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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0:28:16

공주의 남자/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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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인물
1.1. 이세령1.2. 김승유1.3. 경혜공주1.4. 신면1.5. 정종1.6. 김종서1.7. 수양대군
2. 김승유 주변3. 이세령 주변4. 세조의 측근5. 왕실6. 조정&사육신&궁중7. 청풍관8. 빙옥관9. 기타

1. 주요 인물

1.1. 이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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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장녀. 조선시대 여인답지않게 말을 타고 싶어하는 등, 왈가닥에 털털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지만 종친이라는 신분상 좀 고지식한 면모도 갖추고 있다.[1] 자신과 혼담이 오가는 중이었던 김승유를 보기 위해 사촌인 경혜공주를 대신하여 강론에 들어갔다가 아버지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립이라는 긴박한 정치 상황도 모른 채, 김승유와 아슬아슬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친자매처럼 다정한 사이였던 사촌인 경혜공주가 수양대군의 핍박을 받으면서 둘 사이는 깨지는 듯했지만 6회에서 경혜공주와의 다정한 관계[2]가 부각되면서 본인들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두 사람의 운명이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후 승유와의 약혼이 깨지고 신면과 반강제로 혼인할 상황에 처하는데도 승유를 계속 만나는 바람에 세령을 짝사랑하던 신면의 분노에 불을 지펴 두 남자의 20년지기 우정이 박살나는 데 한몫했다. 아버지가 김종서를 치려는 것을 알고는 김승유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걸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도움이 된 것은 없는 듯하다.[3]
김승유가 귀양을 간 후 류씨 부인과 아강이를 피신시켜 주지만 그 과정에서 김승유를 태운 배가 침몰한 사실을 알게되어 좌절한다. 결국 아버지 뜻대로 눈물을 머금고 신면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혼인 당일날에 몰래 난입한 김승유한테 납치당해 인질이 되었다. 그러나 복수심에 눈이 먼 김승유를 포옹하며, 그를 노리던 화살을 대신해서 맞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김승유에게 아버지가 강화로 가는 배를 일부러 침몰시켜 자신의 적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듣고 다시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본격 반항 중. 치욕스러운 공주는 절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가 '공주'가 되어야 제목처럼 '공주의 남자'가 완성될 수 있어서 그런지, 17회에서는 공주 책봉을 받았다.[4] 김승유와 경혜공주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 잠시 아버지와 연모하는 김승유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는데 아버지가 끝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결국은 19회에서 본인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개를 포함한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하고 상왕인 단종이 폐위되자 아버지 앞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하며 궁을 나간다.[5] 이후 승유와 함께 빙옥관에 머물며 청소, 빨래 등 잡일까지 도와주기도 하지만 또 신면이 찾아와서 본의 아니게 빙옥관에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궁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딸을 신면의 노비로 보내버리겠다고 맞선언을 해버렸다.
21화에서 결국 노비로 내쳐져서 신면의 집으로 감과 동시에 감금 크리됐으나 승유의 난입으로 함께 광주로 도망치지만 신면에게 또 다시 발각되고 만다. 게다가 이 화에서 승유에게 저승길이라도 따르겠다는 대사를 했는데 이건 사망 플래그에 속하는 대사다. 플래그가 이뤄질지 분쇄가 될 지는 마지막 화까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22화 마지막에서 마침내 승유와 검열삭제를 하게 됐다. 문제는 이별의 검열삭제라는 것이었으며 23화 초반엔 가락지를 교환하며 혼인서약 후 김승유와 헤어져 병에 걸린 남동생 숭이 있는 사가로 돌아갔으며 이후 신면의 집에서 노비생활을 하다 함길도로 부임한 신면과 동행하게 되어버렸다. 한명회와 신면이 자기를 미끼로 김승유를 꾀어내려는 걸 알자마자 말을 타고 달아난다. 이후 첩자로 오인한 이시애 패거리들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김승유에 의해 풀려난다.
마지막 회에서는 승법사에서 경혜공주를 만나던 중 입덧을 하더니 결국 김승유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밝혀진다. 김승유가 승법사에 온 세조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옥에 갇히자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김승유와 함께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후에 온양에서 김승유와 함께 가정을 이루며 딸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있다. 말을 타고 승유와 들판을 달리며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서로 허락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이라는 명대사를 승유와 함께 남긴다.[6]

어찌 보면 비운의 공주지만 달리 보면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해피엔딩을 맞은 인물이다. 야사에서는 아들을 낳았다고 나오는데 드라마상에선 딸로 변경 되었으며 나이는 8살 전후로 추정이 된다.

