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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8:06:43

채찍질

파일:attachment/Whipping.gif

해당 인물은 .

1. 개요2. 위력 및 역사3. 현대적 변용4. 기타

1. 개요

이름 그대로 채찍으로 마구 후려치는 행위. 한자어로는 편달()이라고 한다. SM 플레이의 필수요소.

문명이 시작된 이래, 고문의 한 종류였던 동시에, 한편으론 가축을 다루는 데도 쓰이고 있다. 그 외 고대와 중세엔 의식의 일부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주종관계에서 벌을 준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21세기에 들면서부턴 BDSM의 대표적 행위로 널리 인식되게 됐다.

2. 위력 및 역사

고문 쪽의 경우 각종 매체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 형벌 중에서 이보다 더 많이 알려진 것도 드물 듯. 채찍이 주는 얇고 가벼운(?) 이미지와 간단하게 보이는 타격방식 때문에 얼핏 보면 아픈 것 외엔 별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그건 정말로 큰 오산이다.

채찍은 생각보다 강한 타격력을 가지며 굳이 살상용이 아니라도 채찍을 제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최소한 며칠동안 자리보전할 각오는 해야 한다. 다만 특성상 날붙이에 비해 살상력이 높지 않긴 한데 오히려 그점이 고문, 체벌 도구로 쓰기에는 더욱 좋다고 할수 있겠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휘둘러도 된다는 말은 아니니까 철창신세 지기 싫으면 쓰지 말자. 여기서 살상력이 높지 않다는 말은 단순히 한방에 확실히 상대를 죽인다는 보장이 없다는 소리일 뿐이다.

채찍을 휘두를 때 어디 부딪힌 것도 아닌데 쫙쫙 하는 파공음이 들리는데 이것은 순간적으로 음속을 넘었을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무엇보다, 채찍이 무서운 점은 상대가 채찍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방어자세 상관없이 상대를 타격할 수 있다. 따라서 냉병기를 막으려는 식으로 채찍을 막으려 했다간 정말 큰일이 나게 되는데, 이러한 원리에 착안돼 만들어진 것이 도리깨나 쌍절곤 등의 곤, 편이라 불리는 무기다. 픽션에선 채찍을 휘둘러 상대방의 검을 칭칭 감아 무력화시키는 패턴이 종종 보인다. 다만 채찍은 그 특성 상 숙련이 어려운데다가, 튼튼한 갑옷을 입거나 방패를 들고있는 대상을 상대로는 너무나 쉽게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실제 전장에서 무기로 사용된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만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은 것이, 무시무시한 리치가 있다. 검은 1미터만 떨어져도 상대를 살상하기 어렵지만[1] 채찍은 3미터 밖에서도 어렵잖게 상대를 살상할 수 있다. 심지어 쇠구슬같은 것이 박힌 채찍으로 공격할 경우엔 매질이 거듭되면서 근육을 넘어 에도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쇠구슬이 안 박혀도 제대로 당하면 뼈가 상한다. 하지만 쇠구슬이 박히면 그것이 무게추 역할을 하면서 채찍에 무게와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쇠구슬 자체에 닿지 않더라도 큰 피해를 입는다.

때문에 채찍질을 고문으로 동원할 경우엔 숙련된 이가 채찍을 휘두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히려 숙련자가 아닐 경우에는 몸이 개발살나는 걸 넘어 끔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숙련자는 채찍을 날려서 원거리에서 맞히는 게 아니라, 채찍이 돌아올 때 맞힌다. 이렇게 되면 가죽을 상하게 하고 고통을 주지만 근육이나 뼈가 상하지는 않기 때문인데 이건 꽤 고단의 숙련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냥 맞히면 당연히 끔살당하지만 이런 스냅식으로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어쨌든 결코 가벼운 형벌이 아니다.[2] 고통만을 줄 수 있는 높은 스킬을 가진 숙련자가 아닌 자가 채찍을 들었을 때 이미 그것은 사형의 완곡한 표현, 혹은 곱게는 안 죽인다는 뜻이라 봐도 좋다.

