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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형의 종류를 다룬 문서.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사형 방법 중 교수형과 약물주사형, 총살형을 제외한 나머지 사형법은 현대에 와서 사라졌거나 존재하더라도 극히 일부의 국가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하거나 시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1][2] 이란 같은 비민주적인 국가조차 죄질이 극악무도하다는 이유로 사형 집행 방법을 달리하지는 않고 총살형을 시행하는 군형법을 빼면 민간인 사형수에게는 무조건 교수형을 집행하며[3] 중국도 사형 방법은 군형법은 총살형, 민간인은 약물주사형만 있으며 태국은 유일하게 사형수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게 하는 음독형을 시행한다. 이는 죄질이 아무리 무거워도 형벌의 집행 방법에 차이가 있거나 지나치게 잔혹한 형벌을 받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나마 온건해 보이는 사형 방법만을 채택한 결과다.
2. 과거의 방법
- 가로테
스페인과 중남미, 필리핀에서 했던 매달지 않는 교수형 사형도구 가로테를 이용한 방식. 사형수를 가로테에 앉히고 가로테에 달린 기둥에 기대게 하여 가로테에 매달린 끈에 사형수의 목이 오게 하는데 사형수의 목에 이 끈을 조이고 뒤에 있는 핸들을 돌리면 이 끈이 서서히 사형수의 목을 조르게 되고 사형수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다만 후대에 만들어진 가로테는 뒤에 달린 나사못으로 목 뒤를 뚫어 목뼈와 경추를 끊어 죽이는 형식으로 바뀌었으며 때에 따라서 입 밖으로 나사못이 튀어나오는 등 매우 잔혹해졌다.
- 거열형
소나 말 등의 힘을 이용해 사지를 찢는 형벌이다. 워낙 잔혹한 형벌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시행된 것이 아니라 대역죄인이나 패륜범죄자 등 죄질이 특히 나쁜 일부 죄수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런 식으로 죽을 시 오체분시라고 칭한다.
- 곤형(棍刑)
중국에서 작은 막대기를 입이나 항문으로 밀어넣는 형벌. 막대기가 다 들어가기도 전에 내장이 터져 죽게 된다고 한다. 김용의 소설 '협객행'에서도 나온다.
-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4]
잉글랜드에서 국가반역죄에 준하는 중죄를 지은 죄수들에게 사용했던 형벌.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 윌리엄 월레스와 영국의 테러범 가이 포크스가 이 형벌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죄수의 목을 최대한 대충 매달아 놓고 죄수의 배를 산 채로 갈라 내장을 모두 꺼내어 밑에 있는 모닥불에 던져 넣어 구워 버린다. 이렇게 하면 죄수가 자신의 내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이후 내장을 다 파내면 죄수가 살아 있던 죽어 있던 간에 죄수의 사지를 도끼로 토막내 버린다. "목 매달고 내장 발라 사지 토막내기"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실존했던 사형법 중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 중 하나이다.
- 구오형(俱五刑)
중국에서 머리, 팔, 다리와 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는 형벌. 통상적으로는 죽은 시체에 가하지만 산 사람한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고조 유방의 부인인 여후는 고조가 죽은 후 고조의 총애를 받던 척부인을 잡아 팔과 다리를 자르고 혀와 귀를 베어 내고 눈알을 파낸 후 돼지 우리에 던져넣었다고 한다.
- 내장 꺼내기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내거나 대장을 시작으로 다른 장들까지 모조리 뽑아내는 방법이 있다. 전근대의 중국은 물론 중세 유럽에서도 쓰였다.
- 능지형
몸의 살을 한 점씩 회를 뜨는 방법으로 집행하는 잔혹한 형벌. 죄의 무게에 따라 칼질 횟수에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 단두대
목만 내놓는 형태의 형틀에 죄인을 묶어둔 채로 죄인의 목 위로 무거운 칼날을 떨어뜨려 죄인의 머리를 잘라내는 방식. 기계적 장치를 이용해 참수형을 발전시켰으며 프랑스에서 마지막까지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현재 프랑스는 사형 폐지 국가다. 그나마 가장 자비로운 사형 방식인데 애초에 단두대를 만든 취지가 사형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 대나무 죽순형
중국과 일본에서 시행했던 죽순 위에 죄수를 묶어놓는 형벌. 죽순의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이용한 처형법으로, 죄수는 자라는 대나무에 서서히 몸이 꿰뚫리며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 마차텔로
이탈리아의 교황령에서 사용되었던 형벌. 망치를 이용하여 죄수의 머리를 매우 세게 내려쳐 집행하지만 망치의 살상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탓에 몇 번이고 내려쳐서 머리가 찌그러진 상태로 고통스럽게 살아 있는 사형수가 많았다고 하며 칼로 마무리를 지어주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이 사형 방법이 자세히 묘사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알베르 드 모르세르가 사형 집행 방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데 향후 있을 백작의 복수극에 관한 복선을 까는 부분이다.
