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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6 10:12:18

폴리페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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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게아스 왕조 샤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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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제국
제1대 제2대 섭정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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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카스
섭정 섭정 섭정
안티파트로스 폴리페르콘 카산드로스
아케메네스 샤한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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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ολυπέρχων
(BC 394 ~ BC 303)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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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섭정.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 휘하에서 마케도니아 장군으로 활약했고, 필리포스 3세알렉산드로스 4세의 섭정 안티파트로스 후임으로 섭정직을 계승했다.

2. 생애

에페이로스 사람으로 에페이로스 태생인 심미아스의 아들이다. 젊은 시절부터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를 보좌한 장군으로 활약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휘하에서 동방 원정에 종군해 기원전 331년의 가우가멜라 전투, 기원전 326년의 히다스페스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대왕의 동방 원정 중 모든 원정에 함께 한 마케도니아 장군으로,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 이후부터 기원전 324년까지는 티파니아 팔랑크스 부대 사령관을 맡아 마케도니아군을 이끌었다.

기원전 323년 크라테로스 부관으로 크라테로스와 함께 제대 병사들을 본국인 마케도니아로 귀환시키는 중책을 담당했다. 그런데 폴리페르콘이 퇴역병들과 킬리키아를 이를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때문에 폴리페르콘은 크라테로스와 함께 라미아 전쟁으로 출전 중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담당 섭정 안티파트로스 원군으로 그리스로 진군했다.

폴리페르콘은 크라테로스 휘하 부관이자 2인자 자격으로 마케도니아 책임자를 맡았고, 안티파트로스와 함께 라미아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맞서 싸워 그리스의 독립을 저지했다. 이때 그는 당시까지 불패 신화로 유명한 테살리아 기병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라미아 전쟁과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 기간동안, 폴리페르콘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담당한 안티파트로스가 알렉산드로스 제국 섭정 문제로 동방으로 떠날 당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대신 맡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페르디카스와 대립 중인 안티파트로스와 크라테로스 쪽에서 활약했고, 두 사람에게 신임받아 마케도니아-그리스 쪽의 수비를 담당한 총독직에 임명됐다.

페르디카스가 암살되고, 안티파트로스가 제국 전체의 섭정에 부임한 이후에도 안티파트로스 쪽 핵심인사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319년 안티파트로스로부터 섭정의 자리를 물려받아 후임 섭정이 됐다. 그러나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산드로스와 여러 디아도코이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노라 요새에서 칩거 중인 에우메네스와 동맹을 맺었으며, 제2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났다.

기원전 318년에 카산드로스, 안티고노스 1세 등과 싸웠으나 여러 차례 패하고 기원전 317년에 카산드로스의 공격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쫓겨났다. 이때 폴리페르콘은 에페이로스로 피신해 올림피아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이아키데스, 올림피아스와 함께 기원전 317년에 마케도니아를 공격해 필리포스 3세, 에우리디케 왕비, 니카토르 등을 붙잡았다. 그런데 올림피아스는 다음해인 기원전 316년 12월 이들을 죽였다. 이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다가 개입하지 못해 추가적인 군사적 행동을 못한 카산드로스가 동생과 왕, 왕비를 모두 살해한 명분으로 반격하는 이유가 됐다. 따라서 올림피아스는 이 문제로 붙잡혀 카산드로스에게 반역죄로 처형, 록사네와 대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는 연금 신세가 된다.

올림피아스가 죽고 록사네와 알렉산드로스 4세가 카산드로스의 감시 아래에 놓인 것과 달리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피신했다. 그는 제3차 디아도코이 전쟁 때 안티고노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때 안티고노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자 헤라클레스를 폴리페르콘에게 보냈다.

이후 전쟁이 재개되면서 재차 카산드로스의 공격을 받았지만 곧 협상을 맺고 코린트와 시키온을 제외한 펠레폰네소스 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다.

폴리페르콘은 그 곳에서 참주를 지냈는데, 안티고노스와 동맹을 깨고 카산드로스와 밀약을 맺는다. 이때 카산드로스의 요청으로 기원전 309년 대왕의 서자 헤라클레스를 독살한다. 이후 소식은 기록이 소실돼 알 수 없지만,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참주로 잘 살다가 기원전 303년에 사망했다. 한때 섭정 자리를 놓고 다툰 카산드로스와는 말년에 사이를 회복한 까닭에, 폴리페르콘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카산드로스 휘하 장군으로 디아도코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