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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29 00:56:28

알렉산드로스 1세(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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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마케도니아 아르게아스 왕조 10대 국왕
알렉산드로스 1세
Ἀλέξανδρος|Alexander
파일:알렉산드로스 1세(마케도니아).webp
알렉산드로스
Ἀλέξανδρος
별명 필헬리네
φιλέλλην
출생 미상
미상
사망 기원전 454년경
마케도니아
재위 기간
마케도니아
바실레우스
기원전 498년 ~ 기원전 454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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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10대 왕. 아케메네스 왕조의 봉신으로서 페르시아 전쟁에 참가했지만, 아테네, 스파르타 등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은밀히 접촉하여 페르시아군의 사정을 알려줬고, 페르시아군이 물러간 뒤에는 그리스와 친분을 유지하며 군대를 육성해 영토를 확장했다.

2. 생애

아민타스 1세와 에우리디케의 아들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디카스 1세의 7대손이라고 한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기원전 512년 또는 511년, 아케메네스 왕조다리우스 1세 휘하의 강력한 장군들 중 한 사람인 메가바조스가 사절을 보내 페르시아에 복종의 표시로 "땅과 물"을 요구했다. 아민타스 1세는 요구를 수락하고 사절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런데 사절들이 술에 취해 몇몇 마케도니아 여성들을 추행하자, 알렉산드로스는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여자로 변장하라고 명령하고, 연회에 데리고 가서 특별한 선물을 바치겠다고 제안했다. 사절들은 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들에게 학살당했다.

마케도니아인들은 사절들이 몰살된 사실이 드러나면 페르시아가 보복할까 두려워 사실을 숨겼지만, 페르시아인들은 실종된 사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조사를 맡은 부바레스라는 장군에게 거액의 뇌물을 줬으며, 누이인 가이아를 아내로 삼게 해 상황을 무마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일화가 거짓이며, 헤로도토스가 알렉산드로스 1세의 교활한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비문에는 마케도니아가 이 시기에 페르시아의 봉신이 되었다는 게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기원전 49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기원전 496년에 열린 고대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처음엔 참가 대상에서 제외될 뻔했다. 이 대회는 마케도니아인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하는 그리스인들만의 대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의 왕조가 전설적인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직계 후손으로 믿어지는 고대 아르고스의 왕 테메노스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했고, 따라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알렉산드로스 1세는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했고, 테베의 유명한 시인 핀다르는 그를 축하하기 위해 시를 지었다. 알렉산드로스 1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핀다르를 마케도니아 궁정에 초대하여 후한 대접을 해줬다. 이후에도 바킬리데스를 후원했고, 그로부터 시를 받았다. 한편 델포이와 올림피아에 황금 조각상을 의뢰하기도 했다.

기원전 492년,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리스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육군을 이끌고 온 마르도니오스에게 복종했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는 트라키아인과의 전투 도중 부상을 입었고, 그를 따라 이동하던 해군은 아토스 곶에서 폭풍우로 3분의 1 이상의 함대를 상실했다. 결국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정벌을 뒤로 미루고 철수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군이 대규모 병력을 재차 파견해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정벌하려 했지만,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고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대를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는 이들에게 군사 및 병참 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는 비밀리에 그리스인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스 연합군이 테살리아의 템페 계곡에 주둔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들에게 밀사를 보내 템페 계곡에 우회로가 많으니 위험하다고 경고하여 철수하게 했다. 또한 아테네에 몰래 목재를 공급하여 함대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줬고, 아테네는 '프록세노스'(proxenos: 도시의 친구)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살라미스 해전 후, 마르도니오스의 지시에 따라 아테네에 외교 사절로 가서 평화 제의를 했으나 거절당했다.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알렉산드로스 1세는 몰래 페르시아 진영을 빠져나와 그리스 진영을 방문하여 마르도니오스의 전투 계획을 알려줬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는 아테네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테네 인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하는 말을 믿어주길 바라노라. 그대들은 이를 비밀로 하여 파우사니아스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내가 파멸하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본래 헬레네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헬하스가 노예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마르도니오스와 그의 군대가 그들의 마음에 따라 제물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오래 전에 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제물을 그대로 두고 샙겨에 전투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너희가 더 많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준비하라. 만약 마르도니오스가 전투를 연기한다면, 너희가 있는 곳에 머물고 참을성 있게 버텨라.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며칠 동안의 식량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계획이 너희 뜻대로 이뤄지거든, 내가 너희를 위해 이토록 위험한 일을 행한 덕분에 해방되었음을 알아줘야 한다. 너희가 아직 예상하지 못한 때에 야만인들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도록 마르도니오스의 계획을 너희에게 보여줬느니라. 나는 알렉산드로스이며 마케도니아 사람이다.

다음날 벌어진 전투에서, 그리스군은 완승을 거두었고 마르도니오스는 전사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리스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 페르시아군을 몰아내는 데 일조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이러한 그의 공적을 인정하여 '필헬리네'(φιλέλλην: 그리스인의 친구)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이후 그리스와의 무역을 증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로부터 목재와 곡물을 수입했고,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들로부터 막대한 자금과 질좋은 무기를 공급받았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을 기반삼아 군대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그리스 역사가 람파쿠스의 아낙세메네스에 따르면, 그는 호위기병 집단인 헤타이로이와 장창부대인 페제타이로스(Pezhetairos)를 처음으로 창설했다고 한다. 군사개혁이 완수된 뒤, 본격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채석장이 풍부한 스트리몬 계곡의 동쪽 지역을 장악했고, 테르마이코스 만의 전략적 항구도시인 피드나를 정복했다. 한편 트라키아와 할키디키(Chalkidiki)까지 확장하려 했다가 그 지역에 많은 공을 들이던 아테네와 대립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는 알케타스 2세, 페르디카스 2세, 필리포스, 메넬라오스, 아민타스, 스트라토니케를 낳았다. 기원전 454년 사망한 후 알케타스 2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곧 물러났고, 페르디카스 2세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