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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 (게임 내부의 문제, 게임 외부의 문제, 해법) |
1. 유저들의 현명한 소비
3년 전, 회사를 때려치고 1인 개발을 시작. 대출산왕국이 히트쳤을 땐 매우 기뻣다. (중략) 어차피 아무거나 팔리니 자유롭게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해도 되겠군. 그리고 매출은 급감했다. (중략) 난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것도 모르고 똥 같은 게임을 돈 주고 팔아먹다니... 부끄러워!
똥똥배의 악성림프종 체험기 15화(2018-06-30 작성)#
게이머들은 게임계에 만연한 현질유도, 랜덤박스 등에 대해 비판하고 이런 악행들이 게임계를 몰락시킬 것이라 역설한다. 그러나 앱스토어 등에서 제공되는 매출 순위를 보면 소위 말하는 '나쁜 게임'들이 순위권에 올라있는 경우가 많다. 나쁜 게임이니, 게임계가 망할 것이니, 현질 안 하면 게임을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 게임에 엄청난 돈을 소비하며, '좋은 게임'이라 칭하는 국산 인디게임, 혹은 국내 대형 게임사의 참신한 시도가 들어간 실험작에 대한 지지와 소비를 하지 않는다. 결국 악질 게임사들을 비판하는 게이머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똥똥배의 악성림프종 체험기 15화(2018-06-30 작성)#
유료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게임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데도, 고의적인 파워 인플레 때문에 계속 랜덤박스를 질러야 하는데도, 그 랜덤박스의 공개된 확률과 실질 확률이 다른데도, 유료로 판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의 성능을 '밸런스 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게임사 멋대로 바꾸는데도, 확장팩이라는 핑계를 대며 수준 미달의 DLC를 내놓는데도 그런 게임들은 언제나 매출 순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그 반대선상에 있는 정가 판매, 무료 DLC 판매를 하는 국산 인디 게임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런 이율배반적 행동이 제작사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게임은 하나의 재화이자 상품이며 게임 제작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니만큼, 게임 시장도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좋은 게임들이 많이 '공급'되기를 바란다면, 그 좋은 게임들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좋은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며, 이에 대해선 후술하기로 한다.
2. 게임의 예술성 제고
"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혹은 고품격 예술인가?"에 관해서 만약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인정하게 될거예요. 사람들이 예술로 인정할만한 게임이 지금은 없다고 해도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예술로 취급될 물건이 나오겠죠. (중략) 게임이 예술로 발전하는게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에게 미디어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라고 하고 싶네요. 지금의 게임이 고품격 예술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그렇게 될수 있는 가능성을 봐야한다구요. 과거에 많은 예술가와 미디어가 무시당했지만 "그들이 뭔가"가 아니라 "그들이 뭐가 될수 있는가"가 오늘날까지의 발전을 이루어 낸 겁니다. 이런 것이 이런 걸로 발전하는 게, 이런 것이 이런 걸로 발전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물론 생각없이 소비하는 영화처럼 생각없이 소비하는 게임들도 언제나 존재하겠죠. 하지만 그게 여러분이 볼 수있는 비디오 게임의 한계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 Nostalgia Critic의 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논평에서
- Nostalgia Critic의 비디오 게임은 예술인가? 논평에서
게임의 문화로서의 모습은 텍스트 묘사의 접목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반에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인 퐁을 필두로 아케이드 게임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오락실이라는 장소적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PC에서 어드벤처 게임 미스테리 하우스와 함께 여러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게임은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성장해 나간다. 특히 서양의 장르문학에서 지대한 팬층과 흥미를 안고 있는 판타지와 셜록 홈즈 시리즈를 포함한 추리 소설 등이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의 형태로 구현된 것이 더욱 컸다. 이러한 흐름과 점점 발전하는 그래픽이 합쳐져서 나타난 것이 초창기의 울티마, 위저드리,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등의 RPG 게임이다.[1]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게임 개발자나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들은 게임을 '놀이 도구'에서 주제 의식의 매개체로 보고 인간 찬가 혹은 인간 비판 사상을 담아내려고 애썼다. 이렇게 작품 속에 주제를 담아 예술로 발돋움하는 과정은 마치 천대받던 소설, 영화, 만화의 발전과 매우 흡사한 과정을 거쳤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손꼽히는 할리우드 영화도 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소리 없는 흑백 무성영화 혹은 연극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소설이나 만화 역시 펄프 픽션 같은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나서야 명작들이 하나씩 나왔다.
- 영웅전설 1, 2편 : 『세상이 멸망한 뒤의 세상』이라는 파격적인 배경과 뒷설정으로 인간 비판을 보여줬다.
-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 과학에 자연이 유린당하며 미래가 황폐해지는 『자연과 과학의 공존과 파괴』의 테마를 담아냈다.
- 파이널 판타지 VII : 1st 솔져라는
중2병에 걸린자아의 환상이 깨지면서 폐인이 된 주인공이 이후 자신과 마주하며 자아 정체성을 깨닫고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발매 당시 일본에 팽배한 패배주의와 집단자살에 『자아를 찾아!』라는 주제를 보여주었다.[2]
이렇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해답을 내놓은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기존의 사회적 인식을 비틀어버린 작품도 있다.
- 스펙 옵스: 더 라인의 경우, 초반에는 대부분의 영웅주의적인 FPS 전쟁물들이 그러듯 '나는 정의이고, 저들은 악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정의인 내가 저들을 쓸어버리고 그 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한다' 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중반의 백린탄 학살 씬부터 이를 완전히 비틀어 내어 전쟁을 다루는 것에 영웅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비인간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로딩 메시지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게임 속에서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즐거운지에 대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 강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엔딩에서 등장인물 존 콘래드 대령의 "이젠 좀 영웅이 된 거 같나, 워커 대위?"란 말은 고립된 두바이를 구하려 했으나 내막도 모른 채 무작정 개입해서 결과적으로 도시를 완전히 붕괴시켜버린 플레이어의 영웅주의를 비판한다.
- This War of Mine은 그동안 전쟁과 영웅을 다루는 게임에서 부각되는 호전적이고 쾌활한 전쟁 게임들과는 정반대로, 전쟁의 뒷면에는 온갖 고생을 겪으며 희생되어가는 민간인들도 알아야 한다며 게임으로 표현 해낸 경우다. 위협이 되지 않는 민간인을 죽이면 그 대신 주인공이 생존할 수 있는 갖가지 물품을 얻을 수 있지만, 심해질수록 주인공의 양심과 멘탈이 점점 붕괴된다. 도둑질 또한 마찬가지이며, 전쟁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민간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예술적으로든 사회 비판적으로든 게임 속 평범한 민간인 주인공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외치는 메시지가 워낙 짠하고 강렬하게 남으며, 인디 게임임에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해 스팀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은 게임이다.
