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조셉 "빌" 버베이시 William Joseph "Bill" Bavasi | |
출생 | 1957년 12월 27일 ([age(1957-12-27)]세) |
뉴욕 주 스카스데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버지 버지 버베이시[1], 형 피터 버베이시[2] |
학력 | 샌디에이고 대학교 |
프런트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마이너 리그 어시스턴트 (1981~1982)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팜 디렉터 (1983~1990)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선수육성팀장 (1991~1993) 캘리포니아 - 애너하임 에인절스 단장 (1994~199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수육성팀장 (2002~2003)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 (2003~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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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프런트이자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단장직을 역임했다. 실제 발음과는 차이가 있으나 스펠링을 그대로 읽은 '빌 바바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2. 경력
2.1. 에인절스 시절
단장 경력은 1994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시작했다. 이 때부터 안 되는 단장의 조짐이 보였는지 1995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는 아직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막판 붕괴의 주역이 된다. 8월 16일까지 2위와 10게임 반, 3위인 시애틀 매리너스와는 11게임 반차로 앞서 나가던 에인절스는 이후 3승 18패로 무너져 내렸다. 막판 5연승으로 간신히 시애틀과의 1게임 플레이오프까지 몰고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1게임 플레이오프에서 랜디 존슨을 앞세운 시애틀에게 무릎을 꿇었다. 1986년 통한의 패배 이후 9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꾸던 에인절스 팬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3]그 후로 모 본에게 6년 80M의 당시 역대 최고계약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결국 먹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에인절스는 버베이시 재직 중 두 번 다시 포스트시즌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항명 파동으로 당시 감독 테리 콜린스와 나란히 99시즌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에인절스를 떠났다. 그의 후계자인 빌 스톤맨이 취임하자 마자 영입한 감독이 마이크 소시아였다. 그 후 이 감독이 에인절스에서 02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진출 후 2002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고, 04년부터 09년까지 06시즌 제외하고 매번 지구우승을 기록했다.
다만 에인절스의 버베이시가 그래도 시애틀 시절보다 나았던 것은, 드래프트에서 트로이 글로스를 지명해 2002년 에인절스의 우승에 어느 정도 공헌하기는 했다. 약쟁이긴 했지만, 뭐 시애틀은 우승은 커녕 포시도 계속 못나갔었으니 말이다.
2.2. 전설이 된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그 후, 다저스에서 선수육성팀장으로 일하다 2004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단장에 취임하면서 단장직에 복귀했다.그러나, 시애틀 매리너스의 단장으로 재직하며 야구 역사상 최악의 프런트 오피스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버베이시가 맡은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내에서 손에 꼽는 강팀 중 하나였는데, 2001년에는 이치로를 앞세워 무려 116승을 하는 등 엄청난 강팀이었으나 이후로 21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결정적으로 2003년 93승이던 시애틀은 2004년 바로 63승으로 30승이 빠졌다.[4]
우선 FA 전적이 화려하다. 카를로스 실바, 리치 섹슨, 제프 위버, 재러드 워시번, 미겔 바티스타 등 그의 FA 계약은 전부 망했으며, 그나마 아드리안 벨트레[5]와 호세 비드로[6]만이 변호의 여지가 있는 성적을 냈다. 최훈카툰에서 요약 정리해줬다(마지막 컷) 또한 전임 길릭 단장이 데려온 사사키 가즈히로와 스즈키 이치로라는 일본산 성공작[7]과 달리 버베이시가 데려온 일본산 선수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몇 년 썩다가 퇴출 되었다.[8]
또한 드래프트에서 성과가 좋지 못했는데 대표적으로 2005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 픽으로 제프 클레멘트를 지명하면서 트로이 툴로위츠키, 앤드류 맥커친, 라이언 짐머맨, 라이언 브론, 제드 라우리, 제이 브루스 등을 모두 걸렀다.[9], 2006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클레이튼 커쇼와 팀 린스컴[10] 과 맥스 슈어저를 거르고 브랜든 모로우[11]를 지명한 것이 버베이시의 역대급 뻘짓으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2007년 전체 11순위까지 밀려온[12] 제이슨 헤이워드를 거르고 필립 오몽을 지명한 실책도 빼놓을 수 없는 드래프트 사례.[13] 상대적으로 드래프트 부분은 덜 알려져 있지만 전문가들은 드래프트 실패를 버베이시의 최대 실패로 보는 사례도 많을 정도. 여기에도 잘 나와있다.
