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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8:10

대학동

신림동 행정동
조원동 신사동 신림동
미성동 신원동 서원동
난곡동 삼성동 서림동
난향동 대학동
배치 순서는 지리적 위치를 따름
관악구행정동
대학동
大學洞 | Daehak-dong
<colbgcolor=#094><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관악구
행정표준코드 3200168
관할 법정동 신림동
하위 행정구역 30통 244반
면적 8.30㎢
인구 24,257명[1]
인구밀도 2,922.5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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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신림로 111 (신림동 1516)
대학동 주민센터
1. 개요2. 역사3. 다른 지역과의 연결4. 정치 성향5. 동네 풍경6. 녹두거리
6.1.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쇠퇴
7. 지번8. 시설
8.1. 관공서8.2. 공원8.3. 학교8.4. 프랜차이즈
8.4.1. 편의점8.4.2. 음식
8.5. 공동주택8.6. 기타
9. 교통
9.1. 궤도 교통9.2. 신림로 버스9.3. 호암로 ~ 신림로 버스9.4. 모두 경유
10. 도로
10.1. 일방통행10.2. 메인/ 세컨 / 써드
11. 특징
11.1. 녹두리아 (이전함)11.2. PC방 천국과 e스포츠의 요람
12. 여담


파일:attachment/nokdu_main.jpg


다큐 3일 2010년 3월 방송된 대학동

1. 개요

관악구 신림동(법정동)의 행정동.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신림로를 타고 서쪽 신림역 쪽으로 0.3~1.3km 서쪽(신림로 30~130)에 위치해있다. '녹두거리', '신림동 고시촌' 등으로 유명하다.

동의 면적은 7.92km2로 법정동 신림동(18.14km2)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관악산서울대학교로 이루어져 있어 실제 거주 면적은 0.68km2 정도로 북쪽 서림동(0.99km2)보다 약간 더 좁다. 단, 서림동도 청룡산 일대의 0.4km2를 제하면 거의 비슷하다.

실제 거주 지역 한가운데에 있는 '녹두거리'가 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녹두거리'라는 명칭은 '대학동'이라는 명칭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더 높다. 대학이 있는 곳이라면 대학동이라고 할 만한 곳이 몇 개 더 있을 것 같다는 인식도 있고... 하지만 의외로 전국에서 '대학동'이라는 이름을 지닌 동은 이 곳뿐이다.[2]

흔히 '녹두'라고 부르는 이 일대에는 신림로에 면한 북쪽 서림동의 일부도 약간 포함된다. 대학동 건너 서림동에 있는 베리타스법학원이 서림동이긴 하지만 이쪽도 녹두로 친다.

영화〈범죄의 여왕〉의 주 무대가 된 곳이다. 극중 아파트는 세트로 꾸몄다고 한다. 나머지 무대는 PC방, 학원, 고시 식당 등 여러 곳이 나왔다.

2. 역사


신림동 청춘(도록).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신림동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신림동 고시촌, 즉 오늘날의 대학동에 대하여 주로 다루고 있다.

구한말까지 전 영역이 시흥군 동면 신림리에 속했다. 원래 이 일대, 특히 서울대학교 즈음에 있던 수풀지대를 신림(新林)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그것이 지명화되었으므로 이 지역이 신림리의 시작이자 중심지인 셈이다. 이 때문에 서쪽 이웃 삼성동과 함께 지금까지도 '신림', '신림동'으로 자주 불린다.[3] 하지만 1984년 신림5동 일대에 신림역이 설치되었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신림5동이 2008년 행정동으로서도 신림동으로 이름을 개명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신림동'이라고 하면 신림5동 일대를 가리키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신림2동에서 분리된 것은 1980년으로 이웃 삼성동(신림6동)보다는 5년 늦다.

