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1:28:04

마이크 소시아

마이크 소시아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A9C> 파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화이트 엠블럼.svg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65년 ~
1965
존 와이엇
유격수 / 전체 8번
1966
래리 허튼
투수 / 전체 19번
1967
도니 덴보우
3루수 / 전체 20번
1968
바비 발렌타인
외야수 / 전체 5번
1969
테리 맥데모트
포수 / 전체 8번
1970
짐 할러
투수 / 전체 9번
1971
릭 로덴
투수 / 전체 20번
1972
존 하빈
유격수 / 전체 17번
1973
테드 파
포수 / 전체 18번
1974
릭 서클리프
투수 / 전체 21번
1975
마크 브래들리
유격수 / 전체 24번
1976
마이크 소시아
포수 / 전체 19번
1977
밥 웰치
투수 / 전체 20번
1978
FA 테리 포스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79[1]
스티브 하우
투수 / 전체 16번
1979[2]
스티브 페리
투수 / 전체 25번
1979
FA 대럴 토마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80
로스 존스
유격수 / 전체 9번
1981
데이브 앤더슨
유격수 / 전체 22번
1982
프랭클린 스텁스
1루수 / 전체 19번
1983
에릭 손버그
투수 / 전체 18번
1984
데니스 리빙스턴
투수 / 전체 23번
1985
크리스 그윈
외야수 / 전체 10번
1986
마이크 화이트
외야수 / 전체 19번
1987
댄 오퍼맨
투수 / 전체 8번
1988
빌 벤
투수 / 전체 5번
1989[3]
키키 존스
투수 / 전체 15번
1989
톰 굿윈
외야수 / 전체 22번
1989[3]
제이미 맥앤드류
투수 / 전체 28번
1990
론 왈덴
투수 / 전체 9번
1991
FA 대럴 스트로베리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92[5]
라이언 루진스키
포수 / 전체 32번
1992[6]
마이크 무어
외야수 / 전체 36번
1992
FA 톰 캔디오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93
대런 드라이포트
투수 / 전체 2번
1994
폴 코너코
포수 / 전체 13번
1995
데이비드 요컴
투수 / 전체 20번
1996
다미안 롤스
3루수 / 전체 23번
1997
글렌 데이비스
1루수 / 전체 25번
1998
버바 크로스비
외야수 / 전체 23번
1999[7]
제이슨 렙코
유격수 / 전체 37번
1999
FA 케빈 브라운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00
벤 디긴스
투수 / 전체 17번
2001
FA 앤디 애쉬비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02
제임스 로니
1루수 / 전체 19번
2002[8]
그렉 밀러
투수 / 전체 31번
2003
채드 빌링슬리
투수 / 전체 24번
2004
스캇 엘버트
투수 / 전체 17번
2004[9]
블레이크 드와이트
2루수 / 전체 28번
2004[9]
저스틴 오렌더프
투수 / 전체 33번
2005[11]
루크 호체이버
투수 / 전체 40번
2005
FA 데릭 로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06
클레이튼 커쇼
투수 / 전체 7번
2006[12]
브라이언 모리스
투수 / 전체 26번
2006[12]
프레스턴 매팅리
유격수 / 전체 31번
2007[14]
크리스 윗로우
투수 / 전체 20번
2007[14]
제임스 애킨스
투수 / 전체 39번
2007
FA 제이슨 슈미트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08
에단 마틴
투수 / 전체 15번
2009[16]
애런 밀러
투수 / 전체 36번
2009
FA 올랜도 허드슨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10
잭 리
투수 / 전체 28번
2011
크리스 리드
투수 / 전체 16번
2012
코리 시거
유격수 / 전체 18번
2012[17]
제스무엘 발렌틴
유격수 / 전체 51번
2013
크리스 앤더슨
투수 / 전체 18번
2014
그랜트 홈즈
투수 / 전체 22번
2015
워커 뷸러
투수 / 전체 24번
2015[18]
카일 펑크하우저
투수 / 전체 35번
2016
개빈 럭스
유격수 / 전체 20번
2016[19]
윌 스미스
포수 / 전체 32번
2016[20]
조던 셰필드
투수 / 전체 36번
2017
제런 켄달
외야수 / 전체 23번
2018
J.T. 긴
투수 / 전체 30번
2019
코디 호시
3루수 / 전체 25번
2019[21]
마이클 부시
2루수 / 전체 31번
2020
바비 밀러
투수 / 전체 29번
2021
매덕스 번스
투수 / 전체 29번
2022
사치세 초과로
인한 지명권 후퇴
2023[CBA]
켄달 조지
외야수 / 전체 36번
2023
사치세 초과로
인한 지명권 후퇴
2024
켈런 린지
유격수 / 전체 23번
* 취소선 처리된 선수는 다저스 구단과 계약하지 않은 선수{{{#!wiki style="margin: -14px -10px" }}}}}}}}}

