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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명 | 라미즈 타퍼 알리아 Ramiz Tafë Alia |
출생 | 1925년 10월 18일 |
알바니아 제1공화국 슈코더르 (現 알바니아 슈코더르) | |
사망 | 2011년 10월 7일 (향년 85세) |
알바니아 티라나 | |
재임기간 | 제2대 알바니아 노동당 서기장 |
1985년 4월 13일 ~ 1991년 6월 13일 | |
제1대 대통령 | |
1991년 4월 30일 ~ 1992년 4월 3일 | |
서명 | |
종교 | 무종교 (국가 무신론) |
정당 | (1961-1991) (1991-2011) |
1. 개요
알바니아 노동당의 제2대이자 마지막 서기장, 알바니아의 초대 대통령이다.2. 생애
2.1. 서기장 재임기
1985년 엔베르 호자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서기장에 취임한 알리아는 알바니아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등의 주변국과의 교류를 재개하고, 철저한 중앙통제 체제에서 권력을 일부 분산하는 등 호자가 끝까지 고수하던 극단적인 쇄국 정책과 스탈린주의 노선을 일부 완화하였으나,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는 없었으며 개혁 직전인 1989년에도 시위자들을 강제수용소에 구금하는 등 억압적인 통치는 계속되었다.2.2. 동유럽 혁명, 다당제 도입
그리고 1990년, 알바니아에도 동유럽 혁명의 바람이 불어왔고 전국적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탈출 행렬이 이어지자 국경은 거의 유명무실해졌으며, 1990년 한 해동안 1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그리스 국경을 넘어 알바니아를 탈출했다. 알리아는 결국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 알바니아 노동당은 알바니아 사회당으로 개명, 다당제를 도입하면서 알바니아의 공산정권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은 붕괴된다.2.3. 대통령 재임기
체제 전환 이후 1991년 알리아는 민주화된 알바니아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경제적 위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듬해인 1992년 4월 치러진 자유선거에서 알바니아 사회당이 알바니아 민주당에 대참패하면서 알리아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2.4. 퇴임 이후
1992년 8월 이후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1994년 권력 남용 혐의로 기소되어 8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형법 개정으로 일단 석방되었다. 그러나 체제 전환기 국경수비대에 밀출국자들을 사살하도록 명령한 혐의로 1996년 다시 수감되었다가 1997년 3월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났을 때 탈옥해 잠시 프랑스로 떠났다가 12월 귀국했다. 이후 2011년 폐질환으로 티라나의 병원에서 사망.3. 기타
- 나름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지만 근본이 엔베르 호자의 오른팔이라는 건 벗어나지 않아 1991년 3월 8일에는 국민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 항구도시이자 알바니아 제2의 도시 두러스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버스와 기차로 내륙에서 두러스와 다른 항구로 가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