그래도 첫 시즌 이후로 성적이 상승하여 69, 78승을 거쳐 2007년에는 88승으로 5할이 넘었다. 그러나 이 해 득점보다 실점이 많았던 점에서 알 수 있듯 운빨이었고 이것은 길게 가지 못한다. 07-08 오프시즌 에릭 베다르 트레이드와 FA 카를로스 실바의 대실패, 그리고 변화 없었던 타선의 붕괴로 시애틀은 08시즌 61승으로 추락. 이 해 시애틀은 연간 페이롤 1억 불을 쓰고 100패를 한 최초의 팀이 되었고, 버베이시는 시즌 중에 짤리면서 시애틀 단장 생활을 끝냈다. 그리고 시애틀은 2022년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까지 무려 21년에 달하는 암흑기를 겪게 된다.
2.3. 이후
2008년부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스카우팅, 선수 개발, 국제 운영 담당 부사장을 6년간 역임했다. 2014년부터는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국 선임 디렉터를 맡으며 동시에 아마추어 야구 관련 업무에도 종사하고 있다.3. 트레이드
그의 훌륭한 안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단연 트레이드. 유망주건, 베테랑이건, 그저 그런 선수건 가리지 않고 시애틀로 오는 선수는 망가지고 나가는 선수는 맹활약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 카를로스 기옌 ↔ 후안 곤잘레스 + 라몬 산티아고
기옌은 팀을 나가자마자 3할 20홈런 97타점을 기록하고 몇년간 타이거즈 주전 유격수가 된다. 데려온 선수들은 모두 망했고 대신 주전 유격수로 FA 영입한 리치 오릴리아는 OPS 641을 기록하며 방출당하시피 트레이드된다.
- 시카고 화이트삭스 : 프레디 가르시아 + 벤 데이비스 ↔ 제레미 리드 + 마이클 모스 + 미겔 올리보
가르시아는 로테이션에 빠르게 자리잡아 화이트삭스의 2005년 우승에 일조했지만 외야수 탑 유망주였던 제레미 리드는 4년 이상 공들이고도 실패했으며, 리드를 키운다고 자리를 잃은 랜디 윈, 추신수, 애덤 존스는 다른 팀으로 나가서 모두 맹활약했다.[14] 여기에 트레이드로 데려온 마이클 모스도 워싱턴으로 옮기고 나서야 타격 포텐이 터졌다.[15] 어수룩한 단장 소리를 듣던 화이트삭스 단장 케니 윌리엄스의 우승에 큰 도움이 된, 어쩌면 두 단장의 운명을 바꾼 트레이드.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랜디 윈 ↔ 제시 포퍼트 + 요빗 토레알바
라울 이바녜즈, 스즈키 이치로에 제레미 리드가 가세해 실력 대비 지나치게 적은 기회를 부여받은 윈은 트레이드 직후 두 달동안 14홈런을 치고 07-08시즌에도 3할을 치는 중장거리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그 댓가로 얻어온 선수는 망한 투수 유망주와 백업포수.
- 시카고 화이트삭스 : 맷 손튼 ↔ 조 보차드
만년 유망주인 두 선수를 맞바꿨지만 결과는 정반대. 화이트삭스는 메이저 전체에서도 수준급인 좌완 불펜을 얻었고 조 보차드는 시애틀에서 9타수 2안타를 치고 웨이버 공시된다.
- 필라델피아 필리스 : 제이미 모이어 ↔ 앤드류 볼드윈 + 앤디 바브
이제 한계가 왔다고 생각된 제이미 모이어는 필리스에서 56승을 더 거두며 2008년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그 대신 받아온 마이너리거 둘은 메이저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추신수 ↔ 벤 브루사드 + 현금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 에두아르도 페레즈
2006시즌 잘나가던 1루수 둘을 데려오면서 유망주 둘을 내준 셈인데, 브루사드는 타율 1할이 떨어지고 2007시즌 후 팀을 떠났으며 페레스는 OPS가 3할이 떨어졌고 2006시즌 이후 방출되며 그대로 은퇴. 반면 클리블랜드로 간 둘은 각각 5툴 우익수와 5툴 유격수로 성장했다.[16] 클리블랜드는 사이영 투수 둘, CC 사바시아와 클리프 리 트레이드보다 버베이시와의 이 거래에서 얻은 게 더 많았다. 시애틀이 추신수 대신 키운 유망주 제레미 리드는 대차게 망했다.[17]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라파엘 소리아노 ↔ 호라시오 라미레즈
특급 마무리로 성장한 소리아노를 주고 받아온 건 4점대의 평범한 선발. 그는 시애틀에서 8승 7패 7.16을 기록하고 방황 끝에 12시즌 한국의 기아 타이거즈로 온다.
