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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edc89> 신라의 주 양주 (삽량주) 良州 (歃良州) | |
하위 행정구역 | 1소경 12군 34현[1] |
소경 | 김해경 |
주둔 정 | 삼량화정 |
설치 | 665년 |
폐지 | 940년 |
후신 | 양주(梁州) |
현재 | 경상북도 남동부 및 경상남도 동부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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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체계였던 9주 5소경 중 하나로 옛 가야의 동부 영역[2]과, 진흥왕의 확장 이전 초창기 전통적 신라 영역의 남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의 포항-대구-창원을 잇는 지역이 양주의 영역이었다. 중심지는 지금의 양산시인 양주(梁州)였고[3] 그래서 삽량주를 양주라고도 불렀다. 12군 34현을 관할하였다. 수도 서라벌과 금관경이 여기에 있어 신라시대의 경기도쯤 되는 위상으로 보이지만 당시 경주 일대[4]를 양주와 독립된 경기로 구획했던 걸로 보아 공식적으로는 수도권이 아니었다.2. 삽량주에 소속된 군현
- 해당 지역
- 양주: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시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언양읍. 삼국 시대에는 신라와 가야의 접경 지역이었으나 신라가 성장한 후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 헌양현: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언양읍, 삼남읍, 삼동면 일대. 당시 헌양 치소가 상북면에 있었다.
- 김해경: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초창기 신라와 경쟁 관계였던 금관가야의 수도로 교역지의 중심지로 번영하였으나 53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낙동강 하류에 연하여 퇴적물이 쌓이게 되어 교역 중심지로서 중요한 항구의 기능을 잃은 금관가야는 급속히 쇠퇴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중앙집권화를 이룩하지 못하여 선진적인 정치 체제를 가졌던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신라는 가야 세력을 포섭할 목적으로 가야의 유산을 우대하였으며 그의 일환으로 금관가야의 수도를 부도로 설정하였다. 고려 이후로 급속히 쇠퇴한 이유도 있겠지만 통일 신라대의 김해 시가지가 조선 시대의 김해 시가지보다 컸다고 한다.
- 의안군: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 함안군 칠원읍
- 칠제현: 지금의 경남 함안군 칠원면
- 합포현: 과거의 경남 마산시 합포구
- 웅신현: 과거의 경남 진해시 성내동 일대
- 밀성군: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 창녕군 영산면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화양읍, 매전면
- 상약현: 지금의 경남 창녕군 영산면
- 밀진현: 지금의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 오구산현: 지금의 경북 청도군 청도읍 남쪽 유호리 일대로 비정
- 형산현: 지금의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 소산현: 지금의 경북 청도군 매전리
- 화왕군: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삼국 시대에 신라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에 상주를, 경남 동부 지역의 중심지[5]로 하주를 창녕에다 설치했는데 10년 만에 폐지하였고 이후 백제를 멸망시키고 하주의 치소를 전북 전주에다가 옮김으로써 일개 군으로 전락하게 된다.
- 현효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 수창군: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구, 북구, 달성군 화원읍, 하빈면. 수창이란 지금의 수성구의 옛 이름으로 당시에는 수창이 대구의 중심지였고 대구는 수창에 속해 있던 일개 현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수성광역시 혹은 수성시 대구구.낙동강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분지를 가지고 있어 신문왕 대에 천도가 고려되었으나 반대가 심해 결국 무산되었고 그 후로도 일개 군으로만 존재하였다. - 대구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일대.
- 팔거리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동 및 구암동을 포함한 인근 칠곡군 지역.
- 하빈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하빈현
- 화원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 장산군: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 대구광역시 동구.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처럼 수도 서라벌을 지키는 국방 거점이었고 김유신이 이곳에서 주둔했다. 장산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까지도 계속 유지되다가 고려 충선왕의 휘가 '장'이라 피휘를 위해 경산으로 바뀐 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 해안현: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일대.
- 여량현: 지금의 경북 경산시 진양면.
- 자인현: 지금의 경북 경산시 자인면.
- 임고군: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중심부 및 경북 영천군 임고현 일대.
- 장진현: 지금의 경북 포항시 죽장면.
- 임천현: 지금의 영천시 동남쪽 완산동 및 영천군 북안면 일대.
- 도동현: 지금의 영천시 남쪽 도동 및 영천군 금호읍 일대.
- 신녕현: 지금의 경북 영천군 화산면.
- 명백현: 지금의 경북 영천군 화북면 일대.
- 동래군: 지금의 강서구(부산),부산진구,기장군 를 제외한 부산광역시
- 동평현: 지금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일대
- 기장현: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 동안군: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온산읍, 서생면
- 우풍현: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 경남 양산시 웅상
- 임관군: 지금의 울산광역시 북구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일대.
- 동진현: 지금의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
- 하곡현: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일대.
- 의창군: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 경주시 안강읍
- 안강현: 지금의 경북 경주시 안강읍 안강리 일대
- 기립현: 지금의 경북 포항시 장기면 일대.
- 신광현: 지금의 경북 포항시 신광면 일대.
- 임정현: 지금의 경북 포항시 연일읍 일대.
- 기계현: 지금의 경북 포항시 기계면.
- 음즙화현: 지금의 경북 경주시 안강읍 검단리 일대.
- 대성군: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명활산성 일대. 안에 특수 행정구역 동기정(東畿停)이 있었다. 동기의 기는 경기도 할 때의 기 자로 수도 주변지역을 의미한다.
- 약장현: 지금의 경주시 양북면 일대.
- 동기정: 지금의 경북 경주시 동방동 혹은 외동읍 일대로 추정.
- 상성군: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성 일대. 안에 특수 행정구역 남기정, 서기정, 중기정, 북기정이 있었고, 대성군의 동기정과 함께 이 5곳을 통틀어 경기(京畿)라고 불렀다.
- 남기정: 지금의 경주시 남산동 남산성지 일대로 추정.
- 중기정: 지금의 경주시 건천읍 부산성으로 추정.
- 서기정: 지금의 경주시 서면으로 추정.
- 북기정: 지금의 경주시 현곡면으로 추정.
- 막야정: 지금의 경주시 천북면으로 추정.
3. 그 밖에
수도 서라벌은 동서남북 양주 땅에 둘러싸여 있지만 일단 양주에 소속된 도시는 아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도 전국 9주를 소개하기 전 맨 앞에 따로 경주를 소개하고 있다.공교롭게도 경계선의 모양이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과 굉장히 흡사하다. 또한 현재 영남에서 50만 이상의 인구를 거느린 도시가 모두 옛 삽량주의 강역에 속해 있다.
- 동래군 → 부산
- 수창군 → 대구
- 동안군 + 임관군 → 울산
- 의안군 → 창원
- 김해경 → 김해
- 의창군 → 포항
[1] 경덕왕 당시[2] 대략 신라 법흥왕 때 신라에 편입된 금관가야 지역. 진흥왕 때 편입된 지역들은 강주로 재편되었다.[3] 양주라는 이름은 지금 양산시 양주동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와는 한자가 다르고 경기도 양주보다 해당 지명을 더 오래 사용하였다.[4] 대체로 지금의 경주시 범위와 비슷하다. 경계선은 북쪽은 지금의 안강읍, 서쪽은 건천읍, 남쪽은 외동읍과 내남면 등.[5] 당시 경남 서부는 대가야의 영역에 있었고, 신라가 통합하였으나 얼마 안가 백제와의 분쟁 지대가 되어 신라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