[1] FA 리 래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 FA 토미 존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3] FA 스티브 색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3] [5] FA 에디 머레이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6] FA 마이크 모건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7] FA 스캇 래딘스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8] FA 박찬호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9] FA 폴 콴트릴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9] [11] FA 아드리안 벨트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2] FA 제프 위버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2] [14] FA 훌리오 루고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4] [16] FA 데릭 로우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7] FA 로드 바라하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8] FA 핸리 라미레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19] FA 잭 그레인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20] 카일 펑크하우저 지명 거부로 인한 지명권 보상[21] J.T. 긴 지명 거부로 인한 지명권 보상[CBA]

마이크 소시아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1 (선수) 1988 (선수) 2002 (감독)

파일:1989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0 MLB 올스타전 로고.pn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89 1990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상
루 피넬라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크 소시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토니 페냐
(캔자스시티 로얄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상
조 매든
(탬파베이 레이스)
마이크 소시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론 가든하이어
(미네소타 트윈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ba0021> 파일: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엠블럼.svg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61년 ~ 현재
1대
빌 리그니
파일:미국 국기.svg
(1961~1969)
2대
레프티 필립스
파일:미국 국기.svg
(1969~1971)
3대
델 라이스
파일:미국 국기.svg
(1972)
4대
바비 윙클스
파일:미국 국기.svg
(1973~1974)
5대
화이티 허조그
파일:미국 국기.svg
(1974)
6대
딕 윌리엄스
파일:미국 국기.svg
(1974~1976)
7대
놈 셰리
파일:미국 국기.svg
(1976~1977)
8대
데이브 가르시아
파일:미국 국기.svg
(1977~1978)
9대
짐 프레고시
파일:미국 국기.svg
(1978~1981)
10대
진 모크
파일:미국 국기.svg
(1981~1982)
11대
존 맥나마라
파일:미국 국기.svg
(1983~1984)
10대
진 모크
파일:미국 국기.svg
(1985~1987)
12대
쿠키 로하스
파일:쿠바 국기.svg
(1988)
13대
무스 스터빙
파일:미국 국기.svg
(1988)
14대
더그 레이더
파일:미국 국기.svg
(1989~1991)
15대
벅 로저스
파일:미국 국기.svg
(1991~1992)
16대
존 와탄
파일:미국 국기.svg
(1992)
15대
벅 로저스
파일:미국 국기.svg
(1992~1994)
17대
마르셀 라케만
파일:미국 국기.svg
(1994~1996)
11대
존 맥나마라
파일:미국 국기.svg
(1996)
18대
조 매든
파일:미국 국기.svg
(1996)
19대
테리 콜린스
파일:미국 국기.svg
(1997~1999)
18대
조 매든
파일:미국 국기.svg
(1999)
20대
마이크 소시아
파일:미국 국기.svg