- 사약
자결 명령을 내리는 형벌. 기본적으로는 명령과 동시에 독약을 하사해 준다. 자결 명령이기 때문에 약발이 잘 들어(...) 약을 먹고도 죽지 않았다거나 본인이 직접 원하는 경우 다른 방식으로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 수레바퀴형
사형수의 사지를 벌린 상태에서 고문 바퀴에 묶는 방법. 원래는 그대로 죽게 방치해 놓는 일이 많았으나 후에 발전해 약간의 변형으로 장대 위에 올려놓거나 물레방아와 결합하며 물고문, 불고문으로 바뀌기도 했으며 수레바퀴를 굴려 사형수의 사지를 짓누르거나 바퀴에 묶어놓고 몸을 늘려 놓은 뒤 둔기로 내려치는 등 국가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죄가 가벼우면 바로 집행하지만 중죄라면 고통스럽게 씹고 뜯고 맛보는 등 근대로 갈수록 잔혹성이 심해지는 형벌 중 하나이다.
- 스카피즘[5]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되었다는 극히 잔인한 사형법. 꿀과 우유를 미친듯이 먹인 뒤 몸에도 같은 것을 칠하고 호수 또는 늪에 띄운 배 위에 방치한다.[6][7] 배불리 먹이고 호수에 간다는 점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우유와 꿀을 배부른 정도가 아니라 배가 터질 기세로 엄청나게 많이 먹여서 괴로운 건 기본이고 몸에 발라 놓은 꿀과 우유로 인해 벌레떼가 꼬여 사형수를 물어뜯는다. 시간이 좀 지나면 우유와 꿀로 인해 설사를 하거나 구토를 하며 시체와 비슷한 썩은 우유와 꿀 냄새가 나서 더더욱 많은 벌레들이 꼬이고 그 중엔 물론 사형수의 몸에 알을 까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들이 성충이 될 때까지 뭘 먹고 살지는 뻔하다. 설사와 구토로 엄청난 양의 수분이 사라지는 것은 덤. 탈수와 기아에 시달리며 벌레들에게 갉아먹히며 천천히 죽어가는 잔혹한 처형법이다. 벌레를 씹어먹으며 더 살 수는 있겠지만 실수로 독충이라도 먹었다면 뭐... 참고로 이 처형법이 폐지된 이유는 잔혹해서가 아니라 돈이 많이 들어서다. 고대에 꿀과 우유는 어디서든지 품질이 문제가 아니라 구하는 것도 힘든 고급 식재료였다. 지금이야 농업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니까 흔해진 것이지, 고대에는 대량 생산이 안 되니 페르시아 제국 같은 강대국에서도 귀했는데 그걸 배 터지도록 먹여야 하니 일벌백계 효과를 감안해도 한 명을 처형하는 데 너무 큰돈이 들었고 죽는 기간도 너무 기니[8] 결국 사장되었다. 꿀과 우유 대신 고대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썩은 음식과 오물 등을 먹이면 어차피 토하고 부패하는 것은 똑같은 데다 더 큰 수치심과 고통을 줄 수 있고 비용까지 더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는 불명. 스카피즘이 시행되었다는 페르시아에는 이러한 처형이 시행되었다는 1차 사료가 전무하고, 앞서 말했듯 당시엔 구하기도 힘든 식재료인 우유와 꿀을 굳이 사형에 사용한다는 것이 개연성이 떨어질 뿐더러 이를 처음 언급한 사료의 출처가 고대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과장된 서술법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주장으로 악명이 자자한 그리스 역사가 크테시아스라는 점 때문에[9] 실존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 식형
사자, 호랑이, 곰, 거대한 뱀, 악어 등의 맹수에게 잡아먹히게 하는 사형법이다. 특히 뱀은 신체적인 구조상 먹이를 먹을 때 통째로 깔끔하게 삼켜 버리기 때문에 사형수의 사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성서 중 다니엘서에 나올 만큼 유서 깊은 사형 방식이며[10] 로마 제국에서는 이 형벌을 자주 사용했는데[11] 주로 사자나 표범의 밥으로 던져 주었다. 초창기 로마 제국에서 탄압했다던 그리스도교 신도들을 이 방식으로 처형했으며 로마 제국을 다룬 창작물에서 많이 나온다.(관련 그림) 비슷하지만 다른 걸로 영국에서 행해진 쥐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쥐에게 잡아먹히는 건 아니고 쥐를 몸에 올려놓고 온도를 올리는 것이다. 쥐는 온도가 올라가면 땅을 파 숨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쥐의 발톱이 살갖을 찢고 내장을 후벼파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다.