1975년 서울대학교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동숭동 캠퍼스) 위치[4]에서 이곳으로 이전해옴에 따라 대학로에서 대학동으로 대학촌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파일:daehak.png
송지현(2015: 79)의 대학촌 풍속지도(1985). 집현전 복사실은 근래까지 영업중이다가 2019년 문을 닫았다. 95번 종점은 오늘날의 한남운수 차고지이며, 95번 버스는 1985년 당시 서울대학교~서울역~혜화동을 가던 노선으로# 오늘날에는 서울 버스 152번이 대략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림9동'으로 불렸으나 2008년 9월 서울대학교와 고시촌 등의 이미지에서 따와 '큰 배움의 동'이라는 뜻에서 '대학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3. 다른 지역과의 연결

서림동과 함께 신림동에서 제일 동쪽에 위치한 동이다. 서림동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 있다. 이 일대의 신림로횡단보도가 70m마다 있을 정도로 촘촘히 있고 신호등 신호도 빨리 바뀌는 편이어서 서림동과의 왕래는 그리 어렵지 않다. 차로 갈 때 자주 신호에 걸릴 뿐

호암로를 기준으로 삼성동과 나누고,[5] 신림로를 기준으로 서림동과 나뉜다. 난곡동, 난향동과는 삼성동을 통해 호암로로만 이어질 뿐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

서울대학교 정문 교차로를 지나 관악로를 통해 봉천동 청룡동, 낙성대동과 이어진다. 민가가 하나도 없는 서울대 정문에 이어 언덕을 30분 정도 걸어서 넘어가야 하기에 봉천동의 두 동과는 '바로 붙어있다'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물론 타 지역으로 나갈 때 신림역 쪽 말고는 서울대입구역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곳이기는 하다.

남쪽 관악산 너머에 안양시과천시가 있지만 도로는 당연히 없다. 각각의 도시에 이르기 위해서는 관악구를 빠져나와서 금천구, 서초구를 지나야 한다. 두 시와의 경계가 거의 정확히 관악산/삼성산의 정상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두 지역을 바로 잇는 도로는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4. 정치 성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관악구 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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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는 동 전역이 관악구 을에 속해있다.

서울특별시, 수도권 통틀어 행정동 단위 지역 중 2~30대 거주 비율이 약 46.9%로 타 지역보다 높은 편인데, 그런 영향인지 한때는 가장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였던 곳이다. 바꿔 말하면 수도권 동네 중 反 보수 성향을 가장 많이 보였던 곳. 2010년대 초반까지 호남을 제외하고는 세종, 영통, 동탄, 마포와 더불어 전국구 수준으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이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녹색당 등 진보계열 정당의 지지율은 울산을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난향동 및 관악을 서부지역의 경우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며 외부인구 유입이 늘어난 이후에는 새누리당 득표율이 크게 늘었으며, 난곡동 및 서원동은 국민의당 득표율이 되려 늘기도 했다. 이것은 노원구 상계동도 똑같다. 상계동의 행정동 가운데 상계3.4동이 난곡동과 서원동처럼 판자촌이 아주 많았다가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국민의당이 제법 선전한 지역이라고 한다.

2015년 관악구 재보궐선거 때 공약 중 하나로 나왔던 사법시험 존치 이슈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었음에도 당선자인 새누리 오신환 의원의 득표율도 12% 늘어 38%를 기록하긴 했지만, 새정치 정태호 후보의 득표율이 43%로 이 지역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사실 사시생들은 많이 떠나간지 오래고 현재 녹두거리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20-30대들은 사시와는 별 관련이 없는 다른 시험준비생(행시, 노무사 등), 서울대 자취생, 직장인이 대부분인데다 원룸, 고시원,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적어, 사시에 생계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당장 사시폐지 이후 모든 선거에서 사법시험 존치 이슈는 언론상에서만 이슈가 되었지 실질적으로 지역의 투표향방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고시촌 일대는 언제나 민주진보계열 정당의 득표율이 높았고 오히려 사법시험의 영향이 전혀 없는 지역의 민심향방에 따라서 관악을 지역구의 당선자가 가려졌다.

2020년 초에는 2021년 재보궐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앞서면서 민주당 우세 경향에도 균열이 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 두 선거에서는 전반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약세였던 영향으로 보인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이 5%p 우세했으며(5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후보가 약 20%p의 압도적인 우세로 당선되었다.