태형 등에서 채찍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도 채찍으로 죽지 않을 만큼 고통을 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막대기로 후려쳐 사람을 실신하게 만드는 수준의 태형을 가하는 예멘에서조차 채찍은 쓰지 않는다. 진짜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현대 사회에서 죽을죄를 지었다면 어설프게 태형을 선고하는 게 아니라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에도 시대까지의 일본의 부교쇼에서 부교들이 죄인들을 고문하거나 형벌을 내릴 때 쓰며, 시대극 등지에서도 종종 보인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줄곧 형벌, 고문 도구로 사용되었고 남북조의 북주 연간까지 채찍형, 장형의 구도로 형벌을 적용해왔다가 수 문제가 채찍형이 너무 잔혹하다고 하여 채찍형을 폐지하고 장형, 태형의 구도로 형벌을 재정립하였다. 하지만 법적으로만 사라졌을뿐 채찍을 고문 도구로 사용하는 관례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한국역사에서 삼국 시대부터 일방적 형벌도구 쓰였다가 조선 시대에도 채찍을 고문 도구로 사용한 사례가 존재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쿠란에 따라 간통한 자에게는 가죽채찍 100대의 형벌이 내려지는 곳도 있다 [3].

고대 로마에서는 십자가형을 하기 전에 우선 사형수에게 기절할 정도로 모진 채찍질을 가했다. 당시 로마에서 쓰던 형벌용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당 채찍을 휘두르는 병사기분에 따라 훨씬 가닥 수가 많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속에는 쇠 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의 치명적인 흉기 등이 박혀 있었으며, 거기다가 이 가죽을 하룻동안 물에 담가 불려놓아 무게를 무겁게 만든다.

이를 사용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면 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상처난 곳이 벌어지고, 살이 찢겨져 나갔다. 이런 채찍질부터 군 형벌처럼 단순히 몇 방 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할 정도로 혹독하게, 어깨에서 시작하여 등, 팔, 가슴, 복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까지 전신을 무자비하게 후려친다. 이렇게 얻어터지면 사형수는 피부 밑의 골격 근육까지 찢어져서, 살은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의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네로 황제가 폐위된 후 이 채찍형을 당할거란 말을 듣고 자살할 정도로 무서운 형벌이었다.

살상용은 끝에 무게추용 납덩이를 넣고, 형벌용 같은 경우 쇠심을 박거나 쇠구슬을 곳곳에 박거나 하는데, 구슬이 살을 어렵잖게 찢고 들어가 나올때 다시 찢어진 살을 후벼파면서 나오기 때문에 진짜로 한 방에 뼈와 살을 분리하기도 한다.

가축을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라, 채찍의 종류와 휘두르는 횟수 등을 잘 가려야 한다. 아무리 가축이 인간보다 튼튼한 몸을 지녔다 해도 까딱 잘못하면 얄쨜없이 다치기 때문. 이를테면 타격에 대한 저항력은 인간과 넘사벽인 황소도 기다란 채찍으로 잘못 내려쳐 머리같은 곳에 맞으면 한 방에 끔살당한다.

어렸을 때 소를 끌고 꼴을 베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느 시골에서든 어른이 되지 않으면 절대 채찍류의 도구를 주지 않는다. 어린애라도 소를 끔살... 까진 아니더라도 병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몸을 다칠 가능성도 높고. 거기에 어설프게 휘두른 채찍에 황소가 열받아서 애를 갈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코뚜레가 있는 것이다.)

