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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11 22:28:12

기훤

후삼국고려호족과 군벌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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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91970><colcolor=#fff> 죽주 호족
기훤
箕萱
생몰연도 미상
칭호 죽주적괴(竹州賊魁)[1]
이름 기훤(箕萱)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
4.1. 드라마 <태조 왕건>4.2. 김성한의 소설《왕건》4.3. 크루세이더 킹즈 3

1. 개요

후삼국시대호족.

2. 생애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 시대에 경문왕왕실의 부패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자연재해가 잇달아 일어났다. 889년 국고가 비게 되자 전국에 세금을 독촉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상주에서 일어난 원종 애노의 난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 중 기훤은 죽주로 불리는 한주 개산군(介山郡)을 근거지로 삼았다.

891년 궁예가 세달사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이 바로 기훤이었다. 세달사는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으로 추정되는데, 궁예가 더 가까운 북원양길 대신 굳이 멀리 기훤에게 찾아간 것과 후삼국시대 지방세력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적괴'(賊魁)라는 칭호(?)를 갖고 있기도 한 점을 보면 궁예가 몸담을 당시에는 기훤이 양길 이상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거나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훤은 궁예를 우습게 보고서 소홀하게 대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궁예는 기훤의 부하였던 신훤, 원회 등과 함께 기훤을 떠나 북원의 양길에게 귀부했다.

이후에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시간이 흘러 궁예와 양길의 양강 구도로 가고, 궁예가 최종적으로 승리해 후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을 보면 기훤은 얼마 못 가 패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899년 비뇌성 전투의 비뇌성을 경기도 안성으로 비정하는데, 이 시점에서 경기 남부는 양길의 세력하에 있었다. 비뇌성 = 경기도 안성시설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궁예가 양길에게 투항한 후 기훤은 어느 시점에 양길에게 토벌당했거나 세력이 와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기타

성이 기씨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존하는 기씨는 대부분 奇 자를 쓰며, 箕 자를 쓰는 기씨는 전국에 100여명 존재하는 초희귀성이며 근대에 들어 奇 씨 중 일부의 성이 오기되며 탄생한 성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4. 대중매체

4.1. 드라마 <태조 왕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훤(태조 왕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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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훤(태조 왕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김성한의 소설《왕건》

소설《왕건》에서는 궁예와 면식이 있는 동네 건달로 등장한다.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죽주를 점령해 대장 노릇을 하지만 기훤 역시 비전도 인품도 없는 막장일 뿐이었다. 세달사에서 내려온 궁예는 기훤을 찾아갔지만 기훤은 궁예를 마굿간지기로 부려먹었고, 죽주 주민들도 궁예를 무시한다. 결국 궁예는 신훤 및 원회와 결탁하여 밤중에 죽주를 탈출해 양길에게 귀부한다.

4.3. 크루세이더 킹즈 3

867년 시나리오에 고구려 문화의 약탈용병 모험가로 등장한다.


[1] 기훤 본인 자칭한 것이 아니라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풀이하자면 '죽주의 도적 괴수'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