- 볼티모어 오리올스 : 애덤 존스 + 크리스 틸먼 + 조지 셰릴 + 토니 버틀러 + 캠 미콜라이오 ↔ 에릭 베다드
좌완 에릭 베다드가 부상위험이 있는 건 이미 알려져 있었고, 시애틀로 온 뒤 4년 동안 베다드는 1년 반만 뛰었다. 반면 볼티모어로 간 5명중 버틀러와 미콜라이오는 망했으나 애덤 존스는 4번 타자 중견수, 크리스 틸먼은 에이스 선발, 셰릴은 단 두시즌 뿐이지만 올스타 클로저가 되었다.
이렇게 트레이드 카드로 쓴 유망주들은 각처로 퍼졌는데 시애틀이 기대했던 기량을 그곳에서 발휘하고 있어 시애틀 팬의 속이 더 타들어갔다. 실제로 2012년 개막전 라인업 로스터에 있는 선수들 중에선 시애틀 출신이 36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
2012년에는 ESPN의 데이비드 쇼엔필드가 시애틀 출신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봤는데...
2B 더스틴 애클리
SS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RF 추신수
3B 알렉스 로드리게스
DH 데이비드 오티즈
CF 애덤 존스
1B 브라이언 라헤어
LF 스즈키 이치로
C 애덤 무어
SP 펠릭스 에르난데스
SP 덕 피스터
SP 브랜든 모로우
SP 마이클 피네다
SP 데릭 로우
RP J.J. 퍼츠
RP 맷 손튼
RP 라파엘 소리아노
RP 에릭 오플래허티
RP 마크 로우
RP 이와쿠마 히사시
물론 여기에는 A-Rod처럼 너무 잘해서 시애틀이 못 잡은 선수들도 있고, 어처구니없이 선수들이 나간 케이스를 빌 버베이시가 모두 만든 건 아니지만[18] 타선의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추신수, 애덤 존스와 계투진의 맷 손튼, 라파엘 소리아노는 그들이 유망주일때 버베이시가 내보냈던 선수들이다.
4. 평가
메이저리그 버전 안현호로 스즈키 이치로의 팀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를 초토화시킨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며, 부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매리너스 팬덤에게 팀 역대 최악의 인물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메이저리그를 넘어 야구 역사상 최악의 프런트이다. KBO 리그에서 현재 악명높은 단장들보다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총체적인 실패를 거두었으며 메이저리그로만 한정해도 2020년대 기준으로는 LA 에인절스의 아르테 모레노, 콜로라도 로키스의 몽포트 형제가 무능한 구단주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세세히 따지고 보면 버베이시는 저들보다도 최악이며 총체적인 팀 기반 형성을 담당하는 구단주가 아닌 단순 단기적 운영을 맡는 GM의 단계에서는 버베이시의 비견 대상은 없다.[19]2001년 리그 최고의 강팀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를 5년만에 초토화시켰으며, 당대의 강팀을 무려 20년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약팀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를 통틀어서 이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강팀이 추락해버린 사례는 2014-2016년 안현호 시절 삼성 라이온즈가 끝이며, 그 삼성도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도박 사건이라는 외환이 있었기에 참작사항이 있으나 버베이시는 이런 사건 없이 거의 혼자서 팀을 말아먹었다. 또한 세부적인 정책들 중에서도 성공한 것 하나 없이 팀에 손해만 끼쳤기에, 이견이 없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프런트 매니저로 평가받는다.[20] 또한 라 리가의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와 함께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매니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나 버베이시의 가장 큰 특징은 단장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업무 분야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정도로 거하게 삽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즉 전반적인 운영같은 것에서 부진해서 못했다기보다는, 단기적인 행적 하나하나가 모두 실패했으며 이것리 누적되어 팀을 회생 불가 수준으로 추락시켜버렸다. 