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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5 17:32:04

스즈키 이치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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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레이 스타일 3. 평가에 관해 의견이 나뉘는 원인4. 오해?5. 일본 내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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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즈키 이치로에 대한 평가를 서술한 문서.

2. 플레이 스타일

이치로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설명한 영상.

시애틀 매리너스 전성기 시절의 이치로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리드오프이자 배드볼 히터로 어떤 공이든 갖다 맞출 수 있는 컨택, 준수한 주력과 수비력을 갖춘 운동능력형 툴가이로 평가되었다. 즉 컨택, 주력, 수비력은 스테로이드 시대의 메이저리그 선수들 내에서도 확실히 톱급이었다. 단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타격 성향상 존 바깥의 공도 지켜보기보단 일단 쳐서 나가는 스타일이었던지라 리드오프치고는 출루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고[1]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장타력이 객관적으로 좋은 타자는 결코 아니었던지라 클린업 트리오에 적합한 유형의 타자라 보긴 어려웠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높은 타율을 기록하는 훌륭한 리드오프로, 세이버적 관점에서는 타율 대비 생산성은 아쉬우나 수비와 주루로 승리기여도를 더 쌓아올리는 유형의 선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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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수비로 일낸다라는 밈으로 유명한 2010시즌 당시의 시애틀 타선으로 메이저리그 최악의 타선 중 하나로 뽑힌다.[2]

사실 시애틀 타선은 2004년 정도부터 90년대를 지탱하던 주축선수들[3] 등이 대부분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하강세를 기록하면서 이미 전체적으로 팀 타격 수치가 많이 떨어졌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치로가 배드볼 히터 소리를 들으며 타출갭 낮고 장타력이 떨어져서 과대평가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주축 선수들 다 떠난 후 2005년부터 2011년까지의 기간 동안의 출루율 평균만 계산해도 이치로가 팀에서 1위였다. 중심타선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는 사실상 라울 이바네즈 단 한명이었고 잠시 반짝했던 리치 섹슨과 당시 수비로만 일내는 중이었던 벨트레가 전부. 사실상 팀 암흑기 시절의 주축을 맡았던 선수였다. 그러다보니 투수들이 이치로가 1번타자임에도 고의사구로 막 거를 정도가 되었고, 결국 9년차이던 2009년 올타임 리드오프 고의사구 순위에서 139개로 피트 로즈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단 11시즌만을 중심타선도 아닌 리드오프로서 뛰고도 웬만한 클린업 히터들과 맞먹는 개수를 기록 중이다. 10년이나 더 뛴 짐 토미와 맞먹는 고의사구 개수로, 2011년 종료 시점에서 현역 7위. # 이후에도 몇차례의 고의사구를 추가하면서 결국 통산 181개의 고의사구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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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주목하지 않는 부분인데, 메이저 첫 진출이었던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총 3년/$1400만 계약이 끝난 시점에서 시즌 도중에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던 2012년 중반까지 총 2번의 연장계약을 합쳐서 9년/$1억 3400만을 매리너스와 체결했었는데, 이 동안에 거둔 WAR가 bWAR 기준으로는 57.2, fWAR 기준으로는 55.0이고 올스타 골글 MVP 컨텐더는 거의 기본에 실슬까지 종종 타먹었던 코너 외야수였다. 즉 현재 FA 기준으로 10년 2억 근가의 계약 내에서 연평균 WAR 5를 벌어주는 건데 이 정도 성적이면 팀 입장에서 혜자 정도가 아니라 엎드려 절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미 계약 기간 동안 받은 수상내역하며 달성한 기록만해도 엄청난 수준이며 이때 동안 쌓은 WAR까지 고려하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최고의 가성비 계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선수 본인이 FA 자격을 얻은 시점에서 더 큰 계약을 바랄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팀 암흑기 시절에 남아서 킹 펠릭스와 함께 투타에서 꾸준히 활약해주었다. 당연히 매리너스 팬 입장에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선수였다.

이치로와 유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다. 다만 이치로의 장점은 이 성적을 데뷔 후 10년동안 기록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 동안의 경기 출장수가 ML 1위였고 이 부분에선 철강왕 소리를 들었던 로빈슨 카노보다도 우위를 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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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가 메이저 데뷔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00년대 아메리칸리그에서 이치로보다 더 높은 WAR를 쌓은 선수는 오직 알렉스 로드리게스 뿐이다. 이치로가 2번째, 데릭 지터가 3번째이며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약물복용선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00년대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높은 WAR를 기록한 선수는 이치로다.# 2012년 기준으로 이치로의 현역 활동 기간에 이치로보다 높은 통산 WAR를 기록한 타자는 푸홀스, A-Rod, 벨트란, 버크먼#이며 2015년까지 계산해도 푸홀스, A-Rod, 벨트레, 카브레라, 어틀리, 벨트란, 라이트, 오티즈, 테하다 뿐이다. 이치로의 WAR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이치로의 꾸준함도 크다.

WAR의 핵심은 1. 부상없이 많은 경기를 2. 좋은 성적을 내며 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치로는 2번 항목에서 A급이었고 1번 항목은 S급인 선수였다. 그동안 많은 상과 타이틀을 수상했으며 2009년 시즌까지 리그 5위 밖으로 떨어져 본 적 없는 도루, 매년 10위권 안에 드는 고의사구 등 정상급의 성적을 매년 찍었고 MVP 투표에도 꾸준히 등장했다. 즉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WAR라는 것이다. 이치로가 루키 때 얻은 명성과 시애틀의 압도적인 이동거리 등 열악한 상황에서도 10년 이상의 꾸준한 자기관리가 더해져 커리어 후반에 이르러서 그의 진가가 더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딩바이블, 올해의 수비수, 플래티넘 글러브같이 보다 더 정확한 디펜스 세이버에 근사한 현 메이져 판도에 더 인정받을 거리가 많은 선수.

이치로는 현대야구에서 올드스쿨한 리드오프형 선수가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한계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컨택, 수비, 주루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참고로 리드오프의 포지션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생각보다 많지 않다. 리키 헨더슨, 크레이그 비지오, 루 브록, 폴 몰리터, 웨이드 보그스, 팀 레인스 정도가 끝이었다.