- 신체관통형
땅에 두꺼운 말뚝을 세우고 사형수를 이 말뚝으로 관통시키는 방식. 사형수 본인의 몸무게로 인해 서서히 말뚝에 꿰뚫리다가 장기를 관통하는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는데 몸이 관통되어 죽기까지 평균 이틀 정도 걸릴 만큼 잔혹한 사형이다. 블라드 3세[12], 이반 4세가 이 방식을 자주 사용했고 다리우스 3세가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포로 3천 명을 관통형에 처하기도 했다.
- 생리박피형
전신의 피부를 벗겨 죽이는 잔혹한 형벌.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 2세는 부패한 법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일반 범죄보다 더욱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그 예로 당시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던 시삼네스라는 재판관을 체포해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처형했으며 그 아들 오이네스를 재판관으로 앉힌 뒤 시삼네스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서 업무를 보게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사형수의 양면고(兩面鼓)를 만들어 관청에 걸어놓았다.
- 생매장
살아 있는 채로 땅에 묻는 형벌. 시황제와 항우가 자주 행했는데 특히 시황제는 분서갱유로 중국에서 폭군의 대명사 중 한 명이 되었다. 현대에는 공구리와 더불어서 조직폭력배들이 자주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 아페가
기원전 207년 스파르타의 폭군 나비스가 자신의 아내의 모습을 본떠 만든 처형도구 아페가를 이용한 형벌. 사람과 매우 유사한 머리를 가졌고 옷 안에는 가시들이 박혀 있다. 스프링을 이용하여 팔을 최대한 벌려놓은 상태로 고정해 놓고 처형수가 가까이 오면 등에 달린 구멍을 막대기로 찔러 고정을 푼다. 그렇게 되면 그대로 끌어안아 상대를 찔러 죽였다고 한다. 나비스가 초청한 재력가들이 처형 대상이었는데 국가를 위해서 돈을 기증하라는 명령을 거부할 시 술을 먹인 뒤 자신의 아내 아페가를 소개해 준답시고 사형장으로 안내한 뒤 처형했다고 한다.[13] 아이언 메이든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데 아이언 메이든과 마찬가지로 실존 여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아형
감옥에 가둔 뒤 물과 음식을 일절 제공하지 않고 굶겨 죽이는[14] 형벌. 대표적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가두어져 죽을 때까지 집행받았다. 다만 사도세자는 정식으로 경국대전 등 조선의 형법에 따라 처벌받은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영조가 자식이자 세자인 사도를 훈계하다 터진 사고로 죽었다고 처리됐다. 당시 조선의 법률엔 이러한 형벌이 없었다. 왜 영조가 굳이 이런 방식을 택했는진 문서 참조.
- 압사형(壓死刑)
무거운 것으로 눌러 죽이는 형벌. 국가마다 짓누르는 물건이 조금씩 달랐지만 주로 큰 바윗덩어리를 썼다.
- 요참형
죄인의 허리(腰)를 베어(斬) 죽이는 형벌. 보통은 중추신경계인 척수가 두 동강이 나기 때문에 즉사했다고 하지만 죄인의 허리를 베고도 잠시동안 살아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사마천이 이 형벌과 궁형 중 궁형을 택하고 목숨을 건진 뒤[15] 인류 역사서 불굴의 명저를 완성해 냈다.