오죽하면 MLB 30개 구단 팬들이 당시 버베이시를 두고 '대인배'라며 조롱을 했는데, 무능한 것과 별개로, 사실 리그 전체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실제로 대인배가 맞기는 하다. 재능있는 인재들을 트레이드로 타 구단에 마구 퍼주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우승,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중흥에 기여했다.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은인이기도 하다. 자리를 못 잡은 유망주들은 트레이드되어 타 구단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었으며, 그가 계약한 선수들은 과대평가되어 어정쩡한 선수들도 대박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실제로 버베이시의 존재는 매리너스를 제외한 29개 구단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를 단장으로 고용한 팀에만 좋지 않았을 뿐. 괜히 대인배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그 외에도 신인 드래프트 및 유망주 육성까지, 선수단 구성에 있어 모든 면에 걸쳐 이만큼 전체적으로 완벽하게 실패한 단장은 전세계 야구 리그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이 정도로 평가가 나쁜 단장들 중 하나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20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를 만든 단장 데이브 리틀필드가 존재하지만, 버베이시도 그렇게 따지자면 시애틀의 가을야구 20년 실패를 이루어냈고 심지어 피츠버그는 단장 사임 이후 5년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지만 버베이시의 경우 시애틀은 무려 15년 가까이 걸렸으며, 리틀필드마저도 빌 버베이시만큼 모든 방면에서 크게 실패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 리틀필드조차 그의 임팩트를 넘지 못한다. 윈나우 탱킹의 대표적 사례인 아트 모레노의 경우에도 FA를 영입하는 능력이 너무 낮고 육성을 아예 안해서 팀이 정말 오랫동안 3~4위를 전전하지만 그래도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고 관람 환경을 쾌적하게 해서 구단 수익률을 높이기는 했다. KBO 기준으로는 백인천을 감독으로 영입하고 8888의 원인이 된 이상구, 김응용 시절 최다 우승 구단이라는 명예로운 강팀 타이거즈를 848로 추락시키고 이후 20년 가까이 KIA를 몇 번의 플루크 우승을 제외하면 어정쩡한 중위권 전력의 팀이 되도록 전락시킨 정재공, 리그 전체 페이롤 1위임에도 불구하고 승률 .340의 최하위를 달성한 이윤원, 2011-2014년 통합우승을 하던 왕조구단을 총수의 무관심 속에 철저히 초토화시킨 안현호-홍준학 등이 무능한 단장으로 꼽히며, 이외에도 자 팀 팬덤에게 욕을 먹었던 단장들이 많으나 안현호 정도를 제외하면[21] 이들 모두 적어도 장점이 하나씩은 있는 등, 버베이시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합적으로 야구라는 스포츠 내에서는 순수 업무 외의 사건사고를 완전히 배제할 시 구단주, 단장 통틀어 비견 대상이 없는 역대 최악이며, 전세계 모든 종목으로 확대해보아도 버베이시의 악명을 확실히 넘는 스포츠 경영인은 축구의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나 조엘 글레이저 정도가 전부이다.[22][23]
가족으로는 명단장으로 이름을 날린 아버지 버지 버베이시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초대 단장 등을 역임한 형 피터 버베이시가 있는데, 이를테면 메이저리그 프런트계의 명문 집안이다. 하지만 빌은 아버지와 형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 잘 둔 덕에 단장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
5. 관련 문서