2014년 8월에는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2000년대이후 가장 툴이 많은 선수로 이치로를 선정한 적도 있다. 이는 흔히 이야기하는 5툴플레이어기준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요소들을 보는데[4]# 베이스볼 아메리카라는 매체 특성을 감안할때 현장전문가들은 이치로를 매우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한다는 이야기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생각해보면, 저 때처럼 OPS가 .760~.770 = OPS+ 100으로 측정되는 비정상적인 스테로이드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훨씬 투고타저일 때 다른 선수들이 받고있는 평가를 되새김질해보자. 제이슨 헤이워드처럼 안정적인 주루와 뛰어난 수비력, 그리고 평균보다 약간 높은 타격을 가진 우익수가 8년 1억 84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페이를 받고 있고, 빌리 해밀턴이나 엘비스 엔드루스처럼 타격은 반쯤 포기하고 주루하고 수비 위주로 WAR를 쌓는 리드오프들은 이미 그 툴만 가지고도 주전감이다. 약물의 힘으로 아주 잠시 이치로 하위버전의 스탯을 찍었던 디 고든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지금 언급한 선수들을 포함해 대부분은 각각 타격, 주루, 수비에 있어 기본적으로 한가지 이상 결함이 있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FA에서 고액연봉을 받거나, 연장계약 걱정할 거리가 없는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런 리드오프 류의 타자 중에서 이치로와 동급 소리를 듣거나, 혹은 짭이치로 소리라도 듣는 타자들은 단 하나도 없다. 이치로가 저평가받는 것은 타율대비 출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장타생산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배드볼히터라는 점에서 명전에 오른 리드오프들과 비교해 안좋다는거지, 그 아랫급의 타자들과는 주거니 받거니 2000년대 동안 MVP에서 꾸준히 경쟁하던 타자다. 심지어 타격수치가 몰락하기 전, 그러니까 2010년까지의 Off(Bat+BsR) 누적수치만 봐도 217.4로 22위를 기록했던 선수다.# 눈여겨봐야 할 것이, 그 위에 있는 타자 중 맨손빠다 괴수의 수치가 256.0이고, 홈런 아니면 삼진인 선풍기가 Off 250대다. 또한 Off 300대 이하의 타자중에서는 유일하게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10년동안 공수 다 합쳐서 누적 WAR 50을 넘긴 야수다.

수비는 말할것도 없이 로베르토 클레멘테 와 함께 역대 최고 우익수를 논하는 수준이다. 단순 골글수는 클레멘테가 12개, 이치로가 10개지만 이치로의 경우 9년을 다른리그에서 뛰다 온 선수라는 것을 감안하면[5]그렇게 유의미한 차이가 아니며 실제 메이저에서 동나이때, 즉 이치로가 데뷔한 만 27세부터 클레멘테가 사망한 37세까지 11년간 팬그래프기준 수비WAR를 보면 이치로가 55.5, 클레멘테가 53.9로 이치로의 근소우위다. 최근에 와서야 골글을 외야 구간별로 나눠서 줬지 당시엔 그냥 외야 죄다 퉁쳐서 줬고 덕분에 코너보다 더 난이도 높은 수비를 해야하는 센터라인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너에서 활약하며 10년 연속 골글을 기록한 것은 가히 대단한 수준이었다.[6] 06-08 시즌엔 중견수도 겸했고 07시즌의 경우 아예 팀 사정에 맞추어 풀타임 중견수로 뛰고서도 무난하게 골글 수상에 성공했다. 다만 중견수로 활동 시 우익수 때 보여주던 광활한 레인지를 뛰노는 레벨까지는 아니었고 오히려 주루를 틀어막는 송구가 더 돋보였며, 본인 의사에 따라서 보다 익숙했던 우익수로 09년에 롤백.

다만 사실, 이치로의 커리어 통산 타격을 조정스탯인 OPS+나 wRC+로 보면 OPS+ 107에 wRC+ 104로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다. 타율은 높으나, 출루율과 장타율이 낮아서 타석 안에서의 모습만 보자면 보기보다 생산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코너 외야수 기준으로는 딱 주전급 정도.

하지만 이 수치 역시 또다른 3,000안타의 주인공이자 명예의 전당 첫턴 입성자인 루 브록과 거의 비슷한 수치이며 둘의 기본적인 수비력 차이는 말할것도 없고 포지션부터 루 브록은 좌익수, 이치로는 우익수에다 중견수까지 커버하기 때문에 수비 포지션으로도 우위. 즉 명예의 전당 관점에서 봤을때도 이치로 정도의 수비력과 주력을 가진 선수에게 이 정도 타격 비율 스탯이 발목을 잡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거기다 이치로가 뛰던 00년대는 스테로이드 시대로 그 어느때보다 타자들의 성적이 좋던 때였는데 그러한 시대를 청정으로 보냈기에 wRC+ 등의 비율스탯에서 크게 손해를 보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사실 비율스탯이 망가진 것도 201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노쇠화하면서 기존의 수준급 공격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평균 이하의 타자가 되어 버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로 조정스탯을 보면 2010년까지의 이치로와 2011년부터의 이치로는 적어도 타격 능력면에서는 그냥 다른 선수라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저 당시의 나이가 무려 30대 후반의 노장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에이징 커브가 오히려 상당히 늦게 찾아왔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40대 후반까지 저니맨으로 이리저리 활동하며 타출장 비율을 깎아먹었지만, 선수생활에 대한 집념만으로 상당한 누적기록을 만들어냈으니 충분히 찬사받을만 하다. 더욱이 40대가 되도록 중견수를 포함한 외야 전 포지션 대수비, 대주자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을 유지했는데 보통 야수의 툴 중 노쇠화의 여파를 가장 직격으로 맞는 게 순발력, 스피드란걸 생각하면 여기서도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엿볼 수 있다.

3. 평가에 관해 의견이 나뉘는 원인

이치로의 평가에 대한 논란은 다음과 같다.

1. 타출갭이 심하게 작고 장타율 또한 낮은 슬랩 히터였으며, OPS .900을 넘긴 시즌이 단 한번도 없다.
2. 안타 대비 내야안타의 개수가 많다.
3. MVP를 딴 2001년에 bWAR와 fWAR가 다른 타자들에게 밀리기에 임팩트에 비해 실속이 낮다.

