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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5:09:39

제5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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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보병사단
第五十二步兵師團
The 52nd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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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심장을 뚫는 화살! 수도 서울을 지키는 방패!
창설일 1978년 11월 15일(제100훈련단)
1984년 1월 7일(제52보병사단)
상징명칭 화살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수도방위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서울특별시한강 이남 방위
사단장 소장 이우헌 (육사 50기)
위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1. 개요2. 역사3. 부대 임무와 특징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4.2. 제210보병여단 인릉산4.3. 제212보병여단 횃불4.4. 제213보병여단 독수리
5. 과거부대6. 출신인물
6.1. 사단장6.2. 장교/부사관6.3. 병
7. 기타
7.1. 근무환경7.2. 참군인 사단장7.3. 사단가
8. 사건 사고9. 부대 영상10. 여담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2보병사단. 상징명칭은 화살부대경례구호는 충성.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대한민국 육군보병 사단. 1978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현 문래공원[1]에서 제3야전군(현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제100훈련단으로 창설되었으며, 1984년 1월7일 수도방위사령부로 예속되며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훈련단 창설 당시에 서울 남부지역에 대한 예비군훈련 임무를 63훈련단으로부터 인수하였다. 즉, 52사단 창설 이전의 서울특별시 남부는 수방사 담당 구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2] 100훈련단 창설 이후부터 사단 승격 때까지는 서울 남부지역 예비군훈련은 100훈련단(1975~78년에는 63훈련단)이, 현역의 지역방위임무(전시, 사변 및 계엄령 선포시 출동 등)는 33사단 101연대가 맡던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계엄이 아닌 군사반란의 목적이었지만, 실제로 1980년 5월 18일 자정 33사단 101연대 1대대 3중대는 5.17 내란 당시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의거한 지시로 출동해 국회의사당 봉쇄에 동원된 적이 있다. 다만 이 때 당시 101연대 1대대는 100훈련단을 경유하여 수도군단과 육군본부의 작전통제를 받았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이며 평시에는 서울특별시 한강 이남의 예비군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전시에는 적의 한강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교량을 차단하고 한강 이남의 주요 거점방어지역을 중심으로 서울을 사수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사단 창설과 동시에 서울 강남, 영등포 지역의 위수임무를 제17보병사단으로부터 인수받았다. 제52보병사단 창설 이전의 서울 남부는 제17보병사단 101연대(현 제17보병사단 101여단)[3] 관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52보병사단의 실질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17보병사단이라는 설이 있다.[4] 처음에는 영등포구 문래동에 주둔하다가 노량진을 거쳐 1983년에 광명시로 이전했다.

서울 강북을 담당하는 지역방위사단은 제56보병사단 문서로.

이 부대 소속 직할대 가운데 독특한 임무를 가진 부대로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의 경계와 의전을 담당했던 52경비대가 있었으나, 현충원의 경비업무가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2008년 11월 해체되었다.

책임위수지역은 서울특별시 중 한강이남지역으로, (구)제6군관구사령부(영등포 주둔. 현 문래공원 일대)의 위수지역과 겹친다. 서울 한강이남 지역 학생예비군[5], 직장예비군 훈련은 이 부대가 담당한다.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3. 부대 임무와 특징

수도인 서울에서도 인구가 많은 지역의 직접적인 방어(전시)와 예비군 훈련(평시)을 모두 이 제52보병사단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완전편성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대대 내부의 장교는 대개 중대장과 일부 참모들만 현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대장은 전원 예비역 부사관 또는 병사이다. 이 때문에 초임소위는 본부중대장이나 화기중대장, 대대 인사과장으로 보임되며 장교들의 경우 겸직이 많다. 예를 들면 중대장 겸 동원과장 이런 식이다.[6]

이곳에 대대 본부중대장이 아닌 소총 중대장으로 보임되는 대위급 장교는 1차 중대장이냐, 2차 중대장이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데, 1차 중대장이라면 실병 지휘를 해야하기 때문에 보직 종료 후 죄다 전방으로 끌려가는 데 반해, 2차 중대장은 1차 때 실병지휘를 하고 왔기 때문에 보직 종료 후라도 부대에 머물 수 있게된다. 이런 경우에는 소령으로 진급할 때까지 이 부대에 있다가 소령이 되면 합동군사대학을 거쳐서 전방사단대대 작전과장으로 보직된다.

