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2:10:03

알폰소 소리아노

알폰소 소리아노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알폰소 소리아노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브렛 분
(시애틀 매리너스)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브렛 분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4년 ~ 200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2루수 부문 실버 슬러거
브렛 분
(시애틀 매리너스)
알폰소 소리아노
(텍사스 레인저스)
로빈슨 카노
(뉴욕 양키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카를로스 리
(밀워키 브루어스)
미겔 카브레라
(플로리다 말린스)
앤드루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알폰소 소리아노
(워싱턴 내셔널스)

맷 홀리데이
(콜로라도 로키스)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
카를로스 리
(휴스턴 애스트로스)
맷 홀리데이
(콜로라도 로키스)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

개럿 앤더슨
(애너하임 에인절스)
알폰소 소리아노
(텍사스 레인저스)
미겔 테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 ||
알폰소 소리아노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뉴욕 양키스 등번호 58번
마이크 저젬벡
(1998)
알폰소 소리아노
(1999)
랜디 초트
(2000~2001)
뉴욕 양키스 등번호 53번
마크 허튼
(1993)
알폰소 소리아노
(2000)
마이크 서먼
(2002)
뉴욕 양키스 등번호 33번
라이언 탐슨
(2000)
알폰소 소리아노
(2001)
데이비드 웰스
(1997~2003)
뉴욕 양키스 등번호 12번
버논 웰스
(2013)
알폰소 소리아노
(2002~2014)
체이스 헤들리
(2014~2017)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12번
채드 크루터
(2003)
알폰소 소리아노
(2004~2005)
맷 스테어스
(2006)
워싱턴 내셔널스 등번호 12번
브렌던 해리스
(2004)
알폰소 소리아노
(2006)
조쉬 윌슨
(2007)
시카고 컵스 등번호 34번
엔젤 에체베리아
(2002)
알폰소 소리아노
(2007~2013)
임창용
(2013)
}}} ||
}}} ||
파일:1000003981.jpg
알폰소 소리아노
Alfonso Soriano
본명 알폰소 기예아르드 소리아노
Alfonso Guilleard Soriano
출생 1976년 1월 7일 ([age(1976-01-07)]세)
산 페드로 데 마코리스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3cm / 90kg
포지션 2루수[1]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5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히로시마)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7)
뉴욕 양키스 (1999~2003)
텍사스 레인저스 (2004~2005)
워싱턴 내셔널스 (2006)

시카고 컵스 (2007~2013)
뉴욕 양키스 (2013~2014)
기록 30-30 클럽 4회 (2002, 2003, 2005, 2006)
40-40 클럽 (2006)
1. 개요2. 선수 생활3. 플레이 스타일4. 그 외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前 야구 선수.

빠른 발과 호쾌한 장타력을 지닌 호타준족형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40-40을 기록한 6명 중 한 명이자, 최초이자 2023년 이전까지 유일한 청정타자였다.[2] 원래 포지션은 2루수였으나, 뉴욕 양키스 시절부터 워낙 돌글러브로 유명해서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는 좌익수로 전향했다.

통산 16시즌 1,975경기 8,395타석/7,750타수 2,095안타, 481 2루타, 412홈런 1,159타점 1,152득점 289도루 496BB/1,803K .270/.319/.500 .819OPS/112OPS+.

2. 선수 생활

2.1. 일본프로야구 시절

파일:223F8F61-5635-45A1-9EEF-C03D0C658162.jpg

1995년 일찍이 소리아노의 재능을 알아본 일본프로야구 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도미니카 공화국에 세운 야구 학교인 '카프 아카데미'[3]에 소리아노를 합류시켜 주면서 그는 첫 프로 커리어를 일본 리그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일본 리그에서 별다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1997년 1군에서 9경기를 뛰며 19타석 17타수 2안타 2볼넷 타율 0.118, 출루율 0.211 ,OPS 0.329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 당시 일본 리그 경력으로 인해 일본 야구팬들은 명구회 입회 드립을 치기도 한다.[4]

2.2. 뉴욕 양키스 시절

파일:external/images.sportsworldreport.com/alfonso-soriano-yankees-trade-rumors.jpg

이후 1998년 소리아노는 잠시 도미니카로 돌아갔는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뉴욕 양키스 측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310만 달러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소리아노를 데려오게 된다.[5] 입단 후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쌓다가 1999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콜업, 2001년에는 주전 2루수였던 척 노블락이 블래스 신드롬으로 2루 수비를 못보게 되면서,[6] 그를 대신하여 2루수로 발탁되었고, 타율 0.268, 18홈런, 73타점, 43도루를 기록하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이때부터 돌글러브의 기질이 보였다. 시범경기에서도 악송구를 연발하며 불안감을 야기시켰다.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에 걸린 노블락이 기록한 에러가 26개였는데, 소리아노는 블래스 신드롬 같은 거 없이 19개의 에러를 기록했다.