이에 반박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배드볼 히터인 것은 사실이나 삼진수 역시 많지 않고, 출루율이 타율대비 낮은건 사실이나 동시대 타자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진 않다.
2. 내야안타가 많다는 점은 오히려 주력이 특기라는 점을 대변한다.
3. MVP를 기록했던 1년차에 최다안타, 최다도루, 최고타율 총 3관왕을 차지하고 이후 클래식 스탯에서 꾸준히 기록을 남겼다.

정리하기 이전에 이치로가 활동하던 시기의 MLB의 성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타고투저로 대표되는 스테로이드 시기(1994~ )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2000년대 후반 이전까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자케티 단장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단장을 대표되는 세이버 친화구단이 주목했던 출루율과 수비실적과 관련해 그 때까지 견적이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고, 그런거 없이도 우승하는 팀이 많았기에 올드스쿨 스탯(타율, 안타, 홈런)에 비중을 더 많이 두었다
2. 타고투저 시기, 보통 OPS .760정도의 기록이 그 해 OPS+ = 100으로 계산되던 때, 타자의 실적은 보통 홈런과 타율, 그리고 타점을 기준으로 타자의 가치를 매기는 경우가 흔했다. 당장 저 시절 MVP 순위를 보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3. 2000년대 중후반부터 헨리 라미레즈, 러스티 그리어, 더스틴 페드로이아, 추신수, 조니 데이먼, 알폰소 소리아노처럼 파워 툴까지 장착한 타자를 앞 타순에 땡기면서 보다 전통적인 리드오프 스타일의 이치로, 후안 피에르, 라파엘 퍼칼 같은 타자들이 전자와 비교해 저평가를 많이 당했다.
4. 리그 평균타격기록의 폭등이 발생한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하며 타격 조정스탯 부문에서 많은 손해를 봤다.

이치로는 1번 타자 중에서도 고타율과 존을 넓게 가져가는 히팅, 그리고 극단적으로 높은 그라운드볼 비율과 상대적으로 많이 낮은 플라이볼 비율의 불리함을 뛰어난 주루 능력으로 상쇄시키는, 그리고 볼넷보다 안타에 집중하는 극단적인 배드볼 히터과의 리드오프 중 한명이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컨택과 비교해서 스윙 대비 컨택율 이 비교적 높았던 타자인데, 이는 존을 벗어나는 공에 한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게레로도 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존을 벗어난 곳이라도 능숙하게 안타를 만들어냈고 강한 파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코스로 들어오는 공까지도 홈런으로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다만 게레로의 통산 fWAR가 54.3, bWAR는 59.5로 클래식 누적과 임팩트에 비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실 세이버로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송구를 제외한 수비(+ 송구정확도)능력과 주루능력에서[7] 많이 까먹었고 10,000타석이 안되다보니 누적이 생각보다 미약했던 것.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주루와 수비에 있어서 클래식 수치, 즉 수비에러와 도루갯수만 믿으면 안되는 것이, 보다 전문적으로 기록을 재는 세이버 스탯에서는 도루실패수가 도루성공 3~4의 마이너스 값을 가지며, 수비에러와 필딩율은 UZR과 DRS[8]로 직결되지 않으며, 더블 플레이, 런세이브, 레인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세이버매트릭스는 수비 레인지가 좁고 에러 가 적은 야수에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으며(ex: 데릭 지터, 애덤 존스, 에릭 호스머), 실책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보다 넓은 범위를 안정적으로 수비하거나 런세이브를 확충할 수 있는 야수를 더 높게 평가한다. 주루 또한, 단순히 도루 갯수로만 BsR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타구를 쳤을때, 혹은 자신이 주루선상에 있을 때 같은 팀의 타자가 안타를 쳤을 때 얼마나 더 많은 베이스를 밟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성공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를 훨씬 중요하게 평가한다.[9]

일단 분명한 것은, 이치로의 출루율과 장타율은 이치로가 기록한 높은 타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단타 위주의 1번 타자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타율 3할 중반대를 꾸준히 기록한 타자치고는 전성기 10년간을 따진다 쳐도 출루율은 3할 7푼대, 장타율은 4할 3푼대로 OPS가 8할 간당간당하게 넘는 정도이다. 만약에 이 OPS를 가지고 보다 낮은 타율, 가령 추신수처럼 2할 중후반대를 왔다갔다 하는 타자들이 만약에 이런 성적을 기록했다면 타율대비 출루가 높고 공을 신중하게 골라서 투구수를 늘리는 장점 때문에 후자를 더 높게 칠수도 있다.

다만, 배드볼 히터의 경우 일반적인 타자들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가령, 2010년대 이후로 맷 카펜터, 조이 보토, 마이크 트라웃, 호세 바티스타, 제이슨 워스, 앤서니 리조 등 타율 대비 출루율이 상당히 높은 OPS 히터의 경우 심판 장난질이나 포수의 프레이밍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이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존 바깥을 벗어난 공에도 스윙을 하거나, 눈 뻔히 뜨고 루킹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히 발생하고, 이것이 실제로 클래식 스탯과 세이버 스탯에 영향을 끼쳐 선수들의 컨디션을 망가뜨리거나 밸런스를 망쳐서 성적을 중간중간 끌어내리는 경우가 꽤나 있었다.

반면, 삼진과 볼넷 모두 그렇게 많지 않고, 특히나 이치로처럼 존을 벗어나는 공까지 뛰어난 컨택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자의 경우, 볼넷 비중이 적기 때문에 출루율이 비교적 낮아 OPS에서 손해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타격이 성공시 타자는 1루까지 진루할수 있는 제한된 진루에 비해 2루타, 3루타, 혹은 홈런으로 더 많은 진루를 획득할 수 있어 오히려 장타율이 올라갈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물론 이치로의 경우는 단타 위주의 타자인만큼 2루타 이상의 장타에 있어서 그 수치가 높은 타자는 결코 아니기에 장타율 또한 비교적 낮다. 대신, 이치로의 경우 훌륭한 주력을 활용해 추가 진루를 성공시켜 높은 득점력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실제로, 팬그래프 기준으로 이치로의 베이스러닝 지수는 96.0인데 UBR(추가진루 점수)와 wGDP(병살방지 점수)의 합산은 49.4로, 순수 도루를 뽑아낸 지수(46.6)보다 더 크게 나오며, 레퍼런스에서는 Rbaser(도루+추가진루 점수)와 Rdp(병살방지 점수)의 합산이 무려 118점이 나왔는데, 이는 타격으로 벌어들인 성적을 추월하는(팬그래프 bat = 61.4, 레퍼런스 Rbat = 84) 수준이다. 전성기였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8번의 세자릿수 득점을 뽑았고, 내야안타 비중이 많으면서 BABIP은 무려 .350을 넘겼다. 쉽게 말해서 같은 내야안타를 친다고 쳐도 뛰어난 주루 능력을 통해 이를 상쇄할수 있고, 시프트 걸면 시프트를 깨부수고 안타를 쳤던 양반이었다는 소리였다.

