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구분 | ||||
316년 | ← | 317년 | → | 318년 |
연대구분 | ||||
300년대 | ← | 310년대 | → | 320년대 |
세기구분 | ||||
3세기 | ← | 4세기 | → | 5세기 |
밀레니엄구분 | ||||
기원전 | ← | 제1천년기 | → | 제2천년기 |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기 | 317년 |
단기 | 2650년 |
불기 | 861년 |
황기 | 977년 |
간지 | 병자년~정축년 |
히브리력 | 4077년 ~ 4078년 |
동진 | 건무 원년 |
고구려 | 미천왕 18년 |
백제 | 비류왕 14년 |
신라 | 흘해 이사금 8년 |
1. 개요
2. 사건
2.1. 실제
- 3월 1일 - 로마 제국의 내전 중, 마르디아 전투(316년 말 or 317년 초)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끄는 군대가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그 결과로 이 해 317년에 세르디카에서 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건은 살려는 드릴게로 요약된다.[1] 참고로 24년 전 4두정치가 시작한 날과 같은데, 우연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의 의도적인 날짜 선정이다.
- 4월 6일 - 서진의 황족 사마예가 서진이 망한 후 건업에서 진왕으로 추대되어 사실상 동진을 열었다.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1] 1. 트라키아를 제외한 유럽(발칸반도) 전역의 할양, 2. 얼마 전 316년 말에 세웠던 리키니우스의 부제 발레리우스 발렌스를 폐위 후 죽이고, 각자의 아들을 동서 양쪽의 부제로 세울 것(그런데 여기서도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은 2명, 리키니우스의 아들은 1명으로 불평등했고, 리키니우스의 아들도 사실은 콘스탄티누스의 조카였다.) 3. 같은 정제끼리지만, 콘스탄티누스가 그 중 선임황제임을 인정할 것의 3개.