- 성경에 실린 '이사악의 번제'를 비틀어낸 아이작의 번제 시리즈는 비뚤어진 신앙심을 가진 모친의 학대를 피해 던전으로 도망치는 꼬마 아이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해설하지는 않으며, 새로운 아이템, 로딩 중에 나오는 아이작의 꿈, 회차마다 달라지는 배경과 엔딩 등 게임의 특성을 활용한 은유로 달라져가는 아이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스토리 파악은 플레이한 사람의 개인적 유추에 전적으로 맡겨진다. 때문에 단순한 플레이 방식을 가진 인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과 뛰어난 대중성을 모두 갖출 수 있었다.
- 언더테일에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리는 분위기와 게임의 스토리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연출로 인해 그래픽이 구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게임 속에서 살아서 등장인물과 교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게임은 일방적으로 즐기는 다른 예술작품들과 달리 "조작(플레이)"이라는 쌍방향 체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희나 드라마적인 측면으로도 발달했다. 제절초나 카마이타치의 밤, 슈타인즈 게이트 같은 비주얼 노벨을 통해 마치 공포 영화나 SF 영화 같은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인간의 성장과 역경, 심층의식 등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흥분, 감동을 고조시키며 사실상 '스토리가 있는 모든 문화는 예술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증명해내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투 더 문은 외국 유명 영화 전문잡지에서 극찬을 할 정도로 영화 같은 시나리오와 사람의 가슴을 감동케 하는 스토리와 연출로 이미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한 적이 있다. 심지어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영화업계인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고, 외국 유명 잡지에 명작 영화 TOP 100에 매번 반드시 1위를 꼽는 전설의 레전드인 시민 케인과 비교되는 10점 만점을 받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은 단순히 즐길거리를 넘어서 영화와 비슷한 '종합적 예술'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영화의 구성 요소인 영상미, 음악, 연출, 시나리오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은
- (가상이더라도)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수려한 영상미를,
- 비트 위주의 단순한 음악부터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운드트랙과 소리로 뛰어난 청각적 만족감을,
- 다채로운 효과나 편집 기술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극적인 연출을,
- 제한된 시간과 흐름에서 벗어나 노력에 따라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풍부한 줄거리를,
- 기존 매체와 달리 사용자가 화자나 주인공을 (주어진 범위 내에서) 직접 조종하는 개입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 외에도 이미 연출적으로도 만화,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과 스토리성으로 게임의 예술적인 면모를 담아낸 게임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해왔다. 자세한 사례는 시네마틱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무비 참고.
반면 국내 게임들은 카피캣이 범람하여 시장 자체가 망가지거나, 게임에 대해 심도 깊게 토론 및 고찰을 하는 사례가 드물었고 설령 토론을 하더라도 널리 퍼지지 못했기에 외국에 비해 게임에 관한 담론이 생기지 못했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지에서 그러한 담론이 생겨나고는 있으나 규모가 작아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고, 그마저도 작은 사회마냥 소수 의견에 동의하는 소수 인원들의 소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 등 권력자들이 게임을 4대 중독으로 지정하여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게임사, 게이머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이런 면을 좀 더 널리 퍼트려야 한다.
2.1. 보충: 게임의 예술성과 상업성은 대립하는가?
다만, 상업성을 문제삼아 위의 "예술 중심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즉 한국 게임의 내적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현재 게임 시장의 트렌드와 일치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는 것이다.일단 위에서는 싱글플레이 게임을 위주로 나열하고 있으나, 싱글플레이를 만들어야만 게임의 작품성이 높아지며 문화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편협한 감이 있다. 지금 한국이 잘 하고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으로도 얼마든지 발전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가령 지난 20년간 컨텐츠 시장의 흐름을 보면, 천재 디렉터가 장인정신으로 만든 소수의 작품이 이끌던 시장에서 가볍고 대중성 있는 다수의 작품이 이끄는 시장으로 변화하였다. 영화의 경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3~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장대한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영화의 제작편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영화계는 보다 짧은 러닝타임, 스피디한 편집을 중점으로 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게임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개발자의 철학보다는 다수의 입맛에 맞춰 캐주얼하고 라이트한 플레이 방식이 중요해졌으며, 부분유료라는 새로운 과금모델이 등장하고,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멀티플레이 게임들이 큰 인기를 얻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하스스톤을 만들고, F2P 모바일 게임 파이어 엠블렘 히어로즈가 싱글 유료 게임 슈퍼 마리오 런보다 더 적은 수의 유저들로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온라인 게임을 외면해 왔던 각종 게임 시상식에서 오버워치가 여러 상을 수상하는 등 게임 시장의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와 배틀필드 시리즈는 이미 멀티플레이 중심으로 개발되며 각종 부분유료 아이템까지 넣고 있고, 유비소프트는 차후 AAA 게임들은 멀티플레이 중심이 될 거라고 발표한 바 있다. #
즉 한국 게임계가 고민할 부분은 싱글이냐 멀티냐의 플랫폼 문제가 아니라 "좋은 완성도의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This War of Mine이나 언더테일 등은 모두 인디 게임으로, 해외의 대형 게임 개발사들도 그런 종류의 게임은 잘 만들지 않는다. 상업성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인디 스타일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시장 교란에 가까운 행위이거나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있다. 게임어바웃의 '애프터 디 엔드' 리뷰
게임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으며, 꼭 예술성을 추구해야 좋은 게임이라는 주장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우리나라에 PC방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E-스포츠를 탄생시켰으며, 그 속에서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경기를 펼쳐 팬들에게 추억을 남겼다. 이것도 게임의 '작품성', '서사성'과 무관하니 예술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게임이 반드시 영화나 소설 같은 일방향적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매체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메커니즘이다. 합리적인 과금, 합리적인 룰과 시스템을 통해 모든 유저가 공정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연구해야 한다.