(2000~2018)
21대
브래드 어스무스
파일:미국 국기.svg
(2019)
18대
조 매든
파일:미국 국기.svg
(2020~2022)
22대
필 네빈
파일:미국 국기.svg
(2022~2023)
23대
론 워싱턴
파일:미국 국기.svg
(2024~)
파일: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엠블럼.svg
}}}}}}}}}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14번
본 조슈아
(1979)
<colbgcolor=#ccc,#323232><colcolor=#005a9c,#62bcff> 마이크 소시아
(1980~1992)
딜라이노 드실즈 시니어
(1994~1996)
딜라이노 드실즈 시니어
(1994~1996)
마이크 소시아
(1997~1998)
F.P. 산탄젤로
(2000)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번호 14번
트로이 글로스
(1998~1999)
마이크 소시아
(2000~2018)
타일러 웨이드
(2022)
}}} ||
}}} ||
파일:마이크 소시아.jpg
마이클 로리 "마이크" 소시아
Michael Lorri "Mike" Scioscia
출생 1958년 11월 27일 ([age(1958-11-27)]세)
펜실베이니아 주 어퍼더비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스프링필드 고등학교 -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신체조건 188cm / 90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9번 /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0~1992)
지도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배터리코치 (1997~1998)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감독 (2000~2018)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1 / 2024)

1. 개요2. 선수 시절3. 감독 시절4. 감독 스타일5. 이모저모6. 감독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이자, 前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감독.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작전야구의 대가로 과거 박찬호와도 인연이 있던 LA 다저스 출신의 명포수 출신 감독이다.

2018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3078게임 1650승 통산 .536의 승률로 MLB 역대 단일팀 감독 최다승 5위,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출장, 최다승, 최고 승률, 유일한 월드시리즈 반지까지 얻은 반론의 여지 없는 에인절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다.

비록 말년에는 실패를 겪긴 했지만 퇴임 전까지도 에인절스 팀 내에서의 위상은 절대적으로, 그 단장 야구, 프런트 야구를 한다는 MLB에서 일개 감독이 단장을 파워게임에서 누르고 모가지를 날려버릴 정도. 또한 메이저리그 감독 최초로 10년 계약을 맺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2. 선수 시절

LA 다저스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다.[1] 명감독의 선수 시절은 허접한 경우가 많은데, 다저스에서 허접한 포수였냐면 절대 아니다. 13시즌 동안 다저스에서만 뛰면서 1981년과 1988년 월드 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으며, 2번 올스타전에 출전한 명포수로 특히 수비와 게임콜이 돋보이는 포수였다.

타격에서도 포수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타율에 비해서 콘택트가 좋아서[2] 2번타자로 출장하기도 했고, 그의 타석 커리어 하이였던 1985시즌에는 내셔널리그에서 출루율 2위였다.[3] 또한 소시아는 커리어 통틀어 단 한 시즌도 삼진이 볼넷보다 많았던 적이 없다.

현시대 팬들에게 알기 쉽게 말하면 거의 야디어 몰리나급의 수비와 게임콜링, 존재감으로 다저스 팬들과 선수들에게 사랑받았던 포수.

마이크 소시아의 현역시절 기록.

초년병이라 백업 포수였던 1981년에는 당시 팀 에이스였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전담포수로 출전했다. 발렌수엘라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스페인어도 따로 배웠다고. 그리고 1988년에는 주전 포수로서 오클랜드를 4승 1패로 꺾고 7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한 몫했다. 선수시절 두 차례 노히터를 캐치한 포수기도 했으며, 1988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4차전에서는 극적인 동점홈런을 치기도 했다. 부상 때문에 12년만 뛰고 은퇴하기는 했지만, 선수 시절 보여준 뛰어난 게임운영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은퇴 후 다저스에서 배터리 코치로 뛰면서 일찍부터 차기 다저스의 감독 후보로 주목받았다. 12년의 선수생활동안 얻은 두개의 절대반지는 덤

원래는 박찬호가 있던 때부터 토미 라소다 은퇴 이후 차기 감독후보까지 거론되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다저스가 소시아 대신 1970~80년대 다저스를 빛냈던 유격수 출신의 빌 러셀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빌 러셀이 1998년 시즌에 성적 부진으로 짤리자 이번에는 소시아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했는데, 1999 시즌을 앞두고 새로 감독으로 임명된 사람은 뉴욕 메츠를 이끌었고 신시내티 레즈,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감독생활을 한 베테랑 데이비 존슨. 이 결정에 대한 반발이 많아지자 당시 단장인 케빈 말론은 이 결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소시아를 해임했다.

