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애런의 주요 수훈 /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행크 애런 Hank Aaron | ||||||||||||||||||||||||||||||||||||||||||||||||||||||||||||||||||||||||||||||||||||||||||||||
포지션 | 외야수 | |||||||||||||||||||||||||||||||||||||||||||||||||||||||||||||||||||||||||||||||||||||||||||||||
득표수 | 1,156,782 | }}} |
올스타 | ||||||||||||||||||||||||
1955 | 1956 | 1957 | 1958 | 1959[1차] | 1959[2차] | 1960[1차] | 1960[2차] | 1961[1차] | 1961[2차] | 1962[1차] | 1962[2차] | 1963 | 1964 |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1975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
1957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13274f>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영구결번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데일 머피 | 바비 콕스 | 치퍼 존스 | 워렌 스판 | |
앤드루 존스 | 존 스몰츠 | 그렉 매덕스 | 필 니크로 | |
<nopad> | ||||
에디 매튜스 | 재키 로빈슨 | 행크 애런 | 톰 글래빈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12284b> | 밀워키 브루어스 영구결번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ccac00> No.1 | No.4 | No.19 |
<rowcolor=#12284b> 버드 셀릭 | 폴 몰리터 | 로빈 욘트 | |
<rowcolor=#ccac00> No.34 | No.42 | No.44 | |
<rowcolor=#12284b> 롤리 핑거스 | 재키 로빈슨 | 행크 애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13274f> | 브레이브스 명예의 전당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 워렌 스판 | 필 니크로 | 에디 매튜스 | 행크 애런 | 테드 터너 |
데일 머피 | 어니 존슨 시니어 | 자니 세인 | 빌 바솔로메이 | 델 크랜달 | |
피트 반 위렌 | 키드 니콜스 | 토미 홈즈 | 스킵 카레이 | 폴 스나이더 | |
허먼 롱 | 빌 루카스 | 랄프 가 | 데이비드 저스티스 | 그렉 매덕스 | |
톰 글래빈 | 바비 콕스 | 존 스몰츠 | 치퍼 존스 | 하비 로페즈 | |
래빗 마란빌 | 데이브 퍼슬리 | 돈 서튼 | 앤드루 존스 | 존 슈어홀츠 | |
팀 허드슨 | 조 심슨 | 휴 더피 | 테리 펜들턴 | 조 애드콕 | |
레오 마조니 | 조 토레 | 리코 카티 | 프레드 테니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12284b> |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 명예의 거리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 행크 애런 | 롤리 핑거스 | 폴 몰리터 | 로빈 욘트 | 세실 쿠퍼 |
버드 셀릭 | 해리 달튼 | 밥 우에커 | 짐 갠트너 | 고먼 토마스 | |
하비 킨 | 돈 머니 | 에디 매튜스 | 존 퀸 | 워렌 스판 | |
루 버데트 | 자니 로건 | 테드 히게라 | 조 애드콕 | 제프 젠킨스 | |
프린스 필더 | 벤 시츠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bordercolor=#12284b> | 밀워키 브루어스 명예의 벽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 행크 애런 | 제리 어거스틴 | 살 반도 | 크리스 보시오 | 자니 브릭스 |
제로미 버니츠 | 마이크 콜드웰 | 빌 카스트로 | 제프 시릴로 | 짐 콜본 | |
세실 쿠퍼 | 크레이그 카운셀 | 척 크림 | 롭 디어 | 칼 엘드레드 | |
마이크 페터스 | 롤리 핑거스 | 짐 갠트너 | 무스 하스 | 빌 홀 | |
대럴 해밀턴 | 테디 히게라 | 존 자하 | 제프 젠킨스 | 하비 킨 | |
식스토 레즈카노 | 팻 리스태치 | 마크 로레타 | 데이브 메이 | 밥 맥클루어 | |
폴 몰리터 | 돈 머니 | 찰리 무어 | 하이메 나바로 | 데이브 닐슨 | |
벤 오글리비 | 댄 플리잭 | 대럴 포터 | 켄 샌더스 | 조지 스캇 | |
케빈 세이처 | 버드 셀릭 | 리치 섹슨 | 벤 시츠 | 테드 시몬스 | |
짐 슬래튼 | B.J. 서호프 | 돈 서튼 | 고먼 토마스 | 빌 트래버스 | |
밥 우에커 | 호세 발렌틴 | 그렉 본 | 페르난도 비냐 | 피트 부코비치 | |
빌 웨그먼 | 밥 위크먼 | 로빈 욘트 | 빌 쇼로더 | 코리 하트 | |
해리 달튼 | 프린스 필더 | 더그 멜빈 | J.J. 하디 | 트레버 호프먼 | |
리키 윅스 | 요바니 가야르도 | 카를로스 고메즈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 라이언 브론 | |
조나단 루크로이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행크 애런 | |
헌액 연도 | 1982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97.8% (1회) |
MLB 보유 기록 | |
통산 최다 장타 | 1,447타[9] |
통산 최다 타점 | 2,297타점 |
통산 최다 총루타 | 6,856루타 |
통산 최다 올스타 선정 | 25회 |
195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돈 뉴컴 (브루클린 다저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 |
1958년 ~ 196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우익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알 칼라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윌리 메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바다 핀슨 (신시내티 레즈) 로베르토 클레멘테 (피츠버그 파이리츠) |
195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리치 애시번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5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리치 애시번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딕 그로트 (피츠버그 파이리츠) |
195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듀크 스나이더 (브루클린 다저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 |
196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윌리 메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윌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윌리 메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66년 ~ 196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윌리 메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 행크 애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윌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5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 |
196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어니 뱅크스 (시카고 컵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올랜도 세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6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토미 데이비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행크 애런 (밀워키 브레이브스) | → | 켄 보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6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 ||||
데런 존슨 (신시내티 레즈) | → | 행크 애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올랜도 세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밀워키 브레이브스 등번호 5번 | ||||
샘 제스로 (1950~1952) | → | 행크 애런 (1954) | → | 펠릭스 만틸라 (1956~1958) |
밀워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44번 | ||||
버즈 클락슨 (1952) | → | 행크 애런 (1955~1974) | → | 영구결번 |
밀워키 브루어스 등번호 44번 | ||||
고먼 토마스 (1973~1974) | → | 행크 애런 (1975~1976) | → | 영구결번 |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No.44 | 밀워키 브루어스 No.44 | |
<colcolor=#ffffff> | ||
<colbgcolor=#13274f> 출생 | 1934년 2월 5일 | |
앨라배마 주 모빌 | ||
사망 | 2021년 1월 22일 (향년 86세) | |
조지아 주 애틀랜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앨런 인스티튜트 | |
신체 | 183cm / 81kg | |
포지션 | 우익수[11]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52년 자유계약 (MLN) | |
소속팀 | 밀워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54~1974)[12] 밀워키 브루어스 (1975~1976) | |
가족 | 동생 토미 애런(1939~1984) | |
SNS | ||
종교 | 가톨릭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야구인.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팀 프랜차이즈의 가장 많은 타격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인 타자이다.