13~14세기 중세유럽에서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종교의식의 하나로 유행하기도 하였다. 초기엔 십자가형 이전에 태형을 당한 예수님의 희생을 상기하자는 상징적 행위로 출발했으나, 점차 자기 몸에 스스로 형벌을 가함으로써 고행을 통하여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참회한다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었고, 이후 흑사병 같은 미증유의 재앙이 창궐하자 광신도들과 순례자들에 의해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이런 집단적 행동의 원인은 다름아닌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을 신의 분노라 여긴 사람들이 엄청나게 고행하면서 우리 죄를 회개함을 행동으로 증명하면 신이 용서해주시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사이비미신을 믿어버리고 일부 수도승들이나 행하던 채찍질 고행을 집단적으로 행한 탓이었다(...)

이렇게 채찍질로 서로를 후려갈기면서(...) 돌아다니는 행위자들은 채찍질 고행단(Flagellants)이라고 불리며 유럽 여기저기를 순례하고 다녔다.[4][5] 그러나 그들의 진상은 말이 고행이지 사실상 집단자살 지원단체나 다름없었다.

일단 채찍질 고행단은 옷도 안 갈아입고 다니는 주제에[6] 뻑하면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 다녔는데다가[7] 순례하다가 아무데서나 드러누워 있는 것도[8] 주기적으로 반복하였기에 결국 온 몸이 염증과 질병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은 순례랍시고 다른 지역들을 돌아다녔기에 결과적으로는 아직 병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에게까지 흑사병 등의 전염병을 옮기는 훌륭한 매개체로 작동했다.

이후 채찍질 고행단은 점점 막가파 + 광신도 + 사이비적 면모로 치달아간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편승하는 범죄자 무리까지 늘어났고,[9] 유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주는 피해도 상당했던지라(...) 로마 교황청은 이러한 채찍질 고행단들은 이단신앙으로 판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워낙 유행했기 때문에 지금도 몇몇 유럽도시의 사순절 행진대열에서 사람들이 흰색 두건을 쓴 채 채찍질 고행단의 의식을 재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10]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알비노 성직자 사일래스가 하던 것도 이거다. 다키스트 던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고행자도 여기서 유래했다.

노예제의 역사가 깊은 국가에서는 주인들이 노예를 인권은 고사하고 동물과 같이 취급했기에 채찍질로 다그치는 것이 예사였으며, 이를 묘사한 그림이나 흑백사진들이 제법 남아있어서 노예제도가 얼마나 반인륜적이고 끔찍했는지 시각적으로 여실히 보여준다.#(혐짤이 될 수도 있으므로 링크)[11]

3. 현대적 변용

현대에 들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겉치레로다도 법치주의를 포함하게 되면서, 수사기관에서 고문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채찍질도 피부에 영구적 외상을 남기는 가죽 채찍이나 밧줄 채찍을 사용할 경우 피의자측 변호사나 여론의 반발을 불러오게 되기 때문에, 20세기 이후에는 수사기관에서는 타격력은 일반 채찍과 비슷하면서 피부 외상을 잘 남기지 않는 고무호스로 채찍질 고문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SM에 동원되는 채찍질의 경우 위의 문제 때문에 보통 얇고 가벼운 채찍이 동원된다. 그런 만큼 그 고통은 위의 형벌로서의 채찍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즐거운 시간(...)이 끝난 다음엔 필연적으로 욱신거리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SM에서 권장되는 스팽킹 채찍 사용법은 힘과 스냅을 주지 않고 최대한 가볍게 쓸어내리듯 쳐야한다. 먼지떨이로 먼지를 털때를 생각하면 될듯. 이러면 소리만 크지 실제로는 아프지 않다. SM 플레이는 분위기를 내기 위함이지 실제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4. 기타

위 가축의 용례에서 파생되어,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처럼(주마가편), 윗사람이 따끔한 충고를 통해 손아랫사람을 분발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과 연결되어 사람에게 행동을 자극하는 강경책을 채찍질, 유화책을 당근이라고 은유해 표현한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용어가 이것.

태풍의 이름 중 하나인 하구핏은 채찍질을 뜻한다.