그 시대의 대도 중 하나였던 후안 피에르 조차도 100득점을 넘긴 적이 단 3번에 불과하고, 스캇 포세드닉은 단 한 번, 호세 레예스는 4번이다. 무엇보다 1번타자의 경우, 홈런 갯수가 적고 다음 등장하는 타순의 히팅에 득점가능성이 달려있기 때문에 클린업보다 반드시 득점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치로의 삼진율이 17%를 넘어가고 출루율이 3~4%라는 극단적인 애덤 존스 과의 타자였다면 이치로 거품설이 큰 힘을 받겠지만, 전성기만을 포함하지 않고 전체 평균만 따져도 삼진률이 10%, 그것도 SwStr 수치가 평균 5% 대에서 논다. 그나마 이치로의 스탯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배드볼히터의 대표적인 5툴 리드오프였던 칼 크로포드 (외야수, 리드오프, 높은 수비기여도, 상대적으로 낮은 출루율, 빠른 발)조차도 이 수치는 안나온다 (SwStr = 9.3%, K = 14.9%, B = 5.3%).

또한 당시 외야수 골든글러브에 관해서는 지금처럼 포지션별로 각각 한명씩 준게 아니라 외야수 전원을 기준으로 주었기 때문에 보통 골든글러브를 따는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중견수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 이치로와 골글 경쟁을 벌이던 선수만 해도 토리 헌터, 카를로스 벨트란, 버논 웰스, 칼 크로포드, 코코 크리스프, 마이크 카메룬, 아론 로완드 등 셀 수 없이 많다.

MVP를 딴 시절의 세부기록을 보면, 이치로는 전체 타자들 중 Off 27.8 (36위), Def 7.8(41위), wRC+ 124(47위), BsR 5.1(3위)를 기록했다. 확실히 클래식 스탯에서 타격 3관왕(도루, 안타, 타율)을 기록한 것과 달리 세부스탯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리 주목받기 쉬운 성적은 아니다. 다만 이게 합쳐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fWAR는 6.0, bWAR는 7.7로, 알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상급 성적이다.[10] 이 때 당시 MVP 선정에 있어서 왠 생소한 동양인이 첫해에 타격 3관왕에 속한 팀은 116승 찍고 AL 준우승을 차지했고, 하이레버레지에서 타율 4할 때리고 득점권 OPS 1.0 넘기는 리드오프라는 측면에서 꽤나 생소한 스타일이었던데다, 당시 같은 팀 후보였던 브렛 분을 제외하고 이치로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한 나머지 선수들은 알다시피 소속팀이 디비전에서 떨어지든가 그 전에 광탈했다. 다만, 이 시기에는 MVP 선정시 팀 성적의 비중을 크게 두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팀이 꼴지해도 개인스탯으로 MVP받는 시기에는 분명 말이 많았을 수상이기는 하다.

현재까지도 팀 성적이 MVP 선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에, 팀 성적을 고려하는 부분에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많고 이전 수상자들에 불합리한 선정기준이라고 비판한 요소는 아직까지도 충분히 많다는 점은 사실이었다.[11] 하지만 2004년 bWAR, fWAR에서 모두 리그 1위, 안타 1위, 타율 1위라는 성적을 찍고도 팀이 폭망한지라 MVP 7위에 그친적이 있다. 안타 1위도 그냥 1위가 무려 역대 시즌안타 신기록 작성으로 전통적 관점, 세이버관점 어디를 보더라도 2020년대 현시대라면 만장일치이거나 그에 가까운 결과로 MVP수상이 확실시 되는 기준인데 , 정치적 올바름이 그 당시보다 더 팽배한 2020년대에 이런 임펙트를 보여준 선수가 최종후보 3인에도 못들어가는 7위, 1위표 하나 못 받은 결과가 나온다면 단순히 MVP강탈수준을 넘어 BBWAA에 인종차별 논란까지 일어나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즉 MVP를 선정할때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 세이버메트릭스를 염두에 두는 기자들이 많아진거지, 저 당시엔 머니볼이니 소리가 나와도 여전히 투승타타가 만개하던 시절이다.

결론적으로 2001년 이치로의 MVP 수상은 팀 성적이 어느정도 반영된 덕을 본 것이지만, 당시 아메리칸 리그 선수들 중 bWAR 4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수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동양인 임팩트 덕만 봤다기엔 이치로보다 선배인 노모 히데오도 토네이도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로 엄청났지만 MVP 투표에선 이름도 올리지 못했고, 훗날 bWAR 기준이든 fWAR 기준이든 5 이상의 WAR을 기록하며 인상깊은 시즌을 보냈던 동양인 선수들, 추신수이와쿠마 히사시,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등도 MVP 투표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더구나 이치로가 당시 WAR 1위가 아닌데 MVP를 받은게 부당하다고 하려면, 2004시즌에 WAR 1위를 찍고도 MVP를 받지 못한 것도 부당하다는 말이 된다. 2000년대부터 기자들이 WAR 스탯에 기반해서 투표했다고 가정해서 2001시즌에 MVP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2004시즌에는 MVP를 받았을테니 결국 MVP 1회로 쌤쌤이다.