MLB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홈런인 통산 755홈런[13]과 역사상 가장 많은 타점인 2,297타점을 기록한 선수이며, 야구 전체 역사상 13명 뿐인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자의 일원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23 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3,298경기에 출장해 13,941타석 12,364타수 3,771안타 755홈런 624 2루타 2,297타점 2,174득점 6,856루타 240도루 1,402BB/1,383K .305/.374/.555 OPS .929 OPS+ 155 wOBA .403 wRC+ 153 bWAR 143.1 fWAR 136.3이라는 성적을 남겼다.[14]
2. 선수 시절
어린 시절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는데, 애런이 야구를 하게 된 동기는 다름아닌 열악했던 가정 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앨라배마 주의 모빌 출신이었으며, 어찌나 집안이 극빈했는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하다못해 내부 욕실도 갖춰지지 않았던 정도였다.애런은 15살 때, 브루클린 다저스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했지만 계약 제의를 받지 못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독립 니그로 리그 팀에서 활동했다.
당시까지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던 탓에 애런은 한동안 우타자이면서도, 왼손이 오른손 위에 자리한 잘못된 방식으로 타격을 하다가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를 만나서야 교정할 수 있었는데,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인 빌 제임스는 애런의 놀라운 손목 힘이 다름아닌 이런 비정상적인 그립으로 인해 단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15]
니그로 리그 소속의 인디애나폴리스 클라운즈에서 활동하던 애런에게 접촉한 팀은 뉴욕 자이언츠와 보스턴 브레이브스였는데, 브레이브스가 더 많은 연봉을 제안하자 그는 브레이브스로 향하는 것을 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자이언츠는 윌리 메이스-윌리 맥코비-행크 애런이라는 꿈의 클린업 트리오를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게 된다. 한편 애런이 떠난 이후, 흑인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이 가능해지면서 니그로 리그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졌는데, 덕분에 그는 마지막 현역 니그로리거로 기록되었다.
1952년, 브레이브스에 입단하고 난 뒤 그동안 잘못된 방법으로 하던 타격을 교정한 애런은 마이너 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었지만, 끊임없는 인종차별로 인해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애런의 형이 그런 그를 다독여주었으며, 브레이브스 역시 애런을 전적으로 서포트해주었다.
1954년, 드디어 애런은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에 애런의 가족들은 그를 헨리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브레이브스에서 그를 홍보하기 위해 행크라는 별명을 제안하게 되고, 곧 애런은 해머링 행크(Hammerin' Hank)[16]와 상대 투수들이 붙여준 배드 헨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브레이브스에서 1954년부터 뛰면서 최고의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화려하다기보다는[17] 꾸준한 타입이고, 연고지였던 밀워키가 소도시라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적은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명예의 전당급 이상의 커리어를 갖췄다 평가받는 치퍼 존스, 에디 매튜스, 데일 머피와도 진정 넘사벽의 격차가 있을 정도로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위대한 타자임에는 분명하다. 브레이브스 레전드들에 대해 실시한 조지아 주 내 팬들의 인기투표에서도 치퍼를 넘어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행크 애런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74년 베이브 루스의 714호 통산 기록을 깨뜨릴 때이다. 당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너같은 검둥이가 위대하신 루스님의 기록을 깬다면 너와 네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릴거야"따위의 협박 편지를 퍼붓는 상황이었다.[18] 이 때문에 베이브 루스의 아내인 클레어 매릿 루스(1897~1976)는 "남편은 이 기록이 깨지는 것을 바랄 것"이라며 애런을 응원할 정도였다. 행크 애런은 기어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뜨리면서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신화로 남았다. 참고로 이 당시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 때 백인 관중 2명이 난입하는데, 애런의 가족들은 혹시 애런을 살해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난입한 백인 관중 2명은 백인 우월주의자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홈런 신기록에 흥분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해 난입한 야빠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려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영상을 보면 에런은 기쁨을 감추며 묵묵히 베이스를 돌고 있는데 난입한 백인 청년들이 대신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3루를 도는 애런을 따라다니면서 축하해주기도 했다.
1974년을 끝으로 브레이브스를 떠났다. 이 때는 이미 브레이브스가 밀워키에서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겼을 때인데, 자신의 젊은 날을 대부분 보냈던 밀워키에 새로 자리한 밀워키 브루어스로 가서[19] 지명타자로 두 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참고로 이 때 밀워키의 구단주가 나중에 메이저리그 사무국 커미셔너로 이름을 날린 버드 셀릭으로, 행크 애런의 오랜 팬이었다고.