그러나 지역방위사단인 데다가 사단사령부와 예하 3개 여단[7] 모두 서울에 심하게 바짝 붙어 있어서 일반적으로 군기는 꽤 느슨하다. 아무래도 후방이다 보니 긴장감이 좀 덜하고, 병사들끼리는 북한군이 쳐들어와도 우리 부대는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할 정도.

예하 연대병력은 얼마 되지 않으나 한강 이남 서울 예비군의 훈련을 모두 담당하는 관계로 부대마다 크고 아름다운 예비군 훈련장을 갖고 있다. 자세한 부대위치 및 교장명칭은 군사보안상 생략. 그러나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는 위치가 다 나온다. 사실은 예비군훈련장이기 때문에 훈련 시에 부대 찾아가려고 검색하는 사람이 존재하고[8] 통지서의 약도가 워낙 부실한데다 초행길이라 위치를 못찾아서 입소가 늦는 예비군도 많았기 때문에, 이곳뿐 아니라 전국의 예비군훈련장에 한해서는 국방부에서 일괄적으로 부대 위치를 네비게이션과 지도에 추가시키도록 조치했다. 다만 네비게이션을 통해 찾아가보면 가다가 입구 근처에서 교장 이름이 뜨고 그 안쪽으로는 아무것도 없다.[9]

현역들의 임무는 동원훈련, 연대급훈련, 대대급훈련 등 일반 육군이 받는 훈련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직장중대로의 파견인데 밖에 나간다는 이점과 싸제밥 및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명 "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총기를 빼야 한다는 게 함정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뭐빠진다.

지리적 입지조건 때문에 전국에서 최대규모의 상근예비역 병력을 운용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다(정확하지는 않음). 그때문에 후방 신병교육대[10]의 몇몇 기수는 상근 반, 현역 반으로 훈련병들이 이루어져 있는데, 5주차 끝나고 입고 왔던 옷을 받는 상근들을 바라보는 현역들의 심정은[11] 기본적으로 평시 제52보병사단 예하 1개 대대병력과 그 대대가 관리하는 동대의 상근병력 수가 비슷한 수준이다.[12] 강남이 좀 넓고 사람도 좀 많아야...[13]

일단 지역 내에 거주하는 예비군 숫자만 해도 엄청나고,[14] 신림동 고시촌은 최고 6만 명이었다고 한다... 몇몇 대학교와 수많은 주요 회사예비군부대를 포함하면 더 많다. 서울에 있는 부대이다보니 병사 예비군들만 많은 게 아니고, 장교 예비군들과 부사관 예비군들도 엄청나게 많다!

관악구 대학동(구 신림9동), 서림동(구 신림2동)에 서울대 졸업생들(주로 장교/부사관 출신들)과 서울대 재학생들(주로 부사관/병사 출신들)과 사법시험 고시생들이 득실대던 2000년대 중후반 시절에는 거의 모든 동미참 향방예비군을 이 부대 관할 관동교장으로 왔다.[15]

전투와 항상 거리가 먼 부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어쨌든 군부대는 군부대이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와 같은 현대전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듯, 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는 '전쟁'은 전쟁의 일부일 뿐이며, 실제 전쟁의 대부분은 테러 대비나 난민관리와 같은 치안유지 활동이 주가 되기 마련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의 유사시(전면전) 주 전력은 동원예비군이다. 그리고 제52보병사단의 역할중 하나가 바로 그 예비군의 관리이며 관할지역(서울 한강이남)의 인구수에 비례할 예비군 수를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파일:attachment/929abe130be78c49498cdbd731ac8dbd.jpg