1.2. 김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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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3남.[9] 종학의 직강으로 있으며 기방에서 자고 입궐하는 등 여지없이 조선 한량이다. 수양대군이 대립관계였던 김종서와 야합하기 위해 승유와 세령의 혼사를 추진했으나 김종서는 이를 쓰루해버리고 수양의 세력에게서 단종을 지키기 위해 문종의 사위로 들여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세령의 정체를 모른 채 공주의 남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다소 무모한 연애를 즐겼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며 목이 달아날 뻔 했다가 김종서가 사직까지 하며 풀어나게 해준다.[10] 여담이지만 좀 특이한 게 극 중에서 경혜공주는 조선팔도 최고 미색인데다 종학 스승들마저 홀리는 미녀로 나오는데 단 한번도 경혜공주에게 흔들린 적이 없다. 경혜공주가 자기가 진짜 공주임을 밝혔는데도 면전에서 세령만 찾아 공주를 빡치게 만들었다. 결국 자신의 혼인상대가 세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간택날 좌절한다. 공주 행세를 하던 세령과 만난게 발각되어 부마 간택에서는 탈락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단종과 공주의 편에 힘을 보태기로 한다. 경혜공주로 인해 세령을 궁녀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령을 사랑하고 있었다. 6회 마지막에 그 사랑을 인정하고 세령을 찾아가 이를 확인했으나 시기가 시기인지라[11] 그야말로 최종눈새가 되었다. 부마간택에서는 탈락했으나 아버지인 김종서가 좌의정이 되면서 본인도 승정원 주서 자리에 올라가는데 이는 암묵적으로 신면과의 사이가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령 때문에 아버지가 사직하고 본인도 목숨을 잃을뻔했기에 밀쳐내려고 했으나 결국엔 받아들인다. 세령을 궁녀로 알고있고, 가족의 반대에도 다시 무모하게 만나게 되지만 당연히 계유정난으로 인해 가족도 사랑도 잃게 된다.
그리고 9화에서 드디어 세령이 수양의 딸이란 걸 알아차렸다. 수양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날뛰다가 잡혀가서는 참수당할 위기에 처했으나(여기서 김승유가 너무 무모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단 김승유는 하룻밤 사이에 모든걸 잃었기에 무언가 이성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했던데다 계유정난으로 김종서를 따르던 많은 이들이 죽은 상황이라 당장은 세력을 모을수도 없다) 단종의 어명으로 참형은 면하고 관노로 신분이 떨어져 귀양을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얌전히 귀양을 갈 수 있을 리는 없고 수양 측의 싹쓸이 음모에 빠졌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으며, 같은 배에서 만난 조석주의 도움으로 한양으로 돌아온다. 이후 신분을 숨기고 색주가에서 기도 노릇을 하면서 틈을 엿보다가, 수양을 죽이기 위해서 수양의 집에 잠입해서 이세령을 데리고 도망친다. 물론 엄청나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러브라인은 없고 앵스트하기만 한 상황. 하지만 세령이 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은 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원수들에게 차례대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온녕군부터... 신숙주도 노렸으나 신면이 나타나, 둘이 사이좋게 검상 하나씩 입고 물러났다. 원수들을 죽이고 난 뒤 대호라는 글자도 함께 남긴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로 수양 일파를 한 명씩 암살하고 있었지만 친구 정종과 스승 이개, 형수의 설득으로 사육신의 계획에 가담한다. 사육신이 궁 안에서 수양을 치는 사이 승유는 궁 밖에서 군사들을 몰고 궁으로 들어오기로 했는데, 사육신들이 수양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실패하고 도주한다. 그 와중에 신면과 딱 마주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사육신과 정종을 구하기 위해 감옥에 난입했지만 이들의 거부로 실패했다.
21화에서 거사를 치르기 위해 광주로 막 떠나려던 차에 세령이 신면에 집에 노비로 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신면 집으로 난입, 세령을 낚아채고 같이 광주로 도주했으나 곧바로 발각크리. -22화에서 함길도의 호족인 이시애와 손을 잡을 것을 결의했는데 세령이 수양의 딸이라는 것이 같은 편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또 세령과 헤어질 판이 되었다.

22화 마지막에는 세령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마지막 회에서는 이시애의 난이 실패하자 직접 수양을 죽이기 위해 승법사에 난입하고 거의 죽일 뻔했지만 수양에게 세령의 임신 소식을 듣고 주춤하던 사이에 붙잡힌다. 옥에서 사망 플래그를 꽂는 듯한 대사를 하는데 결국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세령과 도망친다. 세월이 흘러 수양이 온양행궁으로 가던 중 서로 마주치는데 딸아이와 걷고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맹인이 되어있다.[12] 그러나 더이상 이전같은 불타오르는 복수심은 남아있지 않기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세령과 딸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