통산 755홈런으로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자리를 지킨 타자라서 '스윙이 크고 삼진이 많은' 전형적인 거포 타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단순한 거포가 아니다. 체구도 홈런왕 치고는 꽤 작은 편인 183cm-83kg[20]에 불과했으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손목 힘에서 나오는 빠른 스윙[21]으로 장타를 생산한 타입. 게다가 홈런타자 중에서 삼진도 굉장히 적게 당한 선수로, 행크 애런은 22시즌 동안 총 13,941번의 타석에 들어왔으나 삼진은 고작 1,383개, 즉 10타석당 한 번 정도 비율의 삼진밖에 당하지 않았다. 홈런-삼진 비율 또한 1.83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10걸 중 1위[22], 500홈런 이상의 타자들로 범위를 넓혀도 테드 윌리엄스와 멜 오트에 이은 3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애런은 단순한 홈런타자가 아니라 정교함과 선구안, 파워에 나름의 스피드까지 갖춘 완성형 타자에 가까웠다. KBO 리그로 비유하자면, 구자욱과 엇비슷한 비율스탯과 최정 수준의 홈런 생산력을 모두 갖춘 타자가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극악의 투고타저를 뚫고 기량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통산 타율이 0.305로 3할이 넘는데, 22년 선수 생활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 안타 개수도 3771개(메이저리그 통산 안타 3위[23])로 500홈런과 3,000안타를 기록한 역사상 오직 7명의 선수 중의 하나다. 다른 여섯 명은 윌리 메이스,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버트 푸홀스, 미겔 카브레라. 그리고 이 중 약쟁이를 제외하면 애런 본인을 포함해 메이스, 푸홀스, 머레이, 미기까지 다섯 뿐이다.[24][25] 그리고 700홈런과 3,500안타를 동시에 해낸 유일무이한 선수이기도 하다.
아울러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최다 타점 기록은 아직도 애런의 몫이다. 2,297타점으로 1위이다. 2위는 알버트 푸홀스의 기록으로 2,214 타점이다.[26] 또한 행크 에런이 뛴 시절은 리그 평균 자책점이 2점대를 찍기도 한, 라이브볼 시대 이후 메이저리그 사상 최악의 투고타저의 시기라는 점에서 그의 기록은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27]
통산 득점 기록 역시 2,174득점으로 베이브 루스와 함께 공동 4위인데, 타점과 득점 모두 2천점을 넘는 2000-2000의 기록 보유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직까지 행크 애런, 베이브 루스, 알렉스 로드리게스[28] 단 세 사람 뿐이다. 거기다가 3,000안타까지 포함하여 3000-2000-2000을 한 선수는 행크 에런과 알렉스 로드리게스 두 사람뿐이다.[29]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30]
또한 통산 경기 출장 기록도 3,298경기로 메이저리그 통산 3위이다.[31]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천 경기 출장은 매우 명예로운 기록으로 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행크 애런을 포함하여 피트 로즈, 칼 야스트렘스키, 리키 헨더슨, 타이 콥, 에디 머레이, 스탠 뮤지얼, 알버트 푸홀스, 칼 립켄 주니어 이렇게 단 9명 뿐이다.[32]
그밖에 통산 최다 루타 1위(6,856루타), 통산 순수 장타 수 1위[33](1,477개) 역시 메이저리그 통산 1위 기록. 통산 고의사구는 293개로 3위다.[34]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달성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전형적인 거포 타입은 아니라서 한 시즌 50홈런을 친 시즌은 단 한 번도 없으며[35], 홈런왕에 오른 시즌도 겨우(?) 4번이었다.[36] 하지만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7년 연속 150안타, 20년 연속 20홈런, 23년 연속 두 자리수 홈런. 특히 20번 20홈런과 15번 30홈런을 친 것은 각각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37] 발도 느린것도 아니여서 통산 240개나 되는 도루를 했다. 행크 애런의 도루 성공률은 76.677%로서, 윌리 메이스의 도루 성공률인 76.644%보다도 높다. 20-20을 5번했고 30-30도 한번 기록했다. 말그대로 호타준족이었다.
아론이 얼마나 꾸준한 타자였는지는 WAR로 보면 더 쉽게 증명 가능한데, 데뷔 3년차였던 1956년부터 무려 14년 연속 fWAR이 6.8을 넘겼다.