2002년에는 156경기 741타석/696타수 209안타 128득점 39홈런 102타점 41도루 .880OPS를 기록하면서도 홈런 1개 차이로 40-40을 놓치는 등[7] 전년도에 비해 기량이 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였으나, 삼진도 157개나 당하며 선풍기도 아낌 없이 돌렸고, 돌글러브급 수비도 나아지지 않아서 23개의 에러를 기록하고, 필딩률 0.968을 찍었다. 그리고 타율 3할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커리어하이 기록이다. 2002년 AL에서 소리아노는 타석/타수/안타/득점/도루/장타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03년에도 38홈런-35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30-30 클럽에 가입했다. 이 시즌에 선두타자 홈런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8] 하지만 ALCS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 7타석 5삼진 무안타 0볼넷 OPS 0을 당하고 월드시리즈에서는 4차전까지 9삼진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결국 5차전에서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까지 했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004년 뉴욕 양키스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트레이드 조건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텍사스로 이적한 후 마이클 영과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이름값에 걸맞은 타격 성적을 냈다. 물론 수비는 그대로였다.

2004년 5월 8일에는 텍사스 구단 최초로 한 경기 6안타를 기록했고, 올스타전에서는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 쓰리런 홈런을 날리며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었다. 2005년에는 2년만에 30-30을 다시 달성하기도 했다.

2005시즌 종료 후 강타자를 원하던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4.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워싱턴 내셔널스로 트레이드 된 후 포지션을 좌익수로 바꿨는데, 2006시즌 시범경기에서 좌익수 수비를 거부하며 시합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구단측은 너 수비 안들어가면 월급 안 준다?라고 협박했고 결국 소리아노는 이에 항복, 좌익수 수비를 들어가게 되었다. 2루수보다 수비부담이 훨~씬 적은 좌익수로 들어간 것 때문인지 홈런 도루를 마음대로 기록하기 시작.

정규 시즌에서는 1번타자로 주로 출장, 8월 1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4번째 30-30 클럽을 달성했고, 9월 16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개인 통산 첫번째이자 MLB 역대 네 번째 40-40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9]

이 시즌에 통산 200도루를 달성하기도 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77, 46홈런, 95타점, 41도루.

2.5. 시카고 컵스 시절

2006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취득, 5년간 7000만 달러를 제시한 소속팀 워싱턴 내셔널스의 제안을 거부하고 8년간 1억 3600만달러를 제시한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첫 해에는 33홈런을 기록하며 그럭저럭 했지만 그 이후 부상에 시달리며 타율/장타력/주루능력이 점점 하락했다. 특히 2009시즌에는 2할 4푼대의 타율에 20홈런을 겨우 쳐내는 부진에 빠지기도. 컵스에서의 모습은 20홈런 이상 치는 준수한 장타력을 가졌지만 2할 중반대의 타율과 타율에 비해 높지 않은 출루율, 떨어지는 주루 능력으로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공갈포형 타자라 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연봉보조를 많이 포함한 트레이드가 예상되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배리 지토 부럽지 않은 잔여연봉 탓에 트레이드는 무산되었고, 대신 컵스에서 어영부영 공갈포짓을 하더니 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타율도 낮고 타율 대비 출루율도 꽝이지만 장타력이 부활해 그나마 트레이드 가치를 올렸다.

2013년에도 결국 보는 사람 혈압 오르게 하는 공갈포 짓만 하다가 7월 말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과거 소리아노가 한 시절을 보냈던 뉴욕 양키스가 컵스에게 소리아노의 트레이드를 문의했고, 결국 7월 25일 트레이드가 확정되었다. 물론 연봉보조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2.6. 뉴욕 양키스 복귀

파일:alfonso-soriano.jpg
양키스 복귀 후 포지션은 컵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좌익수와 지명타자 겸임. 복귀 후 고작 20경기 남짓 출장하는 동안 3할 타율에 8홈런, 26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정신을 차린 데다, 수비마저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시즌 후반이 지나도록 20볼넷도 못 뽑고 삼진은 100개를 돌파하는 등 보는 이들의 눈을 썩게 만드는 선구안은 여전했다.