[1] LA 다저스 단장,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초대 단장,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단장을 역임했으며, 단장 커리어는 총 34년. 다저스에서 4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18년간 다저스 단장직을 맡으며 재키 로빈슨 영입에 따른 마이너리그의 인종분리 철폐, 플로리다 베로 비치 전용 스프링캠프 훈련지 건설, 뉴욕 브루클린에서 서부 로스앤젤레스로의 연고지 이전 등 굵직한 사무들을 도맡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2]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단장,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3] 이 원게임 플레이오프와 양키스와의 1995 ALDS에서의 명승부로 인해 시애틀 매리너스는 연고이전설 등 흉흉한 루머들을 뒤로 하고 시애틀 시민들의 열렬한 성원을 얻을 수 있었고 킹돔을 대신하는 삐까뻔쩍한 새 홈구장 세이프코 필드도 얻었으니, 어찌보면 이 DTD도 매리너스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다.[4] 그런데 보통 팀의 승수가 이 정도로 빠지는 것은 단장 한 명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투타의 주축이었든 브렛 분, 에드가 마르티네즈, 제이미 모이어가 1년사이에 성적이 급락해 버렸기 때문.[5] 클래식 스탯만 보면 영 좋지 못하지만 세이프코 필드가 최악의 투수구장중 하나고, 실제로는 매년 3WAR 이상, 5년동안 평균 4WAR 이상을 기록해서 생각보다 기여도가 높다. 다만 애초에 시애틀이 벨트레를 영입한 이유가 장타력을 앞세워 중심 타선을 채워주길 바랬던 것이었는데, 벨트레의 타격 성적은 확실히 FA로이드를 잔뜩 먹은 2004년에 비하면 아쉽긴 했다.[6] 계약 첫 해에는 그래도 3할 타율에 0.8에 가까운 OPS를 기록하며 나름 선방했다. 2년차에 폭망했지만.[7] 여기에 에인절스에서 이적해온 하세가와 시게토시도 시애틀에서 준수한 불펜요원으로 활약했다.[8] 타격은 오타니가 갱신하기 전까지 MLB 1년차 일본인 선수 최다홈런 기록을 세울 정도로 포지션을 감안할때 괜찮았으나 문제는 수비. 특히 영어/스페인어가 안 돼서 투수진과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볼배합과 투수 리드 방식에 대한 의견차이로 인해 일부 주축 투수들이 조지마와의 배터리를 거부했다는 소식까지 매스컴에 흘러나오는 등 흉흉하게 흘러가며 타격도 부진하게 된다. 이렇게 들은 이치로는 오히려 조지마를 걱정해주었지만 조지마는 더 이상 메이저에서 본인이 뛰기를 포기하고 결국, 일본 돌아가 센트럴 리그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9] 물론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 툴로는 그 해 넘버 원 유격수 유망주였고, 클레멘트는 자니 벤치 상을 수상한 그 해 넘버 원 포수 유망주였다. 두 슬롯 모두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를 꼽은 게 어쩌다 보니 한 쪽은 완벽한 버스트, 한 쪽은 완벽한 대박이 돼서 문제지. 덤으로 라이언 짐머맨과 라이언 브론이 있던 3루 자리의 경우 2009년까지 장기계약으로 묶여 있는 계약 1년차 아드리안 벨트레가 있었고, 외야에도 부동의 주전 스즈키 이치로를 비롯해 베테랑 라울 이바녜즈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던 랜디 윈, 유망주 추신수와 제레미 리드 등이 뭉텅이로 있어서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툴로위츠키를 포기한 유격수 역시 유니에스키 베탄코트나 마이클 모스 등 괜찮은 유망주들이 있긴 했고, 그에 비해 포수자리는 2005년 내내 시애틀 타선의 최대 약점으로 남았으니 납득이 가는 픽이었다. 그런데 정작 랜디 윈과 추신수는 트레이드 해버리더니 팀을 나가서 대폭발했고, 팀에 남긴 리드는 제대로 망했고 베탄코트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바녜즈는 맹타를 휘둘렀으나 수비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10] 린스컴은 사실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버베이시 말고 다른 팀 단장들도 회의감을 가져 전체 10번까지 밀린 케이스다. 물론 2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 자체로 린스컴은 성공한 투수라 불릴 자격이 있지만, 결국 롱런하지는 못했다.[11] 모로우는 당해 드래프티 최고 수준의 스터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선수의 문제는 1형 당뇨병을 앓는 환자였다는 것이다. 1형 당뇨병은 보유 사실만으로도 자동으로 군 면제가 뜨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아저씨들 성인병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2017년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혹사의 여파로 얻어터진 그 선수 맞다. 그래도 이후 시카고 컵스와 대형 계약을 맺으며 FA 대박을 맞이했으니 다행이지만.