특히 대형 하수도 등 지하공동구 전투에 특화된 사단 직할 기동대대 '용호부대'(일명 두더지부대)가 알려진 바 있다. 전시에 포격, 폭격의 충격으로 가스가 새거나 화재로 공기중 산소가 희박할 경우를 대비해 지하공동구획 전투훈련때는 공기호흡기방독면을 끼고 훈련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도 하는데, 민간인들에게 적지않은 포스를 발산하는 듯하다. 때문에 밀리터리 취미계쪽에 인지도가 조금 있어서 김병욱의 밀리터리 소설 <한중전쟁>에서도 짧지만 인상 깊게 등장한 바 있다. 여의도의 대형하수도에 은신해 있던 적 특수부대원들이 두더지부대의 매복공격에 순식간에 끔살당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병사의 경우 평시 1개 중대 병력이 상비사단 1개 분대 병력과 맞먹을 정도로 작은 감편 부대이므로 자체 신병교육대대(훈련소)는 운용하고 있지 않다.[16] 전투관련 특기를 가진 병사의 경우 주로 제2작전사령부 예하 사단 신교대에서[17] 충원한다. 일부 공용화기 특기는 육군훈련소에서 충원하기도 한다. 기술행정병과의 경우 육군훈련소 출신 중에서 데려와 이 부대에 배치한다. 예외적으로 운전병의 경우 지상작전사령부[18] 예하 사단 신병교육대 출신들도 꽤 데려와 쓰는 듯 하다.[19]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집이 서울 한강이남 쪽, 광명, 안양, 멀게는 수원이고 육군훈련소나 후방 지역방위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는데 뺑뺑이로 이 부대에 떨어진 병사는 그야말로 땡잡은 격이다. 부대 위치상 교통이 편리[20]하다. 또한 사단 사령부에서 550m 정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 시내버스만 타면 서너정거장만에 광명역에도 도착하므로 지방 출신 병사도 귀향이 비교적 편리하다.

장교의 경우에는 초임 소위가 임관하면서 바로 배치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사단 전체에 중/소위 보직이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병중대가 감편되어 있기 때문에 중/소위가 주로 맡게되는 소대장 직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소대장 편제가 있는 직할대도 있기 때문에 중/소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보병/포병이 아닌 화학, 공병, 정훈, 경리 등의 병과의 경우에는 소위로 임관하면서 52사단으로 배치 받는 경우가 흔하다. 보병 중대 중대장을 맡는 대위의 경우 주로 전방 지역에서 1차 중대장을 지낸 이른바 짬 높은 2차 중대장인 경우가 많다. 부사관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사유로 전방에서 근무지 변경한 자원도 있고 초임 부사관 시절부터 사단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4.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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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보병사단 예하부대
제210보병여단 제212보병여단 제213보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과거 소속 부대(제52보병사단 동원지원단 등)는 과거 소속 부대 문단 참고

4.1. 사단직할대

4.2. 제210보병여단 인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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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212보병여단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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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213보병여단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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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52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예) 소장 사단장
00대 양승권 예) 소장 학군 2기 제2군단 부군단장
00대 양인목 예) 중장 육사 22기 제7기동군단장
00대 이철휘 예) 대장 학군 13기 제2작전사령관
00대 김윤석 예) 중장 육사 27기 육군특수전사령관
00대 이국범 예) 소장 육사 30기 사단장
00대 방원팔 예) 중장 육사 35기 육군인사사령관
19대 이승도 예) 소장 3사 17기 사단장
20대 이한기 예) 소장 육사 41기 육군부사관학교장, 지상군 페스티벌단장
21대 이상호 예) 소장 육사 43기 육군종합군수학교
22대 정철재 예)중장 3사 23기 육군교육사령관 [23]
23대 김규하 중장 육사 47기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
24대 김호복 중장 3사 27기 제7기동군단장
24대 이우헌 소장 육사 50기 사단장

6.2. 장교/부사관

6.3.

7. 기타

7.1. 근무환경

부대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서울, 그것도 한강 남쪽에 살던 병사들에게는 최상급의 자대이다. 그 중에서도 자기가 살던 지역과 가까운 예하부대로 떨어지면 부대 앞에서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그대로 집까지 갈 수 있는 경우까지 있다.[30] 비견할 만한 부대라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및 그 직할부대,[31]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본부 및 일부 직할대, 그리고 서울 근교에 있는 제51보병사단, 제17보병사단, 제1군수지원여단, 제56보병사단 정도다.

덕분에 병사들에게도 좋지만, 오래 군 생활을 할 생각이 없는 단기복무를 하는 장교들과 부사관들에게는 정말 꿈의 자대. 여기에 비하면 17사 같은 곳은 정말 하드코어한 곳이다. 혹한기혹서기[32]유격을 나가서 행군을 뛰어도 절대 산을 타지 않고 평지로만 걷는다. 그나마도 연대장&대대장 성향에 따라서 계획대로 전부 하지 않기도 한다.