- 용골쓸기
죄인을 밧줄에 매달아 바다에 던진 뒤 선체에 밀착시키고 용골을 넘어서 반대쪽에서 끌어올리는 형벌. 말로만 들으면 그냥 물에 넣었다 빼기만 하는 평범한 물고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 속에 빠뜨렸으니 숨을 쉬지 못 하는 질식의 고통은 기본이고 그와 더불어서 배 밑에 붙은 따개비로 인해 온 몸의 살점이 찢겨나가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며 설령 익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출혈과 감염 혹은 죄인이 아직 물 속에 있는 사이에 피냄새를 맡고 찾아온 상어의 공격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죄의 무게에 따라서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반복하거나 선수부터 선미까지 끌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형벌을 당하게 되면 설령 집행 당시에는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선상 의료 수준을 생각해 볼 때 사실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 익수형
바다나 강에 빠뜨려 익사하게 하는 형법. 특히 사적인 형벌 방법으로 상당히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단순하게 팔다리를 묶고[16] 묶은 물건과 분리되지 않도록 마대에 담아서 강이나 호수 등의 물에 집어넣기도 하고 의자나 목책 등에 묶어서 물에 담가 고문을 하거나 죽이는 방식. 몸을 묶고 배의 널빤지에서 배 바깥으로 걸어나가 바다로 스스로 뛰어들게 하는 해적들의 전통적인 처형 방식도 이런 방식의 일종이다. 1960~1990년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한창 독재자들이창궐했을 때 각 독재자들은 수많은 정치범들을 헬기에 실어다가 마대에 담아[17] 대서양에 던져 버렸다.
- 인간 대포
사형수를 큰 대포 앞에 묶어놓고 그대로 발포하는 형벌. 사형수는 대포알과 함께 날아가 바닥에 머리가 으깨지거나 전신의 뼈가 모두 골절되는 등 아주 처참한 몰골로 죽어간다.
- 증형(蒸刑)
사람을 솥에 넣고 쪄 죽이는 형벌. 후술할 팽형에서 물이나 기름을 넣지 않는 버전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단, 실제로는 사람을 솥에 넣은 후 불을 지피지 않고 바로 꺼냈다. 그러나 이 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은 실제로 상복 차림을 했어야 했고 피형자[19]는 죽은 사람 취급 받는다.[20] 다만 해당 문서에도 있지만 실제로 불을 지피지 않는 형식은 그 존재 여부가 의심받고 있다.
- 질식형
피집행자를 질식사시키는 형벌. 테러리스트 등이 흔히 사용하는 머리에 비닐봉지 등을 씌워 인질을 질식사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21] 과거 한국에는 도모지라고 해서 물에 적신 종이를 얼굴에 겹쳐 발라서 숨을 못 쉬게 하는 방식의 형벌도[22] 있었다. 몽골에서는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이는 것을 사형수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여겨서 사형수에게 가죽을 씌운 뒤 질식시키는 방법을 썼다고 전해지는데[23] 칭기즈 칸의 라이벌 중 한 명인 자무카가 이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 추락
절벽 같은 높은 곳에서 사형수를 던지거나 떨어뜨려 추락사시키는 형벌. 고대에는 산이나 협곡의 절벽에서 집행하였다. 근대로 갈수록 맨땅으로 떨어뜨려 죽이는 것보다 바다나 호수에 던져 익사하게 하는 익수형으로 변형되었다.