5. 동네 풍경

거리를 중심으로 온갖 술집, 밥집유흥업소들이 들어서 있다. 조금 외곽으로 나오면 원룸하숙방 밀집지역인데 교통편의 불편과 공급의 과잉으로 인해 서울 타 지역보다 임대료가 다소 저렴하다. 거리가 가장 가까운 서울대생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직통 버스편이 다니는 경인교대, 숭실대, 중앙대 등의 대학생과 자취생들도 살고 있다. 서울대입구역 인근은 의외로 월세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인기가 없다.

80년대 후반을 전후해서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곧이어 법학원 등 고등고시 준비 관련 시설들이 생겨나고 이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고시생 밀집지역이 되었다. 노량진과 함께 고시촌의 메카. 버스정류장 이름부터가 고시촌입구[6]이고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 조형물에 대문짝만하게 고시촌이라고 쓰여 있기까지 하다. 이 부근에 사는 사람은 서울대생 반, 고시생 반이라고 할 지경. 실제 돌아다니다 보면 피폐해진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고시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엔 사법시법 폐지 이후 수험생 숫자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유흥업소고시촌이 혼재하는 독특한 곳. 미림여자고등학교,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곳에서 놀기도 한다.

대학14길 즈음을 기준으로(송지현 2015: 26)[7] 남쪽인 언덕 위쪽을 '윗동네', 신림로에 면한 쪽을 '아랫동네'라고 부른다고 한다.# #2 앞서 말한 대로 윗동네는 경사가 매우 심하다. 윗동네에서는 대학14길 인근이 번화한 편으로, 그 일대는 2000원짜리 칼국수를 파는 곳도 있는 등 물가나 분위기가 아랫마을 녹두거리 일대와는 사뭇 다른 편이다. 2020년대에도 이 경계는 뚜렷해서 이 윗마을은 대개 저소득 노동자들이 거주하며 거주민의 90%가 남성이다.#

서울대학교와 고시촌의 영향으로 2~30대 대학생, 직장인이나 소수의 고시생, 심지어 외국인 등도 많이 거주한다. 시가지와 다소 동떨어져있어 방값이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대체로 녹두거리 입구에서부터 중간 지역까지는 월세가 비싼 편이나 윗동네의 경우에는 월세가 다소 싼 편. 말이 언덕이지 그냥 산 깎은 거라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복잡하고 "오르기도" 힘든 편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지름길도 찾아내는 등 나름의 재미도 있는 편(...).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신림로에서 500m 정도 내려간 대학길 100번 이남부터는 거의 산 중턱이나 다름 없다.

서울에서 방값이 아주 싼 동네 중 하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도 더러 보이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관악구의 외국인 주요 거주지역인 신대방역 주변과 비교해보면 새벽 출근길의 풍경이 확연히 다르다. 서울대와 연관있는 외국인이 더 많을 정도. 코로나 시국전에는 새벽에 국밥집에서 혼술을 하는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밤에는 정말 조용하다. 심지어 관악산 동네라 서울교외의 목가적인 풍경을 가지고 있기에 아래의 선입견은 괜한것이 아니다.

워낙 서울 구석탱이에 자리잡은 동네다 보니 치안이 안 좋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 편인데 의외로 치안이 나쁘지 않다. 조용한 고시생들이 거주하는 동네고 술집 등도 대부분 대학생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지 외지인이 굳이 이 곳까지 와서 깽판을 칠 여지가 전혀 없다보니 상당히 클린하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하숙, 자취방을 운영한 터줏대감들의 경우 그동안 키워낸 법조인이 한 두명은 꼭 있는지라 (..) 분쟁이 발생하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실제로 국민안전처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변 지역인 신림역이나 서울대입구역 인근보다 치안이 훨씬 좋다.[8] 폭력사건이나 성범죄 등등이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 아무래도 세련되거나 깔끔한 시설이 부족하고 거리에 조명이 부족해 어두워보이는 점 때문에 이런 이미지를 갖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다만 어쨌거나 신림동 권역 자체가 치안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15년도만 해도 삼성교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종종 일어난다.

북서쪽 블록, 호암로24길 북쪽/신림로23길 서쪽의 1514, 1523~1525번지 일대는 신림뉴타운 계획에 포함되어있다.

