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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05 04:23:42

김락

파일:고구려 군기.svg
패서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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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191970> 도이장가의 주인공
김락
이름 낙(樂)
향직 품계 좌상(左相)
직위 대장(大將)
시호 장절(壯節)
본관 당악 김씨(唐岳 金氏)
생몰연도 ? ~ 927년(태조 9)[1]
사망지 신라(新羅) 양주(梁州) 공산(公山) 미리사(美利寺) 앞
원찰 지묘사(智妙寺)
형제 김철(金鐵)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4. 같이보기

1. 개요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개국공신. 당악 김씨의 시조.

2. 생애

918년 왕건이 역성혁명을 성공시켜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 뒤 건국 2등공신이 된다. 927년 원보(元甫) 재충(在忠)과 더불어 견훤이 고생해서 손에 넣은 대야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후백제의 장군 추허조 등 30여 명을 사로잡았다.

927년 말 견훤의 정예병이 신라를 쳐서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후백제군과 공산 전투에서 싸울 때 후백제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위급해졌고, 김락은 신숭겸, 전이갑, 전의갑 등과 함께 왕건을 구하고 전사했다.

훗날 고려의 제16대 임금 예종 문효대왕이 서경의 장락궁에서 열린 팔관회에 참관하였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둘은 신숭겸과 김락으로 태조가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대신해 전사한 공신으로 공을 높이고자 팔관회에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는데 태조께서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래서 풀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추고 자리에 앉게 하였더니 두 공신은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를 신하들로부터 전해들었다. 이러한 설명을 듣자 예종이 감격해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는 노래인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두 사람의 넋을 기렸다.[2]

3. 대중매체

3.1. 태조 왕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락(태조 왕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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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김락(태조 왕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같이보기


[1] 대구 팔공산에서 전사[2] 두(二) 장군(將)을 애도하여(悼) 노래(歌)하였다고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