1.3. 경혜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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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장녀이며 단종의 누나. 조선 최고의 경국지색 미녀로 유명하며 그 미모로 강론에 들어오는 스승들마다 골탕을 먹이는 바람에 선생들이 죄다 다 도망가버렸다. 강론에 들어가는 것을 귀찮아 하다가 세령의 제안으로 공주 대리 노릇을 하게 시켰는데 이 이후에야 수양대군의 입지와 이를 견제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된다.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세령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승유와의 혼사 역시 물거품이 되었으며 자신은 웬 듣보잡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13] 나름대로 수양대군에게 맞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는 있으나 많이 밀리는 상황. 경혜공주와 그의 남편 정종은 신면을 제외한 야사에서만 나오는 메인 주인공들과 달리 실존인물이며 드라마에서 처한 상황 역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드라마 내에서도 상당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그리고 다소 츤데레적인 기질이 있다.
세령과는 원래 친했다는 묘사가 있으며 중간에 사이가 틀어졌음에도 완전히 미워하고 있지는 않다. 세령이 찾아오지 말라는데도 찾아오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에 가고 싶다는 걸 알고 꽃을 꺾어오고, 등등의 일을 하자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엄청 좋아한다. 일단 곁에 있는 정종에게도 츤츤대지만 잘 보면 가끔 만나는 세령에게도 츤츤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정종을 남편 대접은커녕 듣보잡 취급했지만, 자신에게 진지하게 충고를 하고 계유정난 와중에 남동생 단종과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등 정종의 새로운 면을 보고 정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정종이 새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후원에 새장을 가득 사다 놓는 등 이벤트를 벌이고,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정종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이때도 "이런 쓸데없는 짓을...", "딱히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전하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임"하면서 츤츤대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점점 더 급박해지면서 정종에게 점점 더 의지하고 마음을 주게 된다. 그 자존심 높던 경혜공주가 정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수양대군을 찾아가 무릎을 꿇을 정도. 물론 수양은 씹었지만, 단종의 양위 덕분에 정종은 풀려난다. 풀려난 정종과 함께 단종의 양위 소식에 오열한다. 그 뒤 정종이 사육신과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기 전날 늘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정종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고, 혼인하고 나서 처음으로 정종을 서방님이라고 부른다.[14] 이에 감격한 정종과 입을 맞추고 드디어 합방을 했다! 다음날 아침 정종과 달달한 신혼 모드에 들어가지만, 사육신의 거사가 실패하면서 정종이 잡혀간다.
승유와 세령의 정종과 사육신 구출 시도에 희망을 걸지만, 이마저도 정종과 사육신들 자신이 거부한다. 그러자 궁궐로 가서 수양에게 전하라고 부르며[15] 석고대죄를 해 정종을 구해내고 함께 광주로 귀양을 가게 된다. 21화에서 회임을 했다는 걸 밝혔는데 정종이 금성대군의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이 밝혀져 한양으로 압송당한다. 결국 정종은 끔살 당하고[16] 경혜공주 본인은 임신한 몸으로 관비로 전락해 버렸다.
함길도로 가기 전 찾아온 김승유가 함께 가기를 권유했으나 남편 곁에 있겠다며 거절, 정미수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찾아온 숙모 정희왕후의 권유에 따라 승법사로 가게 되었다. 마지막 회에서는 김승유가 붙잡혀 괴로워하고 있는 세령에게 아이에게 아비 얼굴은 보여줘야 한다며 세령을 설득한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엔딩에서는 나오지 않으나 역사대로 정미수가 장성할 때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4. 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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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차남. 통칭 신 판관[18]. 이 드라마에서 김승유와 신면은 절친한 사이였으나 세령을 두고 연적관계가 된다. 김승유, 정종과 함께 이개 아래에서 수학한 죽마고우. 강직하고 바른 성품의 무관이었으나 아버지들 일에 휘말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종서와의 야합을 놓친 수양대군이 신숙주에게 손을 내밀면서 신면과 세령의 혼담이 오고갔고, 이로 인해 승유보다 먼저 세령의 정체를 알았다. 하지만 승유로 인해 몇 차례 마주친 세령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승유에게는 사실을 숨겼었다. 결국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완전히 수양의 편으로 돌아서서 김승유와 대적하게 되었다. 이후 계유정난때 친구 김승유를 사로잡고 그를 미끼로 김종서의 은거지를 알아내는 등 독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숨이 붙어있는 김승유를 차마 끝장내지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짝사랑하던 이세령과 혼인을 하게 되었기는 한데 세령은 신면을 벗을 배신한 쓰레기 취급하는 지라 사이가 진전될 기미도 없었다. 사실 그런 취급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고 그나마 김승유의 조카인 아강이를 치료하게 해주고 남은 가족들을 피신시켜주며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한 덕분에 말종 취급은 벗어난 듯 했는데 정종이 수양대군을 해치려고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19] 세령마저 다시 돌아온 김승유 때문에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하자 더 큰 어둠에 빠져들었다. 사육신의 거사를 진압하던 도중 김승유와 마주치고 그의 정체를 알아채게 된다. 완전히 수양대군의 편이지만 친구나 스승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어서 김승유가 한성부로 잠입했을 때 이를 방조하기도 했다.
20화에서는 자기에게 대드는 딸에게 빡친 수양이 세령을 신면에게 노비로 하사해버렸다. 21화에선 세령을 도망 못가게 감금시켰으나 또다시 달아나 버리자 빡치고 광주로 들이닥친다. 광주에 귀양 와있던 정종과 툭탁툭탁 하는 과정에서 금성대군이 난을 일으키기 위해 돌렸던 격문이 발견되는 바람에 정종이 끔살당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대인배 정종은 죽으러 가는 길에서도 신면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널 미워하긴 했지만 싫어한 적은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고, 이 때문에 더 큰 죄책감을 받은 신면은 인간이 제대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세령이 사가로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찾아가 말다툼을 하다가 몸뚱이라도 갖겠다는 발언을 날린다. 이후 세령이 노비로서 자신의 집에 있게 되자 내내 끈질기게 세령을 괴롭혀온 것으로 묘사된다.