그 전까지는 꾹 참고 코치로 지내던 소시아였지만, 해임에는 크게 분노하며 팀을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마침 테리 콜린스 감독 항명 사태가 터지면서 팀이 막장이 된 옆동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강력하게 러브콜을 보내자, 결심을 굳히고 에인절스의 감독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3. 감독 시절

그렇게 해서 2000년 소시아는 에인절스 감독직을 맡는다. 이 전부터 감독 대행으로 팀을 수습한 조 매든[4]을 다시 팀의 벤치 코치로 임명하면서 팀을 장악하기 시작한 후,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 투수 코치인 버드 블랙(현 콜로라도 로키스 감독), 3루 코치 론 로니키(전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등을 코칭스태프로 영입, 한동안 별 볼일 없던 LA 에인절스의 중흥기를 이끈다.

2000년 이후 1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5번의 지구 우승 등 LA 에인절스의 황금기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누르고 차지한 2002년의 월드시리즈는 창단 41년만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일부 다저스 팬들은 지난 20년간 다저스 최대의 실수가 이 마이크 소시아를 에인절스에 내준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2002년과 2009년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이 명장을 그냥 눈뜨고 버렸기 때문. 거기다 원래는 라소다의 후임 감독 후보로 제대로 교육을 받던 중 프런트의 헛발질로 다 키워놨던 감독 인재를 동네 라이벌에 갖다바친 꼴이 되어버린지라 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다저스는 소시아가 B급 프랜차이즈였던 에인절스를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키우는 동안 토미 라소다가 은퇴한 1998년 시즌 이후 2003년까지 6년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라이벌로 생각조차 안 하던 에인절스에게 거의 동급의 인기를 허용하고 말았으니... 그리고 결국 2011년 사상 처음으로 에인절스에게 시즌 총 관중수 추월을 허용했다.

2011년 5월 8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이 페이스대로 꾸준히 간다면, 아마 훗날 명예의 전당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데 2012년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1억 5천만달러의 연봉을 지불하면서 알버트 푸홀스, C.J. 윌슨, 잭 그레인키같은 선수를 영입했음에도 2012년 시즌에는 기어이 총 연봉이 에인절스의 절반정도 밖에 안되는 오클랜드에게도 순위에서 밀리며 지구 3위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도 슬슬 불안해졌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전력보강으로 FA 외야수 조시 해밀턴과 계약을 맺어 메이저 최강의 타선을 구축했다고 하지만, 해밀턴이 푸홀스와 함께 먹튀계의 쌍두마차로 팀을 말아 먹고, 팀 투수진 역시 막장이라 같은 지구 시애틀, 휴스턴이 있어 그나마 꼴찌를 면하지만 실질적 꼴찌라 2013년이 소시아의 에인절스에서의 마지막 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미 시즌 후반부터 세간에서 제리 디포토 단장과 소시아 감독 중 하나는 잘릴 것이라 보는 기자들이 늘었는데, 팬들은 둘 다 갈아치우면 안되냐는 의견을 내면서도 둘 중 하나를 지켜야 한다면 계약기간과 연봉이 많이 남아있는 소시아를 냅두고 자를 때 돈 조금만 줘도 되는 디포토부터 해고하는 것이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10년 넘게 에인절스를 지휘하면서 MLB의 감독치고는 단장 못지 않게 팀 운영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실세 감독이었다보니 자르고 나서의 뒷감당도 부담됐고, 막상 감독이나 지도자들 중 소시아보다 커리어라든지 능력 면에서 괜찮은 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라 다른 팀 팬들 중 자기 팀의 막장 감독에 치를 떠는 팀의 팬들이 소시아가 에인절스에서 쫓겨나면 우리 팀이 꼬셔보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소시아가 몇 년간 별로인 운영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바비 발렌타인 같은 전대미문의 막장 감독은 아닌 데다가 나이 역시 50대 중반이라서 우승을 이끈 경력도 있으며, 나이도 짬밥에 비하면 많은 편이 아니라 다른 팀 입장에서도 10년을 맡길 감독으로 손색이 없기에 에인절스에서 해고되어도 많은 팀들이 달려들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일단 에인절스는 2014년 시즌에도 디포토 & 소시아 체제로 가기로 공표했다. 그리고 2014년 승률 6할대로 복귀, 메이저리그 전체 1위 승률과 득점으로 지구 우승을 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해임이야기가 쏙 들어가는가 싶었지만 오클랜드와 연장 혈투 와일드 카드 경기를 치르며 올라온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3-0 시리즈 스윕으로 무기력하게 패하자 다시금 소시아에 대한 안 좋은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 총명함이 노쇠하며 상실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

