아든 것이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 속에서 고민하던 그는 자신의 출생과, 이부 형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아씨와의 사랑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별당 아씨와 함께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자의식이 강하고 냉정한 최치수는 어머니 윤씨 부인의 평생을 괴롭힌 비밀을 알기 위해 몸부림친다. 1894년 악양의 들판이 양반들의 피로 물들 때 최 참판 댁은 무사했고 김개주가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4] 때문에 그는 재종형 조준구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성적 무능력자가 된다. 그는 조준구가 구해 준 으로 구천과 별당 아씨를 찾기 위해 지리산을 헤맨다. 그러나 근거리에서 그들을 포착한 최치수였지만 수동의 무의식적인 방해와 강포수의 우회로 구천을 잡는데 실패하고 만다. 환은 병이 든 별당아씨를 이끌고 연곡사 우관 스님[5]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윤씨 부인과 우관 스님의 비호를 받아 몸을 숨기게 된다.

자신의 신분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하녀 귀녀[6] 는 최 참판 댁의 씨를 얻으려 최치수에게 접근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자 그녀는 김평산과 음모를 꾸며 칠성이에게 몸을 허락하여 씨를 받는다. 그러나 칠성과의 관계에서는 쉽게 임신하지 못하였고 사랑으로 다가온 강 포수에게 몸을 허락한 후 임신하게 된다.[7] 최치수가 성불구자임을 모르는 귀녀는 김평산으로 하여금 최치수를 살해하게 하고 자기 몸의 씨를 내세워 집안의 대를 잇게 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에 의혹을 가진 윤씨 부인은 침모 봉순네의 귀띔으로 귀녀의 자백을 받아 내고, 김평산과 칠성은 함께 죽음으로써 죗값을 치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평산의 아내 함안댁은 자살하고 칠성의 아내 임이네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한편 최 참판 댁의 소작인 용이[8]는 무당의 딸 월선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항상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질투심이 많은 아내 강청댁의 행패로 월선이는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용이는 강청댁과의 성적 관계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는 마을로 다시 돌아온 임이네를 돌봐 주다 관계를 맺고 홍이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집안의 기둥을 잃어버린 최 참판 댁에 조준구가 부인 홍씨와 꼽추 아들 병수를 데리고 찾아든다.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를 은연 중 시사했던 그는 최 참판 댁 재산을 노린다. 그러던 중 마을을 휩쓴 호열자(콜레라)로 윤씨 부인과 김 서방, 봉순네 등 최참판댁의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조준구 일가는 최참판 댁을 차지하고 마음껏 세력을 휘두른다.

한 순간에 집안 어른들을 모두 잃고 고아 신세가 된 서희는 타고난 총명함과 함께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인 그녀는 집안을 지키기 위해 조준구 일가와 맞서 나간다. 그러나 서희를 돌보던 수동이 죽고, 삼수가 조준구에 붙어서 날뛰는 등 집안이 어지러워진데다가 러일전쟁이 터지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등 상황은 더욱 친일파인 조준구에게 이롭게 돌아간다. 조준구의 행패에 불만이 쌓인 마을 사람들은 목수 윤보를 선봉으로 의병을 일으켜 마침내 최 참판 댁에 들이닥친다. 그들은 재물을 탈취하고 조준구 내외를 죽이려 하지만 찾아내지 못한다.

조준구 내외를 죽이는 데에 실패한 그들은 고향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에 들어가 의병을 하던 일행 중 길상, 김훈장, 이용, 김영팔은 몰래 고향으로 돌아와 서희와 함께 간도로 탈출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서희는 할머니 윤씨 부인이 남겨 준 재물을 지니고 이들과 함께 고향을 버리고 간도로 떠난다.

길상을 사모했던 봉순은 이 탈출극에서 조준구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가마를 타는 역할을 자청하였으나 연곡사에서 진주, 혹은 부산으로 가지 않고 버티게 되고 간도로 건너가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봉기에 휘말린 조준구는 일본 헌병들에게 삼수를 넘겨주어 죽게 하고 때마침 마을로 돌아온 정한조를 폭도로 몰아 죽이게 된다. 정한조의 어린 아들 정석은 이 일로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떠나게 되고 한을 품게 된다.

3. 주요 사건

3.1. 작중 사건

형수인 별당아씨를 사랑하게 되며 윤씨 부인은 이를 묵인함.

3.2. 역사적 사건

1894년 동학농민운동 발발, 그해 겨울 동학농민군 소멸
1898년 김홍륙의 진독사건
1898년 만민공동회 개최
1899년 최초의 철도 개통. 《독립신문》 폐간.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남
1901년 제주 신축민란(이재수의 봉기)
1902년 전국에 콜레라 발병, 확산
1903년 YMCA 창립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러일전쟁
1905년 을사조약
1906년 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시작. 헤이그 밀사사건. 한일신협약 체결. 군대해산. 삼국협상(프랑스, 러시아, 영국)
1908년 안창호대성학교 설립.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
1909년 나철, 대종교 창시.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간도협약
1910년 한일합방조약

4. 등장인물

5. 관련 문서



[1] 실존 인물인 김개남이 모티브가 된 듯하다.[2] 단 김개남은 작중에서 따로 언급된다.[3] 즉, 서희에게는 이부 삼촌이 되는 셈. 다만 사생아이다 보니 조카에게 당당히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4] 사실 소설 속 내용으로 보자면, 최치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무당인 월선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어머니와 급 단절되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최치수의 성격상 어린 시절 본인을 끔찍이 아끼던 어머니가 어느날 절에 가 버려 단절되었고 오랜 시일 단절되었던 어머니가 돌아온 날 그리웠던 어머니가 본인을 외면한 충격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자. 그런 충격 이후 오만 잡설을 다 가지고 어머니의 행적을 따져 본 결과 구천이 본인의 동생일 수도 있다고 긴가민가한 상황에 피살된다.[5] 김개주의 으로 환의 삼촌.[6] 신분 문제라기보다는 귀녀 자체가 스스로의 욕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근자감 충만한 여자였다. 귀녀는 별당아씨나 최치수의 수발을 들 때도 별로 불만은 없었다. 다만 본인은 그러했으나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7] 그렇기는 한데..;; 귀녀는 최치수의 으로 오래 보냈고 아무리 꼬시려 해도 안되니, 마을 남자 칠성이를 끌어들여 임신하고 최치수는 죽이려는 계획을 미리 짰었다.[8] 최치수와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왔다. 아마 최치수의 첫사랑이 이용의 누이인 서분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 이용은 최치수에게 얻어맞지 않는다. 대신 월선이 괴롭힘을 당한다[9] 가끔 국어교사가 이 단원을 가르치며 교살이 아닌 독살로 가르치는 때가 있는데 따스한 눈빛으로 드라마를 보았구나 생각하도록. 1987년에 제작된 드라마에서는 독살로 묘사되었었다.[10] 정확히는 귀녀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윤씨 부인에게 말하기를 "아무래도 몸이 좀 이상합니더. 꼭 아로 밴 것 같습니더."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