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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2:30:39

데우스 엑스 마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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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발달
3.1. 기원3.2. 오늘날의 쓰임
4. 기준5. 독자들의 수용6. 다른 개념들7. 여담

1. 개요

χρὴ δὲ καὶ ἐν τοῖς ἤθεσιν ὁμοίως ὥσπερ καὶ ἐν τῇ τῶν πραγμάτων συστάσει ἀεὶ ζητεῖν ἢ τὸ ἀναγκαῖον ἢ τὸ εἰκός, [35] ὥστε τὸν τοιοῦτον τὰ τοιαῦτα λέγειν ἢ πράττειν ἢ ἀναγκαῖον ἢ εἰκὸς καὶ τοῦτο μετὰ τοῦτο γίνεσθαι ἢ ἀναγκαῖον ἢ εἰκός. καὶ μὴ ὥσπερ ἐν τῇ Μηδείᾳ ἀπὸ μηχανῆς καὶ ἐν τῇ Ἰλιάδι τὰ περὶ τὸν ἀπόπλουν.
As in the structure of the plot, so too in the portraiture of character, the poet should always aim either at the necessary or the probable. Thus a person of a given character should speak or act in a given way, by the rule either of necessity or of probability; just as this event should follow that by necessary or probable sequence. It is therefore evident that the unraveling of the plot, no less than the complication, must arise out of the plot itself, it must not be brought about by the Deus ex Machina - in the Medea, or in the return of the Greeks in the Iliad.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가 전자의 필연적 또는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도 플롯 그 자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중략)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5장, 영어 그리스어
고전 그리스어: ἀπὸ μηχανῆς Θεός(아포 메카네스 테오스)
라틴어: Deus ex machina(데우스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란, 그리스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의 하나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 가는 기법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쓴 수법으로, 기중기와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나온 말로[1] 매우 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사기 캐릭터나 연출 요소 등을 일컫는 말이다. ex machina(기계 장치로 구성된)이라고 줄여 말하는 경우도 있다.

2. 어원

한국에서는 고전 라틴어 발음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읽는다. 영어에서는 이 문장이 이미 영어 어휘로 삽입되었기 때문에 영어식으로 \[déiəs eks mάːkinə\](데이어스 엑스 마키너, 혹은 매키너 내지 머쉬너)라고 읽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계 장치로 무대에 내려온 신이라는 뜻이다. 엑스(ex)는 라틴어 어휘는 전치사로 쓰여 1차적으로는 '어떤 장소나 사물로부터(from)'라는 뜻이지만 재료나 구성품을 가리키는 용법도 있다. 예를 들어 anulus ex auro라고 하면 '금으로부터 온 반지'가 아니라 '금반지'라는 뜻이고, Homo ex anima et corpere라고 하면 '영혼과 육체로부터 온 인간'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 인간'이란 뜻이다. 영어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god from the machine이라고 번역하는데 사실 from에도 재료나 구성품을 가리키는 용법이 있다. swords from iron이라고 하면 '강철로 만든 칼'이란 뜻이다. 게다가 machina란 라틴어 단어에서 영단어 machine이 나왔으니 당연히 machine이란 단어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규상이 옮긴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새로 알기>(2011)에서는 이 글귀를 '기계 장치의 신'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machina를 일괄적으로 '기계장치'라고 해석하는 것을 두고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기계 장치의) 원리'나 '도구' 등으로 해석해야 더 적절타는 것이다. 그러나 라틴어 단어 machina는 기계나 도구 또는 무기란 뜻으로 쓰이거니와 가장 1차적인 의미는 '기계'(machine)'이기에 'god from the machine'이라고 영역함이 일반적이다. 아래의 삽화도 그렇고 구글에서 유래를 다루는 이미지들을 보면 다들 기중기 비슷한 기계를 그려놓았다. 연극 무대에서 신 역할을 맡은 배우와 기중기까지 포함해서 '신을 연출하는 장치'라고 표현한 것이다.

가끔 'dea ex machina'라고도 쓴다. 여기서 dea는 deus의 여성형으로 여신이란 뜻이다. 따라서 'dea ex machina'는 '기계 장치로 된 여신'이란 뜻. 발음은 데아 엑스 마키나, 영어식으로는 데이어 엑스 마키너 정도다. 그런데 남성형/여성형의 구분이 철저한 구미권에서도 이 단어는 잘 모른다. 그러니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두고 'deus ex machina'로 쓰면 된다. 꼭 남자 신을 집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뜬금없이 등장하는 해결책을 뜻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는 메리 수도 남성형인 '게리 스튜'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거꾸로 해서 '신에게서 나온 기계장치'라고 쓰려면 그냥 위치만 바꿔서 'machina ex deus'라고 해서는 안 되고, 'machina ex deo'라고 해야 라틴어 문법에 맞다. 이에 대해서는 라틴어/명사 변화 문서를 참조할 것.