물론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도 시장의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싱글플레이 게임들은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권에서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이고, 그 일본조차도 8세대 콘솔로 넘어와서는 자국 내 밀리언 셀러 작품이 파이널 판타지 XV와 드래곤 퀘스트 11,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 게임업계의 주된 해외 시장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인데, 풀 프라이스 게임을 판매하려면 타겟을 북미와 캐나다, 유럽 등으로 돌려야 한다. 하지만 일련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존재하는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동양과 서양 간의 문화적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며 이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예로 든 파이널 판타지 XV나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십수년 전부터 서양에서 쌓아온 인지도가 있었기에 글로벌한 흥행이 가능했다. 드래곤 퀘스트 11만 봐도 일본 내수용 게임으로 취급될 뿐, 국제적인 흥행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기존에 널리 알려진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은 절대 다수가 콘솔 플랫폼을 중심으로 개발된다. PC 플랫폼에서는 온라인 게임이 엄연한 강세이고, 킥스타터 및 인디 게임들만이 서사 위주 게임의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 게임계는 그 PC 시장이 메인이고, 콘솔 시장도 작은데다 콘솔 게임에 대한 개발 경험도 거의 없는 상태이니 국내에서 좋은 싱글플레이 게임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선 어려운 일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개발 중이라고 알려진 싱글플레이 게임에는 시프트업의 프로젝트 이브와 크래프톤의 미스트오버, 라인게임즈의 베리드 스타즈, 창세기전 리메이크 정도밖에 없다. 이 게임들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향후 전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배틀그라운드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F2P가 아닌 B2P 과금방식의 게임도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인디 게임 또한 스팀이나 모바일 게임 등 배포가 자유로운 시장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으며, 상술한 대형 개발사에서 인디 계열의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는 비판 또한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를 통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음을 보여줬다. 이 작품들 모두 위에서 지적한 '예술성'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이들 작품들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한국 게임계에서 예술성은 필요 없다" 같은 극단론으로 빠지는 것 또한 위험하다. 한국 게임계가 상업성만을 중시한 결과 대한민국 게임업계 연쇄 파동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예술성이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일부 스타 개발자들의 선민사상으로 인해 기껏 잘 만든 작품들이 망가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위에서 극찬을 받았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후속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가 상당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 그 예다.
결국 "'좋은 게임'이 무엇인가"는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뒤집어 말하면 이는 게임에서의 취향은 무한히 넓다는 말도 된다. 따라서 예술성이나 상업성 둘 중 하나만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위에서 말했듯이 건전한 토론을 통해 "어째서 이 게임이 명작인가"를 깨달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3. 정품 구매
이렇든 저렇든 복돌이는 나오게 되어 있다. ‘한국’ 게임계에 대해서만 얘기할 경우 이 주제는 비중이 줄어드는데, 한국 게임계는 온라인과 모바일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정품’ 운운할 콘솔이나 패키지 게임이 거의 사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게임 위주로 설명하기로 한다.한편 한국의 미성년자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거의 9할 이상 의존상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 자녀의 경우 학교/학원 외에 활동을 강제로 제한당하다보니,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어 부모가 주는 용돈을 제외하면 사실상 경제적인 주체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 용돈을 게임 구입에 사용하더라도, 기성 세대(부모님)는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구입을 허용하지 않는다.[3] 그러다 보니 게임을
그런 점에서 음악계의 저작권 관리 시스템은 참고할 만 하다. 음악계도 공유 문제 때문에 고생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실제로 음원 판매 사이트의 운영도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실적이 좋은 편이다.
3.1. 관련 문서
4.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
단순히 하루 십수시간 개미처럼 일만 하는 노동 문화를 갖고 있어서는 소프트파워가 발전하지 않는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다. 단지 돈만 많이 번다고 선진국을 만들지 못한다. 지금은 산업혁명기, 개발도상국 시기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자원이 부족하고 인력이 많은 산업을 키워야 한다.휴식을 해야 그 다음에 더 큰 성과를 내지 않겠는가. "그 휴식 수단이 굳이 게임일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젊은이들의 취향이다. 그럼 몸에도 안 좋은 담배는 뭐하러 피고, 술은 뭐하러 마시는가?"라고 대답하면 된다. 젊은이들이 집권하여 어른들에게 '트로트는 구제도의 잔재이므로 모조리 차단한다'고 한 번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4]
3차 산업 중심의 사회는 더더욱 이런 부가가치 산업을 많이 키워야 한다. 그 이유는 1차나 2차 산업이 아무리 연계해도 3차 산업의 연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업과 제조업 특성상 준비 자금을 비롯하여 초기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시장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데 비해, 3차 산업은 약간의 준비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하여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성층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중공업, 토건개발 중심의 발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중공업과 토건개발이 사람의 '생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더라도 '감상의 욕구'를 채워주진 못한다. # #
이 인식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이 '제도화'이다. 제도화에는 부작용도 많지만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긍정적 작용이다.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는 미술관을 만들었는데, 이는 어떤 미술이 좋은 미술이고 어떤 미술은 저질인지 종사자들과 관객들에게 심미안을 알려주는 공간 역할을 했다.
비슷하게 영화계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을 만들어 영화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교육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굳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잡지 등에 실리는 평론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평론가나 제도 기관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5]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런 제도는 꼭 필요하다.
이런 제도가 있으면 그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는 가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 글은 읽어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계 종사자들이 '미술관에 1년에 몇 번이냐 가보냐?', '시민 케인은 본 적 있냐?', '최근에 읽은 소설책이 뭐가 있냐?'고 되물으면 비난자들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걸 생각해보자.
한국 게임계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비디오 게임 자료원'을 만들어야 한다. 오래전에 발매돼 더 이상 플레이 해보기 어려운 게임들을 복각하여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같은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기업가들이 행사에서 테이프 커팅하든 축사를 하든 이에 얽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체험 행사 같은 걸 마련해서 학생들과 함께 '교사'들도 와서 게임을 해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불어 기성세대들을 위한 교육강좌도 병행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사료 보존 및 자료 전달
오래된 고전 명작 게임(레트로 게임)들을 복원함으로써 게임계 종사자들에게는 게임 개발에 되는 자료를, 게이머나 일반인들에게는 게임의 역사와 발전 과정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특히 트렌드를 형성하거나 파악하기 위해, 과거에는 기술적 문제로 구현되지 못했던 기능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사료 보존은 꼭 필요하다. - 일반인들의 체험
적게는 게임 애호가들, 넓게는 학생이나 사회적 동호회가 행사나 모임을 가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입문하는 문턱을 낮출 수 있다.[6] - 대외적인 홍보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이 관련 기관이나 행사에 참석하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대중은 '게임이 이렇게 인정받는 분야구나' 하고 인식함으로써 홍보하는 효과가 생긴다. 더 나아가 정치계나 사법계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규제나 시장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게임업계를 확대시키는 발판
단순히 게임을 전시하는 것 이외에 관련 강좌와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새로운 업계인들을 양성하거나 게임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상술했듯이 단순히 게임 기기 및 기판의 전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개발자들이 이렇게 게임 스테이지를 설계했고, 이것이 게이머가 어떤 인지효과를 경험하도록 유도한 것인지 설명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임은 출시된 지가 이미 30년이 넘었다보니 게임계 내부에서도 세대가 나뉘었고, 그러다보니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조작감이 어떤지 모르는 채[7] 게임계에 입문하는 젊은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역할을 하는 행사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정도인데, 이는 일시적인 행사여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노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한국에 이런 역할을 하는 기관은 현재 넥슨컴퓨터박물관 정도밖에 없는데,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제주도에 있어 수도권이나 경상도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사립 박물관은 정부 지원과는 별개로 게임사 지원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이 정부 지원을 받은 제도 기관은 문화부 같은 정부 기관의 안정적 지원을 받는 기관이 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정부 기관들은 이런 제도 기관에서 벌이는 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게 된다.