애초에 작전지역 자체가 평지라서 타넘을 산이 없기 때문. 반면, 산을 하나도 안 타면 재미가 없잖아? 하면서 없는 산을 찾아가서 넘기도 한다. 작전지역에 산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52사단의 작전지역이 어디인지 생각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주둔지 주변에는 진짜로 산이 거의 없기는 하다. 관악산도 관할지역 내에 있기는 하지만 훈련을 위해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고 서울 인근의 산들은 관악산을 포함해서 죄다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 갈 수가 없다. 등산 하고 있는데 저 머리 숲속에서 총든 군인들이 우루루 지나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당장에 오해사기 딱 쉬운 상황으로 신고와 민원이 빗발친다. 덕분에 일부러 공개된 장소에서 훈련하며 현역들을 예비역들로 위장시키거나 숙영을 동반하는 훈련은 웬만해서는 주둔지 안에서 해결한다.

게다가 서울이 담당지역이니만큼 서울 시가지 안을 행군하기도. 심지어 주택가 골목을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서 행군 전에 간부들이 병사들을 교육시킬 때 항상 "들거나 혹은 메고 다니는 무기들에 절대로 민간인 차량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파일:attachment/행군/c0102231_506925b93a71c.jpg
2010년도 52사단 모 연대가 행군 중에 코믹월드 행사장을 지나가는 사진이다.

단 훈련 자체는 그래도 FM에 가깝게 한다. 왜냐하면 52사단은 서울에 있는 군부대이고 위수구역에 주요국가시설(대법원, 국회, KBS 등)가 있기 때문이다. 높으신 분들이 항상 순찰을 오시는데 훈련을 AM대로 하면

오히려 52사 장병에게 혹한기유격보다 더 두려운 건 동원훈련이다. 정말 감당 안 될 정도로 많은 예비군들이 꾸역꾸역 들어온다. 제56보병사단 항목에도 있지만, 이 부대들의 평소 인원은 편제의 1/10. 동원훈련 때 남은 9/10가 몰려온다. 심지어 52사단과 같은 지역방위사단에서는 예비군 훈련을 할 때 예비역 중령급 이상 장교와 상사급 이상 부사관도 들어온다. 일반적인 경우 계급별 정년이 될 때까지 현역생활을 하기 때문에 영관급 이상의 경우는 예비군 편성을 건너뛰게 되어 예비군 훈련에 대상자로서 참석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런 예비역 영관급 장교들은 예비군 훈련 때 부연대장 자리를 주고 연대장실에서 그냥 편히 쉬게 해준다. 연대장과 같이 대화를 나누든, 간식을 먹든, 책을 읽든, TV를 보든, 컴퓨터 게임을 하든, 핸드폰 게임을 하든, 목욕을 하든, 잠을 자든 상관없이 말이다![33] 특히나 특정 병과 동원 훈련이면 TO가 매우 적다보니 아무리 예비역 영관급 장교들이라도 훈련을 시켜야 되는데, 예비역 영관급 장교들이 순순히 말을 들어먹을 리가 절대로 없어서 답이 없다.

연대, 대대마다 다를지 모르지만 일부 대대에서는 동원훈련 및 동미참, 각종 2차보충 훈련 즉 입영훈련들에 대해 현역병으로 힘드니 상근병까지 끌어다 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34]

또한 서울권 부대이다보니 서울 지역에 폭설이 오면, 서울 한강이남 지역 제설에 동원되기도 한다. 심지어 광명시가 책임위수지역이 아닌데도[35] 불구하고 단지 그 도시에 사단 본부와 예하 1개 연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곳 제설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제설 작업뿐만 아니라 52사단이 여러모로 광명시와 얽히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평생교육사업 제휴 등이 있다. 심지어 동네뒷산인 구름산 정상에 정자까지 지어줬다. 설상가상으로 철산역에 수능수험생 수송작전에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이 출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게 타 수방사 예하 사단이 있는 남양주시, 의정부시, 고양시나 이 사단 예하부대가 있는 안양과 다르게 광명시에는 책임위수지역방위사단 예하 주둔부대는 커녕 기타 전투부대조차 없기 때문. 게다가 52사단 본부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부대도 안양시에 있다.[36] 그렇다고 해서 52사단이 광명시까지 직접 방어해준다고 착각하지는 말자. 광명시는 단지 사단 주둔지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코렁탕 방지 차원에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광명시에서는 사단 이전 떡밥이 간혹 나오긴 한데, 아직은 카더라 수준에 그치는 정도.[37]

참고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 현장으로 삽들고 수습하러 온 장병들이 이 사단 소속 군인들. 하지만 52사단이 완편사단이 아닌지라 인원이 부족하여 56, 60, 71, 옛 57사단(대민지원 당시에는 존재했으나 같은 해 11월 해체) 소속 군인들과 수방사 직할대 병력들도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 동원되었다.