2015년에도 좋은 평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윗선과의 불화가 공공연하다는 이야기가 현지 기자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 퍼져있다. 여기에 7월 1일 단장 제리 디포토가 사임하면서 이런 소문에 제대로 장작을 투하.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달렸지만 결국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텍사스에게 패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은 좌절.

2016년도 대실패했다.

2017년도에도 경기를 안 뛰는 게 팀에 이득이 될 정도로 몰락한 푸홀스를 주구장창 3,4번 타순에 박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주며 에인절스 팬들의 혈압을 올리고 있다. 에인절스 팬덤에서는 제발 푸홀스랑 손잡고 나가달라는 불만이 팽배하고 있다.

2018년 오타니 쇼헤이를 데리고 온 직후 윈나우로 달리려 했으나 이번에도 팀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포스트시즌이 또 한번 멀어지면서 결국 시즌 이후 스스로 재계약 없이 감독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나 예상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이래나 저래나 시즌 후 자리를 지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이미 마음을 지난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 전에 물러나기로 굳혀놨었고, 물러난 이후에 에인절스 감독은 물론 다른 팀에서도 메이저리그 감독 커리어를 이어나갈 마음이 없었으며 이번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감독으로도 은퇴를 할 생각이였다고 한다. 원래는 9월 30일에 시즌이 종료되면 조용히 은퇴를 하고 싶어했는데, 켄 로젠탈이 이를 유출하면서 알려진 것. 9월 30일 경기 종료 후 공식적으로 에인절스 감독직에서 퇴임했다. 12월 29일 미국 매체 '필리닷컴'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소시아 전 감독은 "아직 그만 뒀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고 열정 또한 변함없다"면서 "감독직 제의를 받는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이후 도쿄 올림픽 야구 예선을 앞둔 2021년 4월 6일에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왕년에 한가닥 했던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적절히 분배해서 선발하고 예선에 나섰고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등을 누르고 전승을 거두면서 가까스로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을 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본선 조별리그 1차전 이스라엘전에서 8대1 압승을 거두며 국제대회 커리어 첫 경기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 그리고 2차전 한국전도 4대2로 이기면서 조1위로 녹아웃 스테이지에 올라갔다.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는 일본과 조1위간 경기(준준결승)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일본에게 연장전 승부치기 끝에 패하면서 패자부활전 2차전으로 내려갔다. 상대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를 조기 강판시키면서 승기를 잡았으나 9회 블론을 당했고, 연장전에서는 소시아 감독이 처음 겪어보는 승부치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도미나카 공화국 대표팀 간 경기 승자와 맞붙어 승리해야만 준결승 2차전에 진출할 수 있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본선 오프닝 라운드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은 예선에서 꺾은 바 있다. 이후 도미니카 공화국이 승리하여 도미니카 공화국과 패자부활전 2차전을 치렀고, 1대3으로 승리하여 준결승 2차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소시아 감독은 자신이 B조 경기에서 2대4로 눌렀던 한국 대표팀을 준결승 2차전에서 또 만나게 되어 또 다시 2대7로 눌러버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일본에 2대0으로 아쉽게 패배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4. 감독 스타일