단순히 정당 대표가 "게임산업의 과도한 규제 완화할 때"라고 공허한 제스처를 날리는 건 믿을 수 없다. 그런 정치적 수사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게임규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에게 말이 아니라 직접 실질적인 지원을 하라고 압박할 필요가 있고, 그런 면에서 이런 제도 기관은 한국 정부가 자국 게임 산업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제도화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인맥이나 지연에 따른 '코드 인사'가 게임자료원 기관장 선임에 영향을 준다든지, 왜 이 게임은 지원해 주면서 저 게임은 안 된다고 하는지, 위에 서술한 목적이 아닌 게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한다든지, 기타 게임이 아닌 사회적인 부분에서 실수(ex. 페미니즘 관련)가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 기관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2020년 11월 23일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문화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고 이전까지의 논란을 의식해 여론이 나뉘었으나, 보고서에서 다수의 오류가 발견됐고 문체부 예산안에서도 삭제됐다. 문재인 정부 때도 그렇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예산 삭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게임문화박물관 건립은 먼 미래의 일이 될 듯하다.
5. 게임계 내부의 자정활동
그러나 사회 인식을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게임 업계에서도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우선 규제론의 지적을 무작정 배척하지 않고 합리적인 부분은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게임시장이 과도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임들 위주로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 영화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게임은 5시간 이상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는 경우도 건강에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긴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피로도 시스템 외에도 플레이 타임을 끊어서 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계속 해야 하는 하드코어 게임보다, 짬짬이 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을 어떻게 재밌게 만들지 고려해 볼 필요성은 분명 있다. 특히 잠깐 피곤하거나 질리면 바로 정지하거나 끌 수 있는 오프라인 게임에 비해, 온라인 게임은 시시각각 변하는 특성 때문에 벗어나기 힘들다. 게이머들은 게이머들대로 휴식하고, 게임사는 게임사대로 언제 어디서든 "안전하게" 멈출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과도한 캐시템과 사행성 조장도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8] 이거는 평범한 게이머라도 짜증이 나는 일이다. 아무리 게임사도 이익을 노리는 조직이지만, 어째서 게임사가 망가뜨린 밸런스를 게이머가 현금을 들여서 맞춰줘야 하는가? 수익에 눈이 멀어 게이머를 등쳐먹을 것이 아니라, 원 소스 멀티 유즈나 2차 창작 등을 활용하여 수익을 내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해서 개발해가야 할 것이다.
- 워킹 데드 시리즈의 원작인 만화는 워킹 데드(게임)로 게임화가 되었고, 반대로 게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어쌔신 크리드(영화)로 영화화가 되었다.
- 오버워치의 경우 메르시의 신규 스킨을 이용해 유방암 연구 재단에 기부하여 수익 창출 및 사회적 문제의 제고 등에 성공했다.
- 망작 소리를 듣는 서든어택 2도 신캐릭터와 스포츠의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광고를 진행하여 상생을 추구한 바 있다. 의도는 좋았으나 본체인 게임의 문제가 상당하여 흐지부지되었지만(…).
- 코믹 메이플스토리 역시 국산게임인 메이플스토리를 만화화한 것이다. 이 역시 문제가 생겨 애매해졌지만(…).
선정성의 경우 서든어택 2 등을 사례로 삼아 무조건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약간 과장된 감이 크다. 서든어택 2의 경우 심한 과금유도(캐릭을 성능별로 가격에 팔아치운 행위)와 낮은 게임성으로 말아먹은거지 선정성이 주된 이유는 아니다. 여론에서 이해하기 쉬운 선정성 논란으로 몰아가서 그렇지 기자들은 게임을 해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었으면 띄었지 여캐 디자인은 호평을 받았고
설령 선정성이 문제가 되더라도 등급에 잘 맞추면 해결된다. 왜 전체 연령가가 있고 15세, 18세 이용가가 있겠는가? 수요자 연령층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흔히 지적되는 선정성(과 폭력성 및 기타 자극적 표현) 문제는 등급에 맞지 않는 표현이 원인이다. 이것도 제작자가 의도한 연령층이 아닌 사용자들이 접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그 책임을 제작자에게 묻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선정성의 수위를 잘 지켰을 경우 엘린 스쿨미즈 코스튬처럼 국내 전 수영복 판매 매출보다 더 벌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테라는 청소년 이용불가다.
폭력성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나 전투, 싸움 등이 게임에서 많이 나오는 건 '주제'라는 측면에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현실에서 그렇게 많이 싸우지 않으므로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의 폭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든 작든 당연히 존재한다. 모든 게임 장르가 전쟁과 전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게이머들의 취향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리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비판, 디스토피아, 피카레스크, 전쟁 등 폭력이 불가피한 소재가 아닐 경우 불필요한 폭력성을 줄이는 한편 동물의 숲 시리즈처럼 비폭력주의이면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때리거나 휘두르는 큰 동작이 유저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더 작고 소소한 동작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비슷한 이유에서, 생활형 콘텐츠는 정말 소수 매니아만 재미를 느끼기에 경제성 없는 콘텐츠일까? 심즈 등의 예를 봐도 그렇듯, 먼저 말한 대로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여성층이나 장년층을 타겟으로 한다면 차라리 이쪽이 더 옳은 방향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예로 플래시 게임에서 흥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소위 "식당 경영" 같은 계열은 개발하기에 따라서 난이도와 고객층이 다양해진다. 장년층이라 해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자영업' 컨셉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기능성 및 교육용 게임은 현재로선 그나마 게임 시장 중에서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분야이고, 실제 게임 구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학부모를 비롯한 성인층이기 때문이다. 10대 이하의 계층은 게임을 잘 즐기는 계층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에 대한 지불 능력이 없는 계층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국 학부모가 게임 시장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는 ESRB의 탄생 배경에도 잘 드러난다. 게임, 폭력, 문화... 그리고 한 남자의 도전 실제로 드류 크레센티 같은 사람의 시도는 의미도 있고, 게임 인식 재고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게임이라면 여성이나 학부모라도 권할 만하고, 이런 게임이 널리 퍼진다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캐릭터의 행동이나 행위, 유저-캐릭터 간의 상호작용 등의 AI 문제는 딱히 건드릴 게 없으나, 대부분의 국내 온라인 게임 특성상 게이머와 게임 내 세계관이 괴리되어 있다. 게이머의 닉네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 선택지, 특정 단어에 반응하는 식으로 게임의 질과 게이머의 참여를 유도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기능성 게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 예로 국내에서 닌텐도 DS가 '기능성' 게임기임을 강조하면서 다수의 기능성 게임을 앞세워 보급에 성공했지만, 정작 3DS로 넘어가자 그냥 게임기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학부모들은 지갑을 굳게 닫아버렸다. 닌텐도 3DS/한국 시장 상황 문서 참조.