- 책형
본래 의미는 죄인의 신체를 심하게 훼손해서[24] 그 시신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단의 십자가형도 책형의 한 종류로 간주할 수 있다. 단, 일본에서는 책형이라고 하면 기둥 형태의 처형대에 묶어놓은 죄인을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을 의미한다.[25]
- 십자가형
죄인을 십자가 모양의 형틀에 못으로 박아 고정시키고 죽을때까지 방치하는 형벌로, 매우 고통스러운 형벌이다. 다만 예수가 이 방식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에 원래는 잔혹한 처형도구였던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스러운 상징으로 사용되게 되었다.[26]
- 톱질형
서양에서는 칼리굴라가 시행했고 동양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반역자에게 행했던 처형인데 방식은 다르다. 칼리굴라는 거꾸로 매달은 다음 사타구니를 벌려 수직으로 톱으로 잘라 두개골까지 쭉 내리는 식이었고[27]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방식은 피집행자를 목만 남겨서 묻고 톱을 하나 옆에 놔 둔 후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번씩 썰고 가도록 시킨다.[28]
- 팔라리스의 황소
기원전 6세기 시칠리아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처형도구 팔라리스의 황소를 이용한 형벌. 놋쇠로 만든 황소에 사람을 가두고 아래에 불을 질러 천천히 사람을 익혀 죽이는데 처형을 시작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이 산 채로 구워지면서 내는 비명소리가 정밀히 설계된 소 입부분과 연결된 금관을 울려 마치 황소가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방법이 방법인 만큼 피형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처형법이었겠지만 실존 여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피의 독수리
바이킹들이 시전한 매우 잔인한 형벌. 우선 등가죽을 잘라낸 다음 그 위에 소금을 뿌린다. 이후 척추에서 갈비뼈를 하나하나씩 뜯어낸 다음 허파를 뜯어내 독수리의 형상을 만든다. 이때 사형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야 전사들의 낙원인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니 그냥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뜻으로 풀이되곤 한다. 이런 형벌을 받을 정도면 죄인의 죄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무겁거나 집행측의 증오가 극에 달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물론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 팽형
죄수를 뜨거운 물이나 기름에 삶아 죽이는 매우 잔혹한 형벌. 중국을 비롯하여 외국에서는 실제로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빈 솥에 삶아 죽이는 시늉만 하고 다시 꺼낸 뒤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종의 명예형으로 변형되었다는 구전이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형벌이 시행되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 할복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라는 명령을 내린다. 말은 자살이지만 사실상 사형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사약과 비슷한 명예로운 사형에 가깝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진짜로 배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단도나 와키자시 대신 부채를 주고 스스로 배를 가르는 시늉만 한 뒤 목을 베던지, 아니면 그조차 없이 그냥 참수형으로 집행한 뒤 상부에는 할복했다고 보고하는 식으로 때웠다. 물론 진짜 단도로 자신의 배를 가른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 화살형
죄인에게 화살을 쏘아서 죽이는 형벌.
- 화형
불에 죄수를 산 채로 태워 죽이는 형벌.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 몰렸던 여자들이 이 방법으로 많이 죽었다. 잔 다르크도 이 방법으로 처형당했고 한국사에서도 신라 눌지 마립간 때 볼모로 보낸 미사흔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국으로 보낸 박제상도 이 방법으로 처해졌다. 인간이 느끼는 최악의 고통 1순위가 불에 타는 고통인 만큼 그 어떤 사형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사람을 불로 심판하는 것은 오로지 신의 권능이라는 교리가 있기 때문에 화형을 집행할 수 없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무아트 알 카사스베 중위 분살 당시 이슬람권이 분노한 이유도 그것이다.
- 19세기 말레이시아에서는 사람을 버팔로 가죽으로 꿰맨 후 그것을 불타는 태양에 노출시켜 가죽을 수축시켜 사람을 눌러 죽이는 처형 방식이 있었다고 한다. 질식은 기본에 화상, 압축 속에서 장기간 동안 사람을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매우 가학적인 처형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인도에도 처형할 사람에게 들소와 양의 가죽을 뒤집어씌우고 꿰맨 후 태양 아래 노출시키는 처형 방식이 있었다.
- 19세기 페르시아에서는 죄수들을 소석고[29]를 가득 채운 통에 빠뜨려 죽이는 형벌(Gatching)이 있었다. 소석고는 굉장히 빨리 굳는 성질이 있어 소석고 통에 빠진 죄수는 온 몸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으며 끔찍하게 질식해 죽었다.
