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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7 16:48:40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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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대통령실2. 정부3. 해군4. 군인 관련 단체 / 군인계5. 독립유공자 기념사업회, 유족 및 기타 단체6. 정계
6.1. 국민의힘
6.1.1. 찬성6.1.2. 반대6.1.3. 중립
6.2. 더불어민주당6.3. 정의당6.4. 진보당6.5. 기본소득당6.6. 기타
7. 학계8. 여론조사9. 관련 언론 기사 및 사설

1. 대통령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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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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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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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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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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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인 관련 단체 / 군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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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독립유공자 기념사업회, 유족 및 기타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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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계

6.1. 국민의힘

6.1.1. 찬성

6.1.2. 반대

6.1.3. 중립

6.2.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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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대전광역시장이 촉발한 국립대전현충원 앞 '홍범도장군로' 도로명 변경 논란에 대해, 실제 도로의 작명 권한을 가진 대전 유성구의 정용래 구청장은 "'홍범도장군로'가 폐지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반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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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참여했던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은 독립운동가 철거에 대해 비판했다. # #

6.3.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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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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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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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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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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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고, 근데 또 한 가지 홍범도 장군이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장변관련 내용을 직접 기술했다. 이런 주장도 있던데요. 그거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고요. 서류를 저도 봤습니다만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고 홍범도 장군은 긴 문장을 쓰실 능력이 없는 분입니다. 아주 고려독립의병대 38년 28년 이런 식의 짧은 문장은 작성하실수 있어도 무슨 내용을 길게 무엇을 쓰고 하는 그런 문장 구사 능력이 없으셨고...
이동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 이동순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시인[37]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red; font-size: .8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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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론조사

9월 1일 발표된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서는 철거 반대가 65.9%, 찬성이 22.1%, 잘모름이 12%로 조사됐다. TK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반대가 60% 이상으로 과반을 기록했고, 중도층에서는 70%가 반대,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을 포함한 모든 세대에서 독립영웅들의 흉상 철거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다만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는 찬성 여론이 높았다. #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전화 면접 조사한 결과, 흉상 이전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3.7%, '동의한다'는 응답이 26.1%로 나왔다. #