여기에 기능성 게임 시장은 의도했던 문제를 너무 엉뚱한 방식으로 다루는 괴작 때문에 인지도 자체가 바닥을 긁고 있는 데다가, 기능성 게임 자체만으로는 돈이 안 되니 공급도 딸리는 게 현실이다. 과거 닌텐도가 아타리 쇼크를 해결할 때 '기능성'을 유난히 강조한 것과는 대비적이다. 국내의 교육열이 높은 것까지 감안하면, 기능성 게임, 그 상위라 할 수 있는 시리어스 게임같은 여러 게임들의 부재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부분.
나아가 기능성 게임, 교육용 게임 뿐 아니라 인디 게임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디 게임은 게임 같지 않아서 경제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저니 같은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실 순수예술은 실제로는 효용이 큰 분야 중 하나다. 순수예술에서 시도된 새로운 것들을 상업예술 분야의 디자이너나 공학자들이 활용하는 등의 사례도 많기 때문.
대표적으로 MTV의 사례가 있다. 예술은 감각을 다루고 연구하면서 계속 새로운 '느낌'을 찾아내려 애쓰는 분야이기 때문에, 여기서 찾아낸 새로운 느낌은 말 그대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게임도 마찬가지.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야 게임업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영화의 예를 보면, 할리우드 같은 경우 독립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실험을 하면서 활동하던 감독들이 메이저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크 나이트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표적이다. 마치 야구의 1부 리그, 2부 리그 같은 구분이라 보면 되겠다. 넥슨이나 NC 같은 대형 게임업체가 인디 게임 개발자 등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NHN 같은 경우 개발자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네오위즈는 게임 공모전을 열기도 한다. 다만 아직까지 성과는 그리 크지 않은 편. 게다가 이런 대회는 비업계인이나 게임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참가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게임사들이 게임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려면, 자신들이 먼저 문턱을 낮추고 다가서야 한다.
6. 다른 분야와 비교, 분석, 협력
자세한 내용은 학제간 연구 문서 참고하십시오.중요한 건 게임이 경제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이자 삶의 경험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예술계나 영화계처럼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게임계가 무시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장 큰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해당된다.
이는 현재 게임계가 영화계나 만화계와 비교해 상당히 뒤처지는 부분이다. 영화감독들 중에는 철학자 뺨치게 유식하고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만화가 중에서도 자기 생각이나 철학을 만화에 담아낼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영화계는 사실상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만화도 은근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 영화나 만화가 정치적 논리를 담기만 하면 금세 국제관계로 발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온라인 게임 2시간과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2시간을 비교하면 아직은 영화의 만족감이 높다. 온라인 게임의 역사는 고작 20~30년일 뿐이고, 영화는 10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쉽게 경쟁할 수 없겠지만, 온라인 게임은 앞으로도 도전해야 한다. (출처)
하지만 게임의 문화적 영향력은 그 경제적 성장과는 별개로 아직 한참 미숙하기 짝이 없다. 전길남 교수의 말대로 사람들은 게임보다 영화에서 더 높은 만족감을 얻는다.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엄연히 영화 > 게임이다. 심지어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조차 스스로를 영화화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더 많은 대중들에게 콘텐츠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을 영화화했을 때에는 대다수가 저연령층 중심을 노리거나 괴작이 되는 걸 보면 영화 관계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보는지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현재 영화가 게임보다 더 핵심의, 상위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지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역사가 비교적 짧은 게임과는 달리 오랜 시간을 통해 대중들의 인식도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감각의 여운은 오감을 동원하는 게임도 못지 않지만, 중요한 건 사회적 인식의 상승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영화 역시 현재의 게임과 비슷하게 저질 오락 취급을 받았고, 대중들은 영화를 유해매체 취급했다.
20세기 초의 영화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에서 탄생 초기의 영화는 전용 상영관 없이 장터극장(fête forain)을 떠돌며 상영되었고, 1896년에야 겨우 파리와 리용에 전용 상영관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영화업자들이 일정 기간을 임대로 상영관을 확보하여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1897년 5월 4일의 파리 자선 바자회 화재로 부유층 인사 128명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자 영화는 위험한 오락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본격적인 영화 상영관 건립이 불가능하게 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신기하기 짝이 없던 활동사진이 그 길이가 너무 짧고 천편일률적인 내용 때문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 대다수 지식인들은 영화를 경멸하는 풍조까지 나타났다.
당시의 장터를 중심으로 한 극장에서는 영화 1편당 한 쇼트로 구성된, 대략 1분 정도의 상영시간을 가진 필름을 10여 편 정도 보여주고 1프랑 내지 50 상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영 중에는 변사의 해설이나 손풍금 따위의 음향효과가 뒤따랐고, 초기의 뤼미에르 식의 기록영화 위주에서 차츰 벗어나 희극적이거나 남녀관계에 관한 내용이 가미되면서 서민들이 즐기는[9] 오락으로 자리 잡게 된다.[10]
참고로 한국 영화계나 만화계도 B급 영화나 저질 만화 같은 걸 뽑으며 연명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화계와 만화계는 그걸 만회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영화는 서편제나 쉬리 등이 나오던 이후부터(대략 1990년대) 불건전 딱지를 뗄 수 있었고, 만화는 최근에 웹툰 등에서 여러 취향을 가진 작가들이 다채로운 작품들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영화계는 각종 스캔들과 배급사의 이윤착취 등의 문제가, 만화계는 일부 기본 역량도 갖추지 못한 웹툰 작가들의 난립과 이를 관리해야 할 전문 편집자들의 부족이 일으키는 문제들, 그리고 출판만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적극적인 이윤 창출을 내기 어려운 기형적인 산업구조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는 점과 문화적 다양성 문제를 따졌을 때 게임계만큼 무책임적인 수준으로 방관적이지도, 천편일률적이지도 않다.