다만, 2009년 이후로 LA 에인절스가 계속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점차 소시아의 매니징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특히 심각한 것이 포수 문제인데, 팀내 포수 플래툰 대상이던 공격형 포수인 마이크 나폴리를 지나칠정도로 불신임하고 타격이 멘도사 라인이던 수비형 포수이지만 수비평가도 잘봐줘야 평균인제프 매티스를 억지로 기용하다가 결국엔 마이크 나폴리를 먹튀 버논 웰스와 트레이드 했는데, 그 나폴리가 텍사스로 재차 트레이드 되어서 텍사스의 안방을 책임지며 LA 에인절스 상대로 맹타를 휘두르며(상대타율이 4할이 넘는다.) LA 에인절스 탈락의 결정타를 먹이자 팬들의 여론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로 행크 콩거 또한 크리스 아이아네타에 밀려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아네타가 매티스보다 타격이 훨씬 나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수비력 차이도 별로 안 나.[5] 이때문에 2014년 지구 우승이후 3시즌을 연속해서 말아먹는 바람에 2018년 기준 통산 승률을 .539까지 까먹었다. 현역중에는 통산 경기수, 승수는 브루스 보치에 이은 2위이며 플레이오프 진출 횟수도 7시즌으로 조 매든과 함께 공동 3위(1위는 8시즌의 보치와 테리 프랑코나.)

참고로 알버트 푸홀스는 인터뷰 중에 전 소속팀이었던 세인트루이스의 토니 라 루사와 에인절스의 감독 마이크 소시아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웃으며) 둘은 절대 비교가 쉽지 않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소시아 감독이 선수들에게 농담도 잘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스타일이라면 라루사 감독은 말이 없고 근엄한 편이다. 이렇게 유명한 감독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는 나는 분명 복이 많거나 운이 좋은 선수인 게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

5. 이모저모

파일:external/2.bp.blogspot.com/scioscia.jpg

6.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MLB)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00 LAA 162 82 80 .506 지구 3위 -
2001 162 75 87 .463 지구 3위 -
2002 162 99 63 .611 지구 2위 WS 우승
2003 162 77 85 .475 지구 3위 -
2004 162 92 70 .568 지구 1위 DS 탈락
2005 162 95 67 .586 지구 1위 CS 탈락
2006 162 89 73 .549 지구 2위 -
2007 162 94 68 .580 지구 1위 DS 탈락
2008 162 100 62 .617 지구 1위 DS 탈락
2009 162 97 65 .599 지구 1위 CS 탈락
2010 162 80 82 .494 지구 3위 -
2011 162 86 76 .531 지구 2위 -
2012 162 89 73 .549 지구 3위 -
2013 162 78 84 .481 지구 3위 -
2014 162 98 64 .605 지구 1위 DS 탈락
2015 162 85 77 .525 지구 3위 -
2016 162 74 88 .457 지구 4위 -
2017 162 80 82 .494 지구 2위 -
2018 162 80 82 .494 지구 4위 -
총계 3078 1650 1428 .536 1WS 2CS 4DS ­
역대 감독 전적 (국가대표팀)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최종 성적 비고
2020 올림픽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6 4 2 .667 준우승 은메달
<rowcolor=#373a3c> 총계 6 4 2 .667 - ­

7. 관련 문서



[1] 사실 1992년 스토브리그 때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됐으나, 이듬해 시범경기 중에 우측 회전근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고 방출된 뒤 코치로 다저스에 복귀하면서 본의 아니게 원클럽맨이 되었다. 강기웅, 에가와 스구루와 비슷한 케이스.[2] 통산 삼진 비율이 6.1%에 불과하다. 즉 삼진은 14타석 중 1번 밖에 당하지 않았고, 나머지 타석은 안타든지 아웃이든지 어떻게든 공에 방망이를 맞췄든지, 아니면 볼넷으로 출루했다는 얘기.[3] 이 시즌에 77볼넷-21삼진이라는 경이로운 볼삼비를 기록했다.[4] 조 매든은 소시아의 전임이자 항명파동으로 해임되었던 테리 콜린스(現 뉴욕 메츠 감독)밑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했고, 소시아 이후에도 계속 수석코치를 맡다가 2006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진전이 없던 리빌딩이라는 암흑기를 뚫고 만년 꼴찌를 우승후보로 변신시켰고 급기야 2016년에는 시카고 컵스 감독을 맡으면서 염소의 저주를 깨트린다.[5] 콩거는 결국 2014년 시즌 후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됐다.[6] 2개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 시절 다저스에서 차지한 것.[7] 그러나 감독 커리어 마지막 해로 결정된 2018년까지 새 반지를 얻는 데 실패했고, 2018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끝끝내 두 번째 반지는 못 얻게 되었다. 그래도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우승반지만큼의 가치는 아닐지 몰라도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