흑인 야구선수들에 대해 논할 때 약물 의혹이 있는 배리 본즈를 제외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흑인 야수(Fielder)는 윌리 메이스로 인정받지만, 타격으로만 보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흑인 타자(Hitter)는 행크 애런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타격으로 한정해도 윌리 메이스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이 있다. 워낙 탁월한 수비로 최고의 외야수로 꼽히기 때문에 공격력이 가려지는 경향도 있지만 메이스는 가장 완벽한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답게 타격도 당대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대신 두 사람은 동시대에 백인선수들의 기록을 압도해 온 단 둘 뿐[38]인 최고의 흑인선수였기에 라이벌 느낌을 갖는 것이 적었고, 사적으로 친했다. 그들은 "우리 함께 흑인들을 무시하는 백인들을 이겨보자 으쌰으쌰"하는 느낌의 관계였지 "내가 너보다 최고의 흑인선수다"라고 하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흑인 차별을 당하는 경우에도 경기나 인터뷰때 만나서 서로 위로하거나 의지하며 버텼다고 한다. 게다가 둘 다 거의 최후의 니그로리거로써 공유하는 것 역시 많은 사이.[39]
메이스와 애런 두 선수가 모두 포함된 500홈런-3000안타 클럽 선수 중에서도 행크 에런의 안타, 홈런, 타점 등 누적 기록이 모두 압도적 1위인데, 애런이 메이스보다 홈런 개수는 95개, 안타는 488개, 타점은 394타점이나 더 많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선수로 생활한 나이와 기간, 기본 포지션(외야수) 등은 거의 같고 활동한 시기도 비슷하지만[40] 메이스는 20대 초반 한국전쟁 때문에 군복무로 약 2시즌을 보내서[41] 선수생활 기간이 행크 에런보다 두 시즌 부족하고, 데뷔 때부터 은퇴 전까지 외야수 출장을 많이 소화하여 수비로 인한 체력 부담이 있어 말년에 시즌 중 많은 경기와 타석에 서지 못한 메이스에 비해[42] 행크 애런은 말년에 외야수보다 수비로 인한 체력 부담이 적은 1루수 위주로 출전한 시즌도 있는 데다가, 은퇴 전 2년간은 아메리칸 리그팀으로 옮겨 아예 수비 부담이 없는 지명타자로 활동하여[43] 윌리 메이스보다 더 꾸준히 훨씬 많은 타석에서 비교적 타격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것이 타격 누적 기록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44]
정리하자면 선수로서의 업적은 수비도 역대 최고였던 메이스가 더 높지만[45] 타자로서의 클래식 누적 성적은 애런 쪽으로 조금 더 기우는 상황에서[46] 메이스의 타자 업적 또한 애런 못지않게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에 들고[47] 단일 시즌 활약상들은 메이스의 확고한 우위를 부정하기 어렵기에[48] 메이스의 우위를 주장하는 의견 또한 합리적이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최상위권 주요기록을 정리하자면,
- 통산 타점 1위 (2,297타점)
- 통산 루타 1위 (6,856루타)
- 통산 순수 장타 개수 1위
- 통산 타수 2위 (12,364타수)
- 통산 홈런 2위 (755홈런)
- 통산 고의4구 3위
- 통산 경기 출장 3위 (3298경기)
- 통산 안타 3위 (3,771안타)
- 통산 타석 수 3위 (13,940타석)
- 통산 득점 4위 (2,174득점)
- 통산 희생플라이 4위 (121회)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행크 애런 | 76 | 408 | 421 | 75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2nd)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행크 에런 | 142.6 | 60.1 | 101.3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3.2 | 43.0 | 58.1 |
4. 은퇴 후
은퇴 후 1982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97.83%라는 역대 9위의 높은 득표율로 헌액되는 영광을 얻었다.[49]배리 본즈가 그의 통산 홈런 기록을 깨려고 할 때, 처음에는 그를 지지했지만 BALCO 스캔들이 터진 후에는 지지를 철회했다. 홈런이 기록이 깨질 때도 현장에 있지 않고, 영상으로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50] 그러나 죽기 얼마 전 인터뷰를 했을 때는 약물 문제가 있지만 본즈는 홈런왕이 맞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은퇴 후에는 특별한 직책 없이 야인으로 지내다가 테드 터너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가 된 후 1976년 애틀랜타의 고문 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구단 경영에 참여했고, 1980년부터 구단이 터너의 손을 떠난 이후로도 한동안 구단 부회장을 역임했다. 테드 터너의 방송국인 TBS에서도 부회장이자 이사로 등재된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 조지아 주에서 여러 개의 자동차 딜러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등번호 44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 결번이며, 애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타자에게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행크 애런 상을 수여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애런의 이야기를 한글로 읽고 싶으신 분들은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를 참고하시길.
한편 1982년에 한국프로야구가 창설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두 번의 방한 모두 삼성 라이온즈를 운영하던 삼성그룹의 초청으로 이뤄졌는데[51] 1982년 8월 내한 때는 동대문야구장과 숭의야구장을 방문해서 선수들에게 타격 지도를 하는가 하면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팬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2시간의 사인회를 갖는 동안 무려 2만명의 어린이 팬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10월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발 팀을 이끌고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 빌리 윌리엄스 등과 함께 내한해서 친선 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 이 때 경기 전 행크 애런이 이만수, 김우열 등 대한민국의 대표 홈런타자들과 동대문야구장에서 홈런 더비를 했는데 나이 50살을 바라보는 행크 애런의 타구 비거리와 질은 이만수같은 대한민국 슬러거를 압도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했다. 참고로 스파이크를 안 신은 상태에서 저런 타구를 쳐낸 것이다.
홈런 더비 직전 그를 만났던 이만수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고 말했다. 애런은 일본야구의 영향으로 다운스윙을 하고 있던 이만수에게 타격지도를 해주며, 다운스윙을 하면 팔로스루가 잘 안 되니 레벨스윙을 하라고 권했고, 히팅포인트를 왼발 앞에 두고 타구를 띄워야 한다고, 공을 맞힌 후 마지막엔 배트끝이 왼쪽 어깨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수는 애런이 "너는 왜 네 타구가 안 뜬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국 지도자들의 지시만 받고 '왜?'라는 질문을 받은 적 없었던 자신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52] 회고했다. 1982년엔 홈런 4위를 기록했던 이만수는 애런의 조언 덕분인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게 된다.
내한 당시 받은 초청비 중 일부를 주한미군을 위해 써 달라고 기탁했는데 본인이 한국 초청을 받고 방한을 결심한 순간 6.25 전쟁 당시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비롯한 몇몇 미국 야구선수들의 한국 파병 광경이 떠올라서 기부했다고 한다.
5. 사망
현지 시각 2021년 1월 22일, 메이저리그 야구계에 행크 애런이 사망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향년 86세. 사인은 노화로 인한 자연사로 밝혀졌으며, 자신이 몸담아 왔던 애틀랜타에서 숨을 거두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특히 토미 라소다 전 다저스 감독이 타계한지 얼마 안된 시기에 다시금 야구계의 거인이 떠났다는 소식에 슬픔은 더욱 컸다.그리고 이 해 202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구단 역사 최고의 접전을 거쳐 지구 우승을 거머줬고 NLDS부터 NLCS, 그리고 월드 시리즈까지 모두 최약체로 취급 받았지만 시즌 막판에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들의 대활약으로 26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대선배의 영전에 우승을 바쳤다.
