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9-18 10:35:53

명귀


파일:고구려 군기.svg
패서호족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lack> 인물 지역
통일신라
의조(懿祖) 고구려계
송악(松嶽)
강호경(康虎景)* 고구려계 송악(松嶽)
강충(康忠) 고구려계 송악(松嶽)
두은점(豆恩坫) 고구려계 평주(平州)
유상희(劉相晞) 토착계 백주(白州)
박적고(朴積古)* 신라계 평주(平州)
후삼국시대
왕륭(王隆) 고구려계
송악(松嶽)
왕건(王建) 고구려계
송악(松嶽)
강기주(康起珠) 고구려계 신주(信州)
강공훤(康公萱) 고구려계(추정) 신주(信州)추정
염형명(廉邢明) 고구려계(추정) 봉성(峰城)
황보제공(皇甫悌恭) 토착계 황주(黃州)
황보금산(皇甫金山) 토착계 황주(黃州)
류천궁(柳天弓) 토착계 정주(貞州)
류덕영(柳德英) 토착계 정주(貞州)
류차달(柳車達) 토착계 유주(儒州)
류긍순(柳矜順) 토착계 염주(鹽州)
유금필(庾黔弼) 토착계 평주(平州)
윤신달(尹辛達) 토착계 파평(坡平)
김행파(金行波) 토착계 동주(洞州)
한총례(韓聰禮) 토착계 단주(湍州)
윤선(尹瑄) 토착계 염주(塩州)
검용(黔用) 토착계 평양(平壤)
명귀(明貴) 토착계 증성(甑城)
박지윤(朴遲胤) 신라계 평주(平州)
박수문(朴守文) 신라계 평주(平州)
박수경(朴守卿) 신라계 평주(平州)
김락(金樂) 신라계 당악(唐岳)
김철(金鐵) 신라계 당악(唐岳)
백주(白州)
고려
최온(崔溫) 대령(大寧)
*: 해당 지역에 정착한 1세대 인물}}}}}}}}}


후삼국시대의 주요 호족과 군벌 세력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colbgcolor=#191970><colcolor=#fff> 증성 호족
명귀
明貴
생몰연도 미상
소속 적의적(?) 또는 황의적(?)
이름 명귀(明貴)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삼국시대의 호족. 증성(甑城)[1] 일대에서 활동했다.

삼국사기 열전 궁예편에서 그의 기록이 나오는데, 905년 평양성주 검용(후삼국시대)이 궁예에게 투항하자 증성 일대에서 활동했던 황의적(黃衣賊), 적의적(赤衣賊)과 함께 귀부했다는 기록이 전부다.

2. 생애

그가 궁예에게 귀부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으나, 평양과 강서지역 간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검용의 투항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측된다.

검용과 마찬가지로, 궁예에게 투항하기 전에 통일신라의 지배 하에 있던 지방 세력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상 대동강 이북쪽으로는 신라가 군현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

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게 결국 명귀 또한 발해가 됐든 신라가 됐든 당시 무너져가던 각국의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변방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한국계 호족이었다는 점에서는 타 호족들과 대동소이하다. 결국 궁예에게 귀부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으로 따지자면 태봉계 인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 오늘날 평안남도 강서군 일대에 해당된다. 북한의 행정구역으로 치면 남포시 지역.[2] 다만 삼국사기 지리지가 경덕왕~헌덕왕 시기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을 다루고 있으므로, 헌덕왕 이후 70여 년의 기간 동안 평양, 강서까지 진출했을 것이란 설도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