반면 게임은 경제적으론 성공했을지 몰라도, 소비계층이 젊은 남성층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다. 젊은 남성층 외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게임은 애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게임을 즐겼던 젊은 남성층도 나이가 들어 직장에 다니게 되면 자기가 예전에 그런 게임을 했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숨기거나 끊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11]
이는 물론 게임 개발사가 천편일률적으로 젊은 남성층에만 어필하는 게임을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취업을 하게 되면 게임을 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게임 외의 다른 즐길 거리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여러가지 사회상이나 세상사를 알게 되면 게임 내에 묘사된 것들을 '유치'하게 여기게 될 가능성도 높다.
결국 게임으로도 시민 케인 같은 영화나 모래시계 같은 드라마 못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현재 게임 유저층이 아닌 사람들도 게임을 친근하게 대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당장 PS3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 명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영국의 영화 잡지 엠파이어로부터 들었던 평이 바로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 시민 케인에 비견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였다.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라 봐도 무방한 평이다.
다행히 일부 개발자들은 게임이론이나 심리학 이론을 게임 개발에 접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특히 예술계, 영화계, 만화계. 특히 영화나 웹툰 등은 종종 게임과 협업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분야를 게임에 녹여내는 단순 마케팅이 아니라, 그들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했는지 등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성 문화매체 인사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남들이 안해본 짓을 해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전문가일 테니. 게임계와 예술계 사이에서 논의되는 내용에 대해 확인하고 싶다면 게임과 예술 문서를 참고해도 좋다.
예술계가 아닌 다른 분야들과의 협력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법조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게임규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처할 수 있고,[12] 정치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정부나 게이머들과의 관계에서 서로 이로운 정책을 세울 수 있으며, 경제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보다 효과적인 시장분석과 마케팅이 가능하며, 예술계 인사들과 협력해야 특히 기존 게이머가 아닌 새로운 소비자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어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
7. 개발사의 체질 개선
현재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게임 개발사가 단기적인 수익 모델을 버리고 게임 IP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수익 모델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게임의 사회적 인식 개선, 개발자 근무 환경 개선, 다양한 장르와 아이디어 개발, 내수 시장의 선순환 등의 사항은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며 그냥 한탕장사 양산형게임을 만들어내는 게임사들의 대우를 개선해달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대한민국 게임 업계는 그동안 엄청난 고비를 수차례 맞이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번창했던 패키지 게임계와 업소용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계가 급속도로 몰락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성장하여 PC가 대중화된 2000년대부터 온라인 게임계의 발달과 쇠퇴의 과정, 스마트폰이 대중화 된 2010년대 초반부터 비슷비슷한 스마트폰 모바일 게임들의 양산, 최근의 각종 규제 시도 등 대한민국의 게임계는 현재 각종 각계에서 어려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게임계가 이런 위기상황에 잘 대처해왔다고 평가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연출과 서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이제 찾아볼 수도 없고, 많은 한국의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은 그저 해외 게임들의 마이너 카피 버전에 불과하며 노가다와 현질을 강요하는, 틀에 박히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물건들일 뿐이다. 대한민국 게임 업계는 정부가 마녀 사냥할 대상으로 자신들을 겨눌 때까지 돈만 빨다 뒤늦게 규제에 눌려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렇게 한국의 게임계가 수없이 많은 문제들에 방치되고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한국식'으로 고립된 한국 게임계가 국제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서까지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머지않아 외부적으론 수준 높은 외산 게임들에 밀리고, 내부적으론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또 다른 어떤 한국의 문화산업들(특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밀려 게임 규제에 반대하는 주요 레파토리 중 하나이기도 한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 중 최고의 수익성을 지닌 한류 컨텐츠'라는 말도 옛말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설령 게임 규제가 없었더라도 말이다.[13]
게임 산업이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몰린 원인으로는 게임 자체의 문제와 게임에 대한 미흡한 시선도 존재한다. 거기서도 문제점을 직시하지 못한 업계가 질 책임이 가장 무겁다. 마치 모든 악의 원흉은 정부와 정치인들이고, 게임업계는 힘 없는 피해자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 권력을 들이밀면서 소란을 일으킨 세력은 사실 한국의 게임 업계다. 야근, 박봉, 폐쇄적인 문화, 고객을 호갱으로 여기는 마인드를 비롯한 문제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의 게임 업계들에서는 게임을 '하나의 문화이자 자신의 인생을 건 작품 세계'로 보고 게이머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문제점의 발견 및 개선을 통해 이 모토를 지켜왔지만,[14] 한국 업계는 게임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볼 뿐이다.[15] 자신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고위층과 생각이 닮았다. 이게 현실이다. 그 결과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떳떳하게 게임은 훌륭한 문화 창작물이라고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8. 게이머의 인식 개선
개발사의 질 상승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이다.좋은 게임이 있다면 입소문을 내주며 소비를 유도하고, 나쁜 게임이 있다면 해당 게임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개발사가 고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게이머가 한국 게임계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게이머의 행동들을 보면 취향과 맞지 않는 장르거나 모바일 게임 같이 게임성 보다는 대중성을 노린 게임을 출시할 경우 일단 극심한 비난부터 하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다. 또한 게이머의 입맛에 맞는 게임을 만들어준다 하더라도 반응이 미적지근한 경우도 상당하다.[16] 한국 게임계의 발전을 바란다면 취향과 맞지 않더라도 일단 관심이라도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정작 관심이 필요한 게임은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 게임계를 비난하는 게이머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른 서비스업은 이미 과거부터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지만 기반이 부실한 신흥 사업인 게임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부터 이미 비관적인 여론조성이 상당하게 진행됐으며, 이제 한국 게임계를 변호하거나 한국 게임을 향한 혐오를 비판한다면 자연스럽게 흑우, 개돼지 등의 멸칭을 쓰며 게임사의 알바,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여론 때문에 게임에 대한 통찰 없이 그저 비난하고 까기만 하는 수준 낮은 유튜버들이[17] 양산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게임사들은 게이머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다른 고객을 공략하는 길을 택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입맛도 까다롭고, 게임을 보는 눈도 지나치게 높아졌고, 요구 또한 수용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인 게이머보다 대충 만들어도 아무 생각 없이 돈 퍼주는 린저씨 같은 계층을 공략하게 됐다. 게이머의 환상을 일일이 충족해줬지만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게임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야생의 땅: 듀랑고가 있는데, 그렇게 여러 요구 사항을 충족하며 게임사도, 게이머도 대작이라고 밀어줬었지만 높은 서비스 비용에 비해 수익은 적자를 기록한 것이 몰락의 결정적인 이유가 됐으며[18] 또한 한국 인디게임들도 이런 게이머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게임을 제작했지만 결국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접고 있으며, 어쩌다가 해외에서 대박이 난 게임이 생기면 그제서야 할만한 게임이라고 망무새가 아니었던척 칭송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망무새와 갓겜충들이 만연하는건 한국 유저층의 게임을 향한 잣대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인증한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저와 개발사의 딜레마 속에서 좋은 운영 방안을 논의하는 등의 건설적인 행동 없이 그저 한국 게임 업체를 무조건적으로 비방하고 저주하는 일만 계속되었다. 이런 행동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유저들이 좋은 게임사에 사재기 운동과 같은 합당한 보상을 하고, 충분한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가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나쁜 개발사의 행보에 제지를 가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한국 게임사가 만든 게임은 별로라면서 돈을 쓰지 않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게임을 그만두라고 강요한다. 정작 모바일 게임 유저들의 63.2%는 애초에 게임에 돈을 쓰지 않기에[19] 불매 운동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도 못한다.