한편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18타점을 기록하며 연속 4경기 최다타점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종전은 루 게릭, 토니 라제리, 새미 소사가 기록한 16타점.

8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원정경기에서 1회, 3회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개인 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양키스에서의 2013시즌은 루징팀이던 컵스와는 달리 동기부여를 찾았는지, 홈런을 뻥뻥 날리며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3시즌에 컵스에서 93경기 동안 17홈런, 51타점을 올렸는데, 양키스 이적 후 58경기에서만 17홈런, 50타점을 올렸다.

2014년 5월 12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7번째로 양대 리그 1000안타 달성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500득점/500타점/100홈런/100도루를 달성한 첫 번째 선수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2014시즌에는 67경기에서 타율 0.221, 출루율 0.244, 장타율 0.367, 6홈런, 23타점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내다가 지명할당되었고, 지명할당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방출되었다.

2.7. 은퇴

2014년 11월 4일, 마침내 은퇴를 선언하면서 16년간 쌓아오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70/출루율 0.319/장타율 0.500, 2095안타, 412홈런, 1159타점, 289도루.

명예의 전당은 2020년 투표 첫해에 6표만 받고 바로 탈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

40-40 1회 달성, 30-30 3회 달성으로 대변되는 장타력과 주력을 겸비한 선수이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걸맞지 않는 강한 손목힘으로 장타를 무수히 양산해냈으며, 2002, 2004, 2005년에는 2루수 부문에서, 2006년에는 외야수 부문에서 실버 슬러거를 수상했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못해 한 시즌당 120개 내외의 삼진은 기본으로 깔고 가면서 시즌 평균 볼넷은 끽해야 40~50개 선에 그치는 등 BB/K 비율 면에서는 주전급 선수들 중에서 가장 나쁜 수준에 속한다.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에는 160삼진을 당하기도 했다. 출루율도 주로 1번으로 나온 것 치고는 상당히 좋지 않은 편. 3할 타율을 기록했던 2002년에도 출루율은 고작 0.332에 그쳤다.

수비력 역시 2루수 시절에는 돌글러브로 유명했다. 외야수로 전업한 이후에도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사실 수비 스탯을 보면 의외로 좌익수 전환 초창기에는 굉장히 뛰어난 수비수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UZR이 도입된 2002년 이후 MLB 역사상 가장 높은 단일 시즌 UZR을 기록한 선수가 다름아닌 알폰소 소리아노이다.[10] 좌익수 시절에도 2루수 시절처럼 실책은 많은 편이었다. 2009년에는 외야수로 뛰면서 에러 11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공을 캐치한 뒤(거의 반사적이다) 습관적으로 살짝 뛰는 것 때문이라고 지적당하기도 했다.[11] 2루수에서도 좌익수에서도 캐치 뒤 뛰고 스텝 후 송구하는데 이 '깡총점프' 때문에 글러브에서 볼이 빠지기도 하고, 2008년엔 이 스텝 밟다가 부상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2010년부터는 UZR 점수가 +를 기록하는등 수비가 약간이나마 개선된 모습이었지만 좋지 않은 무릎 때문에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장타력과 주력에 모든 툴이 집중되었으며 다른 툴은 평균 이하 내지 명백히 하위권이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 지극히 약했다. 정규 시즌 성적만 봐도 46타석/45타수에 .156/.174/.222였고 16K를 잡히는 동안 0볼넷이었다.[12] 포스트 시즌에도 2003 ALCS에서 7타석 5K OPS 0을 찍었다. 물론 페드로가 이 당시까지는 외계인급 활약을 펼치던 투수였던 탓도 있고 애초에 페드로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인 타자가 배리 본즈, 마이크 피아자 정도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못할 수준은 아니긴 한데, 페드로가 급격한 하락세에 접어든 2006년 이후 전적마저 8타수 1안타로 영 좋지 않았다.

그런데 CC 사바시아에게는 똑같은 46타석으로 6BB/9K 39타수 13안타, 2루타 2개에 6홈런 10타점 .333/.435/.846 OPS 1.281로 강했다. 이 외에 소리아노가 좋은 성적을 뽑은 상대로는 톰 글래빈, 케빈 브라운, 매디슨 범가너, 클레이튼 커쇼 등이 있다.

4. 그 외

한 때 1978년생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4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1976년생임이 밝혀졌고, 이후 메이저리그 등록상에도 1976년생으로 정정되었다. 트레이드 직전에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에게 고백을 했고, 캐시먼 단장도 트레이드 전에 텍사스 존 하트 단장에게 알렸기 때문에, 무슨 사기 트레이드나 이런 건 아니다.[13]

현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3명뿐인 40-40 클럽 가입자 중 약물 의혹이 없는 선수이다. 하지만 '파나마 페이퍼즈'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등 유령회사를 이용해 탈세를 했다는 의혹은 있다.