이시애의 난 때 김승유가 던진 칼에 심복 송자번을 잃으면서 복수심을 불태우며 김승유와 일 대 일로 싸우다가 김승유를 잡기 위한 한명회의 흉계로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고 만다. 결국 자신을 살리려는 승유의 모습에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종이에게 먼저 가마."라는 말을 남기고 김승유를 대신해 화살에 맞아죽고, 김승유는 그의 눈을 감겨주며 "다 잊고 가라."라고 말한다. 출세는 했지만 결국 친구도 잃고 사랑도 얻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 드라마에서 제일 불쌍한 캐릭터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본인의 자리에 걸맞지 않는 아집과 욕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함과 동시에 독단적, 이기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는 캐릭터다.

우선 신면과 세령의 혼례식 당일 세령이 납치되는 사건이 생겼을 당시 수양대군과 대신들이 회의를 할 당시에 수양대군의 목숨을 걱정하며 대신들이 함부로 나가면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을때에 세령이 위험해진다며 세령을 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며[20][21] 세령을 납치한 김승유를 먼저 공격하지 말고 생포하라는 수양 대군의 명이 있었음에도 화살을 쏘려는 모습에 심복 송자번이 수양대군의 명이 있었음을 알리며 자제를 하나 "너의 상관은 수양대군이 아니라 나이다"라며 독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끝내 화살을 쏘아 세령을 다치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고, 김승유를 잡겠다는 욕망과 분노로 무모한 명령을 자주 내려 심복 송자번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신면을 제어하지도 못했고[22] 결국 이시애의 난에서 승복 심자번을 잃고 마는데 이 또한 본인이 야심한 밤에 무리한 출정을 강요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다.

요약하자면 판관 자리에 있으면서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정치력 부족, 본인의 욕망 및 독단적인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잃고 본인 또한 명을 달리하는 비참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1.5. 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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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혜공주의 남편으로 문종의 부마.[25] 영양위에 봉작되었다. 이 작품의 또 한 명의 공주의 남자로, 엄밀히 따지면 경혜공주는 면천되어 마지막까지 공주로 남지만 세령은 결국 기록에서 지워져 평범하게 살게 된 공주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공주의 남자는 이쪽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수도 있다. 확실히 기록에 남은 실존인물이다. 가세가 기운 양반가의 자손[26]으로 김승유, 신면과는 절친한 사이다. 4회까지는 비중이 적었고 병든 홀어머니의 약을 지으러 갈 때만 등장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약셔틀이라고 불렸다. [27]
간택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부마도위 후보로 올라갔으나 김승유가 추문을 일으켜 탈락하고 일부러 뒷배경이 없는 후보를 골라 경혜공주와 짝을 지어주려 한 수양대군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부마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허당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스승인 이개를 만났을 때나 공주를 대할 때 정색하는 모습을 보여 속으로는 기개가 있는 인물임이 암시되었다.
세령이 공주 대리 노릇을 하고 있는 사이 저자 거리를 구경하던 경혜공주와 우연히 마주치고 그녀에게 반했었는데, 길례 때 자신과 혼인하는 공주가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아라 했지만 정작 혼인을 하고 나니 경혜공주에게는 남편 대접도 못 받았다. 하지만 금성대군의 수양 암살 계획에 참여한 혐의로 한성부에 끌려가고 단종이 퇴위하는 등 급박한 상황을 경혜공주와 함께 견뎌내면서 경혜공주와 좀 더 가까워지게 된다. 드디어 18화에서 사육신의 거사에 가담하기 전날 자신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 경혜공주와 입을 맞추고 합방까지 했다!![28] 다음날 아침에는 경혜와 달달한 신혼 모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러면서 사망 플래그를 함께 세워버렸다. 19회에서 사육신의 거사에 가담한 죄로 거열형을 받을 뻔 했지만 경혜공주의 난입으로 목숨은 구하고 부부가 나란히 전라도 광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21화에선 경혜공주의 회임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 신면에게 역모를 꾸민 사실이 발각되어 곧바로 끔살 확정이 되었다.
결국 신면과 다투다 금성대군의 격문이 발각되는 바람에 거열형을 당했다. 신면이 김승유가 자신을 구하러 찾아올 것을 노리고 있음을 알기에 바로 다음날이 자신의 처형일을 숨기면서 구해주었다. 처형되기 전 태어날 자기 자식 이름은 짓고,[29] 경혜공주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고 신면과의 앙금도 어느 정도 털어내는 등[30] 나름 할 건 다 하고 죽은게 그나마 위안. 그리고 끔살 직전 수양에게 "너는 물론이고 후손까지 고통을 받으리라!!"는 저주를 내린다.[31] 그리고 죽기 직전 처형장에 찾아온 경혜공주와의 애절한 눈맞춤과 거열형을 당할 때의 처절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32]