반대로, 무조건적으로 덮어두고 칭송하며 생각 없이 게임에 무조건 돈을 써서 게임사의 사업을 독려하는 행동도 생각해봐야 한다. 린저씨들의 행태가 이런 현상의 대표적인 예시지만, 게이머들이 혜자 게임이라며 칭송한 게임이 뒤통수를 친 예시 또한 존재한다. 2017년 당시에 한국에서 혜자 게임이라며 소개되면서 수많은 게이머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듯 보였던 소녀전선의 경우에는 이 게임에 과금하는 것은 게이머로서 올바른 행동이라는 여론이 게임계에 만연해 있었고 실제로 거액의 돈을 과금을 한 유저가 있을 경우 이들을 칭송하는 문화가 있었다.[20] 하지만 이러한 게이머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개발사는 게임 내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마케팅에만 몰두하고, 결국 수많은 문제점[21]이 쌓이고 쌓이다 게임 내에서 계정 전체의 능력치를 판가름하는 요소에 가챠 요소를 넣어버리는 행태를 보여 수많은 게이머가 등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22] 물론 모든 게이머가 생각 없는 소비를 하지 않지만, 이런 게이머도 한국 게임계에 상당수 존재한다. 그리고 게임회사를 비판하지만 정작 불매운동과 같은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고, 행동을 하는 게이머가 있을 경우 이들을 보고 "어차피 과금도 안하게 생겼는데 불매운동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 같은 말을 하는 문화도 존재한다. 게임사가 게이머를 호갱으로 보고 대놓고 과금 유도 컨텐츠를 출시하면, 홈페이지 게시판은 이를 비판하는 글로 가득 찬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게임 회사를 신랄하게 비난하고는, 캐시 아이템을 사는 사람은 바로 게이머다. 캐시 아이템을 사지 말자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런 고찰도 없이 그저 겉보기가 좋아 보인다고 지르는 행동이 문제란 얘기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불안정한 잣대로 게임을 평가하는 게이머에 의해 게임사는 어떤 게임을 만들어도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기존에 만들던 것과 비슷한 게임만을 양산할 것이고, 게임의 질을 생각하지 않고 수익만을 생각하여 게임을 만드는 실태가 반복될 것이다. 게이머가 한국 게임을 좋게 보지 않는다면, 게임사 역시 게이머를 위한 게임을 만들 이유가 없어지기에 게이머를 철저하게 무시하게 될 것이다. 즉, 게이머가 한국 게임을 혐오함 → 제작사는 게이머를 무시하고 양산형 게임만을 만듦 → 양산형 게임을 보고 게이머가 한국 게임을 혐오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결국 게이머가 해야 할 행동은 지금처럼 한국 게임을 향해 색안경을 끼며 한국 게임을 혐오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며 인디 게임이나 대기업 등에서 참신한 시도를 했을 경우 이를 주시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다. 제작사가 바뀌려고 해도 게이머의 호응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임도 엄연한 상품이고, 시장은 소비자의 수요를 따른다는 점을 잊지 말자.
9. 그 외
국가도 게임에 대한 나쁜 인식을 버리고 게임이 하나의 예술 요소이자 소프트 파워를 책임지는 문화라는 것을 인정하며, 각종 규제들을 완화하고 벤처기업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23]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위에서 말하는대로 문체부 차원이 아닌 대통령 정책 차원에서 큰 지원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시장은 업계가 이끌어나가는 것이지, 정부나 소비자가 이끌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준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정말로 갑작스럽게 높으신 분들이 게임의 중요성을 번뜩이며 지금까지 지켜왔던 정책의 방향을 180도 바꾸거나, 개선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사와 게이머들부터 개혁되지 못한다면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현재로써는 후자를 실현하는 게 더 성공률도 높고 실현하기에도 쉽다. 누가 보더라도 인식이 좋은 신흥 산업을 띄워줄 뿐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한국 게임시장의 절대강자인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붕괴하거나 쇠퇴한다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점들이 상당수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장래가 유망한 인디게임 스튜디오 등을 지원해주는 식으로[24] 2020년대에 들면서 점점 좋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치계에도 친게임 인사들이 들어서고, 셧다운제 같은 게임규제 정책이 사라지거나 여성가족부가 거의 분쇄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등 환경이 다져지면서 앞으로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다만 출산율 저하나 사회 격차 심화 등의 이유로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정치권이 더 민감한 주제에 관심을 쏟거나 이를 선동용 도구로 사용하느라 게임에 대한 관심을 접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1] 울티마 시리즈는 RPG 게임의 목표가 '던전에서 악당을 잡는다'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도덕적, 철학적, 심지어 신학적이기까지한 심오한 주제를 다루며 전설이 된다.[2] 당시 공개된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모두 죽어버려(=사실은 살고 싶어)』나 모노노케 히메의 『살아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본편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3] 학부모 계층의 단골 멘트인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게임에 빠져서 공부를 안 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등등만 봐도 게임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다만, 다 그런 건 아니고 게임 cd를 사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4] 사실 이런 식의 반박은 결국 세대갈등 특유의 선민사상 비슷한 논리에 막히기 쉽다. '니네 세대는 저급하고 우리 세대는 고등하다. 고로, 우리 세대 문화는 고등하고 니네 세대 문화는 저급하다. 게임은 니네 세대 문화니까 저급하다.' 전제부터 잘못됐지만, 그 전제를 머릿속에서 바꿀 생각이 없는 이가 생각보다 많다. 휴식 이야기의 경우, 결국 노동 문제 특유의 비논리적인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인은 노동권 같은 거 필요없다.' 