파일:daehakhill.jpg
(2022년 11월 24일 촬영)
남쪽 끝부분은 정말 고도가 높은 편이다. 카카오맵으로 확인해보면 150m 등고선이 대학동 남쪽 끝과 거의 닿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악구, 특히 신림동 일대 동들이 대체로 언덕에 집들이 지어져있긴 하지만 산 정상이 150~200m 정도이지 150m 선에 걸친 마을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9] 산에 오르지 않아도 민가 끝부분의 공터(로터스빌 인근 고시공원)까지 오르면 서림동, 삼성동관악구 일대는 물론 동작구뿐만 아니라 저 너머 63빌딩, 남산타워까지 보인다.

6. 녹두거리

대학동 북부의 번화가를 녹두거리라고 한다.

이 번화가는 호암로 너머 서쪽 삼성동 신림시장, 북쪽 신림로 너머 서림동까지 어느 정도 이어져있지만 그쪽은 보통 녹두라고 하지 않고 대학동만 녹두라고 할 때가 많다. 또한 위 문단에서 언급한 대로 대학동 내에도 번화가가 계속 줄줄이 이어진 것은 아니고, 주 번화가는 북쪽에 위치해있고 남쪽의 윗동네는 약간 별개의 상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림여고 쪽도 약간은 분위기는 다른 편이다. 그럼에도 윗동네는 녹두에 포함될 때가 종종 있다.

녹두거리라는 이름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그곳에 있던 막걸리집인 녹두집에서 유래되었다. 이전에는 이곳에 위치한 화랑교[10]의 이름을 따 화랑거리라고 했다는 듯. 큰 돈을 쓸 수 없던 학생들이나 운동권 학생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11] 녹두집은 일미집 등과 함께 80년대까지 이 상권의 아이콘이 되었었다. 두 집은 지금은 사라졌다. 일미집은 1984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에는 황해도 빈대떡, 동학 등의 막걸리집이 아직 남아 있다. 오랫동안 영업해 오던 '임꺽정은 살아 있다'는 2014년 6월을 끝으로 폐업하였다. 녹두거리의 구 행운분식 자리에 몇 달 후 재개업하였으나 아주머니의 수술로 인한 일시휴업 몇 달 후 그대로 통닭집으로 변경되었다. 휴업 전에도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건물 자체가 2017년 경 재건축에 들어가며(신림로11길 12) 이제는 흔적도 볼 수 없다. 동학은 한남운수 차고지 바로 뒤(대학5길 29)에 있으며, 그 입구에는 녹두를 계승이라도 한다는 듯이 전봉준의 그림을 걸어놓기도 했다. 또한 현재는 녹두호프라는 지하 호프가 운동권의 성지 역할을 맡고 있다.[12]

많은 종류의 가게들이 있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성상 음식점이나 술집 같은 먹거리 관련 가게들이 많고, PC방이나 노래방, 오락실, 당구장과 같이 놀거리를 제공하는 가게들 또한 즐비하다. 이러한 가게들은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저렴한 가격과 후한 인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과 고시생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다른 대학가는 외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즐기는 반면에 녹두거리는 위치적인 특성상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서울대학교 학생들에 국한되어 있고, 그 결과 서울대학교와 관련된 녹두거리만의 특이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매년 3, 4월에 여러 과 행사를 할 때에는 단과별로 협의해서 날짜를 조율해 장소를 예약하든지, 학교 축제나 행사에 맞춰 갖가지 이벤트를 하거나 서울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할인을 해주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6.1. 사법시험 폐지에 따른 쇠퇴

2017년 사법시험법학전문대학원 + 변호사시험으로 대체되어 폐지됨에 따라 녹두거리 경제의 핵심이었던 고시생들이 대거 유출되었으며 녹두거리의 상권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일단 이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당장 집값이나 월세로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녹두거리의 월세는 나날이 싸지고 있는 추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방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과 달리 현재는 남는 방이 수두룩하고 오랜 시간동안 거리를 지켜 왔던 가게들도 하나하나 문을 닫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거리의 가장 큰 서점이었던 광장서적이 2013년 1월 부도 절차를 밟게 됨에 따라 (기사) 녹두거리에서 고시서적이 아닌 일반 서적을 사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13] 광장서적이 있던 자리에 북카페 북션이 들어왔으나, 북션도 2019년 봄에 오프라인 매장을 폐업하고 현재 온라인 판매[14]만 하고 있다. 현재는 다시 북광장서적으로 재오픈했다.[15]

다만 외무고시행정고시는 각각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으로 이름만 바뀌고 틀은 거의 그대로인 관계로 수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2020년대에도 사람 수는 줄었을지언정 고시생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고시촌 분위기 자체는 여전하다.

