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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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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위버 Jeff Weaver | |
본명 | 제프리 찰스 위버 Jeffrey Charles Weaver |
출생 | 1976년 8월 22일 ([age(1976-08-22)]세)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96cm / 90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4번, DET) |
소속팀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9~2002) 뉴욕 양키스 (2002~200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2005)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200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6) 시애틀 매리너스 (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9~2010) |
가족 | 동생 제러드 위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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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전 우완 선발투수. 커리어 통산성적은 104승 119패 평균자책점 4.71. 한국에서는 제러드 위버의 친형이자 빌 버베이시의 선수 보는 눈을 보여주는 좋은 예[1]로 더 유명하다. 뭐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00승을 기록할 만큼 나름대로 능력은 있었던 선수.2. 커리어
동생 못지 않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카우터들의 눈을 사로잡는 유망주였다. 그리고 당당히 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4순위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지명됐다.[2][3] 마이너리그 졸업도 굉장히 빨라서 1998 시즌 싱글 A를 가볍게 정ㅋ벅ㅋ하고는 1999년에 곧바로 콜업된다.[4] 데뷔시즌부터 타이거즈의 선발진 한 자리를 차지하여 9승 12패 평균자책점 5.55를 기록했고, 2000 시즌에는 데뷔 첫 10승을 기록한다.위버의 빠른 성장세에 고무된 디트로이트는 그에게 에이스라는 중책을 맡겼고, 위버 역시 그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을 해준다. 2001 시즌 229.1이닝 13승 16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한 데 이어, 다음해에도 121.2이닝 6승 8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던 것. 하지만 이 시기 디트로이트는 꼴랑이라는 별명이 당연시될 만큼 아메리칸리그에서 바닥을 기던 팀이었기 때문에[5] 위버 혼자 분투를 했지만 팀 성적은 大亡이었다. 결국 디트로이트는 전격적인 리빌딩을 결정했고, 2002 시즌 도중 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는 위버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시킨다.
뉴욕 양키스에서 위버는 별다른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채 팀 선발진에서 들락날락을 반복[6]했고, 2003 WS 4차전에서 알렉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 결국 2003 시즌 종료 후 위버는 다시 한 번 트레이드 된다. 이번 행선지는 케빈 브라운을 양키스로 보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다저스로 오면서 위버는 안정감을 되찾아 2004년 13승(평균자책점 4.01), 2005년 14승 평균자책점 4.22를 기록했고, 2005 시즌 종료 후에 FA 자격을 획득하고 1년 850만 달러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이적한다.
그렇게 이적한 에인절스에서 위버는 3승 10패 평균자책점 6.29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결국 부상으로 빌빌 거리다가 6월에 방출된다. 한가지 아이러니한점은 그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된 선수가 바로 그 당시에 한창 주가를 올리던 포텐셜 만땅의 유망주이자 제프의 친동생 제러드 위버. 각설하고, 무직신세가 된 그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영입하는데, 이게 전화위복이 된다. 카디널스로 이적해서도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아니지만 2006 시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진은 처참했기 때문에 위버는 팀 내에서 준수한 3선발[7]로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 해 내셔널리그 중부지구가 다들 폭망모드였기 때문에 카디널스는 83승 79패라는 5할을 간신히 넘기는 성적을 찍고도 가을야구를 할 수가 있었고, 여기서부터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대반전이 시작된다. 위버를 비롯해 제프 수판, 데이빗 엑스타인과 같이, 카디널스에서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주전 선수들이 대각성을 했던 것.
다만 가을에 좋은 모습을 보인 것과 별개로 2006시즌 위버는 8승 14패 방어율 5.76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와 동시에 FA로 풀린 그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빌 버베이시가 전년도와 똑같은 연봉을 지불하고 그를 세이프코 필드로 모셔간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을 틀리지 않아서 위버는 부진-부상을 반복하면서 2007 시즌 7승 13패 평균자책점 6.20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찍고는 당당히 사이역 상 후보로도 이름을 올린다.[8]
3. 여담
- 제러드 위버의 형으로, LA 다저스 시절에 동생과 맞대결을 가진 적이 있다. 동생 쪽 커리어가 훨씬 좋지만, 맞대결은 형의 승리로 끝났다.
-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미국 국가대표로 뽑힌 적이 있다. 결과는 동메달.
- 버니 샌더스의 선대위 본부장을 맡고 있는 동명이인의 정치인이 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각종 영미권 사이트에 Jeff Weaver를 검색하면 동명이인에 대한 글만 한 뭉탱이 쏟아져 나온다.
- 몇몇 소양 부족한 기자들에 의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처럼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기레기들이 제프 위버를 동생 제러드 위버와 혼동했기 때문.
4. 관련 문서
[1] 물론 지극히 반어적인 표현이다.[2] 동생이 업계에 소문난 악덕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드래프트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과 비교되는 부문.[3] 다만 그래도 드래프트 순위에서 동생이 형보다 월등히 앞섰다. 동생은 1라운드 7순위. 다만 동생같은 경우 애초에는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꼽히던 인간이었던지라...[4] 그 배리 본즈조차도 마이너리그 졸업에 2년이 걸렸다. 물론 공만 괜찮으면 상위레벨을 스킵하고 콜업하기도 하는 투수와 그러지 않는 타자라는 포지션 차이, 싹수가 보이면 비교적 마이너를 빠르게 졸업시키는 디트로이트 구단의 육성방침도 있어서 마이너 빨리 졸업한 걸로 위버가 본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긴 하다.[5] 위버가 디트로이트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2년부터 시즌 100패를 찍더니 다음해에는 119패라는 역대급 성적을 찍는다. 그래도 같은 지구에 폐족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다.[6] 사실 위버가 끼어들어갈 자리가 애매하기는 했다. 일단 로저 클레멘스 - 앤디 페티트 - 마이크 무시나 - 데이비드 웰스로 이어지는 4선발진이 솔리드했기 때문에 딱 하나 남은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했기 때문.[7] 1선발은 당연히 크리스 카펜터, 2선발은 의외로 제프 수판. 애초에 제프 수판도 절대 2선발급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아니었다.[8] 해야갤 말고 ESPN이 정식으로 수상하는 그 사이역상 후보였다.[9] 중간중간에 선발자리에 구멍이 나면 땜빵으로 뛰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