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1중간기 제11왕조 4대 파라오 인테프 3세 Intep II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나크트네브텝네페르(Nakhtnebtepnefer)[2] | |
부왕 | 인테프 2세 | |
선대 | 인테프 2세 | |
후대 | 멘투호테프 2세 | |
묘지 | 엘-타리프(El-Tarif) | |
왕비 | 이아(Iah) 헤니테(Henite) | |
자녀 | 멘투호테프 2세(Mentuhotep II)♂ 네페루 2세(Neferu II)♀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069/2068/2063/2016년~기원전 2061/2061/2055/2099년 중 하나 재위기간 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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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1중간기 11왕조의 4대 파라오이다. 재위 연대에 대해 논란이 있는 편이다.2. 가족
인테프 3세는 인테프 2세의 직계 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로 당시 재상이였던 테티(Tjeti)의 비문이 꼽힌다. 테티는 인테프 2세와 인테프 3세 두 파라오를 모두 섬겼던 관리로, 그가 남긴 비문에는 인테프 2세의 사망 후 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이 비문에서 인테프 3세는 "나트-네브-텝네페르(Nakht-neb-Tepnefer)”라는 칭호로 지칭되는데, 이는 인테프 3세가 계승한 호루스 이름 중 하나로 추정된다.인테프 3세는 자매로 여겨지는 이아(Iah)와 혼인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아는 “왕의 어머니”[3], “왕의 딸"[4], “하토르의 제사장[5]” 등 여러 칭호를 사용한 인물로, 이를 통해 멘투호테프 2세가 인테프 3세의 아들임을 뒷받침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점은 헤네누(Henenu)의 비문[6]에서도 확인된다. 헤네누는 인테프 2세 및 인테프 3세에 이어 그의 아들로 지칭되는 군주를 섬겼다고 기록했는데, 그 아들이 바로 멘투호테프 2세라는 것이다. 당시 멘투호테프 2세는 호루스 이름 산크이브타위(Sankhibtawy)를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더불어 와디 샷 엘-리가(Wadi Shatt er-Rigal) 인근 게벨 엘-실실레(Gebel el-Silsileh)의 부조에는 멘투호테프 2세가 인테프 3세와 이아에게 둘러싸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3. 통치
인테프 2세의 재위 기간은 약 49년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인테프 3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중년 혹은 노년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다. 인테프 3세의 재위 기간은 고대 기록[7]을 통해 약 8년으로 전해진다. 토리노 파피루스에는 인테프 3세의 이름이 결손되었으나, 해당 행[8]에서 ‘8년’이라는 숫자만은 식별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집트 학자들이 제시하는 통치 시기는 아직까지도 조금 차이가 있는 편이다. 대략 기원전 2060년대 초~2060년대 후반 사이에 시작되어 2050년대 중반 전후에 끝났다는 설이 유력하며, 일부 학자는 기원전 2010년 전후까지 재위를 비정하기도 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 중간기 시기에 관한 연대 자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다.
인테프 3세는 선왕 시기에 이미 확장된 상이집트 영토를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추가적으로 북쪽 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했다는 견해가 있다. 아비도스 지역에서 활동한 관리 ‘나크티(Nakhty)’의 무덤 문주[9]에서 인테프 3세의 이름이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해당 지역에서의 통치 활동을 방어·강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아시유트 등 아비도스 북쪽 지대를 장악하거나, 최대 상이집트 17번째 놈인 인푸트까지 영향력을 뻗쳤다는 설도 있다. 다만 일부 연구자는 이러한 최대치 확장이 인테프 3세가 아닌 후계자인 멘투호테프 2세 초기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엘레판티네 섬에서 발견된 문주에는 인테프 3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그가 현지 신전의 보수나 건축에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예컨대 6왕조 시대에 신격화된 지방 노마치 헤카옙(Hekayeb)[10]을 기리는 성소[11] 근처와, 사텟(Satet)[12] 신전 주변에서 인테프 3세 관련 문주가 출토되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재위 기간 동안 종교적·건축적 사업을 어느 정도 추진했음이 확인된다.
4. 무덤
인테프 3세가 묻힌 엘 타리프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테베 반대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제11왕조 파라오들의 왕실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에는 여러 채의 대규모 사프(Saff) 무덤[13]이 분포하나, 1970년부터 1974년에 걸쳐 디터 아놀드(Dieter Arnold)가 이끈 독일 고고학 연구소의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각 무덤의 소유주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인테프 2세의 무덤을 제외하면 명문[14]과 같은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무덤 배치와 후대 사료를 토대로 각 무덤의 주인을 추론했다. 그 결과, 현재 ‘사프 엘-바카르(Saff el-Baqar)’로 불리는 무덤이 인테프 3세의 묘역으로 지목되었다.인테프 2세의 무덤과 유사하게, 폭 약 75m, 길이 85~90m 규모의 넓은 안뜰이 존재한다. 이 안뜰은 북서-남동 축을 따라 배치되었으며, 인접한 수로를 마주 보고 있는 형태로 알려져 있다. 안뜰은 동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암반을 깎아 만든 다수의 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뜰 끝부분에는 2열로 된 거대한 열주[15][16]가 있다. 열주 뒤편으로도 여러 개의 공간이 더 이어져 있다.
1970년부터 시작한 독일의 조사에 따르면 무덤 상태가 전반적으로 훼손되어 있었음에도, 내부 일부 벽은 사암으로 덧대어 장식되었다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는 무덤이 조성될 당시 상당한 정성을 들여 미관을 꾸몄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재 무덤 터는 인근 마을 건물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추후 보존이나 추가 발굴에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다.
[1] 게벨 엘 실실라라고 부르며, 아스완 지역에 위치해 있다. 당시에는 사암을 채석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2] "승리한 자, 위대한 시작의 제왕"이라는 뜻이다.[3] 무트 네수트[4] 샤트 네수트[5] 헤메트-네체르-하트-호르 혹은 헤메트-네체르-후트-호르[6] 현재 카이로 박물관 소장하고 있다.[7] 대표적으로 토리노 파피루스[8] 5단 15행[9] 문 옆에 세우는 기둥을 뜻한다.[10] 헤카입이라고 하기도 한다.[11]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베푸는 공간[12] 이집트 남부 국경, 범람하는 나일강, 전쟁, 사냥, 다산의 여신[13] 사프는 아랍어로 ‘열’을 뜻하는 용어이며, 넓은 사각형에 가까운 뜰을 앞에 두고 이중 열주와 출입로가 늘어서 있는 구조가 특징이다.[14] 쇠붙이와 돌,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 따위에 새겨 놓은 글[15] 줄지어 늘어선 기둥[16] 총 48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