2017년도 들어 서울대학교 저학년들은 녹두를 거의 찾지 않는다. 보통 누군가 "술 마시러 가자!" 라고 하면 설입(서울대입구역)이나 샤로수길로 가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자취생보다 서울 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의 비율이 늘어나 설입으로의 이동을 가속화되고 있는 듯하다. 설입 쪽이 교통이 더 편리하기 때문. 녹두 메인 스트리트의 술집들은 신입생 환영회나 각종 과 모임으로 인해 단체 손님들을 많이 받아 왔지만 맥주에 물을 탄다거나 안주를 비싸게 판다는 등 여러 말이 많았던 것도 녹두의 쇠락에 영향을 주었다.

7. 지번

지번주소의 틀이 되는 법정동 신림동이 거주자 24만 명의 거대 동이기 때문에 지번주소도 상당히 혼잡하게 붙어있다. 크게는 대학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1510~1560번대(-OO), 동쪽은 230~250번대(-OOO)로 나누어져있다. 특이하게도 남쪽의 아파트들은 1700번대로 번호가 붙어있다. 번호가 가까운 1490, 1569~1570번대는 전혀 상관 없는 미성동 일대로 2km 이상 떨어져있으니 주의. 200번대를 쓰는 지역은 보조번호가 혼란 그 자체여서 94번지 옆 건물이 193번지, 그 옆 번지가 116번지인 등으로 규칙을 찾기 어렵다.

8. 시설

8.1. 관공서

8.2. 공원

8.3. 학교

8.4. 프랜차이즈

서울대학교 교내에 있는 가게는 제외하였다.

주로 '신림'이나 '관악', '고시촌', '녹두(거리)' 등의 이름이 들어가는 편. 정작 '대학동'은 '대학'이 너무 일반명사라서 잘 쓰지 않는다. 같은 수식어에 신림/관악을 둘 다 쓰는 경우 관악 쪽이 좀 더 남서쪽에 있는 묘한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신림녹두'로 명시되는 경우 대학길이나 신림로11길의 북쪽 길 초입에 위치해있는 경우가 많다. 신림로 너머 서림동에 있는 미스터피자 신림녹두점이 조금 예외.

8.4.1. 편의점

좁은 구역에 편의점이 모여있기 때문에 이름이 다양하게 붙어있다.

8.4.2. 음식

8.5. 공동주택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재하였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외부 기숙사 중 하나가 대학동에 있다. '국빈서원'이라는 이름의 기숙사로 신림로11길 33-7에 위치해있다.

8.6. 기타

예전에 사시생들이 워낙에 변태 성욕 해소를 많이 해서인지 변태 업소가 상당히 많았다. 각종 키스방, 안마방, 변종 바 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대로 한 호스트바도 꽤 성업했다. 요새는 흔히 말하는 신림동 사시생이 많이 사라져서 그러한 변태 업소의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15년에 9동여지도(신림9동 + 대동여지도)라는 어플이 출시되었다.[19] 이 앱은 녹두거리에 위치한 카페, 독서실, 식당 등과 제휴하여 할인 쿠폰을 발행하고 시험별 게시판도 운영 중이다. 2016년 7월 현재 안착에 성공한듯. 아울러 노량진코드라는 앱도 출시되었다.

서울대의 대표적인 민주 투사 박종철 역시 대학동에서 자취했으며, 녹두거리 중간에 박종철 센터가 있어 그를 기리는 전시관 및 작은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9. 교통

버스는 자주 다니는 편이나 신림로~관악로의 교통정체나 인파에 시달리기 일쑤이다. 신림역이나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로 오갈 수 있으며, 2022년 5월 28일 개통된 서울 경전철 신림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영등포, 강서 쪽에서라면 신림역, 강남, 강동 쪽에서라면 서울대입구역 쪽에서 버스 타고 오면 된다.