3. 발달

3.1. 기원

파일:attachment/Old-Deus-Ex-Machina.jpg

당시 고대 그리스 연극에 널려 있던 클리셰는 다음과 같다.
1. 발단, 전개, 위기, 절정까지는 평범하게 인간의 생활이라는 틀에 맞춰서 진행

2. 기중기 같은 무대 장치를 타고 간지 풍기는 배우가 갑툭튀해서 "나는 올림포스/하늘에서 내려온 이다" 라고 자기 소개를 하더니 사악한 자를 벌하고 정의로운 자에게 상을 주며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은 공동체의 신앙심 고취를 위한 목적을 내포하기 때문에 신들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런 수법은 자주 쓰였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는 거의 대부분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뜬금없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한다.[2] 오디세이아도 마지막에 오디세우스에게 참살된 혼인 청원자들의 가족이 복수하려 하자 아테나가 등장해서 중재하는 장면이 있다.

이 클리셰를 비판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본인의 저서 시학에서 정립한 개념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비극의 플롯 내부에는 사소한 불합리라도 있으면 안 되고, 불가피한 경우는 비극의 외적 요소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 "인간이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예언 혹은 고지해야 하는 미래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만은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3.2. 오늘날의 쓰임

"The Eagles are a dangerous 'machine'. I have used them sparingly, and that is the absolute limit of their credibility or usefulness"
독수리들은 실로 위험한 '기계 장치' 같은 생물입니다. 저는 그들에 대한 묘사를 최대한 자제하였고, 이를 통해 독수리들에 대한 신뢰성과 유용성에 절대적인 제약을 걸었습니다.
J. R. R. 톨킨의 '독수리'에 대한 언급 中
Coincidences to get characters into trouble are great; coincidences to get them out of it are cheating"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캐릭터가 우연히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반칙이다(cheating).
픽사 스토리 아티스트였던 에마 코츠
현대에는 조금 의미가 변해서 갑툭튀한 사건 및 인물이나 만능의 존재, 아니면 먼치킨 캐릭터가 갑자기 모든 갈등과 적, 허점을 간단하게 해결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한국 드라마를 예로 들면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는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있다고 하자. 보통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슬퍼하면서 헤어졌다', '여자는 노력과 운이 따라줘서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고 남자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작은 단칸방이라도 감수하고 같이 살기로 다짐했다' 등 등장인물이 사건을 스스로의 판단이나 능력으로 해결하면서 끝난다. 여기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개입하면 '사실 그 여자는 자기는 몰랐던 재벌의 사생아고 부친이 안 보이는 데서 보호해 주고 있다. 그 여자의 출신 성분을 안 남자의 부모는 결혼을 당장 허락했다. 두 사람은 당장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3]

특별히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평범하다고 묘사된 주인공이 갑자기 먼치킨이 돼서 모든 사건을 해결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아예 주인공을 걸어다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톨킨의 독수리들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존재이지만 사정이 있어 등장하지 못하는데, 영화판에서는 이 이유가 생략되어[4]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보일 수 있다. 독수리만 탔으면 호빗에서도 빌보 파티는 고생할 것 없이 스마우그의 둥지에 갔다 왔었고,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 원정대는 손쉽게 날아서 절대반지를 파괴했을 것이다.

본래 이 용어는 미학 등 예술 관련 학문에서나 쓰이는 학술 용어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판타지 게임 장르가 한참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대 중반에 운영진이 조종하던 시스템 운용용 Game Master 캐릭터(흔히 겜마라 불리던)가 플레이어와 몬스터의 사이에 자주 그리고 자의적으로 개입하여 상황을 타개하던 때, 이를 비꼬기 위해 예시로 제시된 개념으로 크게 알려졌다.

4. 기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갈등을 해결하는 정도', '사전 서술'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아래의 것은 부차적이다.

위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것을 보통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부르며, 일부가 불충족된 것을 유형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5. 독자들의 수용

혹시 에우리피데스를 알고 계십니까? 옛 그리스인인데, 아이스킬로스 그리고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비극의 빅 스리라고 불리고 있어요. 마지막에는 마케도니아에서 개에 물려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에우리피데스죠. 저는 소포클레스를 좋아합니다만, 이건 취향의 문제니까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연극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엉망으로 혼란에 빠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점입니다. 아시겠어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각기 제 나름의 사정과 이유와 주장이 있고, 또 모두들 나름대로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모든 사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마는 거죠. 그건 그래요. 모든 사람이 정의가 통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일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카오스가 닥쳐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게 또 실로 간단하게 풀립니다.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예요. 너는 저리로 가라, 너는 이리로 와라, 너는 저자와 손을 잡아라, 너는 거기서 잠시 가만히 있어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중개인 같은 거죠. 그리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해결됩니다. 이걸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고 있어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는 노상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고 있어요.