6. 기타
- 1969년 시즌에 리글리 필드 원정에서 521호 홈런을 날렸는데,[53] 기념비적인 공을 잡은 컵스팬이 경기 후 구단 버스로 퇴근하는 그에게 건내주려고 했으나 단칼에 거절하고 지나갔다.[54] 이에 격노한 팬은 평생 애런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하는데, 다음 해에 또다시 리글리 필드에서 애런의 홈런을 잡자 경기장 안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MLB 경기에서 홈팀 관중이 원정팀의 홈런을 다시 경기장으로 던져버리는 전통의 시초다.출처출처2
- 1974년 6월 8일 애틀랜타에서 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행크 애런이 날린 715호 홈런을 잡으러 좌측 펜스를 뛰어올라간 다저스 좌익수가, 1986년 10월 25일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6차전 10회말 5:5에서 뉴욕 메츠 무키 윌슨의 1루수 땅볼을 놓친 보스턴 1루수 빌 버크너다.
- 유명 힙합 가수 MC 해머와 외모가 비슷한데, MC 해머의 예명부터가 행크 애런의 별명에서 나왔다.
- 논문 다작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수학자 에르되시 팔과 같은 기념구에 사인을 한 적이 있어 많은 직업 수학자들도 갖지 못한 에르되시 번호 1을 갖고 있다고 반 농담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에르되시 팔 항목 참고.
- 미첼 리포트 이후로 미국에서는 본즈 대신 행크 애런을 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며, 실제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성적만 보면 첫 턴 만장일치가 나오는게 오히려 정상으로 보일 정도인 본즈는 9수째까지도 명전은 어림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행크 애런도 암페타민 복용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암페타민이 금지 약물인 건 철저히 현재의 일이다.
- 행크 콩거는 할아버지가 그에게 행크 애런같은 명 타자가 되라는 뜻에서 행크라는 등록명을 제안하여 쓰게 됐다고 한다.
- 1957년 밀워키에 입단하면서 당시 밀워키에서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하던 신부 Michael Sablica와 친분을 쌓게 되고 1959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 1991년 인터뷰에서 밝힌 사연으로 신부 Michael Sablica가 인격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되었고, 흑인 차별 반대 운동에도 도움을 준 은인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복자 풀턴 신의 '예수의 일생' 소책자를 글러브와 항상 같이 들고 다닐 정도로 독실한 신자로 살았다.##
- 행크 애런의 마지막 홈런은 1976년 7월 20일에 나왔는데, 이 공은 구장 관리인인 리처드 아른트(Richard Arndt)가 주웠다. 리처드는 행크 애런에게 공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그와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구단에서는 이를 거절하고 이후에 리처드를 해고했다.
시즌이 2달이 넘게 남은 상황이었으니 더 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것이였지만 그 홈런이 마지막 홈런이였고, 결국 구단에서 다시 찾아가 공을 돌려달라 부탁했지만 열받은 리처드는 거절한 뒤에 그냥 금고에 넣고 잊어버린다.
그리고 23년이 지나서 1999년에야 65만 달러에 판매를 했는데, 행크 애런은 판매 대금의 일부를 기부하지 않으면 공의 진위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리처드는 155,800달러를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스포츠 지원 단체에 기부한다.
7. 연도별 기록
행크 애런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54 | MLN - ATL | 122 | 509 | 131 | 27 | 6 | 13 | 58 | 69 | 2 | 28 | 39 | .280 | .322 | .447 | .769 | 1.2 | 1.4 |
1955 | 153 | 665 | 189 | 37 | 9 | 27 | 105 | 106 | 3 | 49 | 61 | .314 | .366 | .540 | .906 | 5.9 | 6.2 | |
1956 | 153 | 660 | 200 | 34 | 14 | 26 | 106 | 92 | 2 | 37 | 54 | .328 | .365 | .558 | .923 | 6.9 | 7.2 | |
1957 | 151 | 675 | 198 | 27 | 6 | 44 | 118 | 132 | 1 | 57 | 58 | .322 | .378 | .600 | .978 | 7.6 | 8.0 | |
1958 | 153 | 664 | 196 | 34 | 4 | 30 | 109 | 95 | 4 | 59 | 49 | .326 | .386 | .546 | .931 | 6.8 | 7.3 | |
1959 | 154 | 693 | 223 | 46 | 7 | 39 | 116 | 123 | 8 | 51 | 54 | .355 | .401 | .636 | 1.037 | 8.2 | 8.6 | |
1960 | 153 | 664 | 172 | 20 | 11 | 40 | 102 | 126 | 16 | 60 | 63 | .292 | .352 | .566 | .919 | 7.0 | 8.0 | |
1961 | 155 | 671 | 197 | 39 | 10 | 34 | 115 | 120 | 21 | 56 | 64 | .327 | .381 | .594 | .974 | 8.9 | 9.4 | |
1962 | 156 | 667 | 191 | 28 | 6 | 45 | 127 | 128 | 15 | 66 | 73 | .323 | .390 | .618 | 1.008 | 8.1 | 8.5 | |
1963 | 161 | 714 | 201 | 29 | 4 | 44 | 121 | 130 | 31 | 78 | 94 | .319 | .391 | .586 | .977 | 8.4 | 9.1 | |