1.6.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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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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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령: 이제 성에 차십니까. 어린 조카의 옥좌를 억지로 뺏어 꿰차시니, 성에 차시느냐 이 말입니다.
윤씨 부인: 세령아!
이세령: 호시탐탐 옥좌를 노린다던 공주마마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옥좌를 탐내 손아래 동생들을 죽이거나 유배 보내고, 종국엔 어린 조카까지 쫓아내셨습니다. 더는 자식들을 위한다 핑계로 삼지 마십시오. 결국 아버님의 욕망이 무고한 자들의 피를 부른 것입니다.
수양대군: (애써 침착하며) 이 아비를 그토록 오해하고 있다면 어쩌겠느냐. 세월이 부녀간의 정을 되돌려주겠지.
이세령: 대호가 나타났다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김종서 대감이 살아계셨다면 아버님께서 감히 옥좌를 노릴 수 있었겠습니까?
수양대군: 그 입 다물지 못하느냐? 더는 아비를 자극하지 말고 조용히 책봉될 준비하거라.
이세령: 공주 책봉 따위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치욕스러운 공주 따위 절대 되지 않을 것입니다!
16화, 공주 책봉을 거부하는 세령
세조: 김승유가 너희의 역모에 가담했음을 알고 있는데, 어디서 시치미를 떼느냐!
성삼문: 역모라니, 가당치 않소!
세조: 뭐라?
성삼문: 옥좌를 훔친 도독놈의 목을 베려 한 것을 어찌 역모라 하십니까?
세조: 뭐, 뭐라? 도독놈[42]?
성삼문: 그렇습니다. 나으리!
한명회: 나으리라니, 어디 전하 앞에서 그런 망발을 입에 담느냐!
성삼문: 전하라 부를 수 있는 분은 세상에 단 한 분, 창덕궁에 계신 오직 한 분뿐이외다!
(중략)
세조: 김승유의 행방은 고하지 않아도 좋다. 날 너희들의 군주로 받아들인다면 그간의 죄는 묻지 않을 것이다. (중략) 이제 날 전하라 부를 수 있겠느냐?
성삼문: 전하!
(흐뭇해하는 세조)
성삼문: 부디 먼저 가는 이 불충한 신하를 용서하시옵소서, 전하.
(급격히 표정이 일그러지는 세조)
성삼문: 지하에서라도 반드시 전하를 옥좌에 다시 뫼실 것이옵니다! 전하...
이개: 저 무도한 자로부터 옥좌를 되찾아 필히 전하께 돌려드릴 것이옵니다, 전하!
정종: 전하! 죽어서도 영영 전하의 신하로 남을 것이옵니다!
박팽년: 저승에서 세종대왕문종대왕나으리의 무도한 짓거리를 낱낱이 밝힐 것입니다! 흐하하하...
세조: 여봐라! 저놈들을 거열형에 처해라! 다시는 저들이 내 눈에 띄지 않도록, 다시는 저들의 말소리가 내 귀에 닿지 않도록! 눈, 코, 입, 사지육신을 갈갈이 찢어죽여라!!
성삼문: 이것으로 그칠 줄 아느냐. 이후로도 너는 수없이 많은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세조: 저 입부터 닥치게 하지 못하느냐!
19화, 사육신에게 모욕당하는 세조
설상가상으로 세령은 나중에는 눈앞에서 절연을 선언하며 거기에 믿었던 세자마저 병으로 앓아눕는다.

결국 20화에서는 딸에게 신면의 노비가 되라는 충격적인 개드립을 날렸다. 무서울 만큼 냉철하던 수양이 이런 개드립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인간이 망가졌다는 반증이라 하겠다.[43] 22화에서는 더 가관인 게 대놓고 "세령을 이용해서 김승유를 찾아내라"는 드립을 쳤다. 돌려 말한 것도 아니고 진짜로 이용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것도 부인 정희왕후가 보는 앞에서. 이 때 정희왕후가 수양을 보는 표정이 대략 "아니 이 새끼가…" 수준이었다.

23화에선 동생은 아픈데 김승유와 달아났다 돌아온 세령을 차갑게 대하다가 세자의 죽음에 대해 괜히 세령을 탓하면서 승지에게 세령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다 지우라는 명을 내린다. 마지막 회에서는 꿈에 단종이 나와 눈물을 흘리는데, 그 눈물방울이 손등에 떨어지고 꿈에서 깨어보니 손에 종기가 생긴다. 이 일로 승법사에 세자의 명복을 빌러 갔다가 김승유와 최후의 대적을 한다. 이때 분노에 찬 김승유와 대조적으로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세령의 임신 사실을 이용하여 김승유를 혼란에 빠뜨린 후 사로잡는다. 그러나 정희왕후의 계략으로 세령이 자살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인다.

세월이 지나 많이 노쇠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종기가 얼굴까지 퍼져있다. 온천욕이나 할겸 온양행궁으로 가다가 자신의 손녀와 김승유를 본다. 정희왕후의 도움으로 세령이 평범한 민가의 여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중전에게 감사해한다. 그래도 애증은 있었지만 제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걸 보니 부정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 처음에 정희왕후에게 세령이 자살했다는 페이크를 들은 후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마지막화에서는 폭삭 늙어버렸다.[44] 참고로 역사에서 세조는 이시애의 난 1년 뒤에 사망했다.[45]

2. 김승유 주변

3. 이세령 주변

4. 세조의 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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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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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정&사육신&궁중

7. 청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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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빙옥관

