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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1:06:36

와키자시

파일:external/knife01.cafe24.com/JS-WA-HIROSHIGE-6.jpg
시라사야 형태로 보관된 와키자시
파일:88LORJl.jpg

脇差(わきざし)[1]
wakizashi

1. 개요2. 특징3. 매체에서4. 기타

1. 개요

일본도의 일종.

2. 특징

날 길이는 1척(30.3cm)에서 2척(60.6cm) 사이, 보통 40~50cm 정도로 타치코다치, 우치가타나에 비해서 다소 짧은 칼이다. 이보다 더 짧은 도신의 칼은 탄토가 된다. 기본적으로 구조상으로 우치가타나와 같으나, 종종 시노기즈쿠리(鎬造)[2]가 아닌 키리하즈쿠리(切刃造)[3]로 되어 있는 와키자시도 발견된다.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가 건물에 들어갈 시 우치가타나는 착용을 해제해야 하는데 와키자시를 착용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다. 우치가타나가 소총 내지는 기관단총이라면 와키자시는 권총과 비슷한 위치의 무기인 셈.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며, 전국시대에는 무기를 잃어버렸거나 을 쓰기 힘들 정도의 거리에서의 백병전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의 보조무기로 주로 이용되었다.[4] 말하자면 서양의 글라디우스커틀러스와 같은 쇼트 소드의 위치에 있는 도검으로, 서양의 롱소드세이버에 비견되는 체급을 가지는 타치나 우치가타나와는 구별되는 쓰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실전용 무기로서의 용도가 강조되었으며 짧은 칼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리치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프로 분류되는 무기인 탄토와도 구별되는 도검이었다.

우치가타나가 군용 도검의 주류가 되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이쇼 코시라에(大小存え)'라고 하여 카타나와 와키자시를 같이 패용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성립 이후에는 이러한 다이쇼 코시라에가 아예 기본적인 무사정장으로서 규정지어졌고, 원칙적으로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들은 우치가타나와 와키자시를 함께 패용하게 된다.

또한 에도 시대에는 평민들이 무기를 가지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이 와키자시만은 예외였기 때문에 여행자폭력집단 등이 와키자시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와키자시의 날 길이가 2척(60.6cm)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서, 제한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길이인 1척 9촌 9푼(60.6cm×1.99/2=60.297cm)의 날 길이를 가진 와키자시인 오오와키자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코다치(小太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쪽은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마저도 사실상 엄격하게 구분하지도 않는다. 굳이 소태도라고 구분하는 부류는 주로 이도류용으로 제작된 일체형 타치에 첨부(?)된 칼을 말한다. 반대로 다이쇼 코시라에인 경우에는 와키자시라고 구분한다.

그들의 무기는 칼과 총이 제일 정밀하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쌍칼을 차서 긴 것으로는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으로는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는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해유록에 따르면 와키자시는 투척용으로도 즐겨 사용되었던듯 하다.

3. 매체에서

4. 기타


[1] 脇差し, 脇指로 적기도 한다[2] 일본도에서 날의 단면의 형태에 따른 구분 중 하나. 칼등과 날 사이에 시노기(鎬)라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 형태로, 타치와 우치가타나는 거의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소위 말하는 육각도이다.[3] 시노기가 없이 단면에 5각형에 가까운 형태. 보통 단도나 타치가 생겨나기 이전의 대도 종류에 많이 보인다.[4] 이 점에서는 조선 전기의 환도와도 비슷하다.[5] 시스템상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근접 공격이지만, 초근접전이 주특기인 캐릭터 특성상 주 무기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질풍참도 이 칼을 칼집에서 뽑으며 쓴다.[6] 나뭇잎마을로 돌아오기 전 까지 사용.[7] 한국의 은장도나 장교에게 지급되는 권총이 자결용 혹은 즉결처분용이라는 루머하고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원래 보조무기들은 이런 루머에 자주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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