1964 | 145 | 634 | 187 | 30 | 2 | 24 | 103 | 95 | 22 | 62 | 46 | .328 | .393 | .514 | .907 | 6.8 | 6.8 | |
1965 | 150 | 639 | 181 | 40 | 1 | 32 | 109 | 89 | 24 | 60 | 81 | .318 | .379 | .560 | .938 | 7.6 | 7.9 | |
1966 | 158 | 688 | 168 | 23 | 1 | 44 | 117 | 127 | 21 | 76 | 96 | .279 | .356 | .539 | .895 | 6.9 | 7.9 | |
1967 | 155 | 669 | 184 | 37 | 3 | 39 | 113 | 109 | 17 | 63 | 97 | .307 | .369 | .573 | .943 | 7.3 | 8.5 | |
1968 | 160 | 676 | 174 | 33 | 4 | 29 | 84 | 86 | 28 | 64 | 62 | .287 | .354 | .498 | .852 | 7.1 | 6.8 | |
1969 | 147 | 639 | 164 | 30 | 3 | 44 | 100 | 97 | 9 | 87 | 47 | .300 | .396 | .607 | 1.003 | 7.6 | 8.1 | |
1970 | 150 | 598 | 154 | 26 | 1 | 38 | 103 | 118 | 9 | 74 | 63 | .298 | .385 | .574 | .958 | 5.2 | 5.0 | |
1971 | 139 | 573 | 162 | 22 | 3 | 47 | 95 | 118 | 1 | 71 | 58 | .327 | .410 | .669 | 1.079 | 7.1 | 7.2 | |
1972 | 129 | 544 | 119 | 10 | 0 | 34 | 75 | 77 | 4 | 92 | 55 | .265 | .390 | .514 | .904 | 4.3 | 3.9 | |
1973 | 120 | 465 | 118 | 12 | 1 | 40 | 84 | 96 | 1 | 68 | 51 | .301 | .402 | .643 | 1.045 | 5.2 | 4.7 | |
1974 | 112 | 382 | 91 | 16 | 0 | 20 | 47 | 69 | 1 | 39 | 29 | .268 | .341 | .491 | .832 | 2.1 | 2.1 | |
ATL 통산 (21시즌) | 3076 | 13090 | 3600 | 600 | 96 | 733 | 2107 | 2202 | 240 | 1297 | 1294 | .310 | .377 | .567 | .944 | 136.0 | 142.5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75 | MIL | 137 | 543 | 109 | 16 | 2 | 12 | 45 | 60 | 0 | 70 | 51 | .234 | .332 | .355 | .687 | 0.1 | 0.1 |
1976 | 85 | 308 | 62 | 8 | 0 | 10 | 22 | 35 | 0 | 35 | 38 | .229 | .315 | .369 | .684 | 0.2 | 0.4 | |
MLB 통산 (23시즌) | 3298 | 13941 | 3771 | 624 | 98 | 755 | 2174 | 2297 | 240 | 1402 | 1383 | .305 | .374 | .555 | .928 | 136.3 | 143.0 |
파란색은 팀 내 역대 1위. 빨간색은 MLB 역대 1위.
8. 관련 문서
[1차] [2차] [1차] [2차] [1차] [2차] [1차] [2차] [9] 2위인 배리 본즈는 1,440타.[10] Hammerin' Hank는 본래 행크 그린버그의 별명이었고, 애런을 상징하는 별명이 된다. 짧게 줄인 'Hammer' 라고도 하며, 그의 자서전 'I Had a Hammer'에도 사용되었다.[11] 외야수 전 포지션과 1루수도 가능하나 커리어 대부분을 우익수로 뛰었다[12] 1966년에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이전했다.[13] 1위는 762홈런의 배리 본즈. 다만 도핑이 적발된 선수라 기록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14] 역대 우타자 bWAR는 윌리 메이스에 이은 역대 2위, fWAR는 윌리 메이스, 호너스 와그너에 이은 3위. 타격으로 보면 MLB 역대 우타자 중 비율스탯은 로저스 혼스비가, 누적스탯은 행크 애런이 가장 뛰어나다. 사실 누적으로는 MLB 모든 타자 중 행크 애런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15] 저런식으로 스윙을 돌리면 그립이 단단히 잡히지만 생각보다 요긴해보여도 오히려 그런 단단한 그립으로 인해 스윙폼이 무너진다[16] 이 별명의 원조는 행크 그린버그이다. 헨리라는 이름의 애칭이 행크다.[17] 사실 이것도 좀 후대의 주관적 편견이 들어간 평가인데 매시즌 스포츠언론의 주목을 받은 선수를 화려하지 않았다고 하기가 좀 이상하다. 한국으로 치면 최정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걸 안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읽는 사람의 몫이긴 하지만) 쉽게 말하기 어렵다. 물론 야구 그 자체라고까지 불리는 베이브 루스나 사상 초유의 70홈런을 친 약마 시절 본즈, 그리고 2000년대의 아이콘 푸홀스와 비교했을 때에 700홈런 타자들 중에서는 현역 시절의 스포트라이트가 많이 덜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사실 그 사람들이야 시대가 다른 사람이니 상관없는데, 동시대에 가장 위대한 흑인 선배이자 1950년대 내셔널리그의 상징 윌리 메이스가 있던 게 제일 악영향이었다. 하필 둘다 일생 내셔널 리그 윌리 메이스가 백인이거나 아메리칸 리그 선수이기만 했어도 타이틀 홀더 경쟁 레벨의 꾸준한 최상위 흑인은 행크 아론뿐이라 압도적으로 주목받았을텐데, 현실은 맨날 메이스 때문에 흑인 2인자 대우를 받았다. 타격 경쟁은 되는데, 수비가 너무 넘사벽이었다. 아론도 분명 당대 좌익수 수비 상위권이었는데, 상대는 중견수 수비 원톱이라... 메이스 쪽은 심지어 당대도 아니고 역사상 원톱이다... 비교 대상들이 워낙 말도 안 되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생기는 문제.[18] 행크 애런은 훗날 자신의 회고에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으며 이들 역시 홈런 신기록의 일부분으로 남을것이라고 했다.[19] 11월 2일 데이브 메이와 추후지명선수(로저 알렉산더)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20] 메이저리그 사무국 공식 기록으로 6피트로 기록되어 있다. 