3. 현대의 방법
- 가스형
가스실에 죄수를 집어넣고 사이안화 수소 등의 독가스를 주입하는 형벌.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에서 썼던 방법이라서 인식이 상당히 안 좋은 탓에 현재는 보편적인 형벌이 아니고 미국 일부 주에서만 시행 중이다. 다만 의학적으로는 가스를 적절한 것을 사용하고 가스실에 밀어넣는 대신 인공호흡기로 흡입할 경우[30] 고통은 가장 적다고 한다. 물론 인도주의적인 목적이라면 약물주사형을 써도 되지만 이쪽은 마취가 잘못되거나 체질상 약물이 잘 받지 않아서 제대로 마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정지 약물을 주입당할 경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런 변수로부터 자유롭다. 나치 같은 불순한 의도가 아닌 인도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시안화수소와 같은 독가스가 아닌 치사량의 마취가스 또는 농도 100%의 순수 질소 또는 아르곤가스를 사용하면 된다고 하며 슬픈 현실이지만 이 중 질소 가스는 고통 없는 자살용으로도 이미 상당수 사용된다. 합법적으로 구하기 쉬운 데다 지구 대기 조성비와 인간의 신체구조상 기압만 정상이라면 질소 농도를 감지하는 기관이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1기압의 100% 질소를 호흡하면 아무 고통없이 산소 부족 으로 그저 졸린 느낌을 받다가 스르륵 눈을 감고 그대로 영원히 잠든다고 한다.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무독성, 불연성 가스임에도 가스 탱크나 가스 누설의 위험성이 있는 곳에 가스 경보기를 설치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대규모 가스 누출으로 저산소 상황에 노출되어 질식 위험이 생길 경우 차라리 시안화수소나 염소가스 같은 독가스는 매우 고통스러워서라도 사고 당사자가 도망가려고 발버둥치지만 헬륨, 질소, 아르곤과 같은 비활성기체들은 눈치 못 채고 스르륵 잠들고 못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31] 2024년 1월 25일 최초로 질소 가스로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나왔다.# 사형수는 죽기 전 2분여간 경련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 교수형
죄수의 목을 매는 형벌. 현대 사회에서 사형 제도가 존재하고 실제로 시행되는 국가나 지역에서는 대부분이 교수형으로 집행하지만 군인에게는 최고 불명예에 해당하는 사형법이다. 한국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지 [age(1997-12-30)]년이나 되었지만 법률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며 민간인 신분 사형수는 교수형으로 집행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사형은 이 방식으로 집행한다.
- 음독형
독약을 마시게 하는 형벌. 현재 공식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태국에서만 시행하는데 군형법을 제외하고 총살형을 집행하는 장소가 부족하고 집행인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음독형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법에 정해진 형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사약과 거의 같다. 비공식적으로는 러시아에서 해외에 망명한 정치범들을 대상으로 폴로늄을 경구투여하거나 신경성 맹독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시행하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러시아 입장에서나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이지 실제로는 엄연한 암살 행위이며, 당연히 해외 국가와의 격렬한 외교 마찰은 물론이거니와 단교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국제법과 해당국의 법률과 주권을 무시하는 불법행위다.
- 약물주사형
혈중에 독극물이나 신체기능을 정지시키는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을 주사하는 형벌. 독극물을 주사하기 전에 먼저 마취제를 주사해서 사형수를 마취시키는 경우도 있다. 현재도 사형제를 유지 중인 선진국 혹은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이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한다.
- 장기적출형
사형수의 장기를 적출하고 이 장기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이식한다. 사형수 본인이 원해야 집행되며 사형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죄를 최대한 속죄하기 위한 노력을 보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사형 방법은 지나치게 잔혹하다는 이유로 사형수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관계 없이 채택하지 않고, 만약 사형수 본인이 장기기증을 원할 경우 교수형 등의 다른 방법으로 집행한 후 병원으로 이송하여 적출하는 경우는 있다.
- 전기의자형
전기가 통하는 의자에 죄수를 묶은 다음 전기를 흐르게 하여 감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
- 참수형
죄인의 머리를 잘라내[32]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 서양에서는 총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군인 신분의 사형수를 대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검을 이용한 참수형을 집행함으로써 군인으로서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 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시행하고 있다.