9. 기타


[1] 경혜공주찾아오지 말라고 했지만 찾아간다던가 하는 일을 반복했다.[2] 경혜공주에게 신행 선물을 가져다 주거나 현덕왕후의 능에서 꽃을 꺾어다 전했다. 그동안 세령에게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분노했던 경혜공주는 이를 보고 감격했다.[3] 그래도 수양대군 측이 김종서 일가를 첫 습격했을 때 때맞춰 김승유를 빼돌려 한 번은 목숨을 구해 주긴 했었다.[4] 본디 왕가에서는 본명을 휘(諱)라 하여 주술적으로 음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허나 세령공주라 불리운다. 이 부분은 제작진의 실수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가상인물이라 시호를 붙이기 애매해서 그냥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본명으로 지른 것일 수도 있다.[5] 일각에서는 너무나 단호하고 강단있으며 사랑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갔던 세령이 김승유보다 오히려 더 히어로 같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강단있는 모습에 시청자들 중에는 그래도 딸 생각하는 아버지 세조의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 대드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딸 생각한다는 아버지가 몇 번이나 세령을 이용해먹고 또 세령에게 사기를 쳐댔는지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아버지라도 세조가 세령을 탓할 처지는 못된다.[6] 1화에서 말을 타지 못 했던 세령이 마지막화에서는 말을 타는 데 성공한다.[7] 실제 역사 속 김승유는 배우자 민씨가 있었으며 드라마 속 김승유의 모티브가 된 캐릭터는 금계필담에 등장하는 김종서의 손자 김차동이다. 김승유에 대한 기록이 워낙 적어서 생몰년도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김종서의 나이와 세조의 나이를 추측해봤을 때 실제 김승유의 나이는 드라마 속의 연배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69][70][8] 작중에서 캐릭터성이 여러번 변하는 인물이다. 계유정난 전까지는 철 없는 도련님 성격이었으나 게유정난 이후에는 어둡고 진지한 모습만 보인다. 세령과 함께 종적을 감추는 것을 선택한 결말 부분에선 모든걸 내려놓고 그저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말 부분에서 더 이상 복수를 하지 않고 모든걸 내려놓은 이유는 일단 객관적으로 봐도 이정도까지 실패했으면 더 이상 수양대군에게 대적할만한 방법이 남아있지 않은데다 이젠 자식도 생겼다.(무엇보다 수양을 만나러가기 전에 갑자기 자기에게 들이닥친 비극과 그로인해 자기가 짊어져야 할 무게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석주에게 털어놓는걸 보면 갈수록 짊어져야 할 책임이 더 힘들어서 내려놓기로 결심한 듯 하다.)[9] 그런데 큰형인 김승규와 김승유만 등장하고 차남인 김승벽은 증발되었다. 드라마에서도 김승유가 3남이라면서 차남 김승벽은 언급하지도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차남은 본가에서 살지 않는다는 설정 일 수도 있고 아차피 드라마상에선 김승유와 김종서가 가장 중요 인물이기에 다른 형제들은 별로 보여 줄 필요가 없긴하다.[10] 사실 직전에도 김승유의 부마간택을 막기위한 수양에 의해서 죽을뻔하다 때마침 신면이 나타나서 목숨을 구했다.[11] 문종이 승하하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려던 찰나 문종의 밀지를 받은 김종서가 이를 막아섰다.[12] 스탭의 말로는 세조 암살에 실패할 때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고(슬로우 모션으로 나온 신) 눈이 먼 거라고 한다.[13] 다만 실제 역사에서 경혜공주와 영양위 정종의 결혼은 세종 32년인 1450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의 묘사와는 다르다. 게다가 이때 경혜공주는 아직 공주가 아닌 세자의 딸 신분이었던 군주(郡主)의 신분이었어서 작호도 '경혜공주'가 아닌 '평창군주'였다.[14] 드라마상 혼인한 해가 1452년이고 사육신 사건이 일어난 해가 1456년이니 무려 4년만이다.[15] 조카딸 경혜공주에게서 전하 소리를 들을 때마다 흐뭇해하는 수양의 표정이 볼 만하다.[16] 석고대죄를 했을 때 다시 역모에 가담한다면 네 눈 앞에서 정종을 찢어죽이겠다.는 수양의 말이 현실이 되었다. 흠좀무. 정종이 죽는 순간 처형장에 나와 마지막으로 눈맞춤을 하는 애절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17] 실제 역사에서 신면은 신숙주가 가장 아낀 아들이었고 세조의 도승지(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내지만 이시애의 난 때 함길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함흥 관아에서 반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도승지를 지낸 것이나 실록의 평을 보면 나름 촉망받는 젊은 인재였던 듯하다. 실제로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문관이었는데 여기서는 무관처럼 나오는 게 특이점이다. 여담이지만 이 사람의 아들[71] 이름은 신용개로 뒷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다.[18] 이걸 잘못 알아듣고 심판관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심지어는 인터넷 뉴스에서도 '심판관'이라고 쓴 기자들도 있을 정도였다.[19] 그래도 정종은 거사에 참여하면서도 신면의 목숨만은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신면은 승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실상 내버려 두었다. 둘의 인간성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20] 오죽하면 아버지인 신숙주가 아들인 신면을 다그칠 정도로 자제시키는 모습을 보였다.