근데 윌리 메이스는 180cm(5피트 11인치)로 키가 더 작다. 심지어 실제키는 178cm로 더 작은데 프로필을 1인치 늘렸다는 의혹도 있다. 두 사람은 젊었을때 내셔널리그 흑인스타 선후배로서 절친했고 같이 신문 인터뷰도 매우 많이 했는데, 같이 찍은 사진에서 행크 아론이 항상 키가 더 큰 걸 볼 수 있다. 선배 세대 백인 레전드들보다 체격이 더 작은 의외의 사실을 주목할만 하다. 그들이 한창 스타일때 지도자도 이미 그만둔 할아버지였던 타이 콥이 185cm(6피트 1인치), 이미 죽은 베이브 루스는 188cm(6피트 2인치)였다. 19세기 내셔널리그 레전드였던 투수왕 사이 영도 188cm였다.[21] 본인 스스로가 "선수 시절 내내 항상 변화구만 노렸다. 속구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다. 어느 투수도 감히 나에게 속구로 상대하지 못했다."("I looked for the same pitch my whole career, a breaking ball. All of the time. I never worried about the fastball. They couldn't throw it past me, none of them.")고 자랑할만큼 가공할만한 속구 대응력을 갖추었다. 출처 Baseball Almanac[22] 2위는 1.86의 베이브 루스, 3위는 1.87의 알버트 푸홀스.[23] 역대 우타자들 중 1위. 전체 1위는 피트 로즈, 2위는 타이 콥으로 이 두 사람은 4천안타를 넘겼다.[24] 일본프로야구에는 장훈(504홈런, 3085안타)이 유일한 500홈런 - 3,000안타 기록자다. 장훈은 2022년 현재 일본프로야구 최다안타(3,085) 기록 보유자이며 유일한 3,000안타 기록자다.[25] 합법 약물 운운하며 “루스 애런도 암튼 깨끗하진 않거든요 빼애액”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걸 좀 이해하기 쉽게 바꿔 말하면 나중에 언젠가 카페인이 그 유해성으로 인해 금지 약물로 지정되게 되면 에너지 드링크, 콜라, 홍차, 커피를 마신 적이 있던 선수들은 모두 약쟁이라고 해도 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 당시에 문제되는 약물이 아니었던 것을 가지고 아무튼 복용했으니 약쟁이라고 비난한다면, 현 시대의 선수들도 시간이 지난 뒤엔 어떻게 평가절하될 지 알 수 없다.[26] 실제로 수십년 간 애런과 루스, 단 둘 외에는 2,000타점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으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알버트 푸홀스가 각각 2015년, 2019년 달성했다.[27] 그가 만약 타고투저의 시기에 뛰었다면 4000안타-2500타점-800홈런도 꿈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동시에 기록을 못했더라도 이 중에 하나쯤은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28] 2014년에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아직 소속 구단과 계약 기간이 3년 남은 상태로 은퇴하지 않았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15년에 복귀한 뒤 3천안타와 2천타점, 2천득점을 달성하여, 행크 애런에 이은 메이저리그 제2의 3000-2000-2000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이 미국 야구사에서 손에 꼽을 대기록이긴 하지만, 그의 약물 의혹으로 메이저리그 내부나 외부에서 행크 애런 수준의 선수로 인정해 줄 가능성은 없다. 그렇기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 또한 낮은 편이다.[29] 베이브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 투수에서 뉴욕 양키스의 홈런 타자로 전환한 선수라서, 투수로 무려 6시즌을 보냈기에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없었다.[30] 그 외 선수 가운데 배리 본즈가 2227득점-1996타점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4타점 차이로 달성하지 못한 선수이고, 스탠 뮤지얼 역시 1951타점-1949득점으로 아깝게 2000-2000을 달성하지 못했다. 타이 콥과 윌리 메이스 역시 2000득점을 기록하였으나 1900점대의 타점을 기록하여 2000-2000에 미치지 못했다.[31] 1위 피트 로즈, 2위 칼 야스트렘스키[32] 그리고 이들 중 은퇴 후 감독 생활 중에 스포츠 도박 파문으로 제명당한 피트 로즈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이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들은 모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는다. 참고로 '통산 3천 경기 출장' 을 기록한 8명 모두 '통산 3천 안타' 도 성공했다.[33] 1루타를 제외한 2루타, 3루타, 홈런의 개수[34] 1위는 역시 배리 본즈로 688개. 14시즌이 종료될 때 까지만 해도 아론이 2위였으나, 15시즌 중 알버트 푸홀스가 역대 2위로 올라 섰다. 15시즌 종료 시점 기준 푸홀스의 통산 고의사구는 296개.[35] 이후 두번째 기록은 푸홀스의 차지가 되는데 푸홀스 역시도 통산 7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음에도 한시즌 최다 홈런이 49개일 정도로 50홈런을 기록한적이 없다[36] 통산 홈런 수 1위인 배리 본즈는 홈런왕을 2번 기록했으나 그 두 번 중 한 번이 무려 70홈런 시즌이었으며, 통산 홈런 수 3위인 베이브 루스는 홈런왕을 12번 기록했다.[37] 15번 30홈런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공동1위.[38] 다른 흑인 선수들은 한두시즌 반짝한 적은 있어도, 두 선수처럼 말년 근처까지 계속 타이틀홀더 경쟁을 하는 전체 최상위권에서 버티지는 못했다. 그들 단둘만이 흑인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사실 메이저리그의 흑인 선수들은 1970년대나 되어서야 최상위권 선수들이 늘어가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최상위권 흑인선수들이 많았다면 달랐겠지만, 그때는 도저히 둘이 서로 견제할 환경이 아니었다. 