세이버매트릭스가 대두되면서 이치로는 오히려 클래식 스탯에 가려진 수비기여도와 주루에 있어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이것이 공격에 가중치를 부과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았던 타격 수치를 보충하면서 수혜를 받은 축에 속한다. 분명 연간 기록만을 따졌을 때 이치로는 S급이라 부르기에 그 한계가 명확히 그어져 있던 타자이며, 안타갯수에 비해 영양가가 적다고 비판받을 여지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타자인 것은 확실하다. 말 그대로 장점을 극대화한 경우지 단점을 보완한 타자는 아니기 때문. 그러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기록한 비교적 높은 WAR는 이치로가 매년 S급 성적을 계속 남겨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주전으로 많은 경기를 서면서 호성적을 꾸준하게 남겼기 때문이고, 이런 누적스탯이 클래식만큼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 통산기록을 보았을 때가 돼서야 진가가 발휘되는, 오히려 대기만성형이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다. 실제로 단순히 공격력만 따지면 시즌만 본다면 추신수, 맷 카펜터, 헨리 라미레즈, 칼 크로포드, 자코비 엘스버리, 그래디 사이즈모어 등 이치로에 버금가거나 더 높은 타격을 시즌마다 기록한 테이블세터는 생각보다 꽤 많다. 하지만 알다시피 내구성에서 약점을 보이거나 잦은 기복 덕분에 많은 출장수로 연결된 경우가 적은 편. 즉, 특급 성적을 기록한 경우는 몇번 있되, 그것이 곧 높은 누적으로 이어진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위 문단에서는 이치로가 S급 성적 없이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지속적으로 거둬서 통산성적에서 빛을 발하는 타자인 것처럼 적혀있지만 이건 사실과 조금 다르다. 공격력(oWAR)만 따지자면 이치로보다 뛰어난 테이블세터가 2000년대~2010년대에 존재는 했고, 추신수 역시 2013 시즌 딱 1년만큼은 oWAR만 놓고 보면 이치로의 MVP 시즌인 01시즌과 몬스터 시즌인 04시즌의 oWAR보다 나았다.[12][13] 하지만 위에 언급된 선수들 모두 공격에만 전념하는 지명타자가 아니라 엄연히 외야수비를 하는 외야수들이므로 선수가 S급이냐 A급이냐 가치를 정할 때 수비력(dWAR)을 빼놓고 공격력만 놓고 평가할 수 없고,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된 소위 공격력 강한 테이블세터들 중 단 한 명도 이치로의 04시즌 bWAR (9.2)을 뛰어넘는 시즌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이치로의 04시즌 다음가는 시즌이었던 01시즌 bWAR(7.7)은 2011년 당시의 자코비 엘스버리가 bWAR 8.3을 기록하며 뛰어넘긴 했으나 8.3이라는 엘스버리의 높은 bWAR 역시 1.4라는 좋은 dWAR을 기록하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위에 언급된 테이블세터들은 특급 성적을 거둔 횟수나 최고 전성기 시즌의 임팩트 모두 이치로에 비해 아래라는 것이다.

WAR를 기준으로 이치로와 대등 혹은 더 높은 기록을 가진 리드오프는 웨이드 보그스, 폴 몰리터, 케니 로프턴, 피트 로즈, 팀 레인스, 크레이그 비지오,그리고 이쪽계열 끝판왕인 리키 헨더슨 정도가 다다.[14] 이들의 공통점은 이치로만큼 혹은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커리어 하이에 준하는 시즌 기록을 좀 더 오랫동안 남기거나 만만찮은 누적을 쌓은 점이 특징이다.[15]자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동안에 신인왕+MVP+골글+실슬을 싹슬이한 2001년과 단일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작성한 2004년을 제외하면 다른 MVP 컨텐더들에 비해 타격스탯이 떨어지는 편이라 거품이라는 평가가 꽤 있었지만 누적을 꾸준히 쌓으면서 기록한 초창기 10년동안의 OPS가 리드오프치고는 꽤 높은 0.806이다.

그리고 이치로가 워낙 현역 생활을 오래 유지해서 간과되는 사실이 있는데, 애초에 이치로는 만 27세라는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MLB에 입성한 늦깎이 메이저리거라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치로를 누적빨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오히려 누적 기록으로 평가할 때 가장 불리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적인 에이징 커브는 20대 중반에 정점을 찍고[16] 20대 후반이면 하락세가 시작되는데, 이치로는 무려 10년 동안 올스타에 뽑히는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소위 말하는 이치로의 아름다운 10년 마지막 시즌인 2010시즌에 그의 나이는 이미 36세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치로가 처음부터 미국에서 뛸 수 있었다면 훨씬 대단한 통산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20세 약관의 나이에 NPB에서 타율 .385와 단일시즌 최다안타인 210안타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고 MVP를 탔으며, 도저히 동기부여를 할 수 없어 매너리즘에 빠졌다던 시기에도 타율 .340 이하를 기록해본 적이 없고, NPB 마지막 시즌에 20세 시즌과 맞먹는 .387 .460 .539을 기록하고 MLB에 진출해 별 적응기 없이 첫 달 .336 둘째 달 .379를 기록한 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신인왕,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싹쓸이했다. 실제로 이치로를 올타임 우익수 5위에 선정한 폭스스포츠는 이치로가 MLB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피트 로즈의 안타 기록을 넘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9위에 선정한 ESPN역시 이치로가 27세에 커리어를 시작하고도 3천 안타 타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17] 역대 6위에 선정한 FANSIDED 역시 일본 시절 커리어를 언급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조 포스난스키도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 톱 100을 뽑는 자리에서 이치로를 100위로 선정하며 동일한 취지로 말했다.#[18] 또한 MLB와 NBP는 각 리그의 수준차이, 그리고 시즌경기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더하는 것은 무리라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빌 제임스가 고안한 유사도 점수(Similarity Score)로 계산해보면 오히려 이치로가 실제 일본에서 기록한 안타수보다 더 많은 수의 안타를 만 27세이전에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이치로가 MLB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피트로즈의 통산 안타도 가볍게 넘긴다는 말이며 이는 이치로정도의 안타생산능력이면 미국과 일본의 수준차이로 인한 안타의 수 차이보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경기수차이로 인한 안타의 수가 더 크다는 계산이다.#

4. 오해?

독고다이 스타일의 성향상 한 번 팀이 되면 팀을 중시하는 미국의 스타일과는 매우 안 맞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07년부터 꾸준히 나오는 이치로와 팀메이트간의 불화설이 대표적인데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뉴욕 메츠로 이적한 J.J 푸츠가 이적 전에 시애틀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누군지는 말 안 하겠는데 매리너스 안에 팀웍을 망치는 암적인 존재가 한 놈 있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99.9%쯤 이치로 얘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후 팀 리더격인 아드리안 벨트레가 인터뷰를 통해서 이치로를 돌려서 깠다. # #[19]하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라울 이바녜즈는 이치로를 감싸고 두둔했으며 실제 팀 동료들이 이치로와 잘 지내는 사진과 이야기 등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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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 주니어와의 한 때.