녹두거리 앞 대학동고시촌입구 정류장, 미림여고 앞 정류장 등에 시내버스들이 선다. 시가지로 나가려면 대체로 신림역이나 서울대입구역까지 버스타고 가서 서울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거나 신림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 중간의 봉천역으로는 도로 배치상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

서울 버스 5515가 녹두거리 언덕과 골목 꼭대기까지 누비고 다닌다. 서울 지선버스 버스 한 대당 승객 수가 가장 많은 노선이다. 출근시간엔 이미 윗 동네에서부터 꽉 찬다. 반대로 퇴근시간에는 서울대입구역 올리브영 앞 정류장에는 늘 대기줄이 서있다.

서울 버스 5519도림천과 녹두거리 맞은편 서림동 언덕길을 순환한다. 5515는 서울대입구역에서, 5519는 신림역에서 탈 수 있다. 또한 서울 버스 501이 녹두거리 동쪽의 파머스빈(구 카페베네) 앞 차고지에서 출발하여 서울대입구역, 숭실대입구역, 한강대교를 거쳐 도심지인 서울역, 종각역까지를 한번에 잇는다.

9.1. 궤도 교통

9.2. 신림로 버스

9.3. 호암로 ~ 신림로 버스

9.4. 모두 경유

10. 도로

지선에 대해서는 각 도로 문서 참조.

2018년 1월 13일 메인과 세컨을 잇는 대학5길이 박종철거리로 명명되었다.

10.1. 일방통행

파일:daehak3.jpg
대학동에는 일방통행 도로가 많다. 동서축 도로인 호암로24길-대학5길은 서→동(서울대학교 방향)이며 좀 더 남쪽에 있는 호암로22길-대학7길은 반대로 동→서(삼성동 방향)이다. 호암로에서 대학동으로 진입할 때부터 일방통행이므로 주의. 동서축 도로라 해도 대학2길, 대학4길, 대학6길 등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호암로22길, 24길, 26길을 잇는 남북축 골목은 번갈아가며 일방통행의 방향이 바뀐다. 제일 서쪽 남북축 도로인 신림로23길은 이 일대에서 제일 넓어서 일방통행이 아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일방통행이다. 신림로21길은 북쪽, 신림로19길은 남쪽, 신림로17길은 북쪽, 신림로15길은 남쪽. 단 호암로22길 남쪽부터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또한 신림로17길은 남북축 일방통행 도로 중에서 유일하게 북쪽 신림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데, 위의 호암로22/24길과는 달리 신림로에서 신림로17길로 한 블록 진입하는 데까지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대부분의 길이 2차선이 간신히 될까말까 하고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일방통행 도로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자동차를 통해 대학동 사이를 이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차고가 딸린 건물도 아주 적은 편. 세입자나 상권 이용자가 차량이 없는 것을 전제하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

10.2. 메인/ 세컨 / 써드

녹두거리는 큰 도로에서 올라가는 길에 따라 메인 스트리트와 세컨 스트리트로 나뉜다. 메인스트리트는 신림로11길을 가리키며 본 항목 최상단의 사진도 메인 스트리트를 찍은 것이다. 호암로24길 또한 대학동 녹두거리의 중심을 관통하고 식당들과 카페들이 많기에 메인 스트리트라고 불리는 편이다. 세컨 스트리트는 CU(구 상원서적) 앞으로 올라가는 대학길로, 서울 버스 5515가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간혹 메인과 세컨을 잇는 대학5길을 세컨이라고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녹두 놀이터와 삼백집이 있는 호암로22길을 써드라고 흔히들 부른다.

11. 특징

11.1. 녹두리아 (이전함)

녹두거리 입구 부근에 위치한 롯데리아. 녹두로 들어가는 쪽에 넓게 위치해있고, 딱히 주문을 하지 않고서도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어 녹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수학교육과/통계학과에서는 녹두리아를 원점으로 하고 좌표축을 잡아 각 음식점의 위치를 나타낸다고(...).

