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1)
1. 개요
신라의 인물.진평왕 때의 대신으로 관등은 이찬(伊飡)에 이르렀으며, 630년에 서라벌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궁궐의 땅이 갈라졌는데 이 사건을 빌미로 631년에 아찬(阿飡) 석품(石品)과 함께 반란을 계획하였다가(칠숙·석품의 난) 발각되어 9족(族)[1]과 함께 처벌되었다.
2. 기타
가계 배경은 확실하지 않지만 미사흔의 증손자인 거칠부(居柒夫)와 미사흔의 아들이자 거칠부의 할아버지인 내숙(乃宿)과 한 글자씩 겹치는 것을 보아 미사흔계로 추정된다. 덧붙여 석품보다 관등이 높고 연좌제가 적용된 걸 보면 둘 중 왕위 요구자인 쪽이었는 듯하다. 만약 칠숙이 거칠부의 직계 후손이 맞다면 군공으로 명망을 날려 상대등까지 올랐던 거칠부의 후손이 사서에서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이 칠숙 때문일 수도 있다.사서에서 수을부가 588년에 상대등이 된 뒤 632년에 가서야 다음 상대등으로 을제가 나타나는데, 수을부가 숙흘종으로 추정되며 숙흘종이 530년대생임을 고려하면 632년까지 상대등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상대등을 수십 년이나 공석으로 삼지 않는 한 중간에 누락된 상대등이 더 있었을 것 같은데, 선덕여왕 재위 말기 비담의 난을 일으켰던 비담도 당시 상대등이었음을 고려하면 칠숙 또한 비담처럼 당시 상대등 신분이었을 수도 있다.
3. 미디어믹스
3.1. 선덕여왕(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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