이전에는 팀에서 겉돌았던 이치로였지만, 주니어 덕에 팀원들과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피는 이치로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이치로가 고교야구에서 뛰던 시절부터 그리피의 팬이었다고 하며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던 1995년 오프시즌엔 미국여행을 가서 마이클 조던, 켄 그리피 부자와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구입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져지는 그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하나라고 한다. 2009년 그리피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을땐 '그리피는 언제나 나의 영웅이었다. 꿈이 실현된거 같다'라고 밝히며 누구보다 그리피의 복귀를 환영했다. 기사

개인 기록에만 집착하고 팀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치로가 몸 담아왔던 팀들의 전력이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음에도 우승 경력이 오릭스 시절에만 리그 우승은 단 2번, 일본시리즈 우승은 딱 한 번이었음은 물론, 팀이 좋은 성적을 남긴 숫자도 그의 능력과 성적을 감안했을 때 적다는 점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는 일부 야구팬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치로 이전에는 상위권 팀이긴 했으나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고[20], 시애틀은 명단장 팻 길릭의 해임 이후 빌 버베이시 단장 체제로 바뀌면서 노화징후가 보이던 팀 체질 개선에 실패해서 팀 성적이 대폭락한 케이스이다. 그 이전 2001-2003시즌의 시애틀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강자였다. 선수 혼자서 팀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수는 야구판에서는 있을 수 없다. 배리 본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팀원들이 부진할때는 PO진출에 실패했던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이치로의 시애틀시절 포스트시즌 성적이 "10경기 타출장 0.421/0.535/0.474 OPS 1.009 3도루"일 정도로 좋았으며 포스트시즌 시애틀 타선에서 가장 활약해준 선수 중 한명이었다. 팀성적이 좋을 때는 아무 이야기도 없다가도 팀성적이 나쁘면 이치로가 비판받는데, 이는 과거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겪던 현상으로 팀의 대표선수가 나쁜 성적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현상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치로는 시애틀에 오래동안 있으면서 2001년 빼고 포스트시즌을 나가본적이 없다. 오히려 팀운 때문에 더 불행한 케이스고 커리어상 그 적은 포스트시즌을 나갔을때도 잘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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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압도적인 이동거리.

만약 이치로가 롸동자마냥 개인 기록에 미쳐있는 양반이라면 2003년 계약 종료시점이나 2007년 FA로 풀리는 때에 타자친화 구장에 이동거리도 훨씬 짦은 양키스나 보스턴같은 위닝팀으로, 그것도 거액의 돈을 받고 옮겼을 것이다. 사실 시애틀의 경우 무지막지한 이동거리 문제 때문에 환율 문제가 있는 토론토와 함께 선수들이 오길 꺼리는 대표적인 구단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치로는 쏟아지는 러브콜을 거부하고 비교적 상당히 저렴한 금액의 돈을 받고 미래가 없었던 시애틀에 남았다. 출루를 해도 후속 타자들이 말아먹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라 득점에서 꽤나 손해보는 등, 팀에 불만을 가지고 강하게 어필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경기 외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21]

5. 일본 내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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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와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 등장 이전까지는 일본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와 비견되던 선수는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등 고대 요미우리 선수들이 끝이다.

물론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일본 내에서 고대의 전설적인 선수들의 위상이나 업적이 워낙 큰 데다가 NPB를 이끌고 발전시킨 위대한 선배들에 대한 리스펙트의 차원에서 같은 비교선상에 오르는거지 냉정하고 단순하게 야구선수로서의 기량과 클래스를 가지고 평가하면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적인 커리어를 만든 이치로가 저 중에서 가장 앞줄에 오는게 마땅하다.그래서 오 사다하루같은 과거의 레전드 선수들의 영향력이 비교적 적고 각종 야구 이론과 데이터에 빠삭하며 해외리그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하는 젊은 팬들은 당연히 이치로를 가장 높게 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22]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시절에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 것으로 알고 있으나, NPB에서도 이치로는 최고의 선수였다. 일단 NPB 시절 기준으로 공-수-주가 모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데뷔 3년차부터 이치로가 NPB에 남긴 성적과 기록들은 대단했다. 당연히 수비와 주루는 압도적이었고, 최상급의 컨택과 더불어 메이저 진출 이후 그의 약점이라고 칭해지던 낮은 IsoD와 장타력도 일본 시절에는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그는 1990년대 리그 최고의 선수로 당대 리그를 지배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23][24]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 이전 아시아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로 불리는 것치고는 일본 내 평가가 다소 박했는데, 이는 NPB에서 이치로가 그리 오래 뛰지 않았을 뿐더러 NPB 기준으로 이치로 정도의 순수 임팩트를 기록한 선수가 역사적으로 전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NPB 내 임팩트만 따져도 이치로는 오 사다하루 이후 가장 거대한 인상을 남긴 선수 중 하나이다.

게다가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존재 역시 이치로가 당대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지 못한 원인이다. 당시 일본 야구계는 이치로와 마쓰이 둘이 양분하고 있었다.[25] 먼저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 야구팬의 거대한 팬베이스를 등에 업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슈퍼스타로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업고 있었다. 이에 비해 이치로의 오릭스 블루웨이브는 그 팬덤의 규모에 있어서 자이언츠에 비할 구단이 못되었다. 이로써 일본 전역의 자이언츠 팬들은 자신들의 슈퍼스타인 마쓰이가 이치로에 가려지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고 라이벌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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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공식 라이센스로 발매된 베이스볼 카드.