[21]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는 것이 수양 대군은 당시 양위를 받지 않았을 뿐이지 실직적인 권력 및 왕과 다름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따지고보면 대놓고 왕의 목숨보다 약혼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망언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양대군이 본인 딸을 구해야한다고 본인이 나선다고 입장을 밝혀서 망정이었지 대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신면을 괘씸죄로 죽였어도 할말이 없었다.[22] 따지고 보면 수양 대군이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기 전 따로 한명회에게 상황이 내키지 않을 당시에 신면의 목숨을 거둬도 좋다고 명을 내린거 또한 이미 수양 대군에게서 신임도 상당히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신면의 입지 또한 상당히 위태로워진 것이다.[23] 드라마 한명회에서 연산군 역을 맡은 바 있기 때문에 정종이 연산군으로 환생하여 한명회에게 복수했다는 배우 개그가 성립한다.[24] 본작으로 오랜만의 사극출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역량을 마음껏 선보였는데 후반부에선 주연들 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에서 냉혹한 수양으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줘 호평을 받은 김영철마저도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었다. 사실 광개토태왕에서 하무지 배역이 예정된 스케줄이 있었는데 디스크 판정으로 하차했고 하무지와 같이 있어야 했던 배우 역도 하차하게 되었던 사정이 밝혀진다.[25] 실제로는 세종 32년에 동궁의 딸로 아직 군주(세자의 적녀)였던 경혜공주와 결혼했다.[26] 실제로는 정종의 누이가 영응대군의 부인이고 고모효령대군의 부인일 정도로 왕실과 이미 연을 맺은 명문가였다. 작 내에서도 아버지가 일찍 사망한 것이 문제될 뿐이지 명문가라는 언급이 나온다.[27] 다만 4회까지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은 친구로 나오는 박시후나 송종호와는 넘사벽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민우가 한명회에 출연했을 때부터 전설적인 연기를 보여준 걸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젊은 연기자 중 정태우안재모를 데려오지 않는 한 사극에서 이민우에게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28] 다음날 아침 정종의 잠자리에 놓인 베개 2개로 암시되었다.[29]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 아들과 딸의 이름을 모두 지었는데 이 중 아들의 이름이 정미수. 야사에서는 정미수는 세조가 지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실제 정종이 정미수가 6살 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도 정종이 지어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30] 다만 신면은 이런 의연한 정종의 모습과 스스로가 비교된 탓인지 인간이 제대로 망가지기 시작했다.[31] 그리고 그 이후 조선왕사를 보면, 세조의 아들과 손자 중 40살 이상을 산 인물은 제안대군 한명뿐이다. 게다가 60세를 이상을 살며 장수한 왕이 단 3명 뿐이고, 그 3명조차 폐위, 비속살해, 망국 등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 또한 정종이 거열형을 당한 지 131년 후에는 일본에서 엄청난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와 전면전까지 벌여 나라고 궁궐이고 뭐고 싸그리 박살났다. 드라마지만 어떻게 보면 저주가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32] 또한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배우 이민우가 왜 사극에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한 배우인지 제대로 각인시킨 장면으로 평가받는 장면이다.[33] 1990년 파천무 이래 무려 21년만에 김종서 역을 맡았다.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는 이순재의 덩치가 작아서 '무신'인 김종서 역할에는 안 어울리는 배우라고 하나 실제로 김종서는 전형적인 '문신'이다. 4군 6진 개척 때문에 '무신'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있지만. 실제로는 무예도 서툴렀다고...자세한 것은 김종서(조선) 항목 참조.[34] 아들 하나가 남주인공이기는 한데 걔는 사랑 놀음 하느라 바빠서...[35] 수양이 권력을 쥐려는 찰나 후광을 받으며 등장해 수양과 패거리를 모조리 버로우 시켰다.[36] 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대왕 세종에선 태종을 맡더니 이번엔 태종과 성격도 비슷한 그 손자 세조까지 맡았다.[37] 2016년 1월에 방영예정인 장영실에서도 태종을 맡게 되어서 졸지에 김영철은 2번이나 태종을 연기하게 되었다.[38] 배우 때문에 심영물에서도 곤룡포를 입은 김두한을 보게 되었다.[39] 본작에서의 열연과는 별도로 댄싱 위드 더 스타와 합성한 패러디가 있기도 하고, 배우 본인의 추석인사를 담은 인증사진을 디씨 공주의 남자 갤러리에 드라마 스탭이 올리기도 했다. 배우 김영철의 열연으로 시청자들에게 방영 내내 욕을 얻어먹던 캐릭터다. 그러나 마지막에 세령을 발견 후 딸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는 반응이 많았었다.[40] 군주론 때문인 듯 한데 마키아벨리보다는 체사레 보르자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계유정난의 과정을 보면 수양을 이렇게 표현한 건 마키아벨리에게 실례이며,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더 적합한 군주는 세조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다. 자세한 건 니콜로 마키아벨리 참조.[41] 실제 역사상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문종 사후 궁의 안팎에서 손발이 맞지 않았던 까닭이 크다. 