9. 관련 언론 기사 및 사설



[1] 겉으로는 주무 부처의 입장, 결정을 존중한다는 태도지만, 실상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식의 입장을 취하며 비판 여론을 피하려는 속셈이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국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직책을 고려하면, 군에서 불거진 역사 및 이념 논란을 강건너 불 보듯 하는 태도는 결코 책임있는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다.[2] 이런 논리라면 홍범도 장군에 대한 작금의 논란도 나와서는 안 되는 거다.[3] 이는 명백한 삼단논법의 오류이다. 이를 달리 설명하자면, 사실상 홍범도 장군김일성을 동일하게 평함을 말하는 동시에, 광복군을 제외한 항일 연군 및 독립군 또한 배제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그동안 정부가 노력했던 대한제국군을 시작으로 을미의병, 을사의병을 통해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항쟁하던 정미의병13도 창의군, 서울 진공 작전 실패로 인해, 일부 의병들이 만주, 연해주 등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 탄생하여,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을 만들어내었었던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같은 독립군 계열을 부정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렇게 부정하는 독립군 단체 중에는 자신들이 죽어라 외치는 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또한 일본군을 탈영하여, 독립군 단체인 서로군정서에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 동안 정통성을 유지하려 했던 노력들을 말 그대로 별 의미도 없는 헛수고라고 평해버리는 망언 그 자체다.[4] 연합뉴스는 홍범도와 여운형 두 유공자가 서로 별개 공적으로 훈장을 받았고, 같은 훈장을 수여받은 유공자들이 둘 말고도 더 있기에 두 차례의 서훈이 상훈법상 금지된 중복 서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5] 정작 이 단체는 전두환에게는 이런 잣대를 가하지 않고 있다.[6] 이름이 비슷한 헌법기관 국가원로자문회의와는 관련이 없는 사단법인/시민단체이다.[7]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이념이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산주의' 같은 특정 사상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8] 육사 36기. 안보연구소장.[9] 윤주경은 앞서 이승만기념관 건립 추진과 관련해 다시금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운운한 발언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뉴라이트 등 극우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뜻으로 1948년 건국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도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뉴라이트 등 일부의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분명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선을 그었다. #[10] 철거 대상 중 한 명인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박정희 정부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고,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중간에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고 안기부장국정원장을 역임한 바도 있으나 2022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오류1] 육사는 6.25 전쟁 발발 이전인 해방 직후에 설립된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모태로 한다.[12] 현재 삭제됨.[오류2]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것은 청산리 전투로부터 7년 후인 1927년이다.[14] 그러나 태영호 의원은 2년 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때 "한국에서도 일부 홍 장군을 좌익계 독립운동가로 평가하지만, 김일성은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는 아니다"라고 정반대 주장을 강조하여 인용한 적이 있으며 태영호 유튜브 채널에도 해당 영상이 남아있다. # # # #[15] 거기다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와 러시아 극동 일대에 널리 퍼져 있던 소련군 방한복을 입은 것은 전혀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시정부(일제강점기) 시대였던 당대는 물론이고, 현행법 기준으로도 당시 소련군 군복을 착용한 홍범도의 흉상이나 동상에 예를 표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 정치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오류3] 자유시 참변을 홍범도가 일으켰다는 주장은 학계에서도 부정하는 역사 왜곡이다. 소련편에 가담했다는 주장은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해당 문서에도 적혀있지만, 정치적인 입견을 위하여 입당했다기보다는 연금을 받아 가정을 챙기기 위해서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17] 홍범도와 같은 본관인 '남양 홍씨 당홍계'이다. 여담으로 '남양 홍씨 당홍계'에는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홍익표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많이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18] 본인의 정치적 기반이 육군사관학교가 자리한 노원구이다.[19] 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을 두고 야당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것을 비꼰 것이다.[20] 청산리 전투의 주역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면서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는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상임이사에 있지만, 해마다 '청산리 대첩 전승행사'에 장군의 고향인 충청남도 홍성군이나 묘소가 있는 보령시에 방문을 한다.[21] 파일:remi1693037906_1435734050.jpg[22] 현재 육군사관학교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논산시와 흉상 이전이 논의되는 천안시 독립기념관이 이곳 관할이고, 해당 논란에 있는 김좌진, 이범석이 충남 출신이다.[23]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24] 홍범도는 소련 군복만 입은 것이 아니라 일본 군복도 입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매일신보 11월 18일자 3면 기사에는 "홍범도는 모두 제국군과 같은 복장을 입었고 모자에는 붉은 테만 없이 하였는데, 그 복장은 일본군이 전날에 입던 메이지 37년(1904년)식의 복장"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구해서 입다 보니까 입게 된 것이고, 일본군 육사 출신인 지청천이나 김경천이 독립군에 합류하면서 일본군의 전술 교리도 일부 유입되었던 것이다. 이걸 두고 "홍범도가 일본군복과 같은 옷을 입었으니 문제가 된다"고 하는 말은 코미디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메이지 37년(1904년)식 일본군복을 입었다는 것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봉오동에서 직접 맞붙었던 야스카와 소좌 본인이 매일신보에서 직접 한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다.[군경력] 김병주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21대 국회 민주당에서 유일한 4성 장군 출신 국회의원.[우원식] [27]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이종찬 광복회장의 사촌동생이다.[28] 강원사학회, 고려사학회, 냉전학회, 대한의사학회, 도시사학회,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명청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백산학회, 백제학회, 부경역사연구소, 부산경남사학회,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웅진사학회, 역사교육연구소, 수선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연구소, 역사학회, 연세사학연구회, 의료역사연구회, 일본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전북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중국근현대사학회, 중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러시아사학회, 한국미국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한국여성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한국프랑스사학회, 호남사학회, 호서고고학회, 호서사학회[29] 김좌진 등 만주와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30] 박노자는 이미 홍범도 유해를 한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를 두고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에게 있어서 홍범도는 위인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송환하는 문제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전체와 합의가 된 거냐, 아니면 카자흐스탄 정치인 몇 사람들과의 합의인 거냐? 그렇게 홍범도 장군을 기리고 싶으면 고려인들에 대해 간이 귀화의 기회라도 좀 열어 주는 것이 어떠냐"라고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이 지나치게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지적을 했었다.[31] 국내 홍범도 연구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홍범도 장군이 찍힌 영상을 최초로 발굴한 사람이다.[32] 2012년 은퇴.[33] 홍범도 장군은 196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34] 정년트랙 연구중점 전임교원.[35] 2020년 사임.[36] 자유시 참변 연구에서 국내 권위자. 자유시 참변 관련 자료의 대부분이 윤상원 교수의 연구와 논문에서 발췌되어 있다.[37] 약 42년간 홍범도 장군 관련 연구를 하였다. 2003년에 장편 서사시 '홍범도'를 발표했고, 2023년에는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집필했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받은 독립운동가 이명균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38] 이종찬 광복회 회장의 아들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로 알려져있다.[39] 정약용이 주장한 토지제도인 여전론은 공교롭게도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집단농장의 그것과 흡사하다.[A] 각 사설과 기사의 논조가 서로 정 반대인 경우가 있다.[41] 38선 돌파일이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인 10월 1일 국군의날을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광복군 창건일인 9월 17일로 바꾸려고 시도한 것도 같은 의도라고 해석했다.[42]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현충원 추념사에서 조선의용대를 언급한 것이 마지막 시도였고 말들이 많이 나오자 최종적으로 그만두었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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