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에도 스타일이 달라서 여전히 인기를 앙분했다. 먼저 이치로는 발이 빠르고 안타를 많이 치는 수비가 뛰어난 교타자라면 마쓰이는 장타력을 가지고 홈런을 노리는 중장거리형 타자 였다. 특히 2004년에 이 비교가 극에 달했는데 이치로가 메이저 최다 안타를 치고 마쓰이가 30홈런을 넘기며 아시아인 최다 홈런을 치자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안타 vs 아시아인 최다 홈런 구도로 라이벌 의식이 형성 되었다. 표면 성적으로는 당연히 이치로가 우위였지만 서로 일본 시절과 똑같이 이치로는 시애틀 매리너스라는 비교적 인지도가 적은팀에서 뛰고 있는데 반해 마쓰이 히데키는 세계 최고의 야구팀인 뉴욕 양키스의 4번타자였다. 거기다 이치로는 팀운이 없어서 포스트시즌에 나갈 기회가 매우 적었지만 마쓰이는 상당히 많았었고 마쓰이가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26] 특히 마쓰이가 2004년 포스트시즌에서 그야말로 씹어먹는 모습으로 MLB 신기록을 몆개씩 작성했을때 제일 치열했고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2009년에는 월드시리즈에서의 대활약으로 MVP까지 수상하자 다시 논쟁이 수면에 떠올랐다. 물론 평범한 일본 야구팬들은 2명의 자국 선수가 모두 2년 연속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만나 같은 외야에서 수비를 보고 2년 연속 MVP 투표에 같이 등장한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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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히데키와 이치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서.

다만 두 선수의 커리어 모두 마무리된 현재에는 마쓰이보다 이치로가 명백하게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일본 선수 순위 평가에서는 마쓰이 히데키가 역대 TOP10의 문지기 정도라면 이치로는 TOP3 안에 무조건 들어간다.[28]

사실 같은 일본인이고 위에서도 언급된대로 팬들의 호들갑 때문에 비교되었던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전설이라기에는 한두끗 모자란 명전 후보급인 마쓰이와 아예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명실상부한 레전드인 이치로 사이에는 애초부터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29]


