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12:16:43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에서 넘어옴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50000, #D20101 20%, #D20101 80%, #A50000); color: #E0C03D;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르게아스 왕조
카라노스 코이노스 티림마스 페르디카스 1세 아르가이오스 1세
아르게아스 왕조
필리포스 1세 아에로포스 1세 알케타스 1세 아민타스 1세 알렉산드로스 1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케타스 2세 페르디카스 2세 아르켈라오스 1세 크라테로스 오레스테스
아에로포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아르켈라오스 2세 아민타스 2세 파우사니아스 아민타스 3세 아르가이오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아민타스 3세 알렉산드로스 2세 페르디카스 3세 아민타스 4세 필리포스 2세
아르게아스 왕조 안티파트로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카산드로스 필리포스 4세
안티파트로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아이아키다이 왕조-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5세 데메트리오스 1세 피로스 1세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안티파트로스 1세
- 안티파트로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아이아키다이 왕조
멜레아그로스 안티파트로스 에테시아스 소스테네스 안티고노스 2세 피로스 1세
안티고노스 왕조
안티고노스 2세 데메트리오스 2세 아이톨리코스 안티고노스 3세 필리포스 5세 페르세우스
}}}}}}}}}
필리포스 3세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81818,#e5e5e5
<rowcolor=#670000> 초대 제2대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마케도니아 · 셀레우코스 · 안티고노스 · 프톨레마이오스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페르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파일:베르기나의 태양.svg
아르게아스 왕조 샤한샤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마케도니아 제국
제1대 제2대 섭정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페르디카스
섭정 섭정 섭정
안티파트로스 폴리페르콘 카산드로스
아케메네스 샤한샤
}}}}}}}}} ||


<colbgcolor=#D20101><colcolor=#E0C03D>
마케도니아 아르게아스 왕조 제27대 국왕
필리포스 3세
Φίλιππος Γ'|Philip III
파일:필리포스 3세.jpg
출생 기원전 359년
마케도니아 왕국 펠라
사망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 왕국 엠피폴리스
재위기간 마케도니아 바실레우스
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7년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어머니 라리사의 필리나
배우자 아데아 에우리디케
왕조 아르게아스 왕조
1. 개요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2.2.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되다2.3. 아내 에우리디케 2세와 섭정 안티파트로스2.4. 몰락과 죽음
3. 여담

[clearfix]

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27대 왕.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형. 본명은 그리스어로 아리다이오스(Αρριδαίος)로, 한국에서는 이쪽이 더 유명하다. 영어에서는 Arrhidaeus로 표기하며 발음은 '아리디어스'에 가깝다.

2. 생애

2.1. 즉위 전까지의 삶

어머니는 필리포스 2세의 여러 왕비 중 한 명인 라리사의 필리나로 외가는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3세와 거의 나이가 같은 이복형으로 서자였고, 잠시나마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가 필리포스 2세와 사이가 험악해지면서 알렉산드로스의 대체 계승자로 지위가 올라갔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벼운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 지능도 모자란 탓에 아리다이오스가 후계자로 임명되거나 제왕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아리다이오스는 이복동생 알렉산드로스 3세로부터 심한 견제도 받지 않았고, 사이가 좋아 형으로 훌륭히 대접받았다. 왜냐하면 지능이 모자른데다 학습장애까지 겪고 있어 왕위 찬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왕 치세를 비롯해 이복동생 치세기인 기원전 336년부터 기원전 323년까지, 13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리다이오스는 왕의 형임에도 불구하고 군사권을 쥐거나 정치활동은 하지 않았다. 이는 상술했듯이 학습장애 등으로 인해 일찌감치 왕위 계승에서 밀린 것이 큰 요인으로 보이는데, 이런 이유 등으로 알렉산드로스는 왕실 내 다른 라이벌들을 제거할 때 그를 죽이지 않았다.