- 총살형
죄수를 총으로 쏘는 형벌. 일반인 대상으로도 집행하는 국가가 여럿 있긴 하지만 총살형은 기본적으로 현직에 복무하는 군인 신분을 가진 자들이 사형 판결을 받은 경우 현역 군인을 대상으로 집행되는 사형법이다. 전투에서 사용되는 무기를 이용해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죄인을 대상으로 한 처형이 아니라 군인이 사형을 선고받았을 경우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죽음을 맞게 해 줌으로서 군인으로서의 마지막 명예를 존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33] 물론 형틀이나 형구 등을 따로 제작하거나 준비해야 하는 여타 처형법과 달리 그냥 말뚝같이 피형자를 고정할 것과 장전된 총 한자루 가져와서 빵 쏘면 끝나기 때문에 형 집행의 준비와 시행이 간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군인 신분의 죄인을 정식 재판을 거쳐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제재나 즉결처분으로 죽이는 경우는 대개 이런 목적이다. 머리나 심장과 같은 신체의 급소에 탄환이 직격할 경우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사망하는 만큼 피형자의 고통이 가장 적은 사형법 중 하나이며 시신이 다소 끔찍하게 훼손된다는 점만 빼면 나름대로 인도적인 사형법이다. 다만 과격파 무장 단체나 테러리스트에 의한 살인이나 사적제재 행위로서 시행될 때는 의도적으로 급소를 피해서 여러발 쏘는 등의 방법으로 피형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 투석형
죄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뒤[34] 돌을 마구 던지는 잔인한 공개 처형의 방법 중 하나. 이란은 폐지했으나 아프가니스탄과 브루나이는 아직도 시행 중이다. 북한에서는 정치범수용소에서 행해졌다는 증언이 있다.
4. 사형 시기에 따른 분류
- 조선에선 사자의 원혼이 천지의 조화를 해친다고 하여 만물의 생장이 멈추는 추분 이후에 사형을 실시하는 게 원칙이었는데 이것을 대추(待秋)라고 하며 이 때문에 형벌을 담당하는 관리를 가리켜 '추관(秋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역죄나 강상죄 같이 십악대죄(十惡大罪)를 저지른 죄인은 대추의 대상에서 빠져서 즉각 사형을 집행하는데 이를 부대시(不待時)라고 하여 참형과 교형에 한해 각각 참부대시, 교부대시라고 불렀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추의 대상일 경우엔 참감후/교감후(監候), 아닐 경우 참립결/교립결(立決)이라 한다.
- 현대 중국에는 사형 집행유예 제도가 있는데 위의 대추/감후 제도가 "좀 더 기다렸다가 처형한다"는 의미라면 이쪽은 "좀 더 지켜보고 처형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1] 참수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만 집행한다. 그나마도 민간인 사형수가 참수당하기 싫다고 하면 총살형으로 대체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현역 군인 사형수는 무조건 총살형을 강제한다.[2] 다만 탈레반이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같은 무장테러단체가 한 국가를 점령해 버릴 경우에는 잔인한 사형 방식이 부활하는 경우도 있다.[3] 그러나 간혹 머리만 나오도록 땅에 묻고 죽을 때까지 돌을 던지는 투석형 같은 야만적인 사형법이나 사형은 아니지만 손가락, 손목 절단형 등의 끔찍한 형벌도 집행되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4] 뜻은 "목 매달고 내장 발라 사지 토막내기"[5] 棄艇(기정)형이라고도 한다.[6] 먹는 것을 거부하면 죽지 않을 정도로 심한 채찍질과 고문을 가하고 입을 벌려 쑤셔넣었다고 한다.[7] 사실 저 배도 정확히는 '나무 상자' 같은 것으로,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띄워놓는 용도다.[8] 죽는 데 무려 17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9] 사실 고대 역사가의 서술법이 과장되거나 주관적 경향이 있지만 크테시아스는 당시 기준으로도 혹평을 받을 정도로 도를 넘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도 '크테시아스처럼 거짓된 역사 기록을 남긴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10] 간신들이 다니엘을 고발하려고 다리우스 왕에게 종교적 금령을 내리라고 한다. 금령 선포 후에도 다니엘이 이를 지속하자 간신들이 다니엘을 고발하여 왕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자굴에 넣는데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가 사자들의 입을 막아서 다니엘은 생존하였다. 이후 다리우스 왕은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 밖으로 꺼내고 다니엘을 모함한 신하들을 한명도 절대로 빼놓지 않고 가족들까지 전부 잡아와서 사자굴에 집어 던졌다. 던져진 간신들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뼈를 모조리 부수고 뼈째로 잡아먹어 버렸다고 한다.