같은 단체행동권을 혐오할 때 자주 나오는 그 주장들 말이다.[5] 쓸데없이 돈만 낭비하고 대중 소비 행태와 유리되어 있다는 식의 비난이 이런 생각에서 나온다.[6] 과거에는 오락실, 오늘날에는 PC방이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졌음에도 은근히 '폐인들이나 가는 곳'이란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7] 꽤나 오래된(무려 1985년작이다) 게임인데, 방향키와 달리기 속도 및 점프 버튼을 누른 시간에 따라 점프의 높이나 거리가 달라졌다. 이전 게임들(아이스 클라이머 등)에서는 점프 궤도가 정해져 있었음을 감안하면 꽤나 획기적인 알고리즘이었던 것. 자세한 것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문서 참고.[8] 물론 대한민국 게임을 옹호하는 몇몇 사람이 말하는 대로, 게임 회사는 영리를 노리는 조직이다. 게다가 넥슨은 2005년부터 모든 게임을 부분 유료화로 바꾸면서, 할 수 없이 캐시 샵을 만들었다. 다만 아무리 현실이 그래도 게임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캐시 아이템을 만들면 Pay to Win 게임이라고 온갖 욕을 먹으며 버려지기 일수다. 만약 그래도 인기가 여전하다면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대부분의 정신상태가 도박 중독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면 된다.(...)[9] 중요한 것은 "희극적이거나 남녀관계", "서민들이 즐기는"이다. 즉 고객들의 입맛에 맞았다는 소리. 열에 아홉은 판타지나 FPS만 가득한 온라인 게임 시장의 현실을 보면 크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10] 최춘식, 프랑스 영화의 대중성 - 영화 <탕기Tanguy (Etienne Chatiliez : 2001)>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57 집 (2007) pp. 415~434.[11] 다만 키덜트란 단어가 생겨난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완구와 게임을 동일시하는가의 문제는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12] 실제로 김성회의 G식백과를 비롯한 게임계 유튜버들이 앞장서서 여론을 조성한 결과 '게임 전문 변호사'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역으로 그만큼 게임이 사회적으로 받는 지탄과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체감할 수 있다. 변호사가 필요할 정도로 사건사고가 터진다는 얘기이니….[13] 이는 한 섬나라의 주력 문화산업 또한 마찬가지다.[14] 비단 게임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유흥이나 중독으로만 치부하는 도박도, 일본과 서양에서는 작게는 '두뇌 스포츠' 넓게는 '기예(技藝)'로서 보고 있다. 즉 일본과 서양에서는 업계인 스스로도 사회 및 문화적으로도 양성화를 계속 추진하며 문제점이 나오면 타파해 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한 쪽이 비협조적인 상태로 그대로 멈춰버린 것과도 같은 것이다.[15] 대표적으로 리니지를 필두로 유저착취 및 상호지배성 BM을 다른 작품마다 꽂아대며 몰개성은 물론이고 신규 유저 유입마저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 엔씨소프트가 있다. 자세한 것은 엔씨소프트/비판 참고.[16] 허스키 익스프레스, 탱고파이브, 듀랑고 등 독창적인 요소가 들어간 게임이 출시돼도 "참신하긴 하지만 재미 없고 컨텐츠도 부실하잖아. 안 해." 라면서 망겜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 게임들의 경우 독창성이 부족하고 카피한 부분이 많아 참작의 여지는 있다. 즉 실질적으로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한데, 개발자는 카피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게이머는 그에 대해 선입견을 품어버리니 상황이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17] 이들은 자신이 비난하는 게임을 할 때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5~10분 정도 플레이 한 것만으로도 게임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주장하며 10분 이상의 비난 영상을 만든다. 심지어 해당 게임과 관련도 없는 내용도 끌어들이는 유언비어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연관없는 잘못된 정보를 생산, 전달하기도 한다. 여기에 몇몇 유튜버들은 "내가 똥이라면 똥인 거다"라는 식으로 시청자들의 비판이나 반박을 무시하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다.[18] 물론 초기에 부실한 서버로 유저를 유지하지 못한 것과 부실한 수익 모델을 채택한 것이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지속적인 개선 업데이트 이후에도 한국 게임을 혐오하는 이들이 근거 없는 비난을 반복하여 게임이 묻히게 만든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19]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566p[20] 당시 루리웹의 여론. 잘 보면 중간에 에픽세븐을 무과금으로 플레이 한 사람을 개돼지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소녀전선에 1억을 과금한 사람에게는 서버비, 대주주 등의 말을 사용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1] 소녀전선을 안해본 유저들을 위해 각주에 주요 문제점들만 서술해보자면 첫번째로 게임이 업데이트가 될때마다 클라이언트가 불안정하여 버그가 많아지고 이게 정점에 달했을때가 '이성질체' 이벤트였다. 이때는 전투가 끝날때마다 어플이 팅기는 증상이 발생하고 그래픽카드의 램사용량이 줄지않고 계속 증발하는 바람에 유저들이 PC나 폰에 메모리 초기화 어플이나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두번째는 성우문제로 신케릭터가 나오면 목소리까지 나오는게 아니라 한참 있다가 나오게 되고 심지어 개조라고 불리는 기존 전술인형 강화를 하게 될 경우 기존에는 있던 목소리가 사라져버린다. 이것도 정말 오래 있어야 목소리를 다시 삽입해주는게 일반적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스토리 진행이 반년에 한번있는 대형이벤트 아니면 진행이 안될정도로 너무 느리다.[22]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냐면 앞서 주석에 달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게이머가 소녀전선을 했던 이유가 돈 얼마나 썼냐에 상관없이 게임 내 자신의 위치는 게임에 투자한 자신의 시간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것이었고, 그것이 소녀전선에 유저들이 몰리게된 계기였는데 그걸 걷어 찬것이다.[23] 중국의 판호 발급신청을 승인을 미루고 있어 수출을 못한다는 기사 내용(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html?no=424313)[24] 이런 회사로 스컬, 고양이 스프 등 유명 인디게임을 지원한 네오위즈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