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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2:08

선덕여왕(드라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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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물 관련3. 의식주, 문화 관련4. 사회 관련

1. 개요

드라마 선덕여왕의 전개와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퓨전 판타지 사극이며, 극에서 나오는 사건은 왜곡이 많이 되어있는데 그 정도는 연개소문보다도 심하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매우 악의적으로 왜곡시켰다는 평이다. 위서 의혹이 큰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도 전반적으로 모티브를 얻었지만 정작 드라마에는 그 화랑세기 필사본에서조차도 없는, 각색을 넘어 순수 창작한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사극이 역사와 100% 똑같을 수는 없고 똑같이 갈 필요도 없다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은 캐릭터 놀이와 그 대결에만 치우친 사극이다.

2. 인물 관련

3. 의식주, 문화 관련

4. 사회 관련

노리부 - 수을부 을제 - 수품 - 비담 - 알천
진평왕 선덕여왕
다음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순서이다.
진평왕 선덕여왕
일단 노리부와 세종이 실제로는 같은 인물이었다는 점은 넘어가더라도 비담의 편에 서서 반역을 일으킨 수을부의 경우 진평왕 시기부터 상대등이었기 때문에 원래 드라마 상에서는 비중이 더 높았어야 했으나 그저 화백회의에서 미실 편만 드는 대등 중 하나에 이후엔 자신의 이익을 반역을 일으킨 인물 정도로 묘사되었다. 게다가 을제의 경우 극중에서 진평왕이 천명공주를 잃은 시기에 삭탈관직 당해 쫓겨났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선덕여왕이 재기용 한다는 묘사가 있어야 하나, 그냥 넘어가버린 탓에 선덕여왕 치세 초기의 상대등은 엉뚱하게도 실제 역사에선 상대등을 지내본 적도 없는 김용춘에게 상대등 직위가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수품 역시 을제의 뒤를 이어 상대등을 지냈으나 아예 인물 자체가 사라져버렸고 용춘이 사실상 퇴출(...)된 이후 비담이 바로 이어받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래저래 누락되거나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다. 사실 공홈에서 을제 캐릭터의 설명을 보면 분명히 파직 이후 복귀해 덕만을 돕는 것으로 되어있다. 아마 미실의 난 때 공을 세운 후 복직해서 상대등에 임명되는 그림으로 갔을 확률이 큰데 배우 신구씨가 고령인 문제 등으로 재출연을 시키기에는 힘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안 나온다.