7.2. 참군인 사단장

2008년 당시 사단장이었던 방원팔 소장(육사 35기)은 재임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대대 병사식당을 방문하였고 음식이 맛있다며 취사병에게 휴가를 주었고 그 뒤로 통신대대 병사식당에서 사단장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단장 주재 장병 정신교육' 때는 자비로 음료수를 돌렸으며, 교육을 시청할 때 잠이 오는 병사는 언제든지 자도 좋다고 했다. 물론 같이 정신교육을 시청했던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빨리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해라!"라고 협박했다. 근데 정말로 조는 이등병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조는 소위들/하사들은 진급 빨리 하고자 하는 욕심 덕분인지 당연히 없었다.

그리고 큰 훈련이 끝날 때마다 사단장이 직접 간부들과 병사들 차별 없이 모두 동등하게 피자&햄버거 등 간식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량으로 사 오는 물건이 다 그렇듯이 양은 많았어도 질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3월 4일. 예비군 훈련의 미흡점에 대한 직접 체험과 보완이라는 명목하에 사단장이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다! 소총메고 함께 뒹군 사단장님 이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지시였으며, 때문에 52사단 뿐만 아니라 56사단이나 옛 57사단의 인트라넷 홈페이지에도 사단장 동정 게시판에 "M16 총기수입"이나 큰걸음 사진 등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사단장인 방원팔 장군은 언제나 열정적이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밑에서 근무한 장병들의 평은 '이런 사람이 군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 그는 이후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2011년 4월 중장으로 진급, 대한민국 육군본부에서 육군인사사령관으로 근무했으며 2013년 3월까지 재직하였다.

사단장이 직접 참석한 훈련답게 그날 훈련은 철저하게 FM으로 실시되었고,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예비군 훈련장이 아닌) 육군사관학교/육군부사관학교/육군훈련소가 생각날 정도였다."라고 했다고. # 지못미. 하지만 예비군들이 힘들다고 불평을 할 수도 없던 것이 사단장 뒤에 연대장들과 대대장들까지 뻘밭에서 구르고 있었다(...) 확실히 이 날 이후 방원팔 장군은 국방부에서 직접 "원칙은 지키면서도 예비군에 대한 편의와 훈련의 실용성 면에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방안을 제시했고 곧 시행되었다. 그게 1년을 못 가니까 문제지. 다만 이를 실제 수행할 일선의 간부들과 병사들은 더 힘들었다고.

다른 이야기로 역대 사령관 중에 이철휘 예비역 대장(학군 13기)이 있다. 그는 출신 성분에 따라 진급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체계에서 학군사관(ROTC)출신으로 포스타의 경지(제2작전사령관)까지 오르는 기적 중에 기적을 실현한 사람으로 소장 시절 이 부대에서 사단장을 역임했다.[38] 당시 복무했던 예비역들에 의하면 특별히 더 군기를 잡거나 힘든 것은 없었다는 평가.

육사 출신의 김장수 장군이나 김근태 장군 역시 사단장 이하 시절 부하들에게 무지막지한 군기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대장까지 올라갔다. 특히 김근태 장군의 경우 2005년 12월 24일 지휘서신에서 초임 소대장들(소위~중위)이 어리버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군기를 잡으면 오히려 그게 부대에 적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내용으로 예하부대에 발송하기까지 했다. 비슷한 지휘방침을 가진 전인범 장군도 중장(특전사령관)으로 진급. 거기에 임국선 장군 역시 이철휘 장군과 같은 학군 출신에 군기를 잡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장(제7기동군단장)까지 올라갔다. 이후 아예 애초부터 육사 교수를 지망했다가 보직이 꼬여서 전투 지휘관으로 전환된 강신철 장군 역시 군기는 커녕 매사를 부드럽게 행동하는 인물이며 진급이 막히면 대학 교수를 하려 했는데 대장으로 진급,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했다. 오히려 진급하고 싶어서 무지막지하게 군기를 잡는 지휘관들의 진급이 더욱 느려지는 경우가 많다.