[11] 'Damnatio ad bestias'라고 불렀다.[12]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블라드 체페슈(Vlad Țepeș)이며 통칭 블라드 가시공(公)이다. 참고로 브램 스토커가 지은 호러 소설 드라큘라와 동명의 등장인물 드라큘라 백작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13] 술에 취한 탓에 아페가를 사람으로 오해해서 다가가거나 뒤에서 억지로 다가가게 만든다.[14] 정확히는 굶어 죽기 전에 탈수로 죽게 된다.[15] 요참형을 택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면 본인은 죽지만 국가에서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고 명예도 지킬 수 있지만 궁형을 택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모조리 잃어버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역사서의 완성을 위해서 죽을 수 없었기 때문에 궁형을 택했다.[16] 이 때 물 속으로 확실하게 가라앉도록 큰 돌이나 납덩이와 같이 무거운 물체를 매달기도 한다.[17] 원래 아편을 대량으로 먹여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황에서 던지는데 그렇게 하고도 이를 악물고 아편을 극복하고 헤엄쳐 무인도에 불시착하거나 행여 시체가 다른 나라 해변에서 발견되는 일을 막기 위해 굳이 마대 안에 집어넣었다.[18] 치는 댓수가 정해져 있다면 장형이 되고 정해진 수따위 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 치면 장살형이 된다. 즉, 원래는 몇 번을 쳐야 할지가 정해져 있었는데 죄수가 곤장을 당하는 도중에 죽어 버렸다면 그것은 장형을 집행하던 도중에 죽은 것이지 장살형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19] 형을 당한 자[20] 사실상 사회적 매장이다.[21] 단, 테러리스트는 중죄를 저지른 사람을 정식으로 재판을 거쳐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형'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살해'라고 보는 것이 맞다.[22] 국법으로 규정된 형벌은 아니었고 사적제재로서 시행되었다고 한다.[23] 기록에 따라서는 가죽을 씌운 뒤 말로 밟아서 집행했다고도 한다.[24] 단순히 목을 벤다던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고어물을 만들어 버리는 정도를 의미한다.[25] 과거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던 시절에 기독교도들을 이 방식으로 신물나게 죽여댔다고 하는데 정작 죽음을 맞는 기독교도들이 "내가 감히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다니 이 무슨 영광인가!" 하며 오히려 감격해 하는 사태가 벌어져 이후에는 화형이나 참수형 등으로 집행했다고 한다.[26] 예로 성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자 "감히 내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리랴!"라며 역십자형을 당한다.[27] 그런데 웬만하면 배까지만 잘라내려서 큰 고통을 줬다.[28] 다만 일정 기간 동안 썰고 간 사람이 없으면 다시 파내서 살려주는 경우도 꽤 많았다.(...) 보통 죄가 적혀 있는 판자를 앞에 적어두고 가는데 중한 범죄(살인 등)는 목이 썰려 죽는 것보다 돌덩이에 맞아 머리 자체가 돌무덤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생계로 인한 범죄 또는 잘못은 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지 않을 범죄라면 음식이나 물을 줘서 일정 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보통 목 옆에 톱을 사용하는 것은 살인죄, 특히 살해당한 자의 가족을 위해 사용하라고 놓는 것이 주 이유였는데 가끔 대인배들은 톱을 강가에 던져버리고 대담히 용서하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29] 굉장히 빠른 속도로 굳으며 현대에는 주로 석고 깁스를 만들 때 쓰인다.[30] 물론 저항을 막으려면 팔다리를 침대에 묶어야겠지만...[31] 그나마 헬륨은 목소리가 바뀌는 것으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판단 능력과 과학적 지식이 미비한 어린 아이들이 호기심에 애드벌룬 등 대형 헬륨풍선 속으로 들어가거나 헬륨가스 봄베를 가지고 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질소나 아르곤은 일반 성인도 별도의 전문장비 없이는 알 방도가 없어서 용접가스 등이 들어찬 밀폐공간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훅 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32] 정확히는 칼이나 도끼 등의 날붙이로 목을 벤다.[33] 총기가 존재하기 전에는 참수형, 특히 검을 이용한 참수형이 이를 대신했다. 서양에서는 아예 죄인의 명예를 위해 호화로운 장식이 되어 있는 처형용 검이 개발되어 사용되기도 했다.[34] 대개 땅에 반쯤 묻어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