그러나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로부터 스르르 내려와서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 정말 편할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中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서 위와 같이 다룬다.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대학을 같이 다니는 여성 등장인물 미도리의 부친의 병문안을 갔을 때 병석에 누워 있는 부친에게 건네는 긴 대사로, 자신과 미도리가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연극 영화 이론을 전공한 바 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보듯 하루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서 "너무나 쉬운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전개가 등장했을 때 이를 감동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어설프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어찌되었든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남용하고도 좋은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은 많지 않다. 치트에 가까운 것으로 뭐든 이야기를 끝내버리니 이야기의 결말이 매우 뻔해지며, 또한 갑툭튀한 무언가가 해결하는 방식이니 개연성이 엉망이 되고 독자 입장에서도 허탈해지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할지 이런저런 예상을 하면서 추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게 튀어나와 사건 해결해버리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작가가 사건을 원만하게 끝낼 실력이 없으니까 꼼수를 부린걸로 보이게 된다.

그렇기에 현대의 많은 독자나 관객들은 주인공이 성장하거나 벽을 넘음으로써 우정, 노력, 승리[8]를 얻기를 바라며 그 과정을 얼마나 긴장감이 넘치고 설득력있게 묘사하느냐가 작품의 질을 좌우하게 된다. 이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제약도 없이 개입하면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아 작품의 평가도 낮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하는 작품들은 보통 이런 작위적인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주인공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몰아넣거나 주인공이 스스로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만 도움을 주는 선에서 물러나거나 가장 마지막에 결정적인 순간에만 튀어나와서 일을 끝내버린다. 그런 식으로 갖가지 역경에 처해 고생하며 무너져 가는 주인공을 , 기적, 행운이라는 형태로 구원하거나 그들의 도움으로 주인공이 역경을 뛰어넘는 것이다. 아니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제약을 두어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유래가 된 그리스 연극의 관람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과는 달리 이런 전개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던 듯하다. 당대 연극은 대부분 신탁, 계시, 예언 등의 방법으로 작품 초반부터 신에게 물음을 구하고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신이 내린 과업이나 신들 자체가 등장인물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신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갈등 구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관객들도 이에 충분히 공감했다. 즉, 신적인 존재가 나오는 이야기가 오늘날의 창작물을 읽는 독자에게는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그리스 연극의 독자는 처음 볼 때부터 이를 감안하고 보기 때문에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현대에도 성경과 같은 종교 문헌을 읽는 독자에게서 유사하게 발견할 수 있다. 신자로서 성경을 읽는 이들은 기적과 같이 논리적 개연성을 어기는 현상이 일어나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신이라는 인물이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기적들을 통해 신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역시 성경 독서의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6. 다른 개념들

비슷한 개념으로 선파국(Eucatastrophe)이 있다. J. R. R. 톨킨이 동화를 분석하면서 제시한 개념인데 갑작스런 외부 요인의 개입으로 인한 해피 엔딩이라는 구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유사하지만 선파국 쪽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갑자기 등장해 키스함으로써 공주를 구하는 왕자라든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복선 없이 튀어나오는 절대적인 요소를 비판한다면 극 중에 등장한 요소는 반드시 모종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체호프의 총이란 것이 있다.

반대 개념으로 소설적 자유가 있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정도의 일관성이 있도록 전개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는 이러한 전개가 종종 보인다. 초중반까지는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으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느껴지게 된다. 특히 북한처럼 개인숭배가 심화된 곳에서는 온갖 사실적 갈등을 수령이 나타나서 해결하는 소설들이 흔한 편이다.

7. 여담


[1] 국어 사전에 등재된 내용.[2] 단, 반드시 신이 내려와서 해결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메데이아》에서는 복수를 마친 메데이아가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이아손을 향한 저주를 퍼붓는다. <알케스티스>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준다.[3] 여담으로 프랑스 희곡의 대가 몰리에르의 희곡이 대부분 이런 결말이다.[4] 호빗에서나 반지의 제왕에서나 소설에서는 독수리를 그렇게 활용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5]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강력한 신의 등장은 신앙심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강제로 이끌어내기 위함일 때가 많기에 작품 후반에 나온다. 처음에 나와서 많은 사건을 해결해봤자 그 뒤로 나오지 않는다면 작품 향유자들은 신의 존재에 경탄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6] 해당 사건으로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는 있어도, 원피스라는 만화의 큰 주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다.[7] 데스마치 1기 3화에서 신관의 선동에 넘어가 폭도로 변한 사람들을 원견-망원-암약-연기-확성-단죄-누명 스킬을 복선도 없이 즉석에서 습득해서 해결한다.[8] 점프 3대 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