생전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 3세를 각별히 아낀 탓에 전쟁 원정 당시 그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대왕이 이 사람을 데리고 함께 떠난 것은 인질 목적도 있기에 이를 문자 그대로 믿을 순 없고, 실제로 그는 인질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아무리 함량미달의 왕족이라고 해도 선왕의 아들이고, 왕족이라서 야심을 품은 반역자들에게는 허수아비 왕으로 좋은 패가 되었기 때문이다.

2.2.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되다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바빌론에서 사망했다. 이 당시 마케도니아에서 왕이란 '귀족 중 1인자'라는 의미도 있어 페르디카스, 멜레아그로스 등 여러 장군들이 회의 내내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를 누구로 삼을 지 논의했다. 그 결과, 여러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형 아리다리오스를 '필리포스 3세'라는 왕호를 취하게 한 다음 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필리포스 3세는 정신지체가 있어서, 장군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후계자에 대해 필리포스 3세를 왕으로 세우면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이가 아들일 경우에는 그 아들과 공동왕으로 삼고, 딸이면 필리포스 3세가 단독 왕이 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이때 알렉산드로스 3세의 서자 헤라클레스가 있긴 했는데, 그는 제외됐다. 이후 록사네가 낳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이가 아들이었기에 알렉산드로스 4세와 공동 왕이 되었다.

2.3. 아내 에우리디케 2세와 섭정 안티파트로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할 당시, 필리포스 2세가 첫번째 부인 아우다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키나네(알렉산드로스 3세와 필리포스 3세의 이복누나)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리다이오스가 왕위를 차지하자 자신의 딸 에우리디케를 그와 결혼시키기 위해서, 함께 필리포스 3세가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키나네 공주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 회의를 통해 섭정이 된 페르디카스의 동생 아르케타스에게 피살되었다. 이 사건으로 마케도니아군이 상당히 분개했는데, 이를 심상치 않게 생각한 페르디카스의 중재와 주선으로 에우리디케가 필리포스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바빌론 회의 이후, 알렉산드로스 후계자 문제와 지역 분할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는 일시적이었고 바빌론에 머문 섭정(페르디카스)와 마케도니아에 있는 섭정(안티파트로스) 중 누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섭정인지의 지위 해결 문제도 불분명한 상태였다. 당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살아있던 당시부터 본국인 마케도니아, 그리스 일대는 안티파트로스가 내정을 도맡아 처리했고 여러 장군들에게 인정받은 2인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페르디카스는 안티파트로스의 딸 니카이아와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같은해, 대왕의 모후 올림피아스가 페르디카스에게 자신의 딸이자 대왕의 여자형제인 클레오파트라와의 결혼을 주선하면서 상황은 상당히 이상하게 흐르게 되었다. 올림피아스는 아들 알렉산드로스 생전부터 안티파트로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권력욕이 상당한 왕비였던 만큼 이 제안은 페르디카스에게 상당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때 에우메네스는 페르디카스에게 사망한 대왕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바빌론 외에는 아직 입지가 확실치 않은 그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는 페르디카스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는 니카이아와 이혼한 이후, 올림피아스의 딸 클레오파트라 공주와의 결혼을 추진했다. 그 결과, 페르디카스와 안티파트로스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안티파트로스가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 중 필리포스 3세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 그대로 허수아비인 터라, 자연스레 왕실의 권력은 에우리디케 2세가 적극적으로 행사할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21년에 페르디카스가 여러 장군의 공격을 받고 살해되고 장군들이 서로 다투는 디아도코이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트리파라디소스 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이집트에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페이톤과 자신의 부하 아리다이오스를 새 섭정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중 아리다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신을 이집트로 빼돌린 인물이었는데, 이런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속이 뻔히 보이는 요구에 필리포스 3세의 왕비 에우리디케 2세는 다른 장군들과 연합해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때 필리포스 3세의 아내이자 그 대변인 역할을 맡은 왕비 에우리디케 2세는
"새 섭정을 정하는 일에 있어 내 허락없이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는 발언을 하면서 페이톤과 아리다이오스가 나란히 사임하는 일련의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 후보로 안티파트로스가 거론되었는데, 여기서 에우리디케 2세는 섭정에게 넘어간 왕실 권력의 탈취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실패했고 여러 장군과 귀족들로 구성된 기병의 지지를 받은 안티파트로스가 새 섭정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안티파트로스는 필리포스 3세를 중심으로 제국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4. 몰락과 죽음