파일:external/www.wrestlingvalley.org/john-cena-after-defeating-big-show.jpg
시카고에서 열렸던 2009년 WWE의 PPV인 저지먼트 데이때 존 시나세그먼트를 하기도 했다.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크레이그 비지오의 자리를 베테랑 잠재 패치로 인해 물려받아 엘리트 카드 가격 중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테랑 업데이트 이전엔 하점이 없었으나, 업데이트 이후 꿈의 파워형 하점이 성립되면서 엘리트 카드의 가격판도가 확 바뀌며 파워형 2루수 중 가장 스피드가 빠르다는 점 때문에 2루수가 구멍인 여러 세트덱에서 애용되며 명실공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카드가 되었다.

명실공히 MLB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명구회의 회원자격을 갖고 있다. 다만 선수 본인이 가입하지 않았을 뿐.[14] 이는 일본 명구회의 가입 자격요건이 타자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친 첫 안타를 시점으로 계산하고, MLB 기록 인정, 통합 2,000안타 이상이기 때문이다. 소리아노가 일본에서 1997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경기에서 2안타를 쳐 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명구회 가입 요건이 계산된다. 명구회 요건에는 한국의 성구회처럼 자격 요견의 과반을 자국 리그에서 채워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5. 관련 문서



[1] 초창기 ~ 2005년.[2] 2002년에도 39-40을 기록해서 아깝게 40-40을 놓쳤다가, 2006년에 드디어 기록했다. 소리아노 외에 40-40에 성공한 나머지 다섯 명은 배리 본즈, 호세 칸세코, 알렉스 로드리게스,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오타니 쇼헤이이지만 소리아노보다 먼저 달성한 3명은 전원 약쟁이이다. 본즈의 경우 40-40 기록 자체는 약물 이전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 리그를 합치면 KBO 리그에서 40-40을 달성한 에릭 테임즈까지 총 7명이다.[3] 카프 아카데미 출신으로 성공한 메이저리거로는 소리아노 외에 뉴욕 메츠에서 외야수로 뛰었던 티모 페레즈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불펜투수 라몬 라미레즈 등이 있다. 여담으로 먹튀 에스마일린 카리대도 이곳 출신이다.[4] 명구회 규정상으로는 가능하다. 본인이 안하는 것일뿐이다.[5] 엄밀히 말하면 히로시마 측에서 소리아노를 먼저 임의탈퇴 처리한 후 이적료를 받는 식으로 보유권을 양키스에 넘겼다. 당시만 해도 미-일간 포스팅 시스템 제도 및 규정이 명확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편법이 가능했다.[6] 원래 골드글러브까지 탔던 우수한 수비수였는데, 1999년 수비도중 1루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는 실수를 한 뒤부터 에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7] 이때 소리아노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홈런 1개가 부족한 상태였고 아직 기록 달성의 가능성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순위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기는 취소되는 메이저리그의 관행 때문에 양키스의 마지막 경기는 취소되었고 소리아노는 상당히 아쉬워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2011년 맷 켐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가 취소되어버리면서 39홈런-40도루에 머무른 바 있다.[8] 종전 브래디 앤더슨의 12개 기록을 13개로 경신했다.[9] 이 시즌이 아쉬운 점이, 133경기 동안 무려 44홈런을 치며 페이스대로 간다면 50홈런까지도 충분히 노릴 수 있었는데 잔여 경기에서 고작 2홈런에 그쳤다.[10] 2007년 33.2[11] 포구 시 비슷한 습관을 가졌던 선수로 신조 츠요시가 있는데, 정작 이쪽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우수한 외야 수비력을 선보였다.[12] 저 1타수는 몸 맞는 공.[13] 대개 도미니카공화국 혹은 푸에르토리코, 쿠바 출신의 중남미 선수들은 MLB 구단과 처음 계약할 때 몸값을 높이기 위해 나이를 2~3살 줄여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행정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실제 출생년도와 등록된 출생년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중에는 아예 실제 출생년도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훌리오 프랑코. 나이 제한을 피하기 위해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속인 아드리안 벨트레라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은 진짜 특이한 경우.[14] 아마 일본에서의 활약이 미비해 가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가입 신청을 했어도 일본에서도 꼰대 원로들이 뭐라 할 가능성도 높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