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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서씨(삼국지) 문서 참고하십시오.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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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 |
1. 개요
<colbgcolor=#dddddd,#222>로마자 표기 | |
RR식 표기 | Seo |
MR식 표기 | Sŏ |
통용 표기 | Seo |
2. 徐
2015년 조사에서 751,704명으로 집계되어 전체 13위. 대한민국 전체 인구(2015년 당시에는 51,069,375명) 중 약 1.47%를 차지했다.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Se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Seo가 약 77%, Suh가 약 17%, Su가 약 1%, Sur 등 기타 표기는 1% 미만이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Seo,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Sŏ이다.
뿌리(본관 수)가 생각보다 많으며 개중에는 한족계도 일부 섞여 있는 반면, 부여 서씨는 백제 왕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게 백제 왕손인 부여융이 당나라 황제[1]에게 서씨라는 성을 받았다는 건데. 일단 기록이 없다.[2] 하지만 바이두백과 문서에는 부여융묘지명에 부여융이 후에 서여융(徐余隆)으로 성씨를 변경한 기록이 있어서 부여 서씨 족보의 부여융이 성씨를 서씨로 고쳤다는 기록이 사실일 수도 있다. 다만 부여 서씨 족보 기록대로 당나라 고종이 서씨 성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부여융이 스스로 중국식 성으로 고친 것이 당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걸로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3][4]
그 밖에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경기도 이천 서아성(徐阿城)에 자리잡으며 성을 서씨로 바꿨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한국 내 서씨들은 후삼국시대 신라의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5] 이천 일대의 호족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는 이천 서씨가 대종이다. 이천 서씨는 다른 호족 가문들도 그랬듯이 이후 고려 왕조에 출사해 기반을 다졌으며 크게 번성해 서필, 서희, 서눌, 서정, 서균, 서공, 서순 의 7명의 재상을 배출한다. 고려 시대 때는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분파인 달성 서씨, 대구 서씨[6]에게 밀렸다. 특히 대구 서씨는 조선 후기에 크게 현달한 가문이고, 달성 서씨는 현재 서씨들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달성 서씨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에 많이 살고 있으며, 대종인 이천 서씨는 경기도 이천시를 본관으로 하지만 의외로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 많이 살고 있다.
참고로 중국어에서는 徐를 Xú로 읽는다. 발음상으로는 許(Xǔ)와 성조만 다르니 주의. 중국의 서씨로는 서언왕, 서구왕, 서복,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서서, 영화감독 서극 등이 있다. 가상의 인물로는 서상기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씨들인 김이박은 물론이고 최씨, 정씨, 강씨, 한씨, 윤씨, 장씨, 임씨 등에게도 밀리는 편이지만 양씨나 홍씨, 황씨, 오씨, 신씨와 더불어서 어디가서 10명 중에 한두명은 보일 정도의 적지 않은 비율은 가지고 있다.
2.1. 본관
(인구순)- 이천 서씨 (대종가)
- 달성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대구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부여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연산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당성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경주 서씨
- 장성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가성 서씨
- 인천 서씨
- 나주 서씨
- 남양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경북 서씨
- 김해 서씨
- 남원 서씨
- 광주 서씨
- 달천 서씨
- 남평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절강 서씨
- 평당 서씨 (이천 서씨 분적)
- 서초 서씨
3. 西
서(西)씨는 2000년도 인구조사 때 전국에 1,295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진주와 충주 2개로 그 인구는 진주 1,022명, 충주 232명이었다. 이들은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처음 나타난 성씨며, 1960년에는 209명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도 서(西)씨가 청나라 때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근대에 들어와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보인다.1930년 국세조사 당시에는 대전광역시와 경상남도 김해시에 각각 1가구 씩으로 전국에 총 2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2가구 모두 불명으로 나타났는데, 1933년 충청남도 대전군 대전읍 동정(現 대전광역시 동구 신안동)에 살던 서용창(西龍昌)의 증언에 따르면, 국세조사 당시 서(西)씨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보면, 본래 성씨는 서(徐)씨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4. 서씨를 사용하는 인물
자세한 내용은 서(성씨)/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1] 당고종으로 추정[2] 당나라 황제가 부여융에게 성을 내렸다는 기록은 없고 백제 왕족설은 만성대동보의 기록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록이 없어서 신빙성은 낮은 편.[3] 《扶余隆墓志》中记载,唐朝大将军苏定方灭百济后,唐高宗李治以扶余隆为熊津都督,封百济郡公,仍为熊津道总管兼马韩道安抚大使。接任后修好新罗国,俄沐鸿恩,陪觐东岳。勋庸累着,宠命日隆,迁祑太常卿,再晋封王带方郡。扶余隆事君竭力,徇节亡私,屡献勤诚,得留宿卫。扶余隆后改称徐余隆[4] 그 외에 백제 왕실의 후손으로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의 후손이 고려시대에 환국하였다고 전하는 의령 여씨가 있다.[5] 이러한 직함을 갖고 있던 후삼국시대 호족들의 케이스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고려나 조선의 지방관처럼 중앙에서 임명해 내려보낸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호족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막기 위해 세력권을 인정하는 의미로 부여한 것이다. 즉 이 시기 이천 일대는 서씨 호족의 영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음을 나타낸다.[6] 둘 다 대구광역시를 본(本)으로 하는 성씨다. '달성(達城)'은 대구의 고호(古號)이자 현재 대구의 지명 중 한 곳(달성군)이고, 대구(大丘)는 대구(大邱)의 옛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