당시 정치 역학관계는 황보인김종서 등의 고위대신파와 세종대왕의 고명을 받았던 성삼문 등의 집현전파, 그리고 수양대군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종의 사후 내관들이 궁을 엄폐하는 과정에서 대신파와 집현전파가 서로 틀어지게 되었으며, 결국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척살함으로서 권력을 장악했다.[42] 도둑의 옛말[43] 아무리 자기에게 대드는 딸이 괘씸하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처벌하면 본인에게도, 세령에게도, 왕실 입장에서도 좋을 거 하나도 없다.[44] 어떤 면에서는 김승유에게 죽는것보다도 더한 천벌을 받은 셈이다.[45] 드라마에서는 이시애의 난단종 사망 얼마 후 바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종 사사 후 10년 뒤에 일어난 사건이다. 여러모로 미칠듯한 급전개.[46] 배우가 선덕여왕에서 염종 역을 맡았기 때문에 사극 덕후들이 매치가 안된다고 하기도 했고, 히트 등의 현대 드라마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해 악역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 분은 호연을 펼쳐 초반의 코믹한 모습과 후반의 진지한 모습 모두 잘 소화해 냈다.[47] 그리고 신면에게 자신을 구하려는 마음을 김승유에게 베풀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이 유언대로 신면은 김승유를 살리고 본인이 대신 죽는다.[48] 별 비중은 없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엄청나게 귀엽다! 연기도 잘 한다.[49] 김서라는 왕과 비에서 한명회의 부인을 연기했었다.[50] 흥미롭게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유동근의 파트너로 나왔는데, 유동근 역시 이번 상대 역 김영철과 마찬가지로 태종 및 세조를 다 연기한 배우라 태종 내지 세조의 파트너로 전문이 되었다.[51] 실제로는 단종이 사사되기 1달 전에 사망했다. 이 또한 동 시대를 다루는 사극에서 범하는 오류 중 하나이다[52] 실제로는 명문가의 자손이기에 문종 재위 당시 음서로 태조 이성계개성에 살때의 잠저인 경덕궁의 문지기라는 미미한 관직에 올라 있었다. 물론 지역 벼슬아치 모임에도 끼지도 못했을 정도로 낮은 직위였다.[53] 무엇보다, 한명회가 노회한 이미지를 지나치게 살리다보니 늙게 너프되어 나오는게(심지어는 60대까지!) 이전 사극들의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실제 나이에 맞게 30대 후반정도로 보이게 나왔다.[54] 이개가 신숙주를 비난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야사에서 국문받는 성삼문이 신숙주에게 일갈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 같다. 이개가 신숙주를 비난하는 대사가 야사 속의 성삼문의 말과 똑같다. 야사에서는 신숙주가 부끄러워했지만 여기서는 눈 하나 깜짝 안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55] 신숙주와 한명회가 의심을 받았던 이유는 이시애가 세조에게 편지를 보내 일종의 반간계를 구사한 데다가(해당 내용은 이시애의 난 참고) 이들 모두 함길도 체찰사를 지내면서 여진족을 정벌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함길도 체찰사를 지내면서 나름대로 함길도에 세력이 있을 거라 판단한 세조가 의심한 것이다.[56] 드라마에서 이시애의 난때도 등장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이시애의 난은 권람이 죽은 후 1467년에 일어났다.[57] 김갑수가 연기했다.[58] 이는 동시대를 다루는 사극의 고질병이기도 하다.[59] 이 때 수양대군에게 '나는 숙부상의를 하는 게 아니라, 영상(영의정, 당시 수양대군이 영의정이었다)에게 어명을 내리는 겁니다'라는 명대사를 선보였다.[60]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과 함께 화포개발에 참여했는데 둘이 감독하자 화포의 사거리를 몇 배나 늘이는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61] 공교롭게도 본작의 프리퀄대왕 세종에서의 성삼문도 박철호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본 박철호와 동명이인이다.[62] 일본어 더빙판에서는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나으리'에 맞는 단어를 찾기가 어려웠는지 그냥 "수양대군"이라고 외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63] 하지만 정종이 처형당할 때는 거열형이 묘사되었다. 정종이 죽을 때의 임팩트를 위해 일부러 넘긴 듯 하다.[64] 나중에 스스로 밝히길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때 노비였던 자신의 부모님을 면천시켜서 6진으로 이주시켰다고. 그래서 그 빚을 갚는거라고. 부모가 면천을 받아 양민이 되었기에 본인의 공식적인 신분도 양민이다.[65] 극 중에 풀네임이 나온건 왕노걸 한번 밖에는 없지만 공식 홈페이지에는 전노걸이라고 소개되어있다. 아마도 왕씨들이 고려 왕조 멸망 후에 전씨, 옥씨, 용씨 등으로 성을 바꾸어 숨어살았다는 야사를 반영한 듯 싶다. 아니면 입만 열면 허풍 떠는 이 캐릭터의 특성상 그런걸 이용하여 허세를 떤 걸 수도 있다. 공주의 남자 책에서 진짜 신분이 나오는데 안평대군 집 노비였다고 나온다. 김종서니 뭐니를 언급한 것은 어쨌던 대군 집 노비였으니 대충 들려온 소문은 들었을 것이고, 후에 안평 대군이 권력 다툼에서 서서히 밀리면서 본인도 그 여파로 유배를 온 듯 하다.[66] 최근에는 본명인 '이슬비'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중이다.[67] 당시 '진성'으로 활동했으나 2016년 현재 '정천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이다.[68] 오히려 사람들이 예상하던 금성대군의 난은 역사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끝나고 단종, 금성대군, 정종의 죽음만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