투수 밥 깁슨이나 퍼킨스는 위대했으나 포지션이 다르고, 그외 동시대 위대한 레전드 타자로 어니 뱅크스와 프랭크 로빈슨 정도가 있었지만 메이스-애런처럼 타이틀 홀더를 자주 노리고 주목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뱅크스는 아무리 포지션 기준 거포지만 유격수라 그랬었고, 로빈슨은 일반선수 말고 레전드선수 기준으로는 시즌별 기복이 있어서 잘할때는 MVP였지만 잘 못했던 시즌도 생각보다 적지는 않았고 잘한 시즌도 타이틀홀더 경쟁에서 먼 적이 많았다. 진짜 최상위권에서 꾸준한건 둘뿐이었다. 루 브록은 완벽한 동시대라기에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후배 세대 레전드이며 도루왕쪽이라 메이스-애런처럼 홈런왕 쪽은 아니었다.[39] 최고의 흑인 프로스포츠 선수로서 두사람이 공동으로 언론 인터뷰도 무척 많이 했는데,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친한 형동생이자 백인들의 야구 세계에서도 1등으로 버티는 위대한 흑인 동지라는 정체성이 매우 강했다. 인터뷰 내용도 흑인의 설움이나 백인들 틈바구니에서 흑인으로서의 고독을 이겨내는 투지 같은 것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대신 여러 인터뷰에서 항상 3년 선배 윌리 메이스가 농담조라도 후배 행크 아론보다는 내가 한 수 위라 평소에 조언 좀 해준다는 포지션을 지키긴 했다.[40] 윌리 메이스가 메이저리그 데뷔 3년 선배다. 나이 차이도 정확히 3살. 은퇴 나이도 둘 다 42세다. 그러니 선수 생활한 나이가 똑같은 셈이다.[41] 첫 시즌은 시즌초 1개월 조금 넘게 활동하다가 바로 입대했고 다음 시즌은 아예 활동하지 못했다. 두 시즌이라 봐도 무방하다. 메이스는 복귀하자마자 41홈런-110타점을 때렸다.[42] 참고로 메이스는 전성기 선수생활 중에도 골드 글러브가 생긴 첫해부터 12년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가질 정도로 외야 수비의 최고봉이었고, 그만큼 선수생활 말년이 된 이후에도 수비에 대한 기대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외야 수비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던 선수다.[43] 윌리 메이스는 지명타자 출장이 없고, 내야수로 출장했던 경기는 86경기밖에 안된다. 이에 반해 행크 애런은 전성기에도 종종 내야수로 출전한 경력이 있고 통산 내야수 267경기/지명타자 201경기로 출장했다. 물론 둘다 내야수 출장은 주로 1루수로 했다.[44] 3천경기를 훌쩍 넘게 출장한 에런과 달리 메이스는 2,992경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여 안타깝게 3천경기 출장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300경기 이상의 출장횟수 차이가 난다. 그래서 두 선수의 타석 수도 1,400타석 이상 차이가 난다. 메이스가 군대를 다녀온 다음 바로 40홈런-100타점 페이스였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45] 메이스 통산 149.9fWAR/156.4bWAR. 애런 통산 136.3fWAR/143bWAR. 또한, 선수들을 줄세우는 평가를 할 때 애런을 메이스 앞에 두는 평가는 거의 없으며(단 이 부분은 수비와 타격을 모두 평가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수비의 우열 관계가 타격의 우열처럼 서로 비슷하지 않고 메이스가 확고한 우위였기 때문.) 메이스는 베이브 루스 다음가는 2인자로 평가를 자주 받는 반면 애런은 높으면 5위 전후, 저평가를 심하게 당하면 10위 이내로 평가받는 경우도 가끔 있을 정도이다. 즉 축구로 비유할 시 메이스는 펠마메급이라면, 애런은 호날두나 크루이프급이라는 것. 물론 둘 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건 맞다.[46] 총루타, 타점, 장타 1위, 약쟁이 제외 홈런 1위 등 누적에서 메이스보다 꽤 우위이다.[47] 출루율, 장타율, WAR, wOBA, OPS(+), wRC+ 등 비율에서 애런보다 근소하게 우위.[48] 메이스는 애런이 못 한 50홈런 시즌이 2회 있다. 애런의 bWAR 최고 기록은 9.5(1961년)지만 메이스는 10을 넘긴 것만 6번/2년 연속 11을 기록했다. fWAR 역시 애런은 8.9(1961년)가 최고지만 메이스는 9를 넘긴 것만 7회/10을 넘긴 게 4회다.[49] 당연하겠지만 첫턴 입성이기도 하다. 참고로 역대 명예의 전당 헌액자 득표율 1위는 마리아노 리베라(100%), 2위는 데릭 지터(99.7%), 3위는 켄 그리피 주니어(99.32%), 4위는 톰 시버(98.84%), 5위는 놀란 라이언(98.79%), 6위는 칼 립켄 주니어(98.53%), 7위는 타이 콥(98.23%), 8위는 조지 브렛(98.19%)이다. 10위는 토니 그윈(97.61%), 11위는 랜디 존슨(97.27%), 12위는 그렉 매덕스(97.19%)이다.[50]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본즈라도 홈런 못치는 날도 있는데, 윌리 메이스처럼 대자-대부 같은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행크 에런 본인은 본즈가 활동한 자이언츠 프랜차이즈와 겹치는 속성이 전혀 없기도 하니... 홈런 칠 때까지 매경기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오히려 타이밍이 안 맞아서 본즈가 원정경기에서 756홈런을 쳤더라면 에런의 그 영상 메시지조차 방송되지 못할 뻔 했다.[51] 당시 애런이 입었던 유니폼에 제일제당이라는 회사명이 써 있는 것이나 팬 사인회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한 것은 제일제당과 신세계가 당시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1990년대 초에 각각 삼성에서 계열분리돼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52] 당시의 사회 풍조상 상급자, 특히 지도자들로부터 지시를 받은 뒤 하급자가 그 이유를 물으면 건방지다고 상급자가 지적하던 시절이었다.[53] 테드 윌리엄스의 통산 홈런수와 동률[54] 그날 경기 중에 맥주를 뿌린 외야 관중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