7.3. 사단가

우뚝 솟은 관악산 떨치는 기상
승리의 함성으로 메아리친다
멸공으로 다진사명 피로 새겨서
목숨바쳐 지켜가는 누리의 평화
서울은 나의 조국 겨레의 상징
아-아- 화살인 가슴 속에 피가 끓는다
뉘게 맡길소냐 수도방위의 사명을
빛나도다 그 이름 52사단
52사단가

8. 사건 사고

9. 부대 영상



10. 여담



[1]제6군관구사령부 주둔지. 문래공원 남단에 52사단 창설지 기념비가 있다.[2] 애당초 수도경비사령부는 5.16 이후 군사정권의 방어를 위해 30사단과, 33사단(지금의 17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씩을 차출하여 경복궁에 주둔하게 하고, 두 대대를 연대급으로 취급하여 연대장급 단장을 두고, 사단장급 사령관을 두는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80년대에 수도경비사령부가 수도방위사령부로 바뀌고 군단급 부대로 개편되면서 관할 지역이 대폭 늘어났다.[3] 웃기게도 안양 석수동을 떠나 최근까지 자리를 잡고있던 곳이 52사단의 관할 위수지역 내에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부대 이전떡밥이 쟁점사항으로 남아있었는데, 최근에 해당 연대가 인천광역시로 재이전했다.[4] 지금의 과림예비군훈련장(당시 제17보병사단 101연대 1대대)과 박달예비군훈련장(당시 제17보병사단 101연대 2대대)이 과거에는 제17보병사단(구.제33보병사단) 예하부대 자리였다는 설도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와 관악산 등지에서도 훈련한 적 있다고 한다.[5]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등.[6] 심한 곳은 참모가 없이 중대장 네 명이 인사, 작전, 동원, 군수과장을 각각 겸하며 이 중 한 명이라도 후송이나 파견을 나가면 업무가 마비된다.[7] 이전에는 예하에 5개 연대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삼각편제라 하여 한 개의 사단 밑에는 3개의 보병연대가 있는 것이 보통이나, 수방사 예하 지역방위사단들은 예하 연대가 5개이다. 상대가 누구든 서울 방어는 시가전이 될 수밖에 없고, 시가전에서는 알보병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연대가 1-2개씩 통합되어 여단으로 승격했으며, 통합되기 이전의 5개 연대들도 1, 2, 2개씩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8] 1/100만 검색한다고 해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검색한다. 서울 한강 이남에 사람이 얼마나 사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9] 비슷한 이유로 각 사단 신병교육대도 대부분 뜨게 만들어놨다.[10] 단, 상근은 거주지에서 가까운 신병교육대로 배정받는경우가 있어서 (구)제9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같은 전방에서 오기도 한다.[11] 경우에 따라선 현역과 마찬가지로 입고온 옷은 집에 보내고 전투복과 더플백 차림으로 퇴근했다가 사단 보충대로 출근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현역들은 군용차량 타고 나갔다가 자대로 그대로 들어가지만 상근들은 군용차량으로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준다 현역들의 마음이 뒤집히는 건 매한가지. 심지어 위병소를 그대로 걸어나가거나 더 심한경우 퇴소일에 맞춰서 가족들이 앞에서 기다리는 경우도[12] 하지만 이 숫자 비교가 의미가 없는 것이, 엄연히 동대의 상근병력도 해당 대대에 속하는 병력이다. 따라서 간부들은 현역병, 상근병이 서로 선후임 관계라고 말을 하지만, 현역도, 상근도, 심지어 그런 말을 하는 간부 자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주 마주치게 되는 아저씨들.[13]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작전에 동원되지 않으려 강원도에 거주하는 예비군들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타 지역으로 옮겨버리는 바람에 1998년부터 강원도 지역에 동원가능한 예비군 병력이 없어져버리자 국방부에서 그냥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1~4년차 예비군들만을 데려다 몇 년간 강원도 전체 동원 예비군 병력을 갈음해버렸던 일도 있었다.[14] 예비군 훈련시 교육 인원이 1천 명이 넘어가는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 실제로 참가율이 100%가 아니므로 훈련 동원 인원은 참가 인원의 1.5~2배이니...