녹두리아 2층에는 미스터피자가 있었다가 설빙이 들어왔다. 하지만 설빙도 망하고 스터디 카페를 거쳐 현재는 공실이다. 이후 재건축이 시작되어 퇴거 중이므로 철거 전까지 들어올 가게는 없을 듯하다.

2019년 말부터 건물 자체가 재건축 대상이 되면서 녹두리아도 2019년 11월부터 퇴거하였고 같은 해 12월 13일에 인근 일성 트루엘 오피스텔 일대로 이전했다. 배스킨 라빈스도 보다 서쪽 자리로 이동하였다. 녹두거리 초입에 있는 큰 건물이다 보니 상권이나 유동인구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추측된다.

녹두리아 맞은편의 피에스몽테 과자점은 한때 서울대학교 내에도 지점을 내기도 했었다. 2018년 6~8월 경에 리모델링하였다.

11.2. PC방 천국과 e스포츠의 요람

원래는 만화방과 당구장이 많았으나, 만화방은 과잉경쟁으로 하나둘 몰락하고 당구장은 스타에 밀리면서 이제는 PC방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곳의 PC방 밀도는 심한 경우에는 한 블럭 건너서 하나씩, 아니 건물마다 하나씩 있는 정도로 실제로 신림9동 시절부터 이미 대한민국에서 단위면적당 PC방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고, 이 집계는 2010년 중반대까지 계속 이어졌다.[21] 이것을 보면 고시생들이 공부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다. PC방들이 망하질 않는다. 1시간에 500원을 받는다면 다른 곳에서는 '다른 PC방을 망하게 한 뒤 가격을 올리는 전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는 몇 년씩 간다. PC방이 시설에 따라 가격이 차별화되어 있어 싼 곳이나 비싼 곳이나 두루 성업 중이다.

덕분에 이 곳은 서울시내 전체를 통틀어, 아니 어쩌면 전국을 통틀어 PC방의 환경 및 서비스가 가장 좋은 지역에 속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충 칸막이만 쳐놓고 금연-흡연구역을 나누는 대부분의 PC방과 달리, 여기서는 금연층흡연층을 나누는 PC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예 금연PC방도 있다. 인기게임만 가입하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존재하는 게임에는 거의 다 가입해서 PC방 혜택을 받게 해주고, 거의 모든 PC방에서 케이블TV를 감상할 수도 있고, 인기 미국 드라마일본 드라마는 나오는 족족 볼 수 있게끔 조치를 해주고, PC의 사양이나 모니터도 훌륭한 편이면서 의자도 편하고 음료수 같은 것도 무료로 주는 데가 많고 가격마저 싸다.

온라인 게임이 아닌 패키지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많은데 웬만한 패키지 게임은 다 플레이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PC방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FM문명을 플레이 하기도 한다. 와우를 즐기는 사람들도 드글드글하고 커플이 나란히 앉아서 밤새도록 와우하는 경우도 많으며 아침에 PC방으로 출근해서 밥 먹을 때 잠깐 정지시켜놓고 자정 쯤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와우저의 천국. 한창 와우가 인기 있을 때는 50석 정도의 PC방에 40명 넘게가 와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대 뛰다가 쉬려고 자리 일어나면 뒷자리 사람이 같이 일어나길래 화면을 봤더니 같은 공대더라,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기도.

더불어 이 곳에서 한국 e스포츠의 역사가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BC GAME HERO의 전신이 된 POS가 신림동 스타크래프트 올스타즈 비슷한 개념으로 출발했기 때문인데, 박성준을 비롯한 POS 팀원들은 전원이 신림동 PC방 리그 최강자 출신이거나 개인 레벨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었고, 하태기 감독은 PC방 사장 출신이다. 그래서 숙소가 녹두거리에 있었으며, 당시 하태기가 사장으로 있던 지단PC방은 POS 팀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 또한 리그 오브 레전드 PC방 리그의 경우 '신림동 PC방 리그'는 아예 풀을 따로 두고 진행하며 라이엇 게임즈의 지원도 조금 더 들어간다.