필리포스 3세는 기원전 321년 트리파라디소스 협약이 체결되자 바빌론에서 마케도니아로 옮겨져 펠라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안티고노스 1세가 에우메네스를 궁지로 몰아넣기 시작했고 기원전 319년 섭정 안티파트로스가 자연사했다. 따라서 다시 힘의 불균형이 생겨 디아도코이 간의 전쟁이 발생했다.(제2차 디아도코이 전쟁)

안티파트로스는 사망 전, 자신의 후임으로 폴리페르콘을 지명해 섭정 자리를 내줬다. 이는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을 기대한 아들 카산드로스를 실망케했고 그가 반기를 든 이유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안티고노스 등 다른 디아도코이들도 폴리페르콘을 섭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이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폴리페르콘은 수개월째 노라 요새에 칩거 중인 에우메네스와 동맹을 맺었고 카산드로스는 기원전 318년 폴리페르콘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둘의 대결은 폴리페르콘이 기원전 317년 마케도니아에서 완전히 축출되면서 카산드로스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때 폴리페르콘은 에페이로스로 피신하면서 록사네와 알렉산드로스 4세를 데리고 갔다.

반면 필리포스 3세와 에우리디케 2세는 여전히 수도 펠라에 남았는데, 그들은 카산드로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때 에우리디케 2세는 필리포스 3세를 설득해 카산드로스를 마케도니아의 섭정으로 삼았고, 그 대가로 카산드로스는 에우리디케 2세에게 마케도니아를 직접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후 카산드로스는 아테네로 원정을 갔는데, 기원전 317년 올림피아스가 자신의 조카인 에페이로스 왕 아이아키데스, 옛 섭정 폴리페르콘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점령했다. 당시 카산드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머물고 있어서, 마케도니아군은 필리포스 3세와 에우리디케 2세가 지휘했고 에우리디케 2세는 갑옷을 입고 군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전선 형성 후, 폴리페르콘과 올림피아스가 어린 알렉산드로스 4세를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공개하며 그 사기를 꺾었고 필리포스 3세 부부 휘하 병사들이 항복하면서 제대로 된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필리포스 3세는 에우리디케 2세, 카산드로스의 동생 니카토르와 함께 암피폴리스까지 도망가다가 붙잡혔다.

필리포스 3세는 2개월 동안 구금되었다가 12월에 처형되었으며, 아내 에우리디케 2세 역시 남편이 처형된 직후 올림피아스에게 자살을 강요당해 죽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카산드로스의 동생이자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니카토르 역시 처형되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즉시 올림피아스를 공격했다. 그 결과, 올림피아스는 카산드로스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고, 생포되어 필리포스 3세 부부를 죽인 반역죄로 처형되었는데(기원전 316년), 이후 알렉산드로스 4세와 록사네까지 기원전 310(또는 기원전 309년) 카산드로스에 의해 독살되었다.[1]

카산드로스는 필리포스 3세 부부와 키나네를 마케도니아 왕과 왕비, 공주로서의 장례로 치러주었다. 따라서 필리포스 3세는 에우리디케 2세, 키나네와 함께 아이가이 무덤에 묻혔다.

3. 여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는 원래는 정상인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의 모후 올림피아스가 독약을 먹여 정신이상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그의 행동이나 외모에 대한 기록으로 보아 아마도 다운증후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 이후 카산드로스는 폴리페르콘에게 뇌물을 주며 대왕의 서자 헤라클레스까지 독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