[1] 다만 필사본 화랑세기가 진서라는 소수설도 아직은 있기 때문에 소수설을 따른다고 그것만으로 역사 왜곡이라 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다. 이러한 소수설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로는 서강대 이종욱 총장이 있다. 물론 화랑세기 위서설이 현재로서는 압도적 다수설이긴 하다.[2] 그런데 미실은 이 드라마 뿐만 아니라 연개소문에서도 등장한다. 단, 연개소문의 경우 주 무대가 신라가 아닌 고구려이기 때문에 미실은 초반부에 단역으로 몇 장면에서만 등장하며, 당연하지만 이 쪽도 필사본 화랑세기를 참고한 것이다. 화랑세기상의 등장연대를 충실히 따라서 중견배우 서갑숙이 연기했다.[3] 해당 대사는 "네 이년! 네 년도 죽을 것이다. 네 년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빼앗기고 짓밟히고 혼자서 외로움에 떨다 죽을 것이다. 잠을 자도 잘 수 없고, 먹어도 먹을 수 없고 살아도 살 수 없고, 송장처럼 썩어가다가 비명을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이다! 비석도 없이, 무덤도 없이, 흔적도 없이 죽으리라!! 하여 역사에 네년의 이름은 단 한글자도 남지 않으리라!!"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대사인데, 대체로 온화한 역을 맡아왔던 윤유선 씨의 폭풍열연으로 듣는 미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기가 질릴 정도의 포스를 발산했다. 마야부인 항목에 동영상이 올라가 있으니 꼭 보길 추천한다.[4] 이는 사도태후, 미실 집안의 대원신통과 관련있다. 사도태후의 집안은 신라 왕실가에 색공을 들여 왕후가 되려는 의지가 강했는데 그걸 아들이 거절했으니 충분히 화낼 수 있는 문제다.[5] 다만 화랑세기에서는 외모가 아름답지만 사다함과 너무나도 닮아 그의 자식이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6] 같은 시대를 다룬 다른 사극 삼국기에서 비담은 완전히 할아버지로 등장한다.[7] 하지만 비담 자체는 기록이 별로 없을 뿐이지 엄연히 실존인물이 맞기 때문에 창작한 인물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실존인물을 제멋대로 써 놓고 비판은 피하고 싶은 제작진의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8] 삼국사기에서는 선덕여왕의 혼인 여부에 대해 기술된 바가 없다.[9] 비슷하게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광개토대왕의 인생 대부분을 다룬 드라마에 소수림왕하고 장수왕이 등장하지 않는 대참사 수준의 고증오류가 있었다. 이쪽은 심지어 명목상 정통 사극이였는데도 말이다![10] 사실 작중에서도 소개할 때 선덕여왕이 신라 27대 왕이고 무열왕이 신라 29대 왕이라고 소개에 그 사이에 왕이 1명(28대) 더 있다는 사실 자체는 간접적으로나마 기술했으나, 정작 그 28대 왕이 등장도, 언급도 나오지 않아서 드라마만 보면 묘한 혼동이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11] 확실히 천명공주 사망 후 덕만이 공주로 인정받기 전에 보여줬던 왕실파의 카드가 다 없어진 절망적인 모양새가 그림 만들기는 더 쉽다.[12] 사실 공홈에서도 김춘추는 주연으로 다룬 반면에 승만공주는 조연 중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초기 계획에서도 주역을 맡지는 않았을 것이다.[13] 문명왕후의 경우에는 공홈 인물관계도에는 김유신의 여동생이자 김춘추의 부인으로서 본명인 "김문희"로 올라가 있기는 하다.[14] 김유신과 동맹 이후 김서현의 양자로 입양된 월야가 김흠순이 되는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냥 증발되었다. 만약 그렇게 처리했다면 월야의 이후 행적 탓에 어찌 되었건 역사왜곡이긴 하다.[15] 삼국유사.[16] 삼국사기.[17] 다만 이는 2000년대에서 보았을 때의 통념이고, 1500년 전의 고대인은 현대인보다 수명이 짧았으니 50세면 충분히 노인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장 대중매체를 보더라도 80~90년대의 30대 남성 얼굴은 2010년대의 30대에 비해 노안이다.[18] 보종이 덕만 또래 나이라는 추정은 7회 때 나오는 상황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덕만이 임종이 쏜 화살에 맞은 보종을 치료 중일 때 미실 입장에선 보종이 실종된 것이라 석품을 시켜 보종을 찾으려 왈패 무리에게 보종에 대해 설명할 때 '상산 열외사 근처에서 실종/나이 15/검은 무명옷/키는 6척 정도/짙은 눈썹/외상'이라는 이야기를 했으니, 15년 후로 시간이 흐른 덕만의 또래일 것이다.[19] 최근에도 철인왕후, 옷소매 붉은 끝동, 달이 뜨는 강의 장신구 제작을 담당했다.[20] 원래 대본에는 옆나라 일본의 여왕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방송분에서는 편집되었다고 한다.[21] 문무왕의 경우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통일신라 시대부터는 '폐하'로 불렸다고 볼 수 있다.[22] 다만 중국 사서에서는 선덕여왕보다 앞선 여왕들인 야마타이국, 동여국의 여왕들을 가리키며 여왕이라는 말을 진작부터 쓰고 있었다.[23] 더군다나 신라가 고려에 흡수되고 나서도 신라 출신들 간의 암묵적 서열로 작용했다. 그런 골품제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여몽전쟁을 거치면서 신라계 고려인들 사이에서 신라 유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24] 정확히 말하면 시놉시스에선 미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바로 철수 선언하고 그것을 거부한 잔당들이 모인 칠숙의 난이 됐는데 연장으로 인해 설정이 변경됐다. 제작진도 창작이라고 인정한 상황.[25] 다만 이것은 변호를 하자면 할 여지가 있는데,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지진을 비롯해 용이 나타났다거나 그림 속의 개가 짖었다는 등 신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삼국사기 곳곳에 나타나는 서술 기법이기 때문이다. 이 지진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기보다는 서술 기법인 것으로 보았으므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것. 다만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근거도 없다.[26] 당연히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겠으나, 불가능하진 않다. 신라도 실크로드 교역의 끝자락에 있긴 했으니... 하지만 쿠쉬나메처럼 신라가 외국의 서적에서 언급된 적은 있지만 정작 신라에서 동로마 제국의 흔적이 나온 적은 없다.[27] 물론 왕권이 강력했던 신라 중대의 신문왕이나 경덕왕 때처럼 상대등을 왕이 멋대로 갈아치우는 사례도 있긴 했지만 선덕여왕 치세에 이런 인사는 불가능했다.[28] 진덕여왕 사후 알천은 실제로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거절하였다.[29]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는 성골이고, 김용수도 원래는 성골이었다가 족강된 진골이다. 김유신의 부모는 만명부인이 원래 성골이었다가 족강된 바람에 진골, 그리고 김서현은 골이 없다가 가야계에 주어진 진골이기에 같은 진골이라도 일단 다르다. 이에 비해 알천의 부모의 골품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다.[30] 이후 무열왕 시기에 사정부로 승격된다.[31] 다만 비담은 난을 일으키기 전의 정보, 즉 출신년도와 활약, 이전 작위 등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한 것일 수는 있다.[32] 다만 가야 제국설과 연맹설은 확실히 뭐가 진짜인지 밝혀진 바가 없다.[33] 설정오류로 보인다. 1-2화에서는 노리부가 화백회의를 주관하는 것으로 등장하데, 막상 미실이 거칠부를 숙청하려는 에피소드에서는 남편인 세종에게 상대등에 올라야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지만 만약 세종이 상대등이었다가 다시 추대된 경우라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세종이 오르기 전에 노리부가 임시로 담당했다고 해도 말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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