[12] 시애틀의 앞 순번에는 샌프란시스코가 위치했고, SF 측에서는 매디슨 범가너를 데려갔다.[13] 헤이워드는 결국 전체 14순위로 애틀란타가 데려간다.[14]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망주 시절 팀을 떠나 포텐이 터진 추신수와 존스와 달리, 윈은 이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서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보여준 것이 많았다. 즉, 포텐이 터진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좋은 실력이 제한된 출전 기회에 억눌려 있다가 시애틀을 떠나자마자 출전시간에 비례해서 발휘된 셈.[15] 참고로 모스를 보내면서 시애틀이 받아온 라이언 랭어한스는 3시즌간 OPS .676 치고 웨이버 공시되며 시애틀의 트레이드 실패 사례에 한 줄을 추가했다. 다만 이 트레이드는 2009년에 진행된거라 버베이시의 작품은 아니고, 수비로 일낸다로 유명한 잭 쥬렌식 후임 단장의 트레이드다.[16] 2013년 말에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초대박 FA계약을 터트린 이후에 "추신수 이렇게 대스타될지 몰랐다" 7년전 그를 버렸던 단장의 회한이라는 기사가 나왔다.[17] 제레미 리드는 2019년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타격코치가 됐다.[18] 예를 들어 오티즈는 마이너 시절부터 파워 포텐셜로 이름을 날렸으나 90년대 시애틀의 쟁쟁한 타선 속에서 자리가 없었고, 미네소타에서도 그저 그런 성적만 내다 보스턴에서 핀 경우. 덕 피스터를 보낸 건 후임 GM인 잭 쥬렌식이다.[19] 다른 무능하다고 알려진 GM들과 달리 버베이시는 단순히 팀 운영을 못한 것을 넘어서 행적 하나하나가 완벽히 대실패하며 매리너스를 회생불가의 팀으로 굴러떨어뜨린 장본인이다.[20] 사실 시애틀의 20년의 실패가 온전히 그의 책임은 아니며 메이저리그 자체가 승률 5할 5푼 정도는 되어야 가을야구 사정권일 정도로 가을야구에 진출하기 상당히 어려운 편이기는 하나 어쨌든 116승 팀을 맡아서 현재도 미래도 박살내버린 원흉이란 점에서 매리너스 팬들에게는 롯데 자이언츠 팬덤에게 백인천이 받는 취급과 비슷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마침 백인천이나 버베이시나 팀을 맡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올드 팬덤에게서 팀 역대 최악의 인물로 길이길이 까이고 있다는 점이 똑같다.[21] 안현호는 이들 중 예외로 말 그대로 단장 재임 기간동안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이 완전히 전무했으며 모든 면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약점만을 노출하였으나, 정작 팀을 말아먹은 수위에 있어서는 버베이시와 차이가 존재한다. 삼성이 오랫동안 휘청이는 것은 그룹 차원에서의 관심 감소와 후임 단장 홍준학의 무능 역시 한몫했다. 따라서 삼성의 암흑기에는 보통 홍준학이 원흉으로 꼽히지, 일부 팬덤은 안현호는 지원이 줄어들 시기에 단장을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옹호 아닌 옹호를 하기도 한다. 반면 버베이시는 매리너스의 20년 암흑기에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며, 정말 모든 단기적 업무를 말아먹었기에 현재까지도 시애틀 매리너스 팬덤에게 팀 역대 최악의 인물이자 금지어 1호로 남아있다.[22] 일단 각자의 스포츠 역사상 최강으로 꼽히는 팀을 맡아서 장기 침체기에 빠지게 할 정도로 말아먹은 점은 똑같다. 그러나 트레이드와 이적이 잦고 선수진의 성적 역시 일정하지 않아 전력 변동이 심한 야구와 달리 축구는 유스를 키워서 성적을 내는 특성상 전력 변동이 안 심한데도 불구하고 유망주들을 퍼다주며 팀이 노쇠화되었으며, 곧이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팀의 폼이 급락하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라리가 최강팀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다. 더군다나 주축 선수들을 포함한 선수단 대부분이 그의 행보를 비판했으며 아예 타 팀으로 이적을 요구했고, 이 와중에 팀의 상징과 같은 리오넬 메시또한 이적을 요구했으며 결국 바르토메우 단장 사임 다음해에 이적해버렸다. 게다가 지역 언론이 그에게 '노진구'라는 별명을 붙이고 지역 예능이 이를 풍자하는 등 아예 카탈루냐 지방 전체에서 금지어 중의 금지어로 전락해버렸다.[23] 글레이저같은 경우 아버지 맬컴이 빚을 내서 구단을 산 뒤 그 빚을 팀에 쌓아뒀으며 성적을 낼 생각은 안하고 돈만 뽑아먹는 막장 운영으로 맨유를 추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