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제1중간기 제11왕조 초대 파라오 멘투호테프 1세 Mentuhotep 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멘투호테프 테피 아아(Mentuhotep Tepy-aa)[1] | |
부왕 | 인테프로 추정 | |
선대 | 인테프[2] | |
후대 | 인테프 1세 | |
묘지 | 불명 | |
왕비 | 네페루 1세(Neferu I) | |
자녀 | 인테프 1세(Intef I)[추정] 인테프 2세(Intef II)[추정]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2135년경, 재위기간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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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1중간기[5] 제11왕조의 초대 파라오이다. 멘투호테프 1세는 이집트 제1중간기 초기 테베 지역에서 상이집트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총독 혹은 독립적인 군주였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1왕조가 인테프 2세와 멘투호테프 2세 시기에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왕조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조상 숭배의 형태로 창작된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후대 기록에서 그가 ‘왕조의 창시자’로 언급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견해도 있다.2. 정체
멘투호테프 1세는 기원전 2135년경 제1중간기 초기에 테베 지역을 통치했던 지방 총독 또는 독립을 선언한 파라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투트모세 3세의 축제전당에 위치한 카르나크 왕명표에 그의 이름이 언급된다. 해당 왕명표의 12번째 항목에는 “멘(Men-)”이라는 이름 일부가 보이는데, 이는 멘투호테프 2세나 멘투호테프 3세와 구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왕명표는 시간 순서가 뒤섞여 있어, 이 인물이 정확히 언제 살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부족하다.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본래 테베의 총독에 불과했던 멘투호테프가 후대에 왕호를 추존받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멘투호테프 1세 당대에 세워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그가 11왕조를 창시한 가상의 시조로서 나중에 만들어진 인물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엘레판티네 섬의 헤카입[6] 신전에서 발견된 조각상 받침대에는 멘투호테프를 ‘신들의 아버지’로 칭하는 문구가 남아 있다. 이 칭호는 왕가의 직계가 아닌 선조에게 부여된 경우가 많아, 멘투호테프가 실제로 파라오에 즉위하지 않았다는 해석에 힘을 싣기도 한다. 동시에 이 명칭으로 볼 때, 멘투호테프가 인테프 1세 및 인테프 2세와 같은 상이집트 통치자들의 부친으로 여겨졌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멘투호테프 1세의 즉위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11왕조에서는 멘투호테프 2세에 이르기 전까지 즉위명을 사용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으므로, 그에게는 본래 즉위명이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후에 전하는 호루스명 ‘테피아’[7] 또한 사후(死後)에 추증된 명칭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3. 가족
멘투호테프 1세의 배우자로는 네페루 1세가 거론되며, 엘레판티네 섬에 위치한 헤카입 신전 유물에 대한 해석에 따르면 멘투호테프 1세가 인테프 1세와 인테프 2세의 아버지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한편, 카르나크 왕명표에는 왕호 없이 ‘인테프’라는 이름이 13번째 위치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초기 제1중간기에 헤라클레오폴리스 왕조를 지지했던 테베의 지방장관 이쿠(Iku)의 아들이자 ‘인테프 장로’로 알려진 인물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 왕명표는 연대순으로 배열되지 않았으므로 실제 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4. 통치
멘투호테프 1세가 테베의 총독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그 지배 범위가 남쪽으로 나일강 제1급류까지 미쳤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가 키프트의 총독과 동맹을 맺었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세가 바탕이 되어, 멘투호테프 1세의 뒤를 이은 인테프 1세가 하이집트를 지배하던 10왕조와 중이집트에 포진한 유력 지방세력[8]과 무력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보기도 한다.[1] 혹은 Mentuhotep-aa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뜻은 "몬투가 만족하다."라는 뜻이며, Tepy-aa는 "위대한"을 의미하나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추정된다.[2] 도시 국가였던 시절 테베지역의 유력 귀족이다. 11왕조를 건국한 인물로도 여겨진다.[추정] [추정] [5]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으므로 제1중간기이다.[6] 페피 2세 시기 활동하던 장군으로, 군사적 용맹함을 인정받아 사후 신격화되었다.[7] 선조라는 뜻이다.[8] 특히 네켄 지역의 총독이였던 앙크티피와 무력 충돌이 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