[1] 검을 맞힐 순 있어도 힘을 싣기가 어렵다. 상처를 줄 순 있어도 죽일 수 있다고 장담하긴 힘들다.[2] 이런 도구를 이용한 상해 경우 흉터가 남는 것은 당연하지만, 채찍의 경우 특유의 흉터가 아주 크게 남는다. 어떻게든 숨길 수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 채찍질을 처벌로 사용했던 영국군이나 로마군의 경우 이러한 흉터를 보고서 전/현직 군인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창작물에서도 노예거나 노예였던 과거를 가진 캐릭터의 클리셰 중 하나로 채찍으로 인한 흉터가 자주 쓰인다.[3] 24:2절[4] 이들은 처음에는 2-300명의 규모로 시작했다가 이윽고 만 명이 넘어가는 대규모 집단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이들의 인기가 무척 좋아서 너도나도 고행단이 방문할 경우 이들을 구경하러 가거나, 아예 한 술 더떠서 이들의 채찍질 고행에 참여하고자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고행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흑사병이 가라앉기는 거녕 계속 창궐하고, 교황에겐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고행단 자체도 더욱 막장조직으로 변질하면서 여기저기에 문제를 일으키고 요상한 소리를 주장하는 사이비 광신도 모임이 되어버리자 자연히 인기도 식었고 규모도 쪼그라들다가 결국 와해되었다. 겸사겸사 교황청 측에서 나서서 당시 고행단의 주요 지도자들을 잡아다 처형해버린 것도 고행단의 와해에 영향을 주었다.[5] 아무래도 좋을 여담으로, 분명 이 집단은 고행단체인 주제에 배우자의 허락과 스스로 고행 생활 와중에 먹고 살 수 있을 재산이 있는지의 여부를 다 따지고 나서야 지원자를 자기 집단에 넣어줄지 말지를 결정했다고 한다(...)[6] 규정상 옷이 더러워져도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거나 하는 것을 하면 안 되었다고 한다. 물론 뒤에 그들이 행했던 것들을 보면 옷을 갈아입는걸 꾸준히, 제때제때 했더라 해도 상태가 나아졌을 리는...[7] 이들이 쓰는 채찍은 단순한 채찍이 아니라 고문용으로 가시(징)를 박아둔 채찍이었기에, 채찍질에 당할 경우의 부상이 일반적인 채찍의 경우보다 더 심했다. 상처가 깊게 나는 것은 당연지사에, 잘못하다가 채찍에 달려있던 가시가 그대로 살 속에 박히기도 했다고.[8] 보통 고행단 인원들이 원을 그리며 돌다가 어느 시점에서 멈춰서서 닥치고 드러눕는 규정이 있었는데, 문제는 도저히 누울 수 없는 곳(물웅덩이, 모래밭, 오물이 있는 곳(...), 날카로운 자갈들이 깔린 곳 등)에서라도 무조건 누워야 했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들의 몸에서 저렇게 할 때 땅과 마주하게 되는 부위가 다름아닌 등인데, 이미 채찍질로 상처가 난 등을 갖다가 비위생적인 환경에 직접 접촉시키는걸 주기적으로 반복해왔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진...[9] 채찍질 고행단은 기본적으로 병의 타파와 회개를 위한 순례자들의 모임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초기엔 별로 경계하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그래서 그걸 노린 범죄자들이 고행단의 무리에 은근슬쩍 끼어들어가서 순례자인 척 하고 돌아다니면서 범죄를 행하거나 하기도 했다고(...)[10] KKK의 두건과 비슷해보일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므로 사순절 행진대열에서 희고 길다란 꼬깔두건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해도 오해하지 말자.[11] 채찍으로 인해 터진 등의 상처가 아물면서 나무 뿌리처럼 켈로이드 흉터 조직이 형성된 흑인 도망노예의 사진. 미국에서 노예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되는 데 기여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