참고로 2010년에 터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담당 검사인 이준식 검사도 고시 준비를 하던 당시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고 해당 재판에 활용할 만큼의 지식을 쌓았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시기상으로 맞아떨어진다.[22] 보다 덜 알려진 다른 이야기지만 e스포츠 초창기에 서울대생이란 신분으로 KPGL이라는 큰 대회를 우승하고 99 PKO 본선에도 진출했던 신길재라는 게이머가 있었는데, 한창 고시공부를 하고 있어야 될 시기에 본선 첫 경기를 치르는 모습이 TV 전파를 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이 난리가 나면서 아쉽게 중도하차를 했다는 설이 있다 .#[23] 고시생 신분으로 개인리그 우승까지 거머쥘 정도였으면 대체 얼마나 수련의 시간을 쌓은 것인지... 그만큼 대학동과 PC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12. 여담



[1] 2023년 2월 주민등록인구[2]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이 주민들 사이에서는 관습적으로 대학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한양대학교 ERICA가 있으며, 실제로 일뷰 시설에 대학동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기도 하다.[3] 반면 건우봉 너머의 난곡동, 난향동은 신림동으로 부르는 일이 별로 없다.[4] 이 일대도 1955년부터 1970년까지 대학동이라는 행정동이 있었다. 당시 관할 법정동은 연건동, 효제동.[5] 호암로라는 이름도 그렇고 인근에 삼성동도 있어서 삼성그룹과의 연관성이 떠오르지만 이병철 회장의 호(湖巖)와는 다른 虎巖을 쓴다. 옆 동네인 금천구 시흥동 금지산 정상에 있는 바위의 이름을 딴 도로이다.[6] 마을버스도 아니고 시내버스다(서울 버스 5515)![7] 송지현(2015), 신림동 청춘, 서울역사박물관.[8] 해당 자료에서는 지하철역 인근에서 주로 범죄율이 높게 나오고 일반 거주 구역의 비율은 대동소이하다.[9] 관악구 최남단의 난향삼거리에서 금천구로 통하는 호암로 일대가 150m 높이에 위치해있다. 고도가 높은 걸로 유명한 서울대학교도 윗공대~사범대 뒤 야외극장 정도는 가야 150m 고도에 이른다.[10] 메인 스트리트인 신림로11길 앞 다리이다.[11] 그중에는 박종철 열사도 있었다[12] 통기타와 함께 민중가요 모음집이 놓여 있다. 또한 주인 이모님이 키우시는 포메라니안 강아지인 솔이가 있다.[13] 광장서적은 1978년 이해찬 전 총리가 문을 연 뒤 2013년 1월 부도로 문을 닫을 때까지 신림동 고시촌을 대표하던 서점이었다.[14] 법률저널이 운영하던 ‘고시24’와 합병[15] 따라서 온라인 서점 북션에서 구매 후 매장수령을 선택하더라도 예전 그 자리에 가면 '북광장서적'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북션은 법률저널에서 브랜드를 인수해 서림동(舊 신림2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16] 대학동의 이름을 이 학교에서 따왔다.[17] 본래 신림여자중학교였으나 2004년 공학으로 전환되면서 삼성중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림중학교는 이미 있었기 때문.[18] 해당 마트는 2012~2013년 경에 폐업한 것으로 확인된다.[19] daum 노무사의 길을 걷는 사람들 까페 자유게시판 26203번글을 보면 제작자가 15년 1월에 어플을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0] 서림동/삼성동과 3개동이 만나는 지점인 미림여고삼거리에 위치한다.[21] 대략 2017년부터 PC방 밀집도 집계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아 갱신이 불가능한 상태로, 사실상 집계가 된 기간 동안에는 줄곧 1등이었다.[22] 덧붙여 당시까지는 검찰청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열릴 정도로 어지간한 젊은 남성 법조인들은 스타크래프트에 나름대로 빠삭한 지식을 쌓았을 시절이었다. 그 배경이 되는 건 당연히 신림9동 PC방 밀집지역.[23] 신길재를 대신하여 어부지리로 출전권을 얻은 대체선수가 그 유명한 '쌈장' 이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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