[1] 어지간한 배드볼 히터도 순출루율이 5푼 언저리는 기본 깔고 가는 반면, 이치로는 그보다도 적을 때가 있었다. 162게임을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전 경기를 출장하고도 30볼넷도 못 찍은 때도 있었으니 어찌 보면 '야구 게임에서나 볼 법한 스탯'을 찍은 셈이다.[2] 참고로 사진은 그나마 멀쩡할 때 찍힌 것으로, 코치맨과 손더스는 2할 1푼, 아담 무어는 1할 9푼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3] 제이 뷰너, 켄 그리피, 에드가 마르티네즈, 존 올러루드, 알렉스 로드리게즈, 브렛 분.[4] 2위로는 푸홀스, 3위로는 저스틴 벌렌더가 선정되었다.[5] 9년간 7개의 골글을 쓸어담았다.[6] 11시즌에 골글 수상에 실패한 이유는 노쇠화로 인한 수비수치 하락도 있었겠지만 경기장 라이트를 뒤로하고 떨어지는 공에 눈이 너무 부셔서 일반적인 플라이인데도 놓쳐 끝내기 실책을 범한것이 가장 컸다.[7] 40도루를 자랑하던 시절에도 도루실패수가 무려 20개, 즉 성공률이 딱 2/3에 수렴했다. 보통 도루 성공률이 70%~75% 정도는 되어야 손해가 아니라고 보는 편. 그리고 인조잔디 구장에서 거구의 몸을 이끌고 허슬 플레이를 많이 하다보니 전성기 기준으로는 준수했던 주력과 평타는 치던 수비력이 일반적인 에이징 커브에 비해 급격하게 하락했다.[8] 차이점으로는, UZR은 수비범위를 구획해서 가중치를 각각 다르게 두고 보다 넓은 수비범위 안에서 수비성공을 기록하는 야수에게 가중치를 더 많이 부과하며 보다 여러시즌의 기록을 기준으로 삼으며, DRS는 단 한 시즌의 기록만을 가지고 상태 타자의 타구난이도를 중점으로 수치를 산출한다[9] 이 점을 라이트 유저들이 이해를 잘 못하는데, 좀 더 쉽게 생각해보자. 1루에서 2루를, 혹은 2루에서 3루를 훔치는 도루가 아무리 많다고 쳐도, 선수가 1루에 있을경우 상대 타자가 단타를 쳤을때 1루 -> 2루로 진루하는 것과 3루까지 진루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카를로스 벨트란, 체이스 어틀리 등의 타자들이 다른 테이블 세터와 비교해 도루갯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예상외로 높은 베이스러닝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추가진루에 있어서 성공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멀리 안가고, 당장 크리스 브라이언트처럼 도루를 잘 하지 않는 타자가 2016년 메이저리그 결승에서 보여준 갖가지 홈 질주를 생각해보라. 이들이 발이 느려서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근 야구의 특성에 맞춰서 쓸데없는 도루시도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진루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10] 팬그래프 기준으로는 병살방지와 추가진루에 관한 세이버 수치를 2002년부터 추가했기에 여기서는 누락되어있고, 레퍼런스에서는 1950년도 기록부터 추려낸 데이터를 통해 따로 측정한 바 있기에 격차가 조금 크게 난다[11] 블리치 리포트에서 top 10 most undeserving mvps에 4위로 2001년 이치로의 MVP를 선정한바 있다.[12] 이 점 때문에 추신수 악성팬덤의 전성기였던 2013년~2015년쯤까지는 이치로보다 추신수의 공격력이 좋다느니, 이치로는 내야안타성 타구만 생산해서 주자를 죽이는 이기적인 타자라 안정적으로 볼넷 골라내고 장타 때리는 추신수가 실질적인 가치는 더 높다는 괴상한 논리까지 등장했었다. 당연히 이는 주루의 공격 기여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논리이다. 정작 추신수의 평균 oWAR을 보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2008시즌부터 (코로나로 단축된 2020시즌을 제외하고) 2019시즌까지 12시즌동안 1년에 3.4를 기록중이다. 반면 이치로의 2001년부터 2012년까지의 12시즌간 oWAR 평균을 내보면 1년에 4.0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나이를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격력만 따져도 추신수가 이치로보다 낫다고 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이치로가 강점을 보이는 주루 스탯이 oWAR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니 이치로의 공격력도 부풀려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애초에 주루가 공격력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히 옳으니 oWAR에도 반영되는 것이다. 타자의 공격력이 오로지 타석에서만 발휘된다는 것은 매우 구시대적인 생각이다.[13] 사실 이치로를 저평가하는 추신수 악성팬덤의 내로남불이야 유명하긴 했다. OPS 히터인 추신수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면 세이버매트릭스 스탯을 보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이치로의 가치가 세이버매트릭스에 의해 올라가니 추신수 우위론의 근거로 클래식 스탯인 홈런을 들이민다. 추신수가 텍사스에서 먹튀 행적을 남긴 건 확실한 사실인데 2019 시즌 oWAR 3.0에 bWAR 1.5를 기록한 추신수의 성적은 36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훌륭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작 이치로는 36세였던 2010시즌에 oWAR 3.8에 bWAR 3.7을 기록하고 안타왕을 먹으면서 아름다운 10년의 마침표를 찍었다. 결론적으로 타격 능력으로만 한정하면 추신수가 이치로보다 우위라고 할 수는 있으나, 야구선수로서의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하면 추신수와 이치로는 아예 차원이 다른 선수인데 억지로 비교하려 하니 잣대가 계속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다.[14] 케니 로프턴과 승부조작으로 흑역사가 된 피트 로즈를 제외하면 모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15] 물론 후술하겠지만 이치로는 애초에 메이저리그에 늦게 진출했기 때문에 누적 측면에서 타 선수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16] 기존에는 평균 27-28세 정도를 정점으로 보았지만 스테로이드 시대가 끝난 이후 금지약물로 노쇠화를 막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하락이 시작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17] 실제 3천 안타 달성 전인 2016년 6월에 쓰인 기사.[18] 참고로 포스난스키에게 피트 로즈는 이치로가 자신의 기록을 깨지 못할 이유 4342가지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4342는 포스트 시즌을 포함한 로즈의 통산 안타 수이다.[19] 벨트레의 주장에는 다소 무리수가 껴있는지라 앞에 링크 걸린 블로그의 주인이 직접 팩트체크를 하기도 했다. 팩트체크[20] 애초에 그 일본시리즈 우승조차도 이치로의 활약이 큰 역할을 했으며 이에 일본시리즈 우수선수상도 수상한 바있다.[21] 초기시절 불륜 관련 사생활 건수들을 제외하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에서는 별 트러블을 일으킨 적은 없다.[22] 오타니가 21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만장일치 MVP를 수상했을 때도 22시즌에서 늦으면 23시즌 초반까지는 이치로의 압도적인 누적을 근거로 오타니보다 이치로를 더 높게 치는 펑가가 적지 않았을 정도다. 물론 이후 오타니가 10승 40홈런, 50홈런 50도루, 아시아 최초 홈런왕 및 2년연속 홈런왕 수상같은 각종 화려한 기록을 쌓아가면서 MLB 사상최초 만장일치 MVP 3회라는 압도적인 커리어를 달성하면서 더 이상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게 되기는 했다. 이치로도 명예의 전당 첫턴 입성이 확실시되는 레전드이고 경력이 긴 만큼 아직까지 누적 WAR같은 수치는 이치로가 앞서지만 현재의 오타니는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한 시대의 지배자이며 잘만 하면 일본 야구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자리조차도 진지하게 꿈꿔볼만한 위치에 있는 선수이기에 이치로의 누적으로도 상쇄하기 힘들 정도로 클래스 차이가 있다.더불어 그 누적WAR도 현재 오타니의 페이스를 봐서는 빠르면 2026시즌, 아무리 늦어도 2027이나 2028시즌에는 오타니가 추월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횡이다.[23] 1990년대 이치로가 기록한 성적은 2022년 이정후와 비슷하다. 이정후는 투고타저에서 했다는 점에서 타격 한정으로 리그 내에서의 지배력이 더 높기는 했지만, 짚어야 할 점은 이치로는 그 성적을 7년 내내 기록했다. 거기다 KBO 기준으로 중상위권 정도의 주루, 상위권 정도의 수비를 기록한 이정후와 달리 이치로는 주루, 수비 모두 NPB 올타임 최고는 물론, 동세대 메이저리거 내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일본 시절 이치로의 통산타율은 .353이고 wRC+가 161이다. 이 wRC+는 대충 양준혁 통산 wRC+와 비슷하다. 즉 일본시절 이치로는 대충 양준혁급 타격 실력에 박해민급 수비 주루+나성범급 어깨를 가진 완전체 선수였던 셈이다.[24] 이정후도 엄연히 말해서 2022시즌은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나 나머지 성적들로 7년을 뭉뚱 그리면 이치로에게 크게 밀리며 NPB가 KBO보다 확연한 상위리그라는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당장 이정후의 메이저 데뷔시즌과 이치로의 메이저 데뷔시즌 성적을 보면 이정후가 시기상 20년 이후에 데뷔해 그때와 지금의 리그 수준차가 난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표 차이가 너무 크다. 애초에 비슷한 기간동안 KBO, NPB도 발전했으며, 엄밀히 말해서 이정후는 2022년에 압도적이었지 2023년 들어서는 커리어 첫 슬럼프를 겪으며 성적이 크게 떨어져버렸다.[25]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프로야구 시절 이치로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거포형 타자인 마쓰이가 이치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26] 물론 이치로도 기회가 적어서 그렇지 통산 포시 성적을 보면 좋다. 마쓰이처럼 대폭격하지는 못했지만.[27] 2004, 2005 시즌에 같이 MVP 후보 명단에 들어 경쟁을 펼쳤다.[28] 명실상부 일본 야구 GOAT인 오타니 쇼헤이를 제외하면 오 사다하루가 이치로와 경쟁하며 그 뒤로 부동의 4위 자리를 나가시마 시게오가 지키고 있다. 그리고 5위 이후로는 사와무라 에이지, 노무라 카츠야, 오치아이 히로미츠 정도가 이어진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전설적인 족적을 남긴 이치로, 오타니와 달리 나머지는 모두 NPB에서만 뛴 레전드들이고 20세기에는 MLB-NPB 격차가 현재보다도 훨씬 컸으므로 객관적으로 이 둘이 NPB 레전드들보다 우위로 평가받는다. 같은 논리로 마쓰이는 물론 다르빗슈 유, 구로다 히로키, 다나카 마사히로 등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투수들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다만 세계 2위 프로야구인 자국리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다소 보수적이며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일본인들은 일본인 올타임 랭킹에서 자국리그인 NPB에서의 성적에 비중을 더욱 높게 두는 경향이 있는 편이다.[29] 위에서 말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안타 vs 아시아인 최다 홈런 기록을 통힐 라이벌 구도도 사실 일본이나 아시아인 입장에서나 의미가 있는거지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어느 쪽의 기록이 더 가치가 높은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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