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01:00:30

4세기

세기 천년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기원전|기원전]]'''
~11 10 9 8 7 6 5 4 3 2 1
기원후
제1천년기 1 2 3 4 5 6 7 8 9 10
제2천년기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제3천년기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제4천년기 이후 }}}}}}}}}
세기
2세기 3세기 4세기 5세기 6세기
밀레니엄
기원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1. 개요2. 역사
2.1. 지중해 세계2.2. 동아시아2.3. 인도
3. 주요 사건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5. 연도 목록

1. 개요

4세기는 서력으로 301년부터 400년까지이다.

2. 역사

2.1. 지중해 세계

기독교 문화가 그리스-로마 문화와 같은 지위에 오르면서 유럽 문화의 양축을 형성하게 된 시기로, 고전 시대가 끝나고 유럽의 중세의 초석을 놓은 시대가 4세기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치 체제는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으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통일되었다. 체제 정비를 마치고 전제군주정 시대로 접어들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분열된 제국을 다시 통합하기 위해서, 이미 제국의 도시 대부분에 퍼져있던 기독교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 중 하나로 공인했다.

당시 기독교는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교리 논쟁으로 뜨거운 상황이었다. 예수와 하나님의 본질이 동일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아리우스파는 예수와 하나님의 본질은 다르다고 주장했고, 아타나시우스파는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논의를 안키라, 지금의 앙카라에서 열려고 했으나 황제는 이러한 교리 논쟁도 제국의 통합을 위해 봉합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황제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입장 즉 삼위일체 긍정이 황제의 권위를 높일 것으로 판단했다. 회의 장소는 황제의 별궁이 있는 니케아로 옮겨져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고, 황제의 의도대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삼위일체론이 받아들여졌다.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제국의 유일한 종교라는 지위를 얻게 되었고,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잘못된 것으로 취급받으며 핍박이 시작되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기독교의 승리라고 칭하며,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배타주의화된 시발점으로 간주한다.

한때는 황제의 권위를 부정하던 기독교가, 이제는 그 지위가 높아질수록 황제의 권위도 덩달아 높아지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기독교는 황제나 교황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었지만, 기독교가 제시한 삶의 방향과 문화는 유럽인들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4세기는 결국 기독교와 관련된 정치적 행위의 연속이었고, 고대와 중세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사실 사두정치 이후에도, 이 4세기라는 시대 동안 제국은 여러 차례 여러 황제에 의한 분할 통치를 행했다. 그리고,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에도 로마는 여태껏 그래왔듯이 동서 분할 통치를 시행했다. 그렇게 동서로 분할된 로마는 두 번 다시 합쳐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두 황제에 의해 통치된 두 영역을 서로마 제국(~476), 동로마 제국(~1453)으로 칭하게 된다.

한편, 유라시아 북부에서 나타난 훈족흑해 연안의 게르만족을 격파하고 복속시켰다. 로마 제국은 처음에 이 사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게르만족이 훈족의 침략을 피해 서쪽과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로마에서도 난리가 난다. 고트족과 로마 사이의 사건에 대해선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문서 참고.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어 결국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것까지 이어진다.

2.2. 동아시아

동양에서는 중국이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붕괴하고 삼국시대를 한참 능가하는 중국사 최악의 막장 군웅할거 시대인 오호십육국시대가 개막했다. 이 혼란상은 희대의 정치가 왕맹의 도움을 받은 부견에 의해 4세기 말에 평정될 뻔했으나, 비수대전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중국의 통일은 200여년 가까이 늦춰진다.

한국에서 4세기는 삼국시대로, 특히 백제의 전성기였다. 근초고왕평양성까지 치고 올라가 고구려고국원왕을 전사시켰으며, 백제 700여 년 역사상 최대 판도를 달성했다. 요서경략설도 이 시대와 관련된 떡밥이다. 그러나 4세기 후반에 소수림왕이 올랐으며 그 후에 광개토대왕이 즉위해 고구려의 전성기의 서막을 알린다.

일본의 경우엔 3세기 후반 히미코의 뒤를 이은 토요의 기록 이후로 5세기에 왜5왕이 등장할때까지 중국 사서에 일본 관련 기록이 아예 끊기기 때문에 연구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꽃피는 시기이기도 하다.

2.3. 인도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찬드라굽타 1세가 북인도를 재통일하였다. 이 왕조 치세에 인도의 지배적 종교는 불교에서 힌두교로 전환되어간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인도의 최대 종교는 힌두교였다.

3. 주요 사건

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5. 연도 목록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