[15] 참고로 관동교장은 안양에 있으며 관악구, 동작구 예비군들이 동미참 향방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인근에 있는 박달교장에선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는다.[16]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자체 신병교육대대를 운영했다.[17] 덕분에 부산, 대구나 광주에 있는 지역방위사단 훈련소에 들어가서 자기 부대에 남을 걸로 알았던 그 지역 출신 병사가 머나먼 서울까지 끌려오기도 한다 영화배우 정운택이 바로 이 케이스로 부산에서 입소하여 이 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18] 구.제3야전군사령부[19] 그래도 제2작전사령부 관내도 많고 육군훈련소출신도 많다. 단 후반기 교육은 제2수송교육연대에서 받는다.[20] KTX 광명역이 사단 사령부에서 매우 가깝다.[21] 공식 명칭이 제52보병사단 동원지원단이었으나 2018년 4월 6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동원전력사령부 예하 부대로 독립되자 "제52동원지원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22] 2008년 11월 부대해체. 1970년 무장공비가 현충원에 폭탄을 설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해당 경비대가 창설되었던 것으로 추정.[23] 2018.06.04~[24] 작가의 군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작중 시점은 2004년 8월부터 2006년 8월까지 211연대 2대대를 배경으로 만든 웹툰이다.[25] 나중에 사단 전체에 치킨을 쐈다.[26] 군악대 복무중.[27] 방위병 신분으로 군복무를 마쳤다.[28] 육군훈련소에서 자대배치를 받아 현재 보병의 무덤 박격포병 특기로 복무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29] 방위병 신분으로 군복무를 마쳤다.[30] 사단 본부는 공기수송으로 유명한 KTX 모 역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예하 연대도 모두 전철에서 멀지 않은 편이지만 버스를 타야 한다. 덕분에 이 부대 소속인 서울 출신 병사들은 외박을 나가서 집에 들어가도 오전 9시인 경우도 꽤 있다.[31] 국군재정관리단 같은 경우, 부대 자체가 용산 단독주택가 한가운데 있다. 인트라넷 국기게양식 사진을 보면 심히 골룸해질 정도.[32] 혹서기가 혹한기보다도 훨씬 위험한 훈련인지라, 국방부에서도 공식적으로 가급적 하지 말 것을 권고한 훈련이다.[33] 대대장 이상의 고급 지휘관 보직은 무조건 현역이다. 따라서 동원훈련에서 예비역 중령이 갈 자리는 부연대장 아니면 아주 드물게 부사단장 자리로 간다. 어느 부대든 독립중대 이하가 아닌 이상 대대장 이상의 지휘관 보직에 절대 공석이 없다.[34] 이게 문제라면 문제인게, 상근병의 주된 임무는 예비군들의 관리이다. 훈련 35일 이전부터 해당 지역의 지역대와 연계된 행정처리 및 여러가지 업무들을 처리해야 하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데 대대에서 조교지원까지 오라고 한다! 부대도 할 일이 많겠지만 역시 할 일이 많은 동대입장에선 골때리는 지시이기도 하다.[35] 광명시는 수도군단 예하 51사단 지역.[36] 광명시 담당 모 지역방위사단 예하 연대는 안양시에 있었다가 안산시로 이전했다.[37] 사실 이유는 별거 없는데, 12.12 사태 이후 서울시민들이나 정부와 시에서 서울 시내에 국방부&합동참모본부&한미연합사령부를 제외한 나머지 군부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12. 12사건 이후 수방사 예하 보병부대는 사령부 및 몇몇 특수한 목적을 지닌 직할대대 외에는 전부 수방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서울시 바깥으로 쫓겨났다.[38] 여담으로 당시 이철휘 장군의 전임자였던 조재토 예비역 대장도 학군 9기 출신으로 학군 출신이 대장까지 진급하였던 사례 중 하나이다. 이 두경우를 제외하면 대장까지 진급한 경우는 ROTC 자체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초창기(1기~4기)의 세 번뿐으로, 그것까지 포함해도 창군이래 7명밖에 달성하지 못한 업적의 경지이다.[39] 김장훈은 52사단 예배에도 참여했던 적이 있다. 이후 김장훈은 교회를 찾아오는 장병들을 위한 공연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김장훈은 52사단에 최소 3번은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40] 2NE1이 온다는 